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떠돌이 회색늑대
다음날,
냇가를 찾아 거대 멧돼지 해체를 시작했다. 식량을 비축해야 한다. 매일 야생 채소와 열매만 먹다 보니, 솔직히 질리기도 하고 힘도 달렸다.
사람은 고기를 먹어야 힘을 쓴다는 말이 이렇게 가슴에 와닿은 적이 없었다.
“여기가 안심, 이 부위는 등심, 뱃살, 뒷다릿살, 껍데기는 두꺼워서 못 먹겠다. 그래도 양이 엄청 많구나. 하하”
살코기를 제외한 내장이나 머리, 가죽, 뼈 등은 모두 버렸다. 오직 살코기만 아공간에 저장했는데도 그 무게가 500kg이나 되었다.
“한동안 식량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동이 트자마자 해체 작업을 시작했는데, 오전이 끝나갈 때쯤 작업을 마쳤다. 배가 고파서 불을 피우고 냇가 근처에서 주워 온 평평한 돌멩이를 달궜다.
방금 작업한 멧돼지 살코기를 삼겹살처럼 썰어 달궈진 돌멩이 위에 올려놓았다.
치이이이~~치익~
살코기에 붙어있는 지방에서 기름이 배어 나오며 맛있는 삼겹살 냄새가 콧속을 후비고 들어왔다. 잘 익힌 삼겹살 하나를 집어 입속에 넣었다.
“이게 얼마 만에 먹어보는 삼겹살이냐. 으흥, 정말 맛있다.”
오랜만에 삼겹살을 마음껏 먹었다. 앉은 자리에서 삼겹살 2kg을 게 눈 감추듯 해치워버렸다.
잠시 휴식을 취하다 다시 길을 떠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허리춤에서 라쿤이 울어 댔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응?, 왜 이래?”
나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대며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혹시나 라쿤이 보내는 위험 신호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다행히 주변에는 별다른 이상이 느껴지지 않았다.
웅웅웅~
그래도 라쿤은 계속 울어 댔다. 순간 머릿속에 뭐가 스쳐 지나갔다.
“아! 시체 청소부”
나는 라쿤을 칼집에서 뽑아 버려진 거대 멧돼지의 부산물 쪽을 겨냥하며 크게 소리쳤다.
“포식’
갑자기 라쿤의 검신이 길게 늘어나며 순식간에 멧돼지의 부산물을 향하여 돌진했다. 검신의 끝이 위아래로 쩌~억 벌어지더니 무시무시한 이빨들이 튀어나왔다.
꿀꺽!!
한입에 삼켜 버렸다. 그 많던 거대 멧돼지의 부산물들이 터럭 하나 남겨지지 않고 한입에 삼켜졌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라쿤은 원래의 단검으로 돌아왔다.
잠시 후,
[경험치 200 얻었습니다.
특전에 의해 2배의 경험치를 적용 받습니다]
라쿤의 포식으로 경험치를 얻었다.
“하하! 라쿤? 너 좀 하는데? 우리 앞으로 잘해 보자”
우웅우웅~
내가 라쿤을 바라보며 칭찬하자, 라쿤이 짧게 응답해 준다.
***
나는 지금 냇가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 큰 뿔 사슴을 노려보고 있다. 지구의 사슴보다 덩치는 2배 정도 크고 뿔도 굉장히 위험해 보인다.
‘이 동네 동물들은 뭐든지 지구보다 크네’
큰 뿔 사슴이 오늘의 사냥 목표다.
이제 마법을 쓸 수 있기는 하지만, 어제 거대 멧돼지와 치른 격전의 흥분이 아직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오늘은 덜 위험한 놈으로 마법을 이용해 사냥해 볼 참이다.
‘현재 나의 마나가 320이니 마나가 떨어지지 않게 잘 조절해야 해’
사냥에 들어가기에 앞서 일단 내 몸에 쉴드(Shield) 마법을 2중첩 시전 했다.
“쉴드, 쉴드”
마나 100이 빠져나가며, 내 몸 주변으로 2개의 투명한 막이 생성되었다. 방어막 하나당 방어력 260을 가지고 있으니 총 520 만큼의 방어력이 생긴 것이다.
혹시나 사냥 중 마나가 떨어져 직접 전투해야 하는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라이트닝 볼트”
나무 뒤에 숨어 라이트닝볼트(Lightning Bolt)를 시전 하자, 손바닥 위로 야구공만 한 전기 구슬이 치직 거리면 떠올랐다.
