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앞으로의 계획
늑대 무리와 싸우느라 힘을 뺐더니, 배가 고파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모닥불을 피우고 두리안이 손질한 실버울프 갈빗살을 함께 구워 먹었다.
치이이이익~
“우와, 실버울프 고기가 정말 맛있다. 지난번 샤벨타이거 고기보다 훨씬 더 맛있어”
“확실히 샤벨타이거 고기보다 맛이 좋아요. 등급이 올라갈수록 고기 맛이 더 좋은 거 같아요”
두리안과 나는 허기진 배를 실버울프 고기로 채우고 지구에서 가져온 커피믹스도 한잔 마셨다. 아끼려고 했지만, 오늘만큼은 한잔 마시고 싶었다.
“오우~ 천상의 맛입니다. 주인님. 이 맛은 결단코 이 세상의 맛이 아니에요. 최고예요, 최고~”
두리안이 커피믹스 맛을 보더니 맛있다고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다.
‘그래 대한민국 커피믹스가 세계 최고란다. 두리안’
하늘을 보니 보름달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프리실란드로 떨어졌던 그날, 오대산의 보름달도 저렇게 세상을 비추고 있었는데···
아무 말 없이 달만 보고 있자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복잡한 머릿속을 더욱 어지럽게 만들었다.
미지의 수림에 사는 몬스터들은 그들 나름의 생존 방식을 가지고 있다.
얼마 전 고블린 마을에서의 전투도 그렇듯, 고블린이란 개체은 매우 약하고 멍청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또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칼을 든 고블린 뒤에 창을 든 고블린이 따르고, 그다음 독침 쏘는 고블린들이 창칼을 든 고블린들의 뒤를 받쳐주었다. 어떤 개체가 죽으면 같은 특기를 가진 다른 개체가 그 자리를 메꿨다.
멍청한 고블린들이 생각해낼 수 있는 전술이 아니었다. 나중에야 두리안이 가르쳤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그 당시만 해도 나에겐 놀라운 충격이었다.
약하디약한 고블린들이 대형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미지의 수림 한가운데서 멸족당하지 않고 오랜 세월을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가, 그들 나름의 생존 방식을 체득했기 때문일 것이다.
뛰어난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무리를 지어 사는 것만이, 약한 그들이 대형 몬스터를 사냥하면서 생존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두리안이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트롤이나 오우거 같은 놈들은 대형 몬스터이지만 사냥에 실패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그놈들은 무리를 짓지 못하고 혼자 돌아다니고, 힘은 엄청나게 세지만 멍청해서 매번 우리의 함정에 걸리거나 독침에 쓰러져 죽었어요.
우리에게 있어서 정말 무서운 적은 트롤이나 오우거가 아니라 머리가 뛰어난 우두머리 밑에 무리 지어 사는 놈들이에요"라고...
우수한 두뇌를 가진 우두머리라도 혼자는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자신에게 동료가 있어야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두리안도, 실버울프도 알고 있었다.
싸움에서 그들은 도망갈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여건이 되었음에도 도망치지 않고 죽음을 택했다.
그들은 미지의 수림이라는 약육강식의 거대한 생존 게임장에서 동료들 없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도 미지의 수림이라는 생존 게임장의 참가자일 뿐이다. 미지의 수림만이 아니라, 프리실란드 대륙 자체가 나에게는 생존 게임장이나 마찬가지다.
이전 세계라고 해서 별로 다르지 않았다. 법과 제도, 민주주의와 복지 등 다양한 말로 포장되어있지만, 그 방법이 다를 뿐, 실상은 약육강식의 생태계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권력과 돈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만들어 다수의 약자를 회유하거나 선동한다. 때론 권력이란 힘으로 짓밟기도 하고, 세금과 복지라는 이름으로 착취하면서 그들만의 패밀리를 유지해가고 세습하는 게 현대사회의 자화상이다.
프리실란드 대륙에 사는 인간들의 삶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권력과 돈이 존재하는 사회라면 다 비슷할 테니까. 더구나 여기가 황제나 왕이 있는 군주제 사회라면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미지의 수림은 나에게 튜토리얼 같은 곳이다. 약육강식의 생존 게임에 참여한 나는 이미 이 생태계의 일부가 된 것이다.
