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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왕k님의 서재입니다.

리어스(Re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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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왕k
작품등록일 :
2014.01.14 00:13
최근연재일 :
2021.06.12 14:54
연재수 :
380 회
조회수 :
574,020
추천수 :
9,808
글자수 :
3,615,518

작성
14.02.08 00:12
조회
2,041
추천
54
글자
66쪽

Ⓡ 8장. 세상의 끝에서 진심을 외치다.

한 권이 끝날 때, 가슴에 남는 글이 되길 바랍니다.




DUMMY





“오빠니까, 지켜주길 바래요. 떼쓰고 울고, 그렇게 해도 싫증내지 않고 지켜주길 바래요. 할 수 있겠어요?”


병상의 황후가 내민 손을 잡으며, 너무도 어렸던 왕자님은 아이답지 않게 다짐했다.


“제가 살아있는 한 지켜줄게요. 누구보다도 강해져서 이 아이를 지켜줄게요. ...그러니 울지 마세요.”


그리고 많은 일이 있었다. 처음으로 만났을 때 나는 떼도 쓰고 울기도 했지만. 그는 약속대로 싫증내지 않고 헌신하며 돌봐주었고, 종국엔 내 목숨까지 구해주었지. 그래서...


금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을 깨닫고, 그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 무척 노력했지만, 결국 그는 날 사랑의 대상으로는 보지 않았다.


몇 번이고 질책 받고 거부당해도 포기하지 않았지. 하지만 내 집착은 그를 떠나게 했고, 전혀 의도치 않았지만 그의 그녀도 죽게 만들었다.


그는 원망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럴 리가 없잖아...!


그래서 그때 내게 그렇게 대한 것이겠지. 내게는 무척이나 수치스러운 일이었지만, 또한 그 화를 돋운 것은 나니까. ...그도 사람이니까...


그래서 금방 용서했다. 오히려 그의 상처를 가볍게 들쑤신 자신을 원망하며, 한동안 얼굴을 볼 생각도 하지 못했지.


하지만 다시 만난 그는 너무나 차가웠고, 섭섭한 마음에 맞받아치자 감정의 골은 순식간에 깊어졌다.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그를 원망하며 눈물짓던 도중, 마치 기적처럼 하나의 길이 보였다.


우주의 저편, 세상의 끝에서 수천 년을 홀로 기다린다. 무척 길고 괴롭고 힘든 길이었지만 기꺼이 택했다.


시간이 지나면 알아줄지도 몰라.


기다리다보면 돌아봐줄 날이 있을지도 몰라.


그 대신...


살아가는 동안 내 표정을 가다듬지 않으면 안 돼. 너무 기뻐하면 그는 매몰차게 나를 밀어낼 거고, 너무 미워하면 그는 오래 머무르지 않겠지.


그러니 담담하게, 되도록 조용하게... 서로 불편하고 어색하겠지만 그렇게 무심히, 무심한 척 그를 맞아들이고 또 보낼 준비를 해야지. 조금이라도 자주, 오래 볼 수 있도록...


하지만 그도 이제 너무나 지겨웠는지, 오랜 약속도 저버리고 완전히 내 곁을 떠날 생각을 한다. 너무도 잔혹한 말만 남기고 떠나가려 한다.


이리 억지를 쓰면서까지 나를 몰아붙일 정도로, 그는 그렇게 지겹고 힘들었을까? 그동안 지구에서 너무 고생했으니까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내가 왜 기다렸는데...! 어떻게 이 긴 세월을 견뎌왔는데...!


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꺼이 싸움을 받아들인 그는 웃으며 여유롭게 따라온다. 드디어 내게서 벗어난다는 생각에 즐거운 걸까. 아니면 여전히 내가 투정부리고 떼를 쓴다는 생각에 어이가 없는 걸까.


나는 당신을 갖지 못했고 마지막까지 버림받았지만, 여기서 쓸쓸히 늙어죽는 것보다는 이게 차라리 나아.


당신은 나를 어떻게 기억해줄까? 최후까지 추하게 매달렸던 못난이일까. 아니면, 그래도 옛정이란 이름으로 가끔씩이라도 아프게 기억해줄까.


그것은, 내가 이 싸움에 얼마나 진심을 보여주는가에 따라 달라지겠지. 나는 항상 약자였고 패배자였지만, 마지막의 마지막인 이 순간에는... 더 이상 그에게 약해지지 않을 거야.


내 손은 이제 더 이상 떨리지 않아...!




무언가에 몸이 밀려나는 듯 묵직하면서도 온몸이 시큰거리며 신경이 떨리는 느낌. 바로 능력자들끼리 감지되는 영압(靈壓)이다.


이제 고작 병아리인 루이코조차도 이렇게 강렬하게 느낄 정도로, 그저 대치할 뿐인 두 사람의 힘은 이미 상대를 격렬히 노리고 있었다.


“하나 묻자."


칼스가 운을 떼었다.


“결과가 빤한 싸움을 강행하는 이유가 뭐냐?”


“나도... 르아냐에서 놀고만 있었던 것은 아냐.”


세리사는 칼끝을 들어 겨누었다.


“당신이래도 쉬운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을 거야.”


“퍽이나."


그가 비꼬듯 혀를 빼물었다.


“쉽게 이기든 고전하든 결과는 같아. 나는 네 승산을 묻는 것이 아니다. 죽을지도 모르는, 하필이면 무기 승부를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 거야.”


“왜? 겁먹었어? 아니면, 항상 아래로 보던 내가, 이렇게까지 나오니 그게 그렇게 우스워? ...얕보지 마...!”


그들은 맨손으로도 충분한 파괴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무기를 든다는 것은 서로를 죽일 각오로 싸우겠다는 무언의 약속이다. 이제는 다툼이 아니라 결투다.


그는 드디어 끄덕였다.


“아무래도 진심인 것 같긴 한데... 뭐, 좋아.”


칼스는 오라는 듯 왼손을 까닥거렸다. 그에 화답하듯 세리사의 오른발이 약간 뒤로 물러섰다.


긴장감이 공기를 팽팽하게 달리고, 루이코의 옆에 있던 유키나가 마른 침을 삼키는 소리도 들린다.


격돌은 순식간이었다. 거리가 좁혀지는 것도 루이코는 보지 못했다. 흡사 트럭끼리 부딪히듯 거대한 충격음에 이어 폭풍 같은 바람이 밀려들었다.


유키나가 손을 가볍게 흔들자 무형의 무언가가 주변에 둘러쳐진다. 그것에 막혀 거센 바람이 지나가고, 조금 움찔한 루이코는 눈을 감았다 다시 떴다.


바람이 걷힌 그곳, 원래 칼스가 서 있던 그 자리에는 두 사람이 부딪혀 정지하고 있었다. 앞으로 뛰어나가며 맹렬히 검을 휘두른 세리사의 검은, 단지 들어 올렸을 뿐인 칼스의 검에 이미 막혀 있었다.


“이 기세... 진심이군...?”


그가 빙긋 웃었다. 재미있어 보이기도, 허탈해보이기도 한다. 흡사 딸아이의 장난스런 발차기에 정강이를 까인 아버지의 표정이다.


세리사는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소리쳤다.


“아직 멀었어...!!”


이어 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졌다. 흡사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순식간이다. 남겨진 것은 그저 땅이 움푹 들어간 자국뿐.


어디로...? 루이코는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급히 유키나를 돌아보자 그녀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루이코도 따라 바라보았다.


두 개의 빛이 된 그들은 마치 섬광처럼 움직였다. 짧고 둔탁한 굉음과 함께, 불꽃처럼 빛이 튀고 풍압이 밀려와 땅을 울린다.


“굉장해...”


루이코가 실눈을 떴고, 질린 듯 쓰디쓴 표정의 유키나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승부는 뻔해...”


“...그가 이기는 건가요?”


여왕이 대답하지 않자 재차 루이코가 물었다.


“설마... 황태녀가 죽기라도 하는 건 아니겠죠?”


대답하는 대신, 순간 여왕이 조금 움찔거리더니 급히 손을 뻗었다. 루이코도 뭔가 싶어 당황하는 순간, 유키나는 두 사람을 낚아채며 앞으로 뛰쳐나갔다.


두 팔을 기묘하게 움직여 빛의 장벽을 전개한 유키나. 하지만 무형의 보호막으로 방어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찬 바람이 덮쳤다. 루이코는 재빨리 하루를 껴안고 땅바닥으로 뒹굴었다.


“미안. 좀 늦었어.”


유키나의 목소리에 루이코는 다시 눈을 떴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미 두 사람의 싸움이 접근해 있다.


세리사의 검이 칼스의 검을 찍어 누르듯 밀어 붙이고 있었다. 이 기세는 실로 대단한지, 땅바닥에 등이 닿을 정도로 밀린 칼스도 잠시나마 움직이지 못했다.


“...이 거리라면...!”


세리사의 목소리. 이어 그녀의 왼손 검지가 그의 미간을 향했다. 루이코는 기겁했다. 이 기술은...?!


유키나가 이걸 썼던 순간 산이 하나 우습게 날아갔다. 이런 게 여기서 터진다면...?! 하지만 칼스는 비웃듯,


“아직 멀었어...!”


그가 몸에 힘을 주었다 싶은 순간 섬광이 튀었고, 회심의 일격을 채 날리기도 전에 세리사 쪽이 튕겨나갔다. 빛에 둘러싸인 채인 그녀는 세차게 굴러, 광대한 풀밭을 그야말로 긁어내면서 인접한 숲까지 밀려났다.


밀폐된 공간에 굉음이 울리고 흙먼지가 뭉게구름처럼 일어난 순간, 르아냐의 사방을 비추고 있던 풍경이 갑자기 사라졌다. 은백색의 벽이 그대로 드러난 그 표면에는 진주가루가 반짝이는 듯 옅은 빛이 덮고 있다.


“경고. 규정 이상의 충격량이 감지됨에 따라 보호막 전개, 이어 긴급체제로 전환합니다. 반복합니다...”


로사의 목소리가 팔찌를 통해 뇌리에 울린다. 그럴 만도 할 것이, 지금 것만으로도 이 거대한 르아냐를 통째로 뒤흔드는 충격이다


칼스는 그대로 몸을 돌려 풀이 솟아오른 바닥을 밟았다. 산을 우습게 부수는 일격을 퉁겨내고 세리사를 저만치나 밀어버렸음에도, 그는 힘든 기색도 없이 태연히 소리쳤다.


“어서 일어나. 그 정도로는 뻗지 않겠지.”


그에 답하듯, 아직 흙먼지가 이는 숲에서 빛 덩어리가 하나 솟아올랐고 이내 다시금 칼스 앞에 섰다.


세리사는 이미 거칠어진 숨을 몇 번이고 내쉬었다. 아름답게 정돈되었던 머리카락도 꽤나 흐트러졌고, 이마에는 조금이지만 땀도 맺혀 있었다.


그만큼이나 맹렬하게 구르고 처박혔음에도, 보호막 덕에 아직 상처는 없고 옷도 거의 구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서로의 호흡만으로도 우열은 명백했다.


그는 비웃음을 날렸다.


“용케 상처는 피했지만, 역시 격차는 확실하지?”


숨을 고른 세리사는 다시 검을 고쳐 잡았다


“...힘을 아끼고 있는데...? 대체 무슨 동정이야?”


“동정은 무슨... 좀 놀아주는 거지. 죽이든 살리든 그런 건 언제든지 할 수 있고...”


빈정거리는 그에게 황태녀는 냉소로 답했다.


“어디 제대로 해보시지...? 약혼녀도 직접 죽인 당신 아니었어? 나 따위는 너무 쉽겠지?!”


그가 흠칫하고 유키나는 낮게 탄식했으며, 경악한 두 지구인 여성은 주변을 두루 둘러본다.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않은, 그 말이 사실임을 이미 직감한다.


루이코는 갑자기 벌레 씹은 표정이 된 그를 주시했다.


비록 지금은 얕은 신뢰나마 잃어버린 상태지만, 그 마음 한 구석에는 한 여자를 그리워하는 인간다움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기 여자를 스스로의 손으로 죽이다니..?


대체 어떤 죄를 지었던 걸까. 아니, 죄가 있다고 해도 굳이 그렇게 해야 했을까...?


멍청할 정도로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루이코를 슬쩍 눈짓하던 그는, 이제껏 보여주지 않았던 적의(敵意)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죽으려고 기를 쓰는군. 내 앞에서 아미에를 함부로 들먹였다가, 혼이 날 대로 났던 걸 잊어버렸어?!”


씹어 뱉듯 말하는 표정은 심하게 일그러져 있다. 하지만 세리사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용서? 당신이 한번이라도 나를... 다른 사람처럼 대하고 용서한 적이 있어...? 당신의 그녀도, 당신의 소중한 것을 빼앗은 자들도 다 용서한다고 했으면서, 나는 그렇게 잘못했다고 빌었는데도 용서하지 않았잖아? 항상 당신은 내게만 엄격했잖아?”


