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맹영단(甿領團) (4) - 完
* * * * *
그로부터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강도진 일행은 아까운 수레조차 버린 채, 이서빈 무리를 마지못해 뒤따르는 중이었다.
백여 명의 관병들을 딱 죽지 않을 만큼 정도로만 흠신 두들겨 팬 뒤, 포승줄로 굴비 엮듯 줄줄이 묶어 성문으로 돌려보낸 강도진과 유철진이었다.
그런 고로 성읍을 유유히 통과할 엄두가 안 났던 건 당연하고도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다음 마을보단 훨씬 가까운 맹영단의 근거지에서, 이후로 이어질 관군의 추격을 적절히 회피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이서빈의 줄기찬 권유를 딱 자르지 못한 까닭이기도 했다.
물론 우충충한 하늘이 사나운 눈발을 흩날릴 기세만 흉흉하게 품지 않았더라면, 이와는 조금 다른 선택이 이뤄졌을지도 모르겠다.
“의적(義賊)입니다.”
방금 전 무료함과 호기심 때문에 던졌던 강도진의 물음은, 이서빈의 엄청난 자부심을 동반하며 되돌아왔다.
“...뭐요?”
“의적이요!”
“?”
생소한 단어에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미나를 제외한 강도진과 유철진은 실로 아차 싶었다.
「 새삼 이 인간들을 따라가는 게 과연 옳은 선택이었을까 싶어졌다. 」
「 그러게나 말입니다. 뭐? 의적? 뭔 귀신 씨나락 까처먹는 소릴 어찌 저리 해맑게도 한답니까? 」
「 그보다 난 재수 없게 세아 공주님이 계시는 혜국엔 발도 못 붙이게 될까 봐 걱정부터 앞선다. 」
마치 정신 엇나간 병자를 경계하는 듯한 형제의 표정은, 빈정 상한 이서빈의 길고도 긴 추가설명을 이끌어냈다.
“선생님! 저흰 여느 산적들과는 엄연히 다릅니다! 힘없는 백성을 약탈하는 그런 못된 놈들과 비교하지 말아주십쇼! 그러니까 저희 맹영단의 역사는 10년도 훨씬 넘어 어느덧 14년이나... (중략)...”
『 맹영단(甿領團). 』
그 시작은 양반과 관리의 횡포에 못 이겨 산 속 깊이 도망친 소작농과 천민들이 서로서로 의지하는 가운데 생겨난 공동체였다.
하지만 나라로부터 보호받을 방도가 딱히 없는 사람들인지라, 툭하면 인근 산적들의 수탈 대상이 되어 산 중에서도 고된 삶을 계속 이어가야만 했었다.
그러다 여느 때처럼 식량을 빼앗기던 어느 날, 속세를 떠돌며 수행 중이던 무승(武僧)이 시주걸립(施主乞粒)을 하고자 이 공동체를 우연히 방문하게 되면서 전환기를 맞이하게 됐다.
보다 정확하게는 잔악한 산적무리에게 저승문턱을 두어 번 관람시켜준 무승이 마을을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소나기와 같은 단발성의 호의 수준으론, 이곳의 불쌍한 중생들이 애달픈 침탈의 굴레에서 벗어날 길이 없음을 인정한 무승은 마을 사람들에게 무예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무예전승은 이 무승의 범찰에서 규율을 어긴 그를 붙잡으러 올 때까지 약 9년간이나 계속 됐으며, 이 기간동안 자기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온갖 혹독한 수련을 이겨낸 공동체는 어떤 문파와 견주어도 손색없는 세력으로 거듭났다.
무승이 본찰의 명에 따라 순응하여 끌려간 직후, 지도자를 잃고 남겨진 사람들은 ‘무지한 농민(甿)이 깨달았다(領)’다며 맹영단이라 스스로를 칭했다.
또한 당시 가장 무공이 뛰어난 이를 1대 단주로 앞세워 조직체계를 견고히 다지는 가운데, 인근 성읍내의 탐관오리들과 양반네들 그리고 무자비한 산적들로부터 재물을 빼앗아 궁핍한 백성들과 나누는 일을 오늘날까지 해오는 중이었다.
“...그 고승께선 어찌되셨습니까?”
