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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족 하르파스의 던전입니다

족보없는 이세계 군주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간달푸
작품등록일 :
2016.10.25 15:30
최근연재일 :
2020.11.15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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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19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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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027. 지하로 (생존자들)

DUMMY

석궁을 소지한 여인들의 무리가 올라간 건물 입구에 일부의 병사들이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있었고 골목의 맞은편으로 사다리를 설치하여 퇴로를 확보하는 모습들을 지켜보며 출발 준비를 서둘렀다.


“저의 동행을 허락해 주세요.”


엘프슈란의 요청이 없었어도 길을 안내할 역할이 필요했기에 승낙의 뜻으로 걸음을 옮겼고 회색엘프 하나가 포함된 32명의 인원들이 골목길 사이를 누비며 빠른 걸음과 뛰기를 반복하였지만 무너진 담장과 넝쿨들의 군락이 앞을 막아서고 있었기에 생각보다 시간의 소모가 늘어나고 있었다.


무너진 잔해 속에서 자라나버린 나무들의 군락을 타넘기 위해서 줄기들을 잡아가며 위쪽으로 올라선 이혁은 몬스터들이 몰려있는 장소로 날아가는 수백의 볼트의 비들을 비켜보면서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감흥을 받아야만 했다.


화살촉의 미스릴이 햇살에 반사되어 빛의 줄기들을 만들어 내고 있었고 수많은 괴성들이 대지를 물들이는 것 같았다. 이어서 쓰러지지 않고 고슴도치로 변해버린 몬스터들을 선두로 하여 볼트가 날아왔던 방향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 영향으로 회색지붕을 둘러싸고 있던 인형들의 장벽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이혁이 있는 거리에서도 수십에 이르는 석벽을 받치고 있는 기둥들 사이로 지하로 뚫어져있는 터널의 형상을 확인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주군, 저긴가 봅니다.”


한슨의 말에 벌써부터 보고 있었다는 대답을 삼키고는 그곳으로 달려갈 시기를 점치고 있었다. 얼마 있지 않아 서로의 시선을 교환하고는 골목을 벗어나 비어버린 공터로 뛰어들었다.


건물들이 몰려있는 지역에 이렇게 넓은 대지가 있다는 것도 조금 의외였지만 주변으로 쌓여있는 뼈의 동산을 지나치며 달리는 와중에도 허리에 차고 있던 소드를 뽑아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도착한 회색건물의 기둥들 속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자신들을 기다리는 것은 몬스터가 아닌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수십의 인간형상의 존재들이었고 그들의 확장된 동공을 보고서도 놀란 표정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마법사다!”


고함을 지른 하니발이 복면인중 누군가가 영창을 하려는 동작을 취하자, 일찍부터 날려버린 소드의 검의 날이, 손을 들어올렸던 인형의 가슴을 꿰뚫은 상태에서 뒤편에 세워져 있는 기둥에 틀어박혀 버렸다.


이어서 동행에 포함되지 않았던 맨탈리온이 정면에서 솟아오르더니 주변으로 여러 개의 화염덩어리를 생성하여 복면인 들을 향해 손 짓을 하였고 그가 가리킨 방향을 따라 수십의 화염구들이 아름다운 불의 꼬리를 만들어 놓으며 쏘아져 달아나던 이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인형들이 사방에서 불꽃으로 비산되는 광경을 목격해야만 했다.


일부는 화염에 휩싸이고도 마치, 좀비를 연상시키는 움직임을 보이다가 불길에 연소되어 형상들이 무너져 내렸고 결국에는 잿가루로 변해버렸다.


기둥에 박혀져 있는 검을 회수하려는 하니발이 유일하게 남겨져 있는 인형에게 다가가 머리에 쉬워진 복면을 벗겨내었지만 이전부터 있어왔던 화상으로 얼굴의 형상을 알아보기는 어려웠다.


그 순간 땅울림을 듣고서야 주변의 상황을 돌아볼 수 있었다.


이혁들에게 방향을 돌려 몰려드는 몬스터들의 무리와 그것들 사이로 간간이 모습을 비치는 검은 망토의 복면인 들에게 마법사가 생성했다가 소비하지 못했던 화염구들을 재미가 들린 것처럼 날려대고 있었다.


