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전야제(前夜祭).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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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짧은 밀월이 끝난 후 5월 14일부터 공식 일정이 시작되었다. 깨어난 나라는 힘차게 기지개를 켰다.
공언대로 정부 쪽엔 인사는 없었다. 대신 황제가 오래도록 장악했던 군부의 수장은 새롭게 임명되었다.
아샤르의 모든 군인은 3개의 군 본부 중 하나에 반드시 소속된다. 군령과 인사, 작전 부문의 군정을 행하는 군령본부(軍令本部)를 필두로 하여, 실전부대인 우주함대를 통솔하는 삼군사령본부(三軍司令本部). 그리고 생산과 보급 부문의 군정을 행하는 통합지원본부(統合支援本部)가 그것이다. 각각 총장, 사령장관, 본부장의 수장이 있어 이들을 삼대장군(三大將軍)으로 부른다.
이 중 삼군사령장관은 우현왕 세라비 유키나 세이야가 내정되어 있었다. 구 1함대 사령관이었고, 원수 바로 아래의 상제독(上提督) 위계를 갖고 있던 젊은 여왕은 군재(軍才)가 출중하다. 이 인사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새롭게 임명된 총장과 본부장은 조금 달랐다.
제복군인의 필두인 군령본부총장으로 내정된 이는, 올해 32세의 여성인 케네리스 아시야다. 원래는 지구의 중령급인 중휘(中揮)였는데, 내전을 기회로 이미 4단계나 승진했었다. 좌현왕 시절 칼스의 참모장이었으며 이후 정제독의 위계로 총장 대리를 맡고 있었다.
하지만 삼대장군의 위계는 무조건 원수(元帥)인지라, 자리에 맞추기 위하여 그녀는 다시 대제독과 상제독을 뛰어넘어 3단계를 승진했다.
제국 역사에도 고작 30대에 원수에 오른 이는 거의 없다. 당연히 이야깃거리가 되어버린, 옆에 따라붙는 젊은 원수를 향해 황제가 눈을 찡긋했다.
“논란에 대해서는 능력으로 입증하라. 그러면 된다.”
“저는 그동안 함대사령관들보다 아래였는데요.”
아샤르인으로는 다소 평범한 외모였지만 또한 인상적인, 청록빛 눈의 그녀는 조금 불안한 표정으로,
“...작전을 얼마만큼 따라줄지...”
“쿠라프와 도트로이, 야베타는 아무 말 안 할 거고, 문제는 1함대의 비로르인데, 예편원이라고? 내 참...”
황제는 소리 내어 혀를 찼다. 총장이 조심스레,
“그는 비록 폐하의 휘하에서 싸웠지만, 전 황제 폐하의 친위함대 출신 아닙니까. 엄연히 구 황태녀 파였고요. 그러니 말씀하신 대로, 아코르 공작(公爵)을 승진시켜 1함대 사령관으로 발령했습니다만, 그래도 이 중요한 때에 1개 함대, 그것도 선봉이 될 함대인데 전력누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누님이라면... 뭐, 잘 해내겠지.”
뒤에서 따라가는 루이코는 거의 알아들 수 없었지만, 대충 분위기를 보아서는 황제에게 감히 사보타지를 펼치는 사람도 있긴 있는 모양이었다. 역시 황후가 우려한 대로, 아직 그의 기반은 다소 취약한 걸까.
황제가 처음으로 주관하는 군 회의다. 삼대장군 이하 각 함대 사령관들과 참모장들이 총 집결하는 자리인데, 초반부터 공석이 생기니 황제도 씁쓸할 것이다.
“다른 자들은?”
“우현왕께서 잔뜩 힘을 주고 계신 지라, 그 외에는 동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들어가면...”
“상관없다. 조만간 사라질 의혹인거야.”
일행은 회의장에 입장했다. 안에는 길고 모서리가 둥근, 오목렌즈처럼 가운데가 들어간 큰 탁자가 있고, 족히 수십 명의 사람들이 일어서서 황제를 맞이했다.
다들 팔찌를 벗어 의자 팔걸이의 접속부에 끼운다. 자리에는 개인용 단말이 장치되어 있지만, 보안을 위해 접속 권한은 개인의 팔찌에 의존한다. 즉 팔찌는 암호 키에 해당한다.
