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장 날선 바람 5화 충격적인 발언
5. 충격적인 발언
"이틀 전 코네세타 군이 본진을 공격해왔던 일에 대해서는 여러분 모두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본진 병사들의 분투로 다행스럽게도 적군을 물리치긴 하였으나 그 와중에서 아군 상당수가 전사했고, 그 지휘를 맡고 있던 프델로드 장군 또한 큰 부상을 입어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막사 안에 불편하게 흐르던 침묵을 깨고 안타미젤이 다소 잠긴 듯한 음성으로 운을 떼어냈다. 그 말이 떨어지자 좌중의 분위기는 다시 한번 무겁게 가라앉았다.
총사령관인 안타미젤이 아군의 두 배쯤 되는 적군에게 공격당하는 불상사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에 있던 열 개의 부대 중 어느 누구 하나 적시에 위험에 빠진 아군을 구원하러 오지 못했다. 비교적 안타미젤의 진영 가까이 위치해 있는 콘스피엘 장군마저 적군의 퇴각이 거의 끝나 갈 무렵에야 겨우 도착했으니 다른 부대의 경우는 굳이 운운할 것도 없었다.
더구나 그 공격으로 중앙군의 4할이 넘는 병사들이 전사하고, 그 지휘를 맡았던 프델로드 장군마저 중상을 입고 아직껏 의식 불명 상태에 놓여있는 것을 떠올린다면, 부대 사령관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입장인 것이다.
"중앙군을 맡은 프델로드 장군이 불참한 상황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위한 회의를 소집하게 된 점은 개인적으로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을 이 자리에 불러모은 것은, 사태가 사태이니만큼 여러분의 이해와 협력을 요하는 중대한 사안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 발언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묘하게 불만스러운 기색을 하고 앉아있던 장군 하나가 갑작스럽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말씀 중에 실례합니다. 프델로드 장군의 불참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니 넘어간다 해도, 이 자리에 지원군 사령관이 앉아있는 까닭에 대해서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군요. 전하께서 말씀하신 중대한 사안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얼 의미하는지는 모르나, 그것이 진정 중요한 사안이라면 심도 있는 논의를 하기 위해서라도 더더욱 자리에 무게를 더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 말에 동의하여 의견을 덧붙이는 자는 없었지만, 앉아있는 장수들의 얼굴에는 분명 그에 대한 동조의 감정이 떠올라 있었다. 안타미젤은 솟아오르는 한숨을 억누르며 그들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어냈다.
"내가 이 자리에 그론레이 장군과 뮤켄 장군을 참석시킨 것은, 그들에게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틀 전 전투에서 세운 공훈에 대해서는 제가 굳이 길게 말씀드리지 않더라도, 콘스피엘 장군에게 물으시면 납득이 가는 대답을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우연일지도 모르는 한 번의 공훈으로, 지원군 사령관이 폐하께 직접 권한을 부여받은 저희와 동격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나는 물론 프델로드 장군을 대신하여 본진을 지킨 것만으로도, 그가 이 자리에 앉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리건대, 지원군 사령관의 공훈은 이번 한 번에 국한된 게 아닙니다. 엄호 부대를 지휘하여 카리에른 장군을 후퇴시킨 것부터, 적의 야습을 병력 피해 없이 물리친 것, 그 외 각종 전투의 사후처리에 이르기까지 지원군 사령관과 그 참모장은 이미 여러분만큼, 혹은 그 이상의 몫을 해냈습니다. 그러니 이 일에 대해서는 더이상 왈가왈부하지 마세요."
안타미젤은 단호한 태도로 상대의 말을 끊어버렸다.
"내가 이렇듯 여러 장군들을 한자리에 부른 것은, 앞으로 내가 말하고자 하는 사안에 대하여 조금이나마 여러분의 의견을 수렴하여 모두가 수긍할 수 있을 만한 결론을 도출해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만큼 여러분들도 내가 그런 나의 결정을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나지막하게 울리는 조용한 목소리는 그대로였지만, 주위를 훑어보는 안타미젤의 눈동자는 평상시의 부드러운 빛이 아닌, 흡사 아체프렌에게나 어울릴 법한 차가운 빛을 품고 있었다.
"내가 여러분들을 소집한 것은 다름이 아닙니다. 지원군 편입 당시에도 거론되었던 문제이긴 합니다만, 나는 이 자리에서 그론레이 장군의 거취 문제를 매듭짓고자 합니다."
안타미젤은 짧게 심호흡을 한 뒤 다시 입을 열었다.
"현재 지원군 사령관은 참모부의 일원으로 편제되어 있지요. 하지만 그것은 여러분들도 알고 있듯이 임시적인 직책일 뿐입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총사령관의 직권으로 그론레이 장군에 적당한 자리를 주려고 합니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저희를 불러모으신 이유가 하필이면······.”
안타미젤은 손을 들어 상대의 항변을 막은 다음, 조금 고조된 음성으로 빨리 말을 이었다.
"나는 이 자리에서 세레즈의 군권을 그론레이 장군에게 넘기고자 합니다."
갑작스러운 그의 발언이 미처 머리에 인식이 안 된 모양인지, 장군들은 그저 멍한 시선으로 안타미젤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자신에게 집중된 장군들의 시선을 의연하게 받아내며, 안타미젤은 한층 더 목소리를 높여 딱 부러지는 어조로 같은 내용의 말을 반복했다.
"폰다 대공, 나 안타미젤 폰다 벤 세레스티아는 금일 부로 폐하께서 제게 내리신 세레즈 군 총사령관으로서의 일체의 권리를 미드프레드 그론레이 장군에게 위임할 것입니다."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에 좌중에 있는 부대 사령관들은 반론은커녕 무어라 말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게 갑자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설마 진심으로 그런······."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십여 분 이상의 시간이 흘러간 뒤에야 비로소 하우저 장군이 정신을 차린 듯 물어왔다. 좌중의 몇몇 장수는 아직 꿈이라도 꾸는 듯한 표정이었다.
"순간적인 기분으로 결정한 일은 아닙니다만, 나는 내 이야기보다는 여러분들의 의견을 먼저 들어보고 싶군요. 내 결정에 반대한다면, 장군들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좌측 세 번째 의자에 앉아있던 장군이 입을 열었다. 격한 감정을 필사적으로 억누르고 있는 듯, 말끝이 신경질적으로 치켜 올라가 있었다.
"전하께서 군권을 위임하시고자 하는 상대가 어떤 자인지 몰라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반란 귀족의 후예라는 점은 일단 논외로 둔다고 해도, 저자는 성인식을 겨우 마친 애송입니다. 이번이 첫 출전이라 실적도 없고 경험도 부족하지요. 그런 자에게 어찌 수많은 세레즈 장병들을 맡기겠다는 무책임한 말씀을 하십니까."
한번 반론의 바람이 불자, 좌중의 분위기는 금세 그에 휩쓸렸다. 여기저기서 불만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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