결과적으론 그 소란으로 인해 지하로 연결되는 통로까지 몰려 버렸고 몇몇 기사들의 숨가쁜 소리가 들려올 정도였다.


“그러길래 끼니때는 거르지 말라고 했잖아!”


발거스의 잔소리에 말이 없어진 배고픈 몇몇의 기사들이었다.


이혁은 오해한 자신에게 한숨을 쉬고는 몇 번을 베어낸 지 모를 소드의 날에 검은 핏물들이 흘러 넘치는 광경을 바라보며 손으로 전해지는 감각이 무의미해질 정도로 동작을 반복하였다.


오크 보다도 머리 하나가 더 큰 트롤의 목 언저리에 그 소드를 박아 넣었지만 다음 행동을 할 수가 없었다. 뿜어지던 검은 핏줄기가 거품으로 부풀어 오르더니 박혀있던 검 자체를 굳혀 버렸던 것이다.


힘이 빠졌던 것인지 그것을 뽑아낼 생각도 하지 못하였고 평소에 쓰지 않던 제라늄이란 이름의 바스터드 소드가 자신의 허리에 얌전하게 매달려 있는 상태라는 것을 떠올리며 마냥 그 벌어진 트롤의 이빨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찰나의 시간, 그 벌어진 입의 형태와 함께 윗부분이 사라져 있었다.


어느 이름 모를 기사의 솜씨였기에 얼굴만이라도 기억해 두었다.


하지만 의식하지 못하고 오러가 입혀진 검을 휘두른 그 기사는 자신의 먹이 감을 가로채어갔다는 듯한 주군의 책망하는 눈빛으로 오해를 하고는 반성하는 의미에서 더 이상의 오러를 사용하지 못하고, 위험을 즐기며 수련에 여념이 없는 자신의 주군을 따라 검술훈련에 돌입을 시작하였다.


슈란도 후방에서 석궁을 연달아 날리고 있었지만 아론을 중심으로 기사들의 전체적인 템포가 느려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일부에서 오러를 사용하는 것을 목격하였을 때만 하여도 지금의 상황이 빠르게 끝날 것으로 예상했지만 어느 순간 부터 검술과 체력을 소모하면서 여유를 부리는 모습에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힘이 있지만 꾸준히 수련하는 모습에서 저런 소드마스터들의 무리들이 탄생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몬스터들의 이빨이 눈앞에 올 때까지도 오로지 정직한 검으로 승부하는 아론을 새삼스러운 눈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이혁은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 던져졌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였다. 마지막 순간에는 조금 전과 같이 주위의 기사들의 도움의 손길이 존재한다는 믿음은 주군의 수련을 방해하면 안 된다는 기사들의 의식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게 하였다. 더불어 이혁을 따라 오러의 사용을 자재 하려는 노력들로 인해 몬스터와의 싸움이 아닌 체력단련이란 목표로 변질되어 버린 현장이었다.


이혁은 다행히 지하 통로의 안쪽은 안전해 보였기에 모두들 내부로 불러 들이고는 좁은 입구를 중심으로 반복적인 교대동작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이런 방식이면 레벨이 올라가는 것이 눈으로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게임타령을 하고 있다는 걸 떠나, 레벨 상승에 따라 회복효과가 없으니 지치기만 하는 현실이 게임이 아닌 살아있는 자신을 피부로 느끼게 해주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맨탈리온은 좀더 높은 단계의 마법을 연사 하려고 하였지만 석벽의 천장을 지지하는 수십 개의 기둥들에서 발생되는 작은 균열들을 간과할 수 없었던 상태였기에 충격이적은 화염 구를 수 차례 날려주며 챙겨둔 포션들을 들이키고 있었다.


이혁은 폭주하듯이 한번에 수십의 불의 공들을 던져대며 사기성 아이템을 퍼 마시는 마법사에게 눈길이 갔고 그로 인해 통로의 입구부분이 몬스터의 사체들로 막혀버리는 건 아닌지 염려가 될 정도였다.


그리고 거대한 지붕만큼 넓은 내부였지만 그 곳에 빼곡히 들어차, 끝자락이 보이지 않는 몬스터의 울부짖음에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질려버렸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이혁은 별 뜻 없이 마법사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맨탈리온, 단번에 쓸어버릴 수 있는 걸로 한번 해봐.”


