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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와 패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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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04.01 11:16
최근연재일 :
2020.02.09 22:13
연재수 :
271 회
조회수 :
116,524
추천수 :
2,679
글자수 :
1,047,762

작성
19.05.18 09:40
조회
452
추천
8
글자
8쪽

12장 전장에 핀 꽃 1화 굳건한 성벽

DUMMY

12장 전장에 핀 꽃



세레즈력 387년 4월,

남부탈환군의 총사령관, 안타미젤 폰다 벤 세레스티아,

본진에 도착한 미드프레드 라 그론레이 휘하 하크스 지원군을 직속부대로 수용하다.


-제국력 연대기 섭정공 세느비엔느 열전 발췌





1. 굳건한 성벽




도무지 무너질 것 같지 않은 굳건한 회색 성벽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적군이 줄기차게 쏟아 부어대는 뜨거운 물과 기름 공격에, 성벽을 기어오르던 아군 병사들이 내지르는 처절한 비명이 클리어트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른다. 그는 잡고 있던 말고삐를 신경질적으로 손에 감아 쥐며 시선을 내렸다.


혼잡한 전장 곳곳에 쓰러져 있는 병사들의 처참한 모습이 망막을 어지럽힌다. 이대로는 무리다. 성안에 있는 적군은 전력 손실이 전혀 없는 반면, 아군의 피해만 속출하고 있다.


클리어트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전방을 쏘아보았다. 성 위로부터 화살 하나가 비틀대며 날아온다. 그는 뽑아 들고 있던 검으로 그것을 한 번 쳐서 날려버리고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미 승산 따위는 없다. 더 매달려 봤자 피해만 늘어갈 뿐. 악다문 입술 새로 역한 피비린내가 확 끼쳐온다.


"퇴각! 전군 퇴각하라!! "


클리어트의 갈라진 음성이 허공에 메아리 친다. 자신의 명령을 병사들에게 전하는 분대장들의 고함소리를 뒤로한 채 클리어트는 말머리를 획 돌렸다. 자신을 따라오는 병사들의 숨가쁜 헐떡거림이 그의 뒤통수에 달라붙는다. 그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마치 아군이 후퇴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등뒤로 적군의 화살이 빗발친다. 말고삐를 쥐고 있는 팔뚝에 일순 화끈한 기운이 닿는다. 하지만 돌아볼 여유 따위는 없다. 클리어트는 병사들을 사정권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소리쳐댔다.


겨우겨우 아군의 진영 안으로 들어온 클리어트는 길게 숨을 내쉬며 주위의 병사들을 둘러 보았다. 말고삐를 쥐고 있는 손아귀가 끈적거린다.


하지만 그는 병사들의 수를 대강이나마 어림한 뒤에서야 비로소 시선을 내려 왼팔을 바라보았다. 어깨부터 손목까지를 보호하기 위해 착용한 가죽 보호대의 일부가 깊게 찢겨 있고, 왼쪽 팔뚝은 온통 붉은 피로 흥건하다. 긴장이 풀린 것인가. 새삼스럽게 상처 부위가 얼얼하게 쑤셔댄다. 씁쓸한 웃음이 치민다. 그는 팔뚝에서 시선을 떼어내고 말 위에서 내려왔다.


신경질적인 걸음걸이로 막사 안으로 휙 들어서는 클리어트 뒤를 따라 군의관 하나가 종종걸음으로 뛰어들어온다.


"뭐냐. "


내던지는 듯한 말투에 따라 들어온 군의관이 움찔하며 변명하듯 말을 주워섬긴다.


"각하께서 부상을 입으신 듯 하여··· "


"대수롭지 않은 상처다. 나가서 병사들이나 돌보도록. "


"하지만 곧장 치료하지 않으면 파상풍에 걸리실 수도 있습니다. 하다못해 소독 후 지혈이라도 하시는 것이··· "


"그리 하시지요. 활에 맞은 상처를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살이 썩어 들어가 나중에 고생하십니다. "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고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냉랭한 어조다. 클리어트는 안으로 막 들어선 비쩍 마른 사내에게 메마른 눈길을 던졌다.


