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드디어 사람을 만났다.
데스산맥에 진입한 지 2달만에 무사히 산맥을 넘었다.
데스산맥은 평균 고도가 10,000m가 넘어 숨쉬기도 곤란했다. 특히 밤낮을 가리지 않고 눈보라가 몰아쳤다. 1년 내내 눈이 쌓이다 보니 허리까지 눈이 차올라 걸어서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거센 눈보라 때문에 플라이(Fly) 마법으로 하늘을 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리고 추위도 무시 못했다. 해가 없는 밤에는 영하 30도를 넘나들었다.
나는 낮에는 플라이(Fly)마법으로 눈보라를 이겨내며 천천히 이동했으며, 밤에는 눈 속을 파고 들어가 추위를 피하며 야영을 했다.
산을 넘고 또 넘고 계속 넘었다. 끝도 없이 펼쳐진 설산을 하나씩 하나씩 넘으면 또 다른 설산이 앞을 가로막고 서있다. 어느 순간부터 몸도 마음도 지쳐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났을 때 내 눈에 환각을 보이기 시작했다. 데스산맥에는 그 어떤 생명체도 살지 못한다. 이렇게 365일 내내 눈보라가 치고 밤에는 영하 30도를 넘나드는 곳에서 어떤 생명체가 살 수 있겠는가.
그런데 내 눈에 거대한 거인들이 눈 밭을 뛰어다니고 산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모습이 보였다. 몸과 마음이 약해져서 헛것이 보인다고 생각했다.
“두리안, 내 눈에 자꾸 헛것이 보이는 것 같아”
“뭐가 보이는데요. 주인님”
“하얀털로 뒤덮인 거인 같은 놈들이 자꾸 보이네”
“지금도 보이세요?”
“응, 저기 산 중턱에서 나를 보고 서 있어”
두리안이 내가 가리키는 곳을 보더니 소리 질렀다.
“어? 저도 보이는데요?”
“뭐? 너도 보인다고? 그럼 헛것이 보이는 게 아니네. 저것들 도대체 뭐야? 이런 곳에서도 생명이 살 수 있는 거야?”
“저도 잘 모르겠어요. 기록에도 저것들에 대한 내용은 없어요. 주인님”
그들의 모습은 온몸이 하얀 털이 뒤덮여 있었고, 키는 4m 정도 되어 보였다. 얼핏 판타지에 나오는 예티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봤는데 아무리 예티라고 해도 이런 조건에서 살 수 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추위는 그렇다 쳐도 먹을 것을 구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저것들 어떻게 하실 거예요? 사냥하실 건가요?”
“아니, 힘들어서 그럴 여력도 없어, 그리고 따라오기만 하지 공격 할 의사가 없어 보이잖아. 저러다 말겠지 뭐”
솔직히 플라이(Fly)를 유지 하는 것 만으로도 벅차다. 거센 눈보라를 뚫고 가야 하기에 평소의 1.5배 정도 마나를 소모하고 있다. 현재 마나 총량으로 40분까지 비행할 수 있으나 두리안의 의견에 따라 20분 비행하고 1시간 쉬는 방법으로 하루 6번 비행을 한다. 이동 거리는 하루 70km 정도 될 것 같다.
나는 흰색 거인들을 무시했지만, 그놈들은 계속 따라왔다. 속도는 나보다 훨씬 빨랐다. 그렇게 2주 정도를 따라오다 어떤 큰 설산을 넘어서고는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다. 아마도 자신들의 영역에 들어온 나를 경계했던 모양이다.
그 후, 변함없이 반복되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드디어 데스산맥의 끝자락에 서 있다.
2달만에 데스산맥을 넘어온 것이다. 아래 보이는 풍경은 설산이 끝나고 푸른 숲과 강물이 흐르는 풍경이다. 이제 저 우거진 산만 넘어가면 어딘가에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 있을 것이다. 프리실란드 대륙으로 넘어온 지 1년 5개월만에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 올 수 있었다.
