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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3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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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02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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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3)

DUMMY

제스터는 과장스럽게 어깨를 흔들었다. 꿇어앉은 무릎 뒤꿈치를 톡톡 땅바닥에 두드리면서, 양 손가락을 피아노라도 치는 것처럼 부산하게 맞부딪혔다. 그러나 그 움직임이 너무나도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여전히 웃고 있는 그의 가면 때문이었다. 마치 그게 그의 본래 얼굴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가면은 제스터의 얼굴에 꼭 달라붙어 있었다.


“이야,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이런 곳에서 제 정체를 들키게 될 줄이야. 그 안경, 악마식별의 기능이 있는 모양이군요.”


그러나 놀랐다고 이야기하는 그의 목소리는 조금 전과 전혀 달라진 게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차분해졌다고 생각될 정도로 가라앉은 어조였다.


“아...악마.”


일행은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멍한 표정을 지었다.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케리아돌의 둥지에서 보았던 성언전쟁의 기억이었다. 태양을 가릴 정도로 밀려들던 엄청난 숫자의 악마들. 게이트를 파괴하기 위해 돌진하던 드래곤과 생텀가드들. 그런 그들을 파리 죽이듯 짓밟아대던 레비저, 로드, 그리고 아루의 다섯 종복.

그것은 천 년 전의 이야기였다. 너무나도 오래전의 기억이었기 때문에 그게 실제 일어난 일이라 하더라도 그다지 현실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악마가 지금, 눈앞에 있었다. 그 옛날 세상을 집어삼키려 했던 공포의 존재가.

루도는 반사적으로 제스터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 그의 정체를 안 순간 자기도 모르게 살인충동이 끓어오른 것이다. 비단 그만이 아니라, 성언전쟁을 체험했던 이들은 전부 그렇게 느꼈다. 제스터는 일그러진, 그러나 반쯤 겁에 질린 루도의 얼굴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이런이런. 항복한 포로를 죽이시는 겁니까? 매너가 없군요.”


“.....”


막 그의 목을 자르려는 찰나, 이칼롯이 손을 들어 루도를 제지했다. 악마든 뭐든 현 상황에서 일행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건 변함이 없으니만큼, 캘 수 있는 한 많은 정보를 캐내자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가 말했다.


“질문에 대답해라. 어째서 우릴 쫓는 거지?”


“물론, 레이시 단장이 시켰기 때문이지요.”


“....난 지금 네놈의 진짜 목적을 묻고 있는 거야, 악마.”


이칼롯의 살기 가득한 눈동자는 제스터의 익살스러운 그것과 극명하게 대비됐다. 제스터는 소리를 내지 않고 가볍게 웃었다. 그의 어깨가 흥겹게 들썩였다.


“뭔가 착각하고 계시군요. 저는 악마로서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닙니다. 안개송곳니의 멤버로서 여러분을 잡으러 온 것이죠. 후후후.”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그가 악마라는 사실만으로도 떠오르는 생각이 너무 많았다.

이자는 악마로서, 신의 아이를 죽이러 온 것인가? 레이시는 이자가 악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아니, 그 이전에 안개송곳니 내부에 이런 자가 또 있는 건가? 위첼은 분명 인간이었다. 다른 자들은?

이칼롯은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탐탁지 않은 부분이 너무나도 많았지만, 지금은 이 장소를 빠져나가는 게 급선무였다. 그는 일단 마리네와 디리터에게 마차를 정비하도록 지시했다. 제스터가 죽인 말은 여전히 마차에 묶여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움직이려면 먼저 그 말부터 처리해야 했다.

루도는 제스터를 감시하는 쪽이었지만, 그 자리가 영 거북스러웠다. 이따금 제스터와 눈을 마주칠 때면 온몸에 털이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그때마다 그는 정색하며 시선을 돌렸는데, 제스터는 그게 오히려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가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하하하, 그렇게 겁 안 먹으셔도 됩니다. 제가 뭐 잡아먹기라도 한답니까? 뭐, 악마인 건 맞지만.”