"흥, 드로와젤인가. "


그는 사내에게서 시선을 떼어내며 부상당한 팔을 군의관 쪽으로 쭉 뻗었다. 짜릿한 아픔이 전신을 강타한다. 얼굴이 저절로 찌푸려진다. 그는 이를 악물어 터져 나오려는 신음을 억눌렀다.


"···빨리 해라. "


"예. 금방 끝낼 테니, 잠시 동안만 움직이지 말아 주십시오. "


주섬주섬 자리를 잡고 선 군의관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클리어트의 가죽 보호대를 분리해내고 상처부위에 노란 고약을 바른다. 클리어트는 따끔하게 밀려오는 고통을 억누르며 짜증스러운 어조로 말을 꺼냈다.


"이 빌어먹을 놈의 성 하나에 대체 몇 명이 매달려 있는 거냐. 재수가 없으려니 별 게 다 발목을 잡는구나. 이곳에 온 뒤로 제대로 되어 가는 게 없단 말이다. "


그는 하크스 영주와 첸트로빌 성을 통째로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다는 듯 거칠게 내뱉었다.


"대체 언제까지 이따위 촌구석에 처 박혀 있어야 한단 말이냐. "


초조하다. 답답하고 짜증스러워서 미칠 것만 같다. 본진의 총사령관은 그레안에 있는 세레즈 군을 향해 총공세를 취하려 한다는데, 자신은 얼마 되지도 않는 첸트로빌 성의 적군을 상대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이대로 여기 있어서는 죽도 밥도 안 된다. 후방 따위에 물러서 있어서야 뚜렷한 전공을 세울 수 없지 않은가. 전면전이 벌어진 이후에 합류해서는 이미 늦다. 될 수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아니 단 한 시간이라도 빨리 이곳을 정리하고 본진으로 가야만 한다.


"해군을 동원해서 도성이나 쳐버릴까. "


악 다문 입술 새로 씹어 뱉듯 한 말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분노와 초조함으로 격하게 달아올라 있는 클리어트의 머리 위에 찬물을 끼얹는 듯한 목소리가 곧바로 막사 안에 울려 퍼졌다.


"다이레비드는 절벽 위에 세워진 성채도시라고 들었습니다만. "


"제기랄 그걸 누가 모르나! "


클리어트는 붕대에 절반쯤 감겨 있는 팔을 거칠게 허공으로 내지르며 악을 질렀다. 순간적으로 몰려온 날카로운 통증이 등줄기를 타고 짜릿하게 번져간다. 자기도 모르게 나직한 신음이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다. 당황한 군의관의 비명 같은 부름이 흩어진다.


"각하! "


치료 중인 팔을 멋대로 움직여대는 클리어트의 행동에 불만스러운 기색이던 군의관은 사납게 쏘아보는 그의 눈길에 떠밀리듯 주춤거리면서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나 시선을 떨구었다.


"그리 과격하게 움직이시면 상처 부위가 덧납니다. "


씨근거리는 클리어트를 담담한 표정으로 지켜보며 드로와젤이 말을 꺼냈다. 지금 부상 따위가 문제냐고 호통을 치고 싶은 심정을 가까스로 억누른 클리어트의 귓가에 감정이라고는 손톱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얼음장같은 드로와젤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부딪혀 왔다.


"정 공격을 하시고 싶다면, 돌아가는 상황을 봐서 해군을 이용하여 그레안에 있는 적의 후방을 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세레즈 군 전방에 위치한 대장군의 부대와 협공이 가능할 텐데요. "


그러나 클리어트가 그 의견에 대해 뭐라고 답하기도 전에 드로와젤의 싸늘한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하지만 현재로선 일단 안정을 취하시면서 상황을 조율해 가는 것이 우선일 것 같군요. 말씀 드린 방법도 후방이 어느 정도는 잠잠해진 뒤에야 실행하실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


클리어트는 잠자코 눈살을 찌푸리며 힘없이 풀어져 아래로 흘러내린 붕대의 일부에 시선을 던졌다. 잠깐의 시간차를 두고 흘러나온 그의 목소리에는 착잡함의 그늘이 짙게 배어들어 있었다.


