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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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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11 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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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글자
21쪽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2)

DUM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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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OC(Arms of Creed)


AOC-신념의 팔-는 리크나이츠 북부의 병력운용 일체화를 위해 만들어진 방위전략이다. 대통합내전 당시 카로얀 제르비안이 그 토대를 만들었고, 이후 조나단 위그라프 후작에 의해 공식적으로 법문화되었다. 이 전략은 기사단이 존재하지 않는 북부지역의 방위에 혁혁한 효과를 나타내고 있으며, 실제로 마드리고 탈환 당시 리크나이츠 군의 3할은 이 AOC군으로 이루어졌다.

AOC의 기본은 제승방략으로, 전쟁발발 시 모든 영지에서 병사를 징발하여 가장 가까운 최전선의 도시로 집결한다. 이때 각 영주는 기사단의 상급기사에, 영주의 친위대는 백인대장에, 각 영지의 병사는 기사단 정규군에 상응하는 권한을 얻게 된다. 군의 총지휘는 기본적으로 AOC의 발령자가 맡게 되지만, 지리상의 이점을 얻기 위해 전장이 되는 영지의 영주를 반드시 참모로 임명해야만 한다. 또한 의무적으로 왕실에서 파견한 관리를 서기관으로 두어야 하며, 군사작전 감행 시에는 공격보다 수비를 우선으로 하고, 설령 요격에 나선다 해도 다른 기사단에 협력을 얻어야만 한다.

부대의 보급은 해당영주가 직접 담당하는 게 원칙이지만, 전쟁이 1달 이상 지속될 시에는 왕실에서 추가로 물품을 지원한다.

이러한 AOC는 지리적인, 그리고 재정적인 문제로 기사단 운영이 어려운 북부지방의 한계를 효과적으로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빠르게 귀향하니 유지비 측면에서도 효율적이며, 계급을 막론하고 모든 영지에 부과되는 공통된 의무인 만큼 귀족들을 쉽게 규합한다는 이점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일체화된 훈련의 부재로 전술적인 움직임에 있어서 여타 기사단에 비해 모자라고, 부대편재에 있어 기마대의 비율이 극도로 낮다는 단점도 내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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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온이 산적 일당을 제압하기까진 채 1분이 걸리지 않았다. 분노가 깃든 매직미사일과 연타로 날아온 쇼크에 산적들은 무기 한 번 휘둘러보지 못하고 땅바닥을 뒹굴어야 했다.

보통은 여기서 싹 정리하든지 아니면 가던 길 가는 게 맞겠지만, 일행은 번거롭게 산적들을 한데 모아놓고는 꿇어앉게 했다. 그중에는 재수 없게 정강이에 매직미사일을 맞아 부러진 사내도 있었는데, 이칼롯은 그를 바닥에 대(大)자로 납작 엎드리게 했다.

산적들은 일단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자 고분고분하게 말을 따랐다. 허리에 찬 도끼가 무색해질 정도의 비굴함이라, 루도는 혀를 끌끌 찼다.

이칼롯이 말했다.


“물어볼 게 있다. 10대 중반의 소년이 이 부근을 지나가지 않았나? 갈색 머리에 앳되어 보이는 얼굴인데.”


“아아! 그 말 타고 있던 꼬맹이 말씀하시는 거고만요. 헤헤, 딱 몇 시간 전에 여길 지나쳤는데 말이죠.”


“지나쳐? 너희는 그 애를 보고도 가만히 있었다는 건가?”


“그야 물론, 털어먹으려고 했습죠. 길 위에 올가미까지 쳐놓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 그놈이 글쎄...”


산적두목은 혹시 꾸며내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거침없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의 설명은 이랬다.

그들은 이 고개에서 상주하며 지나가는 여행자들을 털어먹는 부류인데, 요 며칠간 왕래하는 행인이 없어 풀이 죽어 있던 차였다. 그렇게 오늘도 허탕인가 한숨을 쉬고 있자니 웬 소년이 말을 타고 고개를 넘어가는 것이다. 소년의 행색은 부유한 귀족의 그것과 흡사했고, 타고 있는 말도 팔면 한몫 단단히 챙길 수 있을만한 준마였다.

