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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와 패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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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04.01 11:16
최근연재일 :
2020.02.09 22:13
연재수 :
271 회
조회수 :
116,476
추천수 :
2,679
글자수 :
1,047,762

작성
19.04.12 08:00
조회
1,001
추천
23
글자
7쪽

3장 폭풍전야 3화 밀실정치 上

DUMMY

3장. 폭풍전야







3화 밀실정치 上






“오랜만이오, 재상.”


육중한 문이 소리도 없이 열리고 여왕인 세느비엔느 Ⅰ세가 들어서는 것과 동시에 재상은 앉아 있던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예. 신 부르노 레 그윈, 참으로 오랜만에 폐하께 문안 인사 여쭈옵니다.”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 예를 표하는 노재상에게 의례적인 인사말을 건네고 상석에 앉으면서도 세느비엔느는 그가 자신을 찾아온 연유에 대하여 고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뭔가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 없다면 절대로 움직이지 않을 인간, 그것이 그윈 재상이 아니던가. 더군다나 아체프렌이 코네세타로 떠난 이후 반년이 넘도록 그는 노환을 구실로 단 한 번도 조정 조회에 참여하지 않았었다.


왕명의 형식으로 전해진 조정의 부름까지 거부한 채 본인의 영지인 그레안에 틀어박힌 그윈이 권력을 등에 업은 상행위와 고리대로 재산 축적에만 골몰해 있다는 소식쯤이야 진즉부터 접해왔다. 그렇기에 더더욱 세느비엔느에게는 예기치 않은 상대의 방문이 한층 더 의아하게 다가오지 않을 수 없었다.


“짐은 재상의 병이 중하여 거동조차 쉽지 않다 들었는데 그간 많이 쾌차하신 모양이오. 한 나라의 대소사를 관장하는 재상의 병은 곧 나라의 근심인지라, 내 내심으로 그에 대해 시름이 참으로 많았다오.”


얼핏 듣기에는 상대방의 안부까지 포함한 평범한 인사인 듯 보였으나, 재상은 여왕의 말속에 가려져 있는 날카로운 빈정거림의 가시를 읽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육십 평생을 파란 많은 황성에서 버텨온 그의 노회한 얼굴에는 한 점 동요도 스치지 않았다.


“송구하옵니다. 하오나 신의 병이 아무리 중하다 한들 조석으로 백성들과 나라의 안위를 근심하시는 폐하를 두고 어찌 편히 영지 안에서만 안돈할 수 있겠나이까. 세레즈를 보우하시는 수천의 신들께서도 하루라도 빨리 쾌차하여 폐하를 보필하고자 하는 노신의 충정을 헤아려 주신 듯하옵니다.”


거듭되는 왕명조차 귓등으로 들어넘긴 것이 언제였냐는 재상은 철면피한 태도로 말을 받았다. 언죽번죽한 그의 치렛말에 내심으로는 뱀 같이 간교한 작자라 여겼으면서도 여왕 또한 스스로의 감정을 숨긴 채 화사하게 미소 지었다.


“어찌 되었건 조정 대신들의 수장인 재상의 병이 완치되었다니 이는 나라에 있어 실로 홍복이 아닐 수 없소. 짐 역시 이처럼 재상의 강건한 모습을 대하게 되니 기쁘기 한량없군.”


“황감하옵니다. 소신 역시 다시 폐하를 보좌하여 국사를 돌볼 수 있게 되어 흔열하기 그지없사옵니다.”


재상은 만면에 희색을 띠며 들고 온 진상품을 여왕 앞으로 내밀었다. 의례적인 안부도 물었으니 지금이 선물을 꺼내기에 딱 좋은 시점이었다.