"···대장군께서 뭐라고 호통치실 지 눈에 선하군. 빌어먹을 놈의 하크스 같으니. "


클리어트는 두 눈을 감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혼잣말 하듯 작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공세를 취해야 한다는 그 분의 판단은 옳아.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 빨리 본진으로 가지 않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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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12장 전장에 핀 꽃 7화 지원군의 본진 합류(12장 인명록) 19.05.23 414 10 9쪽
74 12장 전장에 핀 꽃 6화 출격요청 19.05.22 613 9 8쪽
73 12장 전장에 핀 꽃 5화 전장의 꽃 19.05.21 434 10 7쪽
72 12장 전장에 핀 꽃 3-4화 이반의 조짐 19.05.20 536 12 10쪽
71 12장 전장에 핀 꽃 2화 불꽃 같은 여인 19.05.19 426 8 8쪽
» 12장 전장에 핀 꽃 1화 굳건한 성벽 19.05.18 453 8 8쪽
69 11장 분열의 조짐 7-8화 최종단안(11장 인명록) 19.05.17 440 9 12쪽
68 11장 분열의 조짐 6화 뮤켄의 충고 19.05.16 504 8 9쪽
67 11장 분열의 조짐 5화 패퇴 19.05.15 450 10 7쪽
66 11장 분열의 조짐 3-4화 양동작전 19.05.14 429 10 10쪽
65 1부 11장 분열의 조짐 1-2화 후방기지 괴멸 소식 19.05.13 511 9 11쪽
64 10장 진흙 속의 연꽃 7화 투항 제의 (10장 인명록) 19.05.09 465 8 13쪽
63 10장 진흙 속의 연꽃 5-6화 접전 19.05.08 519 8 7쪽
62 10장 진흙 속의 연꽃 4화 적의 공격에 대처하는 각자의 자세 19.05.07 464 8 8쪽
61 10장 진흙 속의 연꽃 3화 후방기지 카르테 19.05.07 483 7 7쪽
60 10장 진흙 속의 연꽃 2화 이해 19.05.07 480 8 8쪽
59 1부 10장 진흙 속에 핀 연꽃 1화 불만 19.05.07 525 6 7쪽
58 9장 전설의 시작 7화 조력요청(9장 인명록) 19.05.06 524 7 12쪽
57 9장 전설의 시작 5-6화 전후처리 19.05.06 568 8 12쪽
56 9장 전설의 시작 4화 최초의 승리 19.05.06 551 7 11쪽
55 9장 전설의 시작 3화 교전 19.05.05 517 9 9쪽
54 9장 전설의 시작 2화 기습 19.05.04 504 12 9쪽
53 9장 전설의 시작 1화 위장잠입 19.05.03 496 8 10쪽
52 8장 효시 7화 작전계획(8장 인명록) 19.05.02 557 11 12쪽
51 8장 효시 6화 용기, 혹은 이길 수 있다는 신념 19.05.02 539 8 11쪽
50 8장 효시 5화 아나브릴 방어군에서 얻은 정보 19.05.02 486 9 9쪽
49 8장 효시 3-4화 사령관과 참모장 19.05.01 508 11 13쪽
48 8장 효시 2화 전장의 밤 19.05.01 533 10 11쪽
47 8장 효시 1화 행군시작 19.04.30 560 12 11쪽
46 7장 전환점 7화 최초의 동료(7장 인명록) 19.04.30 569 8 11쪽
45 7장 전환점 6화 입바른소리 19.04.29 539 11 8쪽
44 7장 전환점 5화 보이지 않는 벽 19.04.29 558 11 7쪽
43 7장 전환점 4화 출전령 19.04.28 572 10 7쪽
