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5. 폭동.
※ ※ ※
검은 어둠이 내려선지 오래지 않아 정체 모를 거대한 선박 하나가 인적이 드문, 버려진 선착장으로 작은 물보라를 일으키며 다가서고 있었다.
그 영향이었을까?
수면 밖으로 밀려드는 잡다한 쓰레기와 잡동사니들. 그리고 마치,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해초더미 하나가 물살에 밀려 모래더미 위로 떠오르더니 얕은 웅덩이에 자리를 잡는 모습이 호기심 가득한 까마귀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해초의 뭉치로 여겨지던 그 검은 실타래 속에서 두 개의 붉은 인광이 분출되는 순간.
“까~~악! 까~~악!”
허물어진 건물더미를 장악하고 있던 수십의 검은 까마귀 때 무리가 어둠과 동화되어 달아나려는 듯 한번의 날갯짓으로 창공을 수놓아 버린다.
“불길하게스리···”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지만, 우리에겐 좋은 징조일지도 모르잖아.“
“뭐. 그렇게 따지면··· 그보다, 녀석들이 오는 모양인데.”
뱃전에서 고개를 내밀며 잡담을 늘여놓던 인형들이 건물 더미 사이를 빠져 나오는 무수한 횃불들의 수효를 확인하고선 준비해온 나무 궤짝들을 나르기 시작했다.
범선의 자태를 감상하는 무리의 머릿수가 늘어나길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집합이 완료되었다는 것을 알리듯. 군중을 이끌던 달변가가 모두가 내려다 보이는 돌무더기에 올라서더니 목소리를 드높였다.
“우리들을 돕기 위해 물길을 가르며 머나먼 길을 달려온 동지들입니다!”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여러 반응들이 표출되고 있었지만 누군가의 박수소리를 시작으로 우레와 같은 함성들이 주변을 감싸 않았기에 더 이상의 의문들은 강바람과 함께 날아가버린 지 오래였다.
합류한 유민들의 힘이 보태지며 뱃전에서 옮겨진 나무 궤짝들이 감쳐둔 입들을 열어젖히자, 칠흑같이 검디 검은 광채들이 횃불에 반사되어 끓어오르는 열기를 가중시킨다.
항아리마다 가득 들어찬 검은 액체의 존재는 떠도는 속설에 따르면, 데빌 던전의 최하층. 마계로 이어진다는 불의 강을 구성한다는 죽음의 물 또는 검은 진득이라 불리는 액체이다.
안내자의 지시에 따라, 머리통만한 항아리의 마개를 막고서 그 주변을 지푸라기 더미로 감싸 묶기 시작했다.
“이것들을 저 비린내 나는 위정자들의 입 속에 처넣어 버리는 겁니다!”
“저들의 창고를 불살라 버립시다!”
비어버린 나무궤짝 위로 올라선 달변가의 목소리가 의미 모를 행동들을 다그치기 시작했고 저마다의 등허리에 집단 뭉치를 휴대하여 뱃전으로 오르도록 만들었다.
“이건 뭐야?”
발길에 차이는 뭉치더미를 내려다보던 남성의 불만스런 목소리가 세어 나왔다.
“물에 빠트렸다고 이렇게 버려두면 어쩌란 거야···”
지저분한 이물들이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기에 물기에 젖어있다손 치더라도 불을 붙이기엔 안성맞춤 같아 보였기에 물기를 털어낼 요량으로 그것을 집어 들었지만 무게차이로 인해 의아한 표정을 짖기를 잠시. 자신을 부르는 외침소리에 더 이상의 생각을 접어버린 체 뱃전을 오르던 유민들 중 비어있는 짐 더미 속으로 그 둥근 구체를 넣어버렸다.
유민들을 삼켜버린 거대한 선박이 출발을 알리는 돛대를 펼쳐 들었다.
하지만 불어오는 바람결이 물살을 가르기에는 역부족이었던지 작은 보트에 연결된 로프에 의지하여 변화 가의 불빛들이 가득 찬 페임론의 경계선을 넘어서기 시작한다.
“저놈들 뭐 하는 거야?”
작은 보트이지만 십여 명이 노를 젖고 있었기에 뱃전에서 들려오는 고성과 소음들에 둔감할 이유가 없었기에 몇몇이 로프가 묶여있는 선수로 고개를 돌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모자란 놈들 상대로 선동이라도 하는 모양이지, 신경 끄자고.”
