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죽은 자의 선물, 다이아몬드
펄펄 끊고 있는 용암 구덩이를 지나자, 거대한 동굴의 입구가 보인다. 높이가 15m쯤 되어 보이는 동굴은 카이돈이 살기에는 작아 보였다. 동굴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200m정도 들어가자 입구와는 비교가 안되는 높이 50m, 폭 60m의 거대한 공동이 나왔다. 그리고 입구의 맞은편으로 입구와 비슷한 크기의 또 다른 동굴이 뚫려있다. 냄새로 보아 카이돈이 살던 레어는 확실한데 공동 안에는 카이돈의 알이 보이지 않았다.
입구 맞은편의 또 다른 동굴로 걸어 들어갔다. 100m 쯤 들어가자 또 공동이 나왔다. 카이돈의 레어보다 훨씬 작아 보였고 동굴 벽이 반짝 반짝 빛나고 있었다.
공동의 중앙에는 큰 알이 하나 있다. 드래곤의 알과 비슷한 크기인데 껍질 표면에 큼지막한 붉은 반점이 여러 개 있다.
‘알은 살려주겠다고 약속했으니 건들지 않을게. 걱정 마라 카이돈’
나는 알에서 시선을 떼고 벽에서 반짝거리고 있는 투명한 광석을 살펴보았다.
“금강석이에요. 주인님. 보석이에요. 보석, 그것도 보석 중에서 가장 가치있는 금강석이에요”
보석을 좋아하는 골드 고블린 종족답게 두리안은 무척 흥분하며 소리를 질렀다.
“금강석? 혹시 다이아몬드?”
“다이아몬드가 뭔지 모르지만, 금강석 확실히 맞아요. 굉장히 단단해서 쉽게 깨지지 않아요”
“그럼 다이아몬드가 맞는데. 다이아몬드가 이렇게 생겼나? 원래 투명하고 여러 방향으로 빛도 반사하고···“
“그건 가공한 금강석이고요. 이건 원석이에요. 모든 보석은 원석 일 땐 다 저런 식이에요”
“그래? 그럼 이게 다..그 다이아몬드, 아니 금강석이라는 거지?”
“네. 주인님은 엄청난 부자가 된 거예요. “
“우와···우와···.이게 다 얼마치야. 두리안 빨리 캐자. 금강석 빨리 깨자..하하하!!”
“헤헤, ·네 주인님 같이 캐요”
그날부터 두리안과 나는 공동에서 숙식을 하며 금강석을 캐기 시작했다.
내가 라쿤으로 금강석이 박힌 벽 주변을 깨부수면 두리안이 바닥에 떨어진 바위 덩어리에서 금강석만 축출해 아공간에 저장했다.
그런데 이런 작업이 쉽지가 않았다. 금강석도 단단하지만 그것을 움켜쥐고 있는 암석도 굉장히 단단했다. 동굴 벽을 부수고, 분리된 암석에서 금강석을 축출하는 과정에 상당한 시간을 소비해야 했다. 하루 동안 쉬지 않고 일해도 10개 캐는 게 고작이었다.
카이돈의 알은 혹시 잘못해서 깨질까 봐, 카이돈이 살던 넓은 공동으로 옮겨 놨다.
20일 동안 눈에 보이는 모든 금강석을 캤다. 엄청나게 지겨웠지만 이게 다 돈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은 좋았다. 혹시 몰라 벽 이곳 저곳을 부수면서 벽 속에 묻힌 금강석이 있는지 찾아봤지만 더 이상 금강석은 발견할 수 없었다.
캐낸 금광석의 원석은 작은 것은 새끼 손톱만 한 것부터 제일 큰 것은 내 주먹 두 개를 합친 것보다 컸다. 딱 두리안의 머리통만 했다. 금강석의 개수는 196개나 되었다. 카이돈이 알을 살려준 대가로 정말 값진 선물을 주고 떠났다.
나는 작은 공동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카이돈의 알을 원래 있던 자리에 놓아 두었다.