나는 생존 게임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살아남기 위해 더욱 강해져야만 한다. 튜토리얼의 최상위 포식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프리실란드 대륙이라는 더 큰 생존 게임장에 가서도 피식자가 아닌 포식자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내 생각은 밤을 넘어 새벽으로 향하는 시간까지 이어졌다. 지력이 상승하니 사고의 깊이도 레벨업 된 듯, 철학적 범주까지 넘나들고 있었다.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가고 있을 때, 두리안이 말을 걸었다.
“저기, 주인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오랫동안 하시나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 “
“앞으로의 계획이라면?”
“두리안, 나는 북쪽으로 가긴 하겠지만 서둘러서 가진 않을 생각이다.”
“네?, 인간들이 사는 땅으로 가지 않으신다고요?”
“가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서두르지 않겠다는 거야. 나는 이곳 미지의 수림에서 최대한 힘을 키워 가장 강한 최상위 포식자가 될 것이다. 그 후에 이곳을 떠나 인간들의 세상으로 나갈 생각이다. “
“주인님은 이미 최상위 포식자가 아닙니까? 드래···”
두리안은 말을 잇지 못했다. 내가 말을 끊었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이야. 다시 말하지만 나는 드래곤이 아니라 인간이란 말이야.”
나는 두리안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죄, 죄송합니다. 주인님, 다, 다시는 실수하지 않겠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두리안이 겁에 질려 무릎을 꿇고 살려 달라 애원한다.
어이가 없다. 큰소리 한번 냈다고 이런 모양새라니, 두리안이 정말로 나를 드래곤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두리안 입장에서는 당연한 생각이었다. 드래곤 말고 누가 아공간을 가질 수 있으며, 누가 마법을 캐스팅도 없이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겠는가. 더구나 아공간 안에는 드래곤의 알까지 있다. 어느 누가 봐도 드래곤이라 생각할 것이다.
나는 두리안을 조용히 타일렀다.
“두리안, 나는 너를 죽이지 않아. 네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면 어떤 경우에도 널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나는 너의 주인이기도 하지만, 너를 보호하고 지켜주는 친구이기도 하니까. “
“주인님께서 절 지켜주신다는 말이 정말이신가요? “
“응 그래, 지켜줄 거야. 정말로···”
“주인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두리안은 정말 정말 행복한 고블린입니다.”
두리안이 눈물을 흘리며 내 앞에 엎드려 고개를 조아렸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하고 아공간으로 들어가. 나도 이제 피곤하니까 잠 좀 자야겠다.”
“네 주인님, 편안하게 주무세요. “
두리안이 아공간으로 사라졌다. 나도 텐트 안으로 들어가 힘들었던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며 잠을 청했다.
***
북쪽으로 가던 여정을 잠시 중단하고 서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 지역은 두리안의 앞마당 같은 곳이므로 밀림을 헤매거나 방향감각을 잃어버릴 걱정이 없다. 최대한 주변 지역을 돌아다니며 사냥과 성장에 중점을 둘 생각이다.
우선 두리안이 알고 있는 지역 내에서 서쪽을 돌아본 후 북쪽으로 올라갈 계획을 세웠다. 두리안은 동서남북 반경 100km 정도를 알고 있다고 한다.
직경으로 200km이니 대략 대한민국의 절반 크기를 생활 지역으로 두고 있던 거였다. 면적이 크기 때문에 다 둘러보려면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 같다.
서쪽으로 방향을 바꾼 후 몬스터들의 출현 빈도가 높아졌다. 나흘 동안 샤벨타이거 4마리, 아울베어도 2마리 잡았다. 아울베어는 한 동굴에 암놈과 수놈이 살고 있었는데, 동굴 안으로 파이어볼(Fire Ball, 50) 열댓 방 쏴대니 못 견디고 뛰쳐나왔다.
몸길이 4m 정도, 새의 부리 같은 모양의 입에, 몸은 곰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두리안이 알려준 정보로는 가죽이 매우 두꺼워서 창칼은 물론 독침도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포기 하려고 하다가 혹시나 해서 전격 마법을 한 방 날렸는데, 이게 웬걸, 소 뒷걸음치다 쥐 잡는 것처럼, 아울베어 한 놈이 그 자리에서 즉사해 버렸다. 남은 한 놈도 이성을 잃고 달려들기에 3서클 라이트닝스피어(Lightning Spear, 70) 한 방을 날려 간단하게 처리하였다.
