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막 6장
무엇이 아프다는 것일까, 화군악의 낮은 읊조림. 휘랑은 그의 읊조림을 들었지만 그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대신 그는 멍하니 서있는 화군악을 보며 말했다.
“당신은 교의 주인이기 이전에 한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부디 그걸 기억하셨으면 좋겠네요.”
휘랑은 화군악에게 그 말을 남기고 인향이 사라져간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현재는 화군악의 공격에 발갛게 부어오른 곳보다 인향이가 더 신경 쓰였다.
휘랑이 사라진 객잔 안에는 화군악만 남아있었다. 그는 의자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 때 객잔 문의 달린 종이 딸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화군악이 그 소리에 상념을 깨고서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작달막한 어린아이가 낑낑거리며 문을 열고 있었다. 희윤 이었다. 희윤 이는 낑낑대더니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헥헥거렸다. 그리고는 화군악을 보고 배꼽인사를 했다. 그 모습에 화군악이 물었다.
“아이야, 너는 나를 아느냐?”
화군악의 물음에 희윤 이가 고개를 도리질 쳤다. 그 모습에 화군악이 의아함을 느껴 물었다.
“그런데 왜 인사를 했는고?”
“손님이 힘들어 보여서요.”
“응?”
희윤이의 말에 화군악이 쓰게 웃었다.
‘아직 멀었구나. 마음이 심란하다고 저런 아이에게까지 들키고…….’
“내가 왜 힘들어 보이니?”
화군악이 희윤 이에게 물었다.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그냥 힘들어 보였어요.”
희윤 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대답했다. 그 대답에 화군악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가 희윤 이 물었다.
“네 아비는 여기 객주인가?”
화군악의 물음에 희윤 이가 고개를 도리질 치며 대답했다.
“아니요. 저는 아빠가 없어요.”
희윤 이의 대답에 그는 당황하고서는 사과했다.
“미안하구나.
그의 사과에 희윤 이가 도리질 쳤다.
“괜찮아요. 저한테는 형이랑 누나도 있고 엄마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음……. 이건 비밀인데 손님한테만 알려드릴게요. 저는 객주님이 아빠 같아요. 헤헤……. 안될 말일까요? 제가 아플 때도 힘들 때도 객주님이 옆에 계셨거든요. 어디 있을지 모를 친아빠 보다 객주님이 더 아빠 같아요. 앗! 이건 비밀이에요!”
“그래 비밀이다.”
희윤 이의 말에 화군악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 대답에 희윤 이는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짓고서 다시 그에게 인사를 하고는 안으로 쏙 들어갔다. 객잔 안에는 정말로 화군악 혼자만 남았다. 그는 혼자남아 중얼거렸다.
“아플 때도……. 힘들 때도 같이 있을게 아버지라……. 하하…….”
신교에 주인의 목소리라고 여기기에는 너무나도 쓸쓸한 목소리였다.
**
아무리 잘 숨는다고 해도 흔적을 찾는 것에 도가 튼 야혼 이다. 하물며 어설프게 그것도 급하게 숨은 화인향을 찾는 것쯤은 야혼 에게는 누워서 식은 죽 먹기였다. 그런데 그렇게 찾은 인향과 야혼은 서로 의미 없는 실랑이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 안 간다고!”
“도련님 자꾸 이러 실거에요?! 저번처럼 만적 같은 놈들이 찾아오면 어떻게 하실거에요!”
“너나 형님이 물리쳐 주시겠지! 아무튼 난 안가!”
“도련님!”
야혼의 고함소리에 인향 이는 귀를 막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 몰라 몰라! 아무튼 난 안가! 야혼 너도 알잖아? 신교에서 내가 어떤 꼴을 당하는지!”
야혼을 향해 인향이 일갈했다. 그 일갈에 야혼은 한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의 말대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교에서 그가 어떤 위치인지, 어떤 꼴을 당하는지.
인향은 한 순간 할 말을 잃은 야혼을 향해 말했다.
“신교에 돌아간다면 또 그 망할 놈들의 비웃음을 당하면서 살아야겠지, 내가 원해서 오른 소공자의 자리가 아닌데 말이야! 난 이곳이 좋아!”