산적들은 고개를 가로질러 자리를 잡고는 소년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소년은 산적들과 마주치자 당황하는 기색도 않고 바로 말의 옆구리를 쳤다. 갑작스러운 소년의 돌진에 산적들은 당황하여 그만 길을 비켜주고 말았다. 그러나 가파른 오르막길이라 속도는 형편없이 떨어져 있었고, 좀 더 올라가면 미리 준비해둔 인원들이 올가미를 던질 참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소년이 기지를 발휘했다. 품에 숨기고 있던 귀중품을 꺼내어 마구 땅에 흩뿌리기 시작한 것이다. 애초에 돈을 노리던 작자들이던 만큼 산적들은 이성을 잃고 땅에 떨어진 금붙이를 줍기 시작했다. 은촛대, 마노반지, 터키석 브로치 등등. 흙바닥이 일순 반짝이는 것들로 가득 차자 올가미를 쥐고 있던 남자들까지 일시에 뛰쳐나올 정도였다.

습격은 그걸로 끝. 산적들은 그것들을 챙겨 흡족하게 위치로 돌아왔다. 소년을 놓쳤다거나, 말을 잡아 팔면 훨씬 벌이가 좋았을 거라는 후회는 보석이 발하는 광채에 녹아 사라진 뒤였다.


“그래서 그 소년은 어디로 갔지?”


“그건 저희도 모릅죠. 북쪽으로 가고 있긴 하던데 루비크일 수도 있고 아니면 레인스터일 수도 있고, 아마 다른 산적들에게 걸렸을 수도 있고요. 헤, 헤.”


빠악. 경망스러운 농담도 시기를 가려가면서 해야 한다. 산적 두목은 제리온의 발길질에 땅을 한 바퀴 구른 후 후다닥 일어났다. 얻어맞은 뺨이 금세 벌겋게 부어올랐다.


“뭐가 웃기냐 이 새끼야. 상황파악 안 돼?”


“죄, 죄송합니다. 저어...저희가 더 도와드릴 일이라도?”


두목은 어느새 자신이 일행의 동료라도 되는 줄 아는지 굽실거리며 손바닥을 비볐다. 어쩌면 그게 그 나름의 처세술인지도 몰랐다.


“반나절이라...출발했을 때와 그다지 거리가 안 좁혀졌다는 말인데. 그 자식, 엄청 강행군인데?”


“달리는 건 말이니 상관없으려나...”


일행은 이미 카이안이 지나쳐갔을 고개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끝도 없이 굽이진 고개가 보는 사람의 속을 메스껍게 만들었다. 차라리 녹음이라도 우거져 있으면 보는 경치라도 있으련만, 겨울을 맞이해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삼림은 황량하기까지 했다.


“이제 레인스터도 얼마 안 남았는데...”


여기까지 오자 일행은 카이안을 붙잡는 것보다 그의 상태가 더 염려되기 시작했다. 비실비실한 학생인 그가 일행조차 따라잡기 힘들 정도의 강행군을 했다는 건 그만큼 억센 각오를 했다는 뜻이다. 살을 에는 마파람을 맞으며, 익숙지 않은 노숙을 하며, 산적을 만나면 거리낌 없이 소지품을 집어던지면서.


“네에 네. 효자 나셨네 효자 나셨어. 그런 착하신 분이 왜 부모님 놔두고 타지로 나왔나 몰라.”


유미르네의 비아냥도 계속 듣다 보니 신세 한탄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일행은 말을 세운 김에 잠깐 휴식을 취하고 가기로 했다. 그사이 루도와 제리온은 부지런하게 산적들의 금품을(!) 갈취하고 다녔다.


“나, 나리...제발 이것만은...”


“좆을 까세요. 니가 가진 그게 우리 애새끼가 뿌리고 간 거라 그거다.”


“하지만 저희도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라..”


“확! 뭣하면 지금 먹고 살 걱정 없게 해줄까?”


