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 각자의 시선.
현재 관문에 상주하는 병력이라곤 오가는 이들을 검문하는 십여 명의 병사에 불과 하였으니, 지금이라도 몬스터들이 다리를 건널 낌새가 보인다면 방어용으로 설치된 석벽들을 무너트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팔콘 관문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절벽의 한쪽을 깎아버린 형상으로 2대의 마차가 나란히 달릴 공간이 확보되어 있는 시작점에 만들어진 작은 성체. 사각 진 성벽의 외형이 코발강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절벽을 마주보는 내부로 통로이자 입구가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성체의 상단에 연결된 쇠사슬이 반대편 절벽의 틈새. 임의로 만들어진 거대 석벽들과 연결된 상태로 비상시에는 그것들을 무너트려 진입 부를 틀어막는 용도로 사용된다.-
“성문이라곤 형식상 만들어진 나무판자가 전부라, 벽을 무너트리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유라는 경비대장의 이야기를 듣고는 있었지만 지금까지 한번도 쓴 적이 없었다고 하니 그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유라가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플레이들의 행렬을 향해 수백이 넘는 몬스터들이 몰려들었던 것이다. 지금 저들의 레벨로 재대로 오크들을 상대할 수나 있을까?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병사 수십이 붙어야 겨우 상대가 되는 것이 오크라고 알려졌기에 랭킹에 들어가는 소수의 플레이어를 제외하고선 그들의 먹이 감에 불과할 뿐인 것.
몬스터란 자체를 겪어보지 못하였기에 막상, 눈앞에 펼쳐진 진흙탕 속으로 뛰어들기를 망설이고 있었던 유라의 시선에 엘리스의 모습이 보였다. 그 찰나의 시간 지금의 고민이 우습다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다.
‘이건 게임이잖아.”
언제부터 현실의 감정을 공유하였던가? 실수와 두려움은 이곳에선 사치일 뿐. 다시 시작하면 그만인 것이다.
유라는 성체를 벗어나는 수단인, 줄 사다리를 잡고 뭔가를 말하려는 경비대장을 남겨두고서 아래로 뛰어 내려 자신을 기다리는 말. 에이라의 안장위로 올라탄다.
“패큐니아경!”
성벽 위에서 자신을 부르는 경비대장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안장에 두발을 고정시켜 말 갈퀴를 쓰다듬으며 무엇인가를 속삭이는 패큐니아는 얼마 전에서야 지금 타고 있는 암말이 자신에게 빌려준 것이 아닌 주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아론을 바라보는 눈빛을 더욱 깊어지게 하였으니.
누가 보더라도 웬만한 화살이나 칼로는 생체가 하나 만들어내기 어려워 보이는 말의 외형을 둘러싼 철갑. 회백색과 빨간 줄무늬가 가미된 여 기사의 멋들어진 갑옷. 속도에 따라 휘날리는 그녀의 녹색 망토와 황금 드래곤의 문양.
저녁 햇살에 반사되어 다리 위를 내달리는 한 폭의 그림 같은 장면은 그 한 쌍의 존재를 더욱 부각시켜 주었다.
중형 범선 정도는 충분히 오갈 수 있는 강폭을 감안하더라도 연결된 다리를 달려나가는 기마의 질주엔 거침이 없었다. 그리고 일정이상이 되자 브레이크란 의미를 상실하며 무모함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눈앞에 군집을 이루는 오크들의 틈바구니로 파고들었다.
그 순간, 철갑으로 이루어진 기마의 흉갑에 들이 받힌 삼 미터에 다다르는 몬스터들이 길을 만들듯이 진행방향을 뒤로하며 나가떨어지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애초부터 무게가 절감되는 미스릴이 함유되었다곤 하지만 무거운 철갑을 항시 휴대하고서도 이동이나 전투 중에 불편함 자체를 모르는 말 자체도 상식의 범주를 벗어난 것이었지만 아론들과 생활하던 유라로써는 그 이질감을 구분할 이성이 마비되기라도 하듯 자신의 목적성을 실행할 뿐이었다.
유라는 질주하는 말 위에서 가느다란 찌르기 위주의 레이피어를 대신하여 말 안장에 채워진 세이버를 뽑아 들었다.
다음순간, 아가리를 벌린 몬스터의 입언저리를 가로 베어버리고선 공중으로 비산되는 검붉은 액체를 지나친다. 왼손에 쥐어진 고삐를 안장머리에 고정시키던 유라는 세이버의 손잡이를 마주잡고서 마침, 말 옆구리를 들이받으려는 오크의 목 언저리로 칼끝을 찔려 넣었다.
미세하게나마 뼈가 걸리는 감각이 손 마디로 느껴지기는 하였지만 곧바로 목을 관통한 세이버를 회수하고서 앞을 가로막는 팔이라 짐작되는 검은 덩어리를 올려 쳐 날려버렸다. 그 동안 몸으로 익혔던 동작들이 세이버의 흐름에 따라 춤을 추며 몬스터를 유린한다.