분노를 토하던 목소리에 어느새 비탄이 섞인다.


“이번도 그래. 평생을 이렇게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뭐가 나아? ...차라리 죽여. 날 죽이고 제위든 여자든 마음대로 차지하라고!”


“정말 죽을 각오라도 하는 거냐? 내게 덮어씌우기 위해서 목숨까지 버린다는 거야?”


칼스는 조금 당황한 기운이 역력했다. 아무리 먼저 칼을 뽑아 들었다 해도, 황태녀를 죽게 만들었다면 뒤끝이 좋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영자봉인은 그들 3인의 영자력으로 건 것이다. 그들 중 하나라도 죽거나 빠진다면 제국 봉인령 자체를 풀 수가 없다. 나라가 없는 황제가 무슨 소용일까.


반대로 세리사에게는 어쩌면 최고의 한 수인 셈이다. 스스로의 생명을 담보로, 그녀는 자신의 의지도 보이면서 가장 안전한 방법을 택한 셈이다.


“당신 손에 내 피가 묻는다면, 당신은 나중에라도 조금은 후회하거나 죄책감을 느낄까? 그렇게 만들 수 있다면, 이곳에서 너절하게 이어온 내 목숨도... 조금쯤은 사용처를 찾을 수 있겠지...?”


“어이없군...”


그가 고개를 내저었다.


“너는 르아냐를 언제든지 벗어날 수 있었어. 네 정당한 자리를 기꺼이 차지하겠다는, 그 말 한 마디를 할 용기가 지금껏 없었으면서... 죽음을 각오한다는 그런 말에 과연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당신도 알잖아...! 나는...! 할 수 없어.”


“그게 틀려먹었다는 거야. 정치란 건 그런 거다. 모든 이를 만족시킬 수도, 한 명도 해치지 않을 수도 없어. 한 명을 해치면 성군, 백만 명을 해치면 폭군이지. 그리고 그건 네 몫이었어. 책임 방기가 아니냐는 거다.”


그의 손가락이 뻗어졌다. 뭔가를 쏘는 건 아니지만 훨씬 살벌했다.


“애당초, 네가 제위를 포기한 시점에서 모든 게 꼬여버렸어. 원하지도 않은 길이었다, 억울하다, 나도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그렇다면 지금껏 너를 위해 노력하고 기대한 모든 사람들은 뭐가 되냐. 네가 지금 날 비난할 자격이 된다고 생각해...?”


통렬한 반격에도 세리사는 허탈한 웃음으로,


“그럼 지난 세월 동안, 이렇게 허약하고 자격 없는 나에게 왜 자리를 양보했어? 당신도 힘들고 어려운 자리인 것을 아니까 싫어했던 거잖아. 그리고... 나도 이곳에서 즐겁게 보낸 건 아냐. 그런데 이렇게 억지를 쓰고 싸움판까지 만들어가면서, 다시 내게 책임을 물어야겠어? 대체 이유가 뭐야?”


“그게 그렇게 불만이었냐.”


쯧, 혀를 찬 그가 조금 웃었다.


“정 그렇다면 하나쯤은 철회해주지. 어차피 너희 둘이 같이 있어도, 날 칠 정도의 힘은 없을 테니까. 유키나는 앞으로 르아냐에 상주해도 좋아. 옛정을 생각해서 베푸는 마지막 선심이지. ...이걸로 됐냐?”


“그럼 당신은? 앞으로 유키나를 보지 않을 생각이야? 당신에게도 소중한 동생 아니었어?”


“필요하다면 지구로 불러내면 되지. 요는, 나는 너만 다시 보지 않으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이야기야.”


“왜 이렇게 나를 미워해...?”


“피차일반이지. 왜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잡아? 너, 나를 미워하는 것 아니었냐?”


살짝 고개가 꼬인 그가 물었다.


“아니면 사실은... 아직 미련이 남아 있으면서도, 그 자존심에 걸려서 미워하는 그런 척이나 했던 거야? 유키나는 남겨둔다고 했잖아?”


세리사는 입을 꾹 다물고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는 은근히 재촉했다.


“말해봐. 어느 쪽인지. 정말 미워했는지, 아니면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쌀쌀맞게 구는 척만 한 건지. 대답 여하에 따라서는, 떠난다는 말도 같이 철회해줄 수 있어. ...그러니 솔직하게 대답해라.”


그녀는 심하게 망설였다.


여전히 미워한다고 대답하면, 그는 자신을 때려눕히고서라도 떠나간다. 그리고, 사실은 미워하지 않았다고 말한대도 아마도 그는 떠나가겠지.


두 가지 대답 모두... 그를 잃게 되잖아...


“대답을 회피한다면, 그 자체로 내가 모욕으로 받아들일 거다. 그때는 바른 대답을 해도 늦어.”


그는 재차 강요했지만 입술을 문 그녀의 답은 없었다.


“결국은 이런 거지.”


그는 문득 실소를 흘렸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이 나약함은 어쩔 수가 없구나. 뭐, 좋아. 나는 나간다. 영원히 안녕이다.”


장난치듯 검을 돌리면서 그가 뒤돌아서려는 찰나, 비로소 그녀가 뭔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목소리가 낮다.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라고...?”


“...만약 거짓이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거야?”


고개를 드는 그녀의 눈가는 이미 잔뜩 젖어있다. 헛웃음을 토한 그가 물었다.


“...왜 그랬니?”


“그게...”


결국 그녀는 사실을 토로하고 말았다.


“이미 갈라선 우리잖아. ...그러니 내가 차갑게 대하지 않으면, 당신은 내가 다시 매달릴까봐 르아냐에 오지 않을 거잖아. 그래서...”


아무도 없는 이 공간은 그야말로 세상의 끝. 끝까지 몰린 자신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많지 않다. 그러니 참고 기다리면 그도 마음을 돌릴 때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려고 했지만 차마 하지 못한 말. 그것은 다시 거부당할 것이 뻔한, 아직도 당신을 사랑한다는 진실의 말.


그 대신 말해버린, 작지만 잔혹한 거짓말. 그것은 당신을 떠나보내지 않기 위한, 여전히 당신을 미워한다는 위선의 말.


이 어긋남을 바로잡기 위한 기회는 그동안 오지 않았다. 또한 막연한 기다림은 어떤 변화도 주지 못함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완전히 그를 잃는 것보다는 낫다. 그렇게 생각하고 오랜 세월 참아왔었다.


칼스는 승리자의 표정으로 웃었다.


“내 참. 여자의 자존심은 어리석군. 솔직하게 말했다면 서로 편했을 텐데...”


세리사는 조금 눈을 크게 떴다. 어쩌면... 어쩌면 조금은 그의 마음이 풀린 것일까...?


하지만 그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져, 이어진 말은 그녀의 마지막 자존심까지 철저하게 짓밟아버렸다.


“하지만 이걸로 더 남아 있을 생각이 없어졌다.”


“...어째서?”


세리사의 당혹감에 그의 허탈함이 부딪혔다.


“어째서긴... 나도 내가 한 짓이 있으니, 그것 때문에 미움 받는다 생각하고 이제껏 갖은 냉대도 즐겁게 참아 넘겼지. 허나 이 정도로 아직 내게 미련이 있는 걸 알았다면, 나도 좀 더 큰소리를 치며 살았을 텐데. 왜 그리도 네 눈치를 봤는지 억울할 정도야.”


“...만약 내가 당신에게 살갑게 대했으면, 당신이 더 싫어했을 거잖아...! 내가 어떻게 했어야 했어?”


“그러면 끝까지 티를 내지 말던가. 하필 발끈해서 시비를 거는 바람에, 어쩌니? 본심을 이렇게 드러내서? 그동안 쌓아온 도도함이 단번에 무너졌는데?”


“그건 이유가 있었다고... 말했잖아...!”


“늦었어. 줄곧 가식이나 부려온 너에게 새삼 무슨 진심을 기대할까. 약속대로 유키나는 남겨둘게.”


그는 매섭게 돌아서며,


“괜히 쓸데없이 미련 갖지 마라. 추하단 말이야. 나는 울고불고 떼나 쓰는 여자는 딱 질색이니까.”


결국 세리사의 손에서 장검이 떨어졌다. 이제는 무슨 수를 써도 그를 막을 수 없다는 생각에, 다리에 힘조차 풀렸는지 진흙인형이 무너지듯 무릎이 꺾이며 주저앉아 버린다.


...나는 이대로 그를 영원히 잃게 되는 건가...!


“정녕... 이렇게 할 거야? 난... 어떻게 해야 해?!”


그녀는 통곡처럼 외쳤다.


“이렇게... 아무도 없는 곳에서... 기다리는 사람도 없이, 찾아줄 사람도 없이 살아가라고...?!”


돌아온 말은 여전히 삭풍이 흘렀다.


“이건 미련을 끊지 못하던 네 탓이야. 그냥 주어진 자리나 냉큼 차지했으면, 그래도 그 때의 나는 네게 충성했을 거야. 그러면 오늘 같은 날은 오지 않았잖아.”


그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승부는 아직 가리지 못했지만 어차피 결과는 같아. 그러니, 승자의 권리로 나는 내 자유를 얻을 것이다. 그 증표로...”


그가 내민 손바닥에서 작은 빛이 솟아오른다. 잠시 형체를 유지하던 덩어리가 거품처럼 사라졌다.


“내 몫의 영자봉인은 해제하지. 내가 없어도 나라를 여는 것에는 지장 없겠지. 이것으로 나는 모든 인연을 끊어낸다. ...유키나, 뒷일을 부탁해.”


유키나가 고개를 끄덕였고, 그도 무언의 눈빛을 조금 준 후 뒤돌아서서 루이코에게 다가왔다.


“너희 둘, 나와 같이 지구로 돌아가자.”


드디어 집에 갈 수 있는 건가. 그건 기쁘지만... 저렇게 절망에 빠진 한 사람을 그냥 놓아두고...? 루이코는 엄청나게 망설였다.


가기 전... 사과는 물론 무언가 위로라도 하지 않으면, 그 동안 받은 호의를 망각하는 것이 되잖아.


한편 의아함도 문득 들었다. 이 녀석, 바란다는 황제 자리는 어찌하고...?


하지만 의문을 정리할 시간은 없었다.


“...잠시만...”


엎드리다시피 주저앉아, 이 처지를 견디려는 듯 풀이 촘촘하게 자란 땅을 움켜쥐던 세리사가 입을 열었다.


“...가기 전에 하나 대답해 줘.”


“뭔데...?”


그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건성으로 받았지만,


“...그 때 왜 그랬어?”


세리사의 갈라진 목소리가 분노로 높아졌다.


“그 때 왜 그랬냐고...! 당신의 왕궁에서, 내게 왜 그랬냐고...! 묻고 있는 거야! 그건 대답해 주고 가!”


그녀의 목소리는 무척 맑고 깨끗했지만, 지금은 급격히 쉬다 못해 기계음처럼 들린다. 비로소 양미간을 심하게 찌푸리며 그가 돌아섰다.


“어이, 너 미쳤어? 지금 와서 새삼 왜 이래?”


고개는 여전히 떨어뜨리고 있었지만, 악에 받친 듯 그녀의 고함이 이어졌다.


“새삼? 당신 말대로라면 나만 미련하고 되어먹지 못한 여자인데, 모든 것을 잃은 내가 뭘 가리게 생겼어?”


칼스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넌 부끄러운 것도 없냐?”


세리사는 비로소 고개를 들었다. 눈물이 글썽이는 눈은 그대로 그를 뚫어져라 주시한다.


“그 수치를 준 게 누군데...?! 당신이 그런 말을 할 처지야? 당신은 내게 그러면 안 되었잖아?!? 어째서 내게 그렇게까지 한 거야?! 지난 세월 동안 계속 생각했지만 알 수도 없고, 당신은 내게 전혀 답을 주지 않았어...! 대체 왜 그랬어?”


그리고 그녀는, 그들 두 사람만 알고 있었던, 그리고 다시 되새기기 힘든 고통의 과거를 토로했다.


“아무리 그때 내가 당신의 속을 긁었다 해도... 그게 강제로 능욕까지 당할 이유였어?! 대답해...!”








칼로 도려낸 심장의 파편이 말 마디마디 사이에 섞인다. 이게 얼마나 수치스러운 고백인지는, 갈라진 목소리와 낮은 흐느낌으로 명백히 드러난다.


그는 불편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내 참... 단어의 선택은 가려서 해. 넌 반항했고 난 그만뒀다. 내가 아는 한, 너 아직 처녀야. 그리고, 처음에는 너도 원한 일 아니었어?”


하지만 울먹이는 항변이 이어졌다.


“그건...! 비로소 당신에게 여자로 보인다고 생각해서... 하지만 당신이 완전히 창녀 취급했잖아. 몸은 받아줘도 마음은 못 받아준다고...! 그 상황에서 가만히 있으면 내가 뭐가 돼?!”


루이코는 격노했다. 이 자식, 정말 쓰레기였네...! 마음뿐만 아니라 몸마저도...? 그것도 강제로 농락했었나!


