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마법은 이렇게 쓰는 거야.
제시카를 달래며 마음을 추스르게 하고 밖으로 나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푸른 하늘이 보인다.
“휴~”
한숨이 나왔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못 할 짓이 없는 게 인간이라지만 도대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 것일까?
‘아크 공작, 너만은 분명히 죽여야겠다. 하지만 너를 죽이는 건 내 몫이 아니다. 기다려라.’
나는 속으로 다짐하며 상황실 막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상황실 앞에는 이미 왕세자가 백마의 고삐를 잡고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그 뒤로 해리슨공작을 비롯하여 모든 귀족이 ‘오늘은 어떤 놈을 잡아 올까?’라는 기대감을 얼굴에 가득 담은 채,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다녀오겠습니다”
짧은 인사말과 함께 말에 오르자 모든 귀족이 고개 숙이며 합창한다.
“무사히 잘 다녀오십시오. 총사령관님”
말 머리를 돌려 산성 밖으로 나가자, 산성 위에 구경 나온 수만 명의 레온왕국 병사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우와아아~~~ 우와아와~~~
이 함성은 자이르왕국군이 주둔하고 있는 진지에도 들릴 것이다. 저들은 내가 다시 온다는 걸 알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대비하는 모습이 여기서도 적나라하게 보였다.
말을 몰아 자이르 왕국군의 진지 앞에 다다르자 분위기가 어제와 사뭇 다르다. 모든 병사가 중무장을하고 칼과 창, 활을 나에게 겨루며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나는 비웃듯이 웃어 젖히며 큰 소리로 외쳤다.
“푸하하하하, 이 비열한 마겐공작놈아. 기사 간의 결투에서 이 무슨 돼먹지 않은 추태를 보이는 것이냐? 역시 쥐새끼처럼 비열하게 그 자리에 오른 놈이라 하는 짓도 쥐새끼 같구나. 하하하. “
그러자 적 진영에서 수천 발의 화살이 나를 향해 쏘아지며 푸른 하늘을 온통 새까만 화살로 뒤덮었다.
슈슈슈슈슈~슈슈슈~ 슈슈슈슈···
저 화살들이 모두 나를 향해 날아와도 걱정은 전혀 없다. 하지만 말이 문제였다. 말은 화살에 맞으면 죽거나 더 이상 달리지 못한다.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았고 할 필요도 없었던 방법을 말에게 시도해봤다.
“쉴드, 쉴드”
대상을 가리키며 쉴드(Shield)를 중복 시전 하자, 백마의 몸 전체로 엷은 방어막이 생성되었다. 그러나 나 아닌 자에게는 제약이 있는 것 같다.
일단 중첩 발현이 되지 않았다. 하나밖에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쉴드(Shield)의 방어력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하나만 발현되더라도 10만에 이르는 방어력인데 5만으로 줄어있었다.
마지막으로 시간의 제약도 생겼다. 나에게는 시간 제약이 없지만, 말에게는 30분이란 시간 제약이 걸려 있었다.
“그거라도 어디냐? 이게 된다면 앞으로 아군의 부상을 상당히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최소 30분 동안은 무적이 된다. ”
팅! 팅! 팅! 팅!···
티딩팅팅! 팅팅팅팅팅!!···.
나와 백마의 몸에 무수히 많은 화살이 떨어졌지만 모두 튕겨 나가 버렸다. 수천 발이 쏘아졌다고 해서 그것이 백발백중으로 모두 나를 맞추지는 못했다. 개중 100여 발만이 나와 백마를 맞춘 것이다.
“탸아~~”
나는 말을 몰아 진지 안으로 돌격했다. 창병과 방패병들이 나의 진로를 막으며 방해했지만 라쿤을 한번 휘두르자 10여 명의 병사가 한꺼번에 팔다리가 잘리거나 몸통에 구멍이 뚫리며 그 자리에 쓰러진다.
라쿤의 보이지 않은 5개의 촉수는 나의 근처에 있는 적이라면 사방을 가리지 않고 적의 사지를 절단하거나 심장을 꿰뚫어 목숨을 취한다.
