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소모라
106. 소모라
일탈을 결심한 유저들 중, 언덕너머의 광경에 할 말을 잊어버린 체 방금 전까지만 하여도 의욕 넘치던 자신감들의 발로를 누군가가 돌아보기라도 무섭게 땅 아래로 늘어트린다.
그리고 이미 언덕을 내려선 이들의 과반수는 벌써부터 어둠 속으로 집어 삼켜버린 지 오래. 그 수렁에서 빠져 나오려 발버둥 치던 이들 또한 마법사가 난사한 불덩이에 휩싸여 주춤거리고 있던 시간.
작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다시 한 번 맨탈리온의 얼음 창들이 허공을 수놓기 시작한다.
수백의 투명빛살들이 화살촉과 같이 구덩이들을 뛰어 넘어 달려들거나 기어 움직이는 시체들의 몸통들에 틀어박혀 든다.
하지만 목이 날아가거나 얼굴의 정 중앙에 명중된 것들을 제외하곤 녹아 드는 얼음을 안고서 몸체를 일으키며 앞선 행동을 반복하는 모습엔 마법사라도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일인 마법만으로 주변 일대가 초토화 되었고 당연한 수순이지만 언덕을 채우고 있던 모험가들에게 충격을 안겨줌과 동시에 광기 어린 마법사에게 유저를 포함한 시청자들의 이목이 집중될 수 밖에 없었다.
그 모습에 뭔가를 더 보여 줄 것이 남아있기라도 하듯이, 마법사는 자신의 양손을 정면으로 향하고서 입을 열었다.
“네 놈들이 있어야 될 곳으로 돌아가라! 그렇지 않으면 이후로의 광경이 너희 모습들이 될 것이다!”
방어선에서 이탈한 모험가들을 향한 증폭된 음향적 경고와 함께, 손이 뻗어나간 방향으로 공기의 작은 떨림이 커다란 울림이 되어 바로 눈앞까지 도망쳐온 모험가와 뒤 따르던 시체들의 무리를 사방으로 찢겨 버리며 분해된 살점들이 파편마냥 사방으로 튀어나가 버린다.
“미친···”
욕지거리가 쏟아져 나오는 와중에도 유저들은 되돌아가기 위해 깊게 파여진 해자를 넘어가려 몰려들었고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구덩이 속을 나뒹굴다 구겨 넣어져 디딤돌이 되기를 자처한다.
※ ※ ※
쉴 새 없이 이어지는 폭음과 자욱한 먼지들이 흩어지고서야 난장판이 되어버린 언덕위로 몰려 올라가는 좀비때의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던 이혁은 칼부림에 여염이 없는 하킴을 돌아보며 소리지른다.
“하킴!”
그 순간, 이혁은 말머리위로 뛰어 오르는 사람의 형상을 보았다. 녹슬어 버린 갑옷의 형태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썩어 문드러진 시체의 형상이 거대한 소드를 자신을 향해 내려치는 광경을 말이다.
생전의 기억으로 무기를 휘두르는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몸에 담겨있던 잔상들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지의 판단여부를 떠나, 무기를 사용한다는 자체가 이혁의 상식을 무너트리게 했다. 따지고 보면 이 세계의 지식자체가 무의미 하기에 신선함으로 받아드려야 할지도 모를 일.
그렇게 날아오는 칼날을 막아본다.
-챙~강-
허무한 노력의 산물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너무도 손 쉽게 동강나버린 상대방의 그것은 세월의 잔상이라도 남길 요량으로 녹이 찌든 검은 때들을 허공으로 흩날렸다.
그리고 무기를 잃어버린 시체는 이혁을 향해 입술의 형태를 일부분 유지하던 아가리를 벌려가며 덮쳐왔지만 기척 없이 다가선 하킴의 칼날에, 턱 선이 이어진 관절부위째 꿰 뚫려 버린다. 그리고 뒤를 이른 하킴의 함성.
“주군의 명이 떨어졌다! 눈치 볼 것 없이 몽땅 쓸어버려라!”
“··· ···”
뭔가 의미전달은 틀렸지만 외곽을 향해 빠져 나가던 기마들의 기수를 사람들이 모여있는 언덕이 위치한 방향으로 전환했기에 잠자코 달리는 말 안장에 몸을 의지하는 이혁이었다.