그렇다면, 그동안 의문이었던 세리사의 반응도 이제 이해가 갔다. 마음은 거부하고 몸은 탐하고, 그런 인간이 이번엔 보란 듯이 다른 여자와 시시덕댄다. 그것도 어쩌면 강압적으로. 바로 자신이 당했던 그 방법으로!


지난 상처와 모욕을 모조리 헤집는 행위 아닌가...!


유키나는 알고 있었을까 곁눈질했지만, 눈을 감고 침묵하는 표정만으로는 알 수 없다. 칼스는 반론대신 혀를 찰 뿐이지만, 모든 것은 이제 확실하다.


루이코는 이를 악물었다.


...내가 할 행동은... 정해졌다.


“이거, 진짜야?”


루이코가 대뜸 소리치자 그가 찌푸렸다.


“네가 나설 이야기가 아냐.”


“닥쳐...!”


순간 흠칫한, 더불어 어이없는 그에게 그녀가 주먹을 들어보였다.


“살인에 강도에 공갈 협박도 모자라서 당신, 강간 전력까지 있었어? 더러운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살인은 당신이 살기 위해서 그랬다 치고, 강도질도 간신히 용납은 해. 내게 한 공갈과 협박도 정치적 기술이라 보면 또 모르겠는데, 역시 이건 용납이 안 되잖아?!”


“그 참...”


숨도 쉬지 않은 힐난에 그는 굉장히 떫은 표정으로,


“당사자들끼리도 지금까지 입 밖에 내지 않았던 문제야. 그런데 네까짓 게 나설 문제냐? 그리고...”


순간 루이코의 신경에 시큰거림이 더해진다. 그의 영압이 한순간 크게 증가했다.


“너도 일단은 능력자니까 알겠지만, 지금의 내게 스치기만 해도 넌 죽어. 그 잘난, 쓸데없는 오지랖으로 죽을 수도 있어. 무슨 만용이냐?”


“한번 협박에 성공했다고 두 번째도 가능하다 생각하지 마. 목숨이 아까워서 틀린 걸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면, 여기 올 것도 없이 당신이든, 모리에게든 몇 번이고 목숨을 구걸했을 거야...!”


“...협박...?!”


세리사가 비로소 고개를 들었다. 괴로운 표정 속에서도 황망함이 드러난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그녀가 뭔가 물으려는 찰나, 어느덧 다가간 루이코는 그녀 앞에 천천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


“죄송해요...”


“너...?”


“저, 사실은 저 녀석과 아무 일 없었어요.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미리 말했으면... 당신이 이렇게 괴로울 일이 없었을 텐데...!”


아예 땅바닥에 머리를 박아대며 루이코는 소리쳤다.


“모든 건 당신에게 시비를 걸기 위해 저 녀석이 억지로 꾸민 일이었고... 저 녀석은... 당신 자리를 노린다고요...! 또한...”


“어이...!!”


그가 외치는 소리도 무시하고 그녀는 말했다.


“우현왕도 가담했고... 제가 저 녀석과 같이 있으면 당신이 절대 참지 못한다고... 그래서 이 모든 상황을 만들어낸... 그런 음모라고요...!”


“너... 설마 그에게...”


세리사의 시선에 칼스는 고개를 돌렸고, 유키나도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시선을 피했다.


“따르지 않으면 집에도 못가고, 그냥은 돌아간다고 해도 기억 수정을 당한다고 했어요! 당신들에게 관련된 모든 것을 잊고, 아키라의 죽음에 대한 진실도 잊고...”


“그래서... 그에게 협조한 거야?”


“죽을죄를 졌어요...! 배은망덕이라는 걸 알기에... 그동안 말도 못했어요...!”


루이코는 다시금 머리를 땅에 박으려 했지만, 세리사의 손이 그 이마를 받쳐 든다.


“이제 됐어...”


그녀도 대충 눈치를 챈 듯 했다. 칼스 뿐만 아니라 유키나까지 가담했다는 사실에는 적지 않은 충격이겠지.


세리사는 유키나를 바라보았다. 미움이나 의문이 아닌, 루이코가 보기에도 이해할 수 없이 평온한 시선이다.


“유키나... 네가 어째서...?”


여왕은 몹시 움츠리면서도,


“죄송해요. 하지만...”


“거기까지...!”


그가 소리쳤다.


“못 봐주겠군. 특히 루이코 너는 완전히 계약 파기다. 집에 못 가도 좋은 거였어?”


“...물론 그건 싫어... 그래도!”


루이코는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도발하듯 왼손으로 허리를 짚고 그에게 가슴을 폈다.


“사람을 해쳐가면서까지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


“...이 바보짓의 대가는 클 텐데...”


“맞아. 바보짓이지.”


루이코는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나는 잊지 않아. 여기 오기 전부터, 황태녀는 내게 잘 대해줬어. 내가 당신의 그녀를 닮은 것, 그 하나만으로도 미워할 만한데도 전혀 그렇지 않았어. 그 밖에도 받은 게 많아. 흉악한 당신에게 당하는 것을 그냥 눈감을 것 같아...?!”


“그럼 어쩔 건데? 세리사를 도와서 싸우기라도 할 거냐. 그 이전에, 네 친구도 같이 죽일 셈이냐.”


“...하루는 이해할 거야. 나는 언제까지나 좋은 친구로 남고 싶어. 그리고 그런 나는... 비겁하지 않고, 틀린 것에 절대로 눈감지 않는 사람이어야 할 거야.”


루이코는 하루에게 조용히 시선을 주었다.


“미안. 고의는 아니었지만, 이제껏 속이고 기만해서... 하지만 이게 내가 택해야 할 길일 것 같아... 집에 같이 가지 못갈 수도 있어... 우리 다 죽을 수가 있어...”


“루이코짱...”


“그래도... 최후의 최후까지 1초라도 더 살도록... 노력할 테니까... 너 혼자 죽게 하지 않을 테니까...”


하루는 한동안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지만, 이내 그 표정은 약간의 웃음으로 바뀐다. 그리고,


“나... 이제 널 의심하지 않아... 무슨 일인지 몰라도, 루이코짱이 내게 나쁜 짓을 할 리가 없잖아...?”


“...하루짱...!”


“원하는 대로 해. 나도 저 녀석이 정말 마음에 안 들었어. 저 녀석에게 목숨을 구걸하느니 죽는 게 나아. 그러면 아키라도 볼 수 있을 거고... 루이코짱도 같이 가줄 테니까... 두렵지 않아.”


더 이상 말을 하진 못했지만... 고마운 감정을 시선에 실어 하루에게 한 번 보내고, 루이코는 다시 칼스를 바라보았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당신을 따르지 않아...!”


장대한 선언에 그는 험악하게 웃었다.


“아름다운 우정 드라마는 좋지만, 너무 막장이라면 자칫 채널을 변경당한다고. ...진짜 죽고 싶은 거냐?”


“하기야, 약혼녀도 죽였는데 가짜 하룻밤 상대쯤은 우습겠지? 그래도 이건 기억해. 나는 하루짱하고 약속했어. 버리지 않고 속이지 않겠다고. 늦었지만 이젠 지키려고 해. 내가 나를 버리면, 내 친구도 나를 믿어준 신뢰도 버리는 거니까.”


“흠... 좋아. 그런 당돌한 점도 어느 정도 마음에 들어서 한번 노려보기도 했지만... 역시 내 일을 망친 것은 그냥 둘 수가 없네. 대가를 받아 줘야겠어.”


덮쳐오는 냉기에 루이코는 숨을 삼켰다. 태연한 척 했지만 오그라드는 심장은 어쩔 수가 없었다. 괜한 짓 했다는 후회도 아주 약간 들긴 했다.


하지만 2천년에 이르는 시간동안 이곳에 갇혀, 수없는 시간을 저런 놈을 애태우며 기다렸는데도 마지막엔 이용당하고 배신당하는... 그런 아픔과 눈물을 외면하는 짓은 차마 할 수가 없다.


순식간에 죽는 것이 고통이 적을까. 아니다. 그래도 배운 것이 있으니 솜털만한 타격이라도, 영혼을 담은 주먹을 한 방 먹이지 않으면...!


녀석에게 배운 힘이라 마음에 안 들지만...


“됐어.”


어느새 루이코의 팔을 잡고 끌어당기며 세리사는 조금 웃었다. 아직 눈가는 젖어 있지만, 이제껏 본 어떤 웃음보다도 화사하다.


“마음은 고맙게 받겠지만... 너에게 무리야. 물러서.”


대답을 듣는 대신 세리사는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순간 몸이 들리면서 루이코는 날아가 버렸다. 하루의 옆까지 착지는 어렵지 않게 했지만,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 하루를 껴안고 뒤로 물러섰다.


바로 옆에는 여왕이 있다. 그녀도 이제 위험할 수 있다. 하지만 유키나는 조금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설마, 이 싸움을 계속할 생각이냐.”


칼스의 물음에 세리사는 무겁게 끄덕였다.


“당신이 이기면 이 아이들이 죽을지도 몰라. 그렇지?”


“공들인 일을 망쳤으니 혼이 나야지?”


“매사에 철저한 그런 점도 난 좋아했지만... 그래도 이건 곤란하지. ...나 때문에 죽는 이가 또 늘어난다니...”


세리사가 손을 뻗자 떨어뜨렸던 칼이 빨려 들어가듯 쥐어진다. 그녀는 씁쓸하게 웃으며,


“나는 당신에게 언제나 약했고... 패배자였지만, 그래도 지금은 약해질 수가 없잖아. 힘이 모자라도 싸워야 하잖아. ...지금은 지켜야할 것이 더 생겼으니까...”


세리사는 검을 겨누었다. 끝은 떨리지 않는다.


“...그러니 전력으로, 진심으로 당신과 싸울 거야. 저 애들을 방패삼아 살아남고 여기서 그저 썩어 가느니, 갈 때는 다 같이 갈 거야. ...대신 당신에게 한 방은 먹이고 갈 거야. 그것으로 장차 당신은, 오늘의 내 피를 싫어도 기억하게 될 거야. ...그렇게 될 거야.”


“...그 말인 즉, 널 죽이기 전에는 이 싸움이 안 끝날 거고, 널 죽이고 차지한 제위 따위 빛이 바랜다... 그게 네 목적이냐...! 망할 년 같으니...!”


비로소 그도 자세를 다시 잡으며 이를 갈았다.


“넌 항상 그랬지. 언제나 내 발목이나 붙들고 늘어졌지. 예전 같으면 내가 참았겠지만, 사태가 사태다. 더는 양보할 수 없겠지. ...죽여줄 테니 덤벼...!”


긴장이 더해지며 곧 충돌하려는 찰나,


“언니...!”


유키나가 갑자기 소리친다. 놀란 세리사가 곁눈질로 바라보자 그녀는 거듭 고개를 숙였다.


“이번의 일은 죄송해요. 하지만... 저는 그 어느 때도... 언니를 원망한 적은 없어요. ...믿어줘요.”


그녀도 세리사의 입장에서는 배신자다.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고 같은 침대를 쓸 정도로 친했기에, 그 배신감은 칼스보다 오히려 더할 것이다.


하지만 세리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어. ...난 언제나 네게 감사할 뿐. 지금도... 마찬가지야. ...안녕.”


마치 유언처럼 말을 마친 그녀는 손바닥을 펴보였다. 조금 전 칼스가 그랬던 것처럼 봉인을 푸는 것이다.


“내 몫의 봉인도 풀었어. ...이제는, 이제야 이 무거운 짐을 벗을 수 있겠네...”


루이코는 거듭 마음이 아팠다. 모두가 인정하고 예감하는 그녀의 패배다. 저렇게 날카로워 보이는 검으로 겨루는 이상, 아마 그녀의 시신조차 온전하지 않겠지.


세상에서 짝을 찾기 힘들 정도로 아름답고, 힘없고 약한 이들도 애를 써서 구하고... 질투의 대상일 여자도 감싸던 그녀는 이제 덧없이 죽는다.


괴롭고 오랜 세월, 이 세상의 끝에서 버티고 또 버텨온 그녀. 한때나마 사랑했던 사람에게 죽으니 행복일까, 아니면 마지막 마음까지 배신당했으니 불행일까.


“그럼 승부를 볼까.”


밀을 마친 그는 조금씩 공중으로 떠올랐다. 세리사도 발맞추어 같은 고도를 유지하면서 따랐다. 아마 지상의 그들에게 거리를 두기 위해서겠지.


서로의 자세는 같다. 분명 똑같은, 그리고 최고의 기술일 것이다. 세리사가 낮게 말했다.


“간다...!”


그들의 모습이 이내 강렬한 빛에 휘감겼다. 이어 시간이 아깝다는 듯 주저 없이 서로를 향해 돌진한 그들.


그 격돌 순간은, 눈을 태울 듯이 강렬한 섬광과 귀를 찢어내는 충격음을 만들어 냈다.