42 7장 전환점 3화 하크스 지원군 19.04.28 648 11 9쪽
41 7장 전환점 2화 정치적 포석 19.04.27 609 12 10쪽
40 1부 7장 전환점 1화 연전연패 19.04.27 579 11 8쪽
39 6장 개전 8화 승진 거절(6장 인명록) 19.04.26 586 11 8쪽
38 6장 개전 7화 뮤켄장군 19.04.26 631 13 9쪽
37 6장 개전 6화 개전 이후 19.04.25 572 9 7쪽
36 6장 개전 5화 선제공격 19.04.25 625 10 7쪽
35 6장 개전 4화 선전포고 19.04.24 639 13 7쪽
34 6장 개전 3화 어머니와 아들 下 19.04.24 572 16 11쪽
33 6장 개전 2화 어머니와 아들 上 19.04.23 597 12 7쪽
32 1부 6장 개전 1화 진상규명요구 19.04.23 631 10 11쪽
31 5장 태풍의 눈 8화 안타미젤의 결심(5장 인명록) +2 19.04.22 696 15 12쪽
30 5장 태풍의 눈 6-7화 안타미젤 왕자 19.04.22 697 10 8쪽
29 5장 태풍의 눈 5화 계륵과도 같은 패 19.04.21 633 12 9쪽
28 5장 태풍의 눈 3-4화 충성서약 19.04.21 735 11 13쪽
27 5장 태풍의 눈 2화 사직서의 파장 19.04.20 743 14 11쪽
26 1부 5장 태풍의 눈 1화 사직원 19.04.19 743 15 7쪽
25 4장 부위정경 7화 생존전략(4장 인명록) 19.04.19 752 16 16쪽
24 4장 부위정경 6화 속고 속이는 싸움 19.04.18 764 19 10쪽
23 4장 부위정경 5화 기만 19.04.18 871 14 13쪽
22 4장 부위정경 4화 공주의 부름 19.04.17 822 19 10쪽
21 4장 부위정경 3화 거리의 아이 19.04.17 852 18 10쪽
20 4장 부위정경 2화 세레즈의 물밑 접촉 19.04.16 829 20 7쪽
19 1부 4장 부위정경 1화 코네세타의 공주 19.04.15 868 19 10쪽
18 3장 폭풍전야 6화 주전론을 위한 막후교섭(3장 인물소개) 19.04.14 906 21 12쪽
17 3장 폭풍전야 4화 밀실정치 下 +2 19.04.13 1,013 21 7쪽
16 3장 폭풍전야 3화 밀실정치 上 +2 19.04.12 1,002 23 7쪽
15 3장 폭풍전야 2화 그윈 재상 19.04.11 1,049 23 8쪽
14 1부 3장 폭풍전야 1화 태자의 실종 19.04.10 1,192 21 11쪽
13 2장 애별리고 7화 이별(1-2장 인물소개) +4 19.04.10 1,199 33 8쪽
12 2장 애별리고 6화 고작 마음 하나 +2 19.04.09 1,253 21 9쪽
11 2장 애별리고 5화 이주명령 19.04.09 1,399 26 9쪽
10 2장 애별리고 4화 떨림과 설렘 +4 19.04.07 1,392 25 7쪽
9 2장 애별리고 3화 염색 +2 19.04.05 1,470 24 7쪽
8 2장 애별리고 2화 현기증 +2 19.04.04 1,485 28 7쪽
7 1부 2장 애별리고 1화 마음의 향방 19.04.03 1,535 26 7쪽
6 1장 표류 6화 자각 +2 19.04.03 1,647 32 7쪽
5 1장 표류 5화 바다를 닮은 여인 +6 19.04.02 2,070 33 8쪽
4 1장 표류 4화 슈레디안의 고민 19.04.01 2,285 37 8쪽
3 1장 표류 3화 3년만의 손님 19.04.01 2,634 34 7쪽
2 1장 표류 2화 신분 은폐 19.04.01 3,542 46 7쪽
1 <제1부 펜데스칼 전쟁> 제1장 표류 1화 난파당한 청년 +4 19.04.01 6,792 6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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