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막 10장
소주야가의 일원들이 모여 회의 또는 모임을 가지는 장소는 그 때마다 달라졌다. 저번에는 왕상훈의 홍화객잔에서 열었었고 이번에는 홍화가 주인인 황후루에서 소주야가의 정기모임을 주최했다. 그들이 이번에 모인 곳은 삼관으로 나뉘어져 있는 누각중에 거의 꼭대기 층,
천관天館중 최상에 위치하는 방이었다. 이 방은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는 방이었는데, 그 이유는 그 방에서 유흥을 즐기려면 어마어마한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루에 술을 마시는 데에만 금자 열 냥, 거기다가 기녀를 끼고 논다면 기녀의 급에 따라 또 요금이 달라진다. 정말 어마어마한 금액이 아닐수가 없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어마어마한 금액이었지만 홍화는 아낌없이 모임 장소로 내주었다. 물론 홍화가 그들에게 좋은 대접을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천관의 방을 내준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일종의 관례였다. 소주야가에 속한 이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점포에서 모임을 열 때면 그들에게 최상급의 방을 내준다. 그것은 그들이 귀한 손님이어서도 아니고 대접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 이유는 바로 경쟁심이었다. 내 능력이 이 정도다 어때? 기죽지 않느냐? 하는 심정으로 방을 내주는 것이었다. 물론 이곳에 있는 그들 누구도 이정도로 기죽을 사람들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방안에는 다섯 명의 사람이 모여 있었다. 황후루의 홍화, 야락루의 이상훈, 홍화객잔에 왕상훈, 청명객잔에 이청지, 청명루의 이명지가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소속과 이름이었다.
그들 모두를 일컬어 세인들은 소주야가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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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화 언니 잘 지내셨어요?”
“청명루주께서도 잘 지내셨는지요?”
“호호, 요즘 저 잘 먹어서 얼굴 뽀얗게 변한 것 봐요. 어때요?”
“어머, 정말이네요.”
황후루에 한 명 한 명 모습을 드러내더니 시간이 되자 화려한 천관의 방에는 소주 야가 전원이 모였다. 그들은 모두가 모이자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잠시 시간을 보냈다. 물론 그들은 서로의 정보를 항상 수집하고 있기에 작은 일이라도 알고 있었지만 일종의 허례의식이었다. 그러던 중 홍화객잔에 객주 왕상훈이 차를 마시고 있는 이상훈에게 기묘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이야기했다.
“크흐흐흐, 이번에 야락루주 아드님께 안 좋은 일이 생겼다더군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겠습니다.”
“헛소리요.”
왕상훈의 말에 이상훈이 무표정으로 그러나 단호한 목소리로 일축했다. 그 말에 왕상훈이 다시 기묘한 웃음소리를 터트리더니 물었다.
“호오? 그런가요? 그렇다고 하기에는 들려오는 소문이 너무 무성하고 구체적이던데요?”
왕상훈의 말에 이상훈이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의 얼굴이 약간 일그러져 있었다.
“내 헛소리라 하지 않았소.”
말하는 이상훈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 모습에 왕상훈이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흐음, 루주께서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겠죠. 그런데 그 소문은 도대체 어디서 흘러나온 것일까요? 참으로 궁금하지 않소이까?”
왕상훈의 말에 이상훈이 마시던 차를 탁제에 쾅소리 나게 내려놓고는 일그러진 얼굴로 일갈했다.
“홍화객주! 헛소리라 하지 않았소! 어떤 저의로 그런 소리를 지껄이는 것이오?!”
이상훈의 말에 왕상훈이 말했다.
“글쎄요? 제가 어떤 뜻으로 이러는 것일까요?”
“이...이!”
평소라면 이정도 도발에 꿈쩍도 안할 이상훈이 흥분하는 모습이 흥미로운 듯, 모두가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때 두 사람을 지켜보던 홍화가 박수를 착 치며 그들을 저지하며 말했다.
“자자, 이곳에 싸우러 온 것이 아니니 그만들 하시지요.”
홍화의 미성이 방안을 울려 퍼졌다. 그녀의 나이가 이미 불혹을 넘기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러한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외모를 가진 그녀는 목소리마저 은쟁반에 굴러가는 옥구슬처럼 맑고 청아했다. 그러한 홍화의 만류에 이상훈도 하는 수 없이 자리에 앉았고 왕상훈 또한 더 이상 그를 긁지 않았다. 그 모습에 홍화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끼리 싸우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습니다.”
