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하만과의 재회
레이든성으로 돌아온 나는 바로 저택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으흐흐··· 뭐니 뭐니 해도 집이 최고구나. 편안하고 안락한 게 너무 좋다.”
포근한 느낌에 잠시 눈을 감았다 떠보니 다음날 아침이었다. 많이 피곤했었나 보다.
거실로 나오자 집사 헨리가 다가와 보고했다.
내자 자고 있는 동안 손님들이 많이 왔었다.
먼저 영주성에서 저녁 식사를 초대한다고 연락이 왔지만 주무시고 있는 관계로 정중히 거절했다고 한다.
그리고 스콜과 조나단, 할버트가 상단 건설과 관련하여 보고한다 찾아왔지만 역시 주무시고 있는 관계로 오늘로 미뤘다 했다.
마지막으로 해밀턴성에서 왔다는 하만과 그의 딸 줄리아가 찾아왔지만 편히 주무시는 주군을 깨울 수 없다며 기다리겠다고 했단다.
두 번째까지는 시큰둥하다가 하만이 왔다는 말에 벌떡 일어났다.
“하만, 하만이 왔어요? 어디에, 지금 어디에 있어요?”
그때 뒷 쪽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저 여기 있습니다. 주군”
하만이다. 근 한 달 만에 보는 얼굴이다. 고생을 했는지 얼굴살이 반쪽이 되어있다. 옆에는 줄리아가 다소곳하게 서서 인사를 한다. 줄리아는 여전히 귀여웠다.
“오~ 하만, 그렇지 않아도 이안남작 그놈이 술 먹고 행패 부리지 않았나 걱정 했었는데 별일 없었지요?”
“네, 주군. 아무일 없었습니다. 주군께서 입으실 갑옷을 만드느라 좀 신경을 썼더니 살이 좀 빠진 겁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하”
“다행입니다. 줄리아는 더 예뻐진 것 같네. 이젠 시집가도 되겠다.”
내 농담에 줄리아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하만의 등뒤로 숨어버린다.
‘그 말이 저렇게 오버할 만한 말인가? 이 곳 사람들한테는 농담도 섣불리 못하겠어.’
“우선 이리 와서 앉으세요”
“네, 주군”
하만은 자리에 앉자마자 가져온 보따리를 풀었다.
멋들어진 가죽 갑옷이 모습을 드러냈다.
옅은 금빛을 머금고 있는 갑옷은 매끈한 디자인에 움직임이 자유롭도록 고안된 전신형 갑옷이었다.
상갑과 하갑으로 나눠져 있고, 다시 목과 팔, 어깨와 팔목을 보호할 수 있도록 별도의 보호 장비가 있었다.
신발은 가죽과 더불어 금속 재질처럼 반짝이는 빛을 머금고 있었다.
오우거 가죽 뿐 아니라 약간의 금속 재질이 추가된 듯 보였다.
그리고 손가락이 노출되는 장갑까지 풀세트로 구성되어 있다.
“한번 입어 보시지요. “
“그, 그럴까요. 하하”
나는 입고 있던 로브와 등산복을 벗고, 가죽 갑옷을 하나하나 입어 보았다.
하나씩 갖춰 입을 때마다 몸에 착 달라 붙는 것이, 마치 처음부터 나만을 위해 존재했던 갑옷 같았다.
움직임에 전혀 부담스럽지 않고 착용감도 너무 편했다.
무엇보다 가벼웠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듯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것이 실력 있는 장인만 가질 수 있는 능력 아닌가 싶다.
장갑까지 착용하자, 내 모습은 판타지소설 표지에 그려진 주인공 마냥 멋들어진 모습이 되었다.
“마음에 듭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주군”
“한 가지 더요?”
하만이 옆에 앉아있던 줄리아에게 눈짓을 했다.
줄리아가 고개을 끄덕이며 또 다른 보따리를 풀었다.
엷은 회색빛을 머금은 로브가 나왔다.
