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네가 고블린의 왕이라고?
내가 가소롭다는 듯 한마디 하고 라쿤의 손잡이를 잡으려 할 때, 갑자기 아공간에서 두리안이 튀어나와 수백 마리 고블린들에게 목청이 터져라 괴성을 질렀다.
키에에에엑~ 키키킥~ 키익, 키에에에엑~
‘뭐,뭐야, 뭔 목소리가 저렇게 커? 저 녀석 갑자기 왜 저러지?’
내가 두리안의 갑작스런 행동에 잠시 당황한 사이, 두리안이 고블린들에게 다시 한번 괴성을 질렀다.
키키키킥~ 키에에에엑, 키긱
그러자 고블린들이 미쳤는지 전부 그 자리에 무릎을 꿇으며 머리를 땅에 박았다. 마치 죽을 죄를 지어 형장에 끌려온 것처럼 사지를 벌벌 떨었다.
킥킥킷
키에,키에
커억컥엇, 키이이
고블린 중에는 괴성을 삼키며 우는 놈도 있고, 머리를 땅에 계속 박아 대는 놈도 있었다.두리안의 행동을 의아해 하며 지켜보고 있는데, 저 멀리서 덩치 큰 고블린 한마리가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키가 170cm 정도 되어 보이고 머리에 큰 혹이 있으며, 다른 고블린과 다르게 몸 색깔이 빨간색이다.
“저건 뭐냐? 고블린 치고는 꽤 크네. “
“홉고블린 일족 이예요. 대대로 부족 단위의 족장직을 세습하는 일족이죠”
두리안이 간단하게 설명하고 홉고블린에게 시선을 돌렸다. 홉고블린이 다가오자 두리안이 대뜸 욕설을 내 뱉으며 소리 질렀다.
“네 이놈. 이분이 어떤 분인 줄 알고 이런 짓거리를 하는 것이냐?”
두리안의 욕설에 홉고블린이 무척 당황한 듯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나도 무척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도통 감이 오질 않았다.
홉고블린이 두리안 앞에 다가오더니 입을 열었다.
“골드고블린 일족 이십니까?”
“보면 모르느냐? 이곳 미지의 수림에 나 말고 누가 골드고블린 일족일 수 있단 말이냐?”
그러자 홉고블린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이며 외쳤다
“위대하신 골드고블린, 고블린의 왕을 뵙습니다.”
‘헉! 뭐야 이거, 두리안이 고블린의 왕이었다고?’
나는 깜짝 놀랐다. 일개 족장인 줄 알았는데 무려 왕이란다. 고블린들의 왕.
‘그럼 지금까지 왕을 종으로 데리고 다녔던 거여? 허참, 뭐가 어떻게 된 건지 하나도 모르겠네’
두리안의 호통은 계속되었다.
“이분은 이 몸의 주인이시다. 그런데 너희 같은 하찮은 것들이 이 몸의 주인께 감히 창 칼을 겨누었단 말이다. 나의 주인님에게···”
“컥! 주,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왕이시여.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왕이시여”
홉고블린은 눈물을 흘리며 연신 땅에 머리를 찍어 댔다. 이마에서 피가 터져 나와 눈과 뺨을 타고 흘러내려도 게의치 않고 계속 머리를 찍어 댔다.
그러자 일반 고블린들도 따라서 머리를 찍어 대며 알아듣지 못할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생소한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시끄럽기도 해서 두리안에게 그만 하라고 눈치를 줬지만, 두리안은 그만둘 생각이 없는지 10분을 넘게 갈궈 대고 있었다.
보다 못해 두리안에게 말했다.
“그만해라, 두리안. 이 정도면 된 것 같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두리안이 공손하게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넵! 주인님. 용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두리안 앞으로 주인님의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그래, 일단 네 앞에 있는 족장이 다친 것 같으니 치료부터 하자”
그도 그럴 것이 10분 넘게 머리를 땅에 박아 댔으니 머리뼈가 부서지지 않은 게 다행이다. 나는 족장을 포함한 모든 고블린을 대상으로 치료 마법을 시전 했다.
“그레이트힐”
손에서 뻗어나간 하얀 빛이 모여있던 수백 명의 고블린들에게 흩뿌려졌다.