마법사는 잠깐 동안 고민하던 표정을 지워버리더니, 평소에도 주문을 외우지 않던 입을 움직이고 있으려니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머리위로 붉은 구체가 생성되었고 그 크기를 키워가더니 풍선이 터져나가듯 한 순간 주변으로 폭사되었다.


이혁들이 있던 통로 내부를 제외하고 건물 일대에 화염의 줄기들이 뻗어 나가더니 주변의 모든 존재들을 녹여 버리기 시작했다. 이혁을 비롯한 기사들의 놀람이 있기도 전에 석벽으로 이루어진 천장에서 균열이 시작되었고 눈을 돌렸을 때에는 이미, 무너져 내리는 수순을 지켜보는 방법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무너진다! 뛰어!”


누구의 함성인지는 몰랐지만 모두들 통로의 안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하였다.


“콰르르~~~쾅!”


얼마간의 폭음과 진동이 지나가고 나서야, 먼지를 뒤덮고 있는 모두의 안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소간의 찰과상 이외에는 큰 부상들도 없었기에 밝혀진 램프로 주변을 확인하자, 눈앞에 막혀버린 통로를 볼 수 있었다. 난감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유일한 통로인 검은 어둠을 바라보며 우선은 휴식을 취할 필요성을 느끼던 이혁이었다.


자잘한 상처를 치료하고 간단하게나마 육포로 허기를 달래었다.


이혁은 램프의 불빛에 들어온 이들의 모습을 살펴보고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엘프 슈란을 제외하고는 어느 하나 불안감이란 표정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아마도 기사들에겐 이런 일들도 예전의 단순한 일상생활에 불과하였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기에 지금의 현실이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일지도, 그 이유로 말미암아 자신만이 도태된다는 감정의 떨림이 심장의 고동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살아가는 수단의 하나로 연극의 배우가 되고 있는 자신의 모습과 거기에 걸 맞는 가면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긴장감으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맴돌았다.


‘나는 누구였지?’


정체성의 혼란도 잠시였다. 하니발의 출발을 알리는 구호가 이어지는 와중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짙은 어둠만이 존재하는 유일한 통로를 향해 발길을 옮길 뿐이었다.


몇 명의 기사들이 경계를 위해 앞으로 나아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가라앉은 기운들이 통로를 채워가고 있었지만 주변의 기사들은 느끼지 못하는 듯 간간히 잡담들이 들려왔기에 이혁은 그 상태에서 두려움에 긴장했던 얼굴을 드러낼 수가 없었기에 의무적으로 걸음을 때어놓는 것 밖에는 당장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보였다.


어느 순간부터 임의적으로 파여진 터널이 끝이 나자, 자연석의 암반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고드름과 같은 종유석의 무리들이 물방울의 파문을 만들어 내었고 그 작은 울림들의 합주가 메아리 치며 돌아왔기에 그것들이 귀에 익어갈 무렵에는 뱃속에서 울려오는 고동소리의 협연도 시작되었다.


하지만 통로를 들어서면서 시간의 흐름도 알 수 없게 되어 성급하게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하는 이들이 없었지만 마법사의 존재는 그런 고민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어 주었다.


“벌써 이렇게 지나버렸군요. 신체도 시간에 맞추어진 습관에 익숙해져 있기에 여기서 식사와 함께 하룻밤을 기약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걸음을 멈춘 이혁을 시작으로 기사들이 분주하게 잠자리와 경계순서를 정하고는 끼니를 때울 음식들을 풀어놓았다.


모포에 엉덩이를 붙이던 이혁에게 맨탈리온이 잔을 가지고 다가와 건네주면서 이야기 상대를 해주려는 것 같았다.


“확실이 지하로 내려갈수록 짙은 기운들이 느껴지기 시작하기는 하지만,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이혁도 긍정하는 표정으로 잔에다가 입을 가져갔지만 얼마 있지 않아 마법사의 이어지는 말을 들으며 이해하지 못하는 의미들을 되새길 수 밖에 없었다.


“이곳에서 처음 주군을 접하고 한동안이지만 불안한 마음이 든 것이 사실입니다.”


‘이 마법사가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걸까?’


