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첫사냥
동굴을 나와 처음 접한 세상은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공기는 더할 나위 없이 상쾌했다. 끝이 보이지 않고 계속되는 밀림, 온통 초록색의 물결이 세상을 뒤덮고 있었다.
“크하~ 넓다 넓어, 산도 안 보이고 그냥 죄다 밀림이네”
날씨는 약간 쌀쌀한 기운이 남아 있지만 대체로 따뜻했다.
“땅에 새싹들이 자란 것을 보니 봄인 거 같은데, 확실히 지구는 아니구나”
골드 드래곤 라쿤은 이곳이 미지의 수림이라고 했다. 미지의 수림은 제국의 최남단에 위치하며, 불 뿜는 산은 미지의 수림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곳이 최남단이면, 그래!! 북쪽이야, 북쪽으로만 가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나는 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5일이 지났다.
“아. 젠장, 이게 어떻게 된 거야! 5일 동안 토끼는 고사하고 다람쥐 한 마리도 못 봤어.”
5일 동안 근 100km를 북쪽(?)으로 이동해 왔으나 단 한 마리의 몬스터나 동물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굶지는 않았다.
“그래도 야생 열매와 채소들이 많아서 다행이다. 그거라도 없었으면 딱 굶어 죽기 좋은 곳이다.”
배낭 속의 비상식량과 물건들은 되도록 아껴야 한다. 이곳에서는 절대 구할 수 없는 것들이니 급한 상황이 아니면 사용을 자제하려고 한다.
나는 틈만 나면 라쿤을 뽑아 들고, 찌르기와 베기 같은 기본적인 검술 훈련을 하고 있다. 시스템에는 검술 스킬이 없었다. 아마도 나를 마법사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이렇게 연습에 열중하는 이유는···
라쿤의 레어를 떠난 지 이틀째 되는 날, 그날도 북쪽을 향해 쉼 없이 걷고 있는데, 갑자기 시스템의 음성이 머릿속에서 울렸다.
[체력이 1 상승했습니다.]
“엉? 체력이 상승해? 왜, 왜?”
급히 시스템 창을 호출했다.
이름 : 강철민
종족 : 인간
레벨 : 1
직업 : 입문자
특전 : 경험치 2배 적용(영구적)
힘 : 15/체력 : 13/민첩 : 5/지력 : 7/정신 : 1
생명력 : 330 / 마나: 80
공격력 : 265 / 방어력 : 170 / 회피력: 50
마법공격력 : 70 / 마법방어력 : 10
소지금액 : 0 , 스텟포인트 : 0
“우와 진짜네, 진짜 체력이 상승했어. 단지 걷는 것만으로도 스텟이 상승했어. 그럼 다른 것도 훈련하면 스텟이 올릴 수 있다는 거잖아”
체력스텟이 오르면서 생명력과 방어력에 변화가 생겼다. 체력스텟 1이 상승하니 생명력과 방어력이 각각 10씩 상승한 것이다. 홀로그램 창을 보면서 곰곰이 계산해 보니 신체 스텟에 따른 능력치의 변화를 알 수 있었다.
생명력 : 힘+체력+민첩 스텟의 합 * 10배 = 330
마나 : 지력 + 정신 스텟의 합 * 10배 = 80
공격력 : 힘스텟 * 10배 + 115(라쿤의공격력) =265
방어력 : 체력 * 10배 + 40 (등산복+신발) = 170
회피력 : 민첩 * 10배 = 50
마법공격력 : 지력 * 10배 = 50
마법방어력 : 정신 * 10배 = 10
이런 식으로 서로 얽혀있으니 스텟 중 무엇 하나 포기할 수 없도록 만들어 놓은 시스템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훈련에 매진하게 된 것이다. 시스템도 내 노력을 배신하지 않고 훈련에 대해 보상을 해주었다.
[경험치 50 얻었습니다.
특전에 의해 2배의 경험치를 적용 받습니다]
[힘이 1 상승했습니다.]
[경험치 50 얻었습니다.
특전에 의해 2배의 경험치를 적용 받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민첩이 1 상승했습니다.]
[경험치 50 얻었습니다.
특전에 의해 2배의 경험치를 적용 받습니다.]
[체력이 1 상승했습니다.]
[경험치 50 얻었습니다.
특전에 의해 2배의 경험치를 적용 받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불 뿜는 산을 떠나온 지 7일째 되는 날, 레벨을 7까지 올릴 수 있었다. 처음에는 하루 10시간 이상 걸으면 체력이 고갈되어 야영해야 했는데, 이제는 12시간 이상을 걸어도 크게 무리가 없을 정도다.
8일째가 되자,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동물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하면서 숲의 분위기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정말 조심해야겠어. ”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자 야영할 곳을 찾아야 했다.
“지금까지는 동물들이 없었기에 아무 데서나 편하게 잘 수 있었지만, 지금부터는 안전한 곳을 찾지 못하면 위험해질 수 있어”
이리저리 안전할 만한 장소를 물색하던 중 큰 바위가 눈에 보였다. 바위의 중간 부분, 지상에서 5~6미터 되는 지점에 좁지만 한 사람 정도는 누울 수 있는 평평한 장소가 있었다. 막 자리를 이동하려고 하는데 뒤쪽에서 낮은 울림이 들려왔다.