뒤이어 발생한 무형의 강렬한 충격파는 공기를 밀어내고 지상에 여과 없이 폭풍으로 전달되어, 유키나가 보호하고 있었음에도 그녀를 제외한 두 사람을 지면에 나뒹굴게 만들었다. 마치 핵탄두라도 폭발한 것 같았다.


하루를 감싸 안은 채로, 루이코는 르아냐 전체를 뒤흔드는 이 충격파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멎을 것 같지 않던 진동이 차츰 잦아들고, 몇 번이고 망설이다 겨우 고개를 루이코는 절로 탄성을 내질렀다.


“아아...!!!”


공기를 찢으며 허공으로 맹렬히 치솟는 한 자루의 검은 칼스의 것. 반면 응당 날아가야 할 세리사의 검은, 이미 칼스의 오른쪽 가슴을 찌르고 등 뒤로 관통되고 있었다.


“당신...?!”


그저 굳어버린 세리사. 반면 극심한 고통과 충격 속에서도 칼스가 웃어보였다.


“...훌륭해. 그야말로 네 모든 것... 이구나.”


어느덧 넋을 잃은 세리사가 엉겁결에 손을 놓자, 칼스는 가슴에 검이 박힌 채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꽤 높은 고공이었던지라 한참을 떨어진 후, 한 차례 큰 물소리와 함께 수면으로 떨어져 다시 떠오르지 않았다.


놀라움과 의혹, 슬픔과 괴로움. 잠시 멍했던 그녀. 하지만 이윽고 폐부에서 뿜어내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아아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눈은 초점을 잃었으며, 온 몸을 떨면서 이 상황을 어떻게는 이해하려, 아니 회피해보려는 몸부림을 치고 있다.


그래도 유키나는 세리사보다는 침착하여, 재빨리 도약하여 수면으로 날아 들어갔다. 아니, 날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지면을 박찬 유키나의 도약음을 듣고 순간 정신을 차린 듯, 세리사가 먼저 수면으로 떨어져 내려갔다.


흡사 거대한 폭탄이 수면에 떨어지듯, 굉음과 함께 거대한 호수 자체가 요동치고 파도가 일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 아직 요동치는 수면을 뚫고 그녀가 뛰쳐나왔다.


그야말로 필사적. 눈 깜짝할 사이에 물가로 접근하는가 싶더니, 호수와 맞닿은 넓지 않은 모래사장에 구르다시피 착지했다.


플라티나 블론드의 머리칼은 엉망진창으로 얼굴에 달라붙고, 옷 역시 젖어버려 입고 있는 속옷과 투명한 속살이 그대로 비친다. 화사한 자수의 풍성한 치마도 군데군데 진흙이 묻어 그야말로 물에 빠진 생쥐 꼴이지만, 그녀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품 안의 그를 애타게 불렀다.


“칼스...! 정신 차려...!”


하지만 그저 눈을 감은 그는 의식이 없었다. 날아온 여왕이 재촉했다.


“일단 상처부터...!!”


흠칫한 세리사는 그의 상처를 면밀히 살펴보았다. 그의 오른쪽 가슴, 여전히 칼이 박힌 부분에서는 새로운 피가 샘물처럼 솟고 있다.


세리사는 한손으로는 칼스의 상반신을 받쳐 들고, 왼손으로는 천천히 칼을 뽑았다. 상처를 벌리지 않도록, 피가 더 흐르지 않도록 그녀는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마침내 검이 완전히 빠지자마자 선홍빛 상처에서 탄산수가 넘치듯 출혈량이 급격하게 늘어난다. 상처를 손으로 급히 막은 황태녀는 힘을 집중하여 회복으로 돌린다. 유키나 역시 무릎을 꿇고 도왔다.


세리사는 끊임없이 신음을 내뱉었다. 조금 전 일은 아직도 선명하고, 그만큼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어째서...?!”


서로의 검이 충돌하고 칼스의 검이 그녀의 목을 날려버리기 직전, 그는 돌연 검을 돌려 그 날을 반대로 향했다.


충분히 자신을 죽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순간에 그는 공격을 포기했다.


“...오라버니...”


딱 한 마디만 내뱉은 여왕. 그녀의 짧고 작은, 하지만 굵은 눈물을 번 세리사는 순간 흠칫했다.


유키나... 너는 대체 무엇을 알고 있는 거니...


상처는 이제 막혀 더 이상의 출혈은 없다. 그들에게는 경이로운 회복력이 있지만, 그 반대급부로 지나치게 큰 손상은 오히려 장담할 수 없다. 이제는 이 치료와 칼스의 회복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오열하는 언니에게 여왕이 위로했다.


“괜찮을 거에요. 오라버니가 어떤 사람인데...!”


“...그래도...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


마치 눈물이 그를 살릴 것처럼 그녀는 오열했지만,


“일단 옮겨요. 상처는 막았고 호흡도 그리 약하진 않아요. ...어서요.”


그녀는 비로소 떨리는 팔을 풀었다. 그를 안아 일으키는 몸은 여전히 후들거렸다.








두 이성인 여자가 그를 데려다 눕힌 방 앞. 들어가지 못한 두 지구인 여자는 복도에서 서성였다.


루이코는 어이가 없었다. 칼스 저 녀석. 계획을 꾸며놓고 성공 일보 직전에, 누구나 승리를 예측한 싸움에서 너무나 간단하게 져버렸다. ...대체 뭐야?


설마 일부러 져준 걸까...? 하지만,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결투에서 이게 가능한 걸까? 가능하다고 쳐도...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하루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콱! 죽으라고 할 수는 없지만... 쌤통이라 말하면 나쁜 사람이 되려나?”


“그럼 못써. ...마음은 이해하지만...”


루이코도 나름 허탈했다.


며칠 동안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고 정조의 위협도 당했다. 이제 해방이라고 생각하니 날아갈 것 같았지만... 그래도 사람이 죽는 것은 역시 꺼림칙하다.


드디어 유키나가 나왔다. 생각보다 그녀의 얼굴이 밝음에 루이코가 물었다.


“좀 어때요?”


“괜찮아. 중상이지만 생명에 지장은 없고, 당분간 힘에는 영향이 있겠지만 충분히 복구 가능한 수준이고...”


“...다행이네요.”


“고마워. 걱정해줘서...”


그녀는 세리사와 같이 있기에 껄끄럽지 않았을까. 하지만 배신자치고는 그녀는 지나치게 담담하다. 루이코는 조금 주저하면서도,


“저기... 한번 물었던 것이지만, 다시 물어도 될까요?”


“내가 오라버니와 작당한 이유 말이지?”


“네. 그때, 두 사람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내 입으로는 말하기가 조금 그렇지? 계획은 오라버니가 세웠으니까 본인이 깨어나면 직접 물어봐. ...물론 제법 쓴 소리를 듣겠지만...?”


루이코는 가슴을 폈다.


“저는 제 행동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알아. 다만... 아니야. 직접 겪으면 알게 되겠지.”


열린 방 안이 조금 소란스럽다. 이어 방에서 나온 에일리아가 담담히 보고했다.


“눈을 뜨셨습니다.”


“...빠르네. 알았어. 그리고...”


그녀는 눈짓했다. 별로 망설일 이유는 없다. 루이코도 뒤따랐다.


하룻밤을 지새웠던 넓은 침대는 이제 그 혼자 차지하고 있다. 얼굴처럼 핏기가 빠져있는 오른손을, 방금 세리사가 마주 뻗어 잡은 참이었다.


자신을 함정에 빠뜨린 그를 원망하지 않는 걸까.


“미안... 미안...”


오히려 그녀는 사과만은 되풀이한다. 제법 눈을 뜬 그도 조금 웃으면서,


“...괜찮아. 나 아직 안 죽었어.”


“죽을 리가 없죠. 끈질기기로는 바퀴벌레 급이니까...”


들어선 유키나가 말을 보태자 그는 잠시 찌푸렸지만, 이내 갑자기 상반신을 조금 일으켰다. 깜짝 놀란 세리사가 만류하려 하자 그는 가볍게 손을 들었다.


“일단 다들 좀 앉지?”


론비샤들이 당겨주는 의자에 모두 앉은 후, 세리사가 먼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칼스...”


“묻고 싶은 건 알아. 어째서 그랬냐는 거지?”


피를 그렇게 흘렸음에도 목소리는 꽤 또렷하다. 황태녀는 더더욱 기어들어가며,


“당신이 일부러 져 준 걸 보고... 뭔가 사정이 있다는 건 알았어. 난... 그것도 모르고 힘껏 찔러버렸지만...”


“네 탓이 아냐.”


“그래도...!”


“아니라고 했어. ...그리고... 에잇...! 설마 이렇게 될 줄이야. 너 이 녀석, 루이코!!”


그는 마치 탄식하듯,


“하여튼 지구에서도 그렇고 도움이 안 돼. 그것도 하필 결정적일 때 끼어들어서...! ...대체 왜 내가 네 덕에, 이렇게 칼을 몇 번이고 맞아야 하는 거냐...?!”


이 무슨 적반하장인가. 루이코는 코웃음을 쳤다.


“뭐야, 그 태도는...? 웃겨...!”


대답대신 혀를 찬 그는 세리사를 바라보며,


“...일이 이쯤 되었으니 말해주지. 내가 꾸민 일이다.”


“...어째서...?”


“그 전에 묻자.”


그는 거듭 한숨으로,


“세리사. 넌... 여전히 황제가 될 생각이 없는 거냐?”


“...알고 있잖아... 난...”


그녀는 몹시 침울했다.


“그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잊었어?”


“...그럼 후회하니? 지상인들을 구한 그 결정을?”


그녀의 고개가 세차게 저어진다.


“아니...! 그렇지 않지만, 그래도... 결과가 너무...!”


“몇 번이고 말했지만 네 잘못이 아니다. 착한 너를 이해하지 못하는 속 좁은 녀석들이 문제였을 뿐...”


그는 어느덧 꽤나 즐거운 표정으로,


“반드시 너를 황제로 만들겠다. 내가 거듭 결심한 것도 그 때였어. ...얌전히 정치 견문이나 해야 할 풋내기 황태녀가, 갖은 부담을 져 가면서 끝까지 힘없는 이들을 감싸는 그런 것... 그때의 너는 굉장히 힘들었을 때였을 텐데도 말이지...”


“칼스...”


“네 옆에는 없었지만 내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너는 아마 모를 거야. 내가 조금은 불안하게 생각했던... 착하지만 소심하고 여린 황녀님이... 어느덧 그만큼 자라서 올바른 일을 해 준거야. 나는...”


그는 자신의 가슴에 천천히 손을 얹었다.


“아기였던 너를 네 어머니에게 부탁받고, 이 아이가 언젠가 내 주인이 된다고 생각하고 힘을 키웠다. 얼굴도 못 보고 어떤 사람이 될지도 모르지만, 내가 존경하는 두 분의 딸이니까 분명 바르게 자라겠지.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결코 싫증내지 않고 좋은 군주가 되도록 그 옆을 지키며... 그렇게만 생각하며 살았어. ...이건 이미 말했었지만 지금도 변함없어.”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로 세리사는,


“하지만 난... 당신의 기대에 못 미쳤잖아...! 나는 어리고 나만 알고... 못돼먹은 아이였어...”


“틀려. 아버지는 아프고 어머니는 없고, 이해자가 될 수 없는 시녀들에게만 둘러싸여서 구중궁궐을 못 벗어나는 아이에게 무슨 책임을 지우겠니. 하지만 어땠지? 너는 훌륭하게 성장했다. 좋은 군주의 자질도 충분히 갖추었고...”


세리사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그 모든 것을 가르쳐준 건 바로 당신이잖아... 당신도 같은 결정을 했을 거라고 생각해서 나도...!”


“나는 너보다 훨씬 계산적으로 움직였을 거야. 하지만 너는 아니었잖아. 재능은 정진해서 쌓으면 되고, 그게 힘들다면 주변에서 빌리면 돼. 너는 혼자가 아니잖아. 나도, 유키나도 있고 모든 사람들이 너를 도울 거다. 이제부터의 세상은, 우리 기술과 힘은 너 같은 사람이 다루어야 해. 나같이 오염될 대로 된 사람이 아니라...”


“...그런... 나, 자신 없어.”


그녀의 처진 어깨를 북돋우려는 듯 그는 힘주어,


“나는 알 수 있어. 너는 그 때를 아직도 후회하지 않으려 했잖아. 그 마음이 그대로 있는 이상, 너는 반드시 좋은 황제가 될 수 있어. 나는 기꺼이 네게 고개를 숙이고, 그 누구보다 앞서서 복종할 거다.”


그는 자신의 오른손을 쥐어 보였다.


“너를 부당하게 비난하는 자가 있다면, 힘들고 더러운 일이 있다면 네게 가기 전에 내가 처리해주지. 나는 누구보다도 강한 네 검과 방패가 될 거고, 지구에서 오랜 세월 굴렀던 내 경험은... 네 치세에 반드시 필요한 자산이 될 테지. 그렇듯 모든 것은 완벽했건만...”


낮은 탄식이 거듭 흘렀다.


