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막 8장
두 명의 무인은 서로의 빈틈을 찾았다. 두 사람의 무공 실력은 무림 내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상당한 실력자들.
그렇기 때문에 자잘한 검투보다 한 방 한 방이 서로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가능성이 더 높았다.
“젊은 친구가 대단하군.”
별호란 삼류무사에게까지 붙는 그런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전투를 겪고 수많은 무사들에게 자신을 각인시켜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별호. 단유정에겐 그런 별호 중에 낙성검이랑 이름이 붙여졌다. 검이 떨어지는 검과 같이 빠르다 해서 붙여진 것이 낙성검. 그런 별호가 붙을 만큼 단유정은 많은 전장을 겪었다.
그런 그조차도 윤휘랑을 상대로는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생사를 걸고 전투를 해본자만이 알 수 있는 냄새가 윤휘랑에게 풍겨왔다. ‘상대는 위험하다.’ 단유정의 육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단유정은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호승심이 끓어올랐다.
그것은 윤휘랑도 마찬가지였다. 요리를 좋아하고 객잔의 객주를 하고 있지만 그 또한 한 명의 무인. 검을 겨룰만한 상대를 만나는 것만큼 무인에게 기쁜 일이 있을까. 산에서 내려오고 제대로 된 무인은 건협맹의 맹주인 강현과 전투를 벌였을 때, 그를 구했던 남자와, 화군악 정도가 전부였다. 나머지는 모두 풋내 나는 애송이들 이었다.
‘상대하기 기분 나쁜 놈도 하나 있긴 했지만…….’
윤휘랑은 장현백을 떠올리며 몸을 한 번 떨고는 검을 고쳐 잡았다. 그를 생각하니 어째선지 기분이 나빴다.
단유정과 윤휘랑은 서로를 노려보았다. 선수는 윤휘랑이었다. 단유정이 순간 보인 허점을 윤휘랑은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왼쪽 발을 중심축으로 삼아 반 바퀴 돌며 옆구리를 베어 넘기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제대로 된 허점이 아니었다.
‘역시 아직 미숙하군!’
단유정이 일부러 보인 허점에 윤휘랑이 제대로 걸려 넘어간 것이었다. 단유정의 검과 윤휘랑의 검이 맞닿는 순간 단유정은 빠르게 검을 흘려보내고 베어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단유정의 입에선 짧은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크흡!”
윤휘랑은 단유정의 생각대로 호락호락한 자가 아니었다. 단유정의 생각을 간파한 그는 빠르게 검의 궤적을 바꿔 그와 검을 맞대었다.
단유정은 이를 악물고 검을 쳐내며 생각했다.
‘아까 보여주었던 실력은 다가 아니었나!’
아까 짧게나마 검을 부딪쳤을 때, 어느 정도 실력을 파악했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어린 무인들은 한 번 한 번의 검에 모든 내력을 담는 경향이 짙으니까. 그런데 아까 보여주었던 실력이 다가 아닌 듯싶었다.
‘이거 얕보였군.’
“단장님!”
단유정이 신음성을 내뱉자 그의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부하들이 놀라 그를 불렀다. 그런 그들에게 단유정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경거망동 하지 마라!”
“예……. 예!”
단유정의 고함소리에 그들은 움찔하고 긴장 된 표정으로 있기는 했지만 자리를 지켰다.
‘이런 상대를 남한테 줄 순 없지. 하하하’
그는 속으로 고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호승심이었다. 절정이 넘어서는 순간부터 왜인지 목숨을 건 전투를 할 기회가 적어졌다. 그 때문에 지금 전투의 느낌은 참으로도 오랜만이었다.
단유정은 검을 쳐내고 빠르게 윤휘랑과 거리를 벌렸다.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거리. 상대의 검이 닿는 거리와 자신의 검이 닿는 거리. 그 거리의 교차점을 상대보다 먼저 찾는 것이 전투에서 가장 중요했다.
목숨을 건 전투에서 승패를 가르는 것은 누가 그 교차점을 먼저 찾아내는 것이냐. 그 하나였다.
두 사람은 그것을 알기에 서로를 신중하게 쳐다보았다. 처음엔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던 윤휘랑이긴 했지만 그 또한 지금 전투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감을 잡은 듯 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서서히 거리를 좁혀갔다. 서로 눈치를 살피던 그들은 어느 순간 잔상을 남기며 맞부딪혔다. 첫 일 검은 낙성검이란 별호가 아깝지 않게 단유정이 차지했다. 섬광과도 같은 그 빠르기에 윤휘랑은 눈이 아닌 본능으로 그 검을 막아냈다. 그의 간담이 서늘해졌다.
‘잘못했으면 어디 하나 구멍이 크게 났겠군.’
금속과 금속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빠르게 여러 번 들려왔다.
단유정의 검은 쾌검이었다. 그 날카로운 빠르기로 윤휘랑을 압박했다. 하지만 어째선지 윤휘랑의 표정은 여유였다. 두 사람이 검을 맞부딪혔다.
단유정이 이를 악물며 물었다.
