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여기사를 생포하다.
“정말입니까? 정말로 290개 2등급 마나석을 가지고 계신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총사령관님 저에게 파십시오. 가격을 2배로 아니 3배로 드리겠습니다.”
로엘 후작이 후작이라는 권위도 던져버리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장사꾼으로 변했다.
“글쎄요. 팔기는 좀 그렇고, 다만 마지막으로 드리는 제 의뢰를 받아주신다면 생각해 보겠습니다.”
“무엇입니까? 그 의뢰가? 할 수 있다면 뭐든지 다 하겠습니다.”
“포션을 만들 수 있는 마법사를 아사달에서 고용하고 싶습니다.”
“포션이요? 어떤 포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
‘포션이 포션이지 어떤 포션이라니? 종류가 따로 있나?’
옆에 있던 클라리나가 친절하게 설명을 해 준다.
“포션도 종류가 있답니다. 상처를 치료하는 힐링포션, 체력을 높이는 체력포션, 근력을 높이는 근력포션, 그리고 마나회복 속도를 높이는 마나포션이 있습니다.”
“종류가 그렇게 많습니까? 그것들을 만드는 재료는 뭡니까?”
나는 클라리나를 보며 물었다.
“힐링포션는 트롤의 피와 심장 일부를 사용하여 만들고요, 체력포션과 근력포션의 오우거의 심장을 비롯한 부산물로 만듭니다. 그리고 마나포션은 트롤의 뇌와 심장을 주재료로 만들어집니다.”
“그렇군요. 그래서 마탑에서 트롤과 오우거를 경쟁적으로 사 가는 것이었군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총사령관님께서 포션을 만드는 마법사를 고용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트롤과 오우거의 사체가 없으면 마법사들은 있으나 마나 한 존재일 뿐입니다.”
클라리나는 마치 트롤과 오우거의 사체는 있냐는 듯 내게 물었다.
“아직 모르셨군요. 아사달에 있는 뉴라이프 상단과 대형몬스터 경매소의 실질적인 주인이 접니다.”
“네에에?”
클라리나가 놀랐는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는 쳐다봤다.
“허허... 이제야 좀 알겠습니다. 몬스터 사체에 상처 하나 나지 않았던 게 모두 총사령관님이 사냥하셨던 거군요.”
로엘 후작이 모든 걸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지금까지 모든 마탑에서 가졌던 의문이 풀렸다. 누구도 풀지 못했던 숙제인데 단 한 사람을 끼워 넣으니 바로 풀려버렸다. 그러나 그것은 로엘 후작만 아는 사실인지라 다른 사람은 설명해줘도 믿지 않을 것이다.
“맞습니다. 로엘 후작님. 트롤과 오우거의 사체 문제는 해결된 듯한데 어떻게 마법사들을 보내 주시겠습니까?”
“당연히 보내드려야지요. 한데 그러면 경매소는 이제 안 하실 겁니까?”
“저희가 자체적으로 포션을 만들게 되면 트롤과 오우거는 판매가 힘들겠지만, 경매소는 계속할 겁니다. 미노타우노스와 드워프제 미스릴 장비, 그리고 오우거와 트롤의 가죽과 뼈로 만든 갑옷과 무기류들을 전문으로 취급할 겁니다. ”
“그렇군요. 그러면 아사달에서 직접 포션을 유통하실 생각이신지요?”
“아무래도 그리되지 않겠습니까?”
내 말에 로엘 후작이 긴장했는지 말까지 더듬으며 물어온다.
“호, 혹시, 혹시 말입니다. 총사령관님, 저, 저기···”
로엘 후작은 심하게 말을 더듬거리기만 할 뿐 뒷말을 잇지 못했다.
“포 ,포션 유통권을 저, 저희 마탑에 주십시오. 총사령관님”
보다 못해 곁에 있던 클라리나가 용기 있게 말을 한다. 근데 자신도 긴장했는지 말을 하고서 두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전체 포션 유통권이라 한다면 상당히 큰 이권 사업이다. 한 달에 수만 병이 만들어질 텐데, 유통마진 10%~15%만 붙여도 수십만 골드에서 백만 골드 이상을 벌어드릴 수 있는 이권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 아사달은 도매만 할 뿐, 직접 유통은 하지 않는다. 그것이 원칙이다. 그러니 어차피 포션을 유통해 줄 누군가를 찾긴 찾아야 한다.
