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막 7장
시간이 약간 늦으니 홀로 객잔을 이끌고 있을 하희민이 걱정이 된 윤휘랑은 걸음을 재촉했다. 그 덕분에 죽어나가는 것은 말과 연상화의 골반이었다.
“객주님! 좀 쉬었다 가요!”
연상화가 중간에 몇 번이나 불평을 터트렸지만 윤휘랑은 말의 체력만 회복되면 연상화가 불평을 하든 말든 가볍게 신경을 꺼버리고 길을 나섰다.
그런 윤휘랑을 보며 연상화가 속으로 생각했다.
‘내 말을 들어야 뭘 유혹을 하든 말든 할 거 아니야?’
연상화는 윤휘랑의 뒤통수를 살짝 노려보았다. 어차피 유혹 할 생각도 없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건 해도 해도 너무했다.
“쓸데없이 규칙적이야 심지어…….”
정도맹을 떠나온 지 약 팔일 정도가 되었다. 그동안 윤휘랑은 팔일 내내 규칙적인 생활을 했다. 아침 해가 뜨면 자고 있는 연상화를 깨워 말 먹이를 주게 만들고 자신은 식사를 만들었다. 점심이 되면 반 시진 정도 휴식을 취하고 식사를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해가지면 바로 휴식을 취하고 밥을 먹이고 두 시진 정도 지나면 취침.
이 생활을 팔 일을 반복하니 이제는 밥 때가 되면 저절로 배가 고팠고, 잠잘 때가 되면 저절로 눈이 감겼다.
“몸이 건강해지는 기분이야…….”
연상화는 한숨을 쉬었다.
오늘은 정도맹을 떠나온 지 구 일째 되는 날이었다. 말을 타고 달리는 동안 윤휘랑은 딱히 대화를 하지 않았기에 그녀는 너무나도 무료했다. 그 때문에 그녀는 산적이 나오기를 바랄 정도였다.
그 때였다.
“멈춰라!”
“진짜 나왔어!?”
연상화와 윤휘랑을 선두에서 가로막는 무리가 있었다. 연상화는 그 무리를 보고 황당한지 소리를 질렀다. 그런 그녀를 윤휘랑이 한 번 이상한 듯 쳐다보고는 그들에게 물었다.
“너흰 뭐냐?”
그의 물음에 선두에 선 남자가 껄껄 웃고는 말했다.
“누구긴 누구냐. 이 산의 형님들이지.”
남자의 대답에 연상화가 앞으로 나와 물었다.
“이 검이 보이지 않나? 어디 소속인가? 녹림십팔채인가?”
하남은 예로부터 소림사와 그 외에 정도를 지향하는 문파들이 많았다. 그런 하남에서 외곽이긴 하지만 산적 질을 하고 있는 것은 뒷배가 있다는 것, 아니면 멋모르는 멍청한 작자들인 것이다. 과연 이들은 전자일까? 후자일까?
연상화의 물음에 선두에 선 장한의 남자가 다시 껄껄 웃고는 소리쳤다.
“그런 허접한 곳에 우리가 소속 되어 있을 것 같나!”
장한의 남자의 말에 이번에는 연상화와 윤휘랑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윤휘랑이 물었다.
“그럼 어디 소속인데?”
윤휘랑의 물음에 장한의 남자가 대답했다.
“놀라지 말고 들어라.”
아무래도 전자인 듯 싶었다. 남자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우린 건협맹 소속이다.”
그 뒷배가 약간 황당하긴 하지만 말이다. 남자의 말에 윤휘랑과 연상화가 서로를 쳐다보더니 남자에게 물었다.
“…….뭐?”
연상화와 윤휘랑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묻자 남자가 웃으며 대답했다.
“니들도 옆구리에 검을 차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우리들에 대한 명성 정도는 들어 봤겠지?”
남자의 자신만만한 이야기에 윤휘랑이 볼을 긁으며 물었다.
“니들 정말 건협맹 소속이냐?”
윤휘랑의 물음에 남자가 여전히 자신만만한 태도로 말했다.
“당연하지! 그러니까 네놈은 꺼지고 여자와 돈을 내려놓고…….”
“마침 잘됐군.”
“그래 마침 잘됐…….응?”
윤휘랑의 말에 자신만만하던 남자가 순간 멍청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자신을 쳐다보는 남자를 보며 윤휘랑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안내해. 너희 본거지로.”
**
“끄응…….”
“으어어! 내 팔!”
“아이고오오오…….”
아까까지만 해도 간간히 새소리만 들려왔던 산속에 갑작스럽게 곡소리가 널리 퍼져 들려왔다. 그 소리의 근원지는 산의 위치한 대로에서 들려왔다.
대로라 해봤자 말이 두 세 마리 정도 지나갈 법한 그런 크기였다. 평소엔 간간히 여행자들만이 지나가는 그 길에 어째선지 거구의 남자들 여럿이 팔이며 다리며 하는 곳을 붙잡고 곡소리를 질러댔다.
그들의 위에는 윤휘랑이 살짝 하품을 하며 앉아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큰 소리를 떵떵 치던 남자를 의자삼아.