그 말을 하는 동안의 인향의 눈에는 약간의 눈물이 고였다. 그가 얼마나 신교에서의 고통이 컸는지 보여주는 반증이었다. 야혼은 어쩔 수 없이 한숨을 푹 쉬었다. 더 이상 그에게 돌아가자고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신교에서 그가 받는 멸시, 증오, 비웃음, 원망, 미움을 가장 가까이서 보아온 것은 야혼 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이 자신의 주인을 비웃는 놈들의 목에 비도를 꽂아 넣는 상상을 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자신의 주인은 그를 막아섰다. 안된다고 같은 교도가 아니냐고 그렇기 때문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 찾아오는 살심을 꾹꾹 눌러 섰다. 자신도 그럴진대 자신의 주인은 어떠한 심정이었을까. 교에서는 절대 보이지 않을 행동을, 마음을, 생각을 주인은 자신에게 내보이고 있었다. 그렇기에 야혼은 인향에게 더 이상 강요 할 수가 없었다.
“인마, 너 그러고 가면 안 되지.”
그 때 야혼의 뒤에서 휘랑이 나타났다. 그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인향에게 말했다.
“형님? 어떻게 여기에?”
“어떻게는 어떻게야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데 못 찾는 게 더 바보지.”
휘랑은 말을 하고서는 야혼을 지나 인향이가 앉아있는 바위에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화인향을 한 번 쳐다보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내가 말이다 옛날에 스승님 밑에 있을 때 스승님이 시키신 것이 있어. 그런데 내가 그걸 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지. 너는 알겠지? 우리 스승님성격.”
휘랑의 물음에 인향이 고개를 끄덕였다. 교에서도 유명했다. 제일 장로 강한운의 괄괄한 성격은 아쉽게도 인향은 겪어 본 적이 없지만 말이다. 인향이 고개를 끄덕이자 휘랑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걸 하는 것보다 죽는 게 낫다 싶을 정도로 싫었지. 그래서 스승님이 그걸 시키지 못하게 숨은 적이 있었어. 그 때 내 나이가 그래 딱 네 나이쯤 됐겠군. 그랬더니 내게 요리를 가르쳐주신 스승님이 귀신같이 날 찾아내셨지. 그 분은 내 머리에 주먹을 한 방 꽂아 넣으시며 말씀하셨어. 아 생각해보니 열 받네 노인네 주먹 겁나게 아팠는데. 흠흠 아무튼 그 양반 말이 ‘그렇게 하기 싫으면 강한운 그 노인네한테 가서 정식으로 이야기해라 어째서 왜 싫은지. 지금 네놈이 하는 행동은 도망가는 거로밖에 안 보이는구나.’ 그리고는 내 목을 잡고 스승님 앞에 데려가셨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야기했어. 어째서 그 일이 하기 싫은지. 내 말을 다 들은 스승님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옆에 있던 곰방대로 한 대 때리고는 말하더구나. 처음부터 이렇게 이야기 했다면 자기도 안 시켰을 거라고 억지로 시켜서 미안하다고. 와 세상에 난 그 노인네 입에서 미안하단 소리가 나올 줄은 몰랐지. 아무튼 지금 난 스승님의 심정을 알 거 같아 인향아. 도망가는 것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휘랑의 이야기를 듣던 화인향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이내 고개를 바짝 쳐들고는 휘랑을 보며 말했다.
“교주님께 정식으로 말씀드리겠어요. 그리고 저는 여기 남겠어요.”
인향의 말에 휘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장난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그런데 여기 주인 의견은 묻지도 않냐?”
“……? 형님 제가 있는 게 싫으세요?”
인향이 불안한 눈빛으로 휘랑에게 물었다. 그러자 휘랑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럴 리가 있게냐? 가족이 싫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휘랑의 말에 인향이 웃었다. 휘랑은 앞장서 걸었다. 그의 뒤로 인향과 야혼이 쫄레쫄레 따라붙으며 물었다.
“그런데 형님, 하기 싫으셨던 일이 무엇이에요?”
“몰라도 돼.”
어째선지 인향의 물음에 휘랑의 걸음이 빨라졌다.
**
소주의 위치한 한 객잔 안에서 세기말에나 볼법한 차가운 전운戰雲이 감돌고 있었다. 그 발원지는 두 사람, 화인향과 화군악이 서로를 향해 내뿜고 있었다.
그 옆에는 야혼이 불편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고 야혼의 옆에는 휘랑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인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놈 마냥 여린 줄 알았건만 성깔 있네.’
휘랑이 인향을 보며 생각하고 있을 때 화인향이 화군악을 보며 입을 열었다.
“교주님께 아뢸 말씀이 있습니다.”
그의 말에 화군악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해보 거라.”
그의 허락을 맡은 화인향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입을 열었다.
“저는 이곳에 남고 싶습니다.”
화인향의 말에 화군악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
“어째서냐?”
인향이 대답했다.
