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막 5장
장현백의 말에 윤휘랑은 혹시나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귀를 후비고는 다시 물었다.
“제가 잘못 들은 것 같은데 다시 말씀 해주시겠습니까?”
윤휘랑의 부탁에 장현백은 헛기침을 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가 들은 것은 확실히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건협맹 본단에 정찰을 부탁하는 걸세.”
“이런 미친…….”
그의 말에 윤휘랑은 작게 욕지거리를 내뱉고는 장현백을 바라보았다. 윤휘랑의 시선에도 연상화만 슬쩍 그를 흘겨볼 뿐, 정작 당사자인 장현백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어디선가 섭선을 꺼내들고는 살랑거리고 있었다.
윤휘랑이 그에게 물었다.
“지금 강호에 주목을 한눈에 받고 있는 이들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윤휘랑의 물음에 장현백은 단번에 대답했다.
“건협맹이겠지.”
그의 대답에 윤휘랑의 이마에 시퍼런 힘줄이 돋아났다. 그는 애써 그것을 감추고는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왜 주목을 받고 있는지 아십니까?”
윤휘랑의 물음에 장현백은 태연하게 차를 따라 마시고는 대답했다.
“우리에게 전면으로 도전장을 내밀어서이지.”
그의 이마에 힘줄이 하나 더 돋아났다. 윤휘랑이 물었다.
“그렇다면 그들 본단에 지금 경비가 어마어마하게 삼엄할 것이라는 것은 굳이 안 가봐도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윤휘랑의 물음에 장현백이 차를 호록 마시고는 말했다.
“그렇겠지?”
장현백의 태연한 말투에 윤휘랑의 이마에 시퍼런 힘줄이 무수하게 돋아났다. 그래도 얼마간 객잔에 있었던 진상 손님들을 상대하며 얻은 인내심과 상인 특유의 침착성으로 그것들을 누르고는 다시 물었다.
“그런 곳을 지금 저보고 가라는 것입니까?”
윤휘랑의 심각한 물음에도 장현백은 여전히 태연자약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네.”
‘이놈보소?’
너무 기가 막히면 화도 나지 않는다는 말이 맞았다. 너무나도 기가 막혀 윤휘랑은 화조차도 나지 않았다.
장현백의 대답에 윤휘랑이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쳐다보았다. 무례하다면 호통 칠 수도 있었지만 장현백은 그저 가만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그리 큰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닐세.”
‘그게 큰 게 아니면 뭐가 큰 건데…….’
윤휘랑은 속으로 장현백을 욕하며 물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을 바라는 것입니까?”
윤휘랑의 물음에 장현백이 대답했다.
“그저 그곳에 본단이 있는 것만 확인 해주면 된다네.”
그의 대답에 윤휘랑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것뿐입니까?”
윤휘랑의 물음에 장현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윤휘랑이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보상은 무엇입니까?”
“대협?!”
“뭐가 좋겠는가?”
윤휘랑의 단도직입저이며 무례한 물음에 연상화가 기가 막힌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까마득히 높은 정도맹의 군사가 직접 부탁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일터인데 보상을 바라고 있는 윤휘랑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장현백은 표정하나 바뀌지 않고 무엇이 좋겠냐고 묻고 있었다.
그런 장현백을 보며 윤휘랑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흠……. 군사께선 머리가 좋으시니 알아서 생각해서 주시지요.”
윤휘랑의 이야기에 장현백은 잠시 생각 하더니 입을 열었다.
“새로 생길 정도맹 소주 지부에 회식은 모두 자네가 있는 객잔에서 하라고 일러두겠네. 최소 월 이회이상. 그 외에도 자네 객잔의 평판을 좋게 소문 내주겠네. 어떻겠는가?”
나쁜 제안이 아니었다.
‘흐음……. 요즘 매출도 잘 안 나오는데 잘됐군.’
장현백의 제안에 윤휘랑은 잠시 고민하고는 입을 열었다. 그의 대답에 장현백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좋습니다. 도와드리지요.”
그들의 협상에 옆에서 듣고 있던 연상화가 기가 막힌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어른들은 더러워…….”
장현백과 윤휘랑은 연상화의 혼잣말을 가볍게 무시하고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는 이야기했다.
“건협맹의 본단은 하남에 있다고 하더군. 소주로 돌아가는 길목에 잠시 확인 해주면 된다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보고는 어떻게 해드리면 좋겠습니까?”
