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귀마회(鬼魔會) (4)
- 저벅. 저벅.
이미 진세연이 삐딱하게 열린 관을 향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강도진이 뜨악한 일은 언급할 필요도 없었다.
‘아이고... 맙소사!’
바짝 긴장을 한 그는 그녀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녀는 누군가 이곳에 잠입했을 것이라곤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는지, 경계는커녕 얼굴에서 의구심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뚜껑이 삐딱하게 어긋나 있는 관의 모습은 폭발의 여파에 의한 것이라고 치부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 팡! 드륵~. 쿵!
돌연 진세연의 일장이 뚜껑 한 귀퉁이에 힘껏 부딪치며 관을 활짝 열어젖혔다.
“호호, 진척이 순조롭던 계획들이 하나둘 씩 엉망이 되더니만, 결국엔 이렇게 꼼짝없이 죽는 신세가 되었군요. 회주께오서 귀신이 되어 저를 방해라도 하신 모양입니다.”
죽은 회주의 얼굴을 얼마간 물끄러미 바라보다 입술을 뗀 그녀는, 왼손으로 관 테두리를 매만지며 빙글 돌면서 혼잣말을 이어나갔다.
“후훗... 이제 만족하시옵니까? 심득을 앞두고 주화입마에 빠지신 게 그리도 원통하셨던 겝니까? 호호호, 허나 저로써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연공실에서 깊이 운기행공(運氣行功)하고 계실 때에 행하는 기습이 아니라면, 제가 회주님을 당해낼 다른 재간이 있을 리 없잖습니까?”
‘...응? 기습?’
강도진은 시체 앞에서 행하는 진세연의 얼토당토않은 자백을 들으며 얼떨떨해졌다. 그는 그녀의 말이 더 계속 이어지려는 분위기이므로, 호기심에 귀를 쫑긋 세웠다.
“선대 업보에 대한 값을 치르는 것이라 여기고 편히 가시길. 다음 생애에선 제가 회주께 반드시 이 빚을 갚겠......”
“쿨럭, 쿨럭.”
“...?!!!”
화들짝 놀란 진세연이 기침소리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그녀는 신형을 멈춰 세운 그곳에서 사람인영 둘을 발견하자마자 고함을 질렀다.
“누, 누구냐?!!!”
그러나 죽음이 임박한 이성민과 그런 그가 안타까운 강도진에겐 그녀에게 대꾸할 여력이 없었다.
“쿨럭, 우우우욱!”
“헛, 유(劉) 형! 정신 차리시오! 유 형!”
“이, 이성민!!! 네 이놈!!!”
검은 피와 함께 기침을 게워내는 이성민을 알아본 진세연은,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매섭게 일장을 날리며 달려들었다.
- 파팟!
하지만 강도진이 손을 허공에 한번 내저어 만든 강기에 진로가 막혀 뒤로 몇 걸음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 팡-! 터텅!!!
“흡!”
이 일초에서 무기 없이 그를 상대할 수 없음을 깨달은 그녀는, 눈에 보이는 전대 회주들의 무기 중 쌍도를 찾아 거머쥐곤 성질을 꽥 뱉었다.
“네 놈들이 이곳에 어떻게 들어온 것이냐?!”
그러나 여전히 강도진의 관심은 혼탁해지는 의식과 사투 중인 이성민에게 향해 있었다. 너무나 다급한 나머지 강도진은 이성민의 뺨을 때려가며 그가 정신을 잃지 않게끔 최선을 다했다.
- 찰싹. 찰싹.
“이보쇼, 유 형!”
“으으으......”
물론 이 모습은 계획이 뒤틀림에 심사까지 꼬여버린 진세연에겐 좋게 보일 리 없었다.
“감히 나를 무시해?! 어서 바른대로 말하지 못하겠느냐?!!!”
“아나, 진짜! 여기 사람 죽어가는 거 안 보이쇼?!!!”
안쓰럽고 불쌍한 인생이 아침이슬처럼 사라지는 모습을 씁쓸히 지켜봐야만 하는 강도진은, 이것을 방해하는 목소리에 짜증이 발발했다.
하지만 버럭 화는 내던 중에, 이성민에게 독을 사용한 원흉이 그녀임을 깨닫고 황급히 외쳤다.
“아! 맞다! 해독제! 해독제 내놔!”
“오호호, 어머 이걸 어쩐다? 쫓기는 통에 잃어버렸는걸~?”