※ ※ ※
엘리스가 주변을 돌아볼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숲 속에서 몰려나오던 수백의 몬스터로 인해 선두의 과반수는 괴멸한 상태와도 같았다.
또한, 무리를 이끌던 리더와도 같았던 한국의 유저 한백은 자신의 실책에도 불구하고 뒤쪽으로 빠진 상태에서 목소리만을 높이고 있었다.
“창 가진 이들은 앞으로! 오크들을 밀어내자!”
엘리스가 보기엔 어이없는 지시와도 같았다.
어느 플레이어가 접근 전에 불필요한 창 같은 무기를 휴대하겠는가? 단지, 몰려드는 몬스터를 향해 의미 없는 말만을 앞세우는 무능한 지휘관에 불과해 보였던 것. 하지만 어디에서든 불꽃을 향해 날아드는 불나방들은 존재하고 있었다.
그들에겐 게임을 즐기기엔 이보다도 더 좋은 환경은 없었을지 모를 일. 단지, 로그아웃 이후 다시 제 접속을 하더라도 이곳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핸디캡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기약 없는 소모전이 시작되었다.
오크의 형상을 한 몬스터의 피부에 무수한 생채기를 만들어 놓았지만 그것뿐이었다. 접근도 하기 전에 앞면 갑옷이 오크가 휘두른 둔기에 일그러지며 허리가 꺾이거나 팔다리가 날아가 버린다. 그렇게 붉은 핏자국이 사방으로 뿌려졌다.
그나마 위안인 것은 얼마 있지 않아 로그아웃을 알리는 초록빛깔의 연기와 함께 모든 흔적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장애물이란 방해요소가 자연스럽게 제거된다는 것과 더불어 주변의 참상들로 인해 두려움이란 감정을 느껴볼 여력자체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돌려 생각하면 몬스터가 활개칠 공간을 지속적으로 만들어주는 것과 동일하였다.
그리고 어느 시점, 어떤 하나의 믿지 못할 광경이 플레이어들의 시선을 사로잡아 버렸다.
눈앞에 존재하곤 있었지만 빼곡히 들어차버린 몬스터의 물결에 기약 없이 여겨지던 강을 이어놓은 다리. 그 위를 가르며 달려드는 기마와 망토를 휘날리는 기사의 모습을 좀더 쫓으려는 듯 모두의 고개가 돌아갔다.
저녁을 알리는 타오르는 태양의 붉은 광채가 돌출된 갑옷들에 반사되어 눈을 부시게 만들며 무모하다 싶을 정도의 기사의 돌격은 오크의 장벽을 갈라버리며 검은 분수를 만들어내었고 자신들이 있는 곳으로 거리를 좁혀오는 그 기사를 가리켜 누군가가 외치기 시작했다.
투구는 애초부터 준비해 오지 않았기에 묶어놓은 검은 머리가 간간히 유라의 눈앞을 방해했다.
‘이것이 과연 게임일까?’
또 다른 자신이 전투를 즐기고 있었다면 상념에 빠져있던 유라를 깨운 것은 그녀를 칭하고 있는 목소리 덕분인지도 몰랐다.
“패큐니아다!”
그제야 그들의 모습이 보였다.
눈을 마주치면서 떠오르는 무수한 은색의 이름들. 플레이어 또는 유저로, 이곳 NPC들은 모험가로 칭하는 우리들. 그 중 놀란 눈동자를 들어올린 엘리스의 모습도 끼어있었다.
유라가 보기에도 선두 열이 이렇게 오크와 엉켜 든 상태에서 숲 쪽 방향에서 계속해서 몬스터의 무리들이 몰려나오고 있었기에 시간을 끌어보았자 피해는 더욱 커질 것이다.
“도대체 레벨이 얼마인 거야? 저 갑옷보라고 유니크 아이템 아니야?”
“칼도 안 들어가던 놈들인데···저 검은 도대체 얼마짜리야?”
그나마 오크와 대등하게 싸우던 노력들을 무색하게 만드는 그녀의 등장에 아비규환과도 같은 전장 속에서 감탄사와 더불어 견적들을 뽑아내고 있는 유저들. 엘리스또한 그들 가운데 포함되어 있었기에 마유라의 한심스럽단 표정이 자신을 향하지나 않을까 란 우려를 날려버리듯.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엘리스! 길을 만들어 볼 테니, 이쪽으로 사람들을 모아줘.”
그녀의 요청에 고개를 끄덕인 엘리스는 창피함은 한번으로 족하단 심정으로 주변을 향해 소리를 높였다.
“패큐니아가 왔다! 그녀를 따라 길을 열자!”
처음부터 그녀의 등장을 지켜보던 이들이었기에 엘리스의 신호를 기다렸다는 듯이 의미 없던 대열들이 함성을 드높이며 그녀를 구심점 삼아 구름 때같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비좁은 길목을 나서기엔 인원의 행렬이 너무나 길었고, 그만큼 버려두어야 할 것도 많아 보였다.
