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9. 출발
-투~둑-
촘촘하게 맞물려 있는 돌 바닥위로 떨어지는 화살촉들의 울림과 그 표면을 감싸던 검은 액체들이 공기 중으로 튀어 오르는 광경들은 자신의 손으로 뒤통수에 박혀진 화살촉을 뽑아내는 모습보단 시선을 사로잡는 비중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이제야 뭔가 이야기할 분위기가 만들어 졌군요. 그보다 먼저 감사인사를 드려야 할까요?”
여러 구멍들과 떨어져 나가 너저분해진 옷깃을 추스르며 검은 핏물이 머무르던 상처가 아물어가는 와중에 그녀의 물음과 그 칠흙 같은 눈길이 아론을 향하자, 당사자는 의문을 던질 수 밖에 없었다.
“무엇에 관한 감사를 말하는 것이지?”
이혁은 막상 말을 뱉어놓았지만 소극적이었던 자신을 생각하면 스스로도 놀랄 일이었고 뒤를 이어 백발의 머리를 쓸어 내리던 여인이 주변을 돌아보던 눈길 그대로 말문을 열어갔다.
“눈으론 볼 수 없지만 이렇게 하고 있으면 주변의 사물은 물론, 색감까지도 느껴지게 된답니다. 특별한 장치는 없는 것 같은데··· 아무튼 그 분과의 연결고리가 끊어졌다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이렇게 말을 주고받는다는 개념도 오랜만이라. 그리고 보니 서론이 길었군요. 언제 또 괴물로 돌아갈지 모르니, 따지고 보면 이런 모습 또한 괴기스럽겠지만 궁금한 점들이나 물어보세요.”
“살아있는 것이요? 그것보다 그대의 이야길 들어보면 자신의 의지가 결여되었단 소린데, 지금의 상황을 회피하려는 속셈이란 걸 어떻게 알겠소.”
마법사의 물음이었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아론을 향하여 입을 열었다.
“검은 머리의 기사님. 당신이 여기의 대장인가 보군요. 과거 형일지는 모르지만 저에게도 마야란 이름이 있었답니다. 보답이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대답을 돌려드리지요.”
마법사의 물음에 이야기를 하던 마야라 밝힌 여인이 자신의 목을 옭아맨 쇠사슬을 만지길 잠시, 뒤이어 일방적인 대화를 이어간다.
“머릿속에 남아있는 회상이 과연 본래의 기억인지도 의심되지만 어렴풋이 떠오르던 짧았던 환희도 결국은 벗어나지 못하는 저주의 굴레의 시작이 되어버렸답니다. 트롤보다 더한 재생력과 아픔 또한 느끼지 못하는 괴물일지라도 자아가 있다면 살아있는 것이 아닐까요?”
마야의 기억은 대부분 지워져 있었다. 그것이 계약과 저주받은 힘을 부여 받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작용 또는 제물과도 같았기에 어렴풋한 잔상들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이혁은 괴기스런 분위기보단 말 많은 여인이란 인상을 받으며 이어지는 그녀의 수다를 들어주어야만 했다.
“오크들의 왕이었던 우라크를 아시나요?”
“··· ···?”
이제는 회색엘프들도 들어올렸던 석궁들을 내려놓았고 회의시간 심문에 열을 올리던 하킴은 어느 순간 뒤편으로 물러난 지 오래. 그리고 하니발도 철창내부를 경계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던 발거스와 간간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렇게 대답 없는 아론들을 향해 한숨 비슷한 표정을 지어 보이던 여인이 설명을 이어간다.
과거 서부의 밀림지대를 장악하고 있던 오크들의 왕이 있었다.
한때, 몬스터의 남하를 저지하고 그것들의 발성지인 신들의 전장. 거대한 크레이터와 사막이 존재하는 서북부로 진격하는 용맹함을 보이기도 하였지만 결국은 과반수를 잃고 본거지에서도 밀려나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단다.
“그 당시, 오크들의 편에 참전했던 인간 족들 중 하나가 저였던 것 같아요.”
그 순간, 경계를 쓰던 기사들이 앉을 수 있는 의자를 가져왔기에 고맙다는 뜻으로 눈인사를 건네던 이혁이었고 이미, 하킴과 하니발은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았기에 지상으로 올라가버린 상태였다.
“정신계 마법같은건 필요도 없을 것 같군요. 주군. 드셔보시겠습니까?”
주머니에서 견과류를 꺼내던 맨탈리온의 손길이 이혁의 사양으로 멈추었지만 마야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몬스터들에게 밀려 내려가던 와중에 오크들의 협력자를 자처하던 이들이 오크의 왕에게 제안한 실험.
