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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와 패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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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04.01 11:16
최근연재일 :
2020.02.09 22:13
연재수 :
271 회
조회수 :
116,588
추천수 :
2,679
글자수 :
1,047,762

작성
19.06.10 11:11
조회
362
추천
9
글자
8쪽

15장 핏빛 긍지 5화 출격 허가

DUMMY

5. 출격 허가





“내 경솔한 출격은 엄금하겠노라 일렀을 텐데.”


하크스 영주 로엘 공은 들고 있던 서류를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시선을 들어 올렸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망설임 없는 대답이 내쏘듯 곧바로 튀어나온다.


“그러나 이런 기회는 흔치 않습니다. 게다가······.”


영주는 고개를 흔들고 싶은 심정을 눌러 참고는 느릿한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아아, 적군의 이동을 기회 삼아 기습하겠다는 이야기라면 충분히 이해했네. 내 묻고자 하는 바는 그 다음은 어찌하겠냐는 것일세.”


더할 수 없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한 채 서 있는 젊은 수비 대장의 얼굴을 한참 동안 응시하던 로엘 공은 어색하게 잠긴 분위기를 환기해 주려는 듯 낮은 헛기침을 두어 번 내뱉었다.


“출격 요청을 할 때에는 어느 정도 생각이 잡혀 있겠지. 그래 장군은 이번 출격으로 얼만큼의 희생이 생기리라고 보는가? ”


평온한 말투였지만, 슈발츠를 향한 영주의 눈빛은 완고하기 그지없었다. 그저 단번에 안 된다고 잘라버리는 것 이상의 완강함이 서려 있는 눈동자였다.


아무리 기습 작전이라 한들 적군과 맞붙어 싸우는 이상 공격하는 쪽이라 해서 피해가 전혀 없을 수는 없는 일, 그 점은 영주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더불어 눈앞에 선 이 젊은 장수가 자신에게 그런 질문을 받았을 때 태연한 얼굴로 `일정 정도의 손실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식의 회피성 대답을 하지 못할 성품이라는 것 역시도.


“적은 아군보다 수적으로 압도적인 우세에 있다. 아군 한 명과 적군 한 명의 비중이 다르다는 것을 진정 모르는가? 지휘관의 잘못된 판단으로 아군 병사 하나가 죽는다면, 그건 스무 명을 잃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번 출격으로 오십 명 정도가 죽거나 부상 당한다면, 아군에게는 천 명이라는 막대한 손실이 생기는 것이다.”


“용서하십시오. 하오나 소관 이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 적의 진영에···!”


“레젤니크 라 슈발츠.”


로엘 공은 일부러 강한 어조로 부하 장군의 항변을 가로막았다.


“적의 진영에 뭐가 있다는 게지? 그대가 하려고 하던 말이, 이 성의 수비대장으로서의 발언이 맞는가?”


마주친 눈빛이 흔들렸다. 무거운 침묵이 경직된 공기 사이로 흩어지고 있었다. 슈발츠는 결국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아랫입술을 사려 물며 고개를 떨구었다. 떨리는 입술 사이로 흡사 쥐어 짜내는 듯한 목소리가 한참 만에 흘러나왔다.


“죄송합니다. 소관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 말을 꺼낸 뒤, 슈발츠는 스스로의 격앙된 감정을 다독이듯 깊게 숨을 들이켰다. 잠시 후 그가 다시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때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차분한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사령관으로서 감정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정리에 휩쓸리는 못난 모습을 보여드렸으니 무어라 꾸짖으셔도 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미세하게나마 갈라져 나오는 목소리나 딱딱 끊기는 듯한 말투, 그리고 필요 이상으로 경직된 자세 등, 그것은 어느 모로 보나 승복의 뜻은 아닌 모양이었다. 더군다나 자신을 향한 슈발츠의 얼굴은 어떤 결심을 하고있는 듯, 묘한 비장함까지 감돌고 있었다.


“장대에 매달린 이가 문제로군······.”


혼잣말처럼 내뱉은 중얼거림에 일순 슈발츠의 어깨가 움찔한다. 로엘 공의 뇌리에 첩자 발각 소식이 전해졌을 때의 슈발츠의 반응이 또렷이 스쳐 갔다.