강도진은 생각보다 훨씬 흥미로운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가, 이서빈이 추억회상을 끝마치자마자 곧바로 물음을 던졌다.
“사람들에게 아름아름 전해들은 바로는, 오늘날까지도 컴컴한 산굴에서 홀로 면벽수행을 강제 당하며 내규를 어긴 일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계시다 들었습니다.”
"아아..."
아무리 선의를 위해서라고 해도, 신봉해오던 규칙에서 과감히 눈 돌리는 인물은 정말 흔치 않았다. 그러니 잔잔한 감동을 느낀 강도진이 무승의 이름을 묻는 일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실례지만 그 분의 함자가?”
“충각사(忠覺寺) 항우대연(恒友大練) 명지(銘指)대사이십니다.”
“음... 그렇군요. 잘 기억해두겠습니다. 앞으로 꼭 인연이 있기를 희망도 해보고요. 하하하.”
“흐흐.”
모처럼 호탕하게 웃는 강도진을 보니, 가슴 뿌듯한 이서빈 또한 괜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몇 걸음이나 떼었을 때쯤, 강도진이 이서빈에게 종류가 다른 의문을 제기했다.
“...음... 그런데 어째서 돌아가십니까?”
"아, 여기서부턴 과거에 명지대사께오서 부강통진(伏降通陣)을 펼쳐놓으신 지형입니다. 저희 터전으로 들어오는 불순한 자들을 막기 위함이지요."
이서빈은 강도진이 진법에 대해서는 의외로 문외한인가 싶어 찬찬히 설명해줬다.
“진도를 모르고 그냥 뛰어든다면, 귀신에게 홀린 듯 산길을 헤매게 됩니다. 그러니 저희를 잘 따라오셔야 합니다.”
"흐음... 제 말뜻은 그게 아닌데..."
하지만 그것은 강도진의 의중을 잘못 이해한 것이었다. 그는 구구절절한 설명보단 직접 한번 보여주는 것이 훨씬 낫겠다 싶어 유철진에게 눈짓을 했다.
“어? 어! 어!!! 유 대협! 거, 거기로 가시면 안 됩ㄴ...??? 안 되야 하는데... 안 되야 할 껀데... 어째서...”
“진법이 깨졌습니다. 에... 그렇게 오래 되진 않았네요.”
강도진이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방금 막 찾아낸 파진법의 흔적을 손으로 만지며 말을 보탤 때였다.
- 피이익~ 팡!
붉은 색 신호탄이 어느 허공을 갈랐다.
"교전 신호입니다! 마, 마을 방향입니다!"
“뭐?!”
* * * * *
- 캉! 채챙! 깡! 깡!
병장기가 서로 맞부딪치는 가운데, 싫은 쇳소리와 사나운 불꽃이 터졌다.
“너만은... 너만은... 절대로 네놈만은!!! 크아아아아!!!”
마을을 뒤덮은 화염은, 이 사태의 원흉들에게 악에 받쳐 달려들고 있는 청년의 분노를 명확히 대변해주고 있었다.
- 까깡! 쉬리리릭~ 팍!
반발력을 이기지 못한 도끼가 튕겨나가 바닥에 박혔다.
“크헙!”
눈앞에 있는 한 명조차 당해내지 못함을, 이미 온몸으로 체감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만행을 결코 용서할 수 없는 그였기에, 조금 전 놓친 무기 대신에 가까운 바닥에 떨어져 있던 장검을 찾아 거머쥐었다.
“으아아아아아!!!”
- 촤아악~.
그가 동귀어진을 할 요량으로 겨누었으나, 적장의 창날이 사내의 오른 어깨를 먼저 꿰뚫었다.
- 푸욱.
“으읔!”
그리고 그 찰나를 놓칠세라, 또 다른 침입자들이 사슬로 된 편을 날려 그의 목과 팔다리를 사방에서 거미줄처럼 엮었다.
- 휘릭~, 터억! 턱!
"커헉... 으... 으으..."
그렇게 사지를 단단히 결박 당한 사내가 눈에 불을 켠 채로 울분을 토했다.
“니, 니놈들이 물어본 모든 것에 순순히 대답해줬다! 아는 대로 모조리 말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어째서냐?!!!”
조곤조곤 응답하는 침입자 우두머리의 음성은, 대단히 건조했다.
