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공짜로 상단 건물 짓기
잠시 후, 하벨남작이 눈을 뜨더니 나에게 말했다.
“오늘 나는 철민경에게 좋은 가르침을 받은 것 같소. 마치 개안을 한 것처럼 머리가 맑아지고 내가 영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되었소. 감사하오”
“별말씀을요. 그런데 영지의 상업세는 얼마나 내면 되는 겁니까?”
“우리 영지의 상업세는 1할5푼이오. 대형상단이건 행상인이건 모두 동일하게 적용되오”
15%라는 말이다. 한국에서는 부가세 항목으로 물건 값의 10%가 세금으로 붙어있다. 그리고 별도로 종합소득세라 하여 매년 자신이 벌어 들인 소득에서 적게는 6%부터 많게는 42%까지 또 세금을 걷어간다. 거기에 비하면 15%로 퉁치는 것은 해피한 것이다.
“적당하군요. 내가 판매하는 상품이 고가의 상품이라 아마 많은 세금이 걷힐 겁니다. 아무쪼록 영지 발전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감사하오. 철민경”
“일단 조만간 몇 건의 경매를 진행할 생각입니다. 건물을 구해지면 바로 진행할 겁니다. 경매할 물품은 6m짜리 레비탄가죽 1개와 트롤사체 1마리 입니다.”
“뭐이라고요? 레비탄가죽 6, 6m짜리? 트롤사체라고요?”
“네. 무슨 문제 있습니까?”
“아,아니요. 얼마전에 해밀턴성에서 5m 짜리 레비탄가죽 경매가 있었다고 들었는데···혹시”
“네. 제가 진행했던 경매였습니다. 욕심 많은 이안남작이 낙찰 받았지요. 하지만 저와는 상관없습니다. 본인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금액을 올린 것이고 난 그들을 속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판매되는 레비탄가죽은 명백하게 가장 큰 놈입니다. 정확하게 6m 23cm의 레비탄가죽입니다.”
나는 아공간에서 가장 큰 레비탄가죽을 꺼내서 연회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보여줬다.
“헉! 이, 이게 ...”
“세상에 이렇게 큰 레비탄이 있다니, 말도 안돼”
“아, 지금까지 가장 크다고 알려진 제국의 레비탄보다 2배는 큰 거 같습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으로 연회장이 시끌벅적 해졌다. 하벨남작도 입을 쩌~억 벌리고 다물 줄 모르고 있다. 아이린도 입을 가린 채 놀란 두 눈만 크게 뜨고 레비탄가죽에 시선을 고정 시키고 있다.
그리고
쿵~
연회장이 잠시 흔들렸다. 레비탄 옆으로 놓여진 물건 때문이다.
“까아악~”
아이린이 놀라서 비명을 지른다. 연회장의 모인 사람들도 더 이상 말을 있지 못하고 멀뚱히 내려진 물건만 바라보고 있다.
기사단장 타이슨이 턱을 떨면서 간신히 입을 열었다.
“트, 트, 트롤 입니다. 영, 영주님”
“나,나도 보, 보고 있소, 타이슨 경”
나는 하벨남작에게 말했다.
“이제 제 말을 믿으시겠습니까. 영주님? “
“무, 무엇을 해 드리면 되겠소, 철민경”
“홍보를 좀 해 주세요. 레이든성에서 이것들의 경매가 시작된다는 것을 각 영지, 아니 왕국 전체에 홍보 해 주세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런 것은 걱정 마시오. 철민경이 하지 말라고 해도 내 기필코 홍보를 해야겠으니 맡겨만 주시오. 하하하하”
“그것이면 됩니다.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리고 경매 개시는 앞으로 10일 후에 하면 되겠습니까?”
“조,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오. 왕국 전체에 알려지고 레이든성까지 오려면 적어도 한달은 필요할 것이오”
“한달이라. 흠···”
“내일이라도 당장 상단이 들어설 땅을 배정하여 건물을 짓는 공사를 시작하겠소. 밤낮으로 진행하면 1달정도면 얼추 건물을 올릴 수 있을게요. 그때 거기서 진행하는 게 어떻겠소. 철민경”
“그럼 저는 레이든성 구경 좀 하고 그린마운틴에 가서 사냥도 하면서 시간을 좀 때워야겠군요”
“사냥 말이오? 그린마운틴의 대형몬스터를 잡으실 생각이시오?”
