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왕위계승전 (1)
전쟁은 거의 2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양쪽 진영에 다른 미노타우노스보다 1.5배정도 더 큰 놈들이 한 놈씩 있었다. 아마도 그놈들이 대장인 듯 싶었다. 그놈들은 뒤에서 전투를 관망하고 있었다. 역시 지능이 뛰어난 놈들은 나서지 않는다는 게 미지 수림의 철칙인 것 같다.
부하들이 죽어나가는데 뒤에서 지켜 보고만 있다.
한쪽이 밀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비슷한 숫자로 시작했지만 한쪽이 밀리자 급속도로 숫자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밀리는 쪽 대장이 뭔가 신호를 주자 전사들이 뒤로 빠지면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전투는 끝이 났다. 전장에 죽거나 다쳐서 쓰러진 미노타우노스가 거의 100마리정도는 우습게 넘을 것 같다. 그런데 승리한 진영의 놈들도 다친 전사를 수습하지 않고 그냥 전장을 빠져 나가고 있다.
“와우···땡큐다 . 땡큐”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미노타우노스 100마리를 공짜로 득템 한 것이다. 양쪽 진영이 모두 전장에서 빠져나가자 전장에는 신음 소리와 같은 괴성만이 가득 울려 퍼졌다. 그런데 어디서 몰려오는지 수많은 몬스터들이 전장으로 다시 몰려들기 시작했다.
“헐..저것들 모야..설마 나처럼 전투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놈들은 아니겠지?”
“아마도 주인님과 똑같은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아요”
“흥···내 것을 뺏길 만큼 내가 어리숙하지 않아···너희는 오늘이 제삿날이다..이놈들아”
오우거, 트롤, 샤벨타이거, 회색곰, 아울베어···등등 내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육식 몬스터와 육식 동물들은 다 모여들고 있었다. 그와 중에 또 자기들끼리 싸우는 놈들도 있다. 전장에 널린 게 먹을 것인데 그걸 또 더 가져가려고 싸우고 있는 것이다. 나는 도저히 그냥 볼 수가 없어서 라쿤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지상으로 급속 하강하면서 두리안에게 지시했다.
“죽은 놈들부터 일단 아공간으로 집어 넣어 두리안.”
“네···주인님. “
전장에 죽어있던 미노타우노스의 사체들이 아공간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적어도 60마리 정도는 아공간으로 이동한 것 같고 나머지 40마리 정도는 아직 죽지 않고 숨을 헐떡이고 있는 놈들이 대부분이었다.
내 것을 뺏으려고 달려드는 몬스터들은 인정사정 없이 베어버린다. 공격력 4,000에 육박하는 라쿤의 검신이 한번 휘둘러질 때마다 중형 몬스터는 몸이 반쪽으로 갈라져서 내장이 흘러내리거나 팔다리가 잘려나가기 일수였다.
대형 몬스터들은 라쿤을 쓰지 않고 내가 인정을 베풀어 주먹으로 두들겨 패면서 기절을 시켰다. 내가 다가오는 몬스터들을 무자비하게 죽여버리자 나중에는 몬스터들이 도망가기 바빴다. 중형 몬스터와 동물들은 도망가게 놔 뒀지만 대형 몬스터들은 끝까지 쫓아가 사냥했다.
그렇게 2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전장에 평화가 찾아왔다.
온전한 신체를 가진 생명체는 나 혼자 남은 것이다. 나는 살아있던 미노타우노스들의 심장에 라쿤을 박아 넣으며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녔다. 부상 당해서 곧 죽을 것 같던 미노타우노스 40마리를 단 30분만에 처리 버렸다.
그리고 추가 전리품으로 오우거 5마리와 트롤 8마리를 건졌다. 중형 몬스터도 상당수 건졌지만 모두 라쿤에게 수고비로 던져줬다.
그날 밤 나는 구덩이 속 야영지에서 고민했다.
두 부족의 개체 수가 상당했다는 것, 그리고 그런 대부족을 이끌고 있는 부족장들이 다른 미노타우노스보다 월등히 뛰어난 신체를 가졌다는 것, 혹시나 이들도 특수생명체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일단 내일부터 부족 마을 근처로 가서 하나씩 관찰해볼 생각이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구덩이를 L자 모양으로 파서 야영지로 사용하고 있었다. 위에서 눈먼 놈이 떨어져도 피해가 없도록 고안한 방법이다. 이렇게 L자형으로 야영지를 만들었더니 또 두리안이 아부의 극치를 떠는 모습을 보아야 했다.
