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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뱅이 님의 서재입니다.

현지우현(玄之又玄)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드라마

완결

느림뱅이
그림/삽화
까마귀작가
작품등록일 :
2019.06.13 23:19
최근연재일 :
2019.10.14 10:05
연재수 :
98 회
조회수 :
76,622
추천수 :
1,716
글자수 :
599,890

작성
19.09.11 13:00
조회
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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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글자
18쪽

10장 거상의 자격 (7) - 完

DUMMY

무리 중 가장 먼저 들어온 사내는 마지막 이가 들어와 천천히 문을 닫는 모습을 보곤, 선 채로 꽁꽁 얼어붙어 있던 염세욱에게 인사를 건넸다.


“반갑소. 나는 일서국 연일위 진영후라고 하외다.”

"......"


- 꾸욱.


그의 인사말에 염세욱은 저도 모르게 들린 무기가 꽉 쥐어졌다. 묵경의 고수라 칭송받는 진영후만 해도 상대가 안 될진대, 그가 데려온 무사들 각각의 기량이 모두 자신을 혁혁히 능가하고 있음을 온몸으로 감지한 까닭이었다.


“아아, 그리 긴장할 것 없소. 좋게 좋게 중재하러 여기 온 것이니까. 내가 다른 생각을 품었다면, 이렇게 직접 예의차려 오지 않고, 수하만을 따로 보냈을 것이오.”

“...큼. ...일단 앉으시지요.”


제 집에서 보기 좋게 궁지에 몰린 처지가 된 염세욱은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그들을 얌전히 탁상으로 안내하는 것 외엔 달리 뾰족한 방도가 없다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었다.


그렇게 본능적으로 진영후에게 상석을 양보하고 맞은편에 자리한 그는, 짐짓 체면을 세우기 위해 겉으로 강한 척 말문을 열었다.


“일서국 연일위께서 이렇게까지 하면서 얻고자 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흐음... 상당한 오해가 있는데... 무엇보다 먼저 이번 사룡방과의 일은, 내가 의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해두고 싶소."

"?"

"...나 역시 뒷수습하러 협상에 나선 처지라고만 말해두리다."

"......"

"뭐 어찌됐든 지금 우리가 원하는 걸 확실히 찍어 말하면 어떤 사람에 대한 정보요.”

“...연일위께서 협상이라 말씀하셨으니... 허면 묻겠습니다. 그 정보 대신 저흰 무얼 얻게 되는 겁니까?”


- 스윽.


이에 진영후는 묵직한 전표 다발을 꺼내어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이야기했다.


“손배금 명목의 금 오천 냥과 사룡방의 평판. 그리고... 무엇보다 그대의 자리.”

“......망할, 협상이 아니라 협박이로군!”


진영후는 투덜대는 염세욱을 설득하기 위해, 적당한 근거들을 길게 열거해줬다.


“진정하고 가만 생각해보시오. 오늘 이대로 정체불명의 세력에게 대두령까지 무릎 꿇고 소문이 퍼지면, 이려와 연북(淵北), 그리고 학암(鶴巌)지방을 아우르던 사룡방의 위명은 하루아침에 추락할 것이 자명하지 않겠소?"

"...길고 짧은 건 대봐야 ..."

“밖에 있는 자는 나보다 훨씬 고강하다는 걸 참고하여 알아두시오.”

“......”

"여하튼... 그리되면 조직분열과 타 군소세력으로부터의 도전은 불 보듯 훤한 일. 당연하게도 그대 또한 편한 날이 없을 것이니, 이 넉넉한 보상금을 놔두고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지 않겠소이까?”


염세욱의 입장에선 금 오천 냥은 적지 않은 금액이었으나, 고압적이고 일방적인 계약체결을 강요받으며 뭉개진 자존심에 부아가 치미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우리가 이대로 굴욕을 겪은 채 끝나리라 생각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흠... 처음부터 말했듯, 나는 단지 중재하러 온 사람이외다. 가급적 일을 원만하게 마무리 짓고자 내가 포박했던 사룡방 수하들을 그쪽과 연관 깊은 혜국 이조판서에게 최대한 멀쩡한 상태로 양도도 했고 말이오.”

“......”

"부디 사룡방의 대두령으로써 현명한 결정 내리길 바라오."

"...쯧."


