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소드익스퍼트 상급의 수준
골드반카의 샤뮤엘은 나에게 다가와 깍듯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골드반카의 사뮤엘이라고 합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사뮤엘이 악수하자는 뜻 인줄 알고 내 손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나는 사무엘의 손을 쳐버렸다. 그리고 다시 손을 내밀었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손도 안 씻고 악수를 하려고, 돈 달라고 새끼야. 돈’
사무엘은 흠칫 놀라며 뒤로 한발 물러나더니 나를 빤히 쳐다 봤다.
“돈”
“아!!”
그제야 내 뜻을 알아차린 사무엘이 품속에서 증서 한 장을 꺼내 나에게 주었다.
“신용장입니다. 해밀턴영지 뿐만 아니라 레온왕국 어디를 가시더라도 그 신용장만 있으면 2만골드를 지급 받으실 수 있습니다.”
“오늘 당장 바꾸고 싶은데.”
“오늘 당장 말입니까?”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가능합니다.”
나는 신용장을 받고 레비탄가죽을 이안남작에게 내주었다. 그러면서 이안남작과 그 아들 바우보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 물건이 두 분에게 큰 행운을 가져다 주기를 기원합니다.”
‘···는 지랄, 니들은 이제 좃 된 거야 이 쓰레기 새끼들아.’
그리고 곧장 골드반카 해밀턴지점으로 가서 골드를 찾았다. 사무엘이 보는 앞에서 한 상자에 금화 5,000개가 들어있는 상자 4개를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헉, 마법주머니가 있으신 겁니까?”
사무엘은 무척 놀랬다. 마법주머니는 상상 외로 비싼 물건이다. 금화 4상자가 단숨에 들어갈 수 있는 정도의 마법주머니는 못해도 10만골드는 주어야 살 수 있는 물건이다.
‘도대체 이분은···.’
나는 사무엘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그럼 다음에 기회 되면 또 봅시다”
바로 골드반카를 빠져나와 여관으로 왔다.
“오늘 횡재 했다. 두리안···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그 못된 영주놈이 이런 식으로 치고 들어올 줄 몰랐습니다.”
“적당히 돈 좀 벌려고 했는데 그놈이 자기 무덤을 스스로 팠네. 지금쯤 나를 노릴 작당모의를 하고 있을 거야”
“······?”
“당연한 거 아니겠냐. 자기 영지를 담보로 엄청난 금액을 빌렸다. 레비탄가죽이 아무리 값 나가는 물건이라도 대책 없이 그런 짓을 할 사람은 없어. 적어도 나를 죽여서 내가 가진 골드를 다시 회수할 계획이 아니라면 말이야. 그리되면 그놈은 공짜로 레비탄가죽을 얻게 되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정말 나쁜 놈이네요. 진짜 주인님을 공격할 계획이었다면 이놈은 절대 용서하면 안됩니다.”
“하하, 걱정 마라 두리안. 좀 전에 그놈을 엿 먹일 방법을 생각해 뒀다.“
“주인님만 믿을게요”
“두리안 이건 어제 보석상 주인 말을 듣고 생각해 본 건데”
“......?”
“혹시 보석 원석을 사다가 네가 가공해보는 일을 해 보는 건 어때?”
“아!! 좋아요. 그런 일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좋지? 원석 가격은 가공된 보석의 4할 정도라고 했으니 굉장히 많이 남는 장사가 될 거야”
“열심히 해 볼게요 주인님”
“그래”
여관에서 늦은 점심을 먹은 나는 다시 잡화점 거리로 나와 하만을 찾았다.
“어서 오세요. 철민님”
“하만씨, 부탁이 하나 있어서 왔어요.”
“무슨 부탁이십니까. 제가 들어드릴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들어 드리겠습니다.”
하만은 나를 최대로 존중하고 있다. 낮에 있었던 경매를 구경하면서 놀라 자빠질 뻔했다고 한다. 이제 나는 해밀턴성에서 유력한 재력가이자 하만 자신에겐 무려 오우거의 가죽을 통째로 맡긴 최대 VIP고객이다.
“그리 어려운 건 아니고요. 제가 신분패가 없다 보니 이리저리 움직이는 게 쉽지가 않네요. 그래서 용병 길드에 가입해서 신분패를 하나 얻으려고 해요. 좀 도와줄 수 있나요?”
“아하하, 신분패가 필요하신 거군요. 걱정 마십시오. 제가 용병 길드의 부길드장인 제롬과 막연한 사이입니다. 가시지요. 지금 당장 저와 가셔서 제롬을 만나 보시죠”
하만은 가게 문을 닫고 앞장서서 나를 안내 했다. 용병 길드는 도시 외각에 자리하고 있었다. 넓은 연병장에서 용병들의 훈련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려왔다.
용병 길드에 들어서자 하만은 안내 직원에게 재롬의 면담 신청을 했고, 잠시 후 다부진 체격의 근육질 남성이 나오더니 하만과 반갑게 대화를 주고받다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제롬이라고 하네. 용병 길드의 부길드장을 맡고 있네”
“강철민이라고 합니다.”
