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레드와이번 사냥 (1)
타만의 마을을 떠나온 지도 15일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사냥과 휴식을 반복하며 계속 북쪽을 향해 나아갔다. 어느덧 대평원도 끝나가는지 저 멀리 뽀족 뽀족한 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으음···드디어 대평원의 끝자락인가 보다. 지겨워서 죽는 줄 알았네”
“그러게 말이에요. 미지의 수림에 이렇게 넓은 평원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저기 보이는 뽀족한 산에 와이번이 살고 있다고 했지?”
“네. 타만이 그렇게 말했어요. 와이번은 진짜 조심해야 해요. 주인님”
“알고 있어. 크기도 크고, 하늘도 날아다니니까 조심하긴 해야겠지”
“그 정도가 아녀요. 와이번은 마법이 안 통한다고 해요. 오래전에는 드래곤이 와이번들에게 레어를 지키게 했다는 기록도 있어요. “
“드래곤의 레어를 지키게 해? “
“네. 그만큼 강하다는 말이겠지요. 기록에 의하면 모든 몬스터 중 최강의 포식자라고 나와있어요”
“그렇게나 강해? 그런 놈이 뭐하러 드래곤 레어나 지키고 있어? 뭐 가져갈게 있다고···, 아무것도 없이 먼지만 날리던데.”
“·········.?”
“그건 그렇고 마법이 안 통하면 상대하기가 까다롭겠는데, 그냥 사냥 포기하고 돌아서 갈까?”
“가능만 하다면 그것도 좋은 방법이긴 한데, 와이번이 겁나서 저 산을 통과하지 못하면 주인님이 가려는 목적지에 못 갈 텐데요”
“······..”
두리안의 말에 나는 약간 자존심이 상했다.
“서쪽이나 동쪽으로 돌아서 갈까요. 주인님?”
또 한번 내 염장을 지르는 두리안.
“그냥 가자. 까짓 것 죽기보다 더하겠어”
나는 투덜거리며 뽀족한 산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는 와이번 서식지를 향해 다가갔다.
그로부터 3일 후,
멀리서 볼 때는 그냥 뽀족뽀족한 산으로만 생각했는데 가까이 와보니 끝도 없이 길게 늘어선 절벽이었다. 지금 내 앞에는 거대한 절벽이 마치 병풍처럼 펼쳐져 있었다.
“어우~씨 뭐가 이리 높아 2,000m도 넘겠다.”
“그냥은 못 갈 거 같아요.”
나는 절벽 중간 중간에 발 디딜 곳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플라이(Fly) 마법을 사용하더라도 50m 이상 오르는 것은 힘들다. 중간 중간 발 디딜 곳이 있어야 마법을 해제한 다음 다시 시전 하는 방식으로 다음 50m을 오를 수 있었다.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절벽을 오르기로 했다. 발 디딜 곳만 있다면 아무리 높아도 문제없을 것 같긴 했는데 그게 또 생각처럼 안되는 게 인간사 인지라, 간혹 한발 거칠 곳조차 없을 때가 있었다.
한참을 고심하다가 절벽에 라쿤을 박아 넣고 매달려서 버텼다. 2초만 버티면 된다. 플라이(Fly) 마법을 해제하고 다시 시전하는데 2초면 충분하다. 처음에는 내 몸무게 때문에 라쿤이 부러지면 어쩌나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라쿤은 보기보다 튼튼했다. 하긴 일반 소드도 아니고 2차 성장까지 한 에고 무기인데 고작 115kg을 버티지 못한다는 게 더 말이 안된다.
그렇게 3시간 만에 높이 2,000m에 이르는 거대 절벽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중간에 마나 충전을 위해 바위 턱이 있는 공간에서 2시간 정도 휴식 시간을 빼면 1시간 만에 거대 절벽 등반에 성공한 것이다.
절벽 위의 세상은 절벽 아래 세상과 별다를 것이 없었다. 거기서부터 다시 땅이 시작되고 있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고도가 높아서 그런지 나무나 풀이 별로 없었다.
나는 다시 북쪽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산을 넘고 또 넘었다. 전부 바위와 암벽으로 된 산들 뿐이었다. 이상한 것은 몬스터가 없다는 것이다. 3일 동안 단 한 마리도 못 봤다. 그러고 보니 이런 경험을 예전에도 한 것 같다. 골드드래곤 라쿤의 레어를 떠나 10일 정도 이와 똑같은 경험을 했었던 것이 기억난다.
“설마 여기 사는 와이번 때문에 몬스터가 없는 건가?”