한편 이칼롯은 산적두목을 상대로 쓸만한 정보를 캐내는 중이었다. 특히 그는 조금 전 두목의 이야기를 들을 때 마음에 걸렸던 부분을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이 고개를 지나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나?”


“없는 건 아닌데, 최근 들어 급격히 줄어들었습죠. 요 일주일간은 개미 새끼 하나도 구경 못했으니까요.”


“이 부근은 나름 교통의 요지인 걸로 아는데. 이상한 일이군.”


미심쩍게 말꼬리를 흘렸지만 전쟁의 여파로 상업이 축소되었다고 하면 납득 못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전쟁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문득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의문이 있었다. 이칼롯은 재차 두목에게 물었다.


“일주일간 아무도라니, 그게 무슨 말이지?”


“예? 말씀드린 그대로인데...제가 뭐 잘못한 게 있습니까요?”


“그러니까 내 말은...군대 같은 것도 본 적 없냐는 거다.”


두목은 헝클어진 머리를 긁적이다 말했다.


“전혀입죠. 저희가 이 구역은 사시사철 감시하고 있는데, 하물며 군대 같은 대규모 행렬을 못 봤을 리가 없습죠, 네.”


이칼롯의 얼굴이 점차 의혹으로 번져가기 시작했다. 국왕의 결정대로라면 현재 왕실기사단을 포함하여 모든 병력이 레인스터로 향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군대의 행렬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혹 북부일대의 영주들에게 명령이 하달되지 않은 것은 아닐까? 아니, 애초에 AOC는 국왕의 명령 없이도 발동되는 체계일 텐데.

생각에 빠져 있던 이칼롯은 곧 레미나와 제리온도 자신과 같은 고민에 빠져 있음을 알아챘다. 특히 정치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레미나는 크게 당황한 모습이었다.


“그런...지금쯤이면 적어도 루비크와 아르카디아...에닌샤에서 온 지원군이 도착해야 할 시간인데...”


“느낌이 좋지 않은데. 누님, AOC가 발령됐을 때 레인스터에 소집되는 병력이 어느 정도지?”


“그...글쎄, 최근 병력현황은 잘...”


디리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대략 6천에서 7천 정도지. 흑연기사단의 4분의 1 수준이지만, 뭐 농성이라면 할 만하지. 곧 왕실기사단도 올 테고.”


레인스터에 7천, 지원으로 오는 왕실기사단 역시 7천, 흑연기사단은 약 2만5천. 머릿속에 떠오르는 전황판은 마뜩잖긴 하지만 그래도 유려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수도를 포기해가면서까지 감행한 작전이니, 결코 패배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산적들이 하는 이야기는 일행이 예측한 미래에 암운을 드리웠다.


“레인스터 자체의 병력은 어느 정도지?”


“최대한 모아야 2천...정도?”


2천. AOC가 발동하지 않는다면 레인스터는 단 2천의 병력으로 2만이 넘는 적군을 막아내야 한다. 물론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채 하루도 버티기가 힘들 게 분명하다.

그러나 레미나는 다른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가 말했다.


“있을 수 없어요. AOC는 북부 영주들이 필수적으로 지켜야 하는 의무라구요. 하물며 지금 같은 비상시기에...”


“하지만 눈으로 보는 게 현실입니다 공주님.”


“조, 조금 늦는 것이겠죠. 북부 사령관이 AOC를 발령했다면 영주들이 응하지 않을 리 없어요.”


“그 사령관이라는 사람은 누구인지 알고 계십니까?”


레미나는 자신 있게 대답하려다가 말문이 턱 막혀 숨을 삼켰다. 북부지역의 사령관, AOC의 발령자, 그리고 일행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이름.


“위그라프...후작...”


명망 높은 세도가였던 위그라프는 5년 전 반란을 일으키고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를 알던 사람들은 왜 후작이 그런 무모한 짓을 벌였는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워하곤 했는데, 그중에는 람카디스도 있었다.