그리고 들려오는 탄성과 비명들,
방금 다친 고블린 뿐만 아니라 과거에 다쳐서 고쳐지지 않던 상처들, 뼈가 완전히 부서져 불구가 되었던 고블린들이 완치가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갑자기 현기증을 느끼며 주춤거렸다. 아무 생각 없이 그레이트힐(Great Heal)을 썼는데 마나의 80%가 순식간에 사라지며 후유증이 온 것이다.
그레이트힐(Great Heal)은 7서클 마법인데 마나 소모량이 표시되지 있지 않았다. 아마도 치료하는 인원수에 따라 소모량이 유동적으로 변하기에 표시가 안된 것 같았다. 얼핏 짐작은 했지만 이렇게 많은 양이 한순간에 빠져 나갈 줄 몰랐다. 속으로 씁쓸하게 한숨을 쉬었다.
홉고블린은 이 상황이 어리둥절했다. 왕께서 주인이라고 칭했던 인간, 뭔가 사연이 있겠다 싶었는데 설마 드래곤이었을 줄은 몰랐다. 드래곤이 유희를 즐기기 위해 나온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골드 고블린 일족을 종으로 부릴 수 있는 존재는 세상에 없는 것이다.
“오!! 위대하신 존재시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위대하신 드..읍!”
“그만~~~”
갑자기 두리안이 뛰어들어 홈고블린의 입을 막았다.
“······?”
입이 막힌 홉고블린에게 두리안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말했다.
“절대, 어떤 상황에서도 그 말을 내 뱉지 마라, 그 말을 내 뱉는 순간 너는 죽는다. 알겠느냐?”
홉고블린은 놀라서 눈을 깜박거리며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두리안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상황이 정리되자, 나와 두리안은 홉고블린의 움막으로 자리를 옮겼다. 홉고블린의 덩치가 커서인지 움막의 크기도 상당히 컸으며, 움막 자체가 가죽이나 나무 가지가 아닌 흙을 쌓아 만들어 나름 족장의 권위를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홉고블린에게 거래를 제안했다.
“내가 입을 겨울옷을 만들고 싶은데, 재료는 내가 준다. 옷 만들어주는 값으로 뭐를 주면 되겠냐?”
홉고블린은 바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무것도 원하는 게 없습니다. 위대하신 분께서는 이미 우리 부족에게 크나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정말 없어 ? 원한다면 사냥도 해줄 수 있는데 겨울에 먹을 식량이 필요하지 않아?”
홉고블린는 기가 막혔다. 어느 위대한 존재가 자기들 같은 미천한 존재들에게 먹을 것을 걱정해 주면서 사냥을 해주겠다 한단 말인가. 홉고블린은 이것이 꿈이라 생각하고 살짝 자기 허벅지를 꼬집어보았다. 아팠다.
“저···그..그게···.”
홉고블린이 말을 더듬자 두리안이 치고 들어왔다.
“얼른 필요하다고 말해라. 그러면 이번 겨울 너의 부족민은 굶는 자가 없을 것이다”
두리안의 말에 홉고블린이 바로 태세전환을 했다.
“피,피,필요 합니다. 위,위대한 존재시여, 식량이 필요합니다.”
현재 고블린 마을은 겨울 식량을 비축하기 위해 모든 부족민이 사냥과 채집 등에 동원되고 있었다.
“족장? 네 이름이 뭐냐?”
“벌칸이라고 합니다. 위대한 존재시여”
“앞으로 위대한 존재라는 말은 빼고 말해라. 나는 철민이라고 한다”
“네, 주인님. 알겠습니다.”
“나는 너의 주인이 아닌데?”
“우리들의 왕의 주인이시면 저희들의 주인님이십니다.”
“뭔 족보가 또 그렇게 되냐. 아무튼 됐고, 너희들은 식량으로 주로 뭘 사냥하는 거냐?”
“아무거나 보이는 대로 다 먹습니다. 보시다시피 저희들은 몸집도 작고 힘도 약한 족속입니다. 저희보다 약한 몬스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냥으로 고기를 얻을 때보다 야생 과일이나 채소로 배를 채울 때가 더 많습니다.”
“흠..그렇구나. 혹시 너희들 이런 거 본 적 있어?”
아공간에서 감자를 하나 꺼내서 보여줬다.
“이런 거나 아니면 뿌리가 빨간색인데 속은 희고 길쭉하게 생긴 거, 또 높이 자라는 풀인데 풀대 중간에 열매가 달려있고, 조그맣고 노란색 열매들이 수도 없이 많이 붙어있는 그런 식물 같은 거 본 적 있어?”