“다, 닥쳐. 너, 나를 죽이러 온 거지? 레이시의 목적은 나니까.”


“뭐, 겸사겸사 로샤단을 잡으러 온 건 맞지만, 굳이 당신을 찝어 살해하려던 것은 아닙니다. 후후후, 저라고 꼭 단장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건 아니랍니다. 아루의 수정이라면 또 모를까...”


그는 물어보지도 않은 내용을 술술 내뱉었다. 그의 말투가 너무 가벼웠기 때문에 일행은 그의 말을 믿어야 할지 아니면 한 귀로 흘려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죽은 말을 빼내는 작업은 꽤 더디게 진행되었다. 말이 너무 무거운 탓도 있었지만, 나머지 녀석들이 너무 흥분한 까닭에 근처로 접근하기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어서 정리가 끝나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리고 제스터는 그런 일행을 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자신의 상태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한 여유로움이었다.

이칼롯이 그런 그를 보며 말했다.


“왜 악마가 안개송곳니 밑에서 일하는 거지? 레이시의 야망에 감명이라도 받은 건가?”


“뭐, 이해관계가 맞았다고 해두죠. 단장은 단장대로, 저는 저대로. 지금 저와 여러분의 관계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이칼롯의 동공이 살짝 커졌다. 그것은 그냥 농담으로 넘겨 흘리기엔 너무나도 의미심장했다. 제스터의 눈은 일행을 향해있지 않았다. 고갯길 너머, 먼 곳의 어딘가, 그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무엇?

이칼롯이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우리와 네놈의 관계라니.”


“간단합니다. 저와 당신의 대화를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은 어차피 죽은 말을 처리하려면 시간이 걸리니, 정보도 빼낼 겸해서 제게 말을 걸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저는 기다리는 지루함도 달랠 겸, 신의 아이도 구경할 겸해서 여러분의 질문에 성실히 대답하고 있는 겁니다. 서로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거죠.”


이칼롯의 검이 1cm가량 앞으로 움직였다. 벌어진 상처에서 걸쭉한 피가 흘러나왔지만 제스터는 희희낙락이었다.


“기다린다니...너...!”


“당신들은 잡았고, 저는 잡혔죠. 쿡쿡쿡, 하지만 중요한 건 이게 아닙니다. 여러분은 이곳에 멈춰 있고, 저 또한 아직 살아 있다는 거죠. 말을 죽이길 잘했군요.”


두두두두...그즈음에서 디리터는 멀리서 울려 퍼지는 대기의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 일행이 지나온 길목 방향에서 수십 기는 될 법한 기마대의 움직임이 감지됐다. 유미르네가 기척을 느끼고 밖으로 나왔을 땐 이미 말발굽 소리가 귓가에 와 닿고 있었다.

제리온이 제스터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뒤이어 그의 머리 위로 보랏빛 구체가 떠올랐다.


“이 새끼! 일부러 잡힌 거냐?!”


“하핫, 설마요. 가능하면 제 손으로 전부 죽이고 싶었습니다.”


마차는 아직 출발할 수 없었다. 마리네와 디리터가 낑낑대며 말 시체를 끌어내고 있었지만, 추격대의 접근속도가 훨씬 빨랐다.


“젠장, 아직도 멀었어?”


“마, 말편자가 끼어서...”


당했다. 이런 곳에서 발이 묶일 줄이야. 제스터를 상대하느라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은 게 문제였다. 들이마시는 공기가 삽시간에 텁텁해졌다.

제리온은 재빨리 마차로 들어가 레미나에게 무언가를 지시했다. 상황이 어찌됐든, 그녀만은 최우선으로 보호해야 했다. 루도와 이칼롯은 검을 뽑아든 채로 주위를 경계했다. 그 시점에서 제스터를 죽일까도 생각해봤지만, 혹시 인질로 쓸 수 있을지 몰라 일단 놔두었다.