이후로 수 초간 말없이 미간을 찡그리던 대두령 염세욱은, 이윽고 마음을 정한 듯 입을 천천히 열었다.


“당장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지부터 듣고 나서 결정하겠습니다.”





* * * * *


- 피이이이잉~. 팡!


본관건물 쪽에서 푸른 연기를 뿜으며 하늘로 높게 치솟아 터진 신호탄 하나가 있었다. 사룡방 조직원들은 폭죽의 의미를 몰라 속으로 의문을 던지는 반면, 강도진은 흐뭇한 미소를 뗬다.


‘푸른색이라... 잘 해결됐나보군. 하여간 친구만큼 세상 좋은 게 또 없다니깐?! 어디보자~. 오! 열심히 달려오고 있구만!’


역시 지역적으로 방대한 조직을 이끄는 우두머리답게 염세욱이 펼친 경공술은 대단하기가 여간 아니었다.


잠시 후 정확하게 부두령을 인질삼은 강도진 일행과 대치중인 부하들 무리 한가운데로 떨어진 그의 표정은, 실로 못마땅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강도진의 생김새를 똑똑히 눈에 새기고 난 후에 말문을 텄다.


“수고 많았소이다.”

“하하, 이거 너무 난리 피우지 않았나 모르겠소이다.”

“...이만 돌아가셔도 좋소. 약조한 사례는 조만간 받게 되실 거외다.”

“?”


이만 돌아가도 좋다니? 사룡방 사람들은 강도진과 대두령이 뜬금없이 주고받는 대화가 이해되지 않아 몹시 어리둥절했다.


한편 여기까지 말한 대두령 염세욱은, 자신의 부하들을 향해 홱 돌아서서 크게 호통 쳤다.


“이 한심한 놈들! 이러고도 너희가 사룡방이라 할 수 있느냐?!!!”

“......예?”

“지들 목숨에 위기가 닥치니 어떤 연놈들은 정보를 간단히 뱉어내고, 어떤 놈들은 손바닥 뒤집듯 조직을 등지고! 철통같다며 자랑하던 본관의 방어는 단 2인의 고수에게 뚫릴 만큼 종잇장처럼 얄팍하기만 하구나!"

"......"

"내가 나태해진 너희를 시험하려 꾸민 일이었으나, 이렇게까지 한심했을 줄은 차마 예상 못했다!”

“크, 큰 형님. 당최 무, 무슨 말씀이신지...”


전력을 다해 강도진과 겨뤄본 부두령 황보혁이 어딘가 미심쩍은 마음에서 중간에 끼어들었으나, 염세욱은 구겨진 그의 자존심을 건드려가며 말문을 틀어막았다.


“한심하기는 네 녀석도 마찬가지! 그 꼴로 짐작컨대 현실에 안주하여 실력이 전혀 발전하지 못한 것이렷다?!!!”

“...크흠...”


발언권을 가진 부두령의 입술부터 이렇듯 딱 봉해졌는데, 흉흉한 대두령의 분위기에 위축되어 눈치만 보는 다른 이들이야 언급할 필요도 없었다.


“지금까지 입은 피해에 대해 상세히 보고 올려라! 네놈들의 안이한 정신 상태를 비롯하여, 허술하거나 미진한 부분을 내가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고쳐주도록 하겠다!”





* * * * *


5월 28일, 인시정(寅時正, 04~05시).


- 쉬익-, 착!


온성태자를 보좌하고자 혜국으로 따라온 진영후가 인맥과 거금으로 매입한 기와집, 그 큼직한 담벼락을 자유로이 훌훌 넘는 인영이 있었다.


“흐아아아아암~.”


강도진이 하품을 쭈~욱~ 길게도 뽑았다. 벗은 신발마저 챙겨들고 한구석 어느 작은 사랑방 안으로 들어선 그는, 짚신과 웃옷을 대강 훌러덩 구석에 몰아놓곤, 아랫목에 펼쳐놓은 이부자리 속으로 습관처럼 비비적대며 쏘옥 파고들었다.


‘으그그그그... 으으~, 좋구만~. 아주 좋아~.’


그는 피부에 맞닿은 은근한 온기가 가슴에 퍼트리는 행복을 얼마간 소소하게 만끽했다.


그러다 어젯밤 문지방 오른편에 얌전히 놓았던 자신의 행장이 눈에 띄자, 그의 시선이 무심히 우뚝 고정됐다.