이혁이 잔을 내려놓고 귀를 기울이자 마법사는 조금 망설이는 듯이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당초 이방인들이 왔다는 차원이 주군의 고향이란 것을 저와 나타샤님 이외에는 모르고 있다는 걸 아실 겁니다.”


이혁은 이렇게까지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을지는 모르고 있었다. 물론, 마법사야 평소에도 해박하였기에 그럴 수도 있다고 하지만 나타샤의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고 설마 하는 마음에 주변을 돌아보았다.


“외부인도 있기에 소리는 새어나가지 않게 해 두었습니다. 물론, 하니발 경이야 제가 주군과 종종 중요한 이야기를 하곤 했다는 걸 알고 있으니 다른 생각들은 없을 겁니다. 그보단 이곳으로 넘어오면서 주군이 돌아가기가 요원한 것을 알고는 있지만 저희가 있다는 걸 잊지 마시라는 것이지요.”


말없는 아론을 바라보던 맨탈리온은 그를 처음 만나던 날을 잊을 수가 없었다. 같은 이방인에게 속아서 가지고 있던 것을 속옷도 남겨지지 않은 체, 나무에 묶여있던 모습을 말이다. 그 장면을 떠올리자 한동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맨탈리온?”


아론의 물음에 헛기침을 하면서 어떤 말을 들려주어야 이곳에 온 시점부터 방관자의 입장을 고수하는 주군의 빗장을 벗겨줄 수 있을까 고민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시간의 봉인, 이방인들의 눈을 속이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노화의 흐름까지 동결시킨 반면 습득효과의 향상을 가져온다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그녀 아드리안만의 술수였다. 그 결과로, 아무리 이곳에 마나가 풍부하다고 하지만 일반 병사들까지 오러를 다룰 수 있는 경지가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봉인이 풀어진 상태에서 서로의 개성들이 드러나게 되었기에 아론의 행동이 조심스러워 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지만 도와줄 방법이 마땅치가 않았던 것이다. 모든 진실이 때로는 독이 될 수도 있었기에 그 중화작용을 위해서도 순서가 필요한 법이었다. 그렇게 고민하던 말들을 찾을 수가 있었다.


“주군을 만난 것이 10년이 넘어가고 있답니다. 우선은 제가 나타샤님을 포함해 주군의 사람임에 믿음을 가지셔야 한다는 것이지만 그 외 이들에게는 주군이 이방인이었단 사실을 포함해 개인적인 것들은 함구해야만 혹시나 있을 위험도 예방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까지 저희의 구심점이 흔들린다면 아무리 능력이 넘쳐난다고 해도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마는 것은 한 순간이지요.”


맨탈이온은 지난날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그날 이후로는 모순되지만 두 명의 주군을 섬기기로 하였던 것이다.


“앞으로도 주군이 돌아 갈수 있는 방법을 우선순위에 둘 것입니다. 그러니 이 세계에서 모험을 즐기는 마음으로 생활해 보심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는 주위의 눈빛들에 주름을 만들더니 입을 열었다.


“이렇게 비밀스럽게 말을 나누다가는 주변의 눈치에 이 늙은이가 죽을 것 같습니다.”


이혁이 보기에는 이들의 기억의 대부분이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일 지도 몰랐다. 군주란 특성으로 필요에 의해서 묶여진 관계였지만, 따지고 보면 저 레벨부터 성장 시켜온 것도 사실이니 저렇게 맹신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말들을 들어도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자신을 신뢰하고 지켜보는 눈들이 많을 수록 항상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만이 굳어갈 뿐이다.


이혁은 다소 복잡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었지만 마법사는 웃음 띤 표정으로 허공에 손을 휘저어 마법을 해제하더니 다소 큰 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지하에 있다는 존재를 해결하고 나서는 주인도 없는 이곳을 본거지로 삼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보니 슈란양께 문의해 본다는 게 늦었습니다.”


그때까지 생각에 빠져있던 이혁은 다소 놀란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지만, 그것을 오해한 슈란이 다가와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희 회색엘프족 또한 장소를 빌리고 있었을 뿐이지 인간들처럼 소유욕을 주장하지는 않아요. 다만, 머무르는 장소를 침범 당하면 그에 따른 대가를 받아낼 뿐이지요.”