꾸어어, 꾸어어
황급히 고개를 돌려 뒤를 봤다. 멧돼지였다. 덩치가 RV차만큼 크고, 누런색 눈동자와 시커먼 몸뚱이, 아래턱부터 주둥이 위쪽으로 자라난 길고 뾰족한 어금니, 거대한 멧돼지가 나를 보며 그르렁거리고 있다.
‘헉, 멧돼지가 뭐 저렇게 크냐. 일단 침착하자. 강철민.”
나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라쿤을 뽑아 들었다. 라쿤도 위험을 감지했는지 칼날에 시퍼런 기운을 뿜어냈다.
스텟이 많이 오르기는 했지만 지금 당장은 저런 무지막지한 덩치를 가진 놈을 정면에서 상대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멧돼지가 흥분하지 않게 아주 천천히 뒤로 한발 움직였다.
‘예전에 산에서 만난 아저씨가 멧돼지는 전진밖에 못 한다고 했었어. 지그재그로 잘 도망치면 살 수 있어. 정신 차리자. 철민아’
내가 다시 한 발을 뒤쪽으로 빼서 물러나려 하는데, 거대 멧돼지가 괴성 지르면서 나에게 돌격해 왔다
꾸웨에엑~~ 꾸에에엑~
30m 남짓한 거리를 순식간에 좁혀오는 거대 멧돼지.
방어할 수단이 없는 나는, 옆 구르기로 간신히 피해냈다. 역시 멧돼지는 방향을 바꾸지 못하고 직진 돌격으로 내 옆을 지나쳐 아름드리나무에 머리를 박았다.
그런데,
꽝~
꽈지지직~
성인 한 명이 양팔을 벌려야만 간신히 감쌀 수 있을 것 같은 아름드리나무가 통째로 부러지며 쓰러졌다.
“헉, 씨벌 저걸 어떻게 이겨···. 인간 강철민이 오늘 여기서 하직할지도 모르겠구나”
나는 거대 멧돼지가 잠시 주춤하는 사이, 바위산으로 죽기 살기로 달렸다. 나무가 안 된다면 바위로 승부를 볼 생각이었다.
얼마 못 가서 놈이 다시 돌격해오는 소리가 들렸다.
죽어라 달리면서 놈이 5m 이내로 접근했다고 예상되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옆쪽으로 몸을 날렸다. 두 바퀴를 굴러 낙법으로 부상을 방지하며 일어섰다.
그리고 또 죽어라 달렸다.
당연하다는 듯 거대 멧돼지는 앞쪽에 있는 나무들을 들이받아 산림을 훼손시켰다. 놈은 분노로 인해 시뻘건 안광을 발산하면서 내가 도망치고 있는 방향으로 다시 몸을 돌렸다.
쿠에에에~ 쿠에에엑
괴성을 연신 지르면서 나에게 돌진하기 시작했다. 나는 계속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면서 바위산 쪽으로 놈을 유인해 갔다.
내가 방향을 바꿀 때마다 아름드리나무 부러지는 소리가 땅거미가 지고 있는 숲 전체에 울려 퍼졌다.
꽝~
꽈지지직~
꽝~
꽈지지직~···
가쁜 숨을 몰아쉬며 서너 번의 시행착오 끝에 드디어 바위산을 등지고 섰다. 나와 바위산의 거리는 5m, 거대 멧돼지는 약 20m 떨어진 곳에서 나를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하고 있다.
“내가 오늘 너를 잡아 죽이지 못하면 , 니 새끼다. 이 씨발놈아”
나는 거대 멧돼지가 5m 전방에 이르자 온 힘을 다해 옆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뻑~~~
꾸에에에에에에엑~~
멧돼지 멱따는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예상대로 놈은 바위에 그대로 헤딩 하였고, 그 결과 머리가 깨졌는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기절이라도 한 듯 움직임이 없었다.
“좋았어!! 넌 이제 뒈졌어. 돼지 새끼야”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라쿤을 역수로 쥔 채, 놈에게 뛰어갔다. 그리고 놈의 목에 라쿤을 깊숙이 쑤셔 박고, 그대로 바깥쪽으로 그어버렸다.
거대 멧돼지는 가죽도 질길 것이고, 힘줄이나 근육도 굉장히 단단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상하게 저항감이 별로 없었다. 라쿤의 절삭력이 굉장히 뛰어난 것 같았다.
처음엔 라쿤을 놈의 심장에 쑤셔 박아 단숨에 죽이고 했으나, 라쿤의 검신이 짧아 놈의 심장까지 닿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놈의 목을 자르는 것으로 목표를 변경했다.
꾸엑~꾸엑~꾸에엑
거대 멧돼지가 이리저리 날뛰며 지랄 발광했다. 거대한 나무들도 거대 멧돼지의 난동에 쓰러지고, 어중간한 바위는 통째로 뽑혀 나뒹굴었다. 그때마다 놈의 목에서는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5분쯤 지나자 놈이 앞발을 꿇으며 옆으로 쓰러졌다. 놈의 숨통이 완전히 끊어지자, 시스템 알림 음성이 쉴 새 없이 울렸다.