*********
카이돈의 레어를 빠져나와 구덩이 야영지로 돌아왔다. 이틀 간 휴식을 취하며 광산 노동자의 삶을 정리했다. 다시 본업인 사냥꾼으로 돌아가기 위해 준비했다.
“두리안? 너희 일족은 보석에 조예가 깊잖아? 그치?
“네. 주인님”
“그럼 보석 가공이나 뭐 그런 것도 할 줄 아니?”
“아하, 금강석 가공 때문에 그러시는 거군요? 할 줄 알아요. 그렇지 않아도 시간 날 때마다 하나씩 할 생각이었어요. 주인님”
“그래? 그럼 보석 가공은 너에게 맡길게. 그리고 우리가 캔 금강석 중에서 제일 큰 것은 너에게 줄께. 수고비라고 생각해라. 괜찮지?”
“아, 감사합니다. 주인님. 정말 열심히 할게요. 감사합니다.”
두리안은 뛸 듯이 기뻐했다. 금강석 중 가장 큰 것이 두리안 머리통만 한 것이다. 두리안도 두리안 조상들도 지금까지 한번도 보지 못했을 정도로 큰 것이다. 그런 보물을 얻었으니 일생일대의 행운인 것이다.
“그리고 두리안, 현재 아공간의 남은 용량이 어떻게 되는 거지?”
“현재 아공간 적재 총량은 1,002톤 이에요. 그 중에서 사용하고 있는 중량은 800톤 이에요”
“얼마 안 남았네”
“네”
“지금 99레벨이라 곧 100레벨이 되면 아공간이 2,048톤 까지 늘어날 거야. “
“여기만큼 주인님의 레벨을 빨리 올릴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을 것 같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럼 내일부터 다시 레비탄을 잡자. 어차피 레비탄은 가죽만 얻으면 되니까. 여기 구덩이 야영장을 좀 더 넓혀서 레비탄 가죽을 잠시 보관하도록 하는 게 좋겠어”
“훌륭하신 생각이에요. 역시 주인님은 정말 정말 똑똑해요. 존경합니다. 주인님”
“너 갈수록 아부가 심해지는 거 아녀? 그래도 기분은 안 나쁘네..하하”
“저는 사실만 말했을 뿐이에요. 주인님. 헤헤”
“잠이나 자자..내일을 위해서···”
“네, 주인님”
다음날부터 두리안과 나는, 20일 동안 레비탄 5만 마리를 잡았다. 지금까지 늪지의 섬에서 레비탄 총 6만마리를 잡았으며, 레드 드레이크를 사냥했다. 그리고 금강석 원석을 196개 획득했다.
처음에는 아공간의 적재 제한으로 고민을 했었지만 레벨이 115인 현재, 아공간의 여유가 꽤 남았다.
아공간 : 4,096,000kg 제한 (3,503t/4,096t)
나는 레비탄을 10만마리 채우려 했지만 더 이상 섬 근처로 레비탄들이 오지 않으려고 했다. 가면 죽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 같다. 포기하고 늪지대에서 철수를 결정했다.
플라이(Fly)로 늪지대 위를 날면서 나에게 엄청난 부를 안겨준 레비탄과 레드 드레이크 카이돈에게 마음속으로 고마움(?)을 전했다.
*********
날씨는 늦가을로 접어 들었다. 한 두달 지나면 겨울이 찾아올 것이다. 월동 준비를 해 놔야 하는데 뭘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아직도 지구에서 입고 온 등산복을 입고 있는데, 바지는 긴 바지라 그렇다 해도 상의는 반팔 셔츠에 등산 조끼를 입고 있다. 준비해온 여분의 옷도 반팔 티나 속옷이므로 월동 준비에 별 도움이 안된다.
혹시 두리안이 가죽 옷도 만들 수 있는지 물어봤다.
“아니요. 모두 아래 것들이 만들어준 것 입고 다녀서 저는 옷을 만들지 몰라요. 주인님”
“···”
“혹시 주인님, 제가 여분으로 가져온 가죽 옷을 입어 보실래요?”