“그저 위로부터 내려진 분부대로 일을 마무리 지을 뿐, 사사로운 감정은 없다.”
“카악~, 퉷!”
청년이 피고름 섞인 침을 살인마의 얼굴에 탁 뱉으며 악감정을 표출했다. 그러나 그 행동의 댓가는 다른 어깻죽지였다.
- 콰콱!
“끄아아아아!”
“방금 건 내 사심이었다고 해두지.”
그가 거칠게 무기를 회수하자, 청년은 파도처럼 몰려온 고통에 혼절해 버렸다. 이후 소매로 얼굴을 쓰윽 닦아낸 우두머리가 약 50여 명의 수하들에게 명령했다.
“3조까진 목표를 계속 추격한다. 나머지 인원은 이곳은 흔적을 지운 후에 출발할 것이다.”
“존명!”
그렇게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부하들의 모습을 뒤로한 수장은, 근처 담벼락에서 나부끼던 천조각으로 자신의 창에 묻은 피를 말끔히 지우며 맛간의 여유를 누렸다.
‘...살기?!’
그런데 불현듯 그의 미간을 노리는 섬뜩한 낌새가 있었다. 예상치 못한 기습이었으나, 그는 무기로 습격자의 권각을 재빨리 막아냈다.
- 퍼벅! 팡~!
삽시간에 살초를 걷어낸 그의 눈앞엔,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악에 바친 미나가 이를 갈며 서 있었다.
“Alqatida, Ganataos! (원수에게 죽음을!)”
* * * * *
「 제 짐작이 맞겠죠? 」
「 음... 제수씨의 행동을 보니, 얼추 맞는 듯 싶다. 」
어떻게 그녀가 잊을 수 있으랴.
오라버니와 동료들이 열어준 활로를 헛되이 만들지 않으려, 그들의 시신을 땅에 묻지도 못했던 그녀였다.
심지어 타의에 떠밀려 그렇게 산짐슴들의 먹이로서 그들을 놔둔 채 걸음 돌려 도망쳐야만 했던 그녀였다.
미나는 맹독으로 피부가 까맣게 변질됐던 동료의 처참한 모습은 물론이요, 그리고 그들이 저승길로 같이 끌고 내려간 적들의 의복가지를 결코 잊었을 리 만무했다.
“...너, 여기서 죽는다.”
그녀의 음성엔 살기가 만연했다. 낭군 유철진과의 애정 속에 한낮의 그림자처럼 작게 움츠렀던 분노가, 그 시커먼 본색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만 같았다.
“계집이 건방지군. ...응? ...서역인?"
미나의 이목구비를 확인한 적장이 크게 웃었다.
"하하핫, 그래! 아주 헛걸음은 아니었어! 여봐라, 저 년은 산채로 잡아라!”
“존명!”
명령이 떨어졌으되, 미나의 선공이 그의 부하들보다 앞섰다.
“하압!”
- 파직! 빠지직!
그녀의 한 동작 한 동작마다 번개파편이 튀는 듯 했다. 날카롭게 발현된 기운들이 적들의 급소로 날아들었다.
"...크읏!"
"흡!"
그러나 아직 4할도 회복되지 않은 그녀의 내력이 심각한 문제를 초래했다. 충분한 힘이 뒷받침되지 못한 초식들은, 그녀의 의중처럼 치명상을 남기지 못했던 것이다.
"죽어!!!"
그녀는 빠른 판단으로서, 얼마 안 남은 내공을 싹싹 쓸어모아 적장을 노렸다. 단 1명이라도 확실하게 제거하겠다는 심산에서였다.
- 파팟!
“후훗, 기세가 제법이군! 과연! 곧 죽어도 금강뇌문이라 이건가? 허나,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역시나 적장은 미나를 제압하려다 되려 나가떨어진 부하들과는 사뭇 달랐다.
- 콰과과과과!
수장이 뻗은 창끝은 그녀의 장력을 거침없이 쪼개며, 그녀의 명치 한복판을 정확히 겨냥해 들어갔다.
“아악!”