그러나 심증으로 볼 때 후작의 반란에는 안개송곳니의 뒷공작이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안다바리엘의 마인드컨트롤은 직접 눈으로도 목격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지금, 왜 레이시가 다른 사람도 아닌 위그라프를 마인드컨트롤의 대상으로 삼았는지가 밝혀지고 있었다. 레미나가 말했다.


“저..제가 죽은 후, 아니, 그러니까 실종되고 나서 후작가는 어떻게 되었죠? AOC는요?”


여기에 대해선 루도가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위그라프의 가문은 완전히 풍비박산 났어. 그리고 직접적으로 가담하진 않았더라도 소위 후작 뒤에 ‘줄을 섰던’ 귀족들도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었고. 여기에 피해를 보지 않은 건 레인스터와 델키아 정도야. 레인스터야 공동으로 관리되는 도시고, 델키아는 우리 영주님이 워낙 혜안이 있는 분이라.”


“그럼...AOC는?”


이칼롯이 말했다.


“명목상으로는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지휘권자가 사라진 이상 의무를 강요할 사람은 없어졌다고 봐야겠죠. 그렇다곤 해도 이 정도까지 몸을 사릴 줄이야.”


병력을 한데 규합하지 않는 이상 기사단에 대항하기란 어림도 없는 일이다. 2만이 넘는 흑연기사단. 아마도 변방에 자리 잡은 소규모의 영지들은 어쭙잖게 부대를 편성했다가 패배하느니, 고향을 지키며 다른 기사단이 전쟁을 끝내주길 바라고 있을 것이다. 혹여 아스트리카가 자신네 영지까지 진격해온다 해도 항복해버리면 그만이다. 그럼 어찌 됐든 일신의 안위는 지킬 수 있을 테니까.

어차피 북부의 소영주들은 정계진출에는 관심도 없다. 500년이 넘게 지속된 귀족정치와 지역이기주의의 폐해는 아직도 뿌리 뽑히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일이 이렇게까지 비틀어졌음에도 일행의 최우선 목표는 여전히 카이안이었다. 일행은 찰나의 휴식을 마치고서 말 위에 올랐다. 산적의 뒷처리는 무기를 빼앗아 계곡 아래로 던져버리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출발, 출발! 어서 그 당돌한 꼬맹이를 쥐어박으러 가자고!”


비탈길을 오를 때마다 자갈이 튀고 텁텁한 모래먼지가 입속으로 들어왔다. 하필 태양을 정면으로 향하고 있어 말을 모는 동안 제대로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더 나아갔다간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착각이 들었지만, 루도는 그 시뻘건 덩어리를 애써 무시했다.

길고 긴 고개를 넘어 마침내 산 아래의 전경이 전부 내려다보이는 곳까지 다다랐으나, 여전히 군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세 시간이 흐른 후, 일행은 마침내 카이안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일행은 산 비탈길이 끝나는 곳에 오도카니 선 채 안절부절못하는 그를 발견하고는 일제히 고함을 질렀다.


“찾았다 이눔시키!!”


“야이 빌어먹을 자식아!!”


“우워우어어어!”


그가 멈춰서 있던 것에는 달리 큰 이유가 없었다. 연일 이어지는 강행군으로 혹사당한 말이 기어이 자리에 드러눕고 만 것이다. 말의 체력을 알 리 없는 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말을 일으켜 세우려 낑낑대고 있었다.


“어...어? 루도?”


“어어는 무슨 이 미친놈아!”


빠악. 루도는 재회의 기쁨을 그의 뒤통수를 휘갈김으로서 표현했다. 뒤이어 마리네와 디리터, 제리온의 애정 어린 인사가 이어졌다.


“윽...아니, 여러분 대체 왜 여기 계신 거죠?”


카이안은 여전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왜 로샤단이 자신을 찾아온 건지, 아니 어떻게 찾아낸 것인지도.

그러나 일행은 흥분한 나머지 설명보다 행동이 앞섰다. 마치 가출한 아이를 붙잡아 끌고 가는 모양새가 되어, 디리터가 카이안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돌아가자 이 멍청아.”


