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막 9장
“자아, 이제 부순 물건들의 배상을 받아 볼까?”
사하현과 유종산의 전투 때문에 물건들이 하나하나 부숴질 때마다 뚱한 표정을 짓던 휘랑이 처음으로 미소를 지으며 쾌할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목소리에 기절한 이상진의 앞에 서 있던 사하현이 움찔했다. 그녀는 급히 돌아서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미...미리 말하지만 난 돈 없어!”
그녀와 유종산의 전투로 부숴진 물건들의 양은 꽤나 많았다. 그렇기에 그녀는 배상이란 소리에 격하게 반응했다. 그것을 모두 물어줬다가는 지금 당장 객잔에 묵을 비용조차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격한 반응에 휘랑이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누가 너한테 받는데?”
“그... 그럼?”
휘랑의 말에 그녀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그녀의 물음에 휘랑이 검지 손가락으로 그녀를 가리켰다. 그 모습에 그녀가 울상을 지었다.
“나한테 돈 안받는다며!”
‘아까 그 악귀같은 모습은 어디가고 울상이야...’
아까 유종산과 싸울 때 보여줬던 그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울상을 짓는 모습에 휘랑은 황당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너 말고 네 뒤에있는 놈.”
“아!”
휘랑의 말 뜻을 알아채고 그녀는 슬쩍 비켜섰다. 그곳에는 이상진이 기절해 있었다. 휘랑이 말했다.
“저놈 돈 많겠지?”
휘랑의 물음에 사하현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에 휘랑이 어이가 없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뭐, 그럼 네가 돈 낼레?”
휘랑의 물음에 사하현이 급하게 고개를 가로 젓더니 말했다.
“아니, 돈 많을 것 같다고.”
그녀의 말에 휘랑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치?”
휘랑의 물음에 그녀는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도제가 그 모습을 보았다면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을 것이다. 어른이 되었구나... 라고.
“저기...”
기절해 있는 이상진을 룰루랄라 하며 밧줄로 묶고 있는 휘랑을 보며 사하현이 그를 불렀다.
“?”
사하현의 부름에 휘랑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의 시선에 그녀는 몇 번 우물쭈물 거리더니 이내 자그마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아까는... 고마웠어...”
“....? 아!”
사하현의 이야기에 휘랑이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알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까 그 일을 말하는 거군.”
휘랑의 이야기에 사하현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얼굴이 살짝 붉어져 있었다. 휘랑은 다시 이상진을 묶으며 이야기했다.
“목숨을 건 전투에서, 상대를 우습게 보지 마.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잖아.”
휘랑은 이야기를 하며 이상진을 다 묶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유종산에게 다가갔다. 그 길목에는 사하현 그녀가 서 있었다. 휘랑은 그녀를 슥 지나가며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첫 실전 치고는 잘했다.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군.”
휘랑의 자그마하고 나지막한 목소리에 그녀는 움찔했다. 그러한 그녀의 모습에 휘랑은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유종산에게 다가가며 생각했다.
‘저 녀석이 다치면 도제를 볼 면목이 안서서 말이야...’
그래도 나름 애제자라고 보내놨는데 돌려보낼 때 하자(?)가 생기면 안 되지 않은가.
‘어...얼굴이 뜨거워... 왜이러지?’
그러한 휘랑의 생각과는 달리 사하현은 어째선지 붉어지는 얼굴을 주체 할 수가 없었다. 휘랑은 그런 사하현의 모습을 보지 못한 채, 실의에 빠져있는 유종산을 묶느라 여념이 없었다.
**
이류객잔의 내부, 정확히 말하자면 손님들이 식사를 하는 식당 부분에 커다란 문제가 생겼다. 바로 탁자나 의자같은 집기들이 성한 것이 없이 반파, 혹은 완전히 부숴져 널부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물건들의 중심에는 이상진과 유종산이 밧줄에 묶여 있었고 그 주위에 객주 윤휘랑과 이 일의 원흉(?)인 사하현, 객잔의 회계를 맡고있는 하희민과 구경(?)나온 야민과 아민, 야혼과 화인향이 있었다.
이상진과 유종산이 악을 쓰며 말했다.
“네놈! 이걸 풀지 못할까!?”
“어, 풀지 못해.”
이상진의 호통에 휘랑이 싱글싱글 웃으며 대답했다. 그 모습에 어이가 없어진 유종산이 호통을 쳤다.
“풀어라! 이분이 누군 줄 알고 이러는 것이냐?”
유종산의 호통에 휘랑은 귀를 후비더니 나온 귀지를 후 불며 야혼에게 물었다.
“그런데 얘는 뭐하는 놈이냐?”
휘랑의 물음에 야혼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에헴하고 헛기침을 하고는 이상진의 내력을 읊기 시작했다.
“이름은 이상진 나이는 현재 서른 다섯, 야락루주 이상훈의 외아들이자 소주에서 유명합니다.”