무기 끝이 그녀의 급소에 닿았다. 반치정도 밀고 들어온 창날은 미나 자신조차 이젠 틀렸다는 생각에 눈꺼풀이 질끈 감기게 만들었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그녀가 비명을 지르던 그 순간, 측면에서 튀어나온 거친 손이 창신을 움켜잡았다.
- 터헙! 드드드드드......
“?!!!!”
적잖게 당황한 적장은 무기를 회수하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힘을 가해도 자신의 창은 꿈쩍조차 하지 않았다.
‘...이 내 일격을... 한 손으로?!!!’
완강하게 저지 당한 그는, 당혹감을 넘어선 두려움마저 느꼈다.
‘이 무슨?! 이 자의 내공은 한설 장군과 비등하다! 여기서 조속히 물러나 보고해야 해!'
그가 서둘러 수하들에게 퇴각을 명령하려 했지만, 유철진 쏘아대는 살기 서린 안광으로 인해 입술마저 의지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니는... 오늘... 디졌어.“
이후 유철진은 미나의 가슴팍을 물들인 핏값을 백배로 받아낼 때까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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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딕, 틱! 치이이...
떨어지는 눈발이 타다 남은 마을 잔재 속 불씨에 닿을 때마다 옅게 소리를 냈다. 수증기로 화한 눈이 하늘로 슬그머니 흩어졌다.
그 풍경은 마치 넋을 달래는 분향처럼, 수많은 무덤들과 그 앞에 모여선 사람들의 크고 작은 흐느낌을 닮아 있었다.
“...이제 그만 가십시다. 단주.”
양 어깨에 붕대를 칭칭 감은 청년이 동료의 부축을 받으며, 이서빈에게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
그러나 이서빈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묵묵히 눈앞의 무덤들을 응시할 뿐이었다.
“이러다 단주마저 쓰러지시겠습니다!”
“...내 실수다. 내 잘못이다. 만강(滿江).”
“가장 먼저 어린 아이들을 인질로 붙잡아 우리들이 제대로 된 반항조차 못하게 만들곤 일방적인 살육을 펼친 정말 야비한 놈들이었습니다. 우리의 숫자가 더 많았다한들...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만강이라 불린 청년은 되도록 차분하게 이서빈을 위로했지만, 그의 무거운 마음 깊이까진 도달치 못했다.
“아니다. 진법을 맹신하여 안전에 소홀히 한 내 탓이다! 마을에 인원을 더 배치했었더라면... 그랬더라면 이들은... 이토록 허무하게는...”
“......”
"난... 단주의 자격이 없다."
만강은 그를 마주보고 얼마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서빈에겐 보다 적극적인 위로 방법을 취해야 함을 깨달았다.
“에라이, 이 미친!”
만강은 허리를 뒤로 크게 젖혔다가 앞으로 대차게 튕겼다.
- 빡!
그의 이마는 이서빈의 안면을 정확하게 강타했다.
“우웈!”
이어서 만강은 코피를 흘리며 주춤거리는 단주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야, 이 새끼야! 그만 징징거려!"
"......"
"네가 죽치고 계속 이렇게 울상을 진들 뒈진 놈들이 살아 돌아오기라도 하냐? 어!!! 내가 한쪽 팔만이라도 멀쩡했으면! 니놈 면상은 그 정도로 안 끝났을 꺼다!"
"...크읔..."
" 두 눈 똑바로 뜨고, 쟤들을 봐! 이 새끼야!”
“......”
만강의 턱짓이 가리키는 곳엔, 각자 저마다의 무덤 앞에서 억지로 울음을 끅끅 눌러 참는 아이들이 있었다.
“저 어린 것들은 지금 복수를 다짐하고 있다! 인질로 붙잡혔던 자기들 때문에! 저항도 못 해보고 목이 떨어져 나간 부모의 얼굴을 몇 번이나 되새기면서 말이다! 원수를 반드시 피로 되갚아주겠다는 맹세를 뼛속에 새기고 있다고!!!"
그는 어금니까지 꽉 깨물며, 애걸에 가까운 호소를 했다.
"그런데 너란 새끼는, 지금 뭐하는 건데?!!!"
"......"
"뒈진 놈들한테 잘못한 건 나중에 뒈지고 만나서 빌어! 그리고 그때까진 발악하며 살아달란 말이다! 제발!!!”
입이 저절로 닫혀진 이서빈은, 수치스러움에 낯짝조차 들지 못했다.