“이것은 줄리아가 만든 로브입니다. 오우거의 가죽으로 만들어서 높은 방어력을 가지고 있으며 방한, 방열에도 효과가 뛰어납니다. 한번 입어 보세요”
“이걸 줄리아가 만들었다고요?”
줄리아가 수줍은 듯 고개를 숙였다.
나는 로브를 입었다. 역시 무척 가벼웠다.
그리고 부드럽고 아늑한 느낌과 함께, 마치 갑옷과 원래부터 하나라는 듯 아무런 간섭을 주지 않았다.
너무 마음에 들었다.
나는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거실 이곳 저곳을 걸어 다녀 보았다.
입은 듯, 안 입은 듯 행동에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두 사람이 너무 고마워서 약속대로 남은 오우거 가죽을 모두 하만과 줄리아에게 넘겨 주었다.
부담스러워 하는 하만에게 일에 대한 대가는 받아야 한다며 억지로 떠 넘겼다.
잠시 담화를 나누다 해밀턴성의 상황에 대해 물었다.
“요즘 이안남작은 뭘 하고 있나요?”
“허허, 그 작자의 횡포가 날로 심해지고 있습니다.
가진 것을 다 털리고 아들 바우보도 정신병자가 되었다는 소문이 돌고 나서 얼마 동안은 저택 밖으로 나오지 않고 술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부터 성내 상인들과 거주하는 평민들에게 재계약을 맺는다며 부당한 계약을 요구 하고 나섰습니다.
상인들이 이전 계약의 이행을 요구했지만 병사들까지 동원하여 강제로 높은 세율의 갱신 계약을 종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상인들은 어떻게 하고 있나요?”
“상인들 중 저처럼 자유인 신분의 사람들은 하나 둘씩 해밀턴영지를 떠나고 있습니다.
멀지 않아 해밀턴성에는 영지 소속의 상단이나 상인만 남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볼튼자작의 볼튼상단도 이미 영지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영지 운영 자금이 없어 골드방카로부터 영지의 땅을 담보로 막대한 자금을 빌렸다는 소문도 돌고 있습니다.”
“흠, 해밀턴영지는 거의 끝장난 것 같네요”
“네. 아마도 다시 살아나기 힘들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롬에게 들은 이야기 입니다만, 이안남작이 성 북쪽 산자락에 사람들의 출입을 막고 그곳에서 군대를 양성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역시 목적은 이곳 레이든영지를 집어 삼키려는 속셈이겠군요?”
“아마도 그럴 것이라 생각됩니다.”
“알겠습니다. 그 문제는 나중에 하벨영주님과 상의해 보도록 할게요.
먼 길 오셨는데 당분간 쉬시고 상단 건물이 완성되면 그쪽으로 거처를 옮기도록 하세요”
“네 오늘만 쉬고 저도 내일부터 상단 부지로 가서 허드렛일이라도 도울까 합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쉬시기 뭐하면 가죽 공방에서 함께 일할 장인들을 모셔오는 건 어떠세요?
아무래도 가죽의 양이 많다 보니 두 사람이 하기에는 너무 벅찰듯합니다. 마음에 맞으시고 실력 좋은 분 있으시면 모셔오셔도 됩니다.
급여는 매월 섭섭지 않게 지불할 것이니, 아마 따로 독립하여 일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벌 수 있을 겁니다.”
“정말 그리해도 되겠습니까. 주군?
그렇지 않아도 제가 오우거 가죽 다루는 것을 보고 부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곤란한 상황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을 모두 데려와도 되겠습니까?”
“네, 얼마든지 데려오세요.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하만과 줄리아를 쉬게 하고 잠시 영주성에 들렀다.
나에게 영주성의 문은 항상 열려있으므로 따로 연락을 취하거나 하는 겉치레가 없어서 좋았다.
“어서오시오. 철민경.”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하벨영주님”
“안녕하다 마다요. 내가 요새 하루하루 아주 신이 나서 다시 30대로 돌아간 듯하오. 이게 다 철민경 덕분 아니겠소. 하하하”
“별말씀을요. 어제 밤에 초대 해 주셨다고 해서요. 특별한 일이 있는가 해서 찾아 왔습니다.”