“인간들의 손으로 몬스터의 알파를 창조했단 사실이 믿어지시나요? 그도 자기종족들이 죽어 나자빠지는 와중에 선택의 여지는 없었겠지요.”
우라크라는 몬스터의 신이 탄생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으며 정작, 그녀의 나이가 궁금해지던 이혁이었고 기억이 누락되었다고 주장하는 것 치고는 장황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마야였다.
“그 당시에는 몸도 정신도 이렇지는 않았답니다. 그저 어쩔 수 없이 우라크의 핏물을 들이마시긴 했지만··· 사명감 하나는 끝내주었다고 자부해요.”
알파의 핏물은 그녀를 포함한 사도들의 시력까지 앗아가 버렸지만 몬스터를 통제하려면 어쩔 수 없는 방법이었다고. 그리고 생명을 취해 만들어진 수정구 내부에 들어찬 사념들은 그들이 조정할 수 있는 몬스터의 수효를 늘려주는 수단이 되었다.
“내부에 들어찬 검은 기류들이 사념이란 말인데··· 다른 것으론 조정이 불가능한 것이요?”
품속에 간직한 수정구를 들어 보이며 설명을 요구하는 마법사의 질문이 마음에 들었던지, 그렇지 않으면 반응 없던 청중들이 흥미를 나타내는 것에 기쁨을 나타내는 그녀의 미소가 대답을 이어갔다.
“무엇을 요구할 때는 동일한 가치를 제공하여야 한다는 것이 연금술의 기본. 그것이 영혼이라면 갓 형성된 몬스터의 그것보단 숙성한 종족들의 영혼이 곱절의 값어치를 발휘하지 않겠어요?”
자귀적인 웃음을 지어 보이던 마야.
‘처음의 뜻이 언제부터 변질되어 버렸던 것일까?’
시간은 사도들을 기다려 주지 않았고 깨어나려는 몬스터의 신 우라크를 바라보며 초조함만이 더해간 것이 가장 큰 이유였던 것일지도 몰랐다.
몬스터를 몬스터로 막아 서려던 인류를 위한 숭고한 희생정신은 인간과 이 종족을 제물로 만들어버리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하였다.
처음이 어려웠던 것일까? 그 다음부터는 너무도 쉬웠던 느낌이다.
마야의 비뚤어진 입가로 달콤한 뭔가를 갈구하듯 흥건하게 침샘이 고이기 시작했지만 그녀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본능과도 같았다.
“목적을 잊어버리진 않았기에 몬스터를 대동하고 신마전쟁의 유적지이자 몬스터들이 기어 나온다는 그곳을 막아버리려, 저희가 조정 가능한 대부분의 몬스터를 이끌고서 서북쪽으로 올라갔어요. 하지만 그분···기억 속에는 주인이란 호칭을 쓴 것 같지만 아무튼, 그 자를 만나고 부 터 몬스터 보단 이 종족들을 사냥하며 북대륙을 휘졌고 다니다 중부대륙까지 넘어서게 되었던 것 같아요.”
수정구에 끌어 모은 사념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옅어지기 마련이기에 지속적으로 채워 넣어야 했지만 공수가 바뀌어 버린 상황이었다.
간간히 떠오르던 기억에 소름이 돋는다는 듯이 몸을 떨기를 잠시, 말문을 열어간다.
“오크들을 지켜달라는 우라크와 협약이 생각나는군요. 지금에서야 기억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주받은 몸뚱이도 결국은 정체도 생각나지 않는 그 자 때문인데, 한편에선 자아를 상실해도 좋으니 그 와 연결되길 갈구하는 마음이라니···미친년이 따로 없군요.”
※ ※ ※
“지하에 깔아둔 차단 마법 때문인지도 모르니, 별도의 조치는 해 둘 예정입니다. 그보단, 몬스터의 남하를 막아서던 사도들이 왜? 봉인된 마족을 깨우려 하였던 걸까요.”
그녀도 그것까진 모르고 있었다. 아니,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며 본인의 입으로 말하였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태가 지속되면 기억이 돌아올지도 모르겠어요.”-
이혁은 될 수 있으면 죽여달라는 마야의 처음의 바램 치고는 상반된 내용을 듣고서 지하에서 올라오던 길이었다.
‘그보다 차단마법은 뭘 하려고 만들어 둔 것일까?’