“선대 단주가 유언으로써 2대로 세운 건 내가 아닌 너였다! 이전에도 그랬고, 그 누가 뭐래도! 난 그것에 이견을 제기하지 않아! 그러니까 이제 그만 정신 차리고 우릴 이끌어! 이 빌어먹을 새끼야!!!”
“......”
이서빈은 천천히 얼굴을 들어 주위를 살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든 이들의 눈빛은, 자신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남은 인원은 내가 사방으로 내보냈었던 150명과 운좋게 살아남은 이 아이들뿐인가... 정녕 이게 다란 말인가?'
그는 이전의 절반 이하인 단원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지금 당장, 그리고 앞으로 자신과 그들이 함께 쫓아야할 목표와 행동들을 말이다.
잠시 후, 그의 낯빛에선 절망과 부끄러움이 지워지고, 그 자리엔 독한 의지가 채워졌다.
“만강."
"...예, 옙!"
제정신 차린 이서빈을 향해, 만강은 다시금 예를 갖추어 대답했다.
"생포한 놈들의 입을 열어라. 그것들의 주둥이에서 똑같은 이야기가 나올 때까지, 무슨 짓을 해도 개의치 않겠다.”
“조, 존명!!!”
* * * * *
사흘 후 인시정(寅時正, 새벽 4시~5시).
“아주보어님, 고맙다요.”
“형님, 진심 감사합니다.”
미나와 유철진이 강도진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 두 사람만 여장을 꾸린 차림새는, 강도진만 이곳에 놔두고 떠남을 의미하고 있었다.
"진짜, 진담이다요. 너무너무 고맙다요."
“에이~, 가족 사이에 뭘 이런 거 가지고~. 제수씨도 신경 쓰지 마세요.”
포로들이 이틀 밤낮 모진 고문을 겪으며 실토한 이야기 중에, 미나가 큰 관심을 보인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하루속히 영약을 한세아에게 전해야 하는 그녀의 입장에선, 그것의 진위여부를 확인할 여유까진 없었다.
때문에 강도진이 맹영단에 며칠 더 머물기로한 결정이 겸사겸사 이뤄지게 된 것이라 하겠다.
"행여 제수씨의 지인들 중 몇 사람이라도 살아있을지 모르는 일 아닙니까? 험한 산중에서 서역 복식을 갖춘 사람들이 이따금씩 출몰한다고 하는 그 소문은, 제가 꼭 알아볼 테니 먼저 가서 일 보세요."
“아주보어님, 너무 좋은 사람이다요!”
“흐흐, 일정이 생각보다 지체됐으니 서둘러가세요. 철진아, 아무쪼록 노 의원님께 안부 잘 전해줘~.”
“예, 형님. 그럼 먼저 가서 기다리겠습니다.”
“그래그래.”
미나와 유철진을 먼저 떠나보낸 강도진은, 맹영단의 임시 야영지로 걸음을 느릿느릿 되돌렸다.
‘으자자자자~, 슬슬 시작해볼까? 자고로 침을 질질 흘릴 정도로 몸이 고되면, 울적한 기분이고 나발이고 생각의 여유조차 없는 법이지! 으흐흐흐!’
어느 샌가 강도진의 양손엔, 큼직한 냄비와 쇠국자가 들려져 있었다.
- 깡! 깡! 깡! 깡! 까깡깡-!
그가 두 손을 활기차게 놀리니, 사람 신경 긁는 굉음이 잠든 이들의 고막을 괴롭혔다.
- 깡! 깡! 깡! 깡!
“기~상! 기상! 니들이 그렇게나 바라마지 않던 훈련을 시작한다! 기상!!!”
강도진은 얼기설기 만든 움막 사이를 신명나게 누비고 다니며, 진심을 가득 담아 외쳤다.
"가장 늦게 나온 놈! 아침밥 열외!!!"
- 우당탕탕당-!
밍기적 거리던 새벽공기가 열렬히 깨어났다.
* 충각사(忠覺寺) 명지(銘指)대사. 법호 : 항우대연(恒友大練).
- 작가의말
2개로 쪼개기엔 여러 가지로 상당히 애매해서 그냥 다 올렸습니다. 평소보다 분량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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