“이거, 이거 젊은 친구가 대단하구먼. 나 같은 늙은이는 상대가 안 돼. 자네 같은 고수가 어디서 나타났는가?”
윤휘랑의 검은 자신의 검보다 무거웠다. 검의 무게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구사하는 검술의 차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빠르기를 추구하는 단유정은 시간을 끌면 불리했다. 단유정의 물음에 윤휘랑이 능글맞게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요. 그건 알려드릴 수 없군요.”
윤휘랑이 단유정의 검을 쳐내며 말했다. 단유정은 뒤로 거리를 벌리더니 보법을 밟아 윤휘랑의 뒤를 점했다. 윤휘랑은 반 바퀴 돌며 단유정의 검을 막아섰다.
‘역시 빠르군!’
여유롭게 막아선 것 같았지만 윤휘랑의 간담은 약간 서늘해져 있었다. 낙성검이란 별호가 아깝지 않게 그의 검은 빨랐다.
‘하지만 가벼워!’
하지만 빠르기를 추구한 만큼 중검을 사용하는 그에게 단유정의 검은 너무나도 가볍게 느껴졌다.
두 사람은 힘겨루기에 돌입했다. 당연히 그런 쪽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은 나이로 보나, 검술로 보나 윤휘랑 쪽이었다.
단유정 또한 힘겨루기를 하면 밀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빈틈……. 빈틈……. 빈틈!’
단유정은 눈을 굴려 윤휘랑의 빈틈을 찾아보았다. 이리저리 약점을 찾던 그는 윤휘랑의 하반신에서 그 약점을 찾아냈다. 살짝 불안해 보이는 왼쪽 다리. 단유정은 고소를 지었다.
‘미안하군, 젊은이. 강호란 냉정한 것일세.’
단유정은 그 약점을 향해 강하게 각을 내질렀다. 단유정이 승리의 미소를 지을 때, 윤휘랑이 미소를 지었다. 그런 그의 미소를 본 단유정의 표정이 불안해졌다.
단유정의 각은 확실하게 들어갔다. 그러나 윤휘랑은 버텼다. 다리에서 고통이 느껴졌지만 버텼다. 버팀으로써 오히려 균형이 흐트러진 것은 단유정이었다.
“크흡!”
단유정은 짧은 신음성을 내고 다시 균형을 찾으려 했지만 윤휘랑이 더 빨랐다. 검에 부딪혀 오던 힘이 줄어듦과 동시에 윤휘랑은 단유정을 검과 함께 ‘베었다.’
단유정의 검과 옷깃이 잘려나갔다. 살짝 피가 베어 나오기는 했지만 그 상처가 그리 심해보이지는 않았다. 일부러 윤휘랑이 그 상처를 깊게 베지 않으려 조절한 따름이었다.
단유정이 상처를 매만지며 물었다.
“어째서 목숨을 끊지 않았는가?”
단유정의 물음에 윤휘랑이 검을 어깨에 걸치고 말했다.
“일단 저는 싸울 마음이 없었고. 먼저 덤빈 건 낙성검 당신이 아니셨습니까?”
윤휘랑의 말에 단유정은 할 말이 없었다. 확실히 그의 말이 사실이었다. 윤휘랑이 말했다.
“저는 당신과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이 의뢰를 완수하고 어서 제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고 싶군요. 그러니 비켜주시겠습니까?”
윤휘랑은 조용히 이야기했다. 그런 그를 단유정이 말없이 바라보았다.
단유정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휘랑에게 패배해 정신적인 충격이 있기는 했지만 육체적으로 몸을 움직이는데 문제는 없었다.
단유정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자네랑은 적이 되고 싶지 않군. 알겠네.”
단유정의 말에 뒤에 있던 그의 부하들이 외쳤다.
“다……. 단장님!”
“조용히 하라! 자네들도 내 결정에 따라줬으면 좋겠군.”
단유정의 말에 부하들이 주춤거리다가 하는 수 없이 자리에 섰다. 그런 그들을 단유정이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보고는 다시 윤휘랑에게 시선을 돌리곤 말했다.
“자네 같은 자를 어떻게 망할 놈의 장현백이 설득했는지는 모르겠군. 장현백이 무얼 제안했는가?”
“그래도 조카딸이 옆에 있는데 그런 말씀은 좀 너무한 거 아니세요?”
단유정의 말에 연상화가 표정을 굳히고는 물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단유정이 말했다.
“글쎄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
“그…….그건.”
단유정의 물음에 연상화가 무어라 항변 하려 했으나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런 그녀를 뒤로하고 단유정의 물음에 윤휘랑이 조금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 금전적인 겁니다. 아무래도 객잔을 운영하면 직원들 월봉을 챙겨줘야 하니 그런 것에 민감하게 되더군요. 안 어울립니까?”
윤휘랑의 대답에 단유정이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큭큭 웃고는 말했다.
“솔직하군. 자네는, 하하. 상상도 못했다네.”
단유정의 대답에 윤휘랑이 살짝 얼굴을 긁적였다. 윤휘랑이 물었다.
“그렇다면 비켜 주시겠습니까?”
윤휘랑의 물음에 단유정이 잠깐 생각을 하더니 흔쾌히 대답했다.