“그렇다면 저희가 이곳에 터전을 만들어도 상관없다는 말이군요.”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하니발의 음성을 들으며 엘프의 모호한 메아리가 마지막을 이어주었다.


“저희들도 자연의 법칙을 따를 뿐이기에 생명을 이어간다면 은인의 뜻에 길이 될 것이에요.”


잠이 든 것도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눈을 감은 상태에서 동굴의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 방울 소리의 숫자를 가늠해 보았다.

그렇게 걱정들을 떨쳐내기 위해 시작한 숫자 놀음이 한층 더 머리를 맑게 해 주는 듯 하였고 잠이 들기 전, 나누었던 대화들을 돌이켜 보았다.


‘이들은 점점 더 많은 생각과 고민을 반복하겠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알고 있는 지식 만큼 행동하고 판단할 뿐이니, 이후로는 어떻게 돌변할지 모를 일이지 않을까?’


그때였다. 일찍부터 잠에서 깨어난 기사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려온 것이.


“이곳에도 마족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리오, 그게 무슨 소리야?”


리오란 기사는 이혁도 알고 있었다. 들어오던 입구에서 몬스터에게 먹힐뻔한 자신을 구해주었던 기사였기에 얼굴과 함께 이름을 이억 해 두었던 것이다. 한숨을 내쉬던 그의 대답이 이어졌다.


“마족 이야기가 나왔을 때, 선배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이번 기회에 주군 옆에서 도움이라도 드리면 앞으로 후배녀석들에게 자랑할 꺼리는 있지 않겠냐.”


“나도 같은 생각이지만 주군이 마무리하기 전에 검 집에 있는 소드라도 뽑아봤으면 좋겠다.”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않을까?”


리오의 의문 섞인 대답에 궁금증을 느낀 상대편 기사가, 은연중에 독촉을 하자 속삭이는 말이 이어졌다.


“이곳으로 넘어와서부터 하니발경들이나 일반 병들에게까지 기회를 많이 주시잖아. 아마 조만간 승급이 있지 않을까 예상하는 눈치들이라 서열10위권도 노려보는 선배들이 많다는 걸 너도 알 거야, 그렇게 되면 우리 같은 하위레벨도 조금이라도 올라가는 기회가 되지 않겠냔 말이지.”


그 말을 경청하던 이혁은 저렇게 등급을 나누고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듣게 된 것에 대한 놀람보단, 그 10위권에 들어있을 기사들의 이름자체도 모른다는 현실에 기가 막혀왔다.


아무튼,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번 선타가 자신의 몫으로 남겨졌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밖에 없었다. 저 막혀버린 통로에 대한 걱정을 자신만이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란 의문을 안고 멀어지는 기사들의 걸음걸이를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나 둘 기지개를 펴면서 일어나던 기사들이 이혁을 돌아보며 간단한 군례를 이어갔다.


모두들 부족한 잠이었지만 기분 좋은 일들이라도 있는 이들처럼 순식간에 주변을 정리하고는 간단한 육포를 입안에 넣고 길을 나서길 서둘렀다.


이혁은 모르고 있었지만,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기사들이 마지막 보초들의 대화들을 듣고 있었던 것이었다. 단지, 하니발이 리오들을 불러서 주의를 주는 것은 잊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동한지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자연적인 동굴이 끝이 나고 또다시 임의적으로 파여진 여러 갈래의 터널들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내부를 지키던 저희 엘프들이 무너트렸던 것 같아요. 원래는 출입하는 문들이 있어야 하지만···”


아무런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뚫어놓은 터널이었다. 입구에 쌓여있던 흙더미가 여기에서 퍼 나른 것이란 걸 인지하며 그 노력에 찬사를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기차가 다닐만한 터널을 지나며 몬스터들은 왜 밖에만 몰려있었는지에 관한 고찰을 하였지만 이어지는 걸음들에서 감탄성이 터지는 순간 모든 생각들이 날아가 버렸다.


램프의 불빛을 아무리 밝혀보아도 끝이 없을 것 같은 어둠을, 마법사가 빛의 구체를 만들어 내고 나서야 그 압도적인 전경이 모습을 드러내었던 것이다.