“그런데 너는, 하필이면 나 같은 놈에 대한 마음을 접지 못해서... 이 궁벽한 곳에서 이 오랜 세월을 보냈어. 그것만 극복하면 너는 누구보다도 좋은 황제가 될 수 있는데... 하지만 어떻게 할 방법을 찾지 못했어. 서로가 티격태격하지만, 서로가 빈틈을 보이지 않아 그것으로 끝이었잖아. 그런데 마침 저 녀석이 보인 거야.”


잠시 루이코를 눈짓한 그가 떫게 웃었다.


“차마 강요는 못하고 대신 오래도록 기다린, 그런데도 전혀 변화가 없던 차에 마침 기회다 싶어서, 올 때부터 유키나와 조금 이야기했었어. 그리고 작당을 좀 했지.”


“...그럼, 그래서 이 아이를 데리고 온 거야?”


세리사의 동공이 어둠 속 고양이처럼 커졌다. 그는 천천히 끄덕였다.


“저 애들 목숨도 살릴 겸이긴 했지만... 나와 아미에의 일을 상처로 갖고 있는 너라면, 나와 루이코를 보게 되면 반드시 빈틈이 나온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집 떠나온 지 한 달도 안 된 루이코도, 슬쩍 날린 협박 한 번에 그냥 넘어갈 정도로 정신이 불안했는데...”


약간 비웃는 듯 그의 시선이 뜨끔해, 루이코는 일부러 낮게 콧방귀를 뀌었다. 그건 당신이 공갈에 너무 익숙해서 깜빡 그런 거라고...!


“하물며 너는... 이 긴 세월을 보내면서 쌓인 것이 매우 많았을 거야. 소리치고 싶어도 들어줄 사람도 없고. 그렇게 속으로 곪아 터지기 전에, 늦기 전에... 어떻게든 상황을 만들어서 내가 네게서 떠나간다는 말을 하게 되면, 네가 나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은 딱 한 가지 밖에 없어. 그건...”


그는 검지를 세워 들어 보이며,


“네 스스로 제위에 오르는 거다. 그러면 현왕인 나는 새로운 황제, 바로 네 옆을 지킬 수밖에 없잖아. 그래서 계속 핍박했던 거야. 네가 이 방법을 생각해내길 기다리면서...”


세리사는 여전히 불만스런 표정으로,


“그런 거면... 장차 내 지위로 당신을 구박하게 되면... 그건 어떻게 감당하려고 했어?”


“때로는 사랑보다는 증오가 나을 수도 있지. 사랑 때문에 목숨을 스스로 끊는 경우는 있어도 증오는 다르지. 상대가 밉고 야속해서라도 반드시 살아남으려 할 거야. 지금도, 그리고 네게 치욕을 준 그때도... 그런 생각이었지. 그런데 하필 네가... 나와의 그때 일을 확인하려 들 줄은... 그건 계산 밖이었어. 그래서...”


루이코를 곁눈질한 그는 거듭 쓰게 웃으며,


“격분한 저 녀석이 끼어든, 그 덕에 네가 진심으로 덤비는... 이 머리 아픈 상황을 더는 끌고 갈 수가 없잖아. 그냥 져 주고 빨리 싸움을 끝낼 수밖에...”


“하지만... 진즉에 말을 했다면 나도 안 찔렀어.”


“네게, 아샤르의 황태녀이자 장차 지존이 될 이에게 폭언한 자는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것은 나라고 해도 예외는 아냐. ...목숨 붙이기에 전력을 다하면 안 죽을 자신은 있었으니, 이건 스스로에게 내리는 벌이기도 했어. 네 탓이 아니다.”


“칼스...”


“그동안 기만해서, ...미안하다...”


손이 천천히 뻗어져 세리사의 머리를 향했다. 움찔한 그녀의 머리카락을 그는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하지만 진정으로 권유하건데, 이제는 부디 제위에 오르기를 바란다. 그 세월을 여기서 외롭게 보냈지만, 너는 내가 알던 그 때의 너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어. 네 신경을 긁을 요소였을 저 아이들을 그래도 선의로 돌보고, 내 폭거에 맞서 저 아이들을 감싸고 같이 죽으려고 했지. ...이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잖아.”


그는 스스로의 손을 맞잡으며 조금 고개를 숙였다.


“좌현왕 세라비 칼스 카이가 거듭 고하니, 부디 등극하시길 바랍니다. ...황태녀 전하.”








하지만 세리사는 여전히 침울한 표정이었다.


“분명... 당신이 말하는 대로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어떤 마음으로 지금껏 살아왔는지... 몰라서 이래?”


“알지. 내 다 알지...”


그는 쓰게 웃으면서도,


“하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지. 그리고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형편없는 남자다. 내 손엔, 내 품엔... 아미에의 피가 묻어 있어.”


그는 자신의 두 손을 조금 들어보였다.


“아샤르의 둘도 없는 보석으로 칭송받던 네가, 이런 더러운 품에 안길 수는 없는 거잖아.”


그녀는 다시 울먹였다.


“아냐. 나는...! 내가 그냥 보통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항상 그리 생각하고 살았어. 그러면 이런 짐도 주어지지 않았고... 당신도 조금은 달리 생각했을 거라고...”


“그랬을지도... 아냐, 아니지. 아무튼 안 돼. 달리 생각하려면 진작 했지.”


그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고,


“사실 나는... 네가 제국 봉인령을 받아들인 이유를 알고 있었어.”


세리사가 고개를 들었다.


“뭐? 당신이... 알고 있다고...?”


“그래. 하지만 네가 직접 말해줬으면 좋겠어. 어째서 너는 제위에 오르는 대신, 네가 평생 썩을 수 있는 이 길을 택한 거니? 르아냐에 틀어박혀 오랜 세월을 살아가는... 이 험난한 길을 택한 거냐.”


“...알고 있다면서?”


“말해봐. 그날, 네가 선황과 독대한 그 날, 네 아버지가 네게 뭐라고 하셨는지를.”


그의 재촉에 세리사는 한참 머뭇거리다가,


“아바마마께서... 말씀하셨어. 명분은 정치적 이유... 그런 거지만... 다른 뜻도 있다고.”


“다른 것...”


“...그래. 이대로라면 나는 평생 혼자 늙어 죽을 거고... 그러니 시간을 많이 줄 테니까... 참고 또 기다려서... 언젠가 올지 모르는 기회를 잡아 보라고...”


그녀의 아버지는, 이루기 힘든 사랑에 아픈 딸을 보다 못해 수천 년의 시간을 주었었다. 길고 힘든 시간이겠지만 참아주길 바라며, 딸 또한 참겠다고 했었다.


“잘 말했어.”


칼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이후 내가 들어갔고... 나도 같은 이야기를 들었어. 오랜 세월이 지나면 우리 둘 중 누군가는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고. 선황께서도 본인 스스로도 갈등하고 있으셨다고. 혈육에게 제위를 주고 싶지만, 아직 미련이 남은 딸아이의 행복을 생각하면, 네놈이 생각을 바꾸는 것도 괜찮을지 모른다고...”


세리사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 당신은 내가 당신을 미워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던 거잖아. 어째서 지금껏...?”


“너는 내가 떠나갈까 봐 일부러 차갑게 대했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 살갑게 대하면 미련만 깊어질 거고... 계속 모르기를 원했지만...”


“하지만 당신... 그 때 굉장히 화냈었잖아. 내가... 아미에의 일을 함부로 말해서...”


“그 날... 널 덮칠 때,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 녀석도 부끄러운 표정을 지을 때가 있다. 루이코는 놀라운 발견을 하고 말았다.


“아무리 너라도 자기를 덮치고 모욕한 남자에게 정나미가 안 떨어지겠나. 네가 울면서 뛰쳐나갔으니 이제 성공했다고 생각했지. 실제로는 아니었지만...”


“...칼스...”


“너는 알 수 없겠지만... 그 때 너의 황태녀 책봉식 전에, 내가 몇 년 만에 다시 너를 만났을 때...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 수 있을까... 나 좋다고 느닷없이 폭탄선언을 한 철없던 꼬맹이가, 이렇게도 깜짝 놀랄 정도의 아가씨가 되어 나타났으니까...”


“그러면...!”


“난 너를 싫어한 적 없어. 오히려... 에잇...! 하지만 입장을 생각하면 할 수 없잖아.”


그는 떫은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어쩔 수 없는, 숨기지 못한 마음이 결국 드러난다.


“그러면... 당신도 날 싫어하지 않았다면 왜 그때... 그리고 지금도 날 받아들이지 않았어?”


“나는 네 어머니와 약속했어. 선황 폐하도 존경했고... 그 딸의 정당한 지위를 어떻게 가로채나. ...아미에가 죽은 이후 더더욱 그렇게 생각했지. 몇 번이고 널 거부한 내가 지금 와서 무슨 염치로... 그러니 너도 슬슬 포기하는 편이 좋아.”


“그런...”


세리사는 우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마음도 어느 정도 확인했지만, 그 고집과 각오는 더 강하게 확인해버렸다. 그는 절대로 내게는 오지 않는다.


여전히 그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자리 따위는 필요 없는데...


내가 갖고 싶은 것은 오직 하나였는데...


루이코도 순간 생각했다. 이 녀석, 잘난 척은 실컷 했고... 아니 실제로도 굉장히 잘난 녀석인 것은 맞지만...


나도 방금 생각해 낸 거지만, 어쩌면 이 녀석조차도 모르는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확인해야 해. 그리고 그게 맞으면... 이건 그냥 둘 수 없어.


“끼어들어서 죄송합니다만...”


루이코는 반쯤 손을 들고,


“저기, 칼스 전하?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뭐냐. 새삼스러운 경칭은? ...말해봐.”


그가 웃었다. 서로 할 말은 남았을 터이다.


“그럼 편하게 말하겠는데... 그 선황 폐하라는 분은 가족, 특히 부인들 관계가 어떻게 되셨지?”


그는 눈을 껌벅거리며,


“돌아가신 황후 마마를 제외하고는 차비가 한 분, 후궁으로 셋이 있었는데...? 그건 왜?”


“그럼 제위 승계에서 황후 소생이 최우선이야? 남녀의 우열은 어때?”


“남녀차별은 없지만, 후사를 잇기에 남자가 훨씬 유리하니까 일단은 우선이야. 그리고 차비까지는 동등한 적자(嫡子)야. 황후 소생의 딸이 있고, 차비 소생의 아들이 있다면 아들이 황태자가 되는 거지.”


“그러면 황태녀에게 남동생이 있었으면...?”


“세리사가 성인이 되기 전에 태어났다면 남동생이 제위를 이어. 다만 세리사가 성인이 된 이후에 태어난 남동생이라면, 여전히 세리사가 황태녀지.”


“하아. 역시 그런 거구나.”


루이코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여러 시선을 받아가면서, 그녀는 침대에 앉아 있는 칼스에게 다가가서 허리를 숙였다.


두 사람의 얼굴이 차츰 가까워진다 싶은 순간, 몹시도 둔탁한 소리가 실내를 울렸다.


“윽...!”


느닷없는 루이코의 폭력-박치기-에, 아프지는 않겠지만 그가 조금 비틀거렸다. 루이코도 아픈 이마를 만졌지만 이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뭐하는 짓이야? 부상자에게...!”


이마를 감싸 쥔 그의 항변, 그리고 딱총에 맞은 새처럼 멍청한 표정의 세 여자에도 루이코가 말했다.


“당신 진짜 멍청해. 잘난 척은 실컷 해 놓고...!”


“무슨 엉뚱한 소리야? 그리고 무슨 짓이야?”


“이 박치기는 그동안 날 속이고 애태우고 위협한 값이고... 동시에 당신의 바보짓에 대한 징벌이야.”


선언하듯 그녀는 두 손을 허리에 얹고,


“생각해 봐. 그 돌아가신 어머니가 무슨 생각으로 당신에게, 어째서 그런 부탁을 했는지... 과연 모르겠어?”


“대체 뭐기에 이렇게까지 해야 해?”


“거 봐. 애당초 문제를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자꾸 틀린 답만 내놓는 거잖아...! 그러니 가르쳐줄게.”


루이코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죽기 직전의 그 어머니는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남편은 살아 있고, 다른 부인들도 있는데... 나중에라도 남동생 하나쯤은 태어날 수도 있잖아? 그런데 무슨 자리 생각을 했겠냐고...?!”


그는 여전히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지만, 일견 깜짝 놀라기도 했다. 루이코는 한숨을 푸욱 내쉬면서,


“어머니가 바란 것은 다른 것이 아닐 거잖아.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자리보다, 자기가 낳은 딸이 남들보다 조금은 더 웃고 조금은 덜 울고, 그저 행복하게만 살았으면...! 그런 생각을 했을 거잖아. 내 어머니가 그랬듯이 말이야.”


지붕 위에서 들은 어머니들의 대화가 생생히 기억난다. 다른 것은 아무래도 좋으니 무사히만 돌아왔으면...


정말 소박하지만 너무나 강렬한 바램...


