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막 6장
자신의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너무나도 뜻밖에 인물의 목소리였기에 화군악은 자기도 모르게 뒤돌아보아 물었다.
“무슨 일이냐?”
그의 물음에 목소리의 주인, 화인향은 자신이 불렀음에도 당황하더니 이내 우물쭈물 하다가 마음을 굳힌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각……. 아니 일각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 목소리가 방금 전까지 우물쭈물 거렸던 인물의 목소리라고 여기기에는 너무나도 단호했기에 화군악은 자기도 모르게 그러하라고 허락했다. 그러자 화인향은 옆에서 자신을 바라보던 휘랑을 한 번 쳐다보고는 이내 주방으로 짓쳐 들어갔다.
‘어…….어……. 뭘 해야 하지?’
몇 시진 전까지만 해도 인향에게 익숙했던 주방이었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낯설게 느껴졌다. 그러나 인향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생각했다.
‘우선 쉽게 먹을 수 있어야 돼……. 그래! 주먹밥!’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정하고는 인향은 서둘러 움직였다. 그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그 물음의 답은 본인도 몰랐다. 인향은 지금 자신이 왜 어째서 화군악을 위해 요리를 하고 있는지 도대체 이해를 못했다. 그러나 손은 계속해서 움직였다.
그가 뒤돌아서서 객잔을 나가려는 순간 그의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이야기했다. 이건 아니라고, 자신이 바란 것은 이런 것이 아니라고. 자신이 보고 싶었던 것은 아버지에 쓸쓸한 뒷모습 같은 것이 아니었다고. 어째서 자신이 아버지에게 시간을 달라고 했는지. 어째서 자신이 아버지에게 드릴 주먹밥을 만들고 있는지 자신도 몰랐다. 그저 왠지 모르게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기에 인향은 만들었다. 할 수 있는 것이 이것 밖에 없으니까 인향은 요리를 만드는 데에 최선을 다했다.
고기와 채소를 볶고 밥을 양념했다. 어느새 시간이 다 되었다. 무언가 더 준비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인향은 급히 보자기를 찾아 마실 차와 함께 주먹밥을 댓잎으로 싸서 보자기로 묶었다. 그리고는 밖에서 의아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화군악에게 건네며 말했다.
“여기까지 오셨는데……. 그냥 가시기는 조금 그렇고……. 간단하게 좀 만들어 봤어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아버지…….”
“……? 지금 뭐라고 했지? 다시 한 번 이야기 해보 거라.”
인향의 말에 화군악은 보따리를 받아 들다 말고는 인향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인향은 대답하지 않고 별채로 후다닥 달려갔다. 그 모습에 휘랑은 화군악을 보며 어깨를 으쓱였고 화군악은 멍한 눈빛으로 인향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휘랑에게 말했다.
“지금 들었는가?”
“뭐를 말입니까?”
“아니네…….”
“다음에 한 번 다시 들러주십시오. 그때는 제대로 대접 해 드리겠습니다.”
“알겠네. 내 한 번 다시 들르지.”
못 들었을 리가 없었다. 휘랑은 무공을 익혔다. 그 안에 잠재되어 있는 내력이 몸에 기감을 높여준다. 그렇기에 인향이 마지막에 낮게 중얼거린 그 말까지도 모두 들었다. 하지만 휘랑은 화군악의 물음에 못 들은 척 화군악의 질문에 오히려 되물었다. 그 모습에 화군악은 이내 미소를 짓고는 객잔 문을 열고 나갔다. 그 문 밖에는 햇살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화군악은 그런 햇살에 눈 하나 찌푸리지 않고 기분 좋은 발걸음을 내딛었다.
인향은 별채에 툇마루에 앉아 문이 닫히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가만히 중얼거렸다.
“안녕히 가세요……. 아버지.”
**
덜커덩 거리는 마차 안. 화군악은 인향이 싸준 보따리를 풀어보았다. 그곳에는 댓잎에 쌓인 주먹밥과 수통에 담긴 찻물이 가지런히 담겨져 있었다. 그는 댓잎을 묶고 있던 끈을 조심스레 풀었다. 그러자 먹기 좋은 크기로 잘 만들어진 주먹밥이 모습을 드러냈다. 화군악은 주먹밥 하나를 조심스럽게 집더니 잠시 고민을 하더니 이내 한입 베어 물었다.
“맛있군…….”
인향이 만들어준 주먹밥은 생각 외로 맛있었다. 처음에는 자식이 처음 만들어준 요리였기에 먹기 망설였으나 안 먹었으면 후회감이 들만큼 괜찮았다. 밥은 알맞게 양념되어 있었고 밥 안에 든 고기볶음도 맛있었다. 그는 이내 먹던 주먹밥을 모두 먹어치웠다.