디리터가 죽은 말 시체를 치웠을 땐 이미 추격대가 일행을 포위한 뒤였다.


“제기랄...”


루도는 재빨리 적의 전력을 분석했다. 추격대는 대략 40명 정도로, 전부 석궁이며 도끼로 무장하고 있었다. 갑옷은 대부분 값싼 가죽갑옷으로, 타고 올 말이 모자랐는지 한 필에 두 명씩 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중 대부분은 기마전투에 익숙하지 않은지 일행을 포위하자마자 말에서 내렸다.

굳이 표현하자면 그들은 일쿡에서 보았던 여느 사냥꾼과 다른 점이 없었다. 그 엉성한 포위진은 제스터조차 한숨을 내쉴 정도였다.


“흐음-. 생각보다, 아니 좀 지나치게 단출하군요.”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위협적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사냥꾼들은 수적으로 절대적인 우위에 서 있었다. 포위가 완료되자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외쳤다.


“하하! 지명수배자 로샤단 일당! 너희들을 잡으러 왔다. 순순히 포기하시지.”


일행은 마차를 등지고 원형으로 섰다. 두 필의 말에는 이칼롯과 유미르네가 탔고, 루도와 마리네, 디리터는 언제든지 마차에 올라탈 수 있게 준비했다. 마부석에는 제리온이 앉았다. 전투가 벌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인 만큼 에레이시아와 레미나는 마차 안에 틀어박혔다.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이칼롯의 머리가 분주히 움직였다. 아무래도 돌파하는 방법밖에 없을 텐데, 그러려면 절대적으로 제리온의 마법이 필요했다. 파이어볼 같은 걸로 한쪽 방향을 뚫는다면 피해 없이 달아나는 것도 가능할 테니 말이다.

문제는 제리온의 마법은 무영창(無詠唱)이기 때문에 타이밍을 맞추기 어렵다는 점, 그리고 그때까지 적들이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십여 개의 석궁이 사방에서 일행을 노리고 있었다.

어떻게든 시간을 벌지 않으면 안 된다. 베리어스가 앞으로 나선 것은 그때였다.


“잠깐! 이게 무슨 짓이오? 당신들은 누구고? 나는 류이너스 교단 소속, 수호기사단의 베리어스 노르드요. 무기를 내리고 이름과 소속을 밝히시오.”


석궁을 쏘려던 사냥꾼들의 움직임이 일순 경직되었다. 류이덴사에 발을 들여놓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수호기사단의 이름을 들을 수 있었기에 베리어스의 발언은 상당히 큰 파급력을 지니고 있었다.


“수호기사단? 류이너스 교단의?”


“무슨 소리지. 수호기사단이 이 일에 관련되었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그때 사냥꾼들 사이에서 한 중년 남자가 뛰어나왔다. 그의 얼굴은 일행도 익히 잘 알고 있었다.


“웃기는 소리. 수호기사단이 어째서 범죄자집단을 옹호한단 말이오?”


게네스였다. 그는 전면에 나서서 사냥꾼들을 선동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레오스 마을에서 만났던 아케니온의 멤버 몇몇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네들 전부를 아케니온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 굉장히 많았고, 포위 진형도 막 편성한 부대처럼 엉성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랄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별동대를 짜 게네스에게 지휘를 맡기고, 정작 그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상황이 어찌됐든 지금은 베리어스에게 모든 걸 기대야만 했다. 그는 이칼롯에게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사냥꾼들을 향해 최대한 고압적인 어투로 말했다.


“누가 범죄자란 말이오? 이분들은 텔아단에서 오신 여행객으로, 우리 수호기사단의 보호를 받고 있소이다. 어찌 엄한 사람에게 누명을 씌운단 말이오?”


사냥꾼 진영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물론 베리어스의 말은 지금에 와선 삽시간에 들통날 발언으로, 일행의 얼굴을 아는 사람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일행은 여전히 변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초면인 사냥꾼들에게 일시적이나마 혼란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그 몇 초가 귀중한 순간이었다.