샤벨타이거 잡는 것은 이제 식은 죽 먹기다. 마법을 쓰지 않고 라쿤만 휘둘러도 가뿐히 잡는다. 다만 라쿤을 사정없이 휘두르다 보니 가죽이 상해서 상품 가치가 없어지는 게 더 문제다.
두리안이 라쿤 쓰지 말고 마법으로 잡아 달라고 투덜거리지만 어쩔 수 없다. 롱소드가 된 라쿤을 잘 쓰려면 연습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스템이 검술 스킬이라도 주면 좋은데 마법에 특화된 시스템이라 나로서는 검술 교본이 너무나 아쉬운 실정이다.
할 수 있는 것은 찌르고, 베고, 휘두르기가 전부다.
그나마 부상 없이 사냥이 가능한 것은 쉴드(Shield)와 라쿤의 고유 스킬 포식자의 흡혈 때문이다.
포식자의 흡혈은 정확히 공격 데미지의 20%가 생명 에너지로 치환되어 나에게 넘어오는데 아직 한 번도 쉴드(Shield)가 깨져 본 적이 없어서 생명력에 직접적인 보탬이 된 적은 없다.
내 생명력이 100%면 치환된 20%의 생명 에너지는 다시 라쿤에게 돌아가 독식하게 된다.
요새는 두리안이 밖으로 나와서 생활을 많이 한다. 야영할 때만 종종 나와서 같이 밥 먹고 아공간 안에서 설거지하는 정도였는데, 얼마 전 실버울프 사냥 이후로 스스로 아침, 점심,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또 설거지까지 다 한다. 덕분에 아주 편해졌다.
나와 두리안은 서쪽 지역을 돌아다니며 사냥에 집중하고 있다. 주위를 살피며 사냥한 지 열흘이 지나갈 무렵 엄청 큰 호수를 발견했다.
호수의 물 색깔이 검게 보여 어쩐지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는데, 가까이 다가가 물을 떠보니 아주 깨끗했다. 마법으로 검사해 봤지만 독 같은 건 없었다.
마침 아공간에 저장해둔 물이 얼마 남지 않아 두리안에게 호숫물을 퍼 담으라고 지시했다.
두리안은 검은 호수라 불리는 이 호수 깊은 곳에 바실리스크라는 산만큼 거대한 뱀이 산다고 했다.
"주인님, 그 거대한 뱀은 100년에 한 번 10일간 물 밖으로 나와 머물다 다시 호수로 들어가요. 그리고 이놈이 머무는 10일 내내 호수 근처에 비가 내려요."
“100년에 한 번 나온다고? 하하, 그럼 잡고 싶어도 못 잡겠네. 아쉽네. 아쉬워”
나는 피식 웃으며 비아냥거렸다.
“걱정하지 마세요. 나올 시기가 다 되었어요.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주인님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을 거예요”
“뭐? 언제 나오는데?”
“대충 3년 남은 거 같은데요. 나오기 몇 달 전부터 징조가 보여요. 이곳 검은 호수에 먹구름이 잔뜩 몰려오거든요.
그때가 되면 근처의 모든 몬스터가 안전한 곳을 찾아 도망쳐요. 그놈의 눈에 띄면 틀림없이 잡아 먹히게 되니까요”
나는 바실리스크가 나올 때가 되었다는 말에 약간 긴장했지만, 3년 후라는 말을 듣고 안심했다. 그때쯤이면 내 힘으로 충분히 잡을 수 있으리라 여겼다.
“뭐,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지. 3년 후에 그놈 나오면 내가 꼭 잡을 거다”
“네. 주인님. 바실리스크를 꼭 잡아주세요. 그놈의 배속에 진귀한 보물이 있다고 조상님께서 남기신 정보가 있어요. 그리고 바실리스크의 심장을 먹으면 특별한 능력을 얻을 수 있고, 고기를 먹으면 모든 독이 해독되고 모든 병이 낫는다고 해요”
“그게 사실이야? 보물이 뭔데? 심장 먹으면 무슨 능력을 얻는 건데?”
“그건 저도 잘 몰라요. 그래서 주인님이 잡으면 꼭 확인해보고 싶어요”
“흠흠, 그래, 우리 그놈 꼭 잡자”
“네, 주인님”
우리는 호수를 빠져나와 다시 서쪽으로 전진하였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