나는 별 기대 없이 물어봤다. 진짜 혹시나 하고···
그런데,
“네, 봤습니다. 주인님”
“그래, 못봤···, 뭐, 뭐, 봤다고? 진짜? 어디서?”
“여기서 하루 정도 거리에 그것들이 자라는 군락지가 있습니다. 매년 거기서 채집해 와서 저희도 그것을 식량으로 먹고 있습니다.”
“정말? 혹시 지금 가지고 있는 거 있어?”
“네..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주인님”
홉고블린 벌칸은 쏜살같이 나가더니 쏜살같이 들어왔다. 그리고 가져온 것을 나에게 두 손으로 건넸다.
“헐, 옥수수다, 진짜 옥수수다”
“이것이 맞습니까. 주인님?”
“그래 맞다. 이게 옥수수라는 거다. 혹시 고구마는? “
“그 빨간색 껍질에 속이 하얀 뿌리 말씀이신지요?”
“그래”
“그것도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맛이 없어서 채집하지 않았습니다.”
“어디에 있는데, 그게?”
“그게, 거기는 갈 수가 없습니다. 주인님”
“뭐? 왜 갈 수가 없는데?”
“거기에는 트롤킹이 살고 있습니다. “
“이건 또 뭔 소리야. 트롤킹이라니, 캬~ 갖가지 놈들이 다 나오네. 증엉말!”
“······”
“말해봐, 트롤킹이라는 놈에 대해서, 자세히”
홉고블린 벌칸은 내 표정이 갑자기 바뀌자 당황해 하며 말을 이었다.
벌칸의 말의 의하면 고블린 마을에서 7일정도 거리에 트롤킹이라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산다고 한다. 일반 트롤보다 몸집이 2배는 크고 힘도 쎄서 혼자서 오우거 두,세마리를 상대할 수 있단다. 트롤킹이 사는 돌산에는 일반 트롤들도 같이 사는데 그 수가 30마리도 넘는다고 했다.
고블린 정찰병들이 고구마를 발견한 곳은 트롤킹이 사는 돌산 아래 작은 동산이며, 작은 동물들이 그것을 캐서 먹고 있기에 정찰 고블린들이 몇 개 캐서 가져온 적이 있다고 했다.
“벌칸 네 말은 그 고구마를 차지하려면 트롤들과 트롤킹을 해치워야 한다는 말이네?”
“저, 그것이···”
“좋아. 잘됐네. 그렇지 않아도 트롤의 상품 수가 좀 적다 싶었는데 이번 기회에 보충하자. 두리안”
“네..주인님. 이 두리안은 주인님과 함께하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함께 할 것입니다.”
“하하..그래. 나도 두리안과 함께 라면 어디라도 좋다. 내가 너 만은 꼭 지켜 줄게”
“감사합니다..주인님”
“그리고 벌칸, 이 지역에는 어떤 동물들과 몬스터들이 있는 거야?”
“네. 이 지역에는 큰뿔사슴, 거대 멧돼지 , 아울베어, 회색늑대, 오우거 그리고 샤벨타이거, 회색곰 등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개체수가 가장 많은 것은 회색늑대와 거대 멧돼지입니다. 그리고 서쪽으로 가면 좀 전에 말씀드린 트롤들이 있고, 동쪽으로 20여일 거리에 거대 평원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오우거와 트롤, 미노타우로스가 많이 삽니다. 특히 미노타우로스가 무리를 지어 서식하고 있습니다.”
“미노타우로스? 소 머리에 두발로 걸어 다니는 놈들?”
“네. 맞습니다. 어디서 구했는지 큰 도끼를 들고 다니며, 힘도 쎄서 오우거들과 싸워도 결코 밀리지 않았습니다. “
“여기도 상품이 참 많네, 하하! 좋아 낼 부터 사냥 시작하자. 일단 벌칸 너는 나를 몬스터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고, 네 부족민들을 옥수수가 있는 곳으로 보내서 하나도 빼놓지 말고 다 채집해 오도록 시켜라. 그것만 해주면 너희들이 이번 겨울에 배불리 먹을 수 있을 만큼 고기를 사냥해 주겠다”
“헉···감사합니다..주인님. 죽을 힘을 다해 주인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래. 알았어, 아부 떠는 것이 니들 종족 특성인가 보네..”
