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국가 행정조직 구성
이후 10일간 버모린을 비롯한 모든 영지가 혼란 아닌 혼란을 겪으며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제 평민이 된 하벨남작이 영지의 마을을 돌며 영지민들을 안심 시키고 새로운 군주를 도와 지금보다 더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선언하면서 영지는 다시 평안을 되찾게 되었다.
왕국 협상단은 감옥에서 나온 하이샌드백작을 데리고 왕성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감옥에서 나오던 삐쩍마른 하이샌드백작은 나를 보고 자지러지는 발작을 일으켰다. 지난 4개월동안 하루에 2끼만 먹이며 중노동을 시켰다. 영지민의 고통을 손수 느껴보라는 의미에서 남들보다 심하게 다뤘다.
나는 삐쩍마른 하이샌드백작에게 다가가 물었다.
“하이샌드백작, 그동안 중노동을 하면서 뭐 느낀 것 없나?”
“···”
“노예나 평민들도 모두 똑같은 사람들이다. 네놈이 4개월동안 겪은 중노동을 그들은 평생을 하면서 살아간다. 고작 4개월 일했다고 삐쩍 말라버린 네놈의 몸뚱어리를 봐라.
네놈이 모습이 노예나 평민들과 무엇이 다르냐? 지금의 네 모습을 평생 기억해라. 헛된 지위를 내세우고, 권력의 시녀가 되어 불쌍하고 약한자들을 착취하고 피박하던 과거의 너로 돌아가려거든 그렇게 해라.
허나 그리 되면 언젠 가는 내 손에 죽을 것이다. 지위는 능력 있는 자가 가져야 하고, 권력은 책임질 수 있는 자가 휘둘러야 한다. 과거에 너는 그것들 중 아무것도 갖추지 못했다.
나는 너를 지켜볼 것이다. 네가 진정으로 변화된 삶을 살아간다면 나는 너를 도울 것이고, 그렇지 않고 과거의 환영에 사로잡혀 그때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간다면 곧 나의 칼이 너의 목을 칠 것이다. 명심하기 바란다. 하이샌드백작”
내 말에 뭔가 느낀 것인지 하이샌드백작의 광대뼈가 뚝 튀어나온 얼굴에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힐을 시전했다.
“힐”
백색 광체가 하이샌드백작의 온몸을 감싸더니 몸속으로 스며들어 갔다. 그리고 잠시 후 온몸에서 활력이 솟구치고 삐쩍 말라버린 몸 이곳저곳의 근육들이 울퉁불퉁 움직이기 시작하며 몸의 균형을 잡아갔다.
말랐던 몸이 어느 정도 정상으로 돌아오며 보기 좋은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렇다고 살이 차오르거나 하지는 않지만 근육이 성장하면서 말랐던 몸이 약간 살이 오른 듯 보이는 것이다.
하이샌드백작이 자신의 몸 이곳저곳을 만져보더니 나를 보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철민경. 저를 죽이지 않고 살려주신 것에 감사드리며, 저의 잘못된 과거의 행적을 돌아보게 해 주심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삶에 지표가 될 방향을 제시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지위는 능력 있는 자가 가져야 하고, 권력은 책임질 수 있는 자가 휘둘러야 한다’는 그 말씀 가슴에 새기고 살아 가겠습니다.”
하이샌드백작은 왕세자 일행과 함께 떠났다. 떠나면서 여러 차례 레이든성을 뒤돌아 봤다.
“하이샌드백작, 레이든성에 뭐 놓고 온 것이 있나? 왜 자꾸 쳐다보는 거지?”
해리슨공작이 하이샌드백작에게 뒤돌아보는 연유를 물었다.
“철민경께서 저에게 해주신 말씀을 되새기며, 잊지 않기 위해 그분이 계신 저곳을 눈에 담으려 쳐다보는 것입니다.”
“허허, 그래. 어쩌면 그 말은 자네만을 위한 말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우리 모두에게 들으라고 한 말일 것이네. 적이 되어서는 안될 인물이야.”
해리슨공작이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흔든다.