다음날, 나는 전장을 기준으로 해서 주위 50km를 탐색했다. 그리고 한 부족을 발견했다. 방향으로 보아 어제 패배하고 도망친 부족이다. 부족의 규모는 매우 컸다. 지금까지 보아온 마을의 규모보다 적어도 8배는 커 보였다.
마을에는 토굴 뿐 아니라 가죽을 이용해 만든 커다란 움막도 지어져 있었고, 조악하기는 하지만 심지어 돌로 성벽까지 쌓아 놓고 있었다. 그만큼 문명화가 진행되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 정도면 거의 인간의 원시 문명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봐야 할 듯 싶다. 마을의 개체 수는 대략적으로 300마리는 넘어 보였다.
“어제 못해도 60-70마리는 죽는 것 같은데 그럼 평상시 400마리 정도 되는 샘이네”
“대형 몬스터 치고는 엄청난 규모의 서식지네요”
“서식지? 저 정도면
마을이라고 봐야지···저기 봐 바. 어설프긴 하지만 성벽까지 있잖아”
“그러네요.”
“이 정도 규모면 대평원에서 무서울 게 없을 거야. 오우거나 트롤도 사냥하고 다녔을 것 같은데”
“어제 전투에서 승리한 부족도 이 정도 규모겠죠?”
“그렇다고 봐야지.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고”
“이곳이 얼마나 살기 좋길래 이렇게 큰 부족이 2개나 있는 걸까요?”
“글쎄, 나는 딱히 다른 지역과 차이를 못 느끼겠는데.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다른 게 있을 수도 있으니 뭐라 말할 수는 없지”
나와 두리안이 언덕 위에서 한참 동안 마을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데 마을 중앙에 있는 거대한 움막에서 일반 미노타우노스보다 훨씬 큰 미노타우노스 한 마리가 나오는 것이 보였다.
“저 놈이다. 대장이···”
“우와..엄청 크네요. 다른 놈들보다 반은 더 큰 것 같아요”
일반 미노타우노스의 키가 6m 정도인데 이놈은 9m 정도 이니 두리안의 눈이 정확했다.
“두리안, 미노타우노스 개체 중에 저렇게 큰 개체가 있는 거야?”
“그건 잘 모르겠어요. 선조들이 기록에도 미노타우노스에 대한 내용은 일반적인 내용밖에 없어요”
“어제 보니까 상대편에도 저렇게 큰 놈이 한 마리 있었어···내 생각에는 저놈들이 특별한 생명체가 아닐까 하는데”
“그건 아닐 거예요. 특별한 생명체가 한 종족에 2마리가 있을 수는 없어요. 2마리가 존재한다면 더 이상 특별한 생명체라고 할 수 없어요”
“특별한 생명체는 한 종족 당 무조건 한 마리라는 거야?”
“네, 주인님. 선조들의 기록에 의하면, 신께서는 한 종족 당 한 마리의 특별한 생명체를 만들었으며 그들에게 대를 이어 특별한 힘을 물려줄 수 있게 함으로서 종족의 고유한 특성을 지키게 했다고 기록되어있어요.”
“종족 당 한 마리라···흠··· 그럼 인간도 특별한 힘을 가진 자가 존재하는 건가?”
“인간은 잘 모르겠어요. 그들은 그 자체로 특별하지 않을까요? 높은 지능과 튼튼한 무기로 세상을 지배하고 있잖아요. 이건 제 생각인데요. 신께서 특별한 생명체를 만든 것은 아마도 인간으로부터 종족을 보호하라는 뜻에서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흐흠···..그럴지도 모르지. 두리안 네 생각에 일리가 있어. 인간은 욕심이 많은 존재라서 자기들끼리도 전쟁을 하며 상대 것을 빼앗으려 하니까. 아마 신이라 해도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 할 거야”
“그냥 제 생각이에요. 주인님. 저도 인간들을 한번도 보지 못했으니까요.”
“두리안? 네 앞에 인간이 있잖아. 매일 보고 사는데 왜 한번도 못 봤다고 하는 거냐?”