진지 앞에 몰려있는 수천 명의 자이르왕국군을 상대로 학살에 가까운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데 갑자기 앞쪽에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펑! 펑! 펑! ···.
슈슈슈슈~ 슈슈슈···
치치지직, 츠츠츠 ···
수백 개에 이르는 화염 속성, 물 속성, 번개 속성 등 갖가지 공격 마법들이 나에게 쏟아져 내렸다.
“저것들이 뒤지려고 누구 앞에서 재롱을 부리고 지랄이야. 근데 자기 병사들도 한꺼번에 죽이려고 하는 건가? 아무튼 인간성 하나는 더러운 놈들이네”
나는 급히 뒤로 물러나 50m 밖으로 물러났다. 마법의 사거리가 50m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몇백 개나 되는 저걸 다 맞으면서 싸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꽝! 꽝! 꽝! ···
물러나면서도 그나마 속도가 빠른 마법들 몇 개는 맞아야 했다. 내가 자리를 벗어나자 그 자리에 아직 남아있던 수많은 병사가 자기편 마법사가 쏜 마법을 맞고 죽어 나갔다.
꽝~ 꽈과과과광~~
“크악, 끄아악”
“왜?, 왜 우리에게 마법을 쓰는 거야?”
“끄아아악, 살려줘···”
“내 몸에 불이 붙었어, 꺼지지 않아···살려줘···크아악”
수백 명에 이르는 병사들이 마법에 직격당해 이미 목숨을 잃었고, 또 천여 명의 병사들이 상처를 입고 바닥을 구르며 비명을 질러 대고 있었다.
자국의 마법사들이 자신들을 공격하는 모습을 보던 나머지 수천 병사들이 그 자리에서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순식간에 나와 수백 명의 자이르왕국 마법병단 사이에 텅 빈 공간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마법사들이 입고 있는 로브의 색이 검은색이었다. 예전 상단의 오픈 행사 때 경매장에서 보았던 그 흑색 마법사들이었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마법병단이 모여있는 장소에 마법을 시전 했다. 내 마법은 사거리가 50m가 아니다. 정확히 몇 미터인지 실험해 보진 못했지만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가능하다.
“파이어레인, 스톤샤워”
둘 다 6서클마법인 파이어 레인(Fire Rain), 스톤 샤워(Stone Shower)를 동시에 시전 했다. 하늘에서 화염의 비가 쏟아지면서 동시에 뾰족한 돌을 무수히 떨어져 내렸다.
꽝!꽝! 꽈과과과광~~
슈슈슈슈~ 슈슈~ 화르륵, 화르륵
돌 떨어지는 소리와 화염 비가 떨어져 불타오르는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그리고,
“끄아아악, 컥”
“헉! 갑자기 어디서···켁!”
“끄억!”
마법사들의 대가리가 깨져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화염의 비와 함께 떨어지는 뾰족한 돌덩어리는 마법사들에게 피할 시간도 주지 않고 그대로 즉사시켜버렸다.
“마법은 이렇게 쓰는 거다. 병신들아. 누구 앞에서 어린애 장난질이야. 다 죽어 개새끼들아”
이 와중에도 쉴드를 걸치고 간신히 살아남아 도망치고 있는 몇 명의 마법사들이 보였다.
“저놈들은 6서클 마법을 막아내는 걸 보니 적어도 6서클 이상 고위 마법사들인 것 같네. 쉽게 보내 줄 것 같냐?”
나는 말을 몰아 도망치는 놈들을 쫓았다. 내 몸에 화염의 비와 돌덩어리들이 부딪쳤지만 상관하지 않고 놈들을 앞질러 앞을 막아섰다.
텅! 텅! 텅!···.
티디디딩, 티디디딩~~
돌멩이와 화염의 비가 방어막에 부딪히는 소리가 나와 고위 마법사들의 몸에서 계속 울려 퍼진다.
퍽!
“끄아악~~”
그러다 마법사 중 한 놈이 머리 깨져 나뒹군다. 쉴드 방어막이 다되어 떨어지는 돌덩어리를 방어하지 못하고 머리가 깨진 것이다.