“네. 오크들이 외각으로 밀려난 것은 다 그놈들 때문입니다. 저대로 놔두면 또 다시 투란마을이나 그린마운틴과 연결된 또 다른 마을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기회가 될 때 잡아내야 합니다.”
“아아. 철민경. 그리만 해 주신다면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소. 필요한 모든 사항을 지원하겠소. 병사들이나 기사들도 지원하겠소. 뭐든 말만 하시오.”
“다 필요 없습니다. 괜히 같이 갔다가 애꿎은 젊은 목숨만 잃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 혼자 다녀오는 게 편합니다. 그리고 여기 있는 세 사람이 앞으로 상단 일을 맡아서 일할 직원들입니다. 건물 짖는 것부터 스콜과 상의하여 진행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겠소. 철민경”
레이든영주성에서 하벨남작과 접견한 다음날부터 빠른 속도로 일 처리가 진행되었다. 바로 상단이 들어설 땅이 배정되어 바로 구획 정리에 들어갔다. 상단지역은 도시 외각에 약 3천평이 배정되었으며, 부지한 쪽에 조그마한 동산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 스콜이 상단 건물의 설계도를 가지고 나를 찾아왔다
“벌써 설계도가 나왔어요?”
“네. 주군. 말도 마십시오. 하벨영주님께서 직접 각 부서를 돌아다니면서 최우선적으로 처리하라고 닦달을 하고 계십니다. 행정관들이 어제 저녁부터 밤을 새워가며 상단 부지부터 설계도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벨남작이 직접 나서서 뛴다는 것은 상단에 거는 기대가 그만큼 높다는 거다.
‘어쩌면 나를 정착 시키기 위한 제스처일지도 모르고···’
“오후부터 상단 부지로 마차들이 많이 들어 가던데 그건 뭔가요?”
“지금 레이든영지 전역에서 목재와 석재 등 건축 자재들이 상단 부지로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주군께서 그 마차 행렬을 보신 듯 합니다. 공사 현장에 할버트와 조나단이 남아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인부들은 어떻게 구한 답니까? 이제 곧 수확기라서 공사 인부들 구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영주성에서 제이콥집사님 나와서 성내 근로자들을 모집하고 계세요. 임금을 2배로 처 준다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놀드 기사님이 영주성 병사들을 데리고 외각 경계를 서 주고 있습니다.”
“햐~ 이거 일 처리가 빨라서 좋긴 한데, 좀 부담스럽기는 하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하하”
“설계도를 좀 볼까요?”
스콜이 가져온 설계도를 펼쳤다. 설계도는 한 장이 아니라 7장이였다.
“뭐가 이렇게 많아요? 건물들이 다 틀립니까?”
“네···상단 본건물이 대형으로 1채가 들어설 거고요. 대형창고 2채, 경비막사가 1동, 대형 경매장이 1동, 그리고 식당 1동이 들어섭니다.”
‘아..그렇지’
나는 꼴랑 상단 건물이나 경매소만 생각했지 그에 따른 창고나 경비병 막사, 식당 등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래서 한 사람의 뛰어난 머리가 열 사람의 보통 머리를 못 따라 간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한 장의 설계도가 좀 이상했다.
“이것은 무슨 건물인데 다른 건물과 다르게 화려하네요?”
“아, 그 건물은 앞으로 주군께서 머무르실 저택입니다. 특별히 영주님께서 신경 쓰라고 지시한 건물입니다.”
“저택이요? 내 집?”
규모가 꽤 컸다. 그리고 상단 지역 중앙에 있는 동산 위에 지어진다. 동산의 높이가 30m는 되어 보였는데 그 정도면 일대의 모든 것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렇습니다. 주군께서 머무르실 저택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좋은데 구지 따로 지을 필요가 있을까요?”