여벌의 짚신 두 켤레, 비상식량으로 삼을 건포 다섯 근과 매실주가 담긴 호리병 하나. 귀찮은 잔가지를 치거나 산짐승을 먹기 좋게 손질하기 위한 세 치 크기의 단도.


두 번 세 번 확인할 필요도 없이 이게 전부인지라, 꾸러미 자체는 그렇게 빵빵한 모양새가 아니었다.


“혹시 모르니까 부싯돌 정도는 챙겨둘까?”


‘만사불여튼튼’이라며 언제나 길 떠나기 전엔 만물상처럼 짐을 꾸리던 유철진의 얼굴이 모처럼 떠올랐기에 엄한 잡념이 스멀스멀 돋아났다.


그 생각에 이어 강도진은 행여 길이 엇갈릴까 자신을 오매불망 기다리다가 더는 지체할 수 없으매, 미나와 함께 배를 타고 머나먼 서역으로 길 떠난 아우 녀석이 심히 걱정되기도 했다.


- 꼬끼오~.


“......쩝, 아쉽지만 이 방바닥하고도 슬슬 이별인가? ...으음?"


닭의 보챔에 그만 마음 접고 포근함에서 빠져나오려던 그는, 밖에서 기웃거리는 인기척을 핑계거리로 다시금 이불을 돌돌 말았다.


"마당에서 왔다 갔다 하는 하인이 사라질 때까지만 조금만 더 누워있자~. 으구구구구구~, 으헤헤헷!”

“도진 오빠님아, 안에 있으세요? 주무세요?”

“엉? 수, 순이냐?”


- 스우우웁! 들컹, 끼이익~.


그가 서둘러 손가락으로 공력을 퉁겨 열어젖힌 방문너머로 순이가 헤실헤실 미소 지으며 들어왔다.


"이~야~, 참말로 오라버니 팔자 한번 진심 부럽네요!"

"어험, 어험. 어서 오너라."


강도진은 기름등잔에 불을 붙이고 슬그머니 양반다리로 고쳐 앉으며 그녀를 환대했다. 또한 민망하게 속옷차림으로 순이를 대할 순 없었기에, 이불 둘둘 말은 상반신은 예의상 그대로 유지했다.


“제가 혹시 오라버니 쉬시는데 방해 드린 건 아니죠?”

“흐흐, 아냐~, 아냐~. 방금 전 산에 가서 흑구 밥 주고 막 돌아온 참이다! 그나저나 첫 새벽부터 웬일이야?”

“오늘 또 어디로 떠나신다고 했었잖아요. 당연히 인사하러 왔죠! 일서국 마마님 탕제 다리기 전에 짬 내서 온 거에요."

"햐~, 순이야. 이 오라버니는 무척 감동했다!"

"이래 가까운데 있으면서 눈치 보느라 밥 한 끼도 제대로 같이 못 먹으니깐... 좀 거시기 하기도 했고...”


일찍이 가족을 모두 잃고 홀로 살아야 했던 순이는, 유독 온정이란 녀석에게 취약한 부분이 있어 보였다.


“흐흐, 그거야 내가 남들 눈에 띄면 영후 놈이 곤란해지니까 그런 게지.”

“이긍... 그래서 요번에는 어디로 가시는데요?”

“학암지방.”

“거긴 왜요?”

“음... 너도 알란가 모르겠는데, 내가 그간 스승님께 민폐 끼치지 않으려 불가무공으로 설치고 다녔었거든?"

"그런데요?"

"그런데 그 소문이 안 좋게 충각사로 흘러들어갔다나 봐. 에... 가서 허리 숙여 사정사정하는 한이 있더라도 최대한 원만히 관계를 풀어내고 올 작정이다.”

“치... 그래도 조금 더 얼마간 쉬면서 놀다 가시지. 한두 달 있음 팔월대보름인데... 쩝...”

“흐흐, 서역에 간 철진이 녀석 돌아오려면 빨라도 2년은 더 있어야 한다며? 그것도 뱃길이 순탄했을 경우 말이다."

"...그랬죠."


이어서 강도진은 변명을 추가로 보태며, 못내 아쉬움이 역력한 그녀의 감정을 어루만져줬다.


"게다가 영후는 사룡방 대두령이 건넨 정보가 예상보다 심각하다더라. 그래서 진짜인지 신중히 캐봐야 하니, 나더러 한동안 이 근방의 사람들 눈에 띄지 말라고도 했고."

