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왕성잠입
회의를 마치고 막사로 돌아왔다. 마커스가 눈치 빠르게 차를 가져와 내 앞에 내밀었다.
“저, 저기 총사령관님?”
“응? 마커스 왜? 무슨 할 말 있냐?”
“왕성으로 가신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함께 가면 안 되나요?”
마커스가 계속 나를 호종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위험해서 안 된다. 마커스, 너는 내일 그만 하이샌드영지로 돌아가라.”
“하, 하지만···”
사내자식이 눈물까지 글썽이는 걸 보니 정말 아쉬운 모양이다.
“영지로 돌아가기 싫으면 아사달에 가서 하벨 총리를 찾아가 일을 배워봐라. 너도 때가 되면 네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하이샌드 영지를 운영해야 할 테니 아사달에서 행정업무를 미리 배워두면 도움이 될 거다.”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래 내가 소개장을 하나 써 줄 테니까. 하벨 총리에게 보이면 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총사령관님”
마커스가 좋아하며 막사 밖으로 뛰쳐나간다. 일 시킨다는데 뭐가 저리 좋은 건지 모르겠다.
다음날, 나는 리갈 후작과 하이샌드백작이 가려 뽑은 40명의 기사들과 함께 레온왕국의 수도 레온성으로 말을 달렸다. 텔레포트로 바로 갈 수 있었지만 나만 먼저 가서 할 일도 없기에 이들과 함께 가기로 했다.
왕성까지는 밤낮으로 말을 달리면 8일이면 도착한다고 한다. 말과 사람들에게 힐을 써가며 5일 만에 왕성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자일론 자작 영지에 도착했다. 여기에서 하루 걸리는 거리에 왕성이 있다.
“지금 저희의 복장으로는 왕성에 들어가기 힘들 것 같습니다.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바로 수비대장 마이어 백작에게 보고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곳에서 말을 처분하고 변장을 하는 게 좋겠습니다.”
리갈 후작이 제안했다.
“알겠습니다. 일단 입고 있는 풀플레이트아머와 무기들은 모두 저에게 주세요. 제가 보관하다 나중에 다시 드리겠습니다.”
나는 기사들의 갑옷과 무기들을 모두 아공간에 넣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갑옷들이 한순간에 사라지자 기사 중 한 명이 딸꾹질했다.
딸꾹~
모두가 쳐다보자 무안한지 입을 두 손으로 가린다. 처음 보면 저런 현상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다. 예전 하레스상단 점원도 딸꾹질을 심하게 했던 기억이 났다.
나는 리갈 후작과 하이샌드백작, 그리고 40명의 기사에게 씨밍(Seeming) 마법을 걸어 본래 모습과는 약간 다르게 변장시켰다.
“어어, 하이샌드 백작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소”
“하하, 후작님도 모습이 변하셨습니다. 전혀 못 알아보겠습니다.”
모여있는 기사들도 자신과 동료들의 모습을 보면서 놀라기도 하고 서로를 가리키며 웃기도 하며 변한 모습을 눈에 익혔다.
“일단 이곳 자일론 영지에 군마들을 분산하여 맡겨 놓습니다. 절대 한 곳에 맡기지 말고 두세 마리씩 분산하여, 한 달 정도 맡기는 것으로 합니다. 그리고 모두 10개 그룹으로 나눠서 사람들 틈에 섞여 여행자로 위장하고 왕성으로 진입하겠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하루 쉬고 내일 출발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우선 군마부터 맡기고 옷도 평민 복장으로 하나씩 구해서 준비하도록 하시오.”
리갈 후작이 명하자 기사들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총사령관님. 아지트는 어디로 하는 게 좋겠습니까. 왕성에는 저의 저택도 한 채있고, 해리슨 공작님의 저택도 한 채 있습니다.”
“거긴 안 됩니다. 눈에 띄는 장소는 지양해야 합니다. 번화가와 좀 떨어진 곳으로 큼지막한 저택을 임대하세요. 내일 기사들이 바로 그쪽으로 갈 수 있도록 리갈 후작께서 먼저 왕성으로 들어가셔서 주택을 임대해 주세요.”
나는 아공간에서 1만 골드를 꺼내 리갈 후작에게 주었다.
리갈 후작은 기사 3명과 함께 먼저 왕성으로 떠났다.
이튿날, 우리는 전원 무사히 왕성 안으로 들어와 새로 임대한 저택을 아지트로 삼고 앞으로의 계획을 논의했다.
“먼저 5명이 한 팀으로 모두 8개 팀으로 구성하여 살생부에 오른 8명을 한 팀씩 24시간 감시하며 정보를 수집하도록 합니다.”
어디서 누구를 만나는지, 행동반경은 어떤지, 출퇴근 시간은 어떻게 되는지, 자주 가는 술집은 어디인지, 쓸데없는 것까지 면밀하게 관찰했다. 그러다가 평상시와 다른 행동을 보이면 바로 보고하게 했다.
“암살 작전은 언제 수행하실 생각입니까?”
리갈 후작이 물었다.
