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농지개간
하벨남작의 영주성에 내가 방문하자, 제이콥 집사를 비롯하여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전과 다른 존경이 담긴 환대를 받았다. 뭔지 모르겠지만 잘해준다는데 안 받을 이유가 없다.
하벨남작의 직무실에 들어가자 언제나처럼 기분 좋은 표정의 하벨남작이 나를 반긴다.
“어서 오시오. 버모린영주님”
“안녕하세요. 영주님. 얼굴이 무척 좋아 보이십니다.”
“내 얼굴이? 뭐 요즘 근심 걱정이 없다 보니 좋아 보이나 봅니다. 하하”
“근심 걱정이 없으시다니 다행입니다. 오늘은 상의 드릴 일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무슨 일이오?”
“해밀턴영지와 레이든영지 전역에 새로운 작물을 심어볼까 합니다.”
“새로운 작물이라니 무슨 작물을 말씀하시는 게요?”
“라이스와 겨울보리입니다. 그리고 밭 작물로 콩과 고구마, 감자, 옥수수가 있습니다.”
나는 하벨남작에게 각각의 작물들을 설명해 주었다. 설명을 들은 하벨남작의 입이 쩌~억 벌어지며 다물어지지 않았다. 침까지 흘리던 하벨남작이 정신을 차리기까지 장시간의 기다림이 필요했다.
“버,버모린 영주님, 그 겨울보리라는 것이 정말 겨울에 심어 봄에 수확이 가능한 것이오? 그리고 그 고,고구··· 아무튼 그 밭 작물들을 심으면 수십 배의 수확이 가능하다는 말이오?”
“네, 영주님. 저에게 그것들의 종자가 있습니다. 문제는 이것들을 심을 경작지가 마땅치 않다는 겁니다. 그래서 영주님과 상의 하려고 찾아 온 겁니다.”
“내,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소. 뭐든지 다 하겠소. 그것들을 우리 영지에서 재배하여 우리 영지민들이 배부르게 살 수만 있다면 뭐든지 다 하겠소”
이럴 줄 알았다. 당연히 이렇게 나와야 하나의 영지를 다스리는 영주인 것이다. 자기 실속보다는 영지민의 배부름을 먼저 생각하는 영주가 진정한 영주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벨남작은 영주로써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나는 영지의 지도를 테이블 위에 펼쳤다. 그리고 타 영지와의 경계선을 손으로 짚으며 하벨남작에게 말했다.
“영지의 경작지를 늘리기 위해서는 영지 내에 있는 쓸모없는 산들을 없애야 합니다. 버모린영지와 베르너영지의 경계 지역에 세워진 산들을 보셨지요?”
“봤소. 베르너영지 쪽으로는 마치 절벽처럼 가파르고 버모린영지 쪽으로는 계단식 밭이 조성되어 많은 작물을 심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을 내 두 눈으로 봤소”
“현재 그 계단식 밭에서 자라고 있는 곡물이 바로 겨울 보리입니다.”
“헉! 정말이오? 내 이 회의가 끝나면 당장 가서 이 두 눈으로 봐야겠소”
“지금쯤 푸른 싹이 올라오고 있을 테니 가시면 확인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아아!! 겨울에 재배하는 보리라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 거리오.”
하벨남작은 진짜로 심장이 두근거리는지 오른손으로 심장을 있는 왼쪽 가슴을 꽉 쥐고 있었다.
“그 건은 직접 가셔서 보면 되시고, 일단 이 지도에서 보듯이 레이든영지와 해밀턴영지는 클라이자작령과 헤이크자작령의 일부 지역과 접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접경 지역에 영지 내에 있는 필요 없는 산들을 허물어 흙으로 된 성벽을 쌓을 겁니다. 버모린영지와 동일하게 우리 쪽은 계단식 밭을 만들 것이며 상대쪽에는 높은 절벽으로 만들어 침입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거지요. “
“다 막아버리면 우리는 고립되는 거 아니오?”