"하긴 오라버니 성격에 방구석에만 있기엔 좀 그렇긴 하겠네요."

"뭐 이대로 틀어박혀서 남의 집 쌀만 축내는 것도 나쁘진 않은데, 그래도 그것보단 공주마마께서 일러주신 조언대로 충각사와의 앙금이 더 커지기 전에 미리미리 해소하는 게 맞을 거 같아서 그래.”

"피이... 알았어요. 몸조심이 다녀오세요."


이내 설득당한 순이는 챙겨온 보따리를 주섬주섬 매만지다가 문득 떠오른 호기심을 먼저 풀어놓았다.


“아, 맞다! 그럼 전에 같이 왔었던 그 귀여운 언니랑 함께 또 가시는 거예요?”

“아니, 손 낭자는 어제 점심녘에 떠났어. 충각사는 나 혼자 가려한다. 금욕하며 수행 중인 무승들이 모여 사는 절간으로 내가 '잘못했습니다'라고 싹싹 빌러가는 처지인데, 젊은 여인을 옆에 끼고 가는 건 경우가 아닌 것 같다고 양해구했더니, 마침 잘됐다며 집에 다녀오겠다 하더라고.”

“히힛, 꽤나 끈적끈적한 정분을 기대했는데 그건 살짝꿍 아쉽네요.”

"야야."


강도진은 순이의 놀림에 머리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무공에 대한 욕심 때문에 내 옆에 붙어있는 거지, 네가 생각하는 그런 달달한 사이가 아니다. 손 낭자가 처음에 날 얼마나 벌레처럼 쳐다봤는지! 어후~, 순이 네가 그걸 못 봐서 그래!”

“에~이~, 오라버니도 참! 남녀관계는 모르는 거죠! 큰스님이 옛날에 그러셨어요~. 관찰이 관심이 되기도 하는 법이라고~.”

“크크크, 그런 건 훤칠하게 생긴 철진 같은 사내들에게만 해당되는 거고! 난 언제나 처자들이 망나니 취급부터 하더라! 어? 그러고 보니 순이 너도 날 처음 봤을 때 산적으로 오인했었잖아?!”

“치이~, 할 말 없게 옛날 일 꺼내시기는! 흥, 됐고요! 이거나 받으세요!”

“오옷?!”

“어제 준비할 시간이 별로 없어서 많이는 못 챙겼네요.”


그는 순이로부터 건네 작은 선물보따리를 철없는 아이마냥 눈동자를 빛내며 신나게 끌렀다.


“하하, 가래떡이네?!!! 어? 잘게 썬 이건 또 뭐냐?”

“아, 그건 우리 태자마마님께서 쓴 한약 삼키기 힘들다고 투정부리셔서 연습중인 거예요."

"이욜~. 네가 직접?"

"히히, 맞아요. 몇몇 약재를 곱게 다지고 벌꿀이랑 해서 홍삼에 저려 절편으로 만들어봤어요. 아직 시작(試作)이라 없어져도 아무도 신경 안 쓰는 거니깐, 가다가 오라버니 촐촐할 때 하나씩 꺼내 잡수세요.”

“오... 이 귀한 걸... 역시~ 사람은 인복이 있어야 한다니깐!"


- 바삭!


절편을 냉큼 입속으로 집어넣은 강도진은, 견과류 특유의 식감과 고소함을 음미하며 순이를 위해 평소보다 호들갑을 두 배로 떨었다.


"우오오오! 달다! 맛난다! 진짜로 맛나!”


그런 그의 칭찬은 순이가 목을 쭈욱 빼고 거드름을 한껏 피우게 했다.


“에헴, 영광인 줄 아세요! 약간 실패작이긴 해도 내가 온갖 정성을 쏟은 작품이니까요!”

“아으~, 예, 예. 심히 망극하옵나이다~. 흐흐, 감사히 아껴 먹을게~.”

“그리 고마우면 나중에 와서 장날에 꽃신이나 하나 사주시던가요. 히히힛~.”

“어이구, 어디 꽃신뿐이냐? 예쁜 노리개까지 묶음으로 사줄 테니 기대하고 있어라!”

“오라버니! 지금 그 말 물리기 없어요?!”