“무, 무슨 소리예요 돌아가자니...그것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예요?”


“그것 때문? 네가 지금 가려는 곳이 어딘지 알고 하는 소리냐? 거긴 곧 전쟁터가 될 거야. 주민 모두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잠깐, 놔요. 이것 놓으라고요!”


경황이 없는 가운데에서도 카이안은 돌아간다는 말에 극도로 거부반응을 보였다. 그는 디리터의 손을 야멸치게 뿌리치고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리고서 루도와 마리네에게 도움을 바라는 시선을 건넸는데, 안타깝게도 일행은 모두 한통속이었다.


“이번에는 너무 무모했어, 카이안. 돌아가자.”


“루도...”


“레인스터는 별일 없을 거야. 왕실기사단도 움직이고 있고...그러니까...”


“거짓말하지 마.”


그 독기어린 한 마디에 놀라 루도는 흠칫 어깨를 떨었다. 카이안은 궁지에 몰렸으면서도 여전히 당당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만큼 자신의 행동에 한 점 후회가 없다는 뜻이었기 때문에, 루도는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

카이안이 말했다.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해? 흑연기사단이 레인스터로 진군하고 있다며. 그 군대...에 대해서는 이미 조사해봤어. 가는 곳마다 살인, 방화, 약탈...끌려간 사람만 이미 만 단위라면서!”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냐...”


먹힐 리 없는 설득. 루도 역시 그걸 알고 있었기에 말끝이 힘없이 늘어졌다.


“농담하는 거지? 레인스터엔 우리 가족이 있다고! 어머니와 아버지...그분들을 모른 척하라는 거야?”


“그런 소리가 아니잖냐. 네가 간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무모한 짓 하지 말고 일단 돌아가자.”


“이런 때니까 무모해질 수밖에 없는 거잖아!!”


울분에 찬 외침이 탁 트인 비탈길에 메아리쳤다. 들판에는 죽은 풀들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는데, 마침 약한 바람이 불어와 사르륵 움직였다. 그러나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그게 바람에 의해서가 아닌, 카이안의 일갈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카이안은 어느새 눈망울이 그렁그렁해졌다. 하지만 재빨리 눈물을 훔쳤을 뿐, 울먹인다거나 하진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쯤 이미 알고 있어. 그냥 가족이니까 가는 거라고. 내 가족!”


“그...”


루도는 무언가 말하려 운을 뗐지만, 곧 머릿속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 황망하게 팔을 휘저었다. 그가 설득을 포기하자 이번에는 제리온이 나섰다.


“그럼 이렇게 하자. 우리가 크리드 아저씨네를 책임지고 구출해낼 테니 넌 기숙사로 돌아가서 기다리고 있어.”


그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카이안은 애초부터 자신의 결정을 꺾을 뜻이 조금도 없었다.


“하아? 왜 여러분이 거기까지 해야 하는데요? 그런 부탁 하지도 않았다고요.”


“...너 임마 우리가 기껏 생각해서 말해줬더니...”


“솔직히 그것도 의문스러워요. 왜 나 같은 거 하나 붙잡겠다고 이렇게 덕지덕지 몰려온 거예요? 뒤에는 공주님까지 데리고선...이렇게까지 오지랖을 떠는 이유가 뭔데요?”


“그거야...”


친구니까?

아니, 그 정도론 설명이 되지 않는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지만, 그걸 입 밖에 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유미르네는 어느새 웃음보가 터질 것 같은 얼굴이 되어 황급히 입을 가렸다. 그녀는 아무도 듣지 못하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루도도 그렇고 쟤도 그렇고...참 신이란 작자도 웃기네, 킥킥.”


일행은 이제 카이안을 설득할만한 일언반구도 떠올리지 못했다. 지금의 카이안은 무슨 말을 해도 들을 것 같지가 않았다.

이제 남은 방법은 억지로 끌고 가는 것뿐. 포박을 해도 되고, 편하게 목덜미를 찍어 기절시키는 방법도 있었다. 그러나 본인이 이렇게까지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이상 그 방법도 요원해져 버렸다. 만약 이대로 크리드 부부가 죽기라도 한다면, 루프리모의 아이가 받을 충격은 어마어마할 것이 틀림없었다.

