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5. 페임론의 동쪽도시
“조지. 시간도 얼마 없는 것 같은데 앞에 있는 놈들은 배제하는 것이 어떨까?”
“나도 그러고 싶지만, 이미 성향이 변했잖아. 지금 상태로는 NPC들이 가만있지는 않을 거야. 차라리 여유 있을 때, 레벨이라도 올리는 게 좋을 거 같단 말이야.”
그 순간, 검을 휘두르며 눈앞으로 달려들던 인형을 향해 소드로 막아서는 조지가 대답을 이어갔다.
“이것 보라고. 이놈들 복장은 단순한 경비병 같은데 무력수치는 얼마나 되는 거야?”
힘겹게 옆을 돌아보던 쿠루소는 당연한 소리를 한다는 식으로 대답을 삼키더니 자신들과 같이 난전을 벌이고 있는 13명의 유저들에게 눈길을 보내더니 한숨 섞인 울림을 만들어 내였다.
“정말 도움이 년의 말대로 그놈을 찾아가면 말도 안 되는 이 미션이 끝나는 걸까? 이봐! 죽으면 끝장이라고!”
몇몇 이들이 NPC 병사에게 칼침을 맞고선 중심을 잃었기에 리더인 입장에서 가만있을수 없었던 쿠루소가 그쪽을 향해 달려가면서 고함을 질렀던 것이다.
“흩어지면 끝장이야! 뒤로 빠지면서 상대한다!”
검상에 피를 흘리며 비틀거리는 유저를 부축하며 건물들이 들어찬 골목길로 뒷걸음쳤다.
이미 몰려있던 일반 NPC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버린 지 오래.
애초부터 무기를 휴대하고 소란을 일으키던 경비병들을 목표로 삼았지만, 항구가 위치한 곳에서부터 지원병으로 보이는 NPC들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역부족인 상황이었다.
“조지! 이만하고 전달받았던 곳으로 이동한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카오틱 성향으로 변해버린 십여 명의 유저들은 일사불란하게 도시의 내부로 사라지고 있었고 그들의 뒤를 쫓아서 경비병의 복장을 한,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리들도 건물의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멍하니 그것을 지켜보던 사제단의 무리.
미처 달아나지 못하고 싸움에 휘말려 쓰러지거나 부상 입은 이들의 신음을 접하고는 정신을 차린 노년이 완연한 모습의 사제 한 명이 주변을 수습하기 시작하였고 그것을 신호로 광장에서 벌어진 소란스러움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어중간한 시점에 그런 풍경을 접했던 아론들은 그 노년의 사제가 다가오면서 앞선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혹시. 소문의 아론님이 아니신지요. 가이아를 모시고 있는 바할이라고 합니다.”
“반갑소. 아론이라고 합니다. 그보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바할 사제는 아론의 물음에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곳 광장에서 유민들을 대상으로 음식을 나누어 준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저희도 오늘 같은 일은 처음입니다.”
-바할은 성녀 세실리아의 뜻에 따라 페임론의 동쪽에서 유민들을 대상으로 옷가지와 음식들을 나누어주는 일명, 구제사업을 시행하고 있었다.
어느덧 소문이 퍼진 덕분인지 아침부터 헐벗은 몇백 명의 유민들이 몰려나와 군중을 형성하고 있었고 나룻배로 이동된 짐짝들이 남녀 사제들에 의해 구분됐고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 음식들이 모두의 배를 채워주기 위해 소스란 첨가물로 조리되어 부풀려지고 있었다.
그런 기다림의 시간이 즐거움을 만들어 주었을까?
누더기를 걸친 몇몇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활기찬 목소리를 만들어 내였다.
그리고 뭔가가 벌어질 것 같은 빌미를 제공한 사건이 발생한 것은 그때였다.
“지금까지 버려졌던 이곳에 주인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다소 거칠고 커다란 음성이 유민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썩을 놈들! 지금에 와서 우리를 몰아내려고! 그렇게는 못 하지!”
음식을 준비하던 사제들의 손이 멎었던 것은 그때였다. 그리고 바닥에 앉아 정체된 시간을 달래던 이들 또한 이해할 수 없는 발언들에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렇게는 안 되고 말고. 나는 여기서 한 발자국도 못 나간다 말이야!”
