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프롤로그
쏴아아아아~
목욕탕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이 온몸을 적시며 흘러내릴 때면 왠지 기분이 업되는 느낌을 받는다.
산행을 다녀온 후 즐기는 사우나는 산에서 흘린 땀과 지난 일주일간의 찌든 스트레스를 전부 날려버릴 만큼 행복한 만족감을 준다.
하지만 어김없이 소곤거리는 소리와 힐끗힐끗 쳐다보는 눈빛들이 그런 내 기분을 망쳐 놓는다.
“저 사람 조폭인가 봐”
“그냥 집에서 샤워할 것이지, 저런 것을 하고 대중 사우나에 오면 좀 혐오스럽지 않냐?”
“그러게 말이야.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아직도 저런 놈이 있네”
말이 좀 심하다 싶어 고개를 돌려 쳐다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고개를 딴 데로 돌리며 모른 척한다.
계속 쳐다보고 있으면 고개를 푹 숙인 채 나가거나, 내가 안 보이는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
저들이 저러는 이유는,
‘내 등짝에 있는 용 문신 때문이겠지. 진짜로 혐오스럽거든 당당하게 내 앞에 와서 말하면 되지, 쫄아서 한마디도 못 할 거면 뭐 하러 남 일에 신경을 쓰고 지랄이야. 지 들 앞가림이나 잘할 것이지. 병신들’
내 이름은 강철민, 올해 27살이다. 키 185cm, 몸무게 115kg, 유도 공인 3단이다.
가족은 없다. 땅꼬마 시절부터 나는 보육원에서 살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온 나는, 직업을 구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하지만,
“강철민씨? 미안하지만 우리 가게에서는 안 되겠어요.”
“왜 안 되는 겁니까? 정말 열심히 일할 자신 있습니다. 저에게 기회를 한 번 주세요”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우리 가게에 오는 손님이 강철민씨 인상을 보면···.”
사장은 말을 잇지 못했지만 나도 알고 있다.
‘그래!! 내 인상이 험악하고 더럽다는 거 나도 알아. 하지만 생긴 걸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되는 거 아냐?
써보지도 않고 지레짐작으로 '그럴 것이니, 넌 안돼’ 라고 하면 나 같은 놈은 죽어야겠네. 제기랄’
식당, 카페, 경비원, 청소부, 하다못해 편의점 알바까지 모든 직종, 모든 일자리에서 거절당했다.
대부분 덩치는 커다랗고, 인상도 더럽고, 무엇보다 아둔해 보인다는 이유였다.
그래도 나 같은 놈을 받아주는 곳이 딱 한 군데 있었다.
공사 현장 노가다 판에서는 내 덩치를 보고 환영해 줬다.
밥 먹고 잠자는 것도 모두 돈이 필요한데, 수입은 적고 지출은 많으니 당연히 생활고에 시달렸다.
보육원을 퇴원할 때 원장 엄마가 챙겨준 정착금 500만 원과 공사판에서 막노동하면서 번 돈으로 어찌어찌 2년을 버텼다.
그 시절, 정말 힘들고 배고픈 생활을 했었다.
그 이후로, 평범하게 직장을 다니며, 평범하게 사는 인생을 포기했다.
내 직업은 서울 구로동에 소재하고 있는 나름 건실한(?) 조직의 행동대장··· 는 개뿔, 별 볼 일 없는 중소 조직에서 일숫돈 걷으러 다니는 동네 건달이다.
한 달 X 빠지게 일해봐야 250만 원 받는다.
이 돈으로 한 달 생활은 물론이고, 매월 정기적금도 넣고 약간의 취미 생활도 즐기며 산다.
나름 착하게(?) 살아가는 중이다.
“업치기 형님, 이번 주말에도 산에 가십니까?”
업치기는 내 별명이다.
업어치기가 특기이다 보니 자연히 내 별명으로 굳어져 버렸다.
“와? 따라오려고?”
“아이고 형님, 밥 먹고 힘들게 뭐 하러 산에 올라갑니까. 그러지 말고 저랑 제부도에 낚시나 가시지요. 거기서 광어 한 마리 낚아 바로 회 떠서 소주 한잔하면 기가 막힙니다. 형님”
“아우야~, 너 혼자 많이 먹어라. 나는 산에 가는 게 훨씬 좋다.”
“그거 힘들기만 하던데 뭐가 좋다고 그리 산에만 가시는지 모르겠네요”
취미 생활로 등산을 즐기고 있다. 덩치에 안 맞게 산도 곧잘 탄다.
주말에 집에 있으니 형님들과 동생들이 술 먹자고 부를 때가 많았다. 어쩔 수 없이 나가면 돈을 쓰게 된다.
그래서 꾀를 낸 것이 등산이었다.
토요일까지 일하고 일요일 아침이 되면 무조건 배낭을 챙겨 등산하러 다녔다.
처음에는 서울 근교의 관악산과 운악산, 도봉산에 자주 갔다. 비교적 산행 코스가 잘 정비되어 있다 보니 6개월 정도 지나니까 단조로운 산행코스가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그 후부터는 토요일 오후에 출발하여 1박 2일 코스로 오대산이나 치악산으로 산행을 다녔다.