“하만에게 대강 애기는 들었네. 그래 전투 특기가 무엇인가?”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마법사라는 걸 알리지 않기로 했다. 밑천을 까발릴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몸으로 하는 건 뭐든지 잘합니다.”
“흠, 체격이 좋으니 그럴 만도 하겠네. 그럼 잠시 테스트를 해 봐도 되겠는가? 정확한 실력을 알아야 실력에 맞는 용병패를 내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지”
“상관없어요”
“그럼, 연병장으로 가세”
잠시 후, 연병장에 도착한 제롬이 소리를 질렀다.
“지금부터 가입 테스트를 하겠다. 모두 연병장을 비워라”
제롬의 고함 소리에 연병장에서 훈련 중이던 용병들이 모두 연병장 밖으로 나갔다.
“어이 토마스, 자네가 테스트 상대가 되어 줘야겠어”
토마스라 불리는 사내는 급히 제롬 앞으로 뛰어와 차렷 자세로 힘 있게 대답했다.
“넵!! 알겠습니다. 부길드장님”
나는 약간 웃음이 나왔지만 꾹 참았다.
'무슨 군대도 아니고 각 잡기는···'
제롬은 나에게 다가와 토마스의 이력을 설명했다.
“토마스는 C급 용병이네, 자네의 실력을 모르니 C급부터 시작해 보세”
“용병의 등급 체계가 어떻게 되나요?”
“가장 낮은 E급부터 가장 높은 S급까지 있다네”
“그럼 S급을 불러 주세요”
내 말에 제롬의 미간이 꿈틀 거리는 것이 보였다.
“이보게 자넨 S급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나 하는 소리인가?”
“제롬씨? 내가 말했을 텐데요. 나는 몸으로 하는 것은 뭐든 잘한다고. 당신이 말한 S급이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겠지만 혼자서 오우거를 잡을 실력이 안된다면 나를 이길 수 없을 겁니다.”
“젊은 친구가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모양이군. 좋아, 나를 이긴다면 S급을 불러주겠네. 참고로 나는 A급 용병이라네”
‘에고, 아저씨. 세상 물정 모르는 건 제롬 당신이야. 코피 터지고 나서 울지나 마셔.’
두 사람은 연병장 가운데에 섰다.
연병장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데 부길드장님과 대결하는 거지?”
“신입인가 봐. 근데 버릇이 좀 없어. 갑자기 S급용병과 대결하겠다고 하더라고”
“뭐라고? 하하하, 정신 나간 놈이군”
“그렇지, S급이 뭔지도 모르는 놈이야.”
“S급 용병이 소드마스터라는 걸 알면 그런 소리 못하지”
제롬이 칼을 뽑아 들며 나에게 말했다.
“자네도 칼을 뽑게”
나는 말없이 고개를 저으며 두 주먹을 쥔 체 제롬에게 걸어갔다.
‘오우거도 한방에 죽이는 주먹이야. 뭐 그때는 마법으로 강화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인간 정도라면 굳이 강화 안 해도 한 방 감이지.’
제롬이 자세를 잡으며 검에 마나를 흘리자 백색의 오러가 검에 씌워지며 검의 크기가 2배정도 커졌다. 제롬은 오러 없이 나를 상대할 생각이었으나 내가 주먹을 쥐자 느낄 수 있었다. 나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야성의 힘, 그것은 절대 자기 밑이 아니라는 듯 제롬의 온몸을 할퀴고 지나갔다. 순간 소름이 온몸에 돋아 났다.
주위에서 다시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뭐야 소드익스퍼트 상급을 맨 주먹으로 상대하겠다고?”
“저게 무슨, 허리에 차고 있는 검은 폼으로 차고 다니는 건가?”
“다들 조용히 해, 부길드장님이 함부로 오러를 사용하시는 분이 아니야”
“엉? 그럼 뭐야. 저 상황은···”
제롬이 공격을 시작했다. 나의 얼굴을 향해 빠른 속도로 검을 일직선으로 쭈욱 뻗었다. 분명 검은 한 자루인데 날아드는 백색 검날은 여러 개.
슈슈슈슈슈~
정확히 10개의 백색 검날이 내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것도 무슨 마법 같은 건가. 갑자기 10개로 변해서 공격하네. 근데 너무 느려서 어디로 지나가는지 다 보인다. 다 보여’
나는 날아드는 백색 검날을 응시하며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옆으로 한발 빼며 몸을 반 바퀴 돌렸다. 백색 검날은 간발의 차로 내가 서있던 자리를 찌르고 지나갔다.
“헉. 이, 이럴 수가···.어떻게? 막을 수는 있어도 피할 수는 없다는, 우리 가문의 비기검술을 어떻게 이리 쉽게... ”
‘이 아저씨 지금 정신 나간 것 같은데 잠시 기다려줘야 하나?’
나는 제롬의 다음 공격이 있을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서있었다. 제롬은 정신을 차리고 다음 공격을 이어갔다. 오러를 최대치로 끌어 올려 온 힘을 다해 나에게 검을 찔러 넣었다.
백색의 오러가 요동치듯 공중으로 뻗어나가며 36개의 검날로 분리되더니 내 온 몸을 찔러 들어왔다.