※ ※ ※
해자의 용도는 이미 사라져 버렸고 모래포대로 쌓아놓은 작은 성벽은 순식간에 시체더미로 채워져 버린다.
“방패든 놈들은 어디 간 거야! 기어드는 것들이라도 막아!”
창을 내지르는 유저의 발 아래로 상채만 남아있는 정체 모를 괴물들이 달려들었고 소름 돋는 괴성을 지르며 내려다보던 유저의 발목에 이빨을 박아 넣었다.
유저들은 기본적인 설정만으로도 동질감이 높았기에 아픔 또한 현실의 수준과 맞먹었다. 하지만 더 심각한 점은 고통을 호소하던 눈빛이 찰나의 시간 동안 검붉게 변해버리며 먹을 것을 갈구하는 짐승의 울부짖음으로 변질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방어를 위해 빼곡히 들어찬 체 방패와 창칼을 들어올린 인간장막들을 먹이로 인식한 것이다. 그렇게 물러나던 대열들이 또다시 무너지고 있었다.
그런 혼돈 속 한편에선 바리케이트 마냥 마차를 둥그렇게 둘려, 그 내부의 상인과 일꾼들을 몰아넣고서 사천에 이르는 보병들이 마차를 기준 삼아 방패와 검을 휴대한 체, 눈앞의 대형이 붕괴되길 대비하고 있었다.
전쟁을 위한 도구인 노예병과 일부의 경험 많은 용병들이 합류되어 배치되었기에 허술한 모험가 집단에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그리고 마차의 지붕과 2층 난간으로 구성된 곳에선 빼곡하니 궁병들의 활시위가 쉴새 없이 반복적인 동작으로 화살촉들을 날려보내며 모험가들에게 달려드는 시체더미의 걸음을 더디게 만들어 주었지만 그 수효가 범위를 넘어서고 있는 상태에선 별다른 도움은 주지 못하는 모양새다.
중앙에 위치한 마차의 2층 난간.
그곳에서 아래의 풍경들을 관전하던 여인 중 하나가 나른하다는 듯이 입을 연다.
“저것들로는 얼마 버티지 못하겠는데. 네 년은 저들에게 구원의 손길이라도 내려줘야 되는게 아니냐?”
차 잔을 들어올리던 하르파스의 물음에 흥미진진한 영화감상을 놓치기라도 하듯 난간에 의지하던 몸을 돌릴 생각도 하지 않고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이어가는 세실리아.
“하르파스님. 가이아님께서 창조하신 대지의 생명체들은 보호받아 마땅하겠지만. 모험가란 이들은 별개의 존재랍니다. 물론, 패큐니아 경이 들었다면 서운해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은 죽어서도 대지로 돌아가지 않는 허상에 가깝다고 할까요? 그런 허구들을 구원한다는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 되겠지요.”
“네 년의 그런 주장또한 오크 대갈통에서나 나올법한 모순덩어리란 건 알고 있겠지?”
간간히 들려오는 마법사가 날리는 폭음과 모험가들의 함성과 절규, 비명, 그리고 병장 기들의 마찰음들이 배경 음과도 같이 사방을 에워싼 와중에 세실은 자신도 모른 체 웃음을 머금었다.
“하르파스님은 너무나도 상냥하신 것 같아요. 그렇기에 이 세계의 빛과 어둠에 관한 신념이 비틀려 있다는 게 현실일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런 충고처럼 대외적인 이미지도 있으니, 아론님이 돌아오실 때 까지 이대로 보고만 있을 수는 없겠지요.”
그렇게 둘만의 대화가 종점을 고할 즘. 언덕 너머, 아론들의 행방을 걱정하는 이는 존재하지 않아 보였다.
※ ※ ※
다행이라면 시체들로 변해버린 혹은 그 좀비들에 쫓겨 언덕너머로 넘어가 버린 상태에서 모험가들의 시선이 더 이상 감지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맨탈리온의 마법 역시 그 언덕 너머에서 간간히 폭사될 뿐이었기에 아론을 기점으로 선두를 달리던 말에서 뛰어 내린 오십여의 기사들이 거로의 거리를 벌리며 소드에 유형의 오러를 불어넣었다.
물론, 이혁의 경우는 아이템 빨 이란 백색의 검기를 마주 달려드는 덩어리들을 동강낼 뿐이었지만 오러를 사방으로 난사하며 시체들을 종이조각으로 날려 버리는 기사들과 차별화 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고정관념이란 무기는 상상의 궤도를 달리하는 법.
