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8. 하르파스
자신을 데바트라왕국의 타푼 남작이라고 밝힌 남성은 떨어진 상의를 겨우 입고 있었기에 마른 체형에도 불구하고 근육의 형태가 뚜렷하게 보일 정도였다. 이혁조차도 그것을 보고는 그가 어떤 타입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알 정도였지만 들었던 미들네임은 너무 길었기에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제 영지가 코발의 숲과 근접하고 있기에 해마다 몬스터토벌을 벌인답니다. 이번에도...”
남작은 말을 하다 말고 손에 들려진 빵을 다시 한번 베어 물었고 그제서야 살 것 같았기에 살아남은 자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주군이라 불리는 자의 기사들이 음식과 함께 물들을 돌리고 있었지만 모두들 허겁지겁 삼키다가 헛기침을 하기가 일쑤였다.
명맥만 이어가던 수호가문의 마지막 혈족이었던 자신에게 임무가 주어진 것이 몇 해 전이었다. 그렇게 외딴 산골영지의 영주로 부임하면서 기반을 이루고 있었던 왕도에서의 생활을 정리하며 가족들에게도 속 사정을 설명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몬스터들의 준동이 심상치 않았거니와 산맥을 벗어나는 야생늑대들의 이탈도 심심찮게 많았기에 해마다 토벌대를 구성하고 객체 수를 줄이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용병들의 수요의 급증과 더불어, 수거되는 가죽과 마정석에 눈독을 들인 상인들도 모여들었다.
두달 전, 몬스터들의 군락을 살피러 떠났던 정찰대들이 돌아와 폐허로 변해버린 산악마을들에 관한 소식을 전해왔다. 서대륙의 삼 할을 차지하는 코발의 숲도 엄연히 따지면 주인 없는 땅과도 같았기에 수효를 알 수 없는 자생부족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었고 가까운 부족과는 거래도 하고 있던 상태에서 그대로 간과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토벌대를 구성하기에는 이른 시기였지만 수비병들을 제외한 사백의 병사와 모집한 용병대 120명을 앞장세워 길을 나섰던 것이다. 그 순간, 남작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고는 회상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마법배낭이라고?’
어느 정도 허기를 달래고 있다 보니 저런 음식들이 작은 배낭에서 실세 없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중앙대륙의 마탑들도 일반성인 남성 한 명이 옮길 수 있는 용량의 마법주머니를 만들었다며 위상을 높이는 상태에서 저런 말도 안 되는 아티팩트를 접하고는 이들을 다시 한번 돌아볼 수 밖에 없었다.
간간히 들려오는 기사들의 말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였지만 몇몇은 대륙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망토에 새겨진 황금 드래곤의 문양은 ‘신성데바트라 왕국’의 상징이기도 하였기에 처음에는 실종된 자신들을 위해 왕국에서 보낸 기사단으로 착각했지만 소식을 듣고 그들이 도착하기에는 불가능한 시간이었다. 혼란만 가중되는 상태에서 목소리가 들려왔기에 고개가 돌아갔다.
“남작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아, 죄송합니다.”
자신에게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는 젊은 귀족이었지만, 그렇다고 목숨을 구해준 은인한테 예의가 없다며 말을 놓을 수는 없었기에 목마른 자부터 이야기를 풀어놓는다는 심정으로 그 동안의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한동안은 문제없이 몬스터 군락지를 찾아서 이동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뿔 오크 놈들을 만나는 바람에 반수이상이 죽거나 이렇게 잡혀오게 되었지요.”
그렇게 한 달이 되어가고 있었고 광신도들이 뭔가를 깨우려는 걸 알았을 때는 하루하루를 살아남기 위해 발악하던 몸짓으로 흙을 퍼 나를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뿔 오크들과 검은 복면의 존재들이 석상이 있던 재단을 확인하고부터는 자신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기에 달아날 수 있었지만 당초 생각했던 곳으로는 향하지 못하고 이렇게 의도하지 않게 갇혀버렸다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어차피 잡혀 먹힐 바에야, 마지막으로 죽을 자리를 찾아나선 것이었기에 하루만 더 있었어도 탈진으로···”
남작이 회환에 젖은 눈으로 이야기를 털어놓다가 불현듯 무엇인가를 잊었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 그 놈들끼리 무슨 일이 벌어진 것 같았습니다.”