신전의 중앙 홀보다도 그 거대함을 비교하지 못할 정도의 넓게 펼쳐진 공간은 수십,수백에 이르는 내부의 암벽을 그대로 깎아 만들었다는 착각을 주기에 충분한 기둥들이 거인들의 집을 만들어주고 있는 것 같았다.


맨탈리온이 한층 더 빛을 확장시켰지만 가려진 어둠을 몰아내기란 너무나 부족해 보였다.


분위기에 심취되어 방향을 정하지 않고 한참을 걸어가고 있으려니 바닥에 펼쳐져 있는 풍경들이 눈 안에 들어왔다.


끝을 알 수 없는 잔해들은 그 형태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검게 그을린 체 녹아내려 있었고 구토가 나올 정도의 진한 피 내음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인기척이 느껴집니다.”


하니발의 말을 들으며 기사들이 이야기하던 순위란 걸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실력을 떠나 얼굴까지 모델 급인 상태에서 이렇게 감까지 좋으니 부러울 따름이란 생각으로 가리킨 곳으로 걸음을 서둘렀다.


앨프 슈란의 불안한 눈빛이 어둠에 쌓인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이혁의 뒤를 따를 뿐이었다.


벽 한편으로 보이는 좁은 통로를 돌들과 썩어있는 나무판자로 어설프게 막아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그곳에서 작은 소음들과 인기척들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확인을 하기 위해 입구를 두들기자 내부의 소란스러움이 커지는 것을 들었기에, 자신을 돌아보는 하니발에게 알아서 하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하니발은 아론의 지시를 받고는 기다릴 것도 없다는 듯이 두 개의 칼집에서 평소 애용하는 검을 뽑아 들었다.


그 동안 자재하던 오러의 빛이 소드의 표면에 이글거리는 물결처럼 넘쳐 흐르는 순간, 문이라고 추정되는 돌 더미를 향해 푸른 열기를 내려그었다.


‘콰~앙!’


예기치 못한 소음이 메아리 치며 동공 내부로 울려 퍼지게 되었다. 그리고 막혀있던 곳은 두 동강이 나기보단 잔해 물들이 가루로 변하여 날아가 버렸기에 먼지더미를 뚫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기사들이 뛰어들었다.


통로가 좁았기에 흙더미들이 가라앉은 뒤에야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던 이혁이었고 그 속에서 몰골이 말이 아닌 형상들을 마주 할 수 있었다.


램프를 들어올린 어둠 속에는 여러 검은 인형들이 삽과 곡괭이 같은 도구들을 들고 앞을 겨누고 있었고 불빛에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였지만 사나운 숨결을 뿜어대며 자신들을 노려보는 것은 인간들의 형상이었다.


그런 달려들려는 용기들도 램프의 불빛에 눈이 익어가며 기사들의 전유물이라고 불리는 화려한 갑옷의 번쩍임에 생각의 끈을 놓아버렸다는 듯이 멍한 표정으로 이혁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내실의 공간은 서른 명이 넘어가는 기사들이 전부 들어서고도 여유가 있었기에 그들의 형태를 자세히 살펴 볼 수 있었지만 좁다고는 생각되지 않은 공간에서 얼마나 몰려 있었는지 빼곡하게 들어찬 사람들의 수효를 가늠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렇게 주변을 돌아보며 대화의 상대를 찾고 있으려니, 갈라진 음성이지만 뚜렷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왕국에서 나오신 기사단들이십니까?”


램프의 불빛 앞으로 다소 말랐지만 당당한 모습의 중년남성이 다가왔다.


작가의말

성의 지하배경은 영화“반지의 재왕” 1편의 멸망한 드워프왕국의 지하를 생각하며 쓰긴했지만 역시나 많이 배워야 할듯 합니다(간달프가 마법지팡이를 들어 올리는 장면을 연상함)


글의 초반부는 이혁의 고민부분이 계속해서 삽입되고 있지만 명확한 해답이 없으니 어쩔수 없는 모양입이다.

맨탈리온(마법사)는 뭔가를 알고는 있지만 비밀을 안고있는 컨셉이라. 참고로 마법사는 백발이지만 중년의 모습입니다.