윤휘랑이 물었다.
“너희 건협맹 소속이 맞는다고 했지?”
그의 물음에 끙끙거리던 남자가 퍼뜩 대답했다.
“그……. 그래! 지금 당장 이 엉덩이를 치우지 않으면 우리 맹주께서 네놈을 가만…….”
남자는 윤휘랑이 이제서라도 자신의 말에 겁먹어 이 무거운 엉덩이를 치우기를 바랐건만 윤휘랑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전혀 달랐다.
“안내해.”
“네?”
무슨 이런 단호함이란 말인가. 의자가 된 산적 남자 일 번. 그러니까 항만제는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뒤에서 부하들의 원망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항만제가 침을 꿀꺽 삼키고는 말했다.
“아니, 그게 그것이……. 꼭 가야 되겠습니까?”
단유장의 횡설수설에 윤휘랑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어.”
윤휘랑의 말에 항만제가 눈에 띠게 당황해 있었다. 그런 그를 뒤로하고 연상화가 한숨을 쉬며 윤휘랑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저자들을 따라가도 소용 없을 거 같은데요.”
건협맹의 정체를 알고 있는 연상화였기에 지금 앞에 있는 이들이 건협맹 소속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저 건협맹의 악명에 묻어가려는 잔챙이들일 듯싶었다.
연상화의 말에 윤휘랑이 물었다.
“왜?”
“아마 이들은 건협맹의 악명에 묻어가려는 잔챙이 인 듯싶어요. 무영각에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산적들을 이용한다는 이야기는 없었어요.”
연상화의 설명에 윤휘랑이 대답했다.
“그래?”
“네.”
윤휘랑의 물음에 연상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윤휘랑이 이상하다는 듯이 반대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럼 저건 뭔데?”
윤휘랑이 가리키는 쪽에는 대여섯 명 정도의 푸른색 무복을 갖춘 사람들이 서 있었다. 그들을 보며 윤휘랑이 물었다.
“저건 뭐냐?”
그 물음에 연상화가 대답하지 못했다. 허접한 산적들이 폼만 잡고 있는 것으로 보기에는 그 기도가 범상치 않아 보였다.
윤휘랑이 항만제로부터 일어나며 물었다.
“너흰 또 누구냐?”
윤휘랑의 물음에 그들 중 가장 기도가 범상치 않아 보이는 자가 앞으로 나와 물었다.
“늙은이는 건협맹 소속에 단유정이라 하네. 강호동도들은 낙성검落星劍이라는 허명으로 불리지. 자네는 누구고 이곳에서 무엇을 하는가?”
약간 늙수그레한 목소리가 남자의 나이를 짐작하게 했다. 남자의 말에 연상화가 놀란 표정으로 윤휘랑에게 속삭였다.
“낙성검은 초절정의 가까운 고수에요. 객주님 부디 조심하세요.”
연상화의 말에 윤휘랑이 말했다.
“뭐? 왜? 난 싸울 생각 없는데?”
윤휘랑의 연상화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아마 그게 안 될 거에요…….”
그 때 단유정의 무리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거 연상화 아닙니까? 장현백의 조카 딸.”
그 말에 단유정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단유정이 말했다.
“정도맹에서 나온 것인가?”
단유정의 물음에 윤휘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소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한 번이긴 하지만 정도맹 군사에 의해 부탁을 받았고, 정도맹에서 지원 나온 말과 노자를 가지고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 말에 단유정이 으르렁거리며 검을 뽑아 들었다.
“그렇다는 말이지? 젊은 친구가 안됐군.”
그 말에 윤휘랑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무엇이 안됐다는 말이오?”
단유정이 말했다.
“아직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가 이곳에서 죽게 될 것이니 말일세.”
단유정의 말 뒤에 연상화가 속삭였다.
“낙성검은 쾌검으로 유명하고 또 호전적 이기로 유명해요. 객주님 부디 조심하세요.”
그 말에 윤휘랑이 한숨을 쉬었다. 이미 낙성검은 달려오고 있었고, 싸움은 피할 길이 없어 보였다.
윤휘랑 또한 착검했다. 낙성검은 달려오자마자 그 별호처럼 상단으로부터 빠르게 베어냈다. 별이 떨어지는 것만큼 빠른 그의 검에 윤휘랑 또한 순간 당황 할 정도였다.
‘검이 빠르니 역시 가볍군.’
그 검이 빠른 만큼 낙성검의 검은 가벼운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상대가 중검을 상대했기에 낙성검같은 쾌검은 윤휘랑에게 너무나 가볍게 느껴졌다.
‘빠르기만 조심하면……. 이긴다!’
윤휘랑이 낙성검의 검을 밀어냈다. 단유정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젊은 친구가 제법이군.”
단유정은 뒤로 도약하며 중얼거렸다. 그 칭찬에 윤휘랑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칭찬은 고맙게 받겠소.”
윤휘랑이 단유정에게 달려들어 그의 옆구리를 베어내려 했다. 저돌적인 윤휘랑의 공격에 단유정이 살짝 비웃으며 말했다.
“그런 저돌적인 공격 따위……!”