자신들이 언제부터 권리를 주장할 수 있었던가? 그런 의문들을 생각하고 있을 때. 어디에서 나타난 것인지 허리에 검을 차고 손에는 각목을 휴대한 수십의 경비병들이 등장한 것이다.
“어디서 헛소리야! 여기는 새로운 주인님의 토지란 말이다! 거렁뱅이들은 꺼지란 말이야!”
그러더니 이번에는 그들은 바라보던 사제들에게 고함을 질렀다.
“사제님들! 이놈들에게 뭘 주워 먹을게 있다고 남의 땅에서 허락도 없이 이러십니까? 당장 치워주십시오.”
마치, 용건이 끝났다는 듯 주변을 돌아보며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였다.
“뭐 하는 거야! 냄새 나는 연놈들을 빨리 들어내지 않고서!”
말이 떨어지고부터 몰려있던 유민들에게 몽둥이가 날아들었다.
“사람 살려! 페임론의 군주가 우리를 죽이려고 한다!”
“여기 있다간 다 죽을 거야!”
전혀 동떨어진 곳에서 울림이 들려왔으며 현재 상황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어 놓았다. 그런 아비규환 속 발길질 속에 묻혀버리는 사람들의 절규. 비명이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급기야, 각목의 효과가 미비하다고 생각했던지 그것을 집어 던져 버리고선 휴대하던 검을 빼 들고서 쓰러진 이들에게 들이밀려는 것이다.
그 상황을 더는 지켜보지 못하던 사제들도 고함을 지르며 경비병들에게 달려가려는 순간. 건물의 후미진 골목에서 십여 명의 인형들이 그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
검의 마찰음들이 시작되기 전부터 그 상황을 지켜보았던 이혁이었기에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었지만, 이야기를 들어도 이해되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경비병들의 복장을 하고는 있었지만 처음 보는 이들이었습니다. 당사자가 저기 오니 물어보면 될 것 같군요.”
바할사제는 뛰어오는 몇몇 경비병 중 낯익은 이들이 있었는지 손짓을 하고 있었다.
한참을 달려온 것인지 쓰고 있던 투구를 벗자, 갈색의 머릿결 사이로 가느다란 열기를 피워 올리던 중년의 남성이 하니발의 얼굴을 접하고는 이혁과 나머지 인물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놀랍다는 감정을 숨기지 못하며 입을 열었다.
“하니발경이 아니십니까? 동쪽 페임론의 경비를 책임지는 판토임이라 합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렇게 묵례를 하고선 잊어버린 용건이 생각났다는 듯이 바할 사제를 돌아보며 말문을 이어갔다.
“바할 사제님. 무슨 일입니까? 달아나던 이들이 저희를 보더니 경기를 일으키니.”
“그건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이라네. 조금 전 경비병들이···”
이야기를 경청하던 경비대장 판토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표정이 어둡게 변하더니 급기야는 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성벽경계병력도 모자란 판국에···”
-현 경비대의 총인원 34명-
기존 페임론의 동쪽 도시를 담당하는 경비대 인원은 고작해야 백 명을 헤아리고 있었다. 더군다나 얼마 전 있었던 전투의 영향으로 그나마도 경비대의 대부분이 차출되어버린 상태에서 겨우 삼십 남짓한 인원만이 동쪽으로 연결된 성문을 감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지리적 특성으로 도시의 정책과는 무관하게 무구의 소지가 허용된 상태였기에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고는 있다지만 형식상의 인원일 뿐, 연락책의 역할이 주목적인 부대였다.
상황의 심각성을 생각하던 판토임이 부관으로 보이는 병사에게 뭔가를 지시하며 앞선 인물들을 돌아보며 간략한 설명을 곁들였다.
“백작님께 사실을 알려야겠습니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는 그 무리를 찾아봐야지 알 수 있을 듯하지만 지금의 저희 인원으로는...”
“필요하면 도와주도록 하겠네.”
대화를 듣고 있으려니 답답함이 몰려오던 이혁이 목소리를 내었지만 정작 대답은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
“주군.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우선은 사제님들을 도와서 이곳부터 정리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뒤늦게야 나타난 마법사의 음성이었고 그 의미를 뒤늦게야 깨달은 이혁이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응시하였다.
사제들이 핏자국이 낭자한 광장에서 신음하는 부상자들을 수습하고는 있었지만, 상태가 심각한 이들이 많았던 것이다.