루이코는 팔찌를 빼면 대화가 불가능하다. 때문에 작은 공책 크기의 특별 단말이 주어졌다. 익숙해지니 생각만으로 노트북으로 하던 것처럼 작업할 수 있다.
그녀가 회의에 따라온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되도록 많은 자리에 참석하고, 이들의 생각도 들어보고 또한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자신은 이들에 접촉한, 아마도 최초의 지구인이다. 자신의 기록은 이 두 문명의 충돌, 그 소중한 흔적이 되겠지. 그녀는 각오를 다지며 황제의 바로 옆, 특별히 마련된 의자에 당당히 앉았다.
황제가 서두를 떼었다.
“자, 그럼 회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오전의 국정회의 결과를 확인한다. 일단 지구 침공은 확정이고... 세부 사항에 대해선 공지가 갔을 것이다.”
총재를 필두로 주요 관료들이 참여하는 국정회의에서, 이후 지구에 요구할 6개의 주요 사항이 모두 결정되었다. 지구 내 일정 영토 할양과 우주 독점권, 황제의 지구 성왕 칭호 획득과 UN에서 상임이사국을 차지하는 것. 그리고 제한적인 내정간섭권리가 골자였다.
이 회의에는 루이코도 참석했지만, 사전 협의가 관계자들 사이에서 있었는지 그냥 확인 절차에 불과했다. 또한 황제는 자신에게 한 마디도 묻지 않아 그녀는 어떤 의견도 내놓지 못했다.
이쯤 되면 받은 권리가 의미가 있을까 생각이 든다.
“조정에서 결정했으니 군부는 세부 지침을 세운다. 우선 각 함대의 전력을 정비한다. 이 부분은 통합지원본부에 맡기겠지만,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리려나?”
통합지원본부장인 엘리후 로이아드 원수가 답했다.
“로사와의 연계를 통해 뽑아본 결과, 못해도 보름은 필요합니다. 각 함정들의 세세한 점검, 생산 시설의 재가동과 군수물자들의 비축 등을 감안하면 말이죠.”
그는 올해 46세. 2함대 사령관인 쿠라프와 동갑으로 이 중에서도 나이가 많은 축에 들어간다. 그래도 역대 원수급 중에서는 아주 젊은 축이다.
황제가 끄덕였다.
“경이 보름 걸린다면 걸리는 거겠지. 가용 전력은?”
“등록된 전력은 군용 함정 32,542척, 병력은 542만 7,400명입니다. 실제 가용 전력은 다소 줄어들겠지만 큰 차이는 나지 않겠죠.”`
루이코는 기겁했다. ...3만...?!
잠시 탔던 전함 카라카스의 크기가 생각난다. ...그런 게 3만 척이나 있다고?
“적네...”
황제가 찌푸리는 바람에 루이코는 두 번 놀랐다. 엘리후 원수도 마주 찌푸리며,
“네. 내전 전의 등록 함정 수는 4만 8천 정도였고, 도합 700만 병력이 있었으니까요. 3년간 복구했다고 해도 이 정도가 고작이죠.”
케네리스 원수가 말을 보탰다.
“지구 전력도 그동안 로사가 파악했습니다만, 이 전력으로 어느 정도 압도적인 승부가 가능할지... 좀 더 정확한 자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겠지. 그래서...”
황제는 쓰게 웃으며,
“간단하게 탐색전을 할까 한다.”
“탐색전... 말인가요?”
“그렇다, 총장. 이대로 침공해도 되지만, 그래서야 없던 용기도 불어넣고 덤벼들지도 몰라. 그러니, 우리도 정보를 얻고 저들에게도 우리에 대한 정보를 주고. 그러면 쓸데없는 추가 유혈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2함대 사령관 쿠라프가 턱수염을 매만지며,
“그냥 숫자로 보여주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물론 지상의 기술 발전 수준은 우리 예상 이상이긴 합니다. 핵병기까지 보유할 줄은 생각하지 못했으니 그건 경계해야 할 겁니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 전기(電氣)기반 문명입니다. 무력화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겠죠. 괜히 선제 침공의 오명이나 쓰느니, 함대를 포진한 후 조건을 들이밀어 강요하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비야르 아사카와.”
부르는 소리에 루이코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황제는 담담히 웃으며,
“지구인 입장에서, 물론 이번 침공은 물론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지금 소감이 어떤가?”