“우리의 본진이 네이트 백작 영지에 도달하려면 아직 3일이라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정보가 왕성까지 오려면 3일, 도합 6일 정도의 여유가 있습니다. 작전 수행은 앞으로 5일 후 밤에 실행하겠습니다.”
“하룻밤에 8명을 해치울 수 있을까요.”
하이샌드백작의 우려된다는 듯 물어왔다.
“가능합니다. 암살은 제가 직접 처리할 겁니다. 그들의 위치만 정확하다면 8명이 아니라 100명도 가능합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더 중요한 일이라면 무엇입니까?”
“그들이 제거된 다음 우두머리를 잃은 왕국기사단과 왕성 수비대를 우리가 접수해야 합니다. 그래야 왕성을 안정시키고, 왕성 밖으로 빠져나가는 모든 정보를 차단할 수 있습니다. 또한 매국노들과 그 가족 그리고 부역자들을 잡아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 조직들을 접수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말씀해 보세요”
리갈 후작이 나서며 필요한 것들을 언급했다.
“먼저 국왕 폐하의 명령서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재상 오스틴공작의 직인도 필요한데, 그 시점에서 오스틴공작은 죽고 없을 테니 일단은 폐하의 명령서만 있으면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국왕의 명령서만 있으면 되지 왜 재상의 허락이 필요한 것인가요?”
“그, 그것이 폐하께서 임의대로 인사를 단행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쳐 죽일 놈들이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자기들이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 권력을 주지 않기 위해 만들어 놓은 장치입니다.”
“흠, 그리고 또 필요한 것이 있습니까?”
“일단은 폐하의 명령서만 있으면 됩니다만 콜튼후작의 왕국기사단과 마이어 백작의 왕성 수비대 내의 추종 세력들은 폐하의 명령서를 거부할 우려가 있습니다.”
“그자들은 그 자리에서 모두 목을 자르십시오. 모두가 보는 앞에서 국왕의 명을 거역한 반역 행위임을 밝히시고 바로 목을 치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모두에게 알려야 합니다. 일단 레온의 국왕은 제가 만나서 명령서를 받아오겠습니다.
리갈 후작이 기사단을 맡으시고 하이샌드백작이 왕성 수비대를 접수하시기 바랍니다. 작전일 다음 날 아침 바로 두 조직을 접수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총사령관님”
두 사람이 일제히 대답했다.
나는 40명의 기사를 5명씩 8개 팀으로 나눠서 각자의 타깃을 정하고 24시간 원거리 감시체계를 가동했다. 작전일 밤에 각 타깃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으면 된다.
그것을 알기 위해 지금부터 감시를 시작하는 것이다. 암살은 내가 직접 할 것이다. 죽이는 거야 1분도 안 걸리지만 나는 아주 천천히 고통을 주면서 죽일 것이다. 매국노들에게 절대로 자비를 베풀지 않을 생각이다.
2일이 지나고 3일째 되는 깊은 밤,
나는 투명마법을 걸고 레온왕궁에 침입했다. 모두가 잠든 밤이기에 보초 서는 병사들과 기사들만 두 눈을 부릅뜬 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왕궁은 규모가 상당하고 건물이 많아 아무 정보 없이 들어오면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 길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리겔 후작에게 대충 국왕의 처소가 어디인지 듣고 왔던 터라 헤매지 않고 국왕 처소로 침입할 수 있었다.
국왕의 침실 문 앞에는 기사 두 명과 시녀로 보이는 2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국왕이 잠들 때면 항시 저러고 있는다고 한다.
“슬립, 슬립, 슬립, 슬립”
쿠당탕! 쿠당탕! 쿠당탕! 쿠당탕!
4명이 거의 동시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나는 침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후아킨 국왕은 올해 60세로 10년 전에 왕비를 먼저 저세상으로 떠나보내고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혼자 넓은 침실에서 자고 있었다.
나는 방안의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 마법을 걸었다. 그리고 후아킨 국왕에게 다가가 그를 깨웠다.
톡! 톡!
그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두 번 두드렸다. 누가 보면 기절할 일이겠지만 나의 왕도 아닌데 아무렴 어떠냐. 그리고 작긴 하지만 나도 한 나라의 왕이라면 왕인 군주 신분이다.
“으음···.”
후아킨 국왕이 슬그머니 눈을 떴다. 그리고 나를 보더니 깜짝 놀라며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운다.
“누, 누구냐?”
나는 빙그레 웃음 지으며 후아킨 국왕의 침실에 걸터앉았다.
“나는 아사달의 군주, 강철민이라고 합니다.”
“아사달의 군주? 헉!! 그, 그대가 진정 아사달국의 군주란 말이오?”
처음엔 잠이 덜 깼는지 못 알아먹더니 바로 생각해 내고는 깜짝 놀라며 내 얼굴을 쳐다본다
“그렇습니다. 레온의 국왕 폐하”
“아, 아 내가 말씀을 많이 들었소. 이번 전쟁도 군주께서 도와주셔서 침략자들을 몰아냈다는 것도 몰래 보고받았소. 내, 내가 군주께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소. 정말 고맙소.”