* * *
“저 녀석들은 어디서 나타난 거야?”
“우리가 어떻게 알겠냐. 그보다···”
추적하던 인원들이 걸음을 멈추고는 검 상을 입은 이들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몇 놈은 죽을 것 같으니 강바닥에 버리고 가자고. 약속했던 잔금은 인원수대로 받을 수 있으니 말이야.”
“그 놈들은 어쩌고?”
“뭐, 죽은 놈들이야 억울한 일이지만 우리가 손해 보는 건 없잖아. 그런 걱정보다는 경비대 놈들이 오기 전에 이 옷들부터 벗어 던지자고.”
마치, 거추장스럽다는 듯이 파랑 줄무늬가 그려진 상의를 벗으려는 남성을 향해 작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렇게 따지면··· 지금의 머릿수도 많은 것 같은데.”
‘푸~욱’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옷을 끄르던 남성의 가슴으로 파고드는 칼날. 그것을 내려다보며 의문과 고통에 일그러지는 얼굴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어차피 너희 놈들의 찌꺼기는 고기들이 처리할 예정이었으니 수고비의 염려는 놓으라고.”
바닥으로 쓰러지는 남성. 초점이 흐려지는 그 눈동자로 자신과 같은 처지의 동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 * *
강변을 따라 달리던 13명의 무리가 숨을 고르며 뜀박질을 멈춘 것은 한낮의 태양이 머리 위를 향하고부터였고 사용하지 않던 선착장의 아래, 강물이 드나드는 모래톱을 밟으며 암벽들에 몸을 기대었다.
누군가가 배낭에서 밀 빵을 꺼내어 입안에 구겨 넣는 걸 시작으로 몇몇이 허기진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그 순간, 기둥을 이루고 있던 일부의 나무들이 누군가의 손길로 바스러지자 의도치 않게 그 유저에게 모두의 눈총이 갈 수밖에 없었다.
“리더. 상처는 치료하고 이동해야 할 것 같은데.”
검 상 부위를 계속 내버려 두다 방치하다 보니 옷 대부분이 붉게 변해있었던 이들이 몇몇 눈에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한숨을 들이키던 쿠루소는 망을 보고 내려오던 조지를 돌아보았다.
“조지. 혹시 치료 약 챙겨온 건 없었지?”
“··· ···”
대답 없는 공허함 속에 지혈이라고 하려는 듯이 자신들의 윗옷을 찢어내는 소리만이 울릴 뿐이었다.
“그때부터 얼마나 지난 걸까? 도대체 GM에서는 뭐하는 거야?”
강을 건너기 위해선 어둠이 내리기를 기다려야만 했고 그런 지루함을 달래려는 듯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그것보다 한바탕 소란을 떨었으니···”
“그러게 NPC들이 죽든 말던 누가 달려들라고 했냐고.”
“아무리 프로그램이라고 하지만 애들한테 칼을 들고 설치는데 어떻게 가만있냐 말이야.”
그 상황에서 대부분이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이었기에 반박하는 말이 있을 수는 없었지만 당면한 불만을 토로하는 건 막을 수가 없었다.
“정말 죽으면 끝장일까?”
“뭐, 로그아웃도 안 되는 판국에 헛소리로 치부하기에도 그렇고··· 예전에 이런 비슷한 영화도 있었잖아.”
“아! 뇌로 전기를 흘려서···”
이야기를 경청하던 쿠루소가 주의를 주기 시작했다.
“일단은 그 NPC 년의 말대로 이번 미션만 수행하면 방법을 알려준다고 했으니 기다려 보자고.
더구나 지금까지 올렸던 레벨도 그렇고 장만했던 장비를 버릴 수는 없잖아.
장시간 접속하고 있었으니, 시간 외 수당도 상당 할 거 아니야. 모두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고.”
“쿠루소.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어딘지도 모르는 도시에서 그걸 찾기가 싶지는 않을 거야.”
조지의 말에 생각을 달리한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며 대답을 이어가는 쿠루소였다.
“이름은 알고 있으니··· 더군다나 백작이란 놈이 흔하지는 않을 거 아니야.”
“그건 모르는 일이지.”
- 작가의말
아직까지 본격적인 이야기도 시작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렇게 진척이 느리니 면목이 없답니다. 하루 빨리 정상화에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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