마치 나의 처분이라도 기다리고 있는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할아버지와 손녀,
“뭐, 그럽시다. 대신 마법사들의 고용 비용은 모두 마탑에서 책임지셔야겠습니다.”
“캬아악!!!”
클라리나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나에게 안겨 왔다. 내 가슴을 꽉 끼어 안고 좋아서 방방 뛴다.
클라리나의 뭉클한 가슴이 내 몸에 비벼지며 정신이 아찔해져 왔다.
‘뭐, 뭐냐? 이 여자. 왜, 왜 이러는 거야···컥!···좋구나!!”
“어어어··· 왜, 왜 이러십니까.클라리나양이러시면 안되는데···”
“저, 정말이십니까. 총사령관님, 정말 저희 마탑에 유통권을 주신다는 게 정말이십니까?”
‘이 노인네가 자기 손녀가 외간 남자에게 안겼는데 떼어낼 생각은 안 하고 그깟 유통권이 뭔 대수라고 정신을 못 차리는 거야. 에잉 몰라 나만 좋으면 되는 거지..커험’
클라리나는 아직도 방방 뛰고 있다. 그럴 때마다···.
좀 시간이 지나자 클라리나가 정신을 차렸는지 화들짝 놀라며 나에게 떨어졌다. 얼굴은 홍시가 되어 어쩔 줄 몰라 하더니 뒤돌아 뛰어서 도망쳐 버렸다.
로엘 후작은 달려가는 손녀를 한번 바라보더니 계면쩍은지 실소를 짖는다.
“허허···”
나도 좀 쑥스러워서 자리를 빨리 피하고 싶었다.
“이 전쟁이 끝나면 마법사들을 아사달로 보내주세요. 각 분야별로 전부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이를 말립니까. 서로 가려고 난리가 날 것 같습니다. 전쟁이 끝나는 대로 바로 실력이 좋은 자들로 선별하여 보내겠습니다. 허면 마나석은···”
나는 아공간에서 남은 마나석 291개를 땅바닥에 쏟아냈다.
“헉!!”
땅바닥에 수북하게 쌓인 2등급 마나석을 보며 로엘 후작이 기겁한다.
“대금은 아사달의 뉴라이프 상단 아이린 회장에게 전해주시면 됩니다.”
“아, 알겠습니다. 총사령관님”
“그럼 전 이만 가 볼게요”
로엘 후작과 헤어진 나는 다른 훈련 장소들을 한 번씩 둘러보고 해 질 무렵이 돼서야 막사로 돌아왔다.
깊은 밤,
아주 화려하진 않지만 산뜻하게 꾸며진 침실에 한 여인이 잠들어 있다.
티끌 하나 없는 아름다운 얼굴은 다소 고집스러워 보이는 지적인 미가 흘러넘쳤다. 양 볼에 나타나는 앙증맞은 보조개는 뭇 사내의 가슴을 방망이질 치게 하기에 충분한 절세의 미녀였다. 대리석을 깎아 놓은 듯 쭈욱 뻗은 팔과 다리는 너무나 관능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검은 손이 튀어나와 곤히 잠든 여인의 가슴으로 향한다. 그리고 부드럽게 여인의 가슴을 감싸 쥐었다.
“으으음”
여인이 엷은 신음을 내며 눈을 뜨지도 않은 채 팔을 들어 검은 그림자의 목을 끌어안았다.
“오빠 왔어?”
“뭐야, 이제는 놀라지도 않네. 재미없어”
“풋~,어디 한두 번이어야 말이지”
“어~그래? 우리 여왕님을 놀라게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아잉~ 뭐야~.”
나는 아이린의 침대에 뛰어들어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 그리고 급하게 옷을 벗으며 그녀의 몸을 힘껏 끌어안았다.
“너무 보고 싶었어. 아이린”
“나도 오빠, 너무 보고 싶었어요. 사랑해요~”
‘어휴, 오늘 낮부터 참느라고 죽는 줄 알았다’
“아아아아~ 아아아~”
그날 밤 나는 아이린의 방에 몰래 텔레포트로 들어가 그녀와 뜨거운 밤을 보낸 후, 아침이 되어 다시 지르크산맥 내 막사 안으로 돌아왔다.