‘저 불같은 성정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이대로 돌려보낸다면 혼자서라도 나가려 하겠지. 이제는 별도리가 없는 것이다. 아끼는 장수 하나 버릴 셈이 아니라면 내가 한 발짝 물러나는 수밖에. ’


영주의 입술 새로 짙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화약 사용을 허가한다. 단, 출격 군의 수는 이백으로 제한하라. 대신 기병을 운용하건, 보병을 운용하건 개의치 않겠다.”


“영주님···!”


회색빛 섞인 슈발츠의 푸른 눈동자에 눈물이 어리고 있었다. 영주는 그 시선을 외면하듯 두 눈을 감고는 깊게 잠긴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리고 내 원병 요청 글을 써줄 테니 지금 당장 몸이 날랜 군사 두어명을 로크라테 영주와 아나브릴 방어군으로 보내게. 전력 손실이 없는 로크라테 상비군과 아나브릴 방어군의 병력이 협조해준다면, 하크스 영지에서 이동 중인 적의 부사령관의 부대를 기습하고 내친김에 하크스 공략 부대 진영도 무력화시킬 수 있을 걸세.”


영주의 계획을 읽은 슈발츠의 얼굴이 환해졌다.


“전면전을 위해 이동하는 부대를 공격하여 적의 부사령관의 발목을 붙들고, 저희와 아니브릴 방어군이 합심하여 하크스 공략 부대를 격파하면, 이동을 결심한 클리어트의 부대 외에 후방에 충분히 병력이 없는 적으로서는 크게 당황할 것입니다. 그러면 로크라테와 펜데스칼의 백성들과 성주들도 고무되어 산발적인 저항을 하기 시작하겠지요.”


영주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렇지. 그러므로 이번 출격은 그를 위해 현재로서는 우리에게 가장 위협적인 적의 무기고 격파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네. 표면적으로는 적진 파괴의 대의를 내세워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우도록. 잊지 말게. 도량이 큰 장수는 한 번의 행동으로 여러 가지 효과를 얻는다는 것을.”




6. 로크라테의 반격 上





“아군의 표식이 붙지 않은 전서구가 영주께 날아왔다고 들었소. ”


노크조차 없이 집무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로크라테의 본성 노이부르크에 머물고 있는 코네세타 주둔군의 지휘관 슐리안 호텐이었다. 그의 무례한 행동에 영주 콜틴의 근위 기사들은 불쾌한 기색으로 눈썹을 치켜세웠지만, 영주가 손을 가볍게 들어 제지하자 씨근덕거리는 숨을 삼키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영주의 부하들이 저를 노려보고 있어도 호텐의 고압적이기 그지없는 태도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내용을 미리 검시하지 못하였으니 전서를 보여주시오.”


전투조차 없이 적에게 항복하여 산 채로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배신자로 낙인찍힌 콜틴이었으나, 이것이 모두 영내 백성들의 생명을 지키고, 수확기의 농작물을 수호하기 위한 그의 뼈아픈 고뇌의 산물이었음을 아는 로크라테의 가신들과 영지의 노이부르크의 기사들은 영주를 여전히 존경하고 있었다. 그러한 그들에게 주군이 당하는 모욕은 그 자신에 대한 것 이상의 상처였으나, 정작 당사자인 콜틴이 자제하고 있는 마당에 섣불리 움직일 수는 없어 그들은 그저 이를 악물고 참고만 있었다.


실제로 로크라테의 영주는 겉으로는 온유한 태도를 고수했지만, 보급로의 난항을 겪는 적군의 사정을 잘 알면서도 이런저런 구실로 보급을 거절하기 다반사였다. 물론 그때마다 영주 콜틴이 생명의 위협을 받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스스로 수확기의 농작물을 불태우면서까지 죽기 살기로 저항을 계속하는 하크스는 말할 것도 없고, 양군을 다 합쳐 50여만 대군의 전장이 되어 버린 펜데스칼의 대평원을 보급지로 이용하기 곤란해진 적군으로서는 로크라테마저 버릴 수는 없었다. 전쟁 초반 발 빠른 결단으로 영내의 안전을 지킨 영주에 대한 신망이 높다는 것을 익히 아는 호텐으로서는 외관상으로만 고분고분할 뿐,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콜틴이 괘씸해도 달리 어쩔 도리가 없었다.