‘역시 우리주군께선 이런 와중에도 수련을 게을리 하시지 않는구나.’
‘기운을 절제하지 못하고 이렇게 흩 뿌리고 다니는 우리들과는 차원이 틀려.’
‘우리에게 나설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지.’
그런 각자의 환상 속에 기사단들은 애초의 출발지점에 도달하고 있었다.
허나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 법.
모험가들로 둘러쳐진 외곽이 무너져 내리는 건 순식간이었다. 변질되어 버린 좀비들이 얼마 전까지 어깨를 함께한 동료의 목 언저리를 물어 뜯고 서로의 뱃가죽을 도려내고선 그 내용물을 확인하듯 창칼에 등허리를 꿰둟리며 그 속에 고개를 처박혀 절명하길 반복한다.
모래와 같이 사라지는 이들. 남겨진 체 좀비로 변화된 이들. 오래 전 시체화된 몬스터의 울부짐. 그 아가리 속으로 수십의 화살촉들이 틀어박혀 드는 와중에 방어를 포기한 유저들이 뒤를 돌아서며 마차의 틈바구니 속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그리고 마차들 둘러싼, 전투에 특화된 노예 병들의 번뜩이는 눈빛을 접하는 순간.
저 방어선을 넘어서기도 전 자신들이 로그아웃 당하는 건 결정된 수순이지 않을 까란 두려움들이 달아나려는 발걸음을 주춤 거리게 만들었다.
그 병사들 속에서 걸어 나오는 한 검은 머리의 여인.
마치 자신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듯한 슬픔을 간직한 눈빛으로 허공을 향해 두 손을 모아 기도하듯 읊조린다.
주변을 포옹하는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아름다운 선율과 음성. 공간을 함께하는 이들은 그것이 천상의 멜로디로 여겨 졌으리라. 외곽에서 죽어 나자빠지는 소음들은 이미 외면 당해버렸지만.
한 순간 두 눈을 멀어버리게 만들 정도의 강력한 빛살이 그녀를 중심으로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며 모든 소음들이 멎어 버렸다. 그리고 빛의 반경 안에 들어왔던 걸어 다니던 시체들은 어느덧 먼지와 같이 소멸을 맞이한다.
“기사단들이 돌아왔다!”
한 유저의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힘없이 쓰러진 여인을 뒤로하고선 언덕 위를 달려 내려오는 아론들을 목격한다.
그것은 6천여의 유저들이 희생당한 직후였다.
※ ※ ※
“기사단은 전진하며 길을 열어라!”
쓸어버려도 어디에선가 꾸역 꾸역 몰려드는 시체들의 향연을 마냥 지켜 볼 수만은 없었다.
성문으로 이어지는 가도를 따라 기사단들이 길을 열어가며 마차와 일꾼들을 노예 병으로 이루어진 보병단과 용병들이 감싸 안으로 이동을 감행한다. 그 뒤를 아론의 기사단 반수와 살아남은 모험가 집단이 방어와 살육을 이어가기 시작한다. 물론, 아군에서 희생당하는 쪽은 모험가들 뿐.
그렇게 성벽까지의 거리가 있었지만 이미, 대부분의 좀비 무리가 성벽에서 멀어져 자신들의 뒤꽁무니를 따르는 상태로 역전되었기에 이전과 같은 오러의 남발을 자제하는 기사들의 눈앞에 어느덧 검은 방벽과도 같은 성벽이, 시야 가득 들어찬다.
성문을 중심으로 몰려드는 시체들을 몰아내며 의도치 않게 또 다른 성벽을 쌓아 올리는 형국이 되었었지만 기사들의 포진으로 모험가들이 더 이상 희생되는 일은 발생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안전이 보장된 것도 아니었으니, 과반이상을 처리했다고 느꼈던 수효는 처음과 동일한 숫자로 불어나 있던 상태였다.
기사들 또한 몰려드는 물결에 질려버린 감정들을 표정 가득 담아내고 있던 상태에서 이혁마저 생성되지도 않는 오러를 난사하고픈 충동까지 일어났으니. 기사 한슨의 다음 말이 그런 이혁을 더욱 답답하게 만들어 버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주군! 성문이 내려오지 않습니다.”
- 작가의말
확인 작업은 어렵다는 느낌으로 일단 진도 나갈 요량으로 투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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