“뭐로?”
휘랑의 물음에 야혼은 다시 헛기침을 하고는 이야기했다.
“결혼 유무를 가리지 않고 여자 희롱하기, 아무 가게나 들어가서 뒤집어 엎기 등등 소주거리에선 개차반, 호색한, 난봉꾼등 외에도 입에담기 힘들만한 수식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소주에서 제법 알아주는 미모를 가진 여자들 배경이 없거나 평범한 가정의 여식 중 육 할 가까이가 이상훈에게 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거나 심한 경우 강간을 당했습니다. 그 중 수치심에 못 이겨 자살한 여자가 셋, 시도를 한 여자가 다섯...........”
이상진의 과거가 적나라하게 밝혀질 때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점점 험악해져 갔다. 그리고 이상진의 얼굴에서는 점점 핏기가 사라져 갔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것들까지 이야기 한다면 너무 길어질 것 같네요. 음... 굳이 일축하자면 쓰레기? 정도가 맞겠는데요?”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알고있는거야!”
이미 자신마저 잊고있던 과거가 세세하게 야혼의 입에서 술술 나오자 이상진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과 두려움이 섞인 표정으로 고함쳤다. 그런 이상진을 뒤로하고 휘랑이 야혼에게 말했다.
“쓰레기한테 사과 하거라.”
휘랑의 말에 야혼이 머리를 긁적이며 샐쭉한 표정으로 말했다.
“흠, 그것도 그렇네요. 걔네는 재활용이라도 할 수 있지. 이놈은 뭐 구제할 방법이 없네요.”
야혼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할 수만 있다면 이대로 그를 매우치고 싶은 표정들이었다. 휘랑은 그런 그들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자아, 매우치고 싶은건 알겠는데, 일단 그전에 받아야 할 것이 있어서 말이야.”
그러고는 휘랑은 그에게 다가가 쭈그려 앉았다. 그가 다가오자 이상진은 침을 튀겨가며 말했다.
“네놈! 감히 내게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 할 성 싶으냐!? 지금 당장 이것을 푼다면 내 사정을 봐줘, 그냥 가겠으니...”
자신의 얼굴에 튀는 이상진의 분비물에 휘랑이 불쾌한 표정을 짓더니 그것을 스윽 닦고는 이상진에게 물었다.
“아, 시끄럽고. 묻는 말에나 대답해.”
휘랑의 말에 이상진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흥! 내가 왜 네놈의 물음에 대답해야 하지?”
이상진의 물음에 휘랑이 싱글거리는 표정으로 말했다.
“안 그러면 이보다 더 꽁꽁 싸매서 소주 거리에다 던져 놀거야. 재밌는 구경거리가 되겠지?”
이상진은 적이 많았다. 그 중에는 이상진의 목숨을 노리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런 그들의 대부분은 힘이 없는 농가의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그들은 이상진의 호위로 따라다니는 유종산의 존재 때문에 이상진을 건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만약 이상진이 호위도 없이 묶여서 소주거리에 나뒹굴게 된다면? 아마 그에게는 좋지 못한 상황이 될 것이다. 그의 목숨을 노리는 이들이 득달같이 달려들 것이다. 그것을 아는 이상진은 순간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지...질문이 무엇이지?”
갑자기 순한 양이 된 이상진의 모습에 휘랑이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네놈이 고용한 호위가 우리 객잔을 이렇게 만들어 놨지, 얼마쯤 들까?”
휘랑의 물음에 이상진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걸 내가 왜 알아야 하지? 한 은자 열 냥쯤 주면 되나?”
이상진의 물음에 휘랑이 싱글거리며 한 손으로 부숴진 의자의 다리를 들더니 그것을 간단하게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그 모습에 이상진의 얼굴에는 촉촉하게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지...지금 생각해보니 열 냥 가지고는 안되겠군...”
“그지? 얼마라고 생각해?”
휘랑의 물음에 이상진이 목소리를 가늘게 떨며 말했다.
“오... 오십냥?”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가볍게 손을 털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일어난 바람이 그의 옆에 있던 탁자를 반으로 쪼개버렸다. 그 모습에 이상진의 얼굴에 흐르는 땀의 양인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이상진이 말했다.
“배...백 냥! 이 이상은 나도 어떻게 융퉁 할 방법이 없어!”
이상진의 말에 휘랑이 곰곰이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백냥이라면 은원보로 두 개, 금자로는 다섯 냥. 그 정도면 부숴진 집기들을 모두 재주문하고도 남는 금액일 것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장사를 못하는 것에 대한 손해도 어느 정도 메꾸는 것이 가능 할 것이었다.
휘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상진에게 말했다.
“그럼 배상은 지금 해주면 좋겠군.”
“뭐야!? 백 냥을 지금 어떻게 주나! 내 돌아가서 사람을 시켜 보내주겠네!”