“책상 위에 있는 전서가 바로 그것이오. 보고 싶다면 얼마든지 보시오.”


하등 거리낄 것이 없다는 양 콜틴은 책상 가운데 펼쳐진 자그마한 서한을 가리켰다. 두어 시간 전쯤 받은 하크스 영주 크리스티앙 레 로엘 공의 전서가 그 위에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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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12장 전장에 핀 꽃 7화 지원군의 본진 합류(12장 인명록) 19.05.23 415 10 9쪽
74 12장 전장에 핀 꽃 6화 출격요청 19.05.22 613 9 8쪽
73 12장 전장에 핀 꽃 5화 전장의 꽃 19.05.21 435 10 7쪽
72 12장 전장에 핀 꽃 3-4화 이반의 조짐 19.05.20 536 12 10쪽
71 12장 전장에 핀 꽃 2화 불꽃 같은 여인 19.05.19 426 8 8쪽
70 12장 전장에 핀 꽃 1화 굳건한 성벽 19.05.18 453 8 8쪽
69 11장 분열의 조짐 7-8화 최종단안(11장 인명록) 19.05.17 441 9 12쪽
68 11장 분열의 조짐 6화 뮤켄의 충고 19.05.16 504 8 9쪽
67 11장 분열의 조짐 5화 패퇴 19.05.15 450 10 7쪽
66 11장 분열의 조짐 3-4화 양동작전 19.05.14 430 10 10쪽
65 1부 11장 분열의 조짐 1-2화 후방기지 괴멸 소식 19.05.13 511 9 11쪽
64 10장 진흙 속의 연꽃 7화 투항 제의 (10장 인명록) 19.05.09 465 8 13쪽
63 10장 진흙 속의 연꽃 5-6화 접전 19.05.08 519 8 7쪽
62 10장 진흙 속의 연꽃 4화 적의 공격에 대처하는 각자의 자세 19.05.07 464 8 8쪽
61 10장 진흙 속의 연꽃 3화 후방기지 카르테 19.05.07 485 7 7쪽
60 10장 진흙 속의 연꽃 2화 이해 19.05.07 480 8 8쪽
59 1부 10장 진흙 속에 핀 연꽃 1화 불만 19.05.07 526 6 7쪽
58 9장 전설의 시작 7화 조력요청(9장 인명록) 19.05.06 525 7 12쪽
57 9장 전설의 시작 5-6화 전후처리 19.05.06 569 8 12쪽
56 9장 전설의 시작 4화 최초의 승리 19.05.06 551 7 11쪽
55 9장 전설의 시작 3화 교전 19.05.05 517 9 9쪽
54 9장 전설의 시작 2화 기습 19.05.04 504 12 9쪽
53 9장 전설의 시작 1화 위장잠입 19.05.03 497 8 10쪽
52 8장 효시 7화 작전계획(8장 인명록) 19.05.02 557 11 12쪽
51 8장 효시 6화 용기, 혹은 이길 수 있다는 신념 19.05.02 539 8 11쪽
50 8장 효시 5화 아나브릴 방어군에서 얻은 정보 19.05.02 486 9 9쪽
49 8장 효시 3-4화 사령관과 참모장 19.05.01 508 11 13쪽
48 8장 효시 2화 전장의 밤 19.05.01 534 10 11쪽
47 8장 효시 1화 행군시작 19.04.30 560 12 11쪽
46 7장 전환점 7화 최초의 동료(7장 인명록) 19.04.30 569 8 11쪽
45 7장 전환점 6화 입바른소리 19.04.29 539 11 8쪽
44 7장 전환점 5화 보이지 않는 벽 19.04.29 559 11 7쪽
43 7장 전환점 4화 출전령 19.04.28 573 10 7쪽
42 7장 전환점 3화 하크스 지원군 19.04.28 648 11 9쪽
41 7장 전환점 2화 정치적 포석 19.04.27 609 12 10쪽