그 이후에 오크들의 비명 같은 포효소리와 함께 굉음들이 한동안 동공 내에서 이어졌다가 그쳤지만 밖으로 나갈 생각도 못하고는 하루 동안을 숨죽이며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고 한다. 이야기를 마무리 지은 남작은 그제야 생기가 돌고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면서 자책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토벌 당시의 병사들과 용병들이 대다수입니다. 저희가 오기 전부터 있었던 자들은 이미 먹이로 던져지는 용도로 사용되었지요.”
남작은 울분을 토하다가 이혁이 건네주는 물 주머니를 받아 들더니 들이키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려니 이들은 이곳에 갇혀있음으로 목숨을 살렸지만 그 뿔 오크들과 검은 복면인들은 자신들이 깨운 존재에 의해 최후를 맞이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다. 뭔가 뒤바뀐 결말과도 같지만 말이다.
“주군, 이야기를 들어보면 뭔가를 깨우긴 한 것 같군요.”
일일이 사람들의 몸 상태를 살피는 것이 불가능 했던지, 힐 마법을 난사하다시피 하면서 돌아온 마법사가 이혁의 옆 자리에 주저앉으며 말을 이어갔다.
“저희가 내려왔던 길도 막혀버린 상태에서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지금에서 저런 물음을 던지는 저의를 모르겠다며 질문을 되돌려 주고 싶은 심정이었던 이혁은 남작의 이어지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처음 생각했던 그곳이라면 빠져 나갈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확신에 담긴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이곳으로 내려온 첫날부터 주변을 수색하였지만 무엇을 확인하려는 건지는 몰랐습니다. 저희를 단지, 간식용으로 끌고 다닌 것인지도 모르지만 혹시나 싶어 빠져나갈 장소를 돌아보던 중에 터널에서 불어나오는 신선한 공기의 내음을 맡을 수 있었으니, 만약 이곳에서 지상으로 나가는 통로가 있다면 그곳일 겁니다.”
남작은 그 당시 오크들이 수색을 중단하지 않았다면 좀 더 확인할 수 있었다는 아쉬움을 뒤로하며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리자, 사라졌던 희망이 돌아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서야 자신들의 대화를 경청하던 토마일이 눈에 들어왔다.
“토마일 단장, 이쪽으로 와서 설명 좀 해보게.”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온 한 덩치 하게 생긴 남성이, 이혁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더니 입을 열었다.
“불락용병대 단장 토마일 이라고 합니다. 본래 저희 용병대의 본업이 유적탐사이기에 이런 장소도 익숙한 편이지요. 더구나 규모를 볼 때 나가는 출구가 여러 개는 존재할 겁니다. 보통 들어오는 입구는 각종 함정으로 파괴되는 더미로 사용되는 것이 정석이니, 마법사님께도 말씀 드렸듯이 다른 방법이 없다면 남작님의 의견을 따르셔도 좋을 겁니다.”
이혁은 처음부터 의도하며 말을 꺼낸 맨탈리온을 돌아보았지만 그는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주군!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다가온 하니발의 눈치를 받으며 남작일행이 물러났지만, 정작 중요한 내용도 아니었다.
내부에서 발견된 인원이 215명에 부상이 심했던 이들은 포션과 마법사의 도움으로 모두 치료한 상태라고 했다. 면역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지만 사기성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던 이혁이었다.
-생존 남성들: 215명(타푼 남작의 병사+불락 용병대)-
“그 외 산악부족 출신이나 이전에 잡혀있던 이들은 없었습니다.”
하니발이 여인들 때문인지 안타까운 표정을 지은 반면 앞으로 남아있던 이들을 어떻게 책임져야 할지 난감할 뿐이었다.
이혁은 모두들 휴식이 필요하였기에 잠시나마 쉬어가기로 하고는 벽에 몸을 기대어 눈을 붙였지만, 임시로 막아놓은 입구너머의 동공에서 공허한 울림이 마치 자신을 부르는 소리와 같았기에 신경이 곤두설 수 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린 것인지 사람들의 눈동자에 혈색이 돌아와 있었기에 인간이란 종족은 어떤 환경에서도 끈질긴 생명력과 적응력이 타 종족을 뛰어넘을 거라는 평가를 하면서도 막상, 다른 종족을 운운하는 이런 생활에 적응하고 있는 자신이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출발을 하기 앞서 그들의 행색을 돌아보며 챙겨온 검이라도 있으면 나누어 주라고 하자, 아깝다는 표정의 기사들이 배낭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저희 기사단에서 사용하는 무구들이라 나가시면 반납하셔야 합니다.”