“물론 성문을 만들어 물류나 사람들이 오고 갈 수 있도록 할 겁니다. 앞으로 버모린영지와 레이든영지 그리고 해밀턴영지 전체가 난공불락의 거대한 하나의 성이 되는 겁니다. ”
“후아, 이런 엄청난 성을 쌓을 수 있다니···산을 허무는 것은 보통 큰일이 아닌데, 버모린영주님께서 도와 주시겠지요?”
“그 일은 제가 혼자서 할 겁니다. 다만 영주님과 영지민들이 해 줘야 할 것은 새로 확보된 땅을 농지로 개간하는 것과 라이스 농사를 위해 곳곳에 물을 저장할 시설, 그리고 농수로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큼지막한 호수는 제가 만들어 드릴 수 있으나 농지로 물이 흐르게 하는 것은 영지민들의 작업이 필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경계 지역에 새로 들어서는 계단식 밭에는 아까 말씀드린 콩과 고구마, 감자 그리고 옥수수를 재배할 것입니다.”
“하겠소, 내가 영지민들과 함께 농지 개발과 수로 건설을 직접 나서서 하겠소”
“좋습니다. 그럼 저도 바로 일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레이든성을 나와 즉시 산을 허무는 작업을 시작했다.
***
그로부터 4개월 후 레이든영지와 해밀턴영지에 있던 3백여개의 크고 작은 산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평평한 평지가 들어서면서 레이든영지와 해밀턴영지를 아우르는 거대한 평야가 만들어졌다.
이제 영지민들과 노동형에 처해진 죄수들이 힘을 합쳐 농지로 개간하는 일만 남았다.
나는 영지 곳곳에 물을 저장할 수 있는 큰 호수를 만들고 데쓰산맥으로부터 시작되는 큰 강의 물길을 호수와 연결했다.
그리고 영지의 접경 지역에는 높이 200m에 이르는 거대한 토산이 새워졌으며 클라이자작령과 헤이크자작령으로 연결되는 성문 건설 작업이 한창 진행 중에 있었다.
성문은 양옆에 토산을 두고 3중 성벽으로 만들어진다. 1단계 성벽이 30m 높이며, 모든 병력이 최초로 1단계 성벽에서 적을 방어하게 된다.
1단계성벽이 함락되면 바로 뒤에 높이 50m인 2단계 성벽으로 병력이 이동하여 다시 방어를 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마찬가지로 2단계 성벽까지 점령되면, 70m 높이로 세워진 3단계성벽으로 이동하여 최종 방어진을 구축하게 된다.
모든 성벽은 10m의 간격을 두고 세워지며, 성벽과 성벽은 두꺼운 철문으로 서로 이동이 가능하게 되어있다.
이로서 소수의 병력으로 대군을 막아낼 수 있는 난공불락의 성문이 완성된 것이다.
토산 건설과 성문 건설로 두 자작령에서 항의하며 군사를 보내기도 했으나, 내가 마법 몇 방 쏴주자 꽁지 빠지게 달아났다.
영지 내의 농지 개발이 한창일 때 2가지 사건이 일어났다. 하나는 염전이 완성되었고, 나머지 하나는 나의 항의에 대한 답변을 가지고 왕성에서 사람들이 왔다.
완성된 염전의 모습은 바둑판처럼 사각형의 밭들이 서로 연결되어 끝없이 펼쳐져있다. 염전에 담긴
해수가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 반짝거렀다.
중앙에 거대한 해수호가 자리 잡고 있었고, 염전 곳곳에 100개가 넘은 직경 10m의 정사각형 해수 저장탑이 있다.
이곳에서 석탄을 이용해 24시간 해수를 끓이게 된다. 그때 나오는 연기와 열기가 염전 아래 만들어진 구들장으로 들어가서 염전 바닥을 뜨겁게 만든다.
저장고의 해수가 증발하여 절반으로 줄어들면 염전으로 방출하게 되고, 다시 수로를 통해 해수호의 바닷물이 자동으로 채워지게 설계되었다.
나는 염전에 방문하여 생산 책임을 맡게 된 도노반 촌장과 염전 운영에 대해 논의하였다.
“촌장님 현재 염전에 거주하는 인원은 어떻게 됩니까?”