“제 생각 말입니까?”
사실상 첫 질문으로, 가슴에 품은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다. 루이코는 잠시 생각하다,
“말씀대로 마음에 들지 않죠. 그리고... 침공은 침공이지요. 저희 입장에서는 여러분들은 침략자고, 피를 흘리는 순간 ‘흉악한’ 침략자가 될 겁니다.”
몇 명의 불편한 헛기침이 낮게 울리는 가운데, 루이코는 다시 말을 이었다. ...결코 질 수 없다.
“제가 몇 가지 권한은 받았지만 그래도 이 전쟁을 막을 수는 없을 거예요. 하지만 피하려는 노력 자체를 요구할 처지가 된다면 반드시 요구하고 싶습니다. 더불어... 만약 정말로 피를 흘린다면 최소로... 바랍니다.”
“그런 거다.”
황제는 고개를 돌려,
“침공 그 자체는 이미 변명할 수 없어. 그렇다면 상대의 전력을 정확하게 알아야, 과도한 화력을 쓰는 일을 줄일 수 있겠지. 그러니 첫 싸움으로 쌍방의 전력격차를 확실하게, 서로 확인한다. ...물론 이 싸움의 희생자는 상당히 나오겠지만 또한 각 군에도 명분이 서잖아. 봐라, 굳이 함포나 폭뢰 같은 강력한 화력을 투입할 것도 없지 않은가. 주력은 전투기와 무인 병기로도 충분하다. 그런 식으로 말이지.”
지구 전력에 대한 페이퍼 스펙은 아샤르도 갖고 있지만, 다수의 핵무기의 존재는 아샤르 군인들에게도 제법 경계 대상이다.
물론 핵병기라 해도 위성궤도상에는 거의 닿지 못하고, 장거리 발사체도 많지 않으며 또 무력화 수단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미지의 것임은 분명하다. 그에 따른 막연한 의심과 공포감은 설득해서 지울 수 있는 레벨은 아니다. 덕분에 처음부터 압도적인 전력으로 밀어버리자는 매파도 분명히 존재한다.
때문에 미리 한 번 싸워 적에게는 공포를 통한 항복 유도를, 아군에게는 적의 세력에 대한 과도한 경계를 풀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도, 싸우지 않는다면 가장 좋지요. 저들이 항복할 가능성은 정녕 없을까요?”
쿠라프의 반문에 황제는 씁쓸히 고개를 저었다.
“짐은 물론, 로사의 판단 역시 아주 부정적이다. 하나의 문명은 종교와 같아. 그 어떤 종교도 처음 등장하면 기존 종교의 탄압을 각오해야 하듯이, 문명도 마찬가지야. 충돌 없는 융합은 있을 수 없어. 게다가 사람은 새로운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 상상 이상 배타적이거든... 쿠라프 자네는, 저들과 같은 처지에 놓이면 싸우지 않고 항복하겠나?”
중년의 제독과 황제는 아이처럼 혀를 빼물었다.
“아뇨. 싸울 겁니다.”
“그러니 싸움은 필연이라고 보는 거다. 다만 향후 정치적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 100만이 죽나 1억이 죽나 사람이 죽는 문제라는 건 같지만, 그래도 전자가 차라리 나은 거다.”
황제는 어깨를 으쓱하며,
“그러니 이 강행정찰, 쌍방의 전력 격차를 상호 확인하는 그것으로 지구 측에는 쓸데없는 저항을, 우리에겐 과도한 공격을 자제시킨다. 이후 내려질 포고에도 나름 명분이 생기는 것이고...”
“포고의 내용은 알고 있습니다만, 그렇다면 군의 행동이 상당히 제약되겠는데요.”
진한 검붉은 머리의 한 여성이 말했다. 계급장은 대제독에 휘장은 함대사령관이다.
“그렇겠지. 하지만 해내야 한다. 아코르 대제독.”
황제도 쉽게 인정했다. 확실히 이런 방식의 전쟁은 그들도 처음이다. 사실은 전쟁이라 부르기도 뭣하다.
“매우 번거로운 작전이 될 겁니다.”
“그걸 위해 군령본부가 있고 총장이 있는 거니까.”