한슨의 목소리가 울렸지만 거기에 신경 쓰는 이들이 없을 정도로 무구들을 살펴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소드와 석궁들을 받아 들고는 저마다 감탄 성을 발하며 결의를 다지는 모습을 보였고 아무것도 없던 손에, 무기가 들렸기에 생기는 자신감인지도 몰랐다. 물론, 남작도 그런 이들 중의 하나였기에 받아 든 검을 감상하더니 놀랍다는 듯이 말을 하였다.
“이 무구들은 드워프들이 만든 것입니까?”
대답을 바란 것이 아니라는 듯 검을 손에 쥐어보며 그 감촉을 감상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후로 용병 토마일이 앞장서서 끝을 알 수 없는 동공의 어둠 속으로 발길을 옮겼다. 다시 보아도 위압적인 풍경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으려니 옆으로 다가온 슈란의 설명이 이어졌다.
“장로들과 파수꾼 이외에는 이곳의 지리를 자세히 알지는 못해서, 저들이 가려는 곳도 짐작만 할 뿐이에요. 하지만 그곳을 지나가야 한다는 건 확실하니 상황이 어떨지 모르는 상태에서 준비를 하셔야 할 거에요.”
인간들을 만나고 부터는 줄곧 망토로 얼굴을 가리고 있던 엘프였기에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울리는 느낌이었다.
얼마 있지 않아 한쪽 벽면에 마치, 신전의 입구와도 같은 거대한 기둥들이 돌출되어있었고 그 내부의 무너진 벽들의 흉측한 모습에 비하여 재단의 형태가 온전하였기에 대조적일 수 밖에 없었다.
긴장하며 걸음을 멈춘 슈란을 보면서 이곳이 회색엘프들이 지키고 있던 장소란 걸 알 수 있었다. 남작 일행들은 불안한 표정으로 하루바삐 벗어나길 바라는 눈치였지만 기사들은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흥분하여 검 집에서 소드를 뽑아 들고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렇게 바닥에 날리고 있는 검은 잿가루가 음산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을 때 재단으로 다가간 마법사의 음성이 들려왔다.
“주군! 여기 흥미 있는 이야기가 적혀 있습니다.”
다가간 바닥에는 푸른빛을 머금은 상형문자들이 나열되어 있었지만, 언제 사라질지 모를 정도로 그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고대어로 되어있지만, 대부분은 읽을 수 있는 글자입니다.”
하지만 맨탈리온의 입이 떨어지기도 전에 뒤따르던 슈란의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멸하지 못하는 존재의 소멸을 바라는 이가 이곳에 잠들었지만 오직 숲의 지킴이만이 그 안식을 방해할 수 있을 것이니···”
그리고는 무너져 내린 벽을 바라보면서 말을 이어갔다.
“이미 늦은 것 같군요.”
어느 순간부터 바닥에 쌓여있던 검은 먼지들이 불어오는 바람에 흩어지며 한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안개를 만들어 내고 있었고 뜨거운 열기가 동공 안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이혁들이 재단을 중심으로 모여드는 순간, 어둠 속 허공에서 거대한 붉은 눈동자 한 쌍이 소리 없이 나타났다.
☆ ☆ ☆
광분하는 뿔 오크들을 지켜보는 붉게 충혈된 눈빛. 그 회색엘프 가이란의 목에서 흘러내리던 핏물이 멈추는가 싶었더니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 방치되어진 몸이 목을 향해 기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현상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 이들의 목소리가 동공을 울리고 있었다.
“주술사, 위에 남아있는 놈들은 어떡하냐?”
포효하는 뿔 오크 사이에서 음성이 들려왔지만 또 다른 오크의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걱정할거 없다. 그 몬스터놈들은 어둠 속을 싫어하니 지금쯤이면 문스톤 아래에 웅크리고 있을 것이다. 그 놈들을 조정하던 놈들만 잡아오면···”
그 순간 주술사의 뒤편으로 검은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고 있었기에 영문을 모르던 오크들의 시선이 모일 수 밖에 없었고 주술사가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자신의 가슴을 뚫고 나온 물체를 내려봐야만 했다.