태자인 아체프렌과 제 여식인 스와닐다의 약혼 건으로 아직까지 자신에게 서운한 감정이 남아있을 여왕이었다. 왕국 최고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선왕과 약혼을 하고, 사교계의 정점에 서서 만인의 숭앙을 받으며 떠받들려 성장한 만큼 원래부터 오만하고 독선적이며 극히 감정적인 세느비엔느였다. 로제스티나라는 복병이 나타나 선왕인 카르세오가 신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덜컥 세느비엔느와의 파혼을 선언하기 전까지 그녀의 인생에는 그 어떤 실패도 좌절도 박탈도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가문의 위세를 빌려 로제스티나를 제거하고 본래 자신의 자리를 되찾은 세느비엔느는 그나마 세상 물정 모르고 천진한 편이었던 선왕의 약혼녀 시절과는 비교조차 불가하리만큼 독해지고 영악해졌으며 독단적으로 바뀌었다.


그런 만큼 기분을 풀어줄 만한 어떠한 조치도 없이 제 생각을 말한다면 여왕은 자신의 의도와 상반된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신의 여식이 폐하의 강건하심을 기원하며 알레이시아 신전에서 백일 간 축수 발원 드린 성포에 직접 자수를 놓은 수파이옵니다.”


이것이 무엇이냐는 듯 고개를 들어 자신을 바라보는 여왕의 푸른 눈동자를 또렷이 응시하며 재상은 그녀의 궁금함에 대한 답을 건네주었다.


“저런, 스와닐다 공녀가 짐을 위해 손수 만들었단 말이오?”


여왕은 고개를 약간 기울이고는 자신 앞에 놓여 있는 진상품의 붉은 비단보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손에서 시선을 거두어들이며 재상이 천천히 덧붙였다.


“신의 여식이 아직 어리고 여러 가지로 모자란 까닭에, 황송하옵게도 어린 시절에 잃은 어미를 대신하여 폐하를 어머니처럼 여기고 있사옵니다. 하오니 그 마음을 과히 어리석다 여기지 마시고 크나크신 혜의로 보듬어 주사 부디 여식의 정성을 물리치지 말아 주시옵소서.”


비단보를 풀자 세레즈 여인들의 평안을 보우하고 예술을 관장하는 신이자 풍요와 대지의 여신이기도 한 알레이시아와 그를 따르는 요정들의 모습을 상아와 벽옥으로 섬세하게 박아 넣은 반짝이는 재질의 흑단 함이 나왔다. 조각해 넣은 신의 모습은 물론이요, 함의 한쪽 끝에 황금으로 우아하게 그려 넣은 왕가의 문장까지 그 어느 것 하나 장인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스치지 않은 데가 없었다.


재상의 말과는 달리 선물의 초점이 상자 안이 아니라 밖에 있었음을 간파해낸 세느비엔느는 애써 쓴웃음을 감췄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함을 열어 공단으로 우아하게 수놓아진 손수건을 꺼내 들고 재상을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짐 역시 스와닐다 공녀를 두 왕자 못지않게 괴이고 있는데, 어찌 공녀의 성의를 물릴 수가 있겠소? 재상이 공녀에게 내가 진심으로 흡족해하더라고 전해주시구려.”


“폐하의 은혜로우신 말씀을 전하면 제 여식 또한 크게 기뻐할 것이옵니다.”


흑단 함 안에 손수건을 도로 집어넣으며 여왕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혹 공녀가 도성 안에 돌고 있는 부언유설에 마음을 쓰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소.”


비록 겉으로는 스와닐다를 염려하여 꺼낸 말인 듯 보이나 그 질문의 초점이 본인의 의중을 떠보고자 함에 있다는 것을 재상은 어렵지 않게 간파해낼 수 있었다.


“비록 신이 도성에 올라온 지는 얼마 되지 아니하나 아체프렌 전하의 실종에 관한 일이라면, 비단 신의 여식뿐 아니라 성내 귀족들 역시 크게 우려하고 있는 듯 보였사옵니다.”


재상은 흰 수염을 훑어 내리며 여왕을 흘끗 바라보았다.


“대국 세레즈의 정통 계승자가 행방불명 되었는데 어찌 조정이 혼란스럽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는 곧 국가의 존망이 걸린 절체절명의 위기라 하지 않을 수 없으니, 온 도성이 술렁거리는 것은 피치 못할 일이라 생각되옵니다.”