사실 그 주먹밥은 특별할 게 없었다. 오히려 맛을 따지자면 교에 있는 숙수들의 요리가 더 뛰어났다. 하지만 인향이 만들어준 주먹밥에는 그들에게는 없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화군악은 수통에 담긴 차를 마시며 생각했다.
‘소월이가 보고 싶군…….’
그는 보이지 않는 하늘을 상상하며 자신의 곁을 떠나버린 한 여인을 회상했다. 만약 그녀가 살아 있었다면 이 주먹밥을 너무나도 기쁘게 먹어 주었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화군악은 오랜만에 기분이 좋은 듯 나른한 표정으로 웃었다. 교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의 뜻밖에 일면이었다.
**
깊은 산 속 옹달샘…… 옆을 홍의를 입은 한 여인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녀는 짧은 단발에 허리에는 한 자루의 도를 걸치고 한 손에는 조그마한 약도를 들고 있었는데, 그녀는 무언가 안 풀리는지 약도를 요리조리 돌려가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풀었다 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녀는 결국 무엇인가 마음에 안 드는지 약도를 마구 구기면서 산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망할 사부니이이이임-!!”
만약 분노의 대상이 자신의 사부만 아니었다면 더한 욕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 대상이 자신의 스승인지라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님’자 마저 붙여가면서 분노를 표출했다. 그러나 소리를 질러도 분이 안 풀리는지 그녀는 머리를 헤집으며 소리를 질러댔다.
“내가 그러니까! 이런 거 질색인거 알면서! 아오!! 이런것좀 시키지 말라니까! 자기가 사부면 다야!? 내참 더러워서 진짜!”
그녀는 분이 안 풀리는지 머리를 계속 헤집으며 그날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
태양이 따스하게 대지의 생명의 빛을 파릇한 이파리들에게 나누어 주는 오후에, 거대한 장원의 정원을 무영無影이 정성스레 가꾸고 있었다. 정원은 부지런한 무영의 보살핌 덕인지 색색이 고운 계절 꽃들과 파릇한 관목들이 제각기 자신의 아름다운 빛을 너도나도 열심히 뽐내고 있었다.
자신이 기른 식물들이 사랑스러운지 무영은 일을 하다 말고 허리를 펴 아름다운 빛깔들을 흐뭇한 눈으로 감상하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후……. 오늘은 다행히 평화롭구나…….”
콰아아아아아앙-!
“그럴 리가 없지…….”
무영이 자신이 가꾼 정원을 흐뭇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그의 뒤에 있던 문주의 방에선 갑작스레 기운이 폭발하며 거대한 폭발음을 냈다. 그 폭발음의 무영은 한숨을 쉬었다. 폭발음이 나고 바로 그곳에서 한 여인이 뛰쳐 나왔다. 아니, 튕겨져 나왔다는 표현이 더 적당하리라.
그녀는 오른 손에 도를 들고 있었는데 자신에게 쏟아지는 기운을 모두 막아내지는 못한 듯 균형을 잃고 무영이 가꾼 꽃밭 위를 몇 번이나 굴러 겨우 착지 할 수 있었다.
그런 그녀의 구름에 무영이 만든 꽃밭은 모두 망가졌고 무영은 그녀의 옆에서 소리 없이 절규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것은 상관없다는 듯이 벌떡 일어나 그곳에서 얼른 도망치려 했다. 그 순간 그녀가 튕겨져 나온 방에서 한 거대한 인영人影이 뛰어나오더니 도망을 치려던 그녀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그 때 튀어나온 그 인영은 겨우 살아남았던 마지막 한 송이의 꽃을 짓밟았다.
“으아아악! 프리실라아아아!!”
그러자 소리 없이 절규하던 무영은 큰 소리를 내면서 절규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익숙한 듯 무영의 절규에 아랑곳 않고 살벌한 기운을 내뿜어 대며 대화를 했다.
“사랑하는 제자 하현아 어디를 가느냐?”
중년인, 도제 유상진은 내뿜는 기운과는 반대되게 빙그레 웃으며 무었다. 하지만 사하현은 그 속에 숨겨진 으르렁거림에 움찔하고는 시선을 피해 딴청을 피우며 대답했다.
“뒷간에 좀…….”
사하현의 대답에 유상진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허허허……. 우리 하현이가 뒷간에 가고 싶은 게로구나…….”
유상진이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그 미소에 사하현은 움찔하며 딴청을 피웠다. 그런 그녀를 보며 유상진이 말했다.
“암, 뒷간에 가야지. 그거 참으면 병난다.”
유상진의 말에 사하현은 얼굴에 화색을 띠우며 물었다.
“그럼 가도 되요?”
그녀의 물음에 유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어엄! 보내줘야지. 내가 시킨 거 한다고 하면.”