“······..네..인간 주인님···알아서 모시겠습니다···.헤헤”
“············..?”
두리안과 한창 대화하고 있을 때, 대장으로 보이는 덩치 큰 미노타우노스는 움막에서 고기들을 꺼내와 움막 앞에 모여든 일반 미노타우노스들과 새끼 미노타우노스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가족을 잃은 유족들에게 위로금을 전해주는 모습과 흡사해 보였다.
나는 조용히 후퇴하기로 했다. 이 마을을 사냥하려면 굉장히 세밀한 전략이 필요했다. 막말로 예전처럼 공중에 떠서 공격한다 해도 저놈들이 던지는 도끼가 한번에 400개가 날아온다면 아무리 나라고 해도 버티기 힘들다. 잘못하다가는 사망각이 나오는 것이다.
나는 또 다른 마을을 찾아보기로 했다.
또 다른 마을은 첫번째 마을에서 정확히 60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역시나 마을 외각으로 바위나 돌, 그리고 흙을 모아 만든 높이 6-7m의 조잡한 성벽이 만들어져 있고, 마을 안쪽으로는 토굴과 움막 등이 산재해 있었다. 마을의 규모는 여기가 조금 더 커 보였다. 머릿수는 대략 500마리 정도 되어 보인다.
이곳도 이전 마을과 마찬가지로 마을 중앙에 커다란 움막이 지어져 있다.
움막 앞에서는 지금 살벌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이 마을의 대장으로 보이는 덩치 큰 미노타우노스가 부족민으로 보이는 미노타우노스를 인정사정 없이 두들겨 패고 있다. 한 놈이 인사불성이 되어 쓰러지면 또 다른 놈을 패고, 쓰러지면 또 다른 놈을 패고, 구타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허를 찼다.
“뭐 저런 깡패 같은 놈이 다 있어. 지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운 부하를 저렇게 패다니···쯧쯧”
“이전 마을과 완전 반대네요. 주인님”
“그러게 말이야···.더 볼 거 없겠다. 이만 철수하자”
“네..주인님”
그날 밤, 나와 두리안은 마노타우노스 마을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전략을 잘 짠다면 마을을 정복할 수는 있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덩치 큰 두 놈은 일반적인 미노타우노스가 아닌 것 같아.”
“하지만 주인님······”
“알어, 두리안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그렇지만 일반 몬스터의 지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죽은 동료의 가족을 위로하거나 동료를 죽이지 않을 만큼 폭행하거나 하는 행동은 하지 않아. “
“그, 그렇지요”
“이것은 지능을 뛰어넘어 생각하고 판단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봐서 사고판단 능력은 특별한 생명체만이 가능했어”
“그럼 어쩌실 건가요. 주인님?”
“아무래도 대장 놈을 만나봐야겠어, 만약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말이 통할 거야. 그 고대 언어가 그놈들에게도 있을 테니까”
“만나신다면 어느 쪽을···?
“당연히 첫 번째로 갔던 마을이지, 아무렴 그 깡패 같은 놈을 만날까. 하는 짓 보니까 한 성깔 하겠던데···..”
나는 두 번째 마을 대장놈의 성깔이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나 자신도 그런 종자들을 보면 참지 못하는 다혈질의 열혈남이다 보니 틀림없이 싸움이 일어날 것이다. 그래서 그쪽은 아예 포기하기로 한 거다.
‘일단 싸울 때 싸우더라도 확인은 해 봐야지, 괜히 다 죽이면 왠지 찝찝할 것 같아’
나는 어두운 밤을 틈타 투명화 마법을 걸었다.
첫번째 마을 대장의 움막으로 침투하기 위해 플라이(Fly)마법으로 마을 중앙에 내려 섰다. 마을 이곳 저곳에는 경비 미노타우노스가 돌아 다니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대장놈이 있는 움막으로 들어갔다. 바깥에서 부터 들리던 코 고는 소리가 움막에 들어서자 더욱 커지면서 귀청을 자극해 인상이 찌푸려졌다. 나는 발을 높이 들어 대장놈의 코를 냅다 찍어버렸다.
-커컥컥···음머어?