[경험치 2,200 얻었습니다.
특전에 의해 2배의 경험치를 적용 받습니다]
[힘 5 / 체력 3 / 민첩 3 / 지력 5 / 마력 5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거대 멧돼지를 사냥하고, 무려 8레벨이 올라 현재 15레벨이 되었다.
“정말 위험했는데 그만큼 보상은 산뜻하게 주네. 고맙다. 멧돼지야. 네놈을 내가 맛있게 먹어주마”
나는 아공간의 남은 적재 용량을 살펴보았다. 놈의 무게가 대충 봐도 1.5~2톤은 되어 보이는데 아공간의 적재 용량이 이보다 적다면 오늘 밤 이놈의 사채는 다른 포식자나 몬스터에게 빼앗기게 될 것이다.
다행히 아공간은 10레벨이 넘으면서 업그레이드가 되어 적재 용량이 2,000kg으로 늘어나 있었다.
놈의 사체를 아공간에 넣고 서둘러 바위산 중턱으로 올라가 1인용 텐트를 펴고 쉴 준비를 했다. 아공간에서 꺼낸 여러 가지 야생 채소와 열매로 배를 채운 후, 시스템 창을 열어 새로 생긴 기술들을 확인하고 스텟 포인트를 분배했다.
이름 : 강철민
종족 : 인간
레벨 : 15
직업 : 1서클 마법사
특전 : 경험치 2배 적용(영구적)
힘 : 20 / 체력 : 16 / 민첩 : 8 / 지력 : 12 / 정신 : 6
생명력 : 440 / 마나: 180
공격력 : 315 / 방어력 : 200 / 회피력: 80
마법공격력 : 120 / 마법방어력 : 60
소지금액 : 0 , 스텟포인트 : 14
마법스킬 : 1서클마법
아공간 : 2,000kg 제한 (1,850/2,000)
“드디어 직업이 생겼구나, 역시 마법사네.”
마법스킬 부분에 1서클마법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나는 1서클마법을 터치하여 세부 정보를 확인했다.
[1서클마법]
- 총 60개의 마법이 검색되었습니다.
-자주 사용하는 3가지 마법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서클이 올라갈수록 등록 슬롯이 1개씩 증가합니다.
-등록된 마법은 캐스팅 없이 사용할 수 있으며, 언제든지 다른 마법으로 교체가 가능합니다.
[1서클마법 전체보기]
[1서클마법 전체 보기]를 누르자, 마법 리스트가 설명과 함께 시스템 창을 가득 채웠다. 꼼꼼히 읽으면서 3가지 마법을 선택하여 시스템에 등록했다. 언제라도 다른 마법으로 교체가 가능하다고 하니 마음 놓고 선택했다.
선택한 마법은,
파이어애로우(30)/라이트닝볼트(30)/쉴드(30)이다.
파이어 애로우((Fire Arrow, 1서클) : 불꽃의 화살을 여러 개 만들어 공격한다.
라이트닝 볼트(Lightning Bolt, 1서클) : 전기의 구슬을 적에게 날린다.
쉴드(Shield, 무속성) : 마법공격력에 비례하여 방어막의 방어력과 소비 마나의 양이 결정된다.
마나 소모량과 효과를 꼼꼼히 따져서 선택했다. 이 중 쉴드(Shield)는 나의 마법공격력의 수치를 방어력으로 치환한다는 설명이 되어있다.
마법방어력이 아니라 마법공격력에 비례한다는 설명이 의아하긴 했지만, 쉴드(Shield)의 입장에서 보면 방어막의 수치가 곧 쉴드(Shield)의 공격력이라 할 수 있으니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내 마법공격력이 120 이므로 쉴드(Shield)의 방어력도 120 만큼의 보호막을 만들어 준다는 이야기가 된다. 지금 당장은 효율이 떨어질 것 같지만 마법공격력이 높아지면 꽤 유용한 스킬이 될 것이라 여겨진다.
나는 쉴드(Shield)의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남아있는 스텟 포인트 14개를 모두 지력에 투자했다. 마법공격력이 120에서 260으로 상승하였으며, 쉴드(Shield)의 방어력도 260으로 상승하였다.
쉴드(Shield)의 가장 큰 특징은 물리 방어뿐만 아니라 마법공격이나 정신 공격도 자기 방어력 내에서 모두 막아내는 무속성 방어마법이라는 것이다.
시스템에서 마법을 검색할 때, 쉴드(Shield)는 특수마법으로 따로 분리되어있었다.
아마도 일반적인 쉴드(Shield)마법과는 다르게 시스템이 제공하는 특수 기능을 가진 마법일 것 같다는 느낌이 거세게 들었다.
나의 부족한 방어력을 보완하기에는 쉴드(Shield)가 가장 적당한 마법이라 여겼다. 모든 설정을 마친 나는 시스템 창을 끄고 힘들었던 하루 일정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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