“네, 네놈은 도대체 누구냐?”
“나? 네놈들을 죽일 놈이다. 하하”
“이런 쳐 죽일 놈을··· 네놈은 우리가 누군지 아는 것이냐?”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옆에서는 중얼중얼 마법 수식을 읊조리는 소리가 들린다. 한쪽에서는 호박씨를 까기 위해 한쪽에서는 대화를 유도하며 시간을 버는 것이다.
“네까짓 것들이 누군데? 혹시 네놈들 중에 프란시스라는 놈이 있냐?”
내 말이 끝나자마자, 그동안 중얼중얼 마법 수식을 읊조리고 있던 놈이 대갈을 터트렸다.
“이놈 뒈져라!!! 플레어!”
7서클마법으로 초고온의 화염을 쏘아내는 마법이다. 놈의 손에서 거대한 화염의 구가 형성되어갔다.
“캔슬”
아니, 형성되어가다 사라졌다. 내가 캔슬을 시키자 놈의 손에서 구현되던 플레어 마법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컥! 으억!!”
놈의 입에서 핏덩어리가 쏟아져 내렸다. 예전 로엘 후작이 마나 역류로 저렇게 된 적이 있었다. 놔두면 그냥 뒈진다.
“7서클 마법을 쓰는 걸 보니 네놈이 프란시스란 놈이구나. 너 잘 만났다. 널 기다리는 사람이 있거든. 나랑 함께 가줘야겠다. 돌팔이 새끼야”
“끄억~”
“크아아악~”
“컥~”
···.
나는 라쿤을 휘둘러 주위에 있던 떨거지들을 모두 죽여버렸다. 그리고 아직도 검은 피를 뿜어내고 있는 프란시스후작의 목덜미를 잡아채고 말머리를 돌려 지르크 산성을 향해 말을 달렸다.
두두, 두두두두~
두두두두~ 두두두두~
한참을 달려 지르크 산성과 자이르 왕국군 진지의 중간 지점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뒤쪽에서 지축을 흔드는 말발굽 소리가 울려 퍼졌다.
뒤를 돌아보니 600여 기가 넘은 말들이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자이르왕국의 기사단이었다. 나는 돌아서서 라쿤을 뽑아 들었다. 그런데 그때,
두두, 두두두두~
두두두두~ 두두두두~
또다시 뒤쪽에서 대규모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지르크산성 쪽이었다. 해리슨공작을 필두로 리갈후작과 하이샌드백작, 발두스백작, 카토백작, 케일백작 등이 이끄는 레온왕국의 400여 명의 기사가 말을 타고 산성을 내려오고 있었다.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던 두 기사 집단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오더니 양 진영의 거리가 200m를 남겨두고 멈춰 섰다. 해리슨공작, 리갈후작을 비롯한 백작들이 나에게 다가왔다.
“오호, 프란시스 후작을 잡으셨군요. 총사령관님”
해리슨 공작이 환한 미소를 보이며 곧 죽을 듯 캑캑거리고 있는 프란시스 후작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놈이 확실히 프란시스란 놈이 맞지요?”
“맞습니다. 그놈이 자이르왕국의 악랄한 흑색 마탑주 프란시스후작이 맞습니다.”
옆에서 리갈 후작이 프란시스가 맞는다고 확인해 주었다.
“ 총사령관님. 여기는 저희에게 맡겨 주십시오. 오늘 기필코 저놈들의 목을 베고야 말겠습니다.”
해리슨 공작이 말하자 옆에 있던 리갈 후작과 하이샌드 백작을 비롯한 백작들이 한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저희에게 맡겨 주십시오. 총사령관님”
나도 대규모 기사전을 한 번 정도 보고 싶었다. 그리고 레온왕국의 기사들의 실력도 어느 정도인지 보고 싶기도 했고,
“저놈들의 수장은 누구입니까?”
해리슨 공작이 손가락으로 적들의 중간 지점을 가리킨다.
“저기 서 있는 자가 보르테 후작입니다. 자이르 왕국의 소드마스터 중 2인자로 뽑는 인물입니다.”
