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3. 늪지대 유적 (마법사의 짧은 회상)
천연의 암벽으로 이루어진 검은 언덕이었다.
그 중턱에 위치한 갈라진 입구는 외부에서 보기에는 단순한 바위의 틈새에 불과하였기에 발견 당시까지만 하여도 사람들의 관심에서 제외되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악취와 습기로 가득한 늪지대, 더군다나 국경선에 있던 위험지대였기에 사람들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잠들어 있던 신전의 형태가 동식물을 연구하던 탐험가 그룹에 의해 내부의 실체가 밝혀진 것이다.
대열을 따라 완만한 경사로 이루어진 돌길에 올라서자 갈라진 암벽에 다다랐다.
맨탈리온은 풍화작용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란 느낌을 받고 있으려니 뒤따라오던 그레이스가 더 이상은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사부를 용서해 주기로 했으니 감사하게 생각하라고요.
그보다··· 이런 장소다 보니, 여기에 유적이 있다고 누가 생각이나 하겠어요.”
맨탈리온은 자신의 무엇을 용서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활기찬 그녀의 모습을 접하고는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그렇게 그레이스의 개인적인 느낌들을 한쪽 귀로 흘려 들으며 암벽의 틈새로 들어서자, 마법으로 구현된 램프의 조명들이 은은한 느낌을 감돌게 하는 노란빛들로 사방을 밝혀주고 있었기에 걸음을 떼놓던 사람들의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맨탈리온도 수다스러운 속삭임에서 눈길을 돌려 변화되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발밑을 적시고 있던 늪지대의 안개는 어느덧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고 모든 인원이 쉬어가기에도 충분한 넓은 분지와 그 둘레를 막아서고 있는 높이를 확인하기 어려운 벽들의 가림막. 눈동자는 어느 순간, 밤하늘을 밝히며 쏟아질 듯한 별들의 조각들로 채워져 버렸다.
그리고 그 원형의 우주를 감싸고 있는 여신의 조각상.
상반신만이 표현되어 있다지만 거대한 규모에 압도되어 버릴 정도란 건 이곳에 방문한 이들의 공통점이었던지 반겨주는 이들의 인사말이 없었다면 한동안 그 자리에서 굳어있어야 할 정도였다.
“단순한 조각상으로 치부하기는 어려워 보이지요.
그렇다 보니, 발견될 당시에도 아무런 거부감 없이 신전으로 불리게 되었답니다.”
한발 앞서 이곳에서 잔류하던 누군가의 환영의 말귀로 인해 그 이유를 짐작게 하는 것은 충분하고도 남았다.
도보로 이동하는 동안의 피로와 터져 나오던 불만도 무색하게 일부 학자들이 내부에 존재한다는 마법 진을 확인하기 위한 바쁜 걸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런 행동들도 유일한 진입로로 생각되는 입구에서 좌절되고 말았다.
“포플란의 조사단이 도착하지 않았으니, 하마얀 측에서는 독단적인 행동은 삼가시기 바랍니다.”
“이런 경우가 어디 있소!”
포플란 왕국에서 파견된 병사들이 학자들의 반발에 귀찮다는 듯이 품속에서 문서를 꺼내 들어 외치가 시작했다.
“배우신 분들이 왜 이러십니까? 협정서의 내용에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막달론 경! 자네 담당이니 알아서 설명하시게.”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이던 막달론의 중재로 소란스러움도 어느덧 가라앉았다.
국경지대이지만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완충 지역으로 선포되었기에 그것에 따르는 부수적인 조건도 지켜야만 했고 실질적인 내용 또한 간단하였다.
바로, 공동조사란 항목.
그렇게 시급한 사항이 뒷전으로 밀려나자, 미루어 두었던 피로와 배고픔을 느껴야만 했고 저마다 불평을 털어놓으며 휴식과 식사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주변으로 흩어졌다.
수비대의 군기가 엄하다고 하여도 몇 년 동안 전쟁이란 이슈가 없었기에 대부분이 계약형식 위주로 이루어진 부속부대인 마법 병단의 구성원들에게는 정해진 규칙만 벗어나지 않는다면 행동을 제약한다는 규제 자체가 부과되어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지금도 단장이 지정한 몇몇 인원을 제외하고는 친분이 있는 집단끼리 잡담과 잠자리를 마련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맨탈리온도 그것에 편승하여 자리를 선점할 요량으로 챙겨온 배낭에서 침낭을 꺼내어 적당한 곳에 던져놓고서, 시간이라도 때울 요량으로 주변 사물들을 개인용 메모지에 그려 넣기 시작했다.