“흠···고맙지만 네가 입는 옷은 내 다리 한쪽도 안 들어갈 것 같아”
“하긴, 그렇죠.”
“햐~·뭔가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이러다 겨울에 얼어 죽을 수도 있는데···”
나는 북쪽으로 가는 상공에서 사냥감을 포식하고 있는 오우거 한 마리를 발견하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지금 막 사냥하여 아직 식지 않은 피를 마시느라 정신이 없는 오우거.
내가 다가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편한 자세로 앉아서 식사에 열중하고 있었다. 내가 다가와 앞에 서자 그제야 놈은 나를 바라보면서 성을 냈다.
이 지역의 포식자인 자신 앞에 왠 뚱뚱한 고블린 같은 한 마리가 팔장을 끼고 건방지게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것이다. 자세히 보니 고블린 보다 조금 크긴 하지만 그중에 저렇게 큰 놈이 간혹 있으니 고블린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오우거는 어이가 없어서 팔을 뻗어 나를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라쿤으로 놈의 팔을 쳐내고 그대로 달려들어 주먹으로 놈의 주둥아리를 냅다 후려 쳐버렸다.
크아아악~
짧은 비명과 함께 놈의 목이 뒤로 꺾이면서 몸통이 뒤로 벌러덩 넘어갔다. 자존심이 상했는지 벌떡 일어나 두손을 모아 쥐더니 내 머리를 내려 찍었다. 사이드 스텝으로 살짝 피하자, 놈의 모아 쥔 두손이 내가 섰던 자리를 ‘꽝’하고 내려 찍으며 상체가 앞으로 숙여졌다.
놈의 턱을 다시 한번 라이트 훅으로 사정 없이 후려쳤다. 놈은 괴성을 지르며 6m를 굴러서 땅에 쳐 박혔다.
크아아아, 끄억~
놈이 분노로 인해 붉게 변한 안광을 내 뿜으며 벌떡 일어나 주위에 있는 나무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크아아아아·~ 크아아아~
나는 라쿤을 고쳐 잡고 놈이 휘두르는 거대한 몽둥이를 맞 받아쳤다. 거의 성냥개비로 야구방망이를 막아내는 수준처럼 보였으나 부딪히고 보니 야구방망이가 산산이 쪼개져 버렸다. 그리고 복부를 얻어맞고 뒤로 두 바퀴를 굴러 땅에 처박혔다.
오우거는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었다. 또 다시 주먹을 쥐고 인정사정 없이 휘둘러보지만 뚱뚱한 고블린은 한 대도 맞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복부에 통증이 밀려오며 몸이 떠오른다.
오우거는 일어나기 싫었다. 아니 일어날 수 없었다. 이빨도 다 빠지고, 온몸이 안 아픈 곳이 없다. 이번에 맞은 복부는 맞고 나니 숨이 잘 안 쉬어졌다. 그래서 그냥 누워있었다.
푹!
단단한 것이 심장을 쑤시고 들어온다. 잠시 고통스럽더니 이젠 편안해지고 눈이 감긴다.
나는 오우거를 때려서 잡았다.
늪지 섬에서 대규모 사냥과 폭렙을 한 이후, 일반 공격력은 2,000이 넘었다. 그리고 마법으로 주먹을 강화하여 공격력을 높였다.
죽은 오우거는 의아했겠지만 나의 주먹 한방은 공격력이 거의 3,000이 넘었다. 지난번 실험에서 오우거의 공격력은 몽둥이가 2,200, 주먹이 1,600정도였다. 그런 오우거가 3,000이 넘은 공격력의 주먹을 수십대 맞았는데 온전할 리가 없다.
마무리는 역시 라쿤이었다.
“주인님? 이놈은 이빨이 다 빠져버렸네요. 다음부터는 조심해주세요?”
“알았어, 조심한다고 했는데 그게 맘처럼 잘 안되네..하하”
두리안의 핀잔에 무안해졌다.