사실 집까지 지어준다고 하니 좋다기 보다는 갑자기 부담이 확 다가온다. 이리 되면 나중에 떠나고 싶어도 쉽게 떠날 수 없지 않을까 싶다.
“이 집도 좋긴 하지만 주군께서 상단까지 출퇴근하기에 불편하실 수 있습니다. 또한 그 곳의 위치가 상단 전체를 관망할 수 있는 위치라서 어느 때건 주군께서 상단을 관리하기에 용이 하시리라 생각됩니다. 더하여 주군을 호위함에 있어서도 여기 보다는 상단 내에 저택이 있는 것이 훨씬 안전합니다.”
“그렇기는 하겠네요.”
스콜의 말이 어느 것 하나 틀리지 않기에 더 이상 거부할 수가 없었다. 스콜이 저택을 떠나자, 두리안이 불쑥 말을 걸어온다.
“주인님의 집이 생긴 거 축하 드려요”
“축하는 무슨, 나에게 부담감 팍팍 줘서 못 떠나게 하려는 속샘이지”
“그래도 이렇게까지 배려해 준다는 건 주인님과 상단에 큰 기대를 가지고 있다는 거잖아요?”
하벨남작이 큰 배려를 해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세금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다 무상으로 해줄 기세다.
“이게 다 내 돈 가지고 생색내는 거야. 네가 생각하기에 한달 후에 열릴 트롤 경매에서 낙찰가가 얼마나 나올 것 같냐?
“지난번 스티브라는 행상인이 경매로 40만골드에 낙찰되었다고 하지 않았나요?”
“마자, 40만골드의 세금이 15%이면 6만골드인데, 그 돈이면 지금 짖고 있는 상단의 땅과 건물들 모두 짓고도 남는 금액이다. 한마디로 하벨영주는 내가 내는 세금으로 선심 쓰고 있는 거지”
“그렇군요. 그런데 주인님. 트롤의 상품 가치가 높은 건 알겠는데, 오우거의 2배라는 것은 이해가 잘 안돼요. 선조들의 기록에도 2배라고는 나와있지 않거든요.”
“그건 아마 포션의 가격 때문인 것 같아. 지난번에 얼핏 듣기로 포션 한 병에 200골드가 넘는다고 하더라. 그리고 트롤 한 마리에서 나오는 피의 양이 포션 2,500병 정도를 만들 수 있다고 했어. 계산해 보면 트롤 한 마리로 50만골드 이상의 포션을 제작할 수 있고, 나머지 눈과 내장, 뼈, 그리고 가죽으로 만들 수 있는 상품이 또 상당한 가치를 가지고 있으니, 40만골드는 결코 비싼 금액이 아니라는 거지”
“아! 그렇군요. 포션이란 것이 무척 비싸네요. 효과는 좋을까요?”
“모르지. 나중에 한병 사서 시험해 봐야겠어. 하마베와 비교해서 어느 정도인지 알아봐야지”
“네. 하지만 하마베의 효과를 따라오지는 못할 것 같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만약에 포션이란 것이 하마베와 비슷한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면 하만씨의 딸이 지금까지 치료를 못하고 있지 않았을 거예요”
“아!!!”
정곡을 찌르는 두리안의 말에 나는 감탄을 했다. 역시 두리안의 지능은 미지의 수림에서 만난 그 어떤 특별한 생명체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창피하지만 지구에 살던 나보다 더 뛰어난 지능을 가진 것 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어쩌면 인간 세상에 사는 트롤과 미지의 수림에 사는 트롤이 다를지도 몰라요.”
“···.?”
“이곳에 사는 트롤들은 천적이 없어요. 다시 말해 경쟁이 없다는 것이죠. 그리고 먹는 것도 약해 빠진 몬스터들이 전부이고요. 지난번에 오크들을 보면서 느낀 건데 덩치만 우락부락하지 힘은 없는 그런 몬스터였어요. 아마도 공기 중에 녹아있는 마나의 양이 미지의 수림과는 다른 듯 해요. 반면에 미지의 수림에 사는 몬스터들은 일생을 천적들의 위협과 경쟁 속에서 살아가고 있죠. 그리고 먹는 것도 그런 강한 몬스터 들이고요. 당연히 피의 농도나 재생 능력, 그리고 덩치나 힘도 차이가 있을 거라 생각돼요.”