"아휴~, 그럼, 그럼~. 어느 안전이라고 내가 허투루 약속을 하겠냐, 응? 아하하핫!"


강도진에게 있어선 최근 들어 가장 평화로운 한 때였다.





* * * * *


한편 같은 시각, 사룡방 본거지 내의 어느 연무관.


- 챠차창! 깡!!!


대두령 염세욱의 월도가, 공격을 간신히 막아내던 사내의 어깨부근의 살점을 1치쯤 찢어버렸다.


“으윽... 흐아압!!!”


이 상처를 동반한 충격에 한쪽 무릎이 바닥에 꿇리어진 사내는, 어금니를 콱 깨물며 무기를 떨쳐냈다. 그리곤 남은 회전력을 오른손의 장검으로 옮겨 짧은 선을 그림으로써, 월도의 초승달 모양 칼날부분을 썩뚝 잘라버렸다.


- 스걱!


헌데 염세욱의 손에 남겨진 긴 자루 또한 이 순간에 생겨난 빈틈을 바보처럼 놓치지 않았다. 사내의 뒷목을 가격한 것도 모자라 그의 오른 손목까지 연거푸 공략했다.


- 부우~웅~, 뻐걱! 빠악-! 땅그랑~!


“크헙!”


순간 의식이 아찔해진 사내는, 차가운 바닥을 구르며 깜박 놓친 장검부터 찾았다. 그런데 얻어맞은 부위가 마음 같지 않았다. 신경다발이 제대로 건드려졌는지, 칼을 쥐는 것조차 버거웠다.


"으으......"


염세욱은 어떻게든 다시 도전하고자, 익숙지 않은 왼손으로 장검을 거머쥐는 사내의 모습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네가 졌다. 재준이 네가 애지중지하는 보검 덕에 예상보다 꽤 버텼구나.”

“...난 인정 못합니다! 큰형님!”

“지금은... 때가 아니다.”

"죽어도 인정 못합니다!!!"


인재준의 고함에 녹아 있는 원통함은, 좀 전에 판가름 난 승부결과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게 아니었다.


“이조판서 그 놈이!!! 내 부하를 여든하고도 여섯 명을 죽였습니다! 응당 되갚아줘야죠! 저는 절대 형님 명대로 잠자코 있을 순 없습니다!”

“재준아, 아직 때가 아니라고 내가 분명히 일렀다!”

“웃기는 소리 작작하십쇼! 그러고도 큰형님이 사룡방의 대두령이라 할 수 있습니까?!!!”


- 뻐억-!


순간 자제력 잃은 염세욱의 발길질이 소두령의 복부에 깊이 꽂혔다.


“커헉! 우웈...! 쿨럭 쿨럭.”


성질대로 대들다가 호되게 얻어맞은 인재준은, 장이 꼬인 듯한 고통을 느끼며 헛구역질을 했다.


“이 녀석아! 나라고 속이 없는 줄 아느냐?!”

“...?”

“나라고 이런 굴욕이 달가운 줄 아느냔 말이다! 난 니들에게 한동안 잠자코 있으라고 했지, 까맣게 잊으라고 하진 않았다!”

“......”

“나는 조직의 분열을 막으려 ‘귀마회(鬼魔會)’의 정보를 일부 누설해 거래에 응했다. 그리고 나서 곧바로 연락을 취했으나, 그들이 앞으로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것인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 그런..."


귀마회란 단어는 인재준의 표정을 분노에서 당혹으로 급변시켰다.


"만일 그들이 적대적으로 돌변한다면, 타향살이 중인 일서국 연일위나 약아빠진 이조판서 따위가! 우리의 걱정거리조차 될 성싶으냐?!"

"........."

"실력 있는 수하들이 대거 잘려나간 지금! 더욱더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 단 한명의 부하라도 잘 추슬러야 함을 정녕 깨닫지 못한단 말이더냐?!!! 어떤 계획이든 간에 그 모든 결정은 우리 사룡방에 대한 귀마회의 태도가 정해진 후로 미뤄야 할 것이다!”

“...하,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곤 해도...”


염세욱은 중대한 사안이 머리로 이해는 했으되, 가슴까지 닿지 못한 인재준을 물끄러미 보다가 작은 결정을 내렸다.


“흐음... 그래, 좋다! 재준이 네가 정녕 분에 못이겠다면, 할 일을 일러주도록 하겠다. 차후에 복수를 행하자면 사전에 천천히 물밑작업을 해놓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지금부터 내가 시키는 것들을 소두령인 네가 책임지고 수행하도록 하거라.”

