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막 5장
남자의 말에 객잔은 잠시간 짧은 침묵에 휩싸였다. 그 침묵을 가장 먼저 깨고 입을 연 것은 휘랑이었다. 휘랑은 무심한 듯 그러나 어이가 없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뭐?”
희랑의 물음에 가장 앞에서 대장으로 보이며 가장 먼저 입을 연 남자, 방대산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재차 말했다.
“귓구멍 깨끗이 씻고 들어라 잉. 여기는 우리 흑도방이 접수한다고 알긋냐?”
방대산의 말에 휘랑은 한숨을 쉬었다.
‘한동안 이런 놈들이 안 나타나더니 산적아저씨 쉴 때 나타나네.’
얼마 전 휘랑의 도움으로 절정의 반열에 오른 강대 만이었다. 절정의 고수가 고작 객잔에서 호위무사를 하고 있는 것이 우스워져 휘랑이 물으니 평범한 생활이 좋다고 해서 계속해서 이류객잔의 호위를 하고 있던 강대만 이었다. 어찌되었든 절정의 고수였던 대만이 버티고 있는 와중에는 객잔의 문을 넘는 불량배들이 없었다. 오히려 소문이 흘러 객잔에 발을 들이려는 불량배들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하필이며 강대만이 쉬는 날 불량배들이 나타난 것이었다. 거기다가 불량배들이 하는 말이 꽤나 흥미로웠다.
“흑도방?”
휘랑이 나지막하게 물었다. 그러자 방대산은 휘랑이 겁을 먹은 것이라 착각하고서는 짐짓 가슴을 부풀리며 위엄을 부리려 하며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크나큰 오산. 그것도 위험한 만용이었다.
“그래 흑도방에서 나왔…….”
슈욱-!
말을 하던 와중에 방대산의 얼굴 옆으로 요리 할 때에 쓰이는 식도가 스쳐지나가 벽에 꽂혔다. 그 모습에 방대산은 순간 식은땀을 흘렸다. 식도를 던지는 모습조차, 아니 꺼내는 모습조차 보지 못했다. 방대산은 식은땀을 흘리며 생각했다.
‘시…….시팔 또 잘못 건드렸나?’
어쩐지 어제 길거리에서 야혼 에게 얻어맞은 부위가 욱신거렸다. 그 순간 식도를 집어 던진 후 차갑게 냉소를 짓는 휘랑의 얼굴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방대산은 후회감에 젖었다. 건드려서는 안 될 곳을 건들인 것만 같았다.
‘또 잘못 건드렸구나…….’
식도가 방대산의 얼굴 옆으로 지나가면서 길게 잔흔殘痕을 남겼다. 그 상처에서 피가 주르륵 흘렀다. 그 모습에 방대산의 부하들은 휘랑을 향해 연장을 꺼내들었다. 그 모습에 휘랑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떻게 네놈들은 반응이 바뀌지를 않냐.”
그리고는 연장을 꺼내든 부하들에게 달려들었다. 반각도 지나지 않아 방대산의 부하들은 꺼내든 연장을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순식간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 방대산은 식은땀을 흘렸다.
객주를 잡고 야혼을 협박하려고 했다. 치졸함의 극치이긴 했지만 길거리에서 무참히 맞고 짓밟힌 자신의 자존심은 그리해도 회복이 될까 싶었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그 여자보다 더한 것이 자리하고 있었다. 오히려 여우를 피하려다가 호랑이의 아가리에 직접 머리를 들이 민 격이었다.
방대산은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자신의 앞에서 냉소를 짓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순식간에 자신의 부하를 모두 쓰러트렸다. 부하들은 남자의 움직임에 반응조차 못했고 그건 방대산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은 삼류이긴 하지만 무공마저 익혔는데 말이다.
“흑도방에서 나왔다고?”
휘랑이 방대산에게 물었다. 그 물음에 방대산은 정신을 번쩍 차렸다. 지금 그가 믿을 것은 흑도방의 방원이라는 사실 뿐. 그렇기에 방대산은 흑도방에서 나왔다는 점을 강조하며 휘랑의 질문에 답했다.
“그…….그래! 흑도방에서 나왔다! 우리를 적으로 두면 이곳에서 장사하기 힘들 텐데!?”