“···?”
“헤헤”
*******
고블린 마을이 소란스러웠다. 족장 벌칸의 말에 의하면 위대하신 분께서 노란 알갱이 열매를 구해오라 하셨다고 한다. 그것을 많이 구해오면 겨울에 먹을 식량을 나눠주겠다고 하셨다.그 말을 들은 고블린들이 서로 자기가 가겠다며 소란을 떨고 있는 것이다.
벌칸은 고블린 전사 100명을 뽑아 옥수수 군락지로 보냈다. 군락지에 있는 옥수수를 모두 채집한 뒤 씨앗만 다시 뿌리고 나머지는 한 알도 남기지 말고 모두 가져 오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자신은 고블린 최고 전사 50명을 거느리고 주인님을 모시겠다며 내 앞에 섰다.
하지만,
“다 필요 없고 너만 오면 돼”
나는 딱 한마디 하고 고블린 마을을 벗어나는 중이다. 벌칸은 어쩔 수 없어 혼자 뒤를 따라다니면서 몬스터들이 출몰하는 지역으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처음은 샤벨타이거였다. 암수 두 놈이었는데, 벌칸을 뒤로 물리고 혼자 앞으로 걸어나갔다. 샤벨타이거 한 마리가 나를 덮쳐들었는데, 나는 방어도 하지 않고 주먹으로 샤벨타이거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놈은 10m를 날아가 나무에 부딪쳐 떨어졌고 이후 움직이지 않았다.
벌칸은 너무 놀라 그 자리에서 약간 실례를 했다.
다음 놈도 비슷하게 머리가 깨져 죽었다. 그렇게 사냥이 끝나자 두리안이 아공간 밖으로 나와 사냥감들의 상태를 보더니 엄지손가락을 척하고 위로 올렸다. 벌칸은 그게 무슨 신호인지 몰랐지만 왠지 멋있어 보였다.
두 번째는 회색늑대 무리였다. 상당히 많은 숫자를 거느리고 다니는 이 지역의 골치거리였다. 60마리가 단체 행동을 하기 때문에 오우거도 함부로 건들지 않은 무리였다. 늑대들의 우두머리는 실버울프였다.
*******
이번에도 역시 위대하신 주인님께서는 두 주먹만 불끈 쥐고 회색 늑대들을 상대하셨다.
늑대들은 위대하신 주인님을 향해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들었지만 모두 위대하신 주인님의 주먹을 쳐 맞고 그 자리에서 뒈지거나 아니면 튕겨나가 버렸다. 60여마리 늑대는 20분도 되지 않은 시간에 모두 죽어 나자빠졌다.
마지막에는 몸집이 거대한 실버울프가 긴 하울링을 하더니 위대하신 주인님께 돌진해왔다. 그리고 5m 정도를 남겨두고 뛰어올라 위대하신 주인님을 덮쳤다. 아니 덮치려 했다.
그때,
위대하신 주인님은 갑자기 허리에 차고 있던 씨뻘건 검을 뽑아 들더니 공중에 떠서 덮쳐오는 실버울프의 심장에 그대로 쑤셔 박았다.
실버울프는 땅에 처박혔고, 심장에 박힌 위대하신 주인님의 칼은 마치 심장의 피를 빨아 들이는 듯, 검신의 빛이 더욱 진한 핏빛으로 물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실버울프가 몸을 한번 부르르 떨더니 그대로 죽었다.
이번에도 왕(두리안)께서 아공간 밖으로 나와 실버울프와 회색 늑대들을 살피더니 엄지손가락을 높이 쳐 들었다. 역시 멋있었다.
이런 식으로 오늘 하루 총 5번의 사냥을 했다. 회색 곰도 1마리 잡았고, 오우거도 1마리 잡았다. 오우거를 잡을 때는 진짜 오줌을 쌌다. 진짜 많이 쌌다.
어떻게 맨손으로 오우거를 두들겨 패서 잡는단 말인가. 나중에는 오우거가 불쌍해 보였다. 오늘 오우거는 맞아 죽었다.
오늘 잡은 사냥감 중 오우거와 실버울프, 그리고 샤벨타이거만 위대하신 주인님이 가져가시고 나머지는 모두 부족에게 주신다고 하셨다.
아아! 어떻게 이 은혜를 갚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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