나는 전기 구슬을 힘껏 큰 뿔 사슴을 향해 던졌다. 전기 구슬은 정확히 큰 뿔 사슴의 옆구리에 처박혔고, 큰 뿔 사슴의 온몸으로 전기를 방출했다.
“좋았어. 명중이야”
나는 환호하며 나무 뒤에서 튀어나와 큰 뿔 사슴의 상태를 지켜봤다.
전기 구슬에 옆구리를 맞은 큰 뿔 사슴은 석상이라도 된 듯, 4초 정도 움직임이 없더니 갑자기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소리를 질러 댔다.
쿠우우우, 쿠우쿠우우우우 ~~
깜짝 놀라 다시 마법을 준비하는 사이, 큰 뿔 사슴이 나를 향해 머리의 뿔을 앞세우며 돌격해 왔다.
나는 즉시 마법을 시전 했다.
“라이트닝 볼트”
라이트닝 볼트(Lightning Bolt)가 달려오고 있는 큰 뿔 사슴의 이마를 강타하며 전기를 발산했다.
전력으로 돌진하던 큰 뿔 사슴은 순간적으로 몸이 마비되었고, 돌진하던 가속도 때문에 그대로 땅에 처박히면서 앞으로 데굴데굴 굴렀다.
라이트닝 볼트(Lightning Bolt)의 발현 시간이 고작 4초밖에 안 되는 걸 조금 전에 봤기에, 큰 뿔 사슴에게 전속력으로 달려가 라쿤을 큰 뿔 사슴의 목에 쑤셔 박고 바깥쪽으로 그어버렸다.
살겠다며 바둥바둥 대던 큰 뿔 사슴은 1분 정도 지나자, 긴 울음을 한번 내지르더니 숨을 거두었다.
쿠우우우우우우웅~
[경험치 1,500 얻었습니다.
특전에 의해 2배의 경험치를 적용 받습니다]
[힘 1 /체력 1 /민첩2 /지력 6 /정신 4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어김없이 시스템의 알림 메시지가 들려왔다.
“멧돼지보다는 확실히 경험치가 적네. 그래도 캐스팅 없는 마법이 아니었으면 위험할 뻔했어.”
내가 너무 성급하게 튀어 나간 것이 위험할 수 있었다. 다음 사냥부터는 좀 더 신중해지자고 스스로를 꾸짖었다.
아공간의 무게 제한으로 큰 뿔 사슴을 전부 아공간에 넣을 수 없었다.
그 자리에서 바로 해체하여 고기만 아공간에 넣고, 나머지는 모두 라쿤에게 줘버렸다.
큰 뿔 사슴을 사냥한 냇가에서 점심을 사슴고기로 구워 먹었다.
“이야, 멧돼지고기보다 10배는 더 맛있다. 살이 엄청 부드러워. 이거 맛 들이면 멧돼지고기는 못 먹겠다. 언제 또 잡을지 모르니 아껴 먹어야겠어.””
큰 뿔 사슴고기로 행복한 점심을 먹고 다시 북쪽을 향해 밀림 속을 헤치며 나갔다. 사실 북쪽으로 정확하게 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프리실란드 대륙이 지구와 비슷하다는 가정하에 태양이 뜨는 쪽을 동쪽으로 산정하고 왼쪽이 북쪽이니 그렇게 가고 있다. 오차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이 방법 외에 북쪽을 알 방법이 없었다.
밀림을 한참 동안 헤쳐 나가다 들깨 군락지를 발견했다.
“깻잎이다. 이거 삼겹살에 싸서 먹으면 끝내주겠는데”
깻잎은 고기의 느끼한 맛이나 비린내를 잡아주는 아주 좋은 향신료 중 하나다. 깻잎 군락지를 언제 또 발견할지 모르니 최대한 따서 아공간에 넣어 둘 생각이다.
정신없이 깻잎을 채집하고 있는데 앞쪽에서 늑대 한 마리가 다가오는 있었다. 재빠르게 쉴드(Shield)마법을 내 몸에 걸고, 파이어애로우(Fire Arrow)도 시전 했다.
“쉴드, 쉴드, 파이어애로우”
파이어애로우(Fire Arrow)를 시전 하자, 내 머리 위에 불꽃 화살 4개가 생성되어 둥둥 떠 있었다. 일단 불꽃 화살을 발사하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늑대들은 무리 생활을 하는 것으로 아는데 이놈은 혼자인가?”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다른 늑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회색빛의 늑대는 크기가 송아지만 했다. 그러나 몸 이곳저곳의 털이 빠져있고 눈빛도 흐리멍덩한 게 딱 봐도 늙고 병들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발톱은 위협적이었고, 으르렁거리며 보이는 날카로운 이빨은 보는 것만으로도 간담을 서늘케 했다. 늙어도 늑대는 늑대이다. 그것도 송아지만큼 큰 회색 늑대.