♣등장했던 기사 순위집


하킴: 기사대장, 갈색머리, 180이상(덩치),우직한 성격

하니발: 서열 2인자, 하킴과는 경쟁구도,연한노랑 머리, 키180, 모델외모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음) 


한슨: 서열3위, 각종 훈련교관 역할 (하니발의 동료)

만달라몬: 서열4위 책략가 스타일/ 하킴의 오른팔

발거스: 서열 10위 내 (결혼희망)

싸이키 와 쿠노: 서열 10위 내

아진: 영웅적인 모습을 동경(아론을 영웅시함)

리오: 아진과는 동기 (막내기사)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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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없는 이세계 군주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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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이세계 일지 <무료,일반> 20.11.22 385 0 -
공지 작품 변경 관련(동일 내역으로 다시한번 리메이크/가급적이면 욕은 하지마세요) +3 20.10.09 340 0 -
126 125. 던전의 유산 20.11.15 331 1 12쪽
125 124. 소모라의 마도린 20.11.14 118 1 13쪽
124 123. 소모라의 마도린 20.11.13 124 0 12쪽
123 122. 기억(황녀의 마지막 피난처) 20.11.12 123 0 12쪽
122 121. 기억(황녀의 마지막 피난처) 20.11.11 100 0 11쪽
121 120. 기억(황녀의 마지막 피난처) 20.11.10 138 0 14쪽
120 119. 기억(황녀의 마지막 피난처) 20.11.09 101 0 14쪽
119 118. 기억 20.11.08 107 0 14쪽
118 117 기억 20.11.07 88 0 12쪽
117 116 기억 20.11.06 115 0 11쪽
116 115. 기억 20.11.05 101 0 13쪽
115 114. 기억 20.11.04 105 0 11쪽
114 113. 소모라의 전투 20.11.03 94 0 12쪽
113 112. 소모라의 전투 20.11.02 106 0 12쪽
112 111. 소모라 20.11.01 177 0 11쪽
111 110. 소모라 20.10.31 163 0 11쪽
110 109. 소모라 20.10.30 128 0 13쪽
109 108. 소모라 20.10.29 131 1 11쪽
108 107. 소모라 20.10.28 122 1 11쪽
107 106. 소모라 20.10.27 178 1 11쪽
106 105. 소모라 20.10.26 110 2 11쪽
105 104. 소모라 20.10.25 116 2 11쪽
104 103. 갈림길 20.10.24 129 1 12쪽
103 102. 데빌던전. 20.10.23 116 3 13쪽
102 101. 데빌던전. 20.10.22 129 3 12쪽
101 100. 데빌던전. 20.10.21 126 4 15쪽
100 099. 출발 +1 20.10.20 135 6 12쪽
99 098. 단서 +1 20.10.19 151 4 14쪽
98 097. 원정D-3 20.10.18 142 3 12쪽
97 096. 마녀의 아이. (또다른 세상) 20.10.17 120 2 13쪽
96 095. 마녀의 아이. (사고들) 20.10.16 165 0 12쪽
95 094. 마녀의 아이. (재앙의 시작) +2 20.10.15 179 3 13쪽
94 093. 마녀의 아이. 20.10.14 138 2 12쪽
93 092. 각자의 시선 (하). 20.10.13 201 4 13쪽
92 091. 각자의 시선. 20.10.12 155 3 13쪽
91 090. 각자의 시선. 20.10.11 160 3 12쪽
90 089. 모험가들의 행진 20.10.10 140 3 13쪽
89 088. 모험가들의 행진 20.10.09 176 2 11쪽
88 087. 모험가들의 행진 19.02.07 347 2 13쪽
87 086. 원정의 준비. 19.01.31 318 2 12쪽
86 085. 폭동. 18.01.11 642 3 12쪽
85 등장인물 소개(휴제이후 워밍업타임) +1 17.12.10 770 1 11쪽
84 084. 폭동 +1 17.07.08 1,151 5 16쪽
83 083. 폭동 17.07.01 704 7 11쪽
82 082. 이사하던 날(하) 17.06.24 755 9 18쪽