게네스가 이를 갈며 말했다.


“개소리 마시오! 그자들은 국가범죄자 로샤단이오. 만약 범죄자를 비호했다는 게 알려지면 아무리 류이너스 교단이라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오.”


상당히 강경한 반박이었기 때문에 베리어스도 여기에서는 살짝 어깨를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말대로 범죄자를 도와주는 행위는 공범에 가까운 취급을 받는다. 때문에 수호기사단이 로샤단을 안내해주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이는 나아가 베른헬트 주교에게까지 연좌의 죄가 돌아갈 위험이 있었다.

물론 현 상황에서 베리어스는 일행의 정체를 모른다는 설정이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사태가 악화될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일행이 로샤단이 아니라고 잡아뗄 증거가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건...처음 듣는 소리요. 이분들은 실제로 신분증도 가지고 있고...”


“하! 그런 신분증 따위 얼마든지 위조할 수 있소. 그것보다 훨씬 확실한 방법이 있지. 거기 당신, 투구를 좀 벗어보지그래? 아마 내가 잘 아는 얼굴이 나올 거 같은데? 루도 클로람!”


루도는 순간 뜨끔하여 뒤로 물러났다. 그는 뭐라 입을 열지도 못하고 칼자루만 만지작거렸다. 투구를 벗을 수 있을 리 없었다. 그 쩔쩔매는 모습에 게네스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띠었다.

이런 상황에서 루도가 떠올린 타개책은 실로 단순했다. 적반하장으로 나가는 것이다.


“에라이 썅! 그래, 내가 루도 클로람이라고 치자. 그러는 너는 뭔데? 아스트리카에 빌붙어 앞잡이 노릇이나 하던 게 어딜 뻔뻔하게 얼굴을 들이밀어! 여긴 리크나이츠 땅이다. 아스트리카의 개가 발붙일 곳이 아니야!”


사냥꾼 진영이 다시금 소란스러워졌다. 그들은 석궁을 겨누던 것도 잊고 일제히 게네스를 바라보았다. 어쭙잖은 애국심 때문에서가 아니다. 루도의 말마따나 이곳은 리크나이츠 영토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아케니온은 언제 정규군의 습격을 받아도 이상할 게 없다. 그리고 그런 중범죄자와 함께하는 자들은 두말할 것도 없이 공범취급 받을 게 분명하다.


“어, 어이. 그게 사실이야? 우린 전쟁에는 흥미 없다고.”


“아케니온, 얘기가 다르잖아!”


게네스는 당황하여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철두철미한 제랄드조차 이 문제에 대해선 지침을 내려주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이 정도는 알아서 해결할 거라 믿은 것이겠지만, 게네스는 지휘관으로서의 역량은 떨어지는 편이었다.

시간은 거침없이 흘러갔다. 그사이 제리온과 레미나는 차츰 캐스팅을 완성해가고 있었다.


“답답한 사람들이로군요. 대체 뭘 두려워하는 겁니까? 7천 골드가 눈앞에 있는데.”


혼란에 빠진 사냥꾼들을 환기시킨 건 그때까지 아무 말 없이 잠자코 있던 제스터였다. 그는 꿇어앉은 자세 그대로 태연자약하게 말했다.


“아케니온이 그래서 어쨌다는 겁니까? 사냥꾼 여러분, 돈을 찾아왔으면 돈만 보십시오. 여기 로샤단이 있고, 거치적거리는 것 따위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의 선동에 석궁이 다시 조준에 들어갔다. 맞는 말이다. 그런 시시콜콜한 문제는 로샤단을 잡은 뒤에 고민해도 늦지 않았다.


“윽...닥쳐! 어디서 악마 따위가. 당신들, 알고 있는 거야? 이 남자의 정체는 악마라고. 인간이 아니란 말이야!”


“...거 참, 그래서 어쨌다는 겁니까? 악마는 무조건 잡아 죽여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답니까? 뭐, 당신을 잡아오면 2천 골드를 준다는 법은 있는 모양입니다만.”