“네, 만약 우리 레온왕국이 저분과 척을 진다면 아마도 주변 3강국 전체와 싸우는 것 보다 더 승산 없는 싸움을 해야 할 겁니다. 하지만 반대로 저분의 도움을 이끌어 낼 수만 있다면 어쩌면 레온왕국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왕세자가 끼어들어 대화에 참여한다.
“지속적이 도움을 바라는 건 어렵다는 생각이 드오. 하지만 조건이 맞다면 어쩌면 한두 번은 더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 않겠소?”
“네? 조건이라 하심은? 뭔가 방법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전하, 생각하시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려 주십시오.”
“그렇습니다. 방법을 알려주신다면 저희가 최선을 다해 수행하겠습니다.”
해리슨공작과 2명의 후작, 그리고 하이샌드백작이 왕세자의 말에 반색을 한다.
“방법? 방법이라기 보다는 가능성이라고 해야겠소. 철민경이 추구하는 사상과 만들고자 하는 세상에 함께 동참하여 함께 이루어가는 동료, 그리고 협력자로서의 지위를 가질 수 있다면 그의 도움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소.”
“아!!”
“어! 그러고 보니 하이샌드백작의 석방 조건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렇소, 공작의 지위와 넓은 땅도 싫다면서 고작 노예와 병든 평민들이라니, 앞뒤가 안 맞는 말인지라 이해가 잘 안 갑니다.”
리갈후작의 말에 왕세자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리갈 후작 무엇이 이해가 안 간다는 말이오? 나는 되려 거기에 해답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네? 거기에 해답이 있다니요?”
“생각해보시오. 공작위와 넓은 땅도 싫다는 사람이 왕위를 준다한들 좋아하겠소? 그는 마음만 먹으면 왕국 한두 개는 순식간에 쓸어 버릴 힘이 있는 사람이오. 그런 사람이 고작 노예와 병든 평민을 원했소. 그리고 하이샌드백작에게 힘들게 사는 노예와 영지민들을 생각하라 말했소. 뭐 느껴지는 바가 없소?”
“······..”
“······..”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딱 한 사람 하이샌드백작만 깨달은 듯이 말했다.
“그, 그렇군요. 그분은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고 계시는 거군요”
“그렇소. 백작. 철민경은 노예든 평민이든 귀족이든 왕족이든 모든 사람을 그냥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오. 잘못한 자는 그 누가 되었던 벌하고, 병들고 나약한 자들은 그 누가 되었던 돕고자 하는 사람이오. 우리가 그의 뜻에 동조하고 가고자 하는 곳으로 함께 동행할 수만 있다면 그는 결코 우리의 위험을 지켜보기만 하지 않을 것이오”
왕세자의 말에 모두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두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
레이든성 영주직무실에서 이제는 평민이 된 하벨과 독대를 하고 있다.
하벨은 이제 영주가 아니기에 레이든성의 영주성을 비우고자 했으나 내가 그냥 영주성에 거주하라 했다. 앞으로 하벨이 맡을 업무도 있고, 실제 내가 거주할 곳은 버모린의 영주성이 될 것이니 레이든성 영주성을 비워둘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벨은 아직도 그때의 감흥이 가시지 않았는지 상기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군주님 이제 저는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하벨의 말투가 바뀌었다. 이제 내가 자신의 상관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일단 영지 내 행정관 이상 모든 관료와 기사들을 소집해 주세요. 버모린에 있는 모든 행정관들도 마찬가지이며 상단의 주요 간부들도 부르세요. 우리 영지의 향후 방향과 운영 방침에 따른 발표가 있을 것이며, 더하여 인사 이동이 있을 겁니다. 한 사람도 빠지는 사람이 없게 해 주세요. 회의 일정은 앞으로 10일 후 레이든성 만찬 회장으로 잡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군주님”
나는 중대 발표를 하려고 한다.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것을 이제 실행해 옮기려는 것이다. 지난 10일동안 여러가지를 검토하고 또 검토하며 생각을 정리해 나갔다. 그리고 인사에 대한 부분도 철저하게 이중 삼중으로 검토하고 검증했다.