“아시지 않습니까? 신교에서 제가 어떠한 위치인지. 무능한 소공자, 힘도 없는 무지렁이 등등 저를 지칭하는 수많은 말들이 있습니다. 이중에 좋은 뜻을 가진 말은 하나도 없죠. 그런데도 제가 그곳에 돌아가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너는 내 아들이다. 너에게 악담을 하는 것들을 모두 참수斬首를 시켜주마 어떻지?”
“교도들을 모두 참수형을 시킬 작정이십니까?”
화군악의 말에 인향이 질렸다는 듯 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 말에 화군악이 표정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
“농담이다.”
울컥! 쾅-!
“전혀 농담 같지 않습니다!”
표정하나 바꾸지 않고 농담이라고 하는 화군악에게 열이 받은 인향이 탁자를 탕치며 일어났다. 그런 인향을 야혼이 진정시켰다. 그런 인향에게 화군악이 물었다.
“여기가 왜 좋지? 너를 위해 일 해주는 시종도, 음식도, 돈도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어째서 여기가 좋은 거지?”
화군악의 물음에 인향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내 입을 열어 대답했다.
“이곳에는 교에 없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화군악이 물었다.
“가족입니다. 교에서는 없었던.”
“…….”
인향의 말에 화군악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화군악에게 인향이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교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곳에는 시종도, 돈도 저를 위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요. 아침마다 세수는 스스로 해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합니다. 옛날 생활과 비교하면 불편하기 짝이 없지요. 하지만.”
인향은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곳에는 가족이 있습니다. 한 번도 저를 봐주시지 않으셨던 교주님 대신에 매일같이 저를 보고 웃어주는 야민과 아민이 있고 놀아달라고 보채는 희윤이가 있으며 저를 살뜰히 챙겨주시는 침모님이 계시고 형님이 계십니다. 이것이 제가 이곳을 떠나지 않는 이유입니다.”
인향은 입을 닫고는 화군악을 쳐다보았다. 군악은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그리고는 입을 열어 물었다.
“네뜻이 정녕 그러하더냐?”
그의 물음에 화인향이 대답했다.
“예”
그의 눈에는 확고한 의지가 보였다. 화군악은 그 의지를 보고 잠시 눈을 감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좋은 눈이구나. 교에서는 절대 볼 수 없었던 살아있는 눈이구나. 그래 알겠다. 네 뜻 대로 하거라.”
“정말이십니까?”
인향은 놀라운 눈으로 물었다. 휘랑이 시키기에 이야기 했지만 정말로 그가 허락해 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여차하면 도망칠 준비 중이었던 그로써는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인향의 물음에 화군악이 대답했다.
“그래. 이것이 너를 위한 내 마지막 배려다.”
“마지막이요?”
화군악의 말에 인향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화군악이 굳은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화인향, 지금부터 신교에 대한 모든 지위를 박탈한다. 너는 앞으로 교에서 소공자의 대한 위치를 고수 할 수 없으며 소교주 자리에 오를 수 없다. 만약 원한다면 신교에 적迹에서도 너에 대한 것을 지워주마. 이것은 교주로써의 명이다.”
소공자의 권리 박탈. 만약 인향이 평범한 소공자였다면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이야기 일 수도 있지만 화군악의 말에 화인향은 오히려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을 본 화군악은 씁쓸한 듯 웃었다.
화군악이 말했다.
“너는 이제부터 신교에 일원이 아니다. 이것이 내가 너에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구나. 미안하구나. 무능한 아버지라서.”
“!”
화군악의 말에 인향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가 자신에게 사과를 한 것도 놀라웠지만 화군악 스스로가 자신을 아버지로 표현 한 것에 대해서도 놀랐다.
화인향은 그에게 말했다.
“아닙니다…….”
화인향의 말에 화군악은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갈 채비를 했다. 그 모습에 휘랑이 물었다.
“이대로 괜찮으십니까?”
휘랑의 물음에 그가 휘랑을 보며 전음으로 이야기했다
내게 바락바락 대들더군. 웃기지 않지만 그 모습이 보기 좋았네. 교에서 보았던 죽어있던 눈이 아니라 살아있는 눈으로 내게 대들더군. 나는 절대 해 줄 수 없는 일이었네. 그 점에 대해서는 감사를 표하네. 앞으로도 아들놈을 잘 부탁하네.
그러고는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객잔 문을 열면서 객잔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 때 뒤에서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교주님!”
멍한 표정을 짓던 인향은 급히 그를 불러 세웠다. 그의 부름에 화군악이 돌아보았다.
-꼐속
- 작가의말
모든 것을 다 가진자가 가족을 잃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어떠한 기분일까요?
Comment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