“무리에서 쫓겨났거나, 무리를 잃은 놈인가 보네”
회색 늑대는 나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계속 으르렁거리며 경계만 하고 있다. 파이어애로우(Fire Arrow) 때문인 것 같았다. 나는 파이어애로우(Fire Arrow)는 그대로 둔 채, 또 하나의 마법을 소환했다.
“라이트닝 애로우”
마찬가지 1서클 마법이지만, 라이트닝볼트(Lightning Bolt)보다 속도가 2배 이상 빠르다. 라이트닝볼트(Lightning Bolt)는 늑대의 스피드를 따라가지 못할 거라는 판단했다.
생성된 라이트닝애로우(Lightning Arrow)를 늑대에게 발사했다.
피슝~
츠츠츠츠, 지지지직
회색 늑대는 피하려 했지만, 라이트닝 애로우가 너무 빨라 모두 엉덩이 쪽에 박혔다. 즉시 전기가 회색 늑대의 몸을 감전시켰고, 약간의 살 타는 냄새가 여기까지 전해져 왔다.
회색늑대가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타이밍에, 머리 위에 소환해 둔, 파이어애로우(Fire Arrow) 4개를 늑대에게 발사했다.
피슝,피슝,피슝, 피슝~
퍽!, 퍽!, 퍽!,퍽!
파이어애로우(Fire Arrow)는 차례대로 늑대의 옆구리에 박혀 들어갔다. 전기의 충격으로 정신이 몽롱하던 회색 늑대는 곧이어 날아온 파이어애로우(Fire Arrow) 4개를 맞고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 댔다.
켕···케갱···캥캥..
회색 늑대는 아직 치명상을 입지 않아 보였다.
다시 한번 라이트닝애로우(Lightning Arrow)를 발사했다.
피슝
츠츠츠츠, 지지지직
또다시 온몸이 감전되며 살갗이 타기 시작하고, 역겨운 냄새가 주변에 퍼지기 시작했다. 라이트닝애로우(Lightning Arrow)의 전기 충격이 사라지자, 회색 늑대는 그 자리에 철썩 쓰러지더니 침을 질질 흘리며 고통스러워했다.
갸르르르르~ 킹킹···
온몸의 털은 새까맣게 타 버렸고 살갗도 군데군데 타들어 가 시꺼먼 자국이 남아있다. 파이어애로우(Fire Arrow)를 맞은 4곳은 아직도 살이 타고 있는지 역겨운 냄새가 진동했다.
늑대에게 천천히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아직 숨은 붙어있지만, 숨만 붙어있을 뿐,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그러게, 덤비길 왜 덤벼 이 새끼야! 상대를 봐가면서 덤벼야지”
라쿤을 뽑아 들고 늑대의 숨이 멈추길 기다렸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늑대의 숨은 끊어지지 않았다. 지쳐서 별 기대감 없이 그냥 외쳤다.
“포식”
갑자기 라쿤의 검신이 뱀처럼 길게 뻗어나가면서 검 끝이 쩌-억 갈라지더니, 거대한 입에 날카로운 이빨이 돋아났다. 그리고 그대로 회색 늑대의 목을 꽉 물어버린다.
회색 늑대는 그대로 즉사했다
“헉, 뭐야? 포식은 사체 먹는 스킬 아니었어?”
반응이 없을 것으로 알고 그냥 외쳐본 것인데 뜻밖의 라쿤의 반응에 나는 깜짝 놀랐다. 라쿤의 포식 스킬은 먹는 것뿐만 아니라, 빈사 상태의 적을 죽이는 능력도 있었다.
“우와 라쿤아, 이런 능력을 숨기고 있었던 거야? 멋지다... 하하!!”
웅웅~~
시스템의 보상도 곧바로 주어졌다.
[경험치 3,500 얻었습니다.
특전에 의해 2배의 경험치를 적용 받습니다]
[힘 3 / 체력 3 / 민첩2 / 지력 3 / 정신 5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이제 22레벨이 되었다. 2서클 마법사가 되었고, 아공간의 적재 용량도 4t으로 늘어났다.
라쿤과 나는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라쿤에게 떠돌이 회색늑대의 사체를 통째로 선물해 줬다.
늑대 사냥을 마치고, 깻잎 따는 일을 계속했다.
적어도 며칠은 해야 다 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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