루도가 당황하여 반박에 나섰으나 제스터의 언변에 순식간에 묻혔다. 이제 더는 시간을 끌 건덕지가 없었다. 사냥꾼들이 일제히 석궁을 발사하려던 순간, 이칼롯이 검을 집어넣고 양팔을 위로 올렸다. 그의 행동 때문인지 사냥꾼들의 움직임이 일순 정지했다.

이칼롯은 루도와 마리네, 디리터와 차례로 눈을 맞추고는 마지막으로 제리온을 힐끔 쳐다보았다. 제리온이 말없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게 보였다. 신호가 오면 언제든지 마법을 날릴 수 있다는 표시였다. 길게 눈을 감았다 뗀 후, 이칼롯은 베리어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좋아, 알겠소. 더는 수가 없으니 항복하지. 대신 이 기사는 보내주시오. 우리에게 속아 길 안내를 해준 죄밖에 없으니까.”


사실 거기서 전부 죽인다 해도 상관은 없었다. 그러나 앞서 공격을 멈추게 했던 일련의 폭로가, 그리고 자신들을 고용한 아케니온이 그리 믿을 만한 집단이 아니라는 사실이 사냥꾼들을 다소 누그러지게 만들었다. 사냥꾼 몇몇이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우두머리가 도끼를 치켜들며 말했다.


“조, 좋다. 우리도 교단에 해를 입히긴 싫으니까. 거기 기사 분, 어서 이곳을 떠나시오.”


베리어스는 당황한 표정으로 이칼롯을 바라보았다. 이로서 자신의 안전이 확보되긴 했지만, 이래서는 로샤단이 꼼짝없이 잡히고 말지 않는가. 그가 자리를 뜨는 순간 사냥꾼들이 일제히 일행에게 달려들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쉽사리 발을 떼지 못하는 베리어스에게 이칼롯은 아주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거의 복화술에 가까울 정도로 입술을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메시지를 알아챈 것은 베리어스와 그의 곁에 있던 루도뿐이었다.


“노르드경, 부탁이 있습니다.”


“....?”


“여기는 우리가 알아서 빠져나가겠습니다. 하지만 제랄드가 이 자리에 없다는 게 마음에 걸리는군요.”


“계속하십시오.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어차피 노르드경은 우리와 함께 갈 수 없습니다. 솔직히 이건 도박입니다만...”


대화는 빠르게, 그리고 긴밀하게 이루어졌다. 이칼롯의 지시를 받는 베리어스의 눈동자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곁에서 듣던 루도 또한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확실히 시도해볼 법한 작전이었다. 왜냐하면 이곳에 안개송곳니가, 특히 제스터가 있으니까.

준비가 끝나자 베리어스는 조심스럽게 말을 몰기 시작했다. 이칼롯에게 건네받은 손수건은 확실히 주머니 안에 넣었다. 그가 지나가자 사냥꾼들은 순순히 길을 비켜주었다. 짧은 눈인사를 나누고 나서, 베리어스는 전속력으로 류이덴사를 향해 말을 몰았다.


“자아, 이제 무기를 버리고 한 명씩 이쪽으로 와라.”


사냥꾼 우두머리가 의기양양하게 명령했다. 7천 골드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건지 그는 벌써부터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하지만 일행 중 그와 눈을 마주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베리어스는 떠났다. 제스터는 여전히 묶여있다. 제리온은 히죽 웃으며 손가락을 비비고 있다. 멍청한 사냥꾼들이 이리저리 지체해주는 사이, 그와 레미나는 시전 준비를 완벽하게 끝마쳐놓은 상태였다.

일행의 급변한 투기(鬪氣)에 제스터는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이거, 예감이 좋지 않은데요.”


사냥꾼들도 호구는 아닌지라 일행의 표정에 드러난 전의를 읽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승리를 자신했다. 그들이 보기에 로샤단은 방패는커녕 변변한 갑옷조차 입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설령 저항한다 하더라도 일제히 화살만 쏘면 끝날 문제였다.