에리아가 자신의 앞섬으로 다가서려던 존재를 발굽으로 걷어차 버리자,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오크가 빠져나갈 공간을 열어 주었다. 유라는 그곳으로 말을 몰았고 뒤를 이어 기마의 흉갑으로 전해지는 충격을 느꼈지만 사소한 일이라는 듯이 쥐어진 세이버로 그 방해물의 머리 부위에 바람구멍을 만들었다. 뒤를 따르던 유저들 또한 그 틈바구니 속에서 분전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현실의 방송 관계자들 역시 동일한 사항이었다.
“다시 한번 화면을 돌려보겠습니다.”
오크들에 의해 막혀버렸던 길목. 그 허리부위를 향해 반대편 다리에서부터 녹색의 망토를 휘날리며 맹렬히 달려드는 한 필의 전투 마. 저녁 햇살에 회색 빛 갑옷이 달리는 거리에 따라 황금빛 색감으로, 또는 붉은 빛깔로 변화하는 몽환적인 여 기사의 모습을 확장시켰다.
“시청자 분들이 그 동안 궁금해 맞이하던 기사 패큐니아 입니다. 그리고 잠시 후 오크 무리로 돌진하는 장면을 보실 수 있습니다.”
기마의 돌격과 충격에 나가떨어지는 오크의 모습과 동시에 패큐니아가 뽑아 든 세이버의 궤적에 따라 검은색 물감이 공중을 물들였다. 그 순간, 연소자의 관람 시 보호자의 동석을 강조하는 자막이 삽입되었다.
“그 동안 실력보다는 얼굴로 메인 NPC를 공략한 것이 아니냐는 불식이 있었던 패큐니아입니다. 하지만 이번 기회로 그런 소문들을 단번에 날려버리는 돌격이 되었군요.”
감탄사를 연발하는 해설자가 그 동안 패큐니아에 관한 언론들의 반응을 나열하는 동안, 실시간으로 전환된 화면에서 시원스럽게 오크들의 사지를 날리거나 베어버리는 그녀의 모습이 클로즈업 되어 비춰지고 있었다.
※ ※ ※
“저 정도 오크를 상대하지 못하는 걸 보면···일반시민들의 행렬인 것 같습니다.”
기사 만달라몬의 품평에 지금까지 길을 안내하던 병사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이들의 실체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었던 그로서는 작은 한숨과 함께 침묵을 지키는 것이 답이라 여겼다.
그 순간, 만달라몬에게서 조금 의외라는 듯한 목소리가 흘려 나왔다.
“ 지금 달려 나오는 기마는··· 저희 쪽 이군요. 하니발경에게 들었던 그 모험가 여인인 것 같은데, 그냥 두고 보실 겁니까?”
단필마의 돌격으로 몬스터의 틈새가 벌어지는 광경을 내려다 보던 하킴은 곧이어 무거워 보이던 입을 때었다.
“약자를 보호하는 것 또한 기사의 직분이다. 모두 검을 들어라. 그리고 저것 또한 우리 가족을 살찌우는 양식. 상품성을 생각해서라도 칼침은 깔끔하게 한번씩만 허락하겠다.!”
언제부터인가 뭔가를 할 때면 구호를 곁들이는 버릇에 맛을 들어버린 하킴이었고 만달라몬이 이건 아니란 표정을 지어 보일 찰나, 마지막 구호와 함께, 몬스터 무리가 있는 얕은 언덕아래로 말을 몰아 내달렸다.
“돌격하라!”
협소한 공간으로 인해, 전투를 벌일 기회조차 없어 보였기에 뒤따르는 기사들의 속도는 자연스럽게 늦추어 질 수 밖에 없었지만 순식간에 가도를 메우며 돌격하는 전투마들의 모습은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다면 그들 모두를 전율케 하는 장관을 이루었다.
그리고 이 모든 광경은 유저들 또는 게임방송을 시청하는 세계모든 이들에게 여과 없이, 더욱이 실시간 방송으로 제공되고 있는 상태였다.
천여기의 말발굽이 만들어내는 땅의 울림이 아비규환으로 빠져버린 싸움터에 정적을 가져왔다. 들어올렸던 검 그대로 그 진원지를 찾아 고개를 돌리는 플레이어들. 특히 몬스터들의 시선이 향한 곳에선 그 존재를 확인하기도 전, 붉은 햇살에 반사된 세이버의 칼끝을 목격해야만 했다.
쾅!~ 콰과광~!
굉음의 소음은 철갑에 충돌하여 곤죽이 되어버린 몬스터의 마지막 절규와도 같았다.
갈라버리는 수준이 아닌, 짓밟아 지나가 버린다. 마치, 파도의 물결처럼 3미터에 달하는 검은 모래성을 바닥으로 쓸어버리며 돌진하는 경주마들 처럼. 그렇게 첫 돌격으로 모든 것이 결판나 버렸다.
-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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