“죽을 자리로 가는 것도 모르고 좋아라 한단 말이야.”
“쓸데없는 소리 말고 노나 저으라고. 저놈들을 내려놓고 배까지 태워버리려면 시간도 빠듯하단 말이네.”
그 순간, 서로간에 연결되어 있던 로프가 느슨해지기 시작했고 무게를 덜어버린 보트의 속도가 높아졌기에 오가던 잡담들이 종말을 맞이하며 찰나이지만 노를 잡고 있던 몇몇이 중심을 잃고서 물속으로 빠져들었다.
물에 빠진 생쥐 꼴로 보트에 오른 선원들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흘려 나오던 때. 이미 묶여진 로프는 주인을 잃고서 물살의 흐름에 바닥으로 가라앉기 시작했고 남쪽으로 흘려가는 레아강의 물결에 이끌리듯이 범선의 선미가 방향을 틀어버린 지 오래였다.
“이봐 들! 뭐 하는 거야!”
책임자로 보이던 중년의 남성이 보트에서 일어나, 밤 바다가 떠나갈 듯이 고함을 질려보았지만 간간히 갑판에서 들려오는 고성과 오가는 그림자들의 출렁임을 목격하였을 뿐. 때마침 밀려든 안개의 군무가 거대한 범선의 자취를 삼켜버린 것이다.
※ ※ ※
페임론의 동쪽에 위치한 중앙광장은 과거의 영광을 유추해 봄직한 12개의 거대한 원형의 기둥들이 몇만을 수용할 면적들을 감싸 안고 있었다.
전일, 그 내부에 만들어진 급조한 바리케이드의 흔적들은 아침나절이 지나면서 불쏘시개로 전략해 버렸고 중 장병들의 철재갑옷의 마찰음만이 광장의 갈라진 타일 바닥을 두드렸다.
그리고 한 곳에선, 저항하던 몇몇과 이유를 알지 못하던 수백의 송장들이 밤이슬을 함께한 동료 또는 같은 분류로 구분 지어진 죄인들의 손을 거쳐 불타오르는 장작더미 속으로 던져졌고 그 외 대부분의 유민과 부랑자들은 폐허와도 같은 반원형의 극장으로 내몰려 있었다.
그 순간, 허물어져 흔적만으로 그 존재를 유추할 수 있는 원형 극장의 입구에서 병사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사제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들은 반항조차 못하는 약자일 뿐이지 않소? 하다못해 치료가 필요한 아이들이라도 내어주시오.”
“아무리 사제님이라 해도 애초부터 반역자들을 두둔할 권리 같은 건 없습니다. 이들은 우리 여왕폐하를 욕보이며 데바트라를 전복하려는 침략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모르시지는 않겠지요? 어린 아이일 지라도 목을 따버릴 이유로는 충분하니, 차라리 저대로 죽어버리는 게 저들에겐 이로운 일일지도 모르겠지요.”
더 이상 할말이 없다는 듯 입을 닫아버리는 병사들의 지휘관을 향해 사제들이 몇 번을 더 설득 해 보았지만 의미 없는 노력에 불과하였다. 그렇게 사제단 인원 중 일부가 가이아를 향해 기도 아닌 불만을 토로하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발걸음을 돌렸다.
방관자를 자처하며 그런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보던 바록 자작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던 수하에게 말문을 때었다.
“아직 구체적인 지시사항이 없으니 위해가 되는 행동들은 삼가도록 전달하고 급식용으로 옮겨왔던 식량들도 배포하라고 이르게. 그보다 새벽녘에 사라졌던 녀석들은 어떻게 되었다고 하던가?”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이던 남성이 조심스럽게 보고를 시작했다.
“목격자는 확보했지만 그들의 행선지가 어디인지는 아직까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계획이 무의미하다 싶어 뱃머리를 돌린 것이 아닌가 예상됩니다. 그리고···”
상인 연합에 대여해준 창고들 중 서남부 상인연맹 소속에 포함된 물류 창고들이 비어있다는 내역을 늦었지만 사전조사로 알게 되었던 백작과 바록 자작은 그곳에 들어차 썩어가던 곡식들의 행방을 추적하기도 전, 창고들을 불태우려는 무리들에 관한 정보를 아론들에게 전해 받고 부 터 우선순위 자체를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잡아들인 녀석들은 백작께서 처리하신 다기에 그곳을 지키던 병력들만 우선적으로 철수시킨 상태입니다.”