“당신! 거짓말하면 가만 안 둬!”
강도진이 위협했지만, 이미 모든 것을 잃게 된 진세연에게선 조롱만 되돌아왔을 뿐이었다.
“호호, 참으로 무섭기도 하지! 허나 거짓이 아니다. 무기도 잃어버려서 이걸 들었으니까. 게다가 설사 해독제가 있었다고 한들... 저 놈에게 손쓰기엔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나?”
“어으씨... 젠장...”
정황상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는 확신이 선 강도진은 다시금 이성민에게 집중했다.
“자자, 유 형! 빨리 정신 차리쇼! 원수 놈의 조직 간부를 앞에 두고 그냥 죽을 생각이시오? 속 시원히 욕이라도 해야 할 거 아니오!”
“으으...... 하하... 그래... 욕이라도 한바가지 해줘야... 좀... 후련하겠...지.”
“어휴... 이제야 의식을 되찾으셨군. 내가 놀랬잖소.”
“흥! 꽤나 애쓰는군. 어차피 여기서 죽을 목숨인 것을!”
가까스로 정신을 되찾은 이성민과 그제야 마음 놓는 강도진에게 조소를 보낸 진세연은, 강도진을 더욱 더 우롱할 작정에서 심술처럼 말을 보탰다.
“호호, 그의 거짓말에 현혹되어 휘말린 불쌍한 사람인가보구나. 그가 뭐라 했든지 믿지 마라. 그의 성부터도 유(劉)씨가 아니지. 그는 이성민이라 한다.”
“아니, 잘못 알고 있는 건 당신이지. 그의 본명은 유공이오.”
“.........”
이성민의 본명을 들은 진세연의 눈동자가 갑자기 마구 요동치기 시작했다.
“거, 거짓말하지마라! 그 사람은 옛날에 죽었어!”
“아오, 귀찮게시리 내가 당신한테 뭣 하러 뻥을 치겠소?”
강도진의 대꾸에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던 그녀가 무언가 떠오른 표정이 되어 웃음과 울분을 함께 터트렸다.
“......아, 그래! 오호호호호호호! 그래, 그래! 이것도 왕진학이 뒤에서 꾸민 술수겠지!”
“지금 뭐라는...”
“안 속는다. 안속아! 그놈이 내 과거를 어떻게 캐냈는지는 모르겠다만 소용없는 짓거리다! 귀마회의 비급은 정말로 내게 없다!!! 그러니까 다른데 가서 찾아보라고! 더 이상 내게 수작부리지 말란 말이다!!!”
이에 이성민은 진세연을 향해 힘겨운 입술을 열었다.
“으으윽... 나... 나는... 유공이다. 너희들이... 이성민이라 알고 있는 그 이름은... 어릴 적 살수훈련 중에 죽어버린... 내 동기의 이름을... 빌린 것이지. 키도... 생김새도.. 엇비슷해서... 신분을 속이기에... 적합했거든.”
“...거, 거짓이다! 거짓말하지 말라고!!! 죽은 사람 이름 꺼내지마!”
전에 없이 과도하게 흥분한 진세연의 얼굴이 심히 벌게지며 언성이 높아지자, 강도진은 손가락으로 무너진 비밀통로를 스윽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이야말로 미친 척 그만하시오! 우리가 들어온 개구멍을 알아낼 속셈 같은데, 이미 저렇게 꽉 막혔거든?! 우리도 못나가는 처지이니까, 그쪽이야말로 시끄럽게 개수작부리지 말았으면 좋겠소!”
"......"
갑자기 할 말을 잃은 그녀의 얼굴표정은, 마치 분노가 혼란으로 치환된 것처럼 극심한 변화를 일으켰다. 심지어 그녀는 손에 들려있던 쌍도마저 놓쳐버리기까지 했다.
- 땡강-!
“그,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감정이 입에서 맴도는 그녀는,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이성민에게로 걸음을 터덜터덜 옮기기 시작했다.
“흠? 더 다가오지 마시오! 분명히 난 경고했......”
“정말로... 공이 오빠야?”
“?!”
자욱하게 흐려진 눈빛의 그녀는 말조차 더듬거렸다. 반면 이성민은 힘겹게 육체적 고통을 견디는 와중에도, 그녀의 행동에 기가 찼는지 그것을 신랄하게 비웃으며 강도진에게 부탁했다.