“글쎄요. 고도가 높아서 몬스터들이 오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뭐 그럴 수도 있지만 작은 동물들도 안 보이는 것이 좀 신경 쓰여서···”
“별일 있겠어요?”
“없어야지. 있으면 안되지”
그렇게 산을 넘고 또 넘으면서 다시 5일이 흘렀다. 그리고 멀리서 보이던 그 뽀족산에 도착했다.
“먼 곳에서 볼 때는 몰랐는데 이거 장난이 아니네···어휴”
뽀족산 앞에는 높이 3,000m 되어 보이는 바위 산과 절벽들이 마치 뽀족산을 보호라도 하듯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저 뽀족한 산이 너무 높다 보니 멀리서는 저거만 보였나 봐요. 주변 산들이 이렇게 높은데 저 뽀족한 산은 얼마나 높은 걸까요?”
“몰라, 못해도 6,000m는 넘을 것 같은데, 저걸 어떻게 넘어갈지 고민 되네···참나”
“힘내세요. 주인님”
“에휴~”
나는 다시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올라도 올라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계속 그 자리인 것 같아 밑을 내려보면 아찔할 정도로 높은 곳에 서 있었다. 현기증이 일어날 것 같아 위만 보고 올라갔다. 3시간이 걸려 절벽의 중간 정도 올라오자 작은 턱이 하나 나왔다.
잠시 쉬어갈 생각으로 턱 위에 올라서니 자연적으로 형성된 깊이 6m정도의 동굴이 있었다. 나는 마나도 충전할 겸 동굴에서 하루 야영을 하기로 했다. 체력을 많이 소모해서인지 저녁을 먹자마자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다시 절벽을 올랐다. 이제는 암벽 오르는 것이 몸에 익었는지 플라이(Fly)마법을 쓰고 디딤돌 위에 몸을 지탱하고, 다시 플라이(Fly)마법을 쓰고 하는 일련의 행동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속도감이 느껴질 정도로 빨라졌다. 어제는 3시간이 걸려 중간까지 올라왔는데 오늘은 2시간만에 정상까지 올라왔다.
“후아······힘들었다.”
긴 숨을 내쉬며 이틀 걸려 올라온 절벽을 내려다 보았다. 올라올 때는 몰랐는데 절벽 중간에 운무가 끼어있어 밑이 보이지 않고 아찔한 현기증만 일어난다.
“수고 하셨어요. 주인님”
“고작 이거 올라온 걸로 이리 힘든데, 저 뽀족한 산은 어떻게 올라 갈지 벌써부······.”
내가 푸념을 늘어놓고 있는데 갑자기 두리안이 소리 질렀다.
“주인님 뭐가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어요. 저기요”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뽀족산 쪽에서 이쪽으로 뭔가 날아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작게 보이던 것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커졌다.
“저게 뭐야, 뭐가 저렇게 커, 드래곤이야?”
드래곤 보다는 작았지만 생긴 거는 흡사하게 생겼다. 붉은색 몸에 몸 길이는 20m, 목과 꼬리가 길고 몸통은 두꺼웠다. 머리에 뿔이 2개 난 것도, 몸통에 긴 날개 달린 것도 드래곤과 똑같았다.
다만 다리가 2개밖에 없었다. 드래곤은 다리가 4개였는데 이놈은 뒷다리만 보이고 앞다리는 보이지 않았다. 그것만 빼면 작은 드래곤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똑같이 생겼다.
“와이번이예요. 주인님”
와이번이 내 머리 위 상공을 한바퀴 선회하더니 급하강 하기 시작했다. 나를 낚아채기라도 하듯 뒷다리를 쭉 펴고 나를 향해 곧장 하강했다.
“헉, 뭐, 뭐야. 날 잡으려는 거였어”
나는 곧장 땅바닥에 엎드렸다. 와이번의 발톱이 등판을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꽈꽈꽝, 꽝
내 몸에 걸어 놓은 쉴드(Shield) 3개가 한번에 터져버렸다. 3개 쉴드(Shield) 의 방어력이 16,800이나 되는데 그것이 한번에 소멸에 버린 것이다.
고개를 들자 와이번이 지나가면서 생긴 흙 먼지로 앞이 보이지 않았다.
“콜록, 콜록,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있냐. 쉴드 3개가 한번에 터져버리다니···”
나는 몸을 피할 곳이 있는지 이리저리 둘러봤다. 하지만 절벽 정상은 평지라서 이렇다 할 장소가 없었고 흙 먼지도 아직 가라앉지 않아 앞이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도 일단 뛰었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았기에 아무 데나 뛰기 시작했다.