마커스가 가져온 아침 식사를 간단하게 하고 막사 밖으로 나오자 왕세자를 포함 한 모든 귀족이 모여 있었다. 어제는 왕세자와 몇몇 귀족만이 내가 자이르왕국 소드마스터를 죽이는 것을 봤다면, 오늘은 모든 귀족과 성벽 위에 수만 명의 병사가 구경꾼으로 나온 것이다.
왕세자가 자기 백마를 손수 끌고 오더니 나에게 넘겼다.
“오늘도 먼진 활약 기대하겠습니다. 총사령관님”
“네,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별말 없이 말에 올라타고 토성을 천천히 내려왔다. 뒤에서는 수만의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결투장에 나가는 투사를 응원하고 있었다.
적의 진지 앞에 도착하여 어제와 마찬가지로 확성마법을 시전하고 도발을 시작했다.
“야!! 이놈들아, 어제처럼 실력도 없는 개 병신들 보내지 말고 진짜 실력 있는 놈 나와봐라. 진짜 자이르왕국에는 실력이 있는 소드마스터가 없는 것이냐. 내가 볼 때 너희들은 소드마스터가 아니다. 우리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도 너희보다 잘 싸우겠다. 이놈들아!! “
내가 갖은 욕설을 하면서 도발하자 자이르왕국 병사들이 야유를 보내기 시작했다.
“우우우우~~, 우우우우~~”
반대로 산성 위에서는 레온왕국의 병사들이 하늘을 찌를듯한 사기로 무장한 환호성을 질러 댔다.
“우와와와와~~~~ 우와와와~~”
나는 다시 큰 소리로 도발했다.
“그리고 너희 진영 소드마스터 중에 웬 계집년이 한 명 있다고 하던데, 여자가 무슨 소드마스터냐? 힘이나 쓰겠냐. 엉? 돈 주고 딴 거냐? 아님 몸 팔아서 딴 거냐? 이리 나와봐라 내가 오늘 내년이 진짜 실력으로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건지 아님 헛짓거리로 오른 건지 확실히 보여주마”
나는 제시카 백작에 대한 도발을 시작했다. 좀 과하기는 하지만 전쟁판에서 상대를 도발하기 위해서는 좀 자극적인 말로 상대의 자존심을 뭉갤 필요가 있다.
나의 계속되는 도발에 제시카 백작이 자기 애마를 타고 투구 사이로 흘러내린 갈색의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뛰쳐나왔다. 나와 50m의 간격을 두고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다. 투구 속에 감춰진 눈에서는 섬뜩 이는 안광이 보일 만큼 분노하고 있는 듯했다.
“어이, 뭘 그렇게 흥분하고 그래, 곧 뒈질 년이”
“이이익~~”
제시카 백작이 등 뒤에서 봉들을 빼내더니 결합하며 나에게 말을 몰아 달려들었다.
‘창?’
제시카 백작은 칼이 아니라 창을 무기로 사용하고 있었다.
창을 빙빙 돌리며 오러를 불어넣자 창끝에서 마치 불타오르는 듯한 붉은 오러가 4m 높이로 이글이글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의 몸을 꿰뚫어버릴 듯 빠른 속도로 찔러 들어왔다. 갑자기 창날이 붉게 타오르는 수백 개의 창날로 분리되더니 모두 나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찔러 들어왔다.
나는 라쿤을 뽑아 들면서 말했다.
“라쿤 저 여자는 죽이면 안 돼. 그냥 목숨 줄만 붙여 놓기만 해줘”
우우우웅~
라쿤의 짧은 응답과 함께 나는 라쿤을 휘둘러서 날아오는 창날들을 쳐냈다.
챙!챙!챙!챙!···.체제제제챙!······
라군의 보이지 않은 5가닥의 촉수들이 날아오는 붉은 화염의 창날들을 막아냈다. 더러는 라쿤의 방어를 뚫고 쉴드에 부딪치는 창날도 있었다.
텅! 텅!
하지만 그 숫자는 많지 않았다. 수백 개의 화염의 창날을 막아내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제시카 백작은 영리했다. 나와의 거리를 좁히지 않고 오직 창끝이 닿을듯한 거리를 두고 계속 공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나와 라쿤은 그 모든 공격을 다 막아냈다. 20여 분간 폭발적인 공격을 가하던 제시카 백작이 지쳤는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공격을 멈췄다.
“헉, 헉..”
나는 라쿤을 어깨에 척 걸치며 제시카 백작을 비웃듯 쳐다보면서 말했다.