“내 이름이 왜 루이코(淚子)인 줄 알아? 힘들고 어려운 시기였지만, 아이가 태어난 게 너무 기뻐서 두 분 다 우셨다고... 그래서 붙여준 이름이야. 태어난 것만으로도 기쁘고, 손발이 멀쩡한 것만으로도 감사하는 게 부모란 말이야. 마찬가지로 엄마 없이 홀로 남겨두고 가야 하는 딸이, 황족이라는 이유로 거친 정치판에 굴러야 하는 자기 아이가, 그래도 어떻게든 무사히 자라고 행복하기만을 원했을 거잖아. 자리를 지켜줄 사람이 필요했으면 황제인 남편에게 했지, 왜 하필 당신 같은 꼬맹이에게 부탁을 해?”


어느덧 불편한 신음으로 침묵하는 그. 반면 루이코는 벅차오르는 승리감으로 선언했다.


“그 이유는 연배가 비슷하니까. 같은 세대로 언젠가 정치판에서 부딪히고 갈등할지 모르는, 그런 당신에게 미리 손을 쓰신 거잖아. 나중에라도 혹시 당신이 자기 딸을 해치거나 미워하거나 괴롭히지 않도록... 기왕이면 아끼고 사랑해주도록 부탁한 거잖아.”


칼스는 이마에서 손을 떼고 루이코를 바라보았다. 멍청한 표정도 꽤 어울린다 생각하며, 그녀는 다시금 말했다.


“그 어머니의 소원대로라면,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당신은 절대로 황태녀를 울리면 안 되었던 거야. 그런데 이 꼴은 뭐야. 의무를 방기한 건, 약속을 어긴 건 당신 쪽이잖아. ...뭐가 지켜줬다는 거야. 뭘 지키겠다는 거야. ...다들 바보 같아.”


그녀는 동의를 구하듯 주변을 돌아보았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죠?”


유키나는 멍한 표정 가운데에서도 실소를 흘렸고, 세리사는 이미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엄마...!!”


원망했었다. 사진으로밖에 보지 못했던 어머니가, 하필 그에게 그런 부탁을 하는 바람에 그는 자신을 그렇게나 거부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거야?


여전한 승리감으로 루이코가 거듭 말했다.


“당신들은 높으신 황족이니까, 아마도 가족의 따뜻한 식탁 같은 것은 별로 없었을 거에요. 그러니 모를 만도 하겠지만... 나 같은 서민은, 보통 사람은 알 수 있는 일이에요. 업어주던 아버지의 등도, 안아주던 어머니의 품도... 다 그런 것이죠. 작고 소박하지만, 다른 것과는 바꿀 수 없는 부모의 사랑이라는 것도.”


말하다보니 집 생각에 조금 우울해졌지만, 이렇게 길게 말한 적이 별로 없는 자신이 약간 부끄러웠지만, 이 녀석 앞에서 잘난 척은 실컷 할 좋은 기회다.


한방 더 먹이려는 듯 루이코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 빤한 걸 모르다니. 피조차 흐를까 생각되었던 당신도, 일단은 허술한 구석이 있는 보통 사람이네. 조금은 안심했어.”


“이 녀석... 가만히 내버려두니 멋대로 말하고...”


문득 허탈히 웃은 그가 투덜댔다.


“게다가 난폭하기도 이를 데 없고... 왕에게 감히 박치기를 한 건, 우리 역사에서도 네가 처음일 거다...!”


“자업자득이야. 전에도 말했지만.”


홧김에 들이박긴 했지만, 그리고 속은 좀 시원해졌지만 내심 조금은 움츠리고 있었다.


하지만 루이코를 바라보는 눈은 매섭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껏 본 적 없던 맑고 투명한 눈이다.


“...세리사만 남고 모두 나가 줘.”


그의 말에, 조금 주춤하긴 했지만 유키나가 제일 먼저 일어섰다. 아직 더 쏘아주고 싶긴 했지만, 어쩐지 엄중한 분위기에 조금은 압도된 루이코도 물러났다.


이제 남은 것은 저 두 사람이 풀어야 할 문제겠지. 간섭할 일은 아냐.


모두가 물러간 방 안에는 잠시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무릎 언저리를 움켜쥐던 세리사에게, 그가 겨우 입을 떼었다.


“마지막으로 말할게...”


“응...”


떨리는 심장을 억지로 주체하는 그녀였다.


“...원망하지 않아? 지금껏 그렇게 널 괴롭혔는데...?”


“아니...! 절대로 아냐...”


폭풍이라도 일으킬 기세로 그녀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조금 남은 눈물방울이 허공에 흩날린다.


“오히려 내가 몇 배나 괴롭혔어. 울고, 떼쓰고, 고집만 피우고...”


“책임을 따지다간 끝이 없겠지. 그보다도...”


쓰게 웃은 그는 오른손을 뻗었다.


“손... 이리 줘봐.”


떨리며 내밀어진 손을 잡은 그는, 그녀의 약지에 끼워져 있는 한 쌍의 반지에 시선을 주었다. 두 개가 일체가 되어 빛나는 것이지만 단독으로도 아름답다.


“늦었지만... 이제 확실하게 말할게. 그거 이리 줘.”


“칼스...!”


그녀가 심하게 울먹였다.


그들에게 반지는 몇 가지의 의미를 가진다. 한 쌍의 반지가 오른손에 있음은, 자신이 아직 혼자이지만 마음에 두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반지가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왼손 약지로 갈 때에는, 서로가 연인이나 부부가 되었음을 나타낸다.


그가 그것을 달라는 것은...


그의 손가락이 뻗어져 그녀의 손에서 이 한 쌍의 반지를 빼내었다. 그리고 하나를 그녀의 왼손으로 옮기고, 이어 자신의 왼손 약지에도 끼운다.


세리사는 입을 가렸다.


“당신...?!”


“이렇게까지 했음에도 더는 방법이 없구나. 그리고... 더는 상처를 입힐 수도 없으니까...”


그는 겸연쩍게 웃었다.


“제위는 내가 받을게. 이제 더 이상 너를 거부하지도 않을게. ...오랜 세월 괴롭힌 값은 해야지. 이제... 진정으로 널 지켜줘야겠지.”


“칼스...”


세리사는 문득 흐느꼈다. 새로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지만, 그것은 더 이상 슬픔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다만... 다만...!


“하지만 나... 결함이 있잖아... 너무 크잖아...!”


“그렇게 만든 건 나다. 그리고 우린 오래 살아. 서로가 있어. ...그걸로 충분해.”


단호하게 말한 그는 울먹이는 그녀의 손을 잡고 일으켜, 다친 몸으로도 번쩍 들어 자신의 위에 앉힌다.


며칠 전 루이코에게는 협박이었지만, 이제는...


눈물범벅인 얼굴이 발갛게 물들어가는 그녀를 향해 그가 속삭였다.


“그동안 미안했어. 정말로... 루이코 저 녀석, 말이 거칠긴 했지만 하나도 틀리지 않아. 그게 진실이었겠지만... 사실은 나도, 우리 모두도 알고 있었겠지만...”


“...하지만 서로 말할 수 없었지...”


“이제는 상관없지. 다만...”


그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천천히 감아간다.


“그 어느 자리에 있든, 내가 가고자 했던 길은 쉽지 않은 거야. 두렵지는 않지만 걱정은 돼. 나와 함께 한다는 것은, 곧 나와 같이 그 길을 걷는 거니까...”


“...두렵지 않아. 걱정하지도 않아.”


허리의 감촉에 조금은 저항하면서도 그녀는 오히려 그의 품에 조금 더 안겨 든다. 오랜 세월 바래왔던 일이니까... 부끄럽지만 주저하지 않아.


“그 어떤 길이래도, 험하더라도... 난 이 르아냐를 견뎌냈어. ...반드시 같이 걸을 수 있어.”


“...그렇다면, 내가 힘들 때는 등을 밀어줘. 기대고자 한다면 품을 빌려줘. 나는 그리 강하지 않으니까...”


“...맡겨둬.”


그는 눈을 조금 내리깔며,


“그러고 보니 우리 예전에, 이렇게 하지 않았었나?”


회상에 잠긴 그녀는 더욱 얼굴이 붉어진 채,


“그랬네... 딱 한번이었지만...”


“한 번 더 해줄래? 그땐 비몽사몽간에 당했지만... 지금은 제정신이니. 그 때 이후로 아까워서 혼났거든.”


그의 웃음은 조금 짓궂다. 꽤나 달아오른 얼굴로 과거를 회상한 그녀는,


“난 오히려 그때가 제정신이 아니었어...”


“지금은 제정신일까...? 그런 거야?”


그의 낮지만 즐거운 웃음에 세리사도 따라 웃으며 두 손으로 그의 뺨을 감쌌다.


이 사람이 나를 봐주기를 그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을까. 너무 오래 기다렸지만, 흘러가버린 그 긴 시간이 하나도 아깝지 않아.


원망으로 내뱉은 거짓말. 그건 그를 더는 멀어지게 하진 않았지만 가까이 오게 할 수도 없었다. 혹시 사실을 말했다가는 오히려 끝을 부를지 모를 그 두려움에, 반복된 거짓말은 자칫 잘못된 원망만 쌓아갔다.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을 지워버릴 테야...


그녀의 입술이 다가오고, 그때는 거부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원한다는 듯 그의 두 팔도 당기듯 끌어안았다.


짧지만 조금은 강렬한 입맞춤이 끝나자, 여전히 홍조가 남은 그녀가 수줍게 웃으면서 물었다.


“...괜찮았어? 너무 오랜만이라...”


하지만 그는 능청스럽게,


“그렇지. 오랜만이라 잘 모르겠는데?”


“바보...”


“바보 맞아. 바보짓을 했으니.”


“나는...?”


“글쎄다... 이런 남편을 두게 되서 부끄러울지도...?”


“아니... 그 바보에게 순종하는, 더욱 바보가 될 거야.”


그녀는 비로소 얻은 자신만의 것을 품에 안았다.


“지금껏 울고 떼쓰고... 고집을 피웠지만, 다시는 그러지 않을 거야. 당신이 지금껏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려 노력했듯이... 나도 노력할 거야.”


오랜 세월을 떨어져 살아왔지만, 진심을 전한 이상 다시는 떨어지고 싶지 않다. 그 소망을 서로에게 조금이라도 더 전하려는 듯, 두 연인은 한동안 서로를 끌어안고 조금 떨어져서 얼굴을 보며 웃고, 다시 입맞춤과 포옹을 반복했다.




수고하셨어요.


작가의말

<< 다음화 예고 >>

 

그가 말했다.  ‘정직하고 성실한 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겠다.’

그녀가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의 곁에서 지켜보겠어’

 

제 2권 ‘구궁의 황녀’ 편

에필로그  ‘천년의 정원’ 편입니다.

(라고 해봤자 지금 이어 올라갈 거면서 ㅋ)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2

  • 작성자
    Lv.53 나범
    작성일
    14.03.10 15:38
    No. 1

    음...ㅎㅎㅎ ^^;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대마왕k
    작성일
    14.03.10 16:55
    No. 2

    데헷... ^.ㅡ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2 활의남쪽
    작성일
    14.03.12 19:22
    No. 3

    아..짜다.. 염장챕터라니 ㅠ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대마왕k
    작성일
    14.03.12 20:05
    No. 4

    ...3권 후반부에서는 토나올 겁니다. 데헷...;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도메인네임
    작성일
    14.04.25 06:06
    No. 5

    참 오래 묵은 커플이군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대마왕k
    작성일
    14.04.25 11:59
    No. 6

    2부에서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낼 겁니다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5 혼연무객
    작성일
    14.06.27 23:41
    No. 7

    루이코랑 이어질줄 알았는데.... 아니었긘요....

    뭐 이것도 좋은 사랑~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대마왕k
    작성일
    14.06.28 10:38
    No. 8

    댓글 감사합니다. 그건 다음 권에... 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coolpean..
    작성일
    14.06.29 14:45
    No. 9

    하하하 즐겁게 감상하고 있습니다.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대마왕k
    작성일
    14.06.29 19:10
    No. 10

    즐감하셨다니 다행입니다. 건필이야 항상 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진흙44
    작성일
    14.08.17 20:55
    No. 11

    아, 이 글은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되기에 정말 좋습니다.
    여기서도 두군데가 걸리네요.
    먼저, 순수한 마음으로 정치적 결정을 내리길 바란다면서, 자신이 떠나면 정치적인 권력을 이용하여 자신을 잡을것이라고 생각하고 일을 추진했다는 부분인데요. 앞뒤가 안 맞습니다. 자기말처럼 계산적으로 모든일을 추진하는 칼스에게 이런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뭔가 숨겨진 꿍꿍이가 있어요.
    다음으로, 일생을 지켜주기로 했다면서 그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아귀가 안 맞습니다. 멍청이(?) 루이코가 이걸 발견하고 따질 정도인데요. 칼스가 생각을 못했을리가 없죠. 칼스는 루이코를 또 이용한 겁니다. 세리아는 또 넘어가서 뭔 짓을 해도 칼스를 믿겠다고 하지 않습니까? 결국 칼스의 성공이죠. (대마왕k님은 저에게 낚였다고 했지만, 저는 어느 정도 제 예상대로 글이 흘러 칼스가 황제가 되는것 같은데요? 칼스가 이렇게 흘러갈거라고 예상못했다는 거짓말은 믿지 않습니다. 근데, 칼스가 세리아를 좋아하는 건 맞나요? 아직도 세리아를 그냥 이용하기만 한다는 느낌이 어딘가 남아있어요.)
    칼스 이 놈은 정말 노련한 정치가이고, 숨기는게 많고, 그냥 믿으면 안 되는 놈이네요.