“...예, 큰형님.”


작가의말

자르기 애매한 분량이라 전부 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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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19장 수즉부족 공즉유여(守則不足 攻則有餘) (6) 19.10.12 460 16 12쪽
95 19장 수즉부족 공즉유여(守則不足 攻則有餘) (5) 19.10.11 474 17 12쪽
94 19장 수즉부족 공즉유여(守則不足 攻則有餘) (4) 19.10.10 475 16 14쪽
93 19장 수즉부족 공즉유여(守則不足 攻則有餘) (3) 19.10.09 477 17 16쪽
92 19장 수즉부족 공즉유여(守則不足 攻則有餘) (2) 19.10.08 506 15 14쪽
91 19장 수즉부족 공즉유여(守則不足 攻則有餘) (1) 19.10.07 518 15 12쪽
90 18장 관계 정립 (2) - 完 19.10.05 518 16 13쪽
89 18장 관계 정립 (1) 19.10.04 530 16 16쪽
88 17장 피고 지다 (8) - 完 19.10.03 539 17 15쪽
87 17장 피고 지다 (7) 19.10.02 759 17 13쪽
86 17장 피고 지다 (6) 19.10.01 520 16 13쪽
85 17장 피고 지다 (5) +2 19.09.30 544 15 11쪽
84 17장 피고 지다 (4) +2 19.09.30 513 15 13쪽
83 17장 피고 지다 (3) 19.09.29 550 16 17쪽
82 17장 피고 지다 (2) 19.09.28 568 16 13쪽
81 17장 피고 지다 (1) 19.09.28 546 15 14쪽
80 16장 고집과 억지 (4) - 完 +2 19.09.27 565 16 17쪽
79 16장 고집과 억지 (3) 19.09.27 494 15 15쪽
78 16장 고집과 억지 (2) +2 19.09.26 511 15 14쪽
77 16장 고집과 억지 (1) 19.09.26 503 16 15쪽
76 15장 선약 (4) - 完 19.09.25 524 17 15쪽
75 15장 선약 (3) 19.09.25 540 17 14쪽
74 15장 선약 (2) 19.09.24 540 17 16쪽
73 15장 선약 (1) 19.09.24 524 17 13쪽
72 14장 교언영색(巧言令色) (4) - 完 19.09.23 563 17 14쪽
71 14장 교언영색(巧言令色) (3) 19.09.23 514 16 12쪽
70 14장 교언영색(巧言令色) (2) 19.09.22 541 16 13쪽
69 14장 교언영색(巧言令色) (1) 19.09.21 555 16 14쪽
68 13장 충각사(忠覺寺) (5) - 完 19.09.21 520 15 17쪽
67 13장 충각사(忠覺寺) (4) 19.09.20 533 15 13쪽
66 13장 충각사(忠覺寺) (3) 19.09.20 528 15 12쪽
65 13장 충각사(忠覺寺) (2) 19.09.19 543 17 12쪽
64 13장 충각사(忠覺寺) (1) 19.09.19 542 15 12쪽
63 12장 귀마회(鬼魔會) (7) - 完 19.09.18 565 19 12쪽
62 12장 귀마회(鬼魔會) (6) 19.09.18 509 17 12쪽
61 12장 귀마회(鬼魔會) (5) +2 19.09.17 581 16 12쪽
60 12장 귀마회(鬼魔會) (4) 19.09.17 527 16 12쪽
59 12장 귀마회(鬼魔會) (3) 19.09.16 546 15 11쪽
58 12장 귀마회(鬼魔會) (2) 19.09.16 542 15 14쪽
57 12장 귀마회(鬼魔會) (1) 19.09.15 566 16 13쪽
56 11장 여름에 이는 봄 향기 (4) - 完 19.09.14 550 16 12쪽
55 11장 여름에 이는 봄 향기 (3) +2 19.09.13 576 17 12쪽
54 11장 여름에 이는 봄 향기 (2) 19.09.12 558 16 14쪽
53 11장 여름에 이는 봄 향기 (1) 19.09.12 591 16 14쪽
» 10장 거상의 자격 (7) - 完 19.09.11 598 17 18쪽
51 10장 거상의 자격 (6) 19.09.11 576 16 12쪽