대장 미노타우노스는 코를 잡고 벌떡 일어났지만 주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픈 코를 부여잡고 머리를 기웃거리던 대장 미노타우노스에게 내가 속삭이듯 말했다.
“야~ 내 말 들리냐?”
“음모어어?”
나는 대장 미노타우노스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자 순간적으로 실망감이 밀려왔다.
“내 말을 못 알아 듣겠냐?”
“누, 누구냐? 어, 어떻게 일족의 말을 하는 것이냐?”
‘맞구나, 이놈 특별한 생명체가 맞아’
나는 마음속으로 대장 미노타우노스가 특별한 생명체라는 것을 확신했다.
“내가 누구인지는 알 필요 없고 넌 이름이 뭐냐?”
“······”
“오늘 낮에 다른 부족 놈한테 엄청 깨지던데 말야. 내가 도와줄 수도 있는데···.말을 안 할 거면 그냥 가고···”
“내, 내 이름은 타만이다. 타만”
“그래, 타만, 내 이름은 강철민이다.”
“강···철···민”
“나는 위대한 존재이다. 네놈들이 감히 바라보지도 못할 위대한 존재이다”
나는 사기를 치기로 했다. 어차피 이놈들은 나중에 나를 드래곤이라고 착각할 것이다. 그러기 전에 미리 사기를 쳐서 순종하게 만드는 것이 더 좋겠다고 판단했다.
나는 타만 앞에 모습을 보이면서 2서클 파이어볼(Fire Ball) 4개를 만들어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게 만들었다. 그 모습을 본 타만은 눈이 빠질 듯이 커지면서 급히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역시 지능이 높은 놈들은 판단도 빠르구나’
“타만이 위대한 존재를 뵙습니다.”
나에 대한 타만의 태도도 공손하게 바뀌었다.
“타만, 낮에 싸웠던 부족은 어떤 부족이고 너희와는 왜 싸운 거지?”
“오늘 낮에 저희와 싸운 부족은 저의 동생이 이끄는 부족입니다. 동생의 이름은 로이만이라 합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뒤를 잇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뒤를 잇기 위해 싸운다고? 너의 아비가 누구인데?”
“저의 아버지는 종족의 왕 카세라둔 입니다. 그 분은 곧 죽음을 앞두고 있습니다. 하여 우리는 가장 강한 오직 한 명만이 일족의 뒤를 잇는다는 불문율에 따라 마지막 한 명이 되기 위해 싸우는 것입니다.”
“오직 한명? 그럼 싸움에 지면 모두 죽는 거냐?”
“그렇습니다. 오직 한 명이 살아남아 아버지의 뒤를 잇는 것입니다. 이것은 수백만 년 동안 지켜져 온 저희 일족만의 불문율 입니다.”
“그럼 너희 둘만 싸워서 이기는 자가 뒤를 이으면 되지, 왜 죄 없는 부족민까지 희생 시키는 거냐?”
“처음에 저는 그렇게 제안을 했습니다. 일대일로 싸워서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보자 했지만 동생이 거절했습니다. 저는 로이만 보다 강하지만, 동생의 부족은 제 부족보다 큽니다. 당연히 로이만은 일대일 대결보다 부족 전쟁을 택한 겁니다.”
“로이만이라는 놈은 성격이 아주 못돼먹었던데?”
“···············.”
나는 아무 말 하지 않은 타만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로이만의 그런 성정은 아버지의 근심거리였습니다.”
“정리하면 싸워 이기는 한 놈이 너희 일족의 힘을 물려받아 다음 대 우두머리가 된다는 말이구나?”
“네 그렇습니다.”
“내가 너의 아비를 만나볼 수 있을까?”
“무슨 일로···?”
“넌 이대로면 니 동생 로이만에게 져서 죽을 것이다.”
“······..”
“내가 널 도와도 되는지, 그리고 도움을 주면 나에게 무엇을 줄 것인지 너의 아비와 거래를 할 것이다.”
“그, 그게 무, 무슨 말씀입니까?”
“나는 내가 선택한 자가 미노타우노스의 특별한 생명체가 되기를 원한다. 성질이 포악하여 부족민을 때려 죽이는 자가 어찌 종족의 왕이 될 수 있겠냐. 네 아비를 만나야겠다. 나를 안내해라. 타만”
“아, 알겠습니다. 위대한 존재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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