너무나 연약해 보이는 하나의 손이었지만 그것이 자신의 내부에서 무엇인가를 움켜지며 사라지는 순간, 주술사의 등뒤에서 게걸스럽게 심장을 파먹고 있는 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살아있을 때의 모습자체를 짐작하지 못할, 식욕을 갈구하는 시체의 형상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한동안 지켜보던 것도 잠시, 누군가를 시작으로 그 엘프의 시체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고 한 순간 수십,수백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기운을 차린 가이란이 손아귀에 쥐어진 검붉은 수정구를 바닥에 던져 넣었고 그 속에서 빠져 나온 검은 기류들이 몰려있던 뿔 오크들을 덮쳐갔다. 알 수 없는 괴로움에 울부짖는 주변의 동료들에 비하여 일부이지만 멀쩡한 뿔 오크들은 그 영문을 알수가 없었다.
끝없이 바닥을 흐르던 검붉은 안개 속에 방금 전까지 고통에 몸부림치던 뿔 오크들이 검은 구체로 변해버린 눈을 뜨며 일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당황하는 소수의 무리들을 바라보며 이빨을 들이밀었다. 그렇게 아비규환이 따로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몬스터의 고기를 식량으로 생각하던 네놈들이 그런 것들로 변질되는 건 당연한 이치이겠지···”
입가에 떨어지는 핏물을 훔치던 가이란은 온전하게 붙어있는 자신의 목을 쓰다듬어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깨어진 수정구가 아쉬웠지만 오크들의 내부에 잠들어있는, 몬스터들의 육식으로 인해 전해진 어둠의 조각들을 활성화 시키려면 어쩔 수 없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거대한 석상이 갈라지면서 검은 비늘이 드러나기 시작했기에 자신의 임무는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돌아온 것인가?’
눈을 뜨기 전 동공내부의 풍경을 살펴볼 수 있었다.
오크들이 자신들끼리 잡아먹고 있는 이전에도 알고 있던 평온한 모습들이었지만 불쾌한 감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피부의 표면을 감싸고 있는 임의적으로 형성된 돌 조각들을 털어내려고 하자, 벽에서 균열이 시작되었고 오크들의 머리위로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겁도 없이 자신에게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들려고 하였지만 누군가의 제지로 그것들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이들 무리들에게서는 칠흑 같은 어둠의 향기, 미약하지만 자신이 소멸시키려고 했던 그 놈의 향기가 느껴졌다.
“마왕이시여, 이 대륙이 피로 물들길 원합니다.”
『”···.”』
얼굴의 형상으로 보았을 때는 엘프였을 존재였지만 이미 죽은 이가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자신을 깨운 것 같았지만 미친 시체와 어울려줄 생각은 없었다. 더군다나 기억하기도 싫은 악취를 풍기는 녀석은 더욱. 그렇게 벽에서 빠져 나오기도 전에 목에서 끌어올린 화염을 그것들을 향해 쏟아내었고 검 붉은 불길들이 주변을 휩쓸고 지나가면서 타 들어가는 형상들만이 검은 잿가루를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수천에 달하는 발광하던 오크들이 주변으로 흩어지는 바람에 모여있다 불길에 휩싸인 오크들은 소수에 불과하였다. 그 중에 아직까지 얼굴만을 남기고 타 들어가던 가이란은 의문들에 휩싸인 눈동자를 감지 못하였지만 얼굴을 감싸는 마지막 화염과 함께 장작의 밝기처럼 빛을 발하다가 검은 가루로 변해버렸다.
어느 순간, 어둠만이 들어찬 동공에는 정적만이 감돌았고 어렴풋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하아얀···’
골드 드래곤의 로드이자 부상을 입었던 자신을 이곳 지하의 벽 속에 봉인해 버렸던 존재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죽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내상들의 대부분이 회복되어 있었던 것이다.