    글을 읽으면서 계속 글에 적힌 내용과 머리싸움을 해야 되네요.
    뭔가 예상을 하면 그 뒤에서 그 예상이 맞다는 증거와 함께 그러기에 그 예상이 틀릴거라는 단서도 나옵니다. (혹은 그 예상이 틀렸다는 증거와 함께 그 예상이 맞을꺼라는 단서가 나오기도 하구요.)
    이 글을 읽는 것이 정말 즐겁습니다.
    (약간은 실례지만) 제가 문피아에서 읽은 글 중에서 (지금까지는) 두번째로 맘에 드는 글입니다. (첫번째가 아니라 죄송합니다. 아직까지 첫번째는 시연님의 미래전쟁이라는 작품입니다. 둘다 SF인건 제 취향 때문일테구요. 물론 이어지는 글의 내용에 따라서 이 글이 첫번째가 될수도 있겠죠.)
    이런 글을 써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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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대마왕k
    작성일
    14.08.17 21:51
    No. 12

    ^^ㅋ 장평과 과한 감사드리고... 이건 개인이 판단해야 할 부분이긴 합니다만... 남주는 그리 영웅적인 모습도, 완벽자는 아닙니다. 얼키설키 꼬인 부분이 많지만, 강한 면도 약한 면도 있지요. 일단 두 가지를 작자 입장에서 설명드리자면, 오랜 싸움입니다. 가져서도 안 되지만 마냥 버려둘 수도 없는 그녀에 대해, 그의 최초 입장은 일종의 도박을 건 셈입니다. 루이코를 이용해서 덤벼들도록 만들고, 가능하면 자리로 자신을 잡아두도록... 얄팍한 관계마저 끊기 싫어 은둔과 고립을 택한 그녀가, 최후의 수단으로 연정을 포기하면서 자기 자리는 찾아줄 것이란 계산. 하지만 이후 나오지만 그동안의 면박도 거부도 심지어는 능욕도 안 통하니... 막상 알고는 있지만 부정하고 싶었던 대전제...를 이것을 기화로 고집을 꺾는 거죠. 사실 어쩌면 기다리고 있었지만 아무도 먼저 꺼내기 싫어했던 이야기를 제 4자가 꺼내준 셈이 됩니다. 뭐, 일단 그는 자리도 차지하고 여자도 차지했습니다만... 이게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닐 겁니다. 부담인 것은 서로가 알고 있을 테니까요. 1부 2권은 제가 시간상 건강상 가장 쫓기면서 썼던 부분이라 구성면에서는 제일 마음에 안 드는 권입니다. 그래도 잘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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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 2장. 인간의 땅. (1) +6 14.09.14 1,622 32 17쪽
185 Ⓡ 1장. 1 vs 100. (3) +12 14.09.13 2,179 85 20쪽
184 Ⓡ 1장. 1 vs 100. (2) +12 14.09.11 1,594 23 18쪽
183 Ⓡ 1장. 1 vs 100. (1) +8 14.09.09 1,691 26 23쪽
182 Ⓡ <9권. 변혁(變革)의 시대> 프롤로그 : 겨울날의 책봉식 +4 14.09.07 1,724 30 11쪽
181 가족의 만찬 편 후기 +6 14.09.07 1,330 29 3쪽
180 Ⓡ <8권. 가족(家族)의 만찬> 에필로그 : 새로운 끈 +6 14.09.06 2,540 102 20쪽
179 Ⓡ 8장. 가지 않았기에 걸어야 할 길. (3) +10 14.09.05 1,754 26 19쪽
178 Ⓡ 8장. 가지 않았기에 걸어야 할 길. (2) +10 14.09.04 1,696 30 18쪽
177 Ⓡ 8장. 가지 않았기에 걸어야 할 길. (1) +8 14.09.03 1,653 29 11쪽
176 Ⓡ 7장. 실타래를 풀다. (3) +8 14.09.02 1,626 25 16쪽
175 Ⓡ 7장. 실타래를 풀다. (2) +6 14.09.01 1,565 24 19쪽
174 Ⓡ 7장. 실타래를 풀다. (1) +4 14.08.31 1,964 32 17쪽
173 Ⓡ 6장. 북한침공전Ⅲ : 벗어버린 껍질의 가능성. (3) +10 14.08.30 1,683 32 21쪽
172 Ⓡ 6장. 북한침공전Ⅲ : 벗어버린 껍질의 가능성. (2) +10 14.08.28 1,813 28 18쪽
171 Ⓡ 6장. 북한침공전Ⅲ : 벗어버린 껍질의 가능성. (1) +14 14.08.26 1,839 26 17쪽
170 Ⓡ 5장. 북한침공전Ⅱ : 은혜와 원한. (3) +8 14.08.25 1,826 40 20쪽
169 Ⓡ 5장. 북한침공전Ⅱ : 은혜와 원한. (2) +8 14.08.24 1,562 24 20쪽
168 Ⓡ 5장. 북한침공전Ⅱ : 은혜와 원한. (1) +12 14.08.24 1,823 36 16쪽
167 Ⓡ 4장. 북한침공전Ⅰ: 용의자 Y의 헌신. (3) +12 14.08.23 1,479 35 20쪽
166 Ⓡ 4장. 북한침공전Ⅰ: 용의자 Y의 헌신. (2) +6 14.08.22 1,897 32 14쪽
165 Ⓡ 4장. 북한침공전Ⅰ: 용의자 Y의 헌신. (1) +6 14.08.21 1,946 34 16쪽
164 Ⓡ 3장. 비상식 VS 몰상식 (3) +8 14.08.20 1,617 26 18쪽
163 Ⓡ 3장. 비상식 VS 몰상식 (2) +8 14.08.19 1,799 33 16쪽
162 Ⓡ 3장. 비상식 VS 몰상식 (1) +6 14.08.18 1,601 31 17쪽
161 Ⓡ 2장. 독특한 침략자. (3) +8 14.08.17 1,394 25 17쪽
160 Ⓡ 2장. 독특한 침략자. (2) +6 14.08.16 1,658 29 13쪽
159 Ⓡ 2장. 독특한 침략자. (1) +8 14.08.15 1,611 34 15쪽
158 Ⓡ 1장. 걸음을 내딛다. (3) +8 14.08.14 1,482 28 17쪽
157 Ⓡ 1장. 걸음을 내딛다. (2) +6 14.08.13 1,690 32 17쪽
156 Ⓡ 1장. 걸음을 내딛다. (1) +6 14.08.12 1,700 39 16쪽
155 Ⓡ <8권. 가족(家族)의 만찬> 프롤로그 : 라멘집의 이남이녀(二男二女) +10 14.08.10 2,067 22 8쪽
154 ------- 3부. 미래에의 지표 편에 앞서서... ------- +8 14.08.09 1,605 20 2쪽
153 2부 아샤르 연대기 후기 및 제목변경 설문. +6 14.08.09 1,298 18 4쪽
152 Ⓡ <7권. 배덕(背德)의 창공 後> 에필로그 : 너를 위한 기다림 (2부 完) +4 14.08.09 1,453 36 6쪽
151 Ⓡ 16장. 새벽 어스름, 어두운 창을 열며 빛을 기다리다. (3) +6 14.08.09 1,586 34 17쪽
150 Ⓡ 16장. 새벽 어스름, 어두운 창을 열며 빛을 기다리다. (2) +8 14.08.08 1,752 27 22쪽
149 Ⓡ 16장. 새벽 어스름, 어두운 창을 열며 빛을 기다리다. (1) +8 14.08.07 2,012 28 20쪽
148 Ⓡ 15장. 천국과 지옥의 경계. (3) +8 14.08.06 1,460 24 20쪽
147 Ⓡ 15장. 천국과 지옥의 경계. (2) +8 14.08.05 1,145 25 24쪽
146 Ⓡ 15장. 천국과 지옥의 경계. (1) +6 14.08.04 1,472 34 18쪽
145 Ⓡ 14장. 진정한 승리. (3) +12 14.08.02 1,428 29 24쪽
144 Ⓡ 14장. 진정한 승리. (2) +10 14.07.31 1,402 33 25쪽
143 Ⓡ 14장. 진정한 승리. (1) +6 14.07.29 1,306 21 19쪽
142 Ⓡ 13장. 끊어진 실. (3) +4 14.07.26 1,191 26 18쪽
141 Ⓡ 13장. 끊어진 실. (2) +8 14.07.24 1,554 33 18쪽
140 Ⓡ 13장. 끊어진 실. (1) +8 14.07.22 1,536 27 17쪽
139 Ⓡ 12장. 대전(大戰) : 모함(母艦) 대 모함. (3) +6 14.07.19 1,535 31 20쪽
138 Ⓡ 12장. 대전(大戰) : 모함(母艦) 대 모함. (2) +8 14.07.17 1,610 31 18쪽
137 Ⓡ 12장. 대전(大戰) : 모함(母艦) 대 모함. (1) +6 14.07.15 1,345 22 18쪽
136 Ⓡ 11장. 연전(連戰) : 욜스 전투. (3) +10 14.07.12 1,782 27 21쪽
135 Ⓡ 11장. 연전(連戰) : 욜스 전투. (2) +10 14.07.10 1,631 32 18쪽
134 Ⓡ 11장. 연전(連戰) : 욜스 전투. (1) +6 14.07.08 1,501 32 15쪽
133 Ⓡ 10장. 초전(初戰) : 비로스 731 전투. (3) +8 14.07.07 1,832 29 24쪽
132 Ⓡ 10장. 초전(初戰) : 비로스 731 전투. (2) +8 14.07.06 1,743 27 18쪽
131 Ⓡ 10장. 초전(初戰) : 비로스 731 전투. (1) +4 14.07.05 1,785 30 17쪽
130 Ⓡ 9장. 검(劍)을 손에 쥐고. (3) +8 14.07.04 974 26 20쪽
129 Ⓡ 9장. 검(劍)을 손에 쥐고. (2) +8 14.06.30 1,416 27 17쪽
128 Ⓡ <7권. 배덕(背德)의 창공 後> 9장. 검(劍)을 손에 쥐고. (1) +6 14.06.29 1,310 32 18쪽
127 <7권. 배덕(背德)의 창공 後> - 시작합니다. 그 전에 설문. +16 14.06.29 1,442 23 3쪽
126 Ⓡ 8장. 빛을 향한 어둠의 선언. (3) +6 14.06.28 1,698 31 18쪽
125 Ⓡ 8장. 빛을 향한 어둠의 선언. (2) +10 14.06.27 1,915 27 29쪽
124 Ⓡ 8장. 빛을 향한 어둠의 선언. (1) +6 14.06.26 1,737 86 25쪽
123 Ⓡ 7장. 잃은 것과 얻은 것. (3) +8 14.06.25 1,870 29 19쪽
122 Ⓡ 7장. 잃은 것과 얻은 것. (2) +6 14.06.24 1,271 24 22쪽
121 Ⓡ 7장. 잃은 것과 얻은 것. (1) +6 14.06.23 1,502 24 15쪽
120 Ⓡ 6장. 벌어진 간극. (3) +8 14.06.22 1,679 30 21쪽
119 Ⓡ 6장. 벌어진 간극. (2) +8 14.06.21 1,451 38 21쪽
118 Ⓡ 6장. 벌어진 간극. (1) +4 14.06.20 1,668 28 19쪽
117 Ⓡ 5장. 보다 중요한 것. (3) +10 14.06.19 1,968 30 23쪽
116 Ⓡ 5장. 보다 중요한 것. (2) +8 14.06.18 1,804 29 18쪽
115 Ⓡ 5장. 보다 중요한 것. (1) +8 14.06.17 1,590 28 15쪽
114 Ⓡ 4장. 분열의 조짐. (3) +2 14.06.16 1,984 35 16쪽
113 Ⓡ 4장. 분열의 조짐. (2) +6 14.06.15 1,369 32 18쪽
112 Ⓡ 4장. 분열의 조짐. (1) +8 14.06.14 1,419 29 20쪽
111 Ⓡ 3장. 엇갈린 인연. (3) +6 14.06.13 1,592 28 18쪽
110 Ⓡ 3장. 엇갈린 인연. (2) +8 14.06.12 1,666 23 17쪽
109 Ⓡ 3장. 엇갈린 인연. (1) +6 14.06.11 1,720 27 18쪽