40 1부 7장 전환점 1화 연전연패 19.04.27 580 11 8쪽
39 6장 개전 8화 승진 거절(6장 인명록) 19.04.26 586 11 8쪽
38 6장 개전 7화 뮤켄장군 19.04.26 632 13 9쪽
37 6장 개전 6화 개전 이후 19.04.25 573 9 7쪽
36 6장 개전 5화 선제공격 19.04.25 626 10 7쪽
35 6장 개전 4화 선전포고 19.04.24 639 13 7쪽
34 6장 개전 3화 어머니와 아들 下 19.04.24 572 16 11쪽
33 6장 개전 2화 어머니와 아들 上 19.04.23 598 12 7쪽
32 1부 6장 개전 1화 진상규명요구 19.04.23 631 10 11쪽
31 5장 태풍의 눈 8화 안타미젤의 결심(5장 인명록) +2 19.04.22 698 15 12쪽
30 5장 태풍의 눈 6-7화 안타미젤 왕자 19.04.22 697 10 8쪽
29 5장 태풍의 눈 5화 계륵과도 같은 패 19.04.21 634 12 9쪽
28 5장 태풍의 눈 3-4화 충성서약 19.04.21 735 11 13쪽
27 5장 태풍의 눈 2화 사직서의 파장 19.04.20 744 14 11쪽
26 1부 5장 태풍의 눈 1화 사직원 19.04.19 744 15 7쪽
25 4장 부위정경 7화 생존전략(4장 인명록) 19.04.19 752 16 16쪽
24 4장 부위정경 6화 속고 속이는 싸움 19.04.18 764 19 10쪽
23 4장 부위정경 5화 기만 19.04.18 872 14 13쪽
22 4장 부위정경 4화 공주의 부름 19.04.17 822 19 10쪽
21 4장 부위정경 3화 거리의 아이 19.04.17 852 18 10쪽
20 4장 부위정경 2화 세레즈의 물밑 접촉 19.04.16 830 20 7쪽
19 1부 4장 부위정경 1화 코네세타의 공주 19.04.15 869 19 10쪽
18 3장 폭풍전야 6화 주전론을 위한 막후교섭(3장 인물소개) 19.04.14 907 21 12쪽
17 3장 폭풍전야 4화 밀실정치 下 +2 19.04.13 1,013 21 7쪽
16 3장 폭풍전야 3화 밀실정치 上 +2 19.04.12 1,003 23 7쪽
15 3장 폭풍전야 2화 그윈 재상 19.04.11 1,049 23 8쪽
14 1부 3장 폭풍전야 1화 태자의 실종 19.04.10 1,193 21 11쪽
13 2장 애별리고 7화 이별(1-2장 인물소개) +4 19.04.10 1,200 33 8쪽
12 2장 애별리고 6화 고작 마음 하나 +2 19.04.09 1,253 21 9쪽
11 2장 애별리고 5화 이주명령 19.04.09 1,400 26 9쪽
10 2장 애별리고 4화 떨림과 설렘 +4 19.04.07 1,394 25 7쪽
9 2장 애별리고 3화 염색 +2 19.04.05 1,471 24 7쪽
8 2장 애별리고 2화 현기증 +2 19.04.04 1,486 28 7쪽
7 1부 2장 애별리고 1화 마음의 향방 19.04.03 1,535 26 7쪽
6 1장 표류 6화 자각 +2 19.04.03 1,648 32 7쪽
5 1장 표류 5화 바다를 닮은 여인 +6 19.04.02 2,070 33 8쪽
4 1장 표류 4화 슈레디안의 고민 19.04.01 2,286 37 8쪽
3 1장 표류 3화 3년만의 손님 19.04.01 2,636 34 7쪽
2 1장 표류 2화 신분 은폐 19.04.01 3,542 46 7쪽
1 <제1부 펜데스칼 전쟁> 제1장 표류 1화 난파당한 청년 +4 19.04.01 6,792 6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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