최악의 경우 각성해버릴 가능성도. 결국 뒤쫓아 오긴 했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결정은 으레 그렇듯 이칼롯이 내렸다. 뒤에서 루도와 카이안의 입씨름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그는, 현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카이안, 말도 없이 어떻게 레인스터까지 갈 생각이지?”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하자 카이안은 그제야 다소 움츠러들었다. 그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야...근처를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부탁하던지..아니면 걸어서라도...”


“너도 알 텐데. 이 부근은 완전히 인적이 끊겼어. 게다가 아까는 산적에게 잡힐 뻔하지 않았나?”


“뭐, 뭐라 해도 난 돌아갈 생각 없어요. 레인스터로 갈 거라고요.”


“알았다. 그럼 지금 마리네의 뒤에 타라.”


“...예?”


거절의사를 연거푸 토해내려던 카이안은 멍한 얼굴이 되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닌지 확인하려고 루도와 마리네의 표정을 살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얼굴도 카이안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무, 무, 무슨 말인지...”


“우리도 함께 간다는 거야. 더 할 말 있나?”


“하지만...”


카이안의 눈에는 일행이 자신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동행하려는 것으로 비춰졌다. 물론 그의 안위가 가장 큰 관심사이긴 했다. 그러나 굳이 스스로를 합리화하자면, 무리해서 레인스터 수복을 주장한 만큼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명감도 있었다.

일촉즉발의 레인스터와 움직임이 없는 주변도시...아마 로샤단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다. 적어도 이칼롯은 그렇게 생각했다.


“자, 일단 우리도 레인스터로 가자. 다들 말에 타.”


“이칼롯, 설마 아까 산적들의 이야기가 마음에 걸리는 거야?”


마리네가 쭈뼛거리며 물었다. 이칼롯은 대답하기에 앞서 다른 이들의 면면을 훑어보았다. 오직 유미르네만이 마뜩잖은 얼굴을 하고 있을 뿐, 대부분 그의 명령에 따르는 모습이었다.

때문에 이칼롯의 말은 설득이라기보단 작전설명에 가까웠다.


“레인스터로 가서 수성준비가 얼마나 되었는지 알아보자. 우리가 들은 게 단순한 기우였다면 그걸로 끝. 루시올라 경을 모시고 수도로 돌아간다. 그리고 만약 병력이 집결하지 않았다면...우리가 직접 군대를 규합하는 수밖에 없겠지.”


“어이어이, 농담이지? 우리가 군대를 모은다니.”