말머리를 늘이며 하는 말에 사하현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안한다니까요?”
그녀의 대답에 유상진은 지금까지 보여줬던 미소를 지우며 마치 흉신악살같은 표정을 짓더니 소리를 버럭 질렀다.
“하라면 하는 거지! 뭔 말이 이렇게 많아!”
그러자 그녀도지지 않겠다는 듯 버럭 거렸다.
“아 안한다니까! 수련 할 시간도 모자란데!”
사하현의 말에 유상진은 그녀의 머리를 쾅하고 쥐어박았다. 콩이 아니라 쾅이다. 만약 사하현이 내력으로 머리를 보호하지 않았다면 머리에 혹이 두 세게는 붙었으리라. 그녀는 맞은 부위가 많이 아픈지 머리를 문지르며 유상진을 바라보았다.
유상진이 말했다.
“인마! 문파 내에서 네 별명이 뭔지 알아?”
유상진의 물음에 사하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몰라요. 뭔데요?”
사하현의 물음에 유상진이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광도녀狂刀女다 광도녀! 아니 얼마나 도에 미쳤으면 광도문에서 광도녀란 별명이 나와? 아주 수련에 미쳐가지고……. 그리고 수련에 불편하다고 가슴을 도려내려는 여자가 어디 있어?! 너 그 때 지나가는 애들 없었으면 진짜 가슴 도려내려고 했었지?!”
“당연한 거 아니에요? 덜렁거려서 불편하다고요!”
“이놈이 그래도!”
자신의 말에 바락바락 대드는 그녀의 모습이 마음에 안 드는지 유상진은 다시 한 번 그녀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그녀는 맞은 부위에 다시 주먹질이 가해지자 많이 아픈 듯 맞은 부위를 만지작거리며 꽁알 거렸다. 유상진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혀를 차더니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광도법의 후반부.”
쫑긋
유상진의 중얼거림에 그녀의 양 귀가 쫑긋 거렷다. 그 모습에 유상진은 실소를 하더니 말했다.
“네가 그렇게 달라고 징징거리던 광光도법의 후반부다. 제대로만 해준다면 후반부를 직접 지도 해주마.”
꿀꺽
“진…….진짜죠? 농 던지는 거 아니죠?”
지금의 유상진을 도제의 자리까지 만들어준게 지금 그가 제시하고 있는 광도법이다. 그런데 직전 제자인 그녀가 익힌 것은 무언가 빠진 듯 한 느낌이 드는 전반부 뿐. 물론 그것만으로도 강호에선 능히 초절정의 반열에 드는 그녀였고, 광도법이 너무나도 광대해 전반부만으로도 충분히 그녀의 수련욕구를 자극시켰지만 아쉬운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스승이 떼를 써도 안 된다고 하던 그 후반부를 가르쳐 준다는 것이다. 그것도 직접 지도까지 해가며. 조건이 좀 마음에 안 들었지만 어쨌든 그녀는 좋았다. 꿈에도 그리던 후반부가 아닌가? 그렇기에 그녀는 냉큼 자리에서 일어나 흙을 툭툭 덜더니 짐을 쌀 자신의 방으로 달려갔다.
유상진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실소를 지었다.
“광도문狂刀門이란 이름에 어울리는 녀석은 저 녀석뿐인가?”
자신도 그렇지만 그녀는 도刀를 정말 좋아했다. 잠을 잘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심지어 뒷간을 갈 때도 그녀는 도를 가지고 다녔다. 그 덕에 어린 나이에 초절정의 고수의 반열에 오른 그녀였지만 어릴 때부터 그녀를 자식같이 여겨온 유상진의 눈에는 그런 그녀가 조금 안타까웠다. 그녀의 세상은 그저 도하나 뿐이었다. 그런 그녀가 안타까워 다른 이들을 보낼 수도 있던 이번 일을 그녀에게 맡긴 것이다. 세상 경험이 일천한 그녀였기에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다 그렇게 부딪혀 가며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유상진은 뒷짐을 쥐고 아직까지 짓이겨진 꽃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무영을 뒤로하며 정원을 거닐었다.
‘뭐, 올 때 남자라도 하나 그것도 그놈을 물어오면 더 좋고.’
약간이지만 사심도 조금 섞인 일이었다.
*
그녀는 그날 일을 회상하며 자신의 목적을 상기했다. 자신의 목적은 오로지 광도법의 후반부. 유상진의 바람과는 다르게 그녀의 세상은 아직까지 도 하나뿐이었다.
“으으……. 어쨌든 광도법의 후반부를 익히려면 얼른 해치워야지.”
그녀는 자신의 목표를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에는 운 좋게도 맞는 방향이었다.
- 작가의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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