조정과 다른 귀족을 운운하고 있으나 기실 그 발언은 태자 아체프렌의 실종을 받아들이는 재상 본인의 입장표명이나 다름없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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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69 BrSerpen..
    작성일
    19.04.23 14:12
    No. 1

    글쓰기란 마주한 이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내 자신이 아닐까 하네요.
    감사히 잘 읽고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36 창작연
    작성일
    19.04.23 14:50
    No. 2

    깊은 사색이 담긴 댓글 감사합니다. 읽어주시는 분들께 부끄럽지 않은 글이 되도록 늘 노력하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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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12장 전장에 핀 꽃 7화 지원군의 본진 합류(12장 인명록) 19.05.23 414 10 9쪽
74 12장 전장에 핀 꽃 6화 출격요청 19.05.22 612 9 8쪽
73 12장 전장에 핀 꽃 5화 전장의 꽃 19.05.21 433 10 7쪽
72 12장 전장에 핀 꽃 3-4화 이반의 조짐 19.05.20 535 12 10쪽
71 12장 전장에 핀 꽃 2화 불꽃 같은 여인 19.05.19 425 8 8쪽
70 12장 전장에 핀 꽃 1화 굳건한 성벽 19.05.18 452 8 8쪽
69 11장 분열의 조짐 7-8화 최종단안(11장 인명록) 19.05.17 440 9 12쪽
68 11장 분열의 조짐 6화 뮤켄의 충고 19.05.16 503 8 9쪽
67 11장 분열의 조짐 5화 패퇴 19.05.15 449 10 7쪽
66 11장 분열의 조짐 3-4화 양동작전 19.05.14 428 10 10쪽
65 1부 11장 분열의 조짐 1-2화 후방기지 괴멸 소식 19.05.13 510 9 11쪽
64 10장 진흙 속의 연꽃 7화 투항 제의 (10장 인명록) 19.05.09 464 8 13쪽
63 10장 진흙 속의 연꽃 5-6화 접전 19.05.08 518 8 7쪽
62 10장 진흙 속의 연꽃 4화 적의 공격에 대처하는 각자의 자세 19.05.07 464 8 8쪽
61 10장 진흙 속의 연꽃 3화 후방기지 카르테 19.05.07 482 7 7쪽
60 10장 진흙 속의 연꽃 2화 이해 19.05.07 479 8 8쪽
59 1부 10장 진흙 속에 핀 연꽃 1화 불만 19.05.07 524 6 7쪽
58 9장 전설의 시작 7화 조력요청(9장 인명록) 19.05.06 523 7 12쪽
57 9장 전설의 시작 5-6화 전후처리 19.05.06 568 8 12쪽
56 9장 전설의 시작 4화 최초의 승리 19.05.06 550 7 11쪽
55 9장 전설의 시작 3화 교전 19.05.05 516 9 9쪽
54 9장 전설의 시작 2화 기습 19.05.04 503 12 9쪽
53 9장 전설의 시작 1화 위장잠입 19.05.03 496 8 10쪽
52 8장 효시 7화 작전계획(8장 인명록) 19.05.02 556 11 12쪽
51 8장 효시 6화 용기, 혹은 이길 수 있다는 신념 19.05.02 539 8 11쪽
50 8장 효시 5화 아나브릴 방어군에서 얻은 정보 19.05.02 485 9 9쪽
49 8장 효시 3-4화 사령관과 참모장 19.05.01 507 11 13쪽
48 8장 효시 2화 전장의 밤 19.05.01 533 10 11쪽
47 8장 효시 1화 행군시작 19.04.30 560 12 11쪽
46 7장 전환점 7화 최초의 동료(7장 인명록) 19.04.30 568 8 11쪽