“염전 마을에는 과거 버모린 마을주민 모두와 새로 합류한 성실한 사람들을 합쳐 모두 550명이 입주하여 시험 생산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중 실제 염전에서 일할 인원은 464명 입니다. 나머지는 어린아이와 늙은 노인들이라 작업에서 배제 했습니다.”
“염전 전체를 정상적으로 가동하기 위해서는 몇 명의 인부가 필요하겠습니까?”
“계산상으로는 1,500명정도의 인부가 필요합니다. 현재 염전 동서남북으로 각각 700명 정도의 주민이 거주할 수 있는 마을이 4곳 조성되어 있습니다. 총 2,500명정도 거주 할 수 있습니다.
“시험 생산은 언제까지 일정이 잡혀있나요?”
“각 구역 별로 1달씩 시험 가동을 하려고 하고 있으며, 이 후 발견된 문제점 등을 보수하는 작업도 필요합니다. 따라서 총 5개월정도 잡고 있습니다.”
“5개월이라, 얼추 도시가 완공되는 시점과 비슷하군요. 그렇다면 그 시점에서 추가 인부 고용이 가능할 것 같네요.
“그렇습니다. 영주님. 책임감이 투철한 사람들로 선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들의 복지에 우선적으로 신경을 써 주시고, 일이 힘드니 임금은 숙련도에 따라 30골드에서 50골드까지 차등 지급하도록 하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영주님”
“그리고 시험 생산량은 어떻게 됩니까?”
“현재 5일정도 시험 생산을 하고 있습니다. 5일동안 7천5백포대의 소금을 얻어서 하루 평균 1천5백포대의 생산량이 확보되었습니다. 그러나 현 상태는 인부들의 숙련도가 낮은 상태이므로 향후 숙련도가 올라가면 현재의 2배정도의 생산량도 가능하리라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 가동이 되어 염전 전체에서 생산이 이루어지면 하루 최대 1만포대는 충분이 생산이 가능하리라 봅니다.”
예상보다 생산성이 무척 높아 기대 이상의 만족감이 들었다. 염전에서 하루 생산하는 소금이 1만포대라면 용량으로 따지서 하루 600t를 생산해 낸 것이다.
현 시세가 소금 1포대에 40골드이지만 우리는 20골드에 판매할 것이므로 한 달에 600만골드를 벌어드릴 수 있다.
“마음에 듭니다. 그렇지만 생산하는 소금은 즉시 음용할 수 없어 판매가 불가 합니다. 적어도 6개월이상은 묵혀서 간수를 다 빼내야 하니 생산하는 족족 대형 창고에 넣어서 보관하세요”
“잘 알겠습니다. 영주님”
“그리고 맨발로 염전에 들어가면 안됩니다. 꼭 지급해 준 자죽 장화를 싣고 염전에 들어가도록 관리를 해 주세요”
나는 염전에서 일하는 일꾼들에게 레비탄가죽으로 만든 무릎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만들어 줬다.
레비탄을 늪지섬에서 실험했을 때 화염과 물속성 마법에 무척 강했었다. 그래서 그 레비탄가죽으로 장화를 만들었는데 염전의 뜨거운 물과 열기를 장화가 거의 완벽하게 차단해 주었다.
지금도 염전에서 일꾼들이 모두 레이탄 가죽장화를 싣고 밀대를 밀며 뛰어다니고 있다.
“에휴~그 귀한 가죽 신발을···..”
“레비탄가죽은 얼마든지 있으니 아끼려 하지 마세요. 무엇보다 일꾼들의 안전이 더 중요합니다. ”
“네, 영주님의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염전은 이제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잘 돌아 갈 것이다.
봄이 오면서 콩과 감자, 고구마 그리고 옥수수를 새로 조성된 레이든영지와 해밀턴영지의 접경 지역의 계단식 밭에 심었다.
이것들이 잘 자라서 우리 영지민과 나아가 대륙의 가난한 사람들을 배고픔으로부터 해방 시킬 귀한 작물이 될 것이다.
“ 엔라지,엔라지,엔라지,엔라지,엔라지,···..”
종자가 심어진 밭 곳곳으로 흰 빛이 뿜어지면서 땅속으로 스며들어 갔다.