정면을 향해 펼쳐진 두 팔의 흔적은 시간의 흐름에 사라져 버린 듯하였지만 분지를 형성하고 있는 사방의 벽면을 따라 날개의 형상이 조각되어 있었기에 마치, 깃털로 둘러싸인 내부로 들어와 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그리고 주변을 밝히는 불빛의 영향이었을까?
조각상의 눈동자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엉뚱한 느낌을 받으며 목탄으로 더러워진 손을 털어내고 침침해진 눈꺼풀을 감아본다. 한동안 여신의 조각상을 올려다보며 그렸던 것이 원인 때문인지, 뒷목에서 통증이 전해졌다.
“사부! 일어나 보세요.”
등 뒤를 기대고 있던 암벽의 영향으로 잠깐이지만 잠이 든 모양이다.
마법사는 그레이스의 목소리에 눈을 뜨자, 한심하다는 그녀의 표정과 함께 잔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저희 목적을 잊어버리시고 여기에서 잠만 자려고 온 건 아니시죠?
빨리 준비하시고 따라오세요. 다행히 그 까다로운 교수님이 허락했으니 인사는 드려야지요.”
비어져 있던 공간으로는 이전보다도 낯선 이들이 늘어나 그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눈을 붙였던 잠시의 시간 동안이지만 늑장 부리던 이들이 도착했던 모양이다.
맨탈리온은 그녀의 성화에 자세한 이유도 모른 채, 필요한 도구가 들어있던 휴대용 배낭만을 짊어지고 그 뒤를 따르며 추가적인 설명을 들어야만 했다.
“사부가 한가롭게 개으름 피우시던 동안···”
안면과 인맥을 동원해서 내부로 들어서는 조사단과 동행을 하기로 했고 보호자란 자격으로 자신이 끼워졌다는 고생담을 듣고 있으려니 귀에 익은 목소리가 눈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맨탈리온! 아직도 이런 곳에 처박혀 있었던 거냐?”
백발의 노신사는 자신의 얼굴을 보자 말자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고 왕국아카데미에서도 알아주는 마법 학부의 제논 교수였기에 일방적인 시간의 흐름을 막을 수가 없었다.
한동안 맨탈리온의 귓가에 전해지는 정신적 고통은 다행스럽게도 구원의 인물이 나타나면서 소강상태로 변하였다.
날카로운 눈매가 인상 깊이 다가왔고 나잇대를 짐작하고 있으려니, 마땅찮다는 듯한 표정의 제논 교수에게 과분할 정도라 느낄 정도의 정중한 인사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선 맨탈리온을 돌아보고는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여기서 만나는군. 반갑네.”
다소나마 당황하였지만, 그가 내미는 손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기에 마주 잡고 통성명을 하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맨탈리온이라고 합니다.”
그제야 마주 잡은 손을 놓고는 실수했다는 듯한 답변이 돌아왔다.
“너무 반가워 실례를 저질렀네. 가닉스라고 한다네.
그동안 대륙의 유적들을 조사한다는 거창한 계획으로 놀고먹는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학장님의 추천으로 이번에 교수직을 맡았지만 의도치 않게도 자네에 관한 소문은 많이 들었지.
아카데미의 고리타분한 영감들 같은 취급은 하지 말고 편하게 대해주었으면 한다네.”
맨탈리온이 썼다는 책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보이더니 다음을 기약하며 사라졌다.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제논 교수의 불평.
“계산적인 녀석이니 멀리하는 게 좋을 거야. 얼마 되지도 않은 녀석이 위세를 얼마나 떠는지 모른단 말이지.
그나저나 저 녀석들은 늦게 왔으면 빨리들 준비할 것이지 왜 저렇게··· 흠. 흠. 아무튼, 너는 나중에 따로 보자꾸나.”
잠시지만 겸연쩍은 표정을 지어 보이던 제논 교수가 자신의 뒤편에 자리하던 그레이스에게 눈길을 보내고선 헛기침과 함께 짐을 챙기고 있던 조교들에게 다가가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제논 교수의 저런 모습에 보지 못한 몇 년 동안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함께 아카데미를 빠져나온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사부. 가닉스 교수는 조심하는 게 좋을 거예요. 학문보다는 다른 곳에 뜻을 두고 계시는 것 같으니 말이에요.