그녀의 말에 모두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한 모습에 홍화는 다시 한 번 미소를 짓고는 물었다.
“자아, 그런데 이번 모임에 의제는 무엇인지요?”
홍화의 물음에 홍화에게 안부를 묻던 청명루주 이명지의 옆에 있던, 삼십대쯤 되어 보이는 잘생긴 남자가 말했다. 청명객잔의 객주이자 이명지의 오빠인 이청지였다.
“흐음? 보통 의제는 모임 장소의 주인이 정하는 것이 관례가 아니었소?”
이청지의 물음에 홍화가 대답했다.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녀의 미소에 주위가 밝아지는 것만 같았다.
“보통은 그렇지만 이번엔 다른 분이 발의할 기회를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홍화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이상훈에게 쏟아졌다. 이미 서로 이야기가 오갔기 때문에 이상훈은 홍화의 말에 놀라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쏟아지는 그들의 시선에 이상훈이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말했다.
“흐...흠! 황후루주의 배려에 감사를 표하오. 이번 내가 발의한 의제는”
이상훈의 말에 홍화가 생긋 웃으며 단아하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이상훈은 그런 홍화를 한 번 보고는 말했다. 그의 눈에서 불길이 튀기는 것만 같았다.
“이류객잔에 대해서요.”
**
화려하게 꾸며진 전각이 자랑인 황후루, 그 중 가장 맨 꼭대기 층에 루주의 방이 위치해 있다. 평소 화려하게 꾸미고 다니는 그녀의 모습과는 달리 단아하고 수수하게 꾸며진 방 안에서 붉은색으로 모양새를 살려준 복장의 루주가 창 밖의 달을 바라 보며 곰방대를 입에 물고 있었다. 평소와는 달리 수수한 복장이었지만 어째선지 색기가 느껴지는 그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아 만약 시인이 그녀의 모습을 보았다면 그녀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시를 그 자리에서 단숨에 읊었으리라.
“참으로 멍청한 짓거리를 벌이는 군, 야락루주.”
그녀는 기다란 곰방대의 끝에서 입을 떼고는 중얼거렸다. 평소에 사람들 앞에서 보이던 단아하고 상냥한 말투와는 판이하게 다르게 거친 말투였다. 하지만 그것 또한 이상하게 그녀에게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멍청한 놈... 윤휘랑 그 놈이 어떤놈의 제자인데...”
홍화는 아까 전 모임에서 이류객잔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 야락루주를 생각하며 그를 비웃었다. 그녀가 어떻게 휘랑에 대해서 알고 있을까, 그것은 그녀만이 알고 있으리라. 그녀는 창틀에 팔꿈치를 대고 손으로는 턱을 괴더니 휘영청 뜬 달을 보며 미소를 짓더니 중얼거렸다.
“그놈이 어떤 놈의 제자인데, 그 정도로 물러나겠나. 상대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없이 덤벼들다니 야락루주도 늙었군.”
홍화는 담배연기를 깊게 내쉬며 중얼거렸다.
“자신신 요리를 모욕하는 놈을 가만둘 놈이 아닐 터인데... 야락루주가 걱정이군.”
걱정이라는 말과는 달리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러더니 다시 담배를 깊게 들이마셨다 내뱉으며 말했다.
“하여간 질리지도 않는 것인가? 이러한 짓거리들... 정정당당히 실력으로 겨룰 것이지... 쯧쯔...”
홍화는 혀를 차고는 담배연기를 내쉬었다. 그녀가 입 밖으로 내쉰 담배연기가 밤하늘에 깊에 퍼져나갔다.
**
평소라면 요리를 만드느라 바빠 주방에서 잠시도 가만히 있을 시간이 없었을 휘랑이 어째선지 주방에서 나와 객잔 안을 슥 둘러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이상해...”
“이상하죠?”
“응, 이상하네.”