50 10장 거상의 자격 (5) 19.09.10 577 16 12쪽
49 10장 거상의 자격 (4) 19.09.10 584 17 16쪽
48 10장 거상의 자격 (3) 19.09.09 600 18 12쪽
47 10장 거상의 자격 (2) 19.09.09 600 17 12쪽
46 10장 거상의 자격 (1) +4 19.09.08 671 18 11쪽
45 9장 해우(解憂) (9) - 完 19.09.08 636 18 13쪽
44 9장 해우(解憂) (8) 19.09.07 583 17 12쪽
43 9장 해우(解憂) (7) 19.09.07 618 17 14쪽
42 9장 해우(解憂) (6) 19.09.06 642 18 13쪽
41 9장 해우(解憂) (5) 19.09.06 658 17 15쪽
40 9장 해우(解憂) (4) +2 19.09.05 686 15 12쪽
39 9장 해우(解憂) (3) 19.09.05 722 18 13쪽
38 9장 해우(解憂) (2) 19.09.04 653 17 15쪽
37 9장 해우(解憂) (1) 19.09.04 685 17 15쪽
36 8장 회우(會遇) (3) - 完 +2 19.09.03 717 18 16쪽
35 8장 회우(會遇) (2) 19.09.03 670 18 12쪽
34 8장 회우(會遇) (1) +4 19.09.02 714 16 17쪽
33 7장 맹영단(甿領團) (4) - 完 19.08.31 694 16 18쪽
32 7장 맹영단(甿領團) (3) 19.08.30 699 19 11쪽
31 7장 맹영단(甿領團) (2) +2 19.08.30 699 20 11쪽
30 7장 맹영단(甿領團) (1) 19.08.29 711 20 12쪽
29 6장 만개일화(滿開一花) (6) - 完 19.08.28 730 21 14쪽
28 6장 만개일화(滿開一花) (5) 19.08.28 724 19 13쪽
27 6장 만개일화(滿開一花) (4) 19.08.27 761 18 13쪽
26 6장 만개일화(滿開一花) (3) 19.08.26 766 18 14쪽
25 6장 만개일화(滿開一花) (2) 19.08.24 817 18 11쪽
24 6장 만개일화(滿開一花) (1) 19.08.23 907 19 17쪽
23 5장 첫 번째 부탁 (4) - 完 19.08.22 855 18 15쪽
22 5장 첫 번째 부탁 (3) 19.08.21 824 18 15쪽
21 5장 첫 번째 부탁 (2) 19.08.20 844 20 12쪽
20 5장 첫 번째 부탁 (1) 19.08.20 864 20 13쪽
19 4장 같은 만남, 다른 마음 (9) - 完 19.08.19 921 17 11쪽
18 4장 같은 만남, 다른 마음 (8) 19.08.17 866 18 14쪽
17 4장 같은 만남, 다른 마음 (7) 19.08.16 879 21 17쪽
16 4장 같은 만남, 다른 마음 (6) 19.08.15 877 18 12쪽
15 4장 같은 만남, 다른 마음 (5) 19.08.14 941 16 15쪽
14 4장 같은 만남, 다른 마음 (4) 19.08.13 1,030 19 17쪽
13 4장 같은 만남, 다른 마음 (3) 19.08.12 1,043 18 12쪽
12 4장 같은 만남, 다른 마음 (2) 19.08.11 1,074 20 11쪽
11 4장 같은 만남, 다른 마음 (1) 19.08.10 1,127 19 13쪽
10 3장 오래된 불문율 (2) - 完 19.08.09 1,113 19 12쪽
9 3장 오래된 불문율 (1) 19.08.09 1,184 20 14쪽
8 2장 모아지는 인연 (4) - 完 19.08.08 1,336 20 15쪽
7 2장 모아지는 인연 (3) 19.08.08 1,417 19 12쪽
6 2장 모아지는 인연 (2) 19.08.08 1,468 22 13쪽
5 2장 모아지는 인연 (1) +2 19.08.08 1,872 21 12쪽
4 1장 각자의 길 (3) - 完 19.08.07 1,860 20 11쪽
3 1장 각자의 길 (2) 19.08.07 2,132 26 13쪽
2 1장 각자의 길 (1) 19.08.07 2,870 27 12쪽
1 <1부> 서장 +4 19.08.07 4,672 2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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