“두리안 우리가 드디어 데스산맥을 넘었구나”
“네. 주인님 우리가 넘었어요. 흑흑···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주인님”
“그래 두리안 오늘 만은 마음껏 울어보자···흑흑”
내 눈에서도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지금까지 고생하던 기억이 한순간에 밀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나와 두리안은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두리안 이제부터 시작이야. 꿈을 이루기 위한 첫 발을 여기서부터 내 딛는 거야”
“네..주인님. 저도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고마워. 그리고 아공간에 있는 물품들 재고 현황 좀 보여줄래?”
“네..주인님”
두리안은 지금까지 아공간에 보관되어 있던 모든 물품의 리스트를 시스템 창으로 정리하여 보여주었다.
[아공간 리스트]
오우거 (163)
트롤 (198)
미노타우노스 (750)
오우거가죽(1)
트윈헤더오우거 (1)
레드 드레이크 (1)
미노타우노스(카세이돈) (1)
레드 와이번 (1)
샤벨타이거 가죽, 뼈 , 이빨(250)
실버울프 가죽 (35)
아울베어 가죽 (350)
회색늑대 가죽 (640)
회색곰 가죽 (32)
거대멧돼지 가죽 (220)
레비탄 가죽 (840,000)
감자 (110)
고구마 (200)
하마베 (5,400)
옥수수 (1000)
금강석 (196)
금 (2t)
큰뿔사슴고기 (2,200kg)
샤벨타이거 고기 (1,660kg)
회색곰 고기 (420kg)
회색늑대고기 (4,300kg)
거대멧돼지 고기 (1,700kg)
미노타우노스 고기 (300kg)
배낭
등산복 상.하의
등산화
드래곤의 알
“흠···많긴 많구나”
“이제 이것들을 처분할 방법을 생각해야 해요”
“상인들과 만나봐야겠어, 아니면 우리가 상단을 만들던지”
“네. 이윤을 많이 남기려면 상인이 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응. 생각해 보자”
나는 데스산맥을 내려와 숲으로 들어섰다. 데스산맥과 연결되어있는 이 숲도 상당히 넓어 보였다. 이틀을 이동했는데도 아직 끝이 보이지 않는다. 마나 충전을 위해 지상에 내려와 있을 때는 두리안과 숲 길을 걸으면서 숲의 이곳 저곳을 살펴보았다.
“이 숲은 그렇게 위험해 보이지 않아. 대형몬스터도 없고 가끔 중형몬스터가 한두 마리 보이는 게 전부네”
“네..아무래도 인간들이 사는 곳이라서 위험한 몬스터는 많지 않은 거 같아요”
“이곳은 지금 여름인 것 같다. 무척 덥네. 나도 옷을 갈아입어야겠어”
두꺼운 회색늑대가죽 옷을 벗고 다시 등산복으로 갈아입으려 할 때 멀지 않은 곳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아아악, 사람 살려, 살려주세요~
사람 말소리였다. 틀림없이 인간의 말이었다.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급히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뛰어갔다.
도착해서 보니, 키 2m가 넘어 보이는 초록색 피부의 오크 한마리가 왜소한 체구의 남성에게 몽둥이를 휘두르려 하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달려가 오크의 턱에 주먹을 날렸다.
-끄아아악···
오크는 뒤로 10m를 날아가 나무에 부딪히며 그대로 즉사해 버렸다. 나는 엎드려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남자를 보았다. 남자도 나를 보았다.
“끄어헉, 고, 고,곰이다···.흑흑”
남자는 나를 보고 오크 때보다 더 사색이 되어 울기까지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내 행색은 딱 곰의 모습이다. 얼굴은 온통 수염과 구래나룻으로 인해 검은털로 뒤덮여 있고, 몸은 회색늑대가죽옷을 입고 있어 회색털이 온몸을 덮고 있었다. 거기에 덩치는 키 185에 통통한 몸매까지, 누가 봐도 곰의 모습인 것이다.
“누가 곰이라는 거야?”
내 말에 남자는 더 사색이 되어 말을 더듬었다.
“고, 곰이 말을 한다..으으으”
“이 양반이 지금 누구 놀리나? 기껏 구해줬더니 한다는 소리가 곰이라는 소리야?”