귀한 종자들이 싹을 틔우지 못하고 썩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성장 촉진을 하는 마법을 곳곳에 걸어 주었다. 적어도 싹은 정상적으로 틔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난 초겨울에 심었던 겨울보리의 수확이 시작되었다. 역시 21C에 개량과 개량을 걸친 최고의 품종이다 보니 수확량이 어마어마 했다.
두포대 분량을 심었는데 60포대 이상의 수확량을 얻었다. 지구에서도 가능하지 않을 듯한 수확량에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이곳은 지구와 다르게 자연이 식물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력이 상당히 높다.
고구마나 감자, 옥수수의 알맹이 크기가 큰 것도 그렇고 보리의 수확량이 남다른 것도 그것을 증명한다. 아마 라이스도 마찬가지 결과를 가져 올 것이다.
지구에서의 개량된 품종은 이곳에서 크기보다 생산량의 극대로 이어지는 것이다.
보리의 경우 올해 한번만 더 종자 농사를 지으면 내년에는 영지 전체로 종자를 보급할 수 있을 것 같다.
라이스는 버모린에서 농지를 확보하여 종자 확보를 위한 첫 농사를 시작한다. 올해는 몇 차례 종자 확보 농사를 지을 것이며, 내년에는 모든 영지로 종자를 보급할 수 있을 것이다.
버모린 항구도시 건설도 무리 없이 잘 진행되고 있고, 염전도 완성했고, 작물 농사도 무리 없이 잘 진행되고 있다.
해밀턴과 레이든 영지 곳곳에 벌려 놓은 공사는 현재 파종기라서 잠시 정체 되어 있으나 파종기가 끝나면 다시 시작될 것이다.
농지개발 사업도 올해와 내년 2년을 잡아야 완성이 될 것이다.
이제 할 일이 없을 것 같아···.라고 생각했는데 잊고 있던 일이 떠올랐다.
“하마베! 정신없다 보니 하마베 심어 놓은 걸 깜박했네”
“아, 맞다. 저도 깜박 했네요. 주인님”
“후후, 우리가 요 몇 달 정신없이 바쁘긴 했어. 두리안”
“네, 많이 바쁘게 살았어요. 주인님”
“가보자, 죽었는지 살았는지 가서 확인해 보자”
“네, 주인님”
나는 텔레포트를 통해 과거 전설의 괴수 요르문간드를 처치했던 거대 구덩이로 왔다. 드워프들이 모두 버모린에 와 있어서 그런지, 인적이 끊긴 이곳은 과거 요르문간드에 의해 망가졌던 숲이 어느새 복원을 시작하고 있었다.
요르문간드가 드나들던 동굴은 드워프들에 의해 완전히 메꿔져 있었다. 나는 천천히 하마베를 심어 놓았던 장소로 발길을 옮겼다.
사방에 풀들이 자라나 맨 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지만 딱 한 군데 풀들이 자라나지 않은 곳이 있었다.
바로,
“와우, 여기다, 여기가 하마베를 재배할 수 있는 곳이 맞았어”
“우와아, 하마베가 자라난 곳에는 주위에 풀들이 하나도 자라지 못했어요. 신기해요”
“영물이잖아. 영물이 자라는데 감히 풀때기가 옆에서 숨이나 쉴 수 있겠어?”
“하하, 네 주인님. 그러네요”
나는 하마베를 쑤욱 뽑았다. 모두 크기가 동일한 동그란 5개의 하마베가 줄기에 붙어 뽑혀 나왔다.
“좋았어, 두리안 아공간에 하마베가 총 몇 개나 있지?”
“현재 5,396개 있어요. 주인님”
“오늘 여기에 다 심자.”
“네. 주인님”
나와 두리안은 숲을 갈아엎기 시작했다. 나무와 풀들을 모두 뽑아버리고 땅도 평평하게 정리하면서 하마베를 재배할 수 있는 최적의 농지를 만들어 나갔다.
그렇게 단 3일만에 웅덩이의 딱 절반을 거대한 밭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6일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5,401개의 하마베를 모두 심었다.
“하마베들아 아빠는 6개월 후에 올 테니 그때까지 잘 자라야 한다. 알았지?”
하마베들과 작별을 나눈 나는 내 저택으로 텔레포트하여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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