그보다 저희도 움직여야 할 것 같아요.”
인간관계에서 너무 편향적으로 생각하면 좋을 것이 없었기에 맨탈리온은 그녀에게 충고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자신 또한 정작, 타인의 내심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도 없었으니··· 누군가를 가르칠 입장은 아니었기에 나오려던 말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알려진 바로는 수식으로 채워진 마법 진 형상의 도형 이외에는 비어있다시피 한다는 유적의 내부.
그런 사정으로 조사단을 호위해야 할 필요성은 없었지만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라도 수비대의 일부가 동행하고 있었다.
뒤늦게 합류한 포플란왕국의 학자들이 자신을 뒤따르는 그레이스를 조심스럽게 돌아보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려니 맨탈리온도 새삼스러웠지만, 그녀의 미모를 다시 한번 평가하는 계기를 가졌음에 부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동안 암석을 절단한듯한 단면의 이질감을 느끼며 걸음을 옮기기를 잠시. 의문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신전이 위치한 곳은 아무리 크게 봐준다고 해도 작은 바위 언덕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인원들이 대기하던 분지 내부를 제외하고 입구를 들어서고 한참이 지나고 있었던 것. 더 이상의 공간이 없어야 한다는 상식을 무시라도 하듯이 직선으로만 이동한 지 반 시간 가까이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문 가득한 현상을 맨탈리온만이 가지고 있지는 않았던지 얼마 후, 조용하던 통로 가득 웅성거림이 채워졌기에 책임자로 보이는 교수의 목소리가 통로를 울리고 나서야 지금까지의 경험들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자신들의 벌어진 입들을 다물지 못하게 되었다.
“처음 방문하는 자네들에겐 놀라지 않을 수 없겠지만··· 눈치 있는 이들이라면 이곳에 도착하던 길에 보았을 것이네.
단순한 유적에 불과한 곳에 상주하고 있던 불필요한 병력을 말이지.”
맨탈리온도 바위 언덕 사이로 보이던 경비병의 수효를 접하고는 의아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통로를 따라 마법으로 발현되는 등불과 램프들이 번갈아 설치되어 있었기에 그림자들의 발걸음을 지켜보며 교수의 다음 말에 귀를 기울였다.
“바로 자네들이 걸어가고 있는 이 공간 때문이라네.
현재까지도 그 매개체가 되는 진법이나 장치를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공간 확장의 마법으로 판단하고 있을 뿐이니···
뭐, 조금만 더 가면 목적지에 도달하니 벌어진 입들은 단속하도록 하시게.”
그런 예고의 의미를 얼마 있지 않아 마주할 수 있었고 모두 각자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통로가 끝나자, 광장과 같은 거대 동공이 나타났다.
한동안의 감흥도 동공의 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마법 진의 문양들에 자연스럽게 눈길을 기울였고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은은한 짙은 녹색의 빛깔들. 입 밖으로 표현할 단어들을 잊어버렸단 것이 사실일 것이다.
잠을 잊어버린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의 한편.
그 모습을 지켜보는 한 쌍의 남녀가 벽면에 몸을 기대고 앉은 채,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지적하거나 신경 쓰는 자들은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힘들게 들어왔더니··· 이렇게 손 놓고 있어도 되는 걸까요?”
늪지대에서 발생하는 지열이 원인이었던지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로 인해 잠자리를 마련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급기야, 챙겨왔던 모포를 깔아두지 않았다면 앉아있던 부분이 자신도 모르게 익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고 있으려니 그레이스의 재촉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사부. 듣고 있는 거예요?”
“후배님. 복사본이라고 하지만, 이곳에 있는 수식들이야 오래전부터 보아온 것이지 않은가?
더군다나 배움이 부족한 안목으로는 저분들의 방해만 될 뿐이지. 지금은 눈요기에 만족하고 내일을 위해 잠이나 자두는 것이 합리적인 행동이라네.”
어쩐 이유인지 반박하는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기에 옆을 돌아보려는 순간, 맨탈리온의 한쪽 어깨로 머리를 기대어 오는 그레이스였고 얼마 있지 않아 작은 속삭임을 남기며 잠이 들어버리는 것이다.
“제단에 만들어진 소녀상은 지금의 우리와 같은 입장인 모양이에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걸 보면 말이죠···”
‘소녀상?’
마법진의 중심부에는 사람 키 높이의 원형의 제단과 그 위로 용도를 알 수 없는 바위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었다.