“헉···.사, 사람이십니까?”
“그럼 내가 사람이지 곰이야?”
내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남자는 찔끔 거리더니 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덥석 무릎을 꿇더니 절을 계속 해 대기 시작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살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용사님···흑흑”
남자는 내가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자, 살았다는 안도감에 계속 절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만 울어요. 겁 많아 보이는 사람이 이런 위험한 곳을 왜 들어왔어요?”
“그, 그게 먹을 것이 없어서 산나물이나 열매라도 따려고 왔습니다.”
“한 겨울도 아닌데 먹을 것이 없다니 이거 참···.”
“매년 이맘때가 되면 항상 먹을 것이 떨어져서 굶습니다. 이렇게 위험을 무릎 쓰고 산에서 열매나 먹을만한 약초라도 구해야 먹고 살 수 있습니다.”
“보아하니 농사짓는 사람 같은데 작년에 수확한 곡식이 벌써 다 떨어졌다고?”
“곡식을 수확해 봤자, 다 빼앗아 갑니다. 세금이다 뭐다 해서 다 가져가는 바람에 마을에 먹을 것이 없습니다···흑흑”
“허···이게 뭔 개소리인지 모르겠네. 그건 그렇고 그쪽 이름이 뭡니까?”
내가 대뜸 이름을 물어보자. 남자는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었다.
“크, 클레인 마을의 스미스라고 합니다.”
“스미스씨···나는 강철민이라고 합니다. 아무튼 반갑습니다.”
“네..반갑습니다. 용사님”
“난 용사가 아닙니다.”
“하,하지만 오크를 한주먹에···.”
“약한 오크 따위를 한주먹에 잡으면 다 용사랍니까?”
“그, 그건···”
“클레인마을이 여기서 가까운가요?”
“네···.저기 보이는 산만 넘으면 바로 그 아래가 클레인마을입니다.”
“갑시다. 나도 산중생활을 오래해서 묵은 때를 벗겨야 하니 일단 마을에 가서 이야기 합시다”
스미스는 갑자기 자기 마을로 가자는 말에 약간 당황해 했다.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은인이긴 하지만 마을에 데려간다 해도 밥 한끼 대접할 수 없는 상황이라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결심이 섰는지 나를 데리고 마을로 돌아왔다 나와 스미스가 마을에 들어서자, 내 모습을 보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사람인지 곰인지 확인하려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성내지 않고 조용히 지켜 봤다. 스미스가 큰소리로 외쳤다.
“여기 있는 용사님께서 저를 구해주셨어요. 오크에게 당할 뻔 한 저를 용사님께서 주먹 한방으로 오크를 때려 죽였어요.”
“뭐, 뭐라고, 스미스 그게 사실이야? 사람이 어떻게 오크를 한 주먹에 죽일 수 있어?”
“스미스, 거짓말하지 마라. 너 지난번에도 산에서 오크를 봤다고 떠들어 대더니, 이번에는 오크를 때려 잡은 거냐?···하하하”
사람들은 스미스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고, 여기저기서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이봐 에드워드, 핸드릭,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 용사님께서 한 주먹에 오크를 죽이는 것을···”
스미스는 사람들의 비꼬는 말에 더욱 목소리를 높이며 나의 무용담을 늘어 놓았다. 한참 떠들던 스미스 앞에 왠 초로의 노인이 다가오더니 스미스에게 물었다.
“스미스 이분이 너의 생명을 구해주셨다는 게 사실이냐?”
“네. 촌장님. 이분이 저의 생명을 구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대접 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가 열심히 일해서 꼭 갚을 테니, 용사님께 식사 한 끼라도 대접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스미스는 촌장에게 애원하듯 부탁을 했다.
“허..이런. 하필 이럴 때에 대접할 것이 없다니···용사님 죄송합니다. 일단 저희 집으로 모시겠습니다.”