그의 중얼거림을 옆에서 탁자에 묻은 자국이 잘 닦이지 않는 듯 탁자를 박박 문지르던 야민이 잠시 멈추고는 그의 말을 받으며 되물었다. 그런 야민의 물음에 휘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무엇이 이상하냐, 라고 물을 것도 없이 객잔의 풍경은 이상했다. 한참 손님으로 북적거려야 할 객잔 내부에 손님이 평소보다 약간, 아니 많이 없었다. 현재 시간은 한참 바쁠 저녁 시간, 평소에 이 시간은 가족끼리 오는 손님이나, 술로 하루에 마무리를 하러 오는 손님이나 어찌 되었든 그러한 손님들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쁠 시간이었다. 그런데 현재 객잔의 자리를 메우고 있는 손님의 수는 삼분의 이 정도로 많이 줄어 있었다. 거기다가 가족 단위의 손님의 수는 확실히 줄어 있었다. 만약 이러한 일이 오늘 하루만 있었다고 하면 그러려니 넘어 갔을 테지만 이러한 일이 칠 일째 계속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는 그저 무언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 할 수 밖에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손님의 수가 줄어들면 가게의 수입은 줄어든다. 당연한 사실이었다. 거기다가 식사손님의 의존도가 매우 높은 이류객잔의 경우라면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 휘랑은 잠시 골똘히 생각하더니 오른손을 뻗어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러자 그의 옆에서 야혼이 모습을 드러냈다. 신기할 광경이기도 하지만 익숙한 듯 야민은 놀라지도 않고 그녀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그런 야민의 인사를 받고 야혼이 휘랑에게 투덜거리며 말했다.
“아무리 객주님이라지만 이렇게 자주 부르시면 곤란합니다.”
사실 틀린말은 아니었다. 그녀는 휘랑 대신 주방에서 식재료를 손질중인 화인향의 호위였으니 말이다. 휘랑은 투덜거리는 야혼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밥 안준다.”
“부려만 주십시오.”
사람이 먹을 것 앞에서 제일 치사해지고 구차해진다고 누가 그러던가. 그러한 사실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해주는 모습이었다. 휘랑은 한숨을 쉬고 있는 야혼에게 물었다.
“이거 보이지?”
휘랑의 물음에 야혼이 객잔 안을 슥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휘랑이 말했다.
“알아와.”
단호박처럼 단호한 그의 말에 야혼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안 그래도 도련님께서 걱정하셔서 알아 봤습니다.”
“빠른데?”
거대한 무림을 삼등분 하는 세력 중 하나인 마교, 그곳에서도 소교주의 호위로 발탁 될 정도의 실력을 가진 그녀였다. 물론 호위대상인 전 소교주 화인향은 주방에서 눈물을 흘리며 양파를 까고 있었지만 말이다. 평소에는 푼수처럼 해실거리며 돌아다니는 그녀였지만 할때는 하는 것이 또 그녀였다.
“그럼 읊어봐.”
“하아...”
휘랑의 말에 야혼이 한숨을 쉬고는 품속을 뒤적거렸다. 그러더니 품속에서 작게 접힌 한 장의 서신을 꺼내 들더니 그것을 읽어 내려갔다. 잠시 후, 그녀가 서신의 내용을 모두 읽자 휘랑이 팔짱을 끼고 잠시 생각하더니 서신의 내용을 일축해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 소주 거리에 우리 객잔에게 누명을 씌우는 소문이 은밀하게 퍼져 나가고 있다?”
휘랑의 물음에 야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소문의 발원지로 가장 유력한 곳이 야락루고?”
휘랑의 물음에 야혼이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미소에 휘랑이 어이가 없는지 아니면 골치가 아픈지 머리를 짚으며 말했다.
“걔네는 우리랑 도대체 뭔 원수를 지었다고 그런다냐?”
휘랑의 물음에 야혼이 말했다.
“뭐, 굳이 말하자면 객주님께서 야락루주의 외아들을 묶어서 거리에다 던져 버려버린 것이 가장 큰 것 같지만 말이에요.”
야혼의 말에 휘랑이 그녀의 머리에 꿀밤을 먹이며 말했다.
“시끄럽다, 너도 속 시원해 놓고 말이 많아.”
휘랑의 말에 야혼은 아픈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 그녀에게 휘랑이 물었다.
“그런데 그 소문이라는 것이 도대체 뭐야?”
휘랑의 물음에 야혼이 입을 열었다.
“그게...”
그 때 그녀의 입을 닫게 만드는 일이 생겼다. 객잔의 문이 쾅 열리며 일련의 무리가 빠르게 객잔 안으로 들어왔다. 갑작스럽게 들어온 무리는 모두 관졸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 중 가장 앞에 있는 포두로 보이는 자가 앞으로 나와 말했다.
“이곳에서 요리에 양귀비(마약의 일종)를 섞어 백성을 현혹시킨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객주는 나와서 오라를 받으라!”
포두의 고함에 야혼이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요.”
휘랑은 그런 모습에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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