윤휘랑의 물음에 장현백은 섭선을 살랑이며 대답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하겠네. 오늘은 피곤 할 테니 이곳에서 쉬고 내일 출발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나쁜 제안이 아니었다. 객잔에서 기다리고 있는 하희민이 걱정 되었지만 그녀라면 혼자여도 문제없을 듯싶었다.
윤휘랑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이 합의로 어떠한 일이 생길지는 아직 미지수였지만 말이다.
**
“뭐!? 그놈이 정도맹 본단으로 떠났다고!? 언제!?”
홍랑이 소리를 꽥꽥 질러대며 랑랑의 멱살을 잡고 앞뒤로 흔들어댔다. 그런 홍랑의 거친 손길에 랑랑은 다죽어가는 목소리를 내며 대답했다.
“끄억……. 그게……. 이십…….으어 나죽어요 누님.”
랑랑의 간절한 부탁에 홍랑은 그제야 랑랑의 목을 놓아주었다. 그제야 랑랑은 목을 가다듬고는 대답했다.
“크흠. 이십여일 정도 됐다고 하던데요……?”
랑랑은 말을 하면서 홍랑의 눈치를 살폈다. 역시나 홍랑은 다시금 랑랑의 멱살을 잡고 앞뒤로 흔들어대며 말했다. 아까보다 강도가 더 심해진 것 같았다.
“넌 그동안 뭐했어! 이 망할놈아!” 홍랑의 말에 랑랑은 억울한 듯 그녀를 보며 말했다.
“그놈은 누님이 감시한다고 말하셨잖아요!”
“아참, 그랬지.”
그의 말에 홍랑은 잡고 있던 랑랑의 멱을 툭하고 놓아주었다. 어찌나 세게 흔들었던지 홍랑보다도 큰 랑랑이 잠깐 비틀거리다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홍랑이 말했다.
“끄응……. 어쩐다? 그놈 정도맹으로 돌아선 건가? 망할 놈의 장현백이 무슨 수를 쓴 거지?”
홍랑이 손톱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그런 홍랑을 랑랑이 말리며 말했다.
“에비에비 지지에요. 글쎄, 정도맹으로 돌아선 낌새는 아닌 것 같아요.”
랑랑의 말에 홍랑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만약 그놈이 정도맹으로 돌아섰으면 정도맹 놈들이 이곳부터 족치지 않았을까요.”
홍랑이 랑랑의 제지에 물어뜯던 손톱을 내려놓고는 중얼거렸다.
“하긴 그렇겠네. 장현백 그놈이 날 가만 둘 리가 없으니까.”
홍랑의 중얼거림을 듣던 랑랑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니, 그러게 성격 좀 죽이지……. 후개 자리까지 거론되던 양반이 어쩌다 마두가 되셨수?”
윤휘랑에게는 자신을 소주 분타의 분타주라 소개하긴 했지만 무림에서, 정확히 말하자면 정도맹에선 홍랑은 마두로 지정되어 있다.
그 때문에 장현백이 소주를 방문 했을 때, 속칭 까마귀들이라 불리는 무영대의 대원들이 기를 쓰고 그녀를 찾아댄 것이다. 혹시라도 장현백에게 위협을 가할까 싶기도 했었고 여러 가지 복잡한 이유 때문에 그녀를 찾아야만 했었다.
가만히 있었으면 일만 개방도들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후개 홍랑이 어째서 마두 홍랑이 된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홍랑은 전대 맹주 강현악의 기일 날, 장현백과 천강화에게 타구봉을 들이댔었다.
물론 그것이 검신에게까지 닿지는 않았지만 그 때 장현백은 꽤나 큰 상처를 입었었다. 그 때문에 개방은 정도맹에서 입지가 좁아졌고 홍랑은 마두로 낙인찍혀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랑랑의 말에 홍랑이 자리에 주저앉아 중얼거렸다.
“아, 몰라 몰라. 아니 그러면 열 안 받아? 맹주님을 독살하고 그 자리를 그 망할 놈들이 떡하니 차지하고 앉아 있는데? 협과 의는 다 얼어 죽은 거야? 이러면 우리가 저 사도 놈들과 마교놈들이랑 다를 게 뭔데!”
홍랑은 말을 하면서 감정에 북박쳐 오르는 듯 소리를 빽 질렀다. 그런 홍랑을 보며 랑랑이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홍랑이 말했다.
“랑랑, 말해봐 협과 의는 다 어디간거야? 응?”