예술가들이 바위나 나무의 원목 속에서 영감을 얻는다지만 이 소녀에게도 그런 것이 보이는 것이겠느냔 상상을 해 보려다가 헛웃음이 나왔다.
남아있는 모포를 잠들어 버린 그녀에게 덮어주고는 한동안 자신이 생각하던 수식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있으려니 무거워진 눈꺼풀이 감겨왔다.
그렇게 앉아있는 상태 그대로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무릎에서 전해오는 아픔에 고통을 호소하려다가 그레이스의 자는 얼굴을 내려다보고는 포기해 버렸다.
“어린 공주님의 기사께서 일어나셨구려. 한잔 마시게, 정신 차리기엔 따뜻한 차 만한 것이 없지.”
가닉스 교수가 검은 액체가 든 잔을 내밀고 있었다.
사양할 필요가 없었던 맨탈리온이 감사한 마음을 표정 가득 드러내고는 그것을 받아 들고서 한 모금 들이켰고 그때야 비어버린 주변 풍경이 눈 안에 들어왔다.
수많은 사람이 돌아다니고 있어야 하는 동공의 모습이, 지금에서는 적막감이 흐를 정도로 한산해져 있었다.
그나마 교수들의 조교로 보이는 몇몇이 마법 진이 뿜어내는 빛의 변화를 시간 단위로 기록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뿐. 맨탈리온의 그런 눈길을 지켜보던 가닉스는 비어있는 옆자리를 차지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노인네들 수발들기가 이렇기 힘들 줄이야. 자네처럼 병단에나 들어가야겠다는 생각할 정도니 말이야.”
왜 그렇지 않겠는가.
맨탈리온이 생각하기에도 이렇게 전쟁이 없는 시기에 군부대에 속한 마법사들이 하는 일들은 정해져 있었고 그 이외의 대부분의 시간은 개인적인 자율이 보장되어있었다.
외부에서 보기에도 개인적 시간과 생계가 보장된 꿈의 직장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알만한 사람들은 그것이 마법사를 대규모로 보유하려는 정책의 일환이란 걸 알 것이고 계약직이지만 탈퇴하는 조건도 까다로웠다.
한동안 의미 없는 잡담을 늘어놓던 가닉스는 늦은 잠이라도 청한다며 몸을 일으켜 동공 밖으로 사라졌고 그때까지 맨탈리온은 참고 있던 인내의 한계를 느끼며 그녀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려 바닥으로 내려놓았다.
그렇게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몸을 뒤척이고 있으려니 옆자리의 어린 여인은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작은 숨소리만을 만들어 낼 뿐이었다.
맨탈리온은 굳어있던 몸을 풀고서 동공을 돌아보았다.
몇몇 기록하던 이들의 모습도 지금은 보이지 않았기에 마법진의 은은한 불빛을 따라가면서 그동안의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차원간 이동 마법 진과도 유사점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애초부터 마법의 근원이라고 하던 드래곤들이 이런 형상을 구조물에 새겨 넣었던 이유가 있을까?”
의문이 꼬리표를 달고 떨쳐낼 수가 없었다.
“사부.... 뭘 그렇게 고민이에요? 뭔가 알아낸 거라도 있으세요?”
헝클어진 금발을 손으로 정리하려는 것 같았지만, 얼굴에 드러난 자국들이 제 모습을 찾으려면 당장에는 힘들어 보기에 맨탈리론은 그때까지 들고 있었던 잔을 생각 없이 그녀에게 내밀어 본다.
반갑다는 듯이 남아있던 액체를 단숨에 들이키는 그레이스를 돌아보며 마법사는 복잡하던 머리를 정리할 겸 자기 생각을 들려주었더니 한동안, 고민에 휩싸였던 작은 입이 말문을 열었다.
“사부의 말은 정리하면, 마법의 근원이라고도 하는 그 존재들이 어느 날 갑자기 서클이라도 다운되었다는 이야기잖아요.
지금까지 발견되었던 마법진의 구조물들이 그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라니···
뭐, 그렇다고 해요. 그럼, 여기에 있는 마법진의 용도는 어떤 것 같으세요?”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그녀였지만 맨탈리온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않고 있었다. 어차피 물증 없는 개인적인 견해였고 대화의 상대방도 부담이 없었기에.
“지금 활성화된 부분들이 마나를 끌어들이고 있다는 건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니.