전략적인 작전권은 군령본부가 갖고 있고, 전시에 한해서 그 군령은 칙명과 동등한 권한이 있다. 군의 모든 행동을 제어할 서른 두 살의 원수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케네리스는 제장들에게 조금 고개 숙여,
“조정의 방침을 충분히 고려하겠습니다.”
“사령장관 역시 군령본부의 지침에 잘 따르도록.”
“솔선수범하겠습니다.”
우현왕 유키나도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총장에 이은 서열 2위다. 원래 그녀를 총장에 임명하려 했지만 실전이 적성이라 황제도 어쩔 수 없었다. 또한 우현왕이 앞장서서 군령을 따른다면 최고의 모범이 될 것이다.
대신 전술적인 부분에는 충분한 재량권이 주어져 있고 제국군 최고사령관, 그 대리의 칭호까지 부여된다.
황제의 대리 칭호까지 준 이유는 군기 때문이다. 제국군의 군기가 엉망이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신임 총장에게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그러니 세운 작전을 정확하게, 무리 없이 실행시키려면, 실행자에게는 여차하면 장군의 목을 칠 수도 있는 재량권이 필요했다. 어디까지나 칭호이긴 하지만 효과는 있을 것이다.
더는 반대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없었다. 그들도 지구 전력은 알아보고 싶었다. 사실 별로 기대하진 않지만 말이다.
“그럼 차후 진행을 이야기하자면, 우선...”
탁자의 중앙부에 입체 화면이 솟아오른다. 지구의 모습이 보이자 루이코는 생각했다.
4광년이나 떨어진 이곳에서 보는 지구는, 눈물이 조금 날 정도로 아름답다. 평소에는 전혀 깨닫지 못했던, 하지만 떠나온 고향은 이렇게 예쁜 별이었다.
그리고 조만간 붉게 타오를 푸른 별. 그게 지구다.
황제가 말했다.
“먼저 우리 존재를 드러낸 다음, 적절한 때를 보아서 짧게 교전한다. 설령 교전하지 않더라도 뽑아낼 수 있는 자료는 전부 뽑아낼 거고, 이 자료는 먼저 수립한 작전에 반영한다. 작전이 최종 결정된 이후엔 전군이 지구 궤도로 이동할 거고, 교전할 군의 규모는... 전대까지는 필요 없고 강습전함 한 척이면 될 거다.”
“단 한 척으로... 말입니까. 괜찮을까요?”
“충분해. 전투도, 도망도 모두 고려하려면 다수는 오히려 방해야.”
그 이후에도 몇 가지 사안을 더 이야기했지만 루이코가 느끼기에는, 황제와 신하들의 근엄한 회의라기보다는 차라리 어느 회사의 팀장 회의와 비슷한 분위기였다. 황제라 해도 예우를 받을 뿐, 부하들도 그리 말을 아끼진 않는다.
루이코는 모든 이의 얼굴을 차근차근 살펴보았다. 이들 대부분은 지난 내전에서 그의 휘하에서 싸웠던 사람들이라지. 분명 호흡도 잘 맞고 상하소통도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선제 침공에 대해서 부끄러워하고나 있을까. 일부러 싸움을 건다는 이야기를 너무나 쉽게 하고 있다. 역시 이들은 지구에 있어서 재앙일 뿐일까.
얼마 전에는 그의 말과 포부를 듣고 가슴이 뛰기도 했지만, 실제로 바로 옆에서 전쟁준비가 착착 진행되는 것을 보니 또 달라진다.
정말은 괴로워서 잊고자 했던 미래. 그래서 그의 달콤한 말로 그저 덮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나는... 이 자리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저들의 한 패로 역사와 사람들에게 인식될 것이다. 하물며 후궁 같은 거라도 되기라도 한다면, 분명 부와 권력을 위해 세상을 팔아먹은 여자로 낙인찍히겠지. 아무리 각오한대도 그런 비난은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조금은 힘이 생기고 대우를 받지만 나는 보통 사람일 뿐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그가 내게 무언가를 물어주고 또 내가 대답하는 그것으로, 앞으로 흘릴 피는 조금이나마 줄어들지도 모른다.
신이 있어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의미를 주었다면, 이것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거듭 약해지는 마음을 붙잡아냈다.
수고하셨어요.
- 작가의말
다음 장은 1권 초반에 언급되었던, 본격 침공 전에 있었던 항모전단 궤멸사건입니다만, 전투씬... 밀리터리는 힘들더군요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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