슈슈슈슈슈슈슈슈~
‘보기에만 현란할 뿐 공격력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어디 한번 맞아 볼까.’
나는 비웃는 듯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날아오는 백색 검날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리고 검날들이 튕겨나가는 소리가 연병장 전체를 뒤흔들었다.
텅!텅!터터터터터터텅!···.
정확히 36번의 검날 튕기는 소리가 끝나 후,
퍽!
다소 이질적인 소리와 함께 제롬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철퍼덕···
10m정도를 날아간 제롬은 땅에 처박히자마자 기절해 버렸다.
주위에 적막이 흘렀다. 좀 전까지 쑥덕 거리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단 한방, 한방의 주먹으로 용병길드의 부길드장이자 소드익스퍼트 상급의 A급 용병이 쓰러져 기절한 것이다.
‘익스퍼트 상급이라고 하더니 쉴드 한 개도 못 뚫었네.’
쉴드(Shield) 방어막 한 개의 방어력이 7,750인데 딱 3,600이 소모되었다.
회복실로 옮긴 제롬이 깨어난 것은 그로부터 2시간 후였다. 깨어나자 마자 나에게 대뜸 물었다.
“소드마스터시오?”
‘이젠 말도 높이시네. 진작 그럴 것이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조용히 미소 지었다. 제롬은 고개를 내 젖더니 다시 물었다.
“S급 용병패를 원하시오?”
“생각해보니 굳이 S급 용병패는 필요 없을 것 같네요. 그냥 A급으로 하나 만들어 주시죠”
제롬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회복실을 빠져 나갔다. 1시간정도 지나 다시 돌아온 제롬이 은색으로 빛나는 패를 하나 내밀었다.
은색 패에는 강철민이라는 이름과 용병길드에서 신원을 보장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고, 키와 체격,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 황색 피부라는 간단한 인상착의가 적혀있었다.
나는 제롬에게 하마베 하나를 주었다.
“이것은 내가 제롬씨에게 감사의 표시로 주는 겁니다. 몸이 크게 다치거나 전투 중 부상을 입었을 때 먹으세요. 언젠가 한번은 당신의 목숨을 구해줄 겁니다.”
제롬은 동그란 하마베를 한번 쳐다보더니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하마베를 품에 넣었다.
용병길드를 나온 나는 하만에게도 하마베 하나를 줬다. 딸에게 가서 먹이라고 했더니 표정이 긴가민가 한 표정이다.
하만과 헤어진 후, 하만이 소개해 준 밀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하레스상단을 찾았다.
“어서오세요. “
“밀을 사고 싶은데 거래 가능한 수량이 얼마나 돼요?”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저희 상단은 밀만 전문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손님께서 필요하신 만큼 얼마든지 수량을 맞춰드릴 수 있습니다.”
“3천포대”
“네? 어,얼마요?”
점원은 자기가 잘못들은 게 아닌지 얼빠진 얼굴로 다시 물었다
“3천포대, 내가 원하는 수량이 3천포대라고”
“그, 그렇게 많은 수량은 지,지금은 없습니다.”
“맞춰 줄 수 있다며?”
“죄송합니다. 손님.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점원은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나도 예의 바른 점원을 더 이상 몰아세우지 싶은 생각은 없다.
“흠, 그럼 최대 얼마나 있는데?”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점원은 급히 안으로 들어가더니 중년 남자와 같이 나왔다. 뚱뚱한 체형의 중년 남자는 나를 알아보는 듯했다.
“앗! 다, 당신은 경매···..”
나는 남자의 말을 무시하고 본론을 꺼냈다.
“내가 살 수 있는 밀의 양이 얼마나 됩니까?”
정신을 차린 중년 남자가 장부를 보며 나에게 대답했다.
“아! 저희 상단에서 현재 확보하고 있는 밀의 수량은 제분된 밀 300포대, 도정된 밀 500포대, 그리고 도정 안된 밀 1000포대 있습니다.”
“가격은?”
“제분된 밀 6골드, 도정된 밀 5골드, 도정 안된 밀 4골드 입니다.”
“다해서 총 금액이 얼마요?”
“치... 칠천팔백골드입니다.”
남자는 떨리는 입을 간신히 추스리며 말했다.
“다 해서 7천골드합시다.”
나는 단호하게 밀 가격을 깎아 내렸다.
“소,손님 그것은 안됩니다. 지금은 어디든지 밀이 없어서 못 파는 시기 입니다.”
나는 상점 테이블 위에 7천골드를 꺼내 놓았다. 옆에 서있던 점원의 눈이 커지며 딸꾹질을 해 댔다.
딸꾹, 딸꾹
“팔려면 이거 가져가고, 아님 마쇼”
“저, 손님 저희가 남는 것이 없습니다. 딱 7천7백골드에 맞춰드리겠습니다.”
나는 두말하지 않고 아공간에 다시 금화를 집어넣으려 하자 남자가 급히 소리쳤다
“7천 3백골드, 저, 절대 그 이하로는 안됩니다.”
“콜”
나는 3백골드를 더 꺼내서 올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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