“알겠네. 비켜주도록 하지. 그런데 도대체 저들은 왜 공격했는가? 내 처음에 자네를 불러 세운 것도 그 이유때문이네.”
단유정의 물음에 윤휘랑이 아직까지 끙끙거리고 있는 산적무더기를 슬쩍 보고는 대답했다.
“뭐, 간단합니다. 건협맹을 사칭한 허접한 녀석들이죠.”
“뭐라?”
윤휘랑의 말에 단유정의 표정이 굳어졌다. 가뜩이나 현재 맹의 소문이 좋지 않은 판에 이런 이들까지 설치고 다닌다면 평판은 땅을 기다 못해 파고들 것이었다. 단유정의 표정을 본 윤휘랑이 말했다.
“이들은 뭐, 알아서 하십시오.”
“고맙네.”
윤휘랑의 말에 쓰러져 있던 산적들의 표정이 썩은 사과처럼 변해갔다. 그런 그들을 뒤로하고 윤휘랑이 말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다음번엔 저희 객잔에 들려주시길. 제대로 식사를 대접하겠습니다.”
“꼭 그러도록 하지.”
칼을 겨눴던 상대에 대한 윤휘랑식의 예의였다. 상대는 그만한 예의를 갖출 만큼의 강자였다. 물론 자신이 이기긴 했지만 만약 단유정이 자신의 꾐에 빠지지 않았다면, 만약 자신이 버티지 못했다면 지는 것은 자신이었을 것이다.
단유정은 미소를 지으며 회답했다.
그렇게 윤휘랑 일행과 단유정 무리는 헤어졌다. 뒤에서 산적들의 비명이 들리는 것 같았지만 윤휘랑과 연상화는 무시했다.
연상화가 물었다.
“객주님. 어째서 저들을 죽이지 않았나요? 객주님께 건협맹은 적이 아닌가요? 어째서 식사초대를 한 것인가요?”
연상화의 물음에 말을 탄 상태에서 윤휘랑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무슨 소리야? 건협맹은 너희한테나 적이지 나한테는 적이 아니야. 난 낙성검이란 저 무인이 마음에 들었고 그와 맛있는 음식을 안주삼아 술이나 한 잔 했으면 좋겠다 싶었을 뿐이야.”
윤휘랑의 대답에 연상화가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의 의뢰를 받아들어 줬기에 당연히 윤휘랑 또한 건협맹을 적으로 인식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란다. 어째선지 그녀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그 기분을 떨쳐내기 위해 물었다.
“건협맹은 무고한 맹에 사람들을 죽였어요. 그런대도 나쁜 이들이 아닌가요?”
그녀의 물음에 윤휘랑이 물었다.
“그렇다면 너희들은?”
“예?”
윤휘랑의 물음에 연상화가 되물었다. 그런 그녀를 윤휘랑이 뒤돌아보며 물었다. 그의 시선이 어째선지 차가웠다.
“너희 정도맹은 사도련과 천마신교를 적으로 돌렸다고 들었어. 맞지?”
“예, 그들은 강호무림에서 살아져야 할 존재들…….”
“그렇다면 너희들도 그들의 목숨을 빼앗은 적이 있었을 거야. 특히 네 손으로 그런 적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맞지?”
윤휘랑의 물음에 연상화가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예…….예. 그렇죠?”
당연했다. 마교와 사도련의 적들을 연상화 자신의 손으로도 베어 넘긴 적이 있었다. 그런데 윤휘랑의 어투가 어쩐지 그녀를 껄끄럽게 만들었다.
그녀를 보며 윤휘랑이 말했다.
“그렇다면 너희들도 똑같은 존재 아닌가?”
“예……?”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되묻는 연상화를 보며 윤휘랑이 다시 말했다.
“네 손으로 죽인 신교나 사도련의 무인들 또한 그들 입장에선 무고한 사람들 아닌가?”
“……궤변이에요.”
윤휘랑의 말에 연상화가 손을 떨며 말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윤휘랑이 물었다.
“뭐가 궤변이란 거지? 강호에선 절대 악도, 절대 선도 없는 것 잘 알고 있지 않아? 이런 것은 강호 초출인 나조차도 잘 알고 있는 것인데.”
“궤변입니다. 마교와 사도련은 악이에요. 그것은 변하지 않아요.”
연상화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 그녀를 윤휘랑이 잠시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그래.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런 거겠지. 너에게 내 생각을 관철시킬 생각은 없다. 너는 네 생각을 가지고 살아라. 그럼 된 거다.”
“다른 사람도 저랑 똑같이 생각 할 거예요. 객주님이 이상한거에요.”
연상화의 말에 윤휘랑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더 이상 이 주제로 더 이야기해봤자 싸우기만 하겠구나. 그만하자.”
“……예.”
윤휘랑의 말에 연상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연상화 입장에서 그를 화나게 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기분 좋게 해야 했다. 그러니 굳이 이런 껄끄러운 주제로 토론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도 어째선지 그녀의 마음속 한 구석은 약간 찝찝했다.
-꼐속
- 작가의말
슬슬 소설이 산으로 가는 것 같다...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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