45 7장 전환점 6화 입바른소리 19.04.29 538 11 8쪽
44 7장 전환점 5화 보이지 않는 벽 19.04.29 557 11 7쪽
43 7장 전환점 4화 출전령 19.04.28 571 10 7쪽
42 7장 전환점 3화 하크스 지원군 19.04.28 647 11 9쪽
41 7장 전환점 2화 정치적 포석 19.04.27 609 12 10쪽
40 1부 7장 전환점 1화 연전연패 19.04.27 579 11 8쪽
39 6장 개전 8화 승진 거절(6장 인명록) 19.04.26 585 11 8쪽
38 6장 개전 7화 뮤켄장군 19.04.26 631 13 9쪽
37 6장 개전 6화 개전 이후 19.04.25 572 9 7쪽
36 6장 개전 5화 선제공격 19.04.25 625 10 7쪽
35 6장 개전 4화 선전포고 19.04.24 638 13 7쪽
34 6장 개전 3화 어머니와 아들 下 19.04.24 572 16 11쪽
33 6장 개전 2화 어머니와 아들 上 19.04.23 597 12 7쪽
32 1부 6장 개전 1화 진상규명요구 19.04.23 630 10 11쪽
31 5장 태풍의 눈 8화 안타미젤의 결심(5장 인명록) +2 19.04.22 695 15 12쪽
30 5장 태풍의 눈 6-7화 안타미젤 왕자 19.04.22 696 10 8쪽
29 5장 태풍의 눈 5화 계륵과도 같은 패 19.04.21 632 12 9쪽
28 5장 태풍의 눈 3-4화 충성서약 19.04.21 734 11 13쪽
27 5장 태풍의 눈 2화 사직서의 파장 19.04.20 743 14 11쪽
26 1부 5장 태풍의 눈 1화 사직원 19.04.19 742 15 7쪽
25 4장 부위정경 7화 생존전략(4장 인명록) 19.04.19 751 16 16쪽
24 4장 부위정경 6화 속고 속이는 싸움 19.04.18 763 19 10쪽
23 4장 부위정경 5화 기만 19.04.18 871 14 13쪽
22 4장 부위정경 4화 공주의 부름 19.04.17 821 19 10쪽
21 4장 부위정경 3화 거리의 아이 19.04.17 852 18 10쪽
20 4장 부위정경 2화 세레즈의 물밑 접촉 19.04.16 828 20 7쪽
19 1부 4장 부위정경 1화 코네세타의 공주 19.04.15 868 19 10쪽
18 3장 폭풍전야 6화 주전론을 위한 막후교섭(3장 인물소개) 19.04.14 906 21 12쪽
17 3장 폭풍전야 4화 밀실정치 下 +2 19.04.13 1,013 21 7쪽
» 3장 폭풍전야 3화 밀실정치 上 +2 19.04.12 1,002 23 7쪽
15 3장 폭풍전야 2화 그윈 재상 19.04.11 1,048 23 8쪽
14 1부 3장 폭풍전야 1화 태자의 실종 19.04.10 1,192 21 11쪽
13 2장 애별리고 7화 이별(1-2장 인물소개) +4 19.04.10 1,199 33 8쪽
12 2장 애별리고 6화 고작 마음 하나 +2 19.04.09 1,252 21 9쪽
11 2장 애별리고 5화 이주명령 19.04.09 1,399 26 9쪽
10 2장 애별리고 4화 떨림과 설렘 +4 19.04.07 1,392 25 7쪽
9 2장 애별리고 3화 염색 +2 19.04.05 1,470 24 7쪽
8 2장 애별리고 2화 현기증 +2 19.04.04 1,484 28 7쪽
7 1부 2장 애별리고 1화 마음의 향방 19.04.03 1,534 26 7쪽
6 1장 표류 6화 자각 +2 19.04.03 1,647 32 7쪽
5 1장 표류 5화 바다를 닮은 여인 +6 19.04.02 2,069 33 8쪽
4 1장 표류 4화 슈레디안의 고민 19.04.01 2,284 37 8쪽
3 1장 표류 3화 3년만의 손님 19.04.01 2,634 34 7쪽
2 1장 표류 2화 신분 은폐 19.04.01 3,541 46 7쪽
1 <제1부 펜데스칼 전쟁> 제1장 표류 1화 난파당한 청년 +4 19.04.01 6,791 6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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