그러나 일행이 마음만 먹으면 화살 따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사냥꾼들은 알지 못했다. 마차 안에서 숨죽이고 있던 그녀, 레미나가 있었기에.


“이놈들, 어서 무기를 버려라! 다섯까지 세겠다. 하나...?”


우두머리는 다섯은커녕 둘까지 셀 기회도 잡지 못했다. 이칼롯이 돌연 칼을 뽑아든 것이다. 그는 베리어스의 뒷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자 즉각 행동에 들어갔다.

돌파의 일환으로 그는 가장 먼저 제스터의 심장을 찔렀다.


“크....억!”


“이...이 자식들이! 석궁을 쏴! 고슴도치를 만들어버려!”


제스터의 가슴에서 검을 뽑으며 이칼롯은 자신을 둘러싼 십수 개의 석궁을 바라보았다. 일쿡에서와는 달리, 몸을 숨길 장애물 하나 없는 상황이었다. 그 순간, 마차 안에서 레미나의 일갈이 터졌다.


“엑시온의 날개(Wing of Exion)!"


공중에서 새하얀 깃털이 봇물 터지듯 흘러나왔다. 마치 허공에서 깃털베개를 세게 내리쳐 터뜨린 것 같은 형상이었다. 백여 개의 깃털이 마차 주위를 보호하듯이 휘감았다.

이와 동시에 사냥꾼들이 일제히 석궁을 발사했다. 그러나 화살은 단 한 개도 예외 없이 전부 마차에 닿기 직전 튕겨 나갔다. 루도는 주위를 떠돌던 깃털이 쏜살같이 날아가 화살을 튕겨내는 장면을 똑똑히 목격했다. 십여 개의 화살이 무력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마법깃털 또한 공격을 막은 반동인지 수십 개가 허공에서 바스러졌다. 그러나 아직도 꽤 많은 수의 깃털이 마차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게네스가 그 광경을 보곤 이를 갈았다.


“마법! 제르카엘시온 멜피드!”


그의 눈에는 영락없이 제리온이 마법을 쓴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정말 대단한 오산이었다.

한 차례 공격을 막아내자 제리온은 곧장 마차를 출발시켰다. 마리네는 재빨리 마차 안으로, 디리터는 마부석의 옆자리로, 루도는 훌쩍 점프해 단숨에 마차 지붕 위로 올라갔다.

사냥꾼들은 재빨리 마차 앞을 가로막았다. 창을 꼬나쥔 채 도로를 점거한 십여 명의 사내들을 보며, 제리온은 웃었다.


“이거 절대 피하지 마라, 새끼들아!”


마차 고삐를 디리터에게 맡기고 나서 제리온은 곧장 ‘쟁여둔’ 마법을 꺼냈다. 그의 손바닥 위로 밤톨만 한 불덩어리가 송송 떠오르기 시작했다. 생성된 덩어리는 총 열두 개로, 타원을 그리며 제리온의 주위를 빙글빙글 맴돌았다. 디리터에게 숙이라고 충고하고 나서, 그는 전방의 사냥꾼들을 향해 집게손가락을 세게 퉁겼다.