제리온이 묘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 미소에는 작은 희열마저 느껴졌는데, 이는 이미 이칼롯의 의도를 완벽히 간파했다는 뜻이었다. 이칼롯이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권력을 얻었으니 남용해봐야겠지. 공주님이 함께 하는 이상 우리가 하는 말은 모두 왕명에 준하는 효력을 얻는다. 즉, 우리가 직접 AOC를 발령하는 것도 가능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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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 람의 계승자 - ep.5 - 왕하직속뭐시기(1) +3 15.05.09 915 23 21쪽
235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7) +2 15.05.09 1,007 24 18쪽
234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6) +5 15.05.08 1,022 28 24쪽
233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5) +2 15.05.08 885 23 24쪽
232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4) +2 15.05.08 901 22 26쪽
231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3) +2 15.05.08 894 24 19쪽
230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2) +2 15.05.08 758 23 24쪽
229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1) +5 15.05.07 770 25 19쪽
228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10) +2 15.05.07 889 23 24쪽
227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9) +1 15.05.07 813 21 24쪽
226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8) +4 15.05.06 731 26 22쪽
225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7) +2 15.05.06 976 24 29쪽
224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6) +3 15.05.06 802 23 28쪽
223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5) +4 15.05.05 929 26 24쪽
222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4) +2 15.05.05 762 23 23쪽
221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3) +1 15.05.05 642 22 15쪽
220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2) +2 15.05.05 771 24 18쪽
219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1) +4 15.05.05 685 23 15쪽
218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4) +2 15.05.05 921 24 23쪽
217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3) +3 15.05.04 935 22 23쪽
216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2) +2 15.05.04 867 22 21쪽
215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1) +1 15.05.04 774 24 20쪽
214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5) +2 15.05.04 709 24 15쪽
213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4) +2 15.05.04 720 25 23쪽
212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3) +3 15.05.03 844 29 18쪽
211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2) +3 15.05.03 763 22 23쪽
210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1) +2 15.05.03 853 23 20쪽
209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7) +5 15.05.03 795 28 25쪽
208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6) +2 15.05.03 894 24 22쪽
207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5) +4 15.05.02 938 29 21쪽
206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4) +1 15.05.02 884 27 20쪽
205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3) +2 15.05.02 690 24 21쪽
204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2) +2 15.05.02 767 24 24쪽
203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1) +2 15.05.02 586 24 22쪽
202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6) +3 15.05.02 696 28 18쪽
201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5) +5 15.04.29 863 24 19쪽
200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4) +1 15.04.29 937 24 26쪽
199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3) +1 15.04.29 789 24 24쪽
198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2) +3 15.04.29 812 26 18쪽
197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1) +1 15.04.29 758 24 17쪽
196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8) +4 15.04.28 904 28 16쪽
195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7) +3 15.04.28 840 25 20쪽
194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6) +3 15.04.27 711 26 19쪽
193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5) +3 15.04.27 756 22 17쪽
192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4) +2 15.04.27 731 22 18쪽
191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3) +1 15.04.27 730 30 18쪽
190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2) +2 15.04.27 758 27 19쪽
189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1) +2 15.04.27 789 31 18쪽
188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完) +1 15.04.27 599 33 18쪽
187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5) +4 15.04.26 733 24 17쪽
186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4) +1 15.04.26 928 28 16쪽
185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3) +2 15.04.26 739 26 20쪽
184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2) +6 15.04.23 779 28 15쪽
183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1) +3 15.04.23 840 26 19쪽
18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2) +2 15.04.23 755 25 17쪽
18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1) +3 15.04.23 767 26 15쪽
180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0) +1 15.04.23 682 25 22쪽
179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9) +3 15.04.22 811 29 16쪽
178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8) +3 15.04.22 846 27 15쪽
177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7) +1 15.04.22 776 29 18쪽
176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6) +1 15.04.22 790 23 18쪽
175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5) +2 15.04.22 765 29 15쪽
174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4) +3 15.04.22 911 25 18쪽
173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3) +5 15.04.21 767 27 16쪽
17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2) +2 15.04.21 922 25 14쪽
17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 +3 15.04.21 805 25 17쪽
170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8) +3 15.04.21 729 24 21쪽
169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7) +2 15.04.21 703 19 15쪽
168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6) +4 15.04.20 750 24 18쪽
167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5) +2 15.04.20 655 20 18쪽
166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4) +1 15.04.20 767 23 17쪽
165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3) +2 15.04.20 738 24 16쪽
164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2) +3 15.04.20 809 20 16쪽
163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1) +1 15.04.20 821 22 21쪽
162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6) +1 15.04.20 830 29 14쪽
161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5) +2 15.04.20 711 25 18쪽
160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4) +3 15.04.19 865 28 18쪽
159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3) +3 15.04.19 946 28 18쪽
158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2) +3 15.04.19 901 26 22쪽
157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1) +5 15.04.19 1,210 46 22쪽
156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10) +6 15.04.18 901 26 21쪽
155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9) +3 15.04.18 772 26 18쪽
154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8) +1 15.04.18 657 24 19쪽
153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7) +2 15.04.18 687 26 18쪽
152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6) +1 15.04.18 748 27 17쪽
151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5) +4 15.04.18 713 23 16쪽
150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4) +1 15.04.18 669 24 17쪽
149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3) +2 15.04.18 754 22 17쪽
148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2) +3 15.04.16 849 2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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