108 Ⓡ 2장. 추억의 계단. (3) +4 14.06.10 1,607 33 16쪽
107 Ⓡ 2장. 추억의 계단. (2) +2 14.06.09 1,476 28 17쪽
106 Ⓡ 2장. 추억의 계단. (1) +2 14.06.08 1,532 28 16쪽
105 Ⓡ 1장. 여름날의 책봉식. (3) +6 14.06.06 1,442 22 16쪽
104 Ⓡ 1장. 여름날의 책봉식. (2) +2 14.06.05 1,991 36 16쪽
103 Ⓡ 1장. 여름날의 책봉식. (1) +2 14.06.04 2,557 93 17쪽
102 Ⓡ <6권. 배덕(背德)의 창공 前> 프롤로그 : 암흑의 우주, 빛의 창(槍) +2 14.06.02 1,921 36 5쪽
101 Ⓡ <5권. 인연(因緣)의 대지> 에필로그 : 정원, 세 번째 만남 +6 14.05.31 1,705 32 8쪽
100 Ⓡ 8장. 내가 감히 그대를... (3) +2 14.05.31 1,741 31 14쪽
99 Ⓡ 8장. 내가 감히 그대를... (2) +4 14.05.30 1,580 31 22쪽
98 Ⓡ 8장. 내가 감히 그대를... (1) +10 14.05.29 1,614 30 19쪽
97 Ⓡ 7장. 상처가 준 상처. (3) +4 14.05.28 1,623 29 24쪽
96 Ⓡ 7장. 상처가 준 상처. (2) +6 14.05.27 1,523 33 24쪽
95 Ⓡ 7장. 상처가 준 상처. (1) +2 14.05.26 1,631 44 20쪽
94 Ⓡ 6장. 지켜야 하는 것, 지키고 싶은 것. (3) +2 14.05.24 1,794 27 23쪽
93 Ⓡ 6장. 지켜야 하는 것, 지키고 싶은 것. (2) +2 14.05.23 1,512 35 23쪽
92 Ⓡ 6장. 지켜야 하는 것, 지키고 싶은 것. (1) +2 14.05.22 1,575 33 18쪽
91 Ⓡ 5장. 날 수 없는 작은 새. (3) +2 14.05.21 1,595 37 22쪽
90 Ⓡ 5장. 날 수 없는 작은 새. (2) +2 14.05.20 1,448 27 18쪽
89 Ⓡ 5장. 날 수 없는 작은 새. (1) +2 14.05.19 1,711 31 16쪽
88 Ⓡ 4장. 인연의 대지. (3) +2 14.05.17 1,536 29 15쪽
87 Ⓡ 4장. 인연의 대지. (2) +2 14.05.16 1,387 30 20쪽
86 Ⓡ 4장. 인연의 대지. (1) +2 14.05.15 1,343 33 13쪽
85 Ⓡ 3장. 황야, 두 번째 만남. (3) +4 14.05.14 1,632 41 14쪽
84 Ⓡ 3장. 황야, 두 번째 만남. (2) +2 14.05.13 1,529 31 19쪽
83 Ⓡ 3장. 황야, 두 번째 만남. (1) +2 14.05.12 1,633 34 17쪽
82 Ⓡ 2장. 그것이 알고 싶다. (3) +2 14.05.09 1,338 32 22쪽
81 Ⓡ 2장. 그것이 알고 싶다. (2) +5 14.05.08 2,247 33 19쪽
80 Ⓡ 2장. 그것이 알고 싶다. (1) +4 14.05.07 1,462 41 21쪽
79 Ⓡ 1장. 상처입은 고양이. (3) +2 14.05.06 1,558 36 21쪽
78 Ⓡ 1장. 상처입은 고양이. (2) +2 14.05.05 1,724 39 17쪽
77 Ⓡ 1장. 상처입은 고양이. (1) +2 14.05.04 1,728 34 18쪽
76 Ⓡ <5권. 인연(因緣)의 대지> 프롤로그 : 인연, 첫 번째 만남 +2 14.05.03 1,608 41 12쪽
75 Ⓡ <4권. 전장(戰場)의 소년> 에필로그 : 너에게로 가는 길 +6 14.04.29 1,929 42 24쪽
74 Ⓡ 8장. 사람의 길, 왕의 길. (3) +4 14.04.28 1,454 32 25쪽
73 Ⓡ 8장. 사람의 길, 왕의 길. (2) +2 14.04.27 1,548 28 22쪽
72 Ⓡ 8장. 사람의 길, 왕의 길. (1) +4 14.04.26 1,577 37 19쪽
71 Ⓡ 7장. 갈라진 길 : 장평대전(長平大戰). (3) +4 14.04.25 1,559 27 23쪽
70 Ⓡ 7장. 갈라진 길 : 장평대전(長平大戰). (2) +4 14.04.24 1,326 34 21쪽
69 Ⓡ 7장. 갈라진 길 : 장평대전(長平大戰). (1) +4 14.04.23 1,547 32 23쪽
68 Ⓡ 6장. 불어오는 바람. (3) +4 14.04.22 1,708 30 21쪽
67 Ⓡ 6장. 불어오는 바람. (2) +4 14.04.21 1,419 32 21쪽
66 Ⓡ 6장. 불어오는 바람. (1) +4 14.04.20 1,408 37 21쪽
65 Ⓡ 5장. 장막 속에서. (3) +4 14.04.19 1,528 33 21쪽
64 Ⓡ 5장. 장막 속에서. (2) +2 14.04.18 1,570 35 19쪽
63 Ⓡ 5장. 장막 속에서. (1) +6 14.04.17 1,726 41 21쪽
62 Ⓡ 4장. 같은 길을 가다. (3) +6 14.04.16 2,010 44 21쪽
61 Ⓡ 4장. 같은 길을 가다. (2) +6 14.04.15 2,324 44 20쪽
60 Ⓡ 4장. 같은 길을 가다. (1) +4 14.04.14 1,667 43 21쪽
59 Ⓡ 3장. 인연을 맺는 여로(旅路). (3) +2 14.04.13 1,833 36 21쪽
58 Ⓡ 3장. 인연을 맺는 여로(旅路). (2) +2 14.04.12 1,958 33 18쪽
57 Ⓡ 3장. 인연을 맺는 여로(旅路). (1) +2 14.04.11 2,406 38 23쪽
56 Ⓡ 2장. 탄생과 죽음. (3) +4 14.04.10 1,500 41 13쪽
55 Ⓡ 2장. 탄생과 죽음. (2) +4 14.04.09 1,829 39 16쪽
54 Ⓡ 2장. 탄생과 죽음. (1) +4 14.04.08 2,019 70 13쪽
53 Ⓡ 1장. 하늘과 바람이 만난 곳. (3) +2 14.04.07 2,201 50 18쪽
52 Ⓡ 1장. 하늘과 바람이 만난 곳. (2) +2 14.04.06 2,013 36 15쪽
51 Ⓡ 1장. 하늘과 바람이 만난 곳. (1) +2 14.04.05 2,313 40 17쪽
50 Ⓡ <4권. 전장(戰場)의 소년> 프롤로그 : 심야(深夜)의 자객 +8 14.04.03 2,207 37 12쪽
49 ------- 2부 아샤르 연대기 시작합니다. ------- +6 14.04.03 1,779 38 2쪽
48 1부 종료 및 후기. +4 14.04.01 2,539 97 3쪽
47 Ⓡ <3권. 홍염(紅炎)의 연회> 에필로그 : 내 사랑스런 세상 (1부完) +10 14.03.31 2,352 44 14쪽
46 Ⓡ 8장. 대타협. (3) +8 14.03.29 2,001 48 14쪽
45 Ⓡ 8장. 대타협. (2) +8 14.03.28 2,132 38 25쪽
44 Ⓡ 8장. 대타협. (1) +4 14.03.27 2,146 42 22쪽
43 Ⓡ 7장. 이 마음이 너에게 닿기를... (3) +7 14.03.26 2,056 36 23쪽
42 Ⓡ 7장. 이 마음이 너에게 닿기를... (2) +4 14.03.25 2,078 47 18쪽
41 Ⓡ 7장. 이 마음이 너에게 닿기를... (1) +4 14.03.24 2,343 56 21쪽
40 Ⓡ 6장. 지옥을 만드는 것. (3) +10 14.03.22 2,299 46 26쪽
39 Ⓡ 6장. 지옥을 만드는 것. (2) +11 14.03.21 2,518 106 18쪽
38 Ⓡ 6장. 지옥을 만드는 것. (1) +11 14.03.20 2,143 43 20쪽
37 Ⓡ 5장. 푸른 바다, 붉은 하늘. (3) +12 14.03.19 2,775 55 27쪽
36 Ⓡ 5장. 푸른 바다, 붉은 하늘. (2) +4 14.03.18 3,159 88 19쪽
35 Ⓡ 5장. 푸른 바다, 붉은 하늘. (1) +6 14.03.17 2,599 45 20쪽
34 Ⓡ 4장. 증오와 편견 : 오퍼레이션 트리아이나. (3) +4 14.03.15 2,374 42 19쪽
33 Ⓡ 4장. 증오와 편견 : 오퍼레이션 트리아이나. (2) +4 14.03.14 2,577 54 21쪽
32 Ⓡ 4장. 증오와 편견 : 오퍼레이션 트리아이나. (1) +7 14.03.13 2,391 48 19쪽
31 Ⓡ 3장. 각자의 전장. (3) +8 14.03.12 2,170 48 23쪽
30 Ⓡ 3장. 각자의 전장. (2) +2 14.03.11 2,314 50 21쪽
29 Ⓡ 3장. 각자의 전장. (1) +5 14.03.10 2,197 44 19쪽
28 Ⓡ 2장. 최강 대 최강 : 일본해구 전투. (3) +4 14.03.09 2,236 49 16쪽
27 Ⓡ 2장. 최강 대 최강 : 일본해구 전투. (2) +6 14.03.08 3,003 50 20쪽
26 Ⓡ 2장. 최강 대 최강 : 일본해구 전투. (1) +4 14.03.05 2,700 53 17쪽
25 Ⓡ 1장. 전야제(前夜祭). (3) +6 14.03.01 2,502 100 15쪽
24 Ⓡ 1장. 전야제(前夜祭). (2) +4 14.02.26 2,120 46 19쪽
23 Ⓡ 1장. 전야제(前夜祭). (1) 14.02.22 2,283 37 14쪽
22 Ⓡ <3권. 홍염(紅炎)의 연회> 프롤로그 : 미지의 전장으로 +4 14.02.19 2,098 41 9쪽
21 2권까지 쓰고 후기. +10 14.02.08 2,156 44 13쪽
20 Ⓡ <2권. 구궁(九宮)의 황녀> 에필로그 : 천년의 정원 +6 14.02.08 2,334 47 22쪽
» Ⓡ 8장. 세상의 끝에서 진심을 외치다. +12 14.02.08 2,042 54 66쪽
18 Ⓡ 7장. 듣고 싶지 않았던 말. +4 14.02.05 2,415 50 72쪽
17 Ⓡ 6장. 부당거래(不當去來). +8 14.01.29 2,182 48 59쪽
16 Ⓡ 5장. 투쟁남녀(鬪爭男女). +2 14.01.25 2,532 47 43쪽
15 Ⓡ 4장. 부유하는 마음. +10 14.01.21 2,447 44 45쪽
14 Ⓡ 3장. 내일의 날씨는 태풍. +9 14.01.19 3,014 47 53쪽
13 Ⓡ 2장. 진짜 악마는 꼬리가 없다. +19 14.01.18 3,209 123 49쪽
12 Ⓡ 1장. 여우 집에 간 두루미. +8 14.01.18 3,652 107 38쪽
11 Ⓡ <2권. 구궁(九宮)의 황녀> 프롤로그 : 우주 저 너머에서 +4 14.01.18 2,911 52 3쪽
10 Ⓡ <1권. 일상(日常)의 파괴> 에필로그 : 가장 좋아하는 나 +14 14.01.14 3,091 64 9쪽
9 Ⓡ 8장. 나의 이름은... +10 14.01.14 3,020 67 36쪽
8 Ⓡ 7장. 생(生)과 사(死). +4 14.01.14 3,318 105 44쪽
7 Ⓡ 6장. 지키는 이들의 싸움 +7 14.01.14 3,382 55 33쪽
6 Ⓡ 5장. 불편한 동행. +10 14.01.14 3,485 59 37쪽
5 Ⓡ 4장. 나는 왕이로소이다. +6 14.01.14 3,848 70 45쪽
4 Ⓡ 3장. 미지와의 조우. +7 14.01.14 4,648 64 40쪽
3 Ⓡ 2장. 북해도의 봄. +11 14.01.14 9,763 95 48쪽
2 Ⓡ 1장. 무너지는 세상. +30 14.01.14 16,565 179 23쪽
1 Ⓡ<1권. 일상(日常)의 파괴> 프롤로그 : 어느 연설 +33 14.01.14 24,075 245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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