너무 긴장해서인지 말까지 더듬는 그였다. 협박 할 때 쓰기 편해 입에 붙였던 사투리는 너무 긴장해서 나오지도 않았다. 어쨌든 자신의 말에 남자가 턱을 쓰다듬으며 어쩔까 하는 표정을 짓자 방대산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휘랑이 자신의 말을 듣고 살짝이라도 겁을 먹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방대산의 착각이었다. 지금 현재 휘랑이 고민 하는 것은 방대산을 어떻게 다그쳐야 흑도방의 방주한테 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현백의 몸에다가 독을 먹인 것은 흑도방의 방주, 강태산일 것이다. 이왕 도와주기로 결심 한 거 확실히 도와주기로 마음을 먹었던 그였다. 오늘 장사를 마치고 나면 현백과 은학의 집으로 가서 그들을 데리고 약을 판 의원에게 가서 그를 다그칠 생각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흑도방의 방원이라고 주장하는 이가 객잔 문을 발로 차며 들어왔다. 호박이 넝쿨째 들어온 격이었다.
휘랑은 고민을 끝내고 방대산을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에 방대산은 묘한 오한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
휘랑에게 붙잡혔을 때, 그러니까 약 한 시진 전까지만 해도 그는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입을 열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 다짐이 깨진 것은 약 반시진 전. 그는 눈물 콧물을 쏟아내며 자신이 아는 것을 모두 휘랑 에게 쏟아내고 있었다.
운명의 장난일까 라는 거창한 수식어는 없어도 우연도 이런 우연히 없었다. 신기하게도 방주의 명을 받아 의원을 협박한 것은 지금 휘랑의 눈앞에서 눈물 콧물을 쏟아내며 휘랑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방대산이었다.
눈물 콧물을 모두 쏟아내며 창피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방대산은 흑도방의 행동대장 이었다. 속이 좁다는 단점만을 제외 한다면 일처리가 깔끔해 방주의 신임을 얻어 강태산의 명을 받아 방대산이 주도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지만 휘랑의 입에서 그 일을 묻는 것을 보아 잘하면 이곳에서 살아 나갈 수 있을 듯싶었다. 방주는 배신자를 용납하지 않는 성격과 잔혹한 손속으로 유명했지만 현재 방대산의 앞에서 주먹을 말아 쥐고 흔들거리는 것은 휘랑이었다. 방주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방대산은 자신이 아는 것을 모두 이야기 해 주었다.
물론 처음에는 절대 입을 열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던 그였다. 그러나 휘랑이 물러나고 방대산의 입장에서 악마 같은 야혼이 생긋 미소를 지으며 들어온 후에는 다짐이고 뭐고 없었다. 죽음보다도 더한 고통이 있다는 것을 그는 오늘 처음 알았다. 차라리 죽는 게 났다 싶을 정도로 야혼의 고문은 괴로웠다. 그렇다고 그 수법이 잔인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잔인하다고 하면 잔인하다고 할만 했다. 야혼은 방대산에게 다가와 그의 아혈瘂穴을 짚더니 그의 몸에 분골착근粉骨鑿筋의 수법을 가했다. 겉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실제로는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느꼈었다. 비명이라도 지르면 그나마 버틸 만 했을 텐데 비명도 지르지 못하니 더욱 죽을 맛이었다. 반각정도 지났을 때, 야혼이 물었다. 말하겠냐고. 그 때 말해야 했다고 방대산은 현재 생각했다. 그 후로 다시 물었을 때는 반 시진 가까이가 지났을 때였다. 그동안 방대산은 어째선지 기절도 못하고 눈물 콧물 모두 쏟아내며 고통에 몸부림 쳤다. 그리고 야혼이 다시 물었을 때, 그는 맹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서야 그의 몸에서 날뛰던 고통이 조금은 사그라들었다. 그는 방금 전 자신이 느꼈던 고통을 생각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니까 네가 의원을 협박했다고?”
“아이고 예! 제가 방주 명을 받아 실행했습죠!”
휘랑의 물음에 방대산이 생각 하던 것을 멈추고서 비굴한 표정으로 손바닥을 비비며 말했다. 부하들은 치욕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지금 현재 방대산은 그런 것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휘랑은 그 모습에 피식 웃고는 다시 물었다.
“그래서 방주는 어디 있어?”
방대산은 강태산이 기거하고 있는 전각의 위치를 모두 이야기 해 주었다. 그리고는 풀려나기만 한다면 도망칠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휘랑의 입에서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야기가 떨어졌다.
“앞장 서.”
“예?”
휘랑의 말이 떨어지자 방대산의 입가에 어렸던 비굴한 웃음은 순간 싹 가셨다. 하지만 휘랑은 그런 방대산의 모습에 아랑곳 않고 다시금 웃으며 말했다.
“앞장서라고”
‘시팔…….’
방대산은 속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욕이란 욕은 모두 쏟아냈다. 하지만 겉으로는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휘랑은 그런 방대산을 보며 마주 웃었다.
**
“그러니까 그게 사실이었단 말입니까?”