81 081. 이사하던 날(상) 17.06.17 931 8 14쪽
80 080. 실타래. +1 17.06.10 813 9 19쪽
79 079. 실타래. 17.06.03 815 10 14쪽
78 078. 13명의 이방인 +1 17.05.27 978 10 17쪽
77 077. 13명의 이방인 +1 17.05.20 909 8 13쪽
76 076. 페임론의 동쪽도시 17.05.13 938 8 20쪽
75 075. 페임론의 동쪽도시 17.05.06 955 10 12쪽
74 074. 늪지대 유적 (마법사의 짧은 회상) 17.05.05 883 10 13쪽
73 073. 늪지대 유적 (마법사의 짧은 회상) +1 17.04.29 992 5 20쪽
72 072. 늪지대 유적 (마법사의 짧은 회상) 17.04.28 1,056 8 13쪽
71 071. 늪지대 유적 (마법사의 짧은 회상) 17.04.22 1,170 13 24쪽
70 070. 고민들 (꿈) +2 17.04.21 1,206 13 14쪽
69 069. 고민들 (너를 지켜주마) 17.04.15 1,343 16 17쪽
68 068. 고민들 (소울스톤) +2 17.04.14 1,268 15 19쪽
67 067. 모험가 (계약들) +3 17.04.08 1,442 16 17쪽
66 066. 모험가 (비밀과 공유) 17.04.07 1,155 13 17쪽
65 065. 모험가 (투기. 대화) 17.04.01 1,117 13 15쪽
64 064. 모험가 (드라마) 17.03.31 1,272 14 19쪽
63 063. 백작의 환영무도회 (하. 모험가) 17.03.25 1,159 12 15쪽
62 062. 백작의 환영무도회 (중. 발표) 17.03.24 1,242 14 15쪽
61 061. 백작의 환영무도회 (상) +2 17.03.18 1,280 14 18쪽
60 060. 페임론 (나타샤) +2 17.03.17 1,355 11 18쪽
59 059. 페임론 (여왕의 군대) 17.03.11 1,319 12 16쪽
58 058. 페임론 (정보길드의 자료) 17.03.10 1,298 12 23쪽
57 057. 페임론 (외출) 17.03.04 1,292 13 20쪽
56 056. 백작의 저택 17.03.03 1,263 16 13쪽
55 055. 백작의 저택 +2 17.02.25 1,280 13 18쪽
54 054. 백작의 저택 +2 17.02.24 1,376 15 16쪽
53 053. 치료막사 (세실리아) 17.02.18 1,388 11 19쪽
52 052. 페임론 공방전 17.02.17 1,290 15 16쪽
51 051. 페임론 공방전 (소드 마스터) 17.02.10 1,472 17 15쪽
50 050. 페임론 공방전 (팔콘 관문) 17.02.04 1,442 15 16쪽
49 049. 페임론 공방전 17.02.03 1,500 12 23쪽
48 048. 페임론 공방전 17.01.28 1,392 17 13쪽
47 047. 갈림길 (대공의 존재) 17.01.27 1,477 17 13쪽
46 046. 갈림길_<일부 지도공유> +4 17.01.21 1,458 16 17쪽
45 045. 갈림길 17.01.20 1,513 19 14쪽
44 044. 고요의 평원 (퀘스트) +6 17.01.14 1,748 19 21쪽
43 043. 고요의 평원 +3 17.01.13 1,712 17 22쪽
42 042. 영웅 출현 (시녀 되다) +5 17.01.07 1,705 19 17쪽
41 041. 영웅 출현 +2 17.01.06 1,675 20 13쪽
40 040. 영웅 출현 +2 16.12.31 1,532 19 19쪽
39 039. 모험의 시작 +1 16.12.30 1,634 15 18쪽
38 038. 모험의 시작 +1 16.12.24 2,002 16 18쪽
37 037. 영지물 (그녀들)_12/8 +3 16.12.23 1,929 24 27쪽
36 036. 영지물 (모험가들) +2 16.12.17 2,143 28 16쪽
35 035. 신경전 +3 16.12.16 1,886 24 15쪽
34 034. 돌격하라! (등장) 16.12.10 1,764 23 12쪽
33 033. 돌격하라! 16.12.09 1,855 21 24쪽
32 032. 의도된 고립 (수확) +2 16.12.04 2,032 28 21쪽
31 031. 의도된 고립 (오해) +2 16.12.03 2,082 20 19쪽
30 030. 의도된 고립 +2 16.11.27 2,022 22 20쪽
29 029. 하르파스 +2 16.11.26 2,062 24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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