그는 윤휘랑을 비웃으며 그의 공격을 막아섰지만 어째선지 그 무게가 너무나도 가벼웠다. 그 때 윤휘랑이 미소를 지었다.
‘허초!’
윤휘랑의 외모를 보고 그 경지를 가늠했던 단유정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속되게 말해 칼밥먹고 산 자신을 속일 만큼 그 허초는 잘 짜여 있었다.
단유정은 빠르게 윤휘랑의 검의 궤적을 보고 막아냈다. 그의 검에서 찌르르 울리는 진동이 느껴졌다.
“흐읍!”
단유정은 짧은 신음성과 함께 윤휘랑의 검을 쳐냈다. 역시 썩어도 준치. 노강호는 노강호였다. 아무리 쾌검이라 하나 빠르게 그 힘의 운용을 변형시켜 검의 무게를 더했다. 그렇게 더해진 무게는 윤휘랑의 검을 쳐내기 충분했다.
윤휘랑이 감탄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대단하시군.”
윤휘랑의 칭찬에 단유정은 굴욕을 느꼈다. 새파랗게 어린 청년에게 칭찬을 들은 것이다. 물론 윤휘랑은 정말 순순하게 감탄했을 뿐이지만 단유정의 자존심에 금을 가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단유정은 전장을 여러 번 겪은 노련한 고수였다. 그는 침착하게 검을 들고 윤휘랑을 바라보았다. 검을 대충 들고 있는 것 같지만 윤휘랑의 어느 곳에도 빈틈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빈틈투성이 인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 빈틈을 일부러 만들어 주었는지 아니면 실제로 빈틈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장현백 그놈이 어떻게 이런 녀석을 구해왔는지 의문이군.’
장현백은 수완 좋은 구렁이였으니 상대를 잘 구스렸겠지만은 어디서 이런 고수를 찾아왔느냐가 문제다. 단유정은 정파에서 꽤나 발이 넓은 쪽에 속해있어 웬만한 고수의 용모와 이름정도는 알고 있었다. 거기다가 기존에 정도맹 인물 중 주의할 인물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상대는 생전 처음 보는 인물이었다.
단유정이 검을 내려놓고 물었다.
“다시 한 번 묻겠네. 자네는 정도맹 소속인가?”
단유정이 검을 내려놓자 윤휘랑 또한 검을 풀었다. 상대를 믿겠다는 의사였다. 그 모습에 단유정이 눈빛을 빛냈다.
윤휘랑이 대답했다.
“정확히 말하면 정도맹 소속은 아닙니다. 현재는 가벼운 의뢰를 받아 도와주고 있지요.”
윤휘랑의 말에 단유정의 눈빛이 다시 한 번 빛났다. 단유정이 물었다.
“무슨 의뢰인지 물어도 되겠나?”
단유정의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연상화의 표정이 굳어졌다. 연상화가 입을 열려는 순간 윤휘랑이 그녀를 제지하며 말했다.
“아쉽게도 그것까지는 말씀드릴 수 없겠군요.”
그 말에 단유정이 ‘그럼 그렇지’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자네 소속이 어디인지 물어도 되겠는가?”
사실 자신은 얼마 전에 초절정의 경지에 올랐다. 그 덕에 내기에 순환이 자유로워졌고 기의 발현 또한 손쉬워졌다. 그만큼 더 강해진 자신이었는데 지금 눈앞에 있는 젊은 상대는 그런 상태에서도 수위를 점치기가 힘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윤휘랑 같은 젊은 고수를 길러낸 곳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이런 고수를 길러내려면 구파일방 혹은 오대세가 같은 전통이 있는 곳에 속해 있으리라고 단유정은 짐작했다.
그러나 윤휘랑의 입에서 나오는 대답은 뜻밖의 것이었다.
“저는 소주에 있는 이류객잔의 객주를 하고 있습니다. 굳이 이야기 하자면 무림인 아닌 무림인이지요.”
윤휘랑의 말에 단유정이 순간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물었다.
“자네가 객주를 하고 있다고?”
“흠, 무슨 문제 있습니까?”
단유정의 반응에 윤휘랑이 살짝 얼굴을 찡그리고는 물었다. 그 물음에 단유정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니 뜻밖이긴 하지만 문제는 없네. 아니 애초에 내가 문제 삼을 수 있는 위치가 아니군.”
단유정은 윤휘랑을 오늘 처음 보았다. 그런 상대에게 왜 직업이 그따구냐고 왈가불가 할 수 있을까. 어찌되었든 단유정이 말했다.
“자네가 정도맹 소속이 아니라는 건 잘 알겠네.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겠네. 자네가 맡은 의뢰가 건협맹과 관련된 것인가?”
단유정의 물음에 윤휘랑이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갯짓에 단유정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허어……. 그렇단 말인가…….”
단유정은 다시 검을 들고는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전력을 다해 자네를 상대하겠네. 맹의 앞길을 방해 할 요소를 남겨 둘 수는 없지.”
단유정의 말에 윤휘랑 또한 말없이 착검했다. 두 사람 사이에서 강한 기류가 불어왔다.
-꺠속
Comment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