“고작 그 정도냐? 그 정도로 소드마스터라고 할 수 있는 거냐고? 너 진짜 소드마스터 아니지? 그런 실력으로는 우리 집 개도 못 이기겠다. 이년아”
내 도발에 드디어 제시카가 이성을 잃은 듯 소리를 지르며 긴 창을 꼬나 쥐고 나에게 파고들었다.
“으으으으아아아~~”
내가 기다리던 기회였다. 나는 파고드는 제시카의 창끝을 살짝 몸을 틀어 비켜내며 그대로 라쿤으로 제시카의 창대를 후려쳤다.
캉~
엄청난 굉음과 함께 제시카가 손에서 창을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그 반동으로 몸이 앞으로 숙여졌다. 그 찰나의 시간에 제시카는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 들며 나의 심장을 향해 찔러왔다.
라쿤이 찔러 들어오는 제시카의 칼을 쳐내자 칼이 박살이 나면서 사방으로 파편이 비산 했다.
꽝~
“캬아악~~”
그리고 라쿤의 촉수가 제시카의 온몸을 난도질했다. 양팔과 양다리 그리고 복부를 그대로 뚫어버린 것이다. 제시카는 비명을 지르며 말에서 떨어져 땅을 굴렀다. 붉어진 눈빛만 투구 속에서 나를 노려볼 뿐 몸의 움직임은 전혀 없었다.
나는 말에서 내려 제시카 백작에게 다가가 마법을 시전했다.
“슬립”
제시카 백작의 붉은 눈이 감겼다.
“미안 제시카, 내가 말이 좀 심했지? 하지만 널 얻기 위해서는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잠시 자고 있어라.”
나는 라쿤을 높이 쳐든 후 제시카의 목 옆 땅에 새게 박았다. 멀리서 사람들이 보면 내가 제시카를 죽이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우우우우우우~
우와와와~
한쪽에서는 야유가, 한쪽에서는 함성이, 서로 엇갈리는 상황이 연출 되고 있었다.
나는 제시카 백작을 들어 그녀가 탔던 말 등에 얹혔다. 제시카가 사용하던 창도 아공간에 넣었다.
그리고 나도 백마 위에 타고 제시카 백작의 말을 끌고서 산성으로 돌아왔다. 산성 안으로 들어오는 내내 병사들의 함성이 끊이지 않고 계속 울려 퍼졌다.
“총사령관님”
“총사령관님, 수고하셨습니다.”
“총사령관님 최고입니다. 하하하”
내가 산성 안으로 들어오자 모든 귀족이 뛰어나오며 나를 반겼다.
왕세자와 해리슨 공작이 다가와 내 말과 제시카 백작의 말의 고삐를 잡았다.
“그 여자 아직 안 죽었으니까 의무실에 데려다 놓으세요. 이따가 내가 좀 볼게요”
“네, 총사령관님.”
해리슨 공작이 힘차게 대답하더니 기사들을 시켜 제시카 백작을 의무실로 옮겼다.
왕세자가 의아한 듯 나에게 물었다.
“제시카 백작은 죽이지 않으시는 겁니까?”
“네. 제가 쓸 때가 있어서 일부러 죽이지 않고 사로잡은 겁니다. 더 이상 레온왕국에는 해를 가할 수 없을 테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총사령관님의 뜻이 그렇다면 받아들이겠습니다. 아무튼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혹시 내일도 나가실 겁니까?”
“나가야지요. 저놈들이 분노에 눈이 멀어 물불 안 가리고 싸우려 들 때까지 자존심을 무너뜨릴 겁니다.”
“후아. 총사령관님은 저희한테는 엄청난 복입니다만 적에게는 정말 지옥에서 온 악귀나 다름없겠습니다. 하하하”
“제가 악귀로 보이나요. 왕세자님?”
“에이, 말이 그렇다는 거지요. 총사령관님도 참.”
“하하하··· 농담입니다. 왕세자님”
막사로 돌아온 나는 간단하게 손과 얼굴을 씻고 마커스가 가져온 차를 한잔 마셨다.
마커스는 요새 나를 마치 신처럼 떠받치고 있다. 전쟁이 끝나도 나를 따라서 아사달로 가고 싶다고 지 아버지에게 떼를 쓴다고 한다. 하이센스 백작이 나를 찾아와 데려가 주십사 요청하기에 그러라고 했다. 마커스를 어디다 써먹을지도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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