회의 당일 레이든성 만찬회장을 개조해 만든 넓은 회의장에 많은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며 의자에 않아 있었다.
많다고 해봐야 60여명 정도다. 남작영지 2개를 합쳤다고 해도 자작영지의 크기밖에 안되기에 일하는 행정관들도 그 수가 많지 않다.
거기에 지난번에 내가 사들인 행정노예였던 사람들 22명과 기사단 10명, 상단 간부 및 주요 인사 8명, 레이든영지기사단 4명, 해밀턴과 레이든영지 행정관 15명이 전부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는데 제이콥 집사가 다가왔다.
“시간이 되었습니다. 군주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 문을 열고 단상으로 걸어나갔다. 회의장에 앉아있던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 내가 단상에 설 때까지 나에게 시선을 떼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주시기 바랍니다.”
척! 척! 척!···..
의자에 착석하는 소리가 한동안 울리더니 이후 조용한 정적이 흘렀다.
“나는 오늘 중요한 발표를 하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앞으로 우리 나라의 발전 방향과 운영 방식, 그리고 인사에 관련한 사항을 오늘 여러분께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내 발표를 듣고 나와 함께 할 수 없다 생각되시는 분들은 떠난다 해도 아무런 재제를 가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의 자유 의지를 존중합니다.
그럼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일단 우리 나라는 앞으로 버모린도시와 레이든성 그리고 해밀턴성을 연결하는 하나의 거대한 도시국가로 발전할 것이며 도시국가의 명칭은 아사달 입니다.”
국가의 명칭 아사달이 내 입에서 나오자 회의장이 어수선해졌다. 여기 저기서 놀람이 담긴 탄성 소리와 숙덕거림으로 발표를 진행해 나가기가 어려웠다.
그때 하벨이 일어나 큰 소리로 외쳤다.
“다들 조용히 하시오. 군주님의 발표가 아직 안끝났소이다”
하벨의 외침에 회의장은 다시 안정을 찾았다.
“아사달이란 국명은 내가 아는 전설 속 나라의 도읍지입니다. 하늘에서 시조가 내려와 물과 불 그리고 바람을 다스리며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다’는 기치를 내걸고 나라를 열었습니다. 그 나라의 최초 도읍지가 바로 아사달입니다.
이사달에서는 노예도 없을 것이며, 굶주린 자도 없을 것이며, 피박 받는 자도 없을 것입니다.
아사달은 8세부터 12세까지의 어린아이들은 누구나 의무적으로 무료 교육을 받을 것이며, 이후 13세부터 17세까지 행정, 군사, 농업, 상업, 목공, 철공, 조선, 무역, 임업, 광업, 수산업 등 각 분야 별로 특별한 소질이 있는 아이들에게 전문화된 교육을 실시하여 전문 인력으로 양성할 것입니다. 이 또한 군주인 내가 모든 비용을 지불할 것입니다.
아사달은 직업이 없는 자는 국가에서 직업을 알선하여 직업을 갖게 할 것이며,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물러난 노인에게는 국가에서 매달 지원금을 주어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게 할 것 입니다.
아사달은 귀족이 존재하지 않으며, 누구나 노력하면 그 능력과 실력에 맞게 직위를 얻을 것입니다. 직위은 권한은 있되, 권력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또한 대물림도 되지 않습니다.
단 국가에 지대한 공을 세운 자에게는 특별한 훈장을 수여하여 그 공을 치하 할 것이며, 훈장의 소유자는 매달 지원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녀들은 국가 내에서 여러가지 해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당대에 한해 이루어지는 특혜입니다. 도시국가 아사달의 모든 해택은 당대에서만 이루어질 뿐, 그 어떠한 경우에도 후대로 지위와 권력이 되물림 되지 않을 것입니다.
아사달의 모든 국민은 병역의 의무를 져야 합니다. 18세부터 25세의 남성은 징집의 대상이 되며 3년간 군에 의무적으로 복무합니다. 3년의 군역을 맞춰야 도시국가 아사달의 정식 국민이 되어 시민권이 발급 됩니다. 이후 35세까지 예비군으로 1년에 2번 10일씩 소집되어 군사 훈련을 받음으로써 예비군으로서 책임을 다 하도록 합니다.