촌장은 나에게 정중하게 인사하더니 자신의 집으로 안내했다. 나는 촌장을 따라가면서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분위기를 살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왜소해 보였으며, 많이 굶주렸는지 얼굴살이 빠져 광대뼈가 툭 튀어나와 있었다. 힘없이 어슬렁 어슬렁 걸어 다니는 것이 삶의 의욕도 없어 보였다.
촌장의 집에 들어가려고 할 때, 한 여인이 아이를 안고 급히 촌장에게 달려왔다.
“촌장님, 우리 아기가, 우리 피터가 아파요. 숨을 제대로 못 쉬어요.”
촌장이 서둘러 아이를 살펴봤다. 그러더니 고개를 가로 저으며, 아이 엄마에게 물었다.
“레일라, 피터에게 젖을 물린 지 얼마나 되었나?”
“흑흑···촌장님도 아시잖아요. 벌써 일주일 째 물만 먹었어요. 우리 아기 살려주세요. 촌장님, 제발요..흑흑”
“허···이런, 어째서 이렇게 매번···.”
촌장은 한스럽다는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잠깐 그 아이 좀 봅시다.”
내가 레일라에게 아이를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레일라는 나를 보더니 흠칫 놀라 아이를 품에 더욱 세게 끓어 안았다.
“아이 살리고 싶지 않아요? 맘 변하기 전에 빨리 이리 주쇼”
내가 다시 한번 손을 내밀자, 레일라는 촌장을 바라보았다. 촌장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서야 나에게 아이를 넘겨 주었다.
“이름이 피터라고요? 몇 살이죠?”
“2살이예요···흑흑”
여전히 눈물을 흘리는 레일라를 보면서, 나는 걱정 말라는 듯 미소를 지어 보이고 피터에게 말을 걸었다.
“피터? 이 아저씨가 피터 아픈 곳을 다 고쳐 줄 테니까, 다음부터는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커야 한다. 알았지?”
피터는 당장에라도 숨이 넘어갈 듯 가쁜 숨을 몰아쉴 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큐어디지즈”
3서클 큐어디지즈(cure disease)는 모든 질병을 치료하는 마법이다. 초록색 빛이 피터의 몸을 감싸며 피터가 가진 질병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초록색 빛이 피터의 몸속으로 사라지자 피터의 안색이 밝아지며 숨소리도 거칠지 않고 편안해 보이는 상태가 되었다.
나는 다시 한번 마법을 시전했다.
“힐”
힐(Heal)마법은 상처의 회복뿐만 아니라 체내에 활력을 높여주는 기능도 있다. 현재 피터는 오랜 시간 굶주림에 시달려왔기에 체내에 기력이 완전히 소진된 상태이다. 힐(Heal)마법은 그런 피터에게 기력을 되찾아 줄 것이다.
피터가 눈을 뜨더니 나를 보고 울어 댄다.
-으앙~으앙~
울음소리가 우렁찬 걸 보니 기력이 회복 된듯하여, 레일라에게 피터를 안겨주었다.레일라는 피터를 안아 들고 어쩔 줄 몰라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우리 아들 살아났구나. 우리 아들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못 먹여서 정말 미안해···흑흑흑~”
촌장이 사색이 된 얼굴로 나에게 다가왔다.
“마, 마법사님 이십니까?”
“······..”
나는 딱히 입을 열지 않았다. 보여진 게 있으니 뻔한 대답을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촌장과 레일라가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머리가 바닥에 닿도록 엎드렸다.
“마법사님, 우리 마을에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아들 피터를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법사님”
나는 두 사람을 일으켜 세우고 함께 촌장의 집으로 들어갔다.
촌장의 이름은 헤이든, 올해 14살 된 손자 알버트와 함께 살고 있다. 아들은 타지로 돈을 벌러 떠났고 며느리는 재작년에 병을 얻어 죽었다고 한다. 피터의 엄마 레일라는 올해 23살이고 힘든 농사일과 굶주림에 시달려서 그런지 실제 나이보다 훨씬 많아 보였다.
촌장은 손자 알버트를 시켜 음식을 내오게 했다. 하지만 알버트가 들고 온 음식이란 게 이것저것 풀뿌리를 넣어 끓인 스프 한 그릇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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