그날도 그랬다.
배낭에 이것저것 먹을 것과 라면 몇 개를 넣고 여분의 옷과 산행에 필요한 몇 가지 필수품을 넣은 다음 서둘러 진부로 가는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진부에서 다시 상원사행 시내버스를 타고 상원사에 도착하니 오후 5시 20분.
6월이라 해가 길어서인지 아직 땅거미가 내리지 않았다.
하늘을 바라보니 아주 맑았다. 이런 날은 달이 밝아서 야간 산행하기에는 최적의 날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몇몇 팀들이 야간 산행을 준비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때 뒤에서 누가 나를 불렀다.
“안녕하세요. 강철민씨”
뒤돌아보니 40대 중반의 대머리 아저씨가 나를 보며 싱긋 웃고 있다.
아는 얼굴이다.
“안녕하세요. 송씨 아저씨. 또 오셨네요”
“이렇게 날씨 좋은 날에는 오대산 야간 산행이 최고지요. 철민씨는 바로 출발하려고?”
“네, 저는 지금 바로 올라가려고 합니다. 아저씨는요?”
“우리 팀은 커피 한잔하고 30분 후에 가려고 해요. 그나저나 이거 받아요”
송씨 아저씨는 자기 배낭을 열고 이리저리 뒤지더니 뭔가를 꺼내서 내게 줬다.
“뭐에요. 이게?”
“지난번 정상에서 라면 하나 빌렸잖아요. 그거 이자 쳐서 갚는 겁니다. 하하”
“아!! 뭐 그럴 걸 신경 쓰고 그러세요. 남으면 서로 나눠 먹는 거지요.”
“그게 또 그렇지 않아요. 오늘 마트 갔더니 철민씨 생각도 나고, 어쩐지 오늘 여기서 만날 것 같은 느낌도 들고 해서 내 거 사는 김에 하나 더 샀어요. 정상 올라가서 드세요”
“아무튼 감사해요. 아저씨. 잘 먹을게요”
“그래요. 그럼 정상에서 봅시다”
송씨 아저씨가 주고 간 것은 오곡세트였다.
고지대에서는 밥이 잘 안 익는다. 그래서 대부분 간단한 라면을 해서 먹는데 송씨 아저씨는 왜 오곡세트를 준비했는지 의아했다.
‘친구분들이랑 산행 시작한 지가 얼마 안 된다고 하더니 이따 고생 좀 하시겠네. 뭐 이건 집에 가서 해 먹으면 되겠다.’
상원사를 출발하여 산행을 시작한 지 2시간 정도 지났다. 40분 전에 적멸보궁을 지나쳤으니 비로봉까지 이제 3분의 2 정도 왔다.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보름달이다. 헤드랜턴을 켜지 않아도 밝은 보름달 때문에 앞이 훤히 보인다.
최소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일은 없을 것 같다. 상원사-비로봉 산행코스는 위험한 구간이 몇군데 있다. 그런 곳에서 잘못 넘어지면 부상을 입을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한다.
휴식을 끝내고 서둘러 길을 재촉했다.
얼마쯤 왔을까.
주위가 점점 어두워지는 느낌이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더니 보름달과 그 많던 별들은 온데간데없고 온 하늘이 먹구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쿠구구궁, 쿠구구궁~
아니나 다를까 천둥소리가 들리더니 빗방울이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한다.
채 2분도 안 되어 한두 방울로 시작하던 빗방울이 장대비가 되어 쏟아져 내렸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쏟아진다.
나는 비를 피할 곳을 찾기 위해 서둘러 움직였다.
한참을 뛰다시피 하다가 거대한 암벽 아래, 비를 피하기에 적당한 동굴을 발견했다.
서둘러 그곳으로 들어가려 했는데 동굴 안쪽이 검은색이다.
랜턴으로 비춰봐도 잘 보이지 않고 그냥 검게만 보였다. 분명 움푹 패인 동굴인데 정작 들어가려니 검은색으로 막혀있는 것이다.
장대비는 계속 쏟아지고 더 이상 밖에 있을 수 없어 동굴 안쪽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어어어···으악”
순식간에 몸이 빨려 들어갔다.
그 후로 나는 블랙홀 같은 암흑의 구덩이에 빠져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바닥에 닿는 순간 머리가 터져 뇌수가 사방에 뿌려지고, 뱃가죽이 찢어져 내장이 꾸물꾸물 흘러내릴 것이다.
죽음의 모습이 눈 앞에 펼쳐지자 공포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팔을 뻗어 무언가라도 잡아보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손에 잡히는 건 그저 짙은 어둠일 뿐···
보잘것없고, 후회만 가득한 삶이었지만, 이런 의미 없는 죽음에는 필연적으로 억울함이 따른다.
억울하고 화가 나서 눈물도 주르륵 흐른다.
이제 곧 만나게 될 존재가 염라대왕일지 신일지 모르겠지만 욕이라도 실컷 해 주겠다고 다짐했다.
정신이 혼미해져 왔다.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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