외형적인 모습이야 망가진다고 해도 얼마든지 복원이 가능하였지만 그 저주받을 신과의 싸움에서 내면에 받아야만 했던 피해들은 세월이 흐른다고 해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기억의 괴리 속에 고민하며 하루를 보내면서 흩어진 미친 오크들을 찾아 다녔지만 어디로 숨어버린 것인지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들의 경우는 관심 밖이 였기에 방치하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다른 존재들이 지하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 중에는 자신의 수족으로 부렸던 엘프가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는 것에 반가운 마음도 들었지만 아론의 모습을 접하고는 혼란이 가중될 수 밖에 없었다.
☆ ☆ ☆
어둠 속에서 빛나던 붉은 눈동자가 그 숨겨진 모습을 드러내었다.
천장을 올려다 볼 정도의 거대한 동체가 용의 형상과도 같았지만, 검은 날개를 펼쳐 보이며 한 손에 들려진 불길에 휩싸인 검붉은 검에서 동일한 색상의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고 있었다.
이혁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붉은 눈동자를 한동안 바라볼 수밖에 없었지만 주변으로 흩어진 30명의 기사들이 손목에 휴대하던 방패들을 확장시켰다. 마법이란 언제나 사기성 같았지만 눈앞에 있는 위압감에 남작일행들은 그것에 신경자체를 쓸 겨를도 없이 굳어버린 석상처럼 들고 있던 검을 놓치는 이들도 대다수였다.
『”지금의 너는 그분과 너무나 닮아있구나···”』
이혁은 머릿속에서 울리는 목소리에 놀람도 잠시, 낯설지 않은 음성으로 인해 지금의 형상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마족 하르파스?”
누구도 들을 수 없는 작은 읊조림이었지만 대답이 들려왔다.
『”그렇다. 지금까지 속박된 체 영혼조차 그 놈들의 실험으로 다른 세계로 떨어져나간 상태였지. 하지만, 너는···”』
이해할 수 없는 물음에 답해줄 말도 없었던 이혁은 내심으로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 녀석도 게임 속에서 넘어왔던 것인가?’
이곳에 동일한 존재가 있는 이유가 그것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기가 가상게임 속이란 건 더욱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기에 당면한 현실로 돌아와야 했다.
일단은 싸워보고 알아보자는 단순하게 생각을 굳혔다. 그렇다고 두려움은 들지 않았다.
이전, 마족을 상대할 시기만 하여도 자신은 제외하더라도 기사들의 레벨이 그렇게 높지만은 않았던 상태였기에 지금을 비교한다는 자체가 무의미 하였고 이혁이 알고 있는 마족과 같다면 현재의 기사 전력만으로도 충분히 상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혁은 많은 것을 착각하고 있었다. 처음 하르파스를 만났을 당시가 초기상태와 같았다는 것을 말이다.
“마족을 소탕한다!”
그런 이혁의 명령에 기사들이 평소에 사용하지 않던 마법방패를 패용하고는 마족의 좌우로 흩어졌다. 거대한 용의 형상이 그 모습을 훑어보더니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된 것이라면, 그 유회란 놀이에 맞추어 줄 수밖에 없겠구나···”』
마치, 자신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주변을 돌아보는 붉은 눈동자가 웃음을 짖고 있다는 착각이 들려는 순간, 손에 들려진 타오르는 검을 기사들을 향해 휘둘렀다.
검에서 뻗어 나오는 불길들이 기사들의 무리를 휩쓸었지만 들고 있던 방패에서 밝은 빛이 분출되어 그 화염들을 가로막아서는 것이었다.
그 순간 허리에 차고 있던 소드에서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성검 제라늄이란 다소 부끄러운 명칭이 붙어있는 소드를 검 집에서 뽑아 들었다. 그러자 어두웠던 동공이 검에서 터져 나오는 빛으로 내부를 밝게 비추어 주었다.
지금까지 마냥 관전만하던 남작의 무리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성검이다!”
이혁은 저 말을 듣고 있자니, 이건 영락없이 영웅 퀘스트이지 않냐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 작가의말
앞서 언급되었던 마족 하르파스입니다. 관련 코멘트는 다음회에 달도록 하겠습니다.
-생존 남성들: 215명(타푼 남작의 병사+불락 용병대)-
♣등장인물
슈미트티아나 타푼: 남작,자신의 이름을 딴 영지소유.
토마일: 불락 용병대 단장.
가이란: 회색엘프 가람의 자녀, 젊은시절 인간세계를 여행중 전혀다른 성향으로 변해버린듯. 죽어서 좀비처럼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줌. (짧은 단역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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