“저자는 해리슨 공작님이 상대해야겠군요?”
“그렇습니다.”
“그럼 다른 자들의 경지는 대략 어떻게 됩니까?”
“흠, 보니까, 마세프 백작을 비롯하여 익스퍼트상급에 이른 자들이 서너 명 보입니다. 그리고 중급은 확실히 저희보다는 많습니다.”
“그 말은 정석대로 싸우면 우리가 밀린다는 말이군요?”
“···.”
해리슨공작이 입을 다물었다. 긍정의 표현이다.
“흠···”
나는 잠시 고민했다. 나도 나가서 싸울 것인지 이대로 그냥 지켜볼 것인지, 한참 생각하고 있는데 상대 진영에서 기사 한 명이 말을 몰아 중간 지점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나는 자이르 왕궁의 변경백 마세프 백작이다. 누가 나와 대적할 놈 있느냐? 있으면 나와라.”
저러다가 내가 나가면 어쩌려고 저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기사들의 결투에는 룰이 있다. 결투 신청자보다 높은 경지의 기사가 나가면 안 된다. 신청자와 같은 경지의 사람이거나 낮은 경지의 사람이 나가서 상대하는 것이 기사들 사이에서 룰이라고 한다. 그래서 저놈이 저리 자신 있게 나와서 결투를 신청하는 것이다.
그때, 옆에 있던 같은 변경백 하이샌드 백작이 발끈했다.
“저, 저런 쳐 죽일 놈을···총사령관님 제가 나가겠습니다. 제가 나가서 저놈과의 오랜 악연을 끊고 오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각 나라의 변경백으로서 오랜 세월 국경에서 아웅다웅하며 쌓인 원한이 깊을 것이다. 하이샌드백작이 이리 발끈한 것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저자의 경지가 익스퍼트 상급이라 했는데, 하이샌드 백작이 대적해서 이길 수 있겠습니까?”
잠시 머뭇거리던 하이샌드 백작이 결심했는지 큰 목소리로 결의를 다졌다.
“총사령관님, 저자의 경지가 저보다 높은 것은 사실이나 꼭 경지가 높다고 하여 무조건 이기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오늘 전장에서 죽는다 하더라도 저자만큼은 반드시 저승길에 데려갈 것입니다.”
하이샌드백작이 동기어진이라도 할 생각인 것 같다. 결의를 다진 기사에게 하지 말라고 하면 그것도 모욕이다. 어쩔 수 없이 허락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런 자에게 백작님을 죽게 할 수는 없지요. 쉴드~”
나는 하이샌드백작의 몸에 쉴드를 걸었다. 하이샌드백작의 몸에 얇은 방어막이 보일 듯 말 듯 아지랑이처럼 생성되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하이샌드백작 본인은 느낄 것이다.
“이, 이것은···”
나는 하이샌드백작의 귀에 대고 귓속말로 속삭였다.
“적어도 열댓 번의 공격은 충분히 막아낼 겁니다. 가서 맘 놓고 싸우시고, 꼭 저자의 목을 내 앞에 가져오십시오”
“아아, 넵!! 기필코 저자의 목을 베어 총사령관님 앞에 가져다 바치겠습니다.”
하이샌드백작이 자기 말에 올라타고 마세프백작을 향해 달리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레온왕국의 변경백 하이샌드백작이다. 내가 네놈의 목을 쳐서 오랜 원한을 씻을 것이다.”
“와하하하하, 고작 익스퍼트 중급인 네놈 따위가 익스퍼트 상급인 나를 상대하겠다는 것이냐? 와라 하이샌드야, 나도 오늘 너와의 오랜 악연을 이 자리에서 끊을 것이다.”
마세프백작도 결의를 다지며 말을 달려 하이샌드백작에게 돌격해 들어갔다.
하이샌드백작의 검에서는 흰빛의 오러가 흘러나와 검신을 감쌌다. 마세프백작의 검에서는 푸른빛이 나와 검신을 감싸고 있었다.
이윽고 두 사람의 검이 부딪혔다.
꽝!!! 카가가강~
폭발음이 들리더니 쇠붙이 갈리는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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