현백이 심각한 표정으로 휘랑을 보며 물었다. 그러자 휘랑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앞장서서 죽을 것만 같은 표정으로 걷고 있는 방대산을 턱 끝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놈이 그 일을 담당했다고 하니까 맞겠죠.”
휘랑의 말에 현백은 심각한 표정으로 앞장서서 길을 걷고 있는 방대산을 바라보았다. 어정쩡하게 느릿느릿 걷고 있는 방대산의 모습에 휘랑은 그의 엉덩이를 살짝 걷어 차주고는 현백을 보며 말했다.
“해독제야 제가 구해 드릴 수 있습니다. 조제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으니까요. 하지만 그동안 고생안 보상은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휘랑의 물음에 현백의 옆에서 걷고 있던 은학이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제 남편이 그동안 고생 한 것을 생각하면 그자를 정말 찢어죽여도 시원찮을 판이니까요.”
은학의 험악한 말에 현백은 살짝 엄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은학은 그런 현백의 모습에도 아랑곳 않고 그를 부축하며 길을 걸었다.
이각 정도가 지났을까, 방대산이 정말 침중한 표정으로 한 전각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는 휘랑에게 돌아보며 말했다.
“여…….여깁니다.”
“흠, 여기가 맞아?”
휘랑의 물음에 방대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슬쩍 발을 움직여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휘랑이 미리 눈치 채고 그의 목덜미를 잡아끌었다. 호리호리한 휘랑에게 덩치가 우람한 그가 끌려가는 모습이 퍽 우스웠지만 정작 끌려가는 방대산은 죽을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물론 앞으로 정말 그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은 별로 중요한 사실은 아니었다.
전각은 총 삼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일 층, 이 층은 흑도방의 방원들이 쓰는지 지저분했다. 하지만 삼층은 꽤나 화려한 장식품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모습에 휘랑은 혀를 차며 방대산에게 방주의 방을 찾게 했다. 그 중 가장 큰 방을 방대산이 가리키자 휘랑은 문을 박차서 열고 들어갔다.
“여기 방주 나와!”
“뭐…….뭐야!?”
문을 박차고 들어가자 안쪽에서 당황성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 안은 방 밖과 마찬가지로 화려한 장식들이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중 화려해 보이는 침상위에 배가 불뚝 나온 중년의 남자와 젊은 여자가 누워 있었다. 그 중 남자는 이미 당황성이 가득한 목소리와 함께 상체를 일으키고 있었다. 아마 남자가 방주인 강태산이리라.
방주는 휘랑을 보며 물었다.
“네놈은 누구냐?”
강태산의 물음에 휘랑은 말없이 옆으로 비켜섰다. 그러자 휘랑의 뒤에 가려졌던 현백과 은학, 그리고 얼굴을 가리는 방대산의 모습이 드러났다. 강태산은 방대산을 죽일 듯 한 눈으로 째려보다가 이내 비열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현백에게 말했다.
“흐흐흐……. 네놈의 계집을 결국 내게 바치려고 온 것이냐?”
강태산의 말에 현백은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강태산, 뚫린 입이라고 아직도 그런 잡소리를 해대는구나.”
현백의 말에 화가 날 법도 했지만 강태산은 비열한 웃음만 흘려대며 말했다.
“크핫, 그런 소리는 네놈이 아직 힘이 있을 때나 하지 그래. 영웅나리. 네놈이 병에 걸렸다는 것은 이미 내게 들어온 사실이지. 지금 서 있을 힘도 없어 네놈 계집에게 거의 기대다 시피 있는 것이 아닌가?”
강태산의 말에 현백은 입술을 깨물었다. 틀린 소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영웅이란 소리도 결국엔 힘을 잃은 현백을 비꼬는 것 이었다. 현백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웃기지도 않는군. 아무리 그래도 네놈이 독같은 비열한 수단을 쓸 줄은 생각도 못했다.”
현백의 말에 강태산은 방대산을 찢어 죽일 듯 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 눈빛에 방대산은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강태산은 그에게 눈빛을 거두고 현백을 비웃는 듯 한 눈빛으로 보며 말했다.
“후, 거기까지 알아냈는가? 그런데 어쩌지? 내게 해독제가 없는데? 설령 있다고 해도 네놈이 그것을 빼앗을 수는 있나? 크하핫!”
강태산은 마지막에 가서는 우월감에 취했는지 큰 소리로 웃었다. 그때 현백의 옆에 있던 휘랑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뺏을 수 있어. 해독제도 있지.”
강태산은 그제야 휘랑을 바라보며 물었다.
“네놈은 누구냐?”
강태산의 물음에 휘랑은 얼굴에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나? 이류객잔의 객주다.”
-꼐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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