여성의 경우 18세부터 23세의 여성이 징집 대상이며 여성은 직접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군수품 보급 및 군 행정 지원 업무 등 직접 전투가 아닌 모든 업무 영역에서 복무합니다. 마찬가지 3년의 복무를 마치 후 시민권이 부여됩니다. 여성의 경우 예비군 훈련은 면제됩니다. 마지막으로 도시국가 아사달은 군주 아래 모든 이가 평등합니다.“
여기까지 발표하자 이번에 또 회의장 내부가 시장 바닥처럼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너무나 충격적인 발표였을 것이다. 노예가 없는 것은 그렇다 쳐도, 무료교육, 노인복지, 모든 백성의 직업알선, 남녀 징병제, 그리고 귀족이 없고 군주 아래 평등 사회라는 말은 이 시대의 사람들의 머리를 망치로 내리친듯한 충격을 선사했던 것이다.
회의실 내부의 어수선함이 좀처럼 가시지 않자, 나는 단상의 탁자를 내리치며 장 내를 정리하였다.
꽝! ~
단상 위에 있던 탁자가 폭음 소리를 내며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힘 조절을 한다고 했는데도 이 모양이다.
“내 발표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더 떠들 말이 있거든 나가십시오.”
시장 바닥 같던 실내의 어수선함이 삽시간에 쥐 죽은 듯 조용해 졌다. 그렇다고 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계속해서 도시국가 아사달의 행정조직 구성안을 발표하겠습니다. 도시국가 아사달은 군주의 모든 권한을 대행하는 총리가 있고, 그 아래 농림부, 국방부, 산업무역부, 교육부, 사법부, 보건복지부, 국토건설부, 행양수산부, 조세청 , 항만관리청, 국영사업체관리청 등 8부 3청으로 구성됩니다.
도시국가 아사달은 앞으로 2달 후, 버모린의 항구도시가 완공되면 모든 국민이 모인 자리에서 정식으로 선포될 것입니다.
그 전까지 준비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총리를 비롯한 8부3청을 담당한 인사를 단행하고 자 합니다. 8부 3청의 하부 인사에 대해서는 총리와 각 부의 장관 및 청장에게 일임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도시국가 아사달의 총리는 하벨 레이든 로즈입니다. 앞으로 나오십시오."
장 내에 우뢰와 같은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지며 하벨이 내 앞으로 나와 바른 자세를 취하고 섰다.
내가 다가가 총리를 상징하는 뱃지를 왼쪽 가슴에 달아주었다. 이 뱃지는 드워프들에게 부탁하여 제작한 금강석 세공품으로 골드드래곤을 형상화 한 뱃지이다. 총리와 각 부처의 뱃지의 모양이 서로 다른 모양을 가지고 있다.
총리는 골드드래곤의 형상에 눈에는 좁쌀만한 금강석이 박혀있다. 농림부는 라이스 모양, 국방부는 방패와 창칼, 보건복지부는 하트모양, 사법부는 죄의 저울 모양 등 각 부처 별로 모양이 모두 다르다.
총리 뱃지가 가슴에 달리자 하벨총리는 뒤로 두발 물러나더니 나에게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취하였다.
“나 도시국가 아사달의 군주, 강철민은 그대 하벨 레이든 로즈를 현 시간부로 도시국가 아사달의 총리로 임명한다. 군주 아래 평등한 국민 중 가장 높은 곳에 오른 자로서 모든 국민에게 모범을 보이며 나아가 국가 발전과 국민들의 안녕에 최선을 다해 주기를 바란다.”
“신, 하벨 레이든 로즈는 군주님의 하해와 같은 은혜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신은 앞으로 위로는 아사달의 태양이신 군주께 충성을 다할 것이며 아래로는 모든 국민들이 편안한 삶을 살아가도록 모든 힘과 노력을 아끼지 않겠음을 맹세합니다.”
하벨총리가 맹세를 마치자 회의실은 다시 한번 우뢰와 같은 박수 소리와 함성 소리로 장 내의 열기가 확끈 달아올랐다.
Commen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