휘랑의 말에 이상진이 말했다. 어떻게 들어보면 이치에 맞는 말이었지만, 사실 속내는 다른 곳에 있었다.
‘이곳을 빠져나가기만 한다면 돈 따위 줄까보냐!’
이상진의 시커먼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휘랑은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이상진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곧이어 나오는 휘랑의 말에 그 미소는 구겨지고 말았다.
“네 호패를 내놔. 전장에 가서 돈을 융통해오지. 아 혹시 모르니 서신도 적는 것이 좋겠군. 야민 지필묵과 종이를 가져오너라.”
휘랑의 말에 흥미로운 표정으로 지켜보던 야민이 네하고 대답을 하더니 어디선가 지필묵과 종이를 가져왔다. 휘랑은 그것을 건네며 말했다.
“적어. 돈을 융통하라고.”
“끄....끄으응...”
휘랑의 말에 이상진은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휘랑이 시키는 대로 적어 줄 수 밖에 없었다. 휘랑은 그가 서신을 적을 수 있게 한쪽 팔만 풀어주었다. 그리고 이상진이 서신을 모두 적고 호패를 건네자 야혼에게 던져주며 말했다.
“알아서 잘 받아와라. 알겠지?”
휘랑의 부탁에 야혼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객주님, 저는 여기 직원이 아닙니다만?”
야혼의 말에 휘랑이 옆에 서있던 화인향을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 인향이 야혼에게 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 내가 힘이없다... 다녀와줘.”
“끄응, 너무하세요. 도련님을 공략하다니!”
야혼이 황당한 말투로 말하자 휘랑이 말했다.
“갖다오면 당과를 만들어 주마.”
“다녀오겠습니다.”
휘랑의 말에 잽싸게 문을 열고 나가는 야혼의 뒷모습을 모두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야혼이 사라지자 휘랑이 다시 이상진의 앞에 쭈그려 앉더니 물었다.
“하나 더 묻지, 네가 야락루주의 외아들이라고?”
“그... 그렇다만?”
이상진의 대답에 휘랑이 짙은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이상진은 어째선지 몸을 떨었다.
**
“그 소문 들었나?”
“무슨 소문?”
소주 시장에서 물건을 팔던 시장 상인들이 서로 모여 잡담을 나누던 중, 청과상 주인 장씨의 물음에 포목점 주인 주씨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장씨는 고소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 그 개차반 이상진 말이야!”
이상진이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짜증이 나는 듯 주씨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 놈이 뭐 어쨌는데? 왜 또 어디를 뒤엎기라도 했다고?”
주씨의 물음에 장씨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니 그놈이 이번에 그 망할 호위놈이랑 같이 사람들에게 엄청나게 맞은 일 말이야.”
“어엉? 그런 일이 있었나?”
장씨의 말에 주씨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 물음에 장씨가 뿌듯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 글쎄 그런일이 있었고 말고. 어떻게 된건지 그놈이 그 호위 놈이랑 손발이 묶인 채 거리에 묶여 있었다네? 그 옆에는 그놈들을 패라는 마냥 실한 장작개비도 여럿 놓여 있었고!”
“허어... 그것참 아쉽구먼.”
진정 아쉽다는 듯한 주씨의 말에 장씨가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가?”
“내가 거기 없었다는 것 말이야.”
주씨의 말에 장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네, 맞어. 나도 그것이 참 아쉬워. 그런데 그걸 누가 그랬을까?”
장씨의 물음에 주씨가 말했다.
“자네도 모르나?”
주씨의 물음에 장씨가 대답했다.
“나도 모르네. 어느 순간 묶여 있었다고 하니까 말일세.”
장씨의 대답에 주씨가 말했다.
“뭐, 누구면 어떤가? 누군지 몰라도 아주 속시원한 일 했구만!”
주씨의 말에 장씨가 맞장구를 쳤다.
“맞네 맞어! 아주 속시원한 일 해주었지! 하하하!”
장씨가 맞장구를 치며 박수를 쳤다. 그 때 장씨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아저씨, 저 왔습니다.”
“어엉? 휘랑이 왔나? 오늘은 뭐 사러 왔어?”
“항상 주시던 대로 주세요. 싱싱한 걸로.”
“알았네!”
휘랑의 주문에 장씨는 주씨와 하던 대화를 멈추고 여러 채소들을 담아 그에게 건네 주었다. 그 때 싱글벙글한 장씨의 표정을 보고 휘랑이 물었다.
“무슨 기분 좋은 일 있으세요?”
휘랑의 물음에 장씨가 대답했다.
“암! 있고 말고! 그런 일이 있네!”
“흐음... 어쨌든 많이 파세요-!”
장씨의 말에 휘랑이 턱을 쓰다듬으며 그에게 인사를 했다. 그의 인사에 장씨또한 웃으며 인사를 해주었다.
“어엉! 자네도!”
장씨의 청과상을 나서는 휘랑의 입에는 의미모를 웃음이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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