후아킨 국왕이 갑자기 내 손을 덥석 잡더니 눈물을 글썽이며 고마움을 전해왔다.
“폐하, 오늘 제가 이리 무례하게 찾아온 것은 아무도 모르게 요청할 사항이 있어서입니다. 그것은···”
나는 후아킨 국왕에게 그동안의 일들과 앞으로 행하게 될 계획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나의 설명을 듣던 후아킨 국왕은 감정이 복받쳐 오는지 연신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분노하는 듯 얼굴을 붉히기도 하면서 내 말에 한 단어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집중하며 경청했다.
“내가 리갈 후작을 왕국기사단장으로 임명하고, 하이샌드백작을 왕성 수비대장 자리에 임명한다는 명령서만 써 드리면 되겠소?”
후아킨 국왕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침실 옆 탁자에 앉아 명령서를 작성하고 자신이 항상 가지고 다니는 직인을 찍어서 나에게 주었다.
나는 침실을 빠져나오기 전에 후아킨 국왕에게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암살에 대비하라고 일러줬다.
“폐하, 앞으로 2일 후 밤부터 그다음 날 아침 우리가 올 때까지는 그 무엇도 먹으면 안 됩니다. 심지어 물도 먹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이거 가지고 계세요”
“이것이 무엇이오”
“혹시나 몸에 이상이 있거나, 상처가 나면 빨리 그것을 먹으십시오. 포션보다 10배는 뛰어난 귀한 열매입니다.”
“이 귀한 것을 나에게 줘도 되겠소?”
“일단 이 모든 일들은 국왕께서 건강하게 살아있어야 가능한 것들입니다. 그러니 마음 단단히 먹고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계세요”
“알겠소. 내 아사달 군주의 말에 따르리다. 고맙소.”
후아킨 국왕과 만남 후, 나는 바로 왕궁을 빠져나와 아지트로 돌아왔다.
리갈 후작과 하이샌드백작이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내 모습이 보이자 급히 보고했다.
내가 왕성에 간 사이 타깃들의 이상 움직임이 포착되었다고 한다. 오스틴공작을 비롯하여 빈센트 후작, 네이트 백작, 웨일론 백작 네 사람이 급하게 회동했으며, 현재도 만남이 계속되고 있다는 급보였다.
아마도 왕세자의 본대가 해산하지 않고 네이트 백작 영지에 침입하여 전투 준비한다는 정보가 전해진 것 같았다.
“예상보다 빠르게 보고가 올라왔군요. 저들의 정보망이 상당히 뛰어난 것 같습니다.”
리갈 후작이 근심 어린 표정으로 답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빨리 보고가 올라올 줄은 몰랐습니다.”
“어쩔 수 없겠네요. 작전을 변경합니다. 오늘 밤 타깃들을 모두 암살하겠습니다.”
“헉!! 오늘 밤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시간을 끌 필요 없습니다. 저들은 오늘 밤 회담을 통해 뭔가 결론을 낼 것입니다.
더 시간을 끌다가 분산된 적들이 한곳으로 모이게 되면 그만큼 아군의 희생이 커질 수 있습니다.
그 전에 결정권자들을 모두 죽여버리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두 분은 지금 즉시 왕국 기사단과 왕성 수비대를 접수할 준비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네, 알겠습니다. 총사령관님”
리갈 후작과 하이샌드 백작이 동시에 대답했다.
“작전 개시는 내가 왕국기사단장 콜튼후작과 왕성 수비대장 마이어 백작을 암살하는 즉시 치고 들어갑니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콜튼후작은 자택에 있고, 마이어 백작은 애인의 집에 머물고 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회담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리갈 후작이 말에 나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아쉽군요. 회담에 참여했다면 한 번에 처리할 수 있었는데···쩝”
“살생부의 순서는 어떻게 정하실 생각이십니까? 총사령관님”
“가장 먼저 처리할 놈들은 지금 회담하는 놈들입니다. 회담이 끝나기 전에 처리 못하면 결정된 사항이 외부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놈들이 회담하고 있는 장소는 어디인가요?”
“오스틴공작의 저택입니다.”
“나는 바로 오스틴공작의 저택으로 출발하겠습니다. 두 분은 내가 콜튼후작과 마이어 백작을 죽였다는 소식을 들으면 바로 행동에 옮기시되, 백작께서는 왕성 수비대가 접수되는 대로 가장 먼저 동서남북 4대문을 모두 걸어 잠그고 그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왕성 내의 일이 밖으로 알려지면 그만큼 혼란이 가중될 수 있습니다.”
“목숨을 걸고 사수하겠습니다.”
하이샌드백작의 음성에 결의가 엿보였다.
“후작께서는 기사단을 접수한 후 국왕이 계시는 왕궁 내에 매국노 세력과 조력자들을 모두 잡아드리고 후아킨 국왕의 안전을 확보하시기 바랍니다. 이후 왕성 경비대에서 병력을 차출하여 왕성 내에 있는 매국노 세력들을 모두 잡아 들이세요.”
“명 받들겠습니다. 총사령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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