“우와~ , 두리안 너 진짜 대단하다. 감탄했어. 네 말대로 진짜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그것을 확인해봐야겠다”
“확인이요? 어떻게 확인해요. 주인님?”
“거기 있잖아. 투란마을···”
“아! 오크들을 밀어낸 놈들을 찾으러 가면 되겠군요”
“그래, 조만 간에 가보자. 거기에 분명 트롤이나 오우거가 있을 거야”
“네. 주인님”
********
4일 동안 성 내에 머물면서 오랜만에 하릴없이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확실히 성 사람들의 표정이 해밀턴성 사람들과 달리 밝아 보였다. 물품 가격도 훨씬 저렴했다. 밀 가격도 해밀턴성보다 50쿠퍼정도 저렴했고, 옷 값이나 기타 잡화 가격도 모두 저렴했다. 아마 세금이 적다 보니 제품의 가격도 내려 간 듯 보였다. 또한 레이든성에서는 과거 해밀턴성에서 보았던 노예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노예들이 없는 건지, 집에서만 일하게 하는 건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하벨남작의 됨됨이를 보건데 노예라고 해서 학대하거나 차별 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4일 동안 아이린을 10번 넘게 마주쳤다.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는지 가는 곳마다 그녀가 있었다. 처음에는 서로 반갑게 인사하다가 나중에는 봐도 그냥 모른 척 해버렸다. 인사하기도 지겹다. 아무튼 레이든성에서 가장 바쁘게 돌아다니는 여자인 건 틀림없다.
그러다가 마법 도구를 파는 상점에서 딱 마주쳐버렸다. 면전에서 바로 마주치다 보니 쌩까기도 뭐해서 반가운 척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아이린 영애님”
“안녕하세요. 철민경.”
“여기 저기 돌아다니시는 걸 보니 무척 바쁘신가 봅니다. “
“네. 상인들과 만나면서 애로 사항이 있는지 파악하고 해결을 해 주는 것이 제 일인 걸요. 철민경께서는 마법 상점에 어쩐 일이세요”
“저는 이것을 감정 받아볼까 하고 왔습니다.”
품에서 마나석 하나를 꺼내 상점 주인에게 내밀었다.
마법 상점 주인이 받아 들고 깜짝 놀라며 나를 쳐다 봤다.
“왜 그러세요? 이것이 몇 등급 짜리 인지 확인 가능합니까?”
“이것은 2등급짜리 마나석입니다. 매우 귀한 물건입니다. 레이든성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물건이죠.”
“그래요? 그럼 가치가 어느 정도 되지요?”
“2등급이면 못해도 1,000골드는 받을 수 있습니다.”
마나석에 담긴 마나의 양은 약 700정도 되는 것 같았다. 위급할 때 쓰면 정말 확실히 도움이 되는 물건이긴 하다. 이런 마나석이 295가 있다. 도대체 이안남작은 어디서 이런 것을 구했는지 궁금해진다.
“1등급도 있다고 했는데 그건 어느 정도 가격인가요?”
“1등급은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1년에 몇 개 나오지도 않고 나온다 해도 마탑에서 전량 독점으로 구매하기 때문에 일반 사람은 구경도 못합니다. 가치를 따진다면 5,000골드는 줘야 구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 안에 들어있는 마나는 재충전이 가능한가요?”
“아닙니다. 마나를 전부 사용하면 마나석은 부서져서 가루가 되어 버립니다. 재충전은 불가능 합니다.”
“그렇군요. 그럼 혹시 포션도 파십니까?”
“저희 상점에는 포션이 없습니다. 포션을 구하려면 백작성에는 가야 구할 수 있습니다.”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아, 아닙니다. 필요하신 물건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방문해 주십시오. 철민경”
“그러지요”
나는 마법 상점 주인과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뒤돌아서서 나가려 하는데 아이린이 나를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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