“또 와요 주인님. 피하세요”
나는 뒤돌아 보았다. 놈이 다시 나를 향해 급하강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엎드려도 끝장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내가 달리고 있는 전방에 마법을 시전했다.
“디그. 디그 , 디그”
순식간에 3m 깊이의 구덩이가 만들어졌고, 나는 급히 구덩이로 뛰어 내렸다. 찰나의 순간에 놈의 발톱이 내가 있던 자리를 휩쓸고 지나갔다.
“후아, 후아, 후아···..이런 젠장···.후아”
구덩이 안에서 가쁜 숨을 몰아 쉬면서 하늘을 보고 대자로 누웠다. 놈이 보였다. 넓게 하늘을 한바퀴 선회하더니 나를 향해 다시 날아왔다. 구덩이를 더 깊게 팠다.
“디그, 디그, 디그, 디그, 디그..”
구덩이의 깊이가 15m까지 깊어졌다. 나는 이쯤 하면 되겠다 싶어 마법을 중단하고 위를 쳐다봤다.
“헉, 뭐, 뭐야”
놈이 땅에 내려앉아 구덩이 안을 쳐다 보고 있었다. 세로로 길게 찢어진 눈으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 보고 있었다.
“뭘 쳐다 보는 거야, 이 개자식아!, 이거나 쳐 먹어라”
“소닉바스터”
7서클 소닉바스터(Sonic Buster)을 시전 하자 내 손에서 음속의 바람이 놈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음속의 속도라서 놈은 피할 수 없었고 안면에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꽝꽈꽈꽝
연이은 폭발이 일어나며 와이번은 뒤로 두세 걸음 물러섰다. 그러나 물리 데미지가 전혀 없는지 잠시 후, 놈이 구덩이 안으로 주둥이를 밀어 넣었다. 구덩이가 작아서 주둥이만 간신히 들어올 수 있었지만 내가 느끼는 위압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마법 데미지는 전혀 안 먹히는 걸까?”
“와이번의 가죽이 모든 마법 효과를 차단한다고 해요. 그래서 어떤 마법도 통하지 않는다고 나와있어요”
“흠···.어떻게 하지?”
“···············”
놈은 두세 번 주둥이를 집어넣다 안되겠는지 이번에는 꼬리를 집어넣었다. 꼬리는 구덩이 깊숙히 들어와 나에게 살짝 닿을듯했다. 나는 라쿤을 뽑아 들고 놈의 꼬리를 사정 없이 내려쳤다.
-깡~깡깡~깡
아무리 내려쳐도 놈의 꼬리는 잘리거나 흠집이 나지 않았다. 놈이 화가 났는지 꼬리를 더욱 거세게 흔들어댔다.
나는 구덩이 벽에 바짝 붙어 꼬리를 상대했지만 전혀 데미지가 안들어 갔다. 그냥 포기하고 “L”자로 구덩이를 파서 몸을 피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꼬리의 속도가 빨라지더니 꼬리의 끝이 내 심장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찔러 들었다.
“헉”
나는 놀라서 피해보려 했지만 너무 늦어버렸다.
-꽝,꽝,꽝
순식간에 3개의 쉴드(Shield)가 파괴되며 내 몸이 노출되었다. 날카로운 와이번의 꼬리 끝이 내 몸을 뚫으려는 찰나,
-카카카캉~
들고 있던 라쿤에게서 붉은 핏빛이 발산되더니 와이번의 꼬리 끝을 빛과 같은 속도로 쳐내버렸다. 아니 잘라버렸다. 와이번의 날카로운 꼬리 끝이 잘려서 구덩이 바닥에 떨어지고 밖에서는 괴성이 들렸다.
-꽈라라라라라라라~~~
놈이 급히 꼬리를 밖으로 빼내며 고통에 젖은 괴성을 질러 댔다. 나는 갑자기 심장에 터질듯한 고통이 밀려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가쁜 숨을 내쉬었다.
“허억, 허억, 허억···..”
“괜찮으세요. 주인님”
두리안이 걱정스럽게 내게 물어왔다.
“괘,괜찮아. 갑자기 많은 양의 마나가 빠져나가는 바람에 심장에 무리가 왔나 봐”
한꺼번에 총 마나량의 절반이 넘는 5,200 마나가 쑥 빠져나가 버렸다. 라쿤이 놈의 꼬리 공격을 막으면서 사용한 마나량이다.
-꽈라라라라, 꽈라라라라~~~
밖에서는 놈의 고통스러운 괴성이 계속 들려오고 있다.
그러더니 갑자기 놈이 구덩이를 내려다보며 뭔가를 뱉어내려는 듯 목울대가 울렁 울렁 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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