내 말에 하벨남작은 손사래를 쳤다.
“아니오. 아니오. 특별한 건 아니고, 영지의 마을들을 일주하며 많은 영지민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고 들었소.
그래서 내가 고마운 마음에 저녁이라도 함께 하고자 초대한 것인데, 많이 피곤했을 거란 생각을 미쳐 못했소.
내가 이리 사과 하겠소. 철민경”
“그런 거라면 너무 개의치 마세요. 내가 좋아서 한 일이니 공치사 받을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내일쯤 해서 그린마운틴에 다녀올 생각입니다.”
“아!, 혼자 가시면 위험하지 않겠소? 대형몬스터가 얼마나 있는지 알려진 정보가 아무것도 없는지라”
“괜찮습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요. 그 점은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알겠소. 철민경이 하는 일이라면 걱정할 필요가 어디 있겠소. 하하”
“그건 그렇고, 어제 해밀턴성에서 넘어온 지인이 가져온 정보가 있어요. 이안남작이 해밀턴성 북쪽 산 자락을 틀어 막은 채 군사 훈련을 하고 있다는 정보입니다.”
“뭐라고요? 버, 벌써 군사 훈련을 시작했단 말이오?”
“그렇다고 하네요. 영주님도 이제 슬슬 준비를 하셔야 할 듯 합니다.”
“알겠소, 알려줘서 고맙소. 우리도 징집을 해서 군사 훈련을 시작해야 하겠소.”
“다음 달이면 수확기인데 징집을 하면 수확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그러긴 하오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장 영지가 위험한데 어쩌겠소”
“징집은 나중에 생각하시고, 일단 영지전 이후를 대비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영지전 이후라니 무슨 말씀이시오?”
“사실 저는 영지전을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막말로 나 혼자서도 이안남작의 병력을 쓸어버릴 수 있으니까요.”
“헉! 그, 그렇지요. 철민경이라면 그럴 수 있지요.”
“제가 말한 영지전 이후란 영지 병합 후를 말하는 겁니다.
해밀턴영지의 영지민들은 이번 영지전을 전후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될 겁니다.
영주성이 털려 아무것도 없는 이안남작이 영지민들이 수확한 곡물을 그대로 놔 둘까요?
더구나 영지전을 앞두고 비축한 군량도 없을 텐데 말입니다.”
“흠 듣고 보니 또 그렇겠구려. 안 그래도 해밀턴영지에서 매년 아사자가 속출한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불편했는데 이번에는 더 큰 곤욕을 치를지 모르겠소”
“영지전을 빠른 시일 내에 끝내고 해밀턴 영지민을 구휼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식량을 많이 비축하고, 기타 생필품 등도 많이 확보해야 하고요.
제가 영주님께 준비하시라 한 건 이런 것들을 지금부터 구매하여 확보해 놓으라는 거였습니다.”
“아!! 그리하겠소.
영지전이야 철민경께서 도와주시면 질래야 질 수 없는 전쟁이 될 것이니, 이제부터 나는 군량과 생필품을 확보하는데 최우선적으로 일을 진행하겠소.
하지만 철민경, 모으는 것에 최선은 다 하겠지만 레이든영지의 예산은 그리 넉넉하지 못하오. 확보한 물량이 철민경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도 있소.”
하벨남작은 미안해 하면서도 창피한 듯한 표정을 짓는다. 나도 영지 사정을 뻔히 아는데 대책 없이 말한 것은 아니다.
“그 점은 염려하지 마세요. 상단 건물이 완공되고 경매가 열리면, 못해도 세금으로 5만골드 이상은 들어올 것이며, 일주일 간격으로 그 이상의 세금이 계속 들어올 겁니다.”
“5, 5만골드라 하셨소? 그리고 일주일 간격으로 그 만큼의 금액이 계속 들어온다고요?”
“그렇습니다. 그러니 자금 걱정은 하지 마시고, 확보할 수 있을 만큼 많이 확보해 놓으세요.
그리고 여유 자금들은 계속 모으셨다가 영지개발이나 개간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시고요.