그런 이혁의 의문은 독심술이라도 터득했을 이어지는 마법사의 대답에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코발숲으로 이어지는 이동진을 설치하다 보니, 외부와 차단될 장소가 필요했습니다. 그 동안 좌표는 있었지만 도착시의 높낮이를 맞춘다고 연락을 주고 받으며 몇 번의 실험을 거쳤지요. 얼마 전에야 완성된 상태이니 왕래에는 무리가 있지만 돌아가는 건 지금이라도 가능하답니다.”
지금까지도 아무런 통보도 하지 않았던 사항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마법사와 함께 두 개의 문스톤이라 불리는 달빛 아래 촘촘히 들어찬 텐트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사이 임시로 만들어진 연병장에는 늦은 시간까지 훈련중인 몇몇의 노예병과 기사들의 풍경은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들에게 마치, 구경거리를 제공하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낮은 성채를 연상시키는 담장의 좁은 틈. 기사들이 경계를 쓰던 정문을 들어서는 한대의 마차가 이혁의 눈길을 끌었다.
“하르파스님이 돌아오시는 모양입니다. 요즘 백작영애와 어울리시는데 재미를 들이신 것인지, 귀가가 늦어지시는 군요.”
마법사의 말이 아니라도 마차의 황금색 문양으로 추정은 가능한 상태에서 더군다나 최근엔 영애 뿐만이 아니라, 백작의 후계인 아펠리아보다 한 살 어린 브리시까지 동행시켰기에 백작의 의도가 궁금할 수 밖에 없었던 이혁이었다.
중앙의 길을 따라 텐트 촌을 가로지르던 마차가 저택의 앞에 다다랐고 마부석에서 뛰어 내이던 용병 하나가 시종을 자처하며 마차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우아한 귀부인의 몸짓과 발걸음을 내딛던 마족이 아론을 돌아보며 무표정한 표정 그대로 입가를 가리기 위해 부채를 펼쳐 들었다.
“이렇게 하면 수컷들이 달려든다고 하던데. 주군도···”
“하르파스님! 그렇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시면 어떡해요!”
다가온 마족의 말은 어느 정도 면역이 되어있었기에 이혁도 그러려니 하는 중이었다. 뒤이은 백작영애의 놀람도 아론을 발견하며 수습되는 것 같았다.
“마기코스가의 아펠리아가 아론님을 뵙습니다.”
뭔가 정중한 영애의 인사를 받고 있으려니, 이 모든 것이 이혁 자신과 연관된 오해들로 비롯되었단 확신은 꺼림직한 감정만을 만들어 주었고.
-”저희도 원하는 것이 있으니, 여왕과의 단판 전에는 그 장단에 맞추어 주어야지 않겠습니까?”-
이혁은 마법사와의 독대에서 그의 당부가 기억났기에 경솔한 표정을 보일 수는 없었다. 그렇게 간단한 눈인사만을 건네던 순간.
“저희 아버님, 아니 백작님이 아론님께 전해드리라고 하셨어요.”
이혁은 아펠리아에게 전해 받은 양피지조각을 드려다 보았고 테두리가 은박으로 입혀진 채, 붉은 양초와 인장으로 봉인되어 있었다. 눈치 좋은 마법사가 재단용 칼날을 전해주었기에 그 자리에서 바로 뜯어보는 이혁이다.
시간이 흐른 깊은 밤, 3층 높이의 베란다에서 서늘한 밤바람을 맞으며 서있던 이혁의 시선 속에 망토를 둘러쓰고서 저택을 빠져나가는 수십의 그림자가 목격되었다.
※ ※ ※
“출발이다! 간격을 유지하라!”
하킴의 외침소리에 정렬되어있던 아론의 노예병들이 발걸음을 옮겨간다. 기사단들의 장구보단 못하지만 일반적인 병사들과 비교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은 무구들을 휴대한 몇 천의 무리가 레아강을 연결한 다리 위를 행진하기 시작한다.
“시청자 여러분 드디어 던전으로의 원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행군하는 기사단과 병사들의 레벨이 과연 몇인지도 추정되지 않을 정도의 위압감이 전해집니다.”
그 순간, 몇몇의 기마대가 낮은 언덕 위에서 병사들의 행진에 이어 모험가들의 뒤따름을 지켜보는 모습이 클로즈업 되었고 특히 백마를 탄 인물을 중점적으로 잡아가던 때 앵커의 목소리가 커져갔다.
“NPC아론의 모습입니다. 모르는 분들은 없겠지만 이번 퀘스트의 핵심 인물이자, 유저들의 지휘관이지요.”
- 작가의말
개인적인 생활속에 활력일지도 모르지만 기다리는 분들껜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Commen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