“마이너 미티어(Minor Mete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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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5) +2 15.05.08 885 23 24쪽
232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4) +2 15.05.08 901 22 26쪽
231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3) +2 15.05.08 893 24 19쪽
230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2) +2 15.05.08 758 23 24쪽
229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1) +5 15.05.07 770 25 19쪽
228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10) +2 15.05.07 889 23 24쪽
227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9) +1 15.05.07 812 21 24쪽
226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8) +4 15.05.06 731 26 22쪽
225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7) +2 15.05.06 976 24 29쪽
224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6) +3 15.05.06 802 23 28쪽
223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5) +4 15.05.05 929 26 24쪽
222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4) +2 15.05.05 762 23 23쪽
221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3) +1 15.05.05 642 22 15쪽
220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2) +2 15.05.05 770 24 18쪽
219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1) +4 15.05.05 685 23 15쪽
218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4) +2 15.05.05 921 24 23쪽
217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3) +3 15.05.04 935 22 23쪽
216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2) +2 15.05.04 867 22 21쪽
215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1) +1 15.05.04 774 24 20쪽
214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5) +2 15.05.04 709 24 15쪽
213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4) +2 15.05.04 720 25 23쪽
212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3) +3 15.05.03 844 29 18쪽
211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2) +3 15.05.03 763 22 23쪽
210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1) +2 15.05.03 853 23 20쪽
209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7) +5 15.05.03 795 28 25쪽
208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6) +2 15.05.03 894 24 22쪽
207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5) +4 15.05.02 938 29 21쪽
206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4) +1 15.05.02 884 27 20쪽
»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3) +2 15.05.02 690 24 21쪽
204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2) +2 15.05.02 767 24 24쪽
203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1) +2 15.05.02 586 24 22쪽
202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6) +3 15.05.02 695 28 18쪽
201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5) +5 15.04.29 863 24 19쪽
200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4) +1 15.04.29 937 24 26쪽
199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3) +1 15.04.29 789 24 24쪽
198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2) +3 15.04.29 812 26 18쪽
197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1) +1 15.04.29 758 24 17쪽
196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8) +4 15.04.28 904 28 16쪽
195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7) +3 15.04.28 840 25 20쪽
194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6) +3 15.04.27 711 26 19쪽
193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5) +3 15.04.27 756 22 17쪽
192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4) +2 15.04.27 731 22 18쪽
191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3) +1 15.04.27 730 30 18쪽
190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2) +2 15.04.27 758 27 19쪽
189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1) +2 15.04.27 789 31 18쪽
188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完) +1 15.04.27 599 33 18쪽
187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5) +4 15.04.26 733 24 17쪽
186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4) +1 15.04.26 928 28 16쪽
185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3) +2 15.04.26 739 26 20쪽
184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2) +6 15.04.23 779 28 15쪽
183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1) +3 15.04.23 839 26 19쪽
18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2) +2 15.04.23 755 25 17쪽
18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1) +3 15.04.23 767 26 15쪽
180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0) +1 15.04.23 682 25 22쪽
179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9) +3 15.04.22 811 29 16쪽
178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8) +3 15.04.22 846 27 15쪽
177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7) +1 15.04.22 776 29 18쪽
176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6) +1 15.04.22 790 23 18쪽
175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5) +2 15.04.22 765 29 15쪽
174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4) +3 15.04.22 911 25 18쪽
173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3) +5 15.04.21 767 27 16쪽
17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2) +2 15.04.21 922 25 14쪽
17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 +3 15.04.21 805 25 17쪽
170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8) +3 15.04.21 729 24 21쪽
169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7) +2 15.04.21 703 19 15쪽
168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6) +4 15.04.20 750 24 18쪽
167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5) +2 15.04.20 655 20 18쪽
166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4) +1 15.04.20 767 23 17쪽
165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3) +2 15.04.20 738 24 16쪽
164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2) +3 15.04.20 809 20 16쪽
163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1) +1 15.04.20 821 22 21쪽
162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6) +1 15.04.20 830 29 14쪽
161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5) +2 15.04.20 711 25 18쪽
160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4) +3 15.04.19 865 28 18쪽
159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3) +3 15.04.19 946 28 18쪽
158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2) +3 15.04.19 901 26 22쪽
157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1) +5 15.04.19 1,210 46 22쪽
156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10) +6 15.04.18 901 26 21쪽
155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9) +3 15.04.18 772 26 18쪽
154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8) +1 15.04.18 656 24 19쪽
153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7) +2 15.04.18 686 26 18쪽
152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6) +1 15.04.18 748 27 17쪽
151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5) +4 15.04.18 713 23 16쪽
150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4) +1 15.04.18 669 24 17쪽
149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3) +2 15.04.18 754 22 17쪽
148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2) +3 15.04.16 849 2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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