해밀턴영지에 소속되어있는 9개의 마을은 지난 10년간 영지민이 꾸준히 줄어들어 농지 곳곳이 황폐화 되었다 들었습니다.
그곳을 다시 개간하여 새로운 영지민을 받아 들여야 할 겁니다.”
“알겠소. 나는 무조건 철민경 말에 따르겠소.
나와 우리 레이든영지에 무슨 복이 있어 철민경께서 오셨는지 모르지만, 요새 나는 이 터에 자리 잡으신 선조님들께 감사를 드리고 있소. 하하하!”
“그럼 저는 준비할 것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점심이라도 같이 하고 가시오. 철민경”
나는 뒤돌아서 그냥 나왔다.
점심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붙잡혀서 시간만 낭비하다 또 오후 늦게서야 나올 것 같아 딱 잘라 거절하고 그냥 나왔다.
상단 건설 현장에 갔더니, 건물들이 얼추 완성된 듯 보였다. 외관은 거의 다 된듯하고 내부 시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대부분 목재로 만들다 보니 만들기는 금방 만든다.
그리고 공사 인원이,
‘어휴~ 건물 7채 세우는데 뭔 사람이 200명씩이나···,이러니 한 달도 안돼서 이런 작업 효율이 나오는 거겠지.’
내가 나타나자 스콜용병대 3인방이 뭣 빠지게 뛰어오고 있다.
“주~~~군~~~”
할버트의 우렁찬 목소리가 공사판에 울려 퍼지자, 일하는 인부들이 다들 한번씩 쳐다본다.
“나오셨습니까. 주군”
정제된 목소리의 스콜,
“오랜만에 뵙습니다. 얼굴 잃어 버리겠어요. 주군”
조나단의 장난기 섞인 목소리도.
“주군, 제가 여기 확실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할버트? 오우거 목아지라도 고아 먹었어? 사람들 많은 데서 뭔 괴성을 지르고 난리야?”
나는 얼마 전부터 3인방의 간곡한 요청에 의해 이들에게 말을 놓기로 했다.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말을 놓자니 찝찝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사리에 맞는다고 하니 그냥 그렇게 하기로 했다.
“죄송합니다. 주군, 제가 너무 기쁘다 보니 다음부터 조심하겠습니다.”
할버트는 차렷 자세를 취하며 30도 각도로 고개를 숙였다.
“알았어. 그리고 스콜, 진척 상황은 어때? 오픈에는 문제 없겠지?”
“일정에 차질은 없습니다. 다만 본관 지하 창고에 마법 수식을 넣어야 하는데 마법사가 아직 도착하지 않고 있습니다.”
‘에휴~ 그거 내가 할 줄만 알면 당장 해버리는 건데’
나는 마법 수식이 뭔지도 모른다.
본관 지하에 150평 규모로 대형 지하 창고가 들어선다.
그곳에는 몬스터 가죽 보관과 완성된 가죽 제품을 적재하는 창고로 쓸 계획이다.
그래서 부패방지 마법, 습도 및 제습 조절 마법, 공기청정 마법, 도난방지 마법들의 수식을 벽에 새겨야 하는데 이놈의 마법사가 아직 안온거다.
‘비용도 수식 하나 당 200골드나 받아쳐먹었으면 약속한 날짜에 와서 제대로 일을 해야 할 거 아녀. 나중에 걸리면 죽었어 아주···’
“그래 알아서 오겠지 뭐, 그건 그렇고 나는 내일부터 3일정도 출장을 다녀 올 거야. 뭔가 내가 해결해줘야 할일 있으면 지금 말해 줘”
“현재로써는 없습니다. 그런데 출장이라 하시면 아마도 거기 가시는 겁니까?”
스콜의 물음에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무사히 잘 다녀 오십시오”
3명이서 동시에 합창을 한다.
“그래, 그리고 저택에 해밀턴성에서 온 하만이란 가죽 장인과 그 딸이 있을 거야. 앞으로 함께 할 동료들이니까 서로 인사 나누고 친하게 지내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역시 3명이서 동시에 합창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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