홍랑의 질문에 랑랑이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누님도 아시잖아요. 사람이 모이면 이득을 챙기려는 놈들이 생기고 강호는 그런 놈들의 손에 움직이는 걸……. 그런 놈들에게 협과 의를 바랄 수 있겠어요?”
랑랑의 말에 홍랑은 한숨을 푹 쉬고 말았다.
홍랑이 낮게 중얼거렸다.
“강호가 왜 이지경이 된 걸까?”
**
모두가 잠든 깊은 밤. 평소라면 이 시간에 방안에 아무도 들이지 않는 장현백의 처소에 연상화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그녀의 옆에는 호롱불이 일렁이며 방안을 비추고 있었다. 그녀는 무언가 불편한 모습이었지만 내색을 하지 않았고 그녀의 앞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장현백 또한 굳이 그녀를 편한 자세로 바꿔주지 않았다.
연상화가 차를 마시는 그를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군사께선 어째서 이 시간에 저를 부르셨는지…….?”
“이런 자리에선 숙부라고 불러도 된다.”
장현백의 말에 연상화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반짝 깨닫고는 대답했다.
“아……. 아 예!”
연상화의 미묘한 대답에 장현백은 잠시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이상하게도 아까까지는 그렇게도 활발했던 그녀가 묘하게 주눅이 든 모습이었다.
장현백은 차를 내려놓고는 섭선을 살랑이며 말했다.
“어떻더냐?”
“예?”
뜬금없는 장현백의 물음에 연상화가 무슨소리가 하고 그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시선에 장현백은 한숨을 쉬고는 다시 이야기했다.
“그 놈 말이다. 어떻냐는 말이다.”
장현백의 질문에서 가리키는 그를 생각해내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의 질의를 깨달은 연상화는 입을 열었다.
“딱히 건협맹의 일원들과 연고는 없어 보입니다. 전에도 말씀 드렸다시피 건협맹의 맹주 강현과는 전투까지 벌였고요. 만약 그 때 옆에서 좌호법이 그를 보호해주지 않았다면 강현 그는 최소 중상을 입었을 싶습니다. 혹은 붙잡혔을 수도 있고요. 그 외에도 딱히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장현백은 가만히 섭선을 흔들며 연상화의 말을 듣더니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그녀는 그의 표정을 보고 긴장했다. 그가 입을 열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의외에 것이었다.
“그게 아니라 남자로 어떠냐는 말이다.”
“예…….? 예!?”
장현백의 말에 연상화는 순간 무슨 소린가 하고 멍하니 있다가 곧이어 무슨 소린지 깨닫고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장현백은 섭선을 접고는 입을 열었다.
“강현은 동 나이 대에 상대 할 자가 없을 정도로 고수이다. 물론 십오 지존에 미치지 못하고 그 외에도 더한 고수가 많지만 같은 나이 대에는 가히 천재라 할 수 있겠지. 그런 강현은 가볍게 이겼다? 그 정도면 그 나이 대에 상대 할만 한 자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 그런 남자인데 연인이 없다? 그렇다면 네가 그 자리를 차지해서 그놈을 우리 맹으로 인도하는 것이 네가 맹에 입은 은혜를 갚는 일이 아니겠느냐?”
“그……. 그것이…….”
무언가 이상했다. 다른 사람이 저런 말을 그녀에게 지껄였다면 당장 검부터 뽑아들었을 그녀였지만 지금은 대꾸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저 쩔쩔매고만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장현백이 다시 섭선을 펴 흔들며 말했다.
“그렇다면 그리 알고 내일 그놈과 같이 떠날 준비를 하거라.”
“예?! 그렇게 갑작스럽게?”
연상화가 당황해 입을 열었다. 장현백은 그녀를 차가운 눈빛으로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언제쯤 하겠다는 것이냐? 시끄럽고 그냥 내 결정에 따르거라!” 장현백의 말에 연상화가 고개를 푹 숙이고는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그래 좋다. 이제 가보 거라.”
“예…….” 장현백의 말에 연상화는 항변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저 그의 방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장현백은 그런 그녀를 보면서 뒤에서 혀를 차며 낮게 중얼거렸다.
“저래가지고 어디다 써먹기나 하겠나.”
“……편히 쉬십시오.”
그의 말을 그녀는 그저 못들은 척 하고 그의 방을 나왔다. 그녀는 방문 앞에 서서 크게 한숨을 쉬었다. 평소에 모습과는 많이 대조적인 그녀였다.
-꼐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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