“으으음... 이보오, 은인나리. 보나마나 꿍꿍이가 틀림없소. 절대 빈틈을 주지 말고 여차하면 바로 후려치시오.”
“......알겠소.”
이성민의 권고를 들은 강도진이 그녀 보란 듯이 두 손에 강기를 품었지만, 눈가 흐릿해진 진세연은 이 흉흉한 기운에도 아랑곳없이 걸음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공이 오빠... 나야, 나! 꽃님이! 나 모르겠어?! 꽃님이라고!”
“......크크, 뒈질 때가... 됐나보군... 환청이... 다 들리네. 쿨럭.”
그의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진세연의 목소리는 점점 덜덜 떨리는 몸짓만큼이나 더더욱 격앙되어갔다.
“옛날에... 내가 이불에 소피 보고 어쩔 줄 몰라 했었을 때... 공이 오빠가 나 대신에 엄마한테 혼쭐나고... 키 쓰고 동네방네 소금 얻으러 다니고... 그랬었잖아...”
무릇 가짜라면 알 리 없는 옛 추억이 그녀의 입에서 나오자, 이성민의 얼굴에서도 비아냥거림이 점점 사그라졌다.
“...우, 우리 꽃님이는... 그때 분명... 작업장에서 실려 나갔었는데... 그 뒤론... 다시 돌아오지 못했는데......”
어느새 곁으로 바짝 다가선 진세연은 그대로 주저앉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그녀는 자신의 일격으로 만들어낸 그의 상처를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고 고개 숙여 울고 또 울었다.
“흐흑... 내, 내가! 내가 도대체! 내 손으로 공이 오빠에게 무슨 짓을!!! 아아아...!”
한편 이성민은 감각이 거의 잃어가는 자신의 손을 다그치며, 자책에 깊이 빠져든 그녀의 오른손을 절절히 맞잡아주었다.
“으윽... 네가... 사, 살아있었구나! 살아...있었어! 그것도.. 이렇게... 이렇게나... 가까운 곳에서......”
“오빠...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나, 나는... 정말로 오빠인 줄 모르고...”
“괜찮다. 괜찮아! 후우... 후우... 진심으로... 다행이다... 으으윽... 다행이야. 내가... 내 손으로... 널 죽이지 않게 되서... 천만 다행이... 우웁...!”
“오, 오빠!”
피를 한 모금 더 토해낸 이성민은 온몸을 바르르 떨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몇 가닥 남은 혼신의 힘을 끌어모아 강도진의 팔을 ‘콱’ 움켜잡으며 해야 할 부탁을 애타게 이어나갔다.
“은인... 나리... 아까... 내가 부탁한 것들... 우욱...! 다 잊으시오!”
“......?”
“전부... 으읔... 전부 다 잊고... 부디... 내 염치불구하고... 간절히 청하외다! 하, 하나뿐인... 내 동생을 살려주시... 쿨럭, 쿨럭. 살려주시오!”
“......”
“다, 당신이라면... 정녕... 당신의 초절한 무위라면! 귀마회를 장악하여... 발아래 둘 수 있을 것이니... 제발......”
“...크음......”
강도진은 별안간 날벼락처럼 이게 무슨 경우인가 싶었다. 그러나 거친 눈빛으로 사정사정하는 이성민의 마음을, 그는 도무지 ‘나는 모르쇠’로 행동하며 매정히 뿌리칠 수가 없었다.
- 끄덕.
강도진의 마지못한 긍정의 고갯짓을 확인한 이성민은, 여한이 없는 사람과도 같이 입가에 작은 미소를 드리웠다.
“고... 고맙소... 은인나리. 내 죽어서도... 결코 잊지... 않으리다.”
곧이어 이성민의 손아귀의 힘이 서서히 빠지고 있음을, 그의 손을 맞잡고 있는 강도진으로선 여실히 느낄 수밖에 없었다.
“편히... 잠드시오.“
“아, 안 돼! 공이 오빠!!! 안 돼!!!”
진세연의 뜨거운 울부짖음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이성민의 온기는 무심하게 식어가기만 했다.
"...제발... 나만 남겨두고 가지마! 오빠아...!"
- 작가의말
어제에 이어 다시 안내드립니다. 전일 점심시간에 15시 예약 걸다가 잘못 연재된 글을 보고 식겁했습니다. 즉각 삭제조치하고 수정했습니다. 그리고 다음화는 12시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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