“무슨 생각이신지 도통 갈피를 잡을 수 없단 말이야. 남부 녀석들의 뻔해 보이는 수작 질을 언제까지 방치할 요량인지···”
밤사이 곡식창고 주변에 숨어있던 일부 무리들을 잡아들이면서 주동자들의 이름이 거론되었던 것이다.
그들이 실토한 바에 따르면, 빈 창고를 태워버리고 관리자격인 백작에게 보상금을 요구할 요량이었지만. 결과론 적으로 사전에 발각되어 버린 모양새였기에 어찌 보면 백작이 주도권을 잡을 수 밖에 없는 형국. 하지만 티모 백작은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자는 심산으로 행동을 아끼고 있었기에 바록 자작의 입장에선 심사가 뒤집힐 정도로 답답할 노릇이었다.
“그보다··· 지하로 숨어든 녀석들은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이십니까? 잘못 건드리다간 원정을 떠나기도 전에 병력손실이 불가피 합니다. 더군다나 저들은 어떻게 처리하실 요량이신지?”
원형 극장내부를 빼곡히 차지하고 있는 인형들에게 눈길을 돌리더니 안경을 매만지며 답변을 요구하는 수하의 모습이 얄밉게 보였던 것일까? 바록의 날카로운 음성이 뒤를 이었다.
“칼을 뽑았으니 결과를 만들어야겠지. 그리고 전쟁 포로들이야 협상으로 몸값을 받을 것이 아니면 노예로 취급될 뿐··· 물론, 협상할 적국의 대표단이 방문한다면야 그 놈의 몸 덩어리를 두 동강 내어버릴 용의는 있지만 그럴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문제겠지.”
“··· ··· “
“여왕폐하께서 노예제도에 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신다는 걸 자내고 알고 있을 거야. 결국은 레아강의 밑바닥에 처넣을 수 밖에.”
“솔직한 심정을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나도 안다네. 하지만 무지란 녀석도 때로는 죄가 되고 더욱이 저들이 이곳에 살아있다는 자체가 죽어야만 하는 이유란 걸 아직도 모르겠나?”
자신의 수하가 수긍하지 못하겠단 표정을 지어 보이자 한숨을 들이키던 바록이었고 그 시점, 이혁은 도시의 지배자인 백작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었다.
※ ※ ※
백작의 개인용도로 사용하는 응접실로 안내 받은 이혁과 마법사 맨탈리온은 시녀가 준비해온 다과세트를 음미하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백작도 간밤에 벌어진 일로 처리할 것이 많겠지요. 하지만 정작 칼자루는 여왕의 심복이란 바록자작이 쥔 꼴이 되었으니 부담감이랄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이혁은 정말 모르겠냐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마법사의 면상을 한대 날려 주고픈 심정이었지만 점잖게 마른 기침을 할 뿐이었다. 맨탈리온은 그런 아론에게 설명을 이어갔다.
“원정군을 기다렸다는 듯이 때맞추어 일어난 소동도 그렇지만 바록 자작에게 전권을 위임한 백작의 처사도 결국엔 모든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건 아론님도 짐작하고 계셨겠지요.”
전혀, 그런 의도자체를 몰랐다고 말할 수는 없었기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이혁.. 그 순간, 티모 백작이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송구스럽다는 듯이 인사말을 건네었다.
“너무 기다리게 하신 것이 아닌지···”
그때서야 마법사의 존재를 인식하고선 이어질 말을 삼킨 백작은 상석을 양보한 체 아론의 맞은편 소파에 자리를 잡았고 뒤이어 시녀가 준비해준 차를 한 모금 들이키던 백작의 입이 떨어졌다.
“성녀님의 이야기는 이미 들었습니다. 포로들에 관한 것이라면 형식상의 몸값만 지불하신다면 모두 인계되도록 조치할 예정입니다.”
말문을 열기도 전, 이미 결과가 나와버렸기에 이혁이 입을 열어야 할 이유가 사라져 버린 상태였다.
- 작가의말
당분간은 수정이 필요할것 같아 풀지않고 묶어둘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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