더군다나 차원 마법진의 변형된 형태이기는 하지만 유사한 수식들을 고려하더라도···
이전에 이야기의 반복이 되겠지만 특정한 사념을 전이시켜 생성시켜주는 것이 아닌가란 추정을 내려놓고 있을 뿐이지만. 물론, 개인적인 의견이란 건 참조해야 할거네.”
『”재미난 놈이구나.”』
“아무리 그래도 예전, 사부의 이론과 끼워 맞추기로 추정하시면 무리가··· 사부?”
머릿속에서 울리던 여인의 음성이 너무나 또렷하였기에 그레이스의 물음을 듣고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맨탈리온의 이마에 열이라도 확인하려는 듯이 자신의 얼굴을 만지는 그녀의 말을 듣고는 그것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빈속에 머리를 굴리고 있으려니 멍해지는 거라고요. 나가서 요기라도 하고 와요.”
그녀의 말처럼 자리를 정리하고서 출구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렇다 보니, 중앙에 위치한 원형의 제단을 지나게 되었고 그곳에 자리한 바위를 올려다보던 그레이스가 걸음을 멈추려는 것을 예상하지는 못하였다.
“사부. 잠시 기다려보세요. 아무리 조각상이라도 먼지는 털어주는 것이 예의라고요.”
배낭에서 헝겊을 꺼내 든 여인의 성화에 상단에 놓여있는 바위를 닦고 있을 황당한 모습의 그녀를 상상하며 재단 귀퉁이에 등을 기대고 있으려니 한동안 말 없던 그레이스의 떨리는 음성이 들려왔다.
“사부··· 원래 동상에 색채가 들어가 있던가요? 이건 금발인데···.”
갑작스럽게 위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지려는 그녀를 받을 수 있었다. 아래에 깔리는 자세가 되었지만, 그것에는 신경 쓰지도 않겠다는 듯한 그녀의 음성에 눈을 들 수밖에 없었다.
“저, 저기··· 보세요.”
그곳에는 이전에 존재하던 바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녀가 말했던 소녀의 동상만이 황금색의 눈을 뜨고서 그레이스를 내려다보며 말문을 열었다.
『”이곳에 혈족들의 피조물을 보게 될지는 몰랐구나. 의미 없는 경고라 할지라도 전해줄 이유는 충분하단 것인가?”』
머릿속으로 울리던 음성이 중단되던 순간이었다.
주변에서 소용돌이치는 마나의 물결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덧 동상의 눈동자에서 발하던 황금색 광원이 소녀상의 전신을 감싸 안았고 눈부시도록 밝은 그 빛무리에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출구에서 사람들이 모여드는 소란스러움을 들을 수 있었고 맨탈리온이 어렵게 뒤를 돌아보았을 때는 대부분 수비대와 탐사대가 그곳에 들어선 것 같았다.
그레이스에게 한쪽 팔을 잡혀버렸기에 아픔이 느껴질 즈음. 황금빛 무리도 허공으로 퍼져나가며 그 자취를 감추었고 동공의 자리엔 발아래까지 금발을 내려뜨린 어린 소녀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변을 감싸고 있던 마력의 위압감이 검을 뽑아 든 이백에 가까운 병사들의 손끝에서 떨림을 만들어 놓았고 그 전염성은 모두의 가슴속에 두려움을 증가시켰다.
그리고 소녀의 눈앞에 놓여있는 맨탈리온들을 제외하고 모든 마법사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였다. 동공을 들어선 순간부터 맥을 추지 못하고 있었기에 상황을 지켜볼 뿐.
그 순간, 소녀의 작은 입이 열리기 시작했고 마치 증폭 마법의 효과처럼 동공 전체에 울려 퍼졌다.
“거짓된 이방인의 속삭임이 너희 인간들의 마지막을 연장해줄 생명 줄이 될지. 신기루와 같은 가치 없는 말귀로 사라져 버릴지는··· 순간을 살아가는 너희들의 숙명인지고 모르겠구나.”
- 작가의말
언제나 고민하는 부분은 오타보다도 엉성한 문맥이랄까...
다음편으로 회상부분은 접을 예정이며 뒷부분을 아론의 상황으로 넘어갈지 열심히 뭔가를 하고 있는 하킴에게로 넘길지를 생각중입니다.(순서의 차이겠지만...)
시간이 없다는 핑게로 간간히 올려놓지만 하루바삐 리뷰가 정상화 되도록 노력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미리보시는 분들께는 추천할만한 내용은 아니기에 당초 의도(잠수시 총알계념)를 떠나서 죄송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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