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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3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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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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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04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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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글자
20쪽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1)

DUMMY

가린워드 문제가 마무리되자 일행은 서둘러 라키시아로 출발했다. 아나이스가 향하는 레인스터와는 방향이 정반대였기 때문에 마을 어귀에서 일행은 그녀와 작별을 고했다.

아나이스는 옷가지며 먹을거리를 바리바리 싼 채로 떠나는 일행을 배웅했다.사냥꾼들이 모두 죽어 마을에 위협이 될 만한 요소는 사라졌지만, 그녀는 예정대로 오린과 함께 마을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가린워드 마을이 무법지라는 사실은 아직도 변함없었고, 또 언제 그런 야만적인 무리가 주민들을 약탈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이칼롯은 여비에서 20골드를 떼어 아나이스의 잔고에 보태주었다. 20골드면 꽤 큰 액수였기에 그녀는 거절하려 했지만, 일행은 억지로 가방에 돈주머니를 쑤셔 넣었다.

그녀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체 어찌할 바를 몰랐다. 로샤단은 바람처럼 나타나, 나쁜 무리들을 소탕하고, 그녀의 인생을 구원해주었다.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백마 탄 기사가 꼭 이런 모습이리라. 그리고 그 기사 역할을 누가 할지는 안 봐도 뻔했다.

마리네는 뒤통수를 얻어맞고 쭈뼛거리며 앞으로 나왔다. 동화 속 기사와 마주한 소녀는 감격에 겨워 두 손을 꼭 모아 쥐었다.

마리네가 말했다.


“조심해서 가. 길이 험하니 강도 만나지 않게 조심하고. 상단이나 뭐 그런 거 보면 꼭 동행해. 둘이 가는 것보다는 훨씬 안전할 거야.”


“마리네...”


“우리 일이 끝나면 꼭 만나러 갈게. 그때 보자.”


아나이스는 결국 복받치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마리네의 품에 뛰어들었다. 뒤에서 휘파람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마리네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안절부절못했다. 한참을 망설인 후에야 그는 아나이스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그 어색한 움직임에 유미르네가 못마땅하다는 듯이 윗입술을 씰룩였다.


“쟤는 나이 처먹어도 변한 게 없네. 저기서는 뼈가 으스러져라 부둥켜안아야지. 키스를 하면 더 좋고.”


“어머, 의외로 마음이 맞을 때가 있네요 유미르네.”


레미나가 눈을 반짝이며 그녀의 발언에 동의했다. 이 감수성 풍부한 공주님은 남의 연애감정에 혼자 들떠서는 볼에 큼지막한 홍조를 띄웠다. 앞쪽의 환호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나이스는 마리네의 가슴팍에 대고 소곤거렸다.


“고마워...돌아와줘서.”


“어, 으응. 몸조심해.”


결국 둘은 볼이 발개져서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무뚝뚝한 이칼롯조차도 그 맥 빠지는 결말에 혀를 찼지만, 어쩌겠는가, 둘 다 그쪽으로는 경험이 전무한 것을. 순진하다는 게 말이 좋지 남이 볼 땐 이렇게 속 터지는 경우가 없었다.

한편 둘의 대화가 마무리되자 오린이 주춤거리며 제리온에게 다가왔다. 마부석에 앉아 말린 생선을 씹고 있던 그는 예의 꼬맹이가 접근하자 피식 코웃음을 쳤다.


“뭐냐? 꼬마.”


“꼬, 꼬마라고 하지 말라고요! 벌써 11살이나 됐는데.”


“그런 걸 꼬마라고 하는 거야.”


가만히 듣고 있던 레미나가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오린은 언제부터인가 슬그머니 제리온을 존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그를 인정한다는, 어린애 나름대로의 경의의 표현이었다.

오린은 마뜩잖은 듯이 볼을 부풀리며 말했다.


“저기, 고맙다는 말은 해둘게요. 그...나쁜 놈들을 물리쳐줘서.”


그러자 제리온은 낄낄 웃으며 그의 마빡을 후려쳤다.


“이 꼬맹쉥이가 태도가 그따구냐? 알량한 자존심은 있어가지고.”


“우씨! 고맙다고 해줘도 지랄이야 나쁜 놈!”


“아나이스 데리고 썩 꺼져 짜샤. 길 가다 나쁜 놈 만나면, 그땐 네가 지켜야 한다.”


오린은 이마를 어루만지며 투덜거렸다. 그러나 레미나는 소년의 뾰로통한 표정 사이로 순간 쾌활한 미소가 어리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린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제리온의 옆구리를 후려치고는 쪼르르 달아났다.


“그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으니 걱정 말라고요!”


오린은 짐 가방을 하나 들쳐 메더니 곧장 북쪽을 향해 달려갔다. 아나이스가 소리쳐도 그는 막무가내였다.


“쟤가 정말...그럼 저도 이만 가볼게요. 다들 다음에 만날 때까지 건강하세요!”


그녀는 가방을 메고 종종걸음으로 오린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일행도 두 사람의 떠나가는 뒷모습을 확인하고는 지체 없이 남쪽으로 마차를 몰기 시작했다. 수도까지는 대략 나흘 정도의 거리. 서두른다면 수확제가 열리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 터였다. 가을도 이제 중반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


리크나이츠 왕국의 수도, 대륙 최대의 상업도시, 인구 60만의 대도시이자 견고하고 촘촘하게 건설된 방어구조로 난공불락으로 일컬어지는 요새. 그 외에도 라키시아를 수식하는 단어는 수도 없이 많다.

리크나이츠가 개국한 이래 늘 국가의 중심지로서 활약해 온 이 도시는, 500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도시 입구에 들어선 외성은 그 높이만 10m에 달하는 데다 구멍 하나 보이지 않도록 빽빽하게 쌓은 대리석은 그 어떤 투석 공격에도 견딜 수 있을 만큼 단단하다. 이 외성 앞에 마주한 사람들은 그 규모에 한 번 놀라고, 