오우거 사체 정리가 끝나자 마나 충전 시간을 활용해 근처에서 채집 활동을 했다. 산부추나 곰취 같은 채소를 채집하고 있는데 조금 전부터 뒤통수가 간질간질 한 것이 꼭 누군가 감시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모른체하며 근처의 아름드리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투명 마법을 시전 하여 모습을 완전히 감췄다.
잠시 후,
숲 속에서 고블린 하나, 아니 두 마리가 걸어 나와서 사방을 훑어보며 자기들끼리 뭐라 뭐라 속삭였다.
키이키킹, 키이이익
키키키키끼킥기긱
손에는 독침을 쏘는 막대가 들려있었다.
‘뭐라는 거야. 저시끼들, 설마 독침으로 날 죽이려는 건 아니었겠지? 만약 그랬다면 너희는 다 죽은 목숨이야’
고블린 2마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고블린 뒤를 쫓아 갔다. 고블린들의 몸은 상당히 빨랐다. 거의 나무 위를 날아다니는 정도, 원숭이보다 더 나무를 잘 탔다.
‘아마도 저놈들은 정찰 역할을 하는 고블린들인가 보네’
고블린들의 몸 놀림이 빠르다지만 나를 따돌릴 수는 없다. 민첩이 138이기에 보이는 모습과는 다르게 실제 몸 놀림은 샤벨타이거를 능가하는 정도이다.
2시간 정도를 추적하여 도착한 곳은 고블린의 마을이었다. 대략 300개의 움막이 지어져 있는 대규모 마을이었다.
마을이 보이는 나무 위에 몸을 숨긴 채, 고블린 마을의 상태를 살폈다. 고블린의 숫자는 못해도 800마리는 넘을 것 같았다. 예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800마리가 아니라 8,000마리가 있어도 다 쓸어버릴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내가 서서히 마을을 향해 다가가자 머리 속에서 두리안의 떨리는 음성이 들려왔다.
“주, 주인님, 저들을 다 주,죽이실 건가요?”
“왜? 다 죽이면 안돼?”
“사, 살려주십시오 주인님. 제,제가 뭐든지 다,다 하겠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주인님”
“하하, 두리안, 내가 뭐 악귀라도 되는 줄 아니? 걱정하지 마. 처음에 저놈들이 날 감시하고 독침도 들고 있길래 죽이려고 했는데 아까 그놈들은 사냥 온 게 아니라 정찰병이었던 거 같아. 그래서 마음을 바꿨어”
“감사합니다. 주인님. 정말 감사합니다, 흑흑~”
“두리안 또 왜 울고 그러냐”
“너무 감사해서요. 정말 감사합니다.”
“됐으니까. 그만해. 나는 지금 거래하러 가는 거야”
“거래요?”
“그래, 저놈들에게 필요한 거 주고, 겨울에 입을 옷 한 벌 맞추려고”
“아하! 역시 우리 주인님은 현명한 분이십니다. 주인님 존경합니다.”
“뭐, 됐고, 저놈들에게 필요한 게 뭘 거 같냐?”
“아무래도 겨울이 다가오니 식량이 가장 필요할 거예요”
“식량? 흠, 우리 저장해 놓은 고기가 얼마나 돼?”
“많이 있기는 하지만 저들을 다 먹일 정도는 못돼요. 우리가 2-3달 정도 먹을 정도예요. 더구나 저희는 몬스터 고기는 저장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렇지? 그럼 어떻게 한담. 흠~”
두리안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마을의 입구가 보이는 곳까지 도착했다.
마을에서 고블린들의 피리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수많은 고블린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과 괴성들이 난무하고 있었다.
나는 게의치 않고 마을 입구까지 걸어갔다. 마을 입구에서는 수백의 고블린 전사들이 조잡한 칼과 창, 그리고 독침 막대기를 입에 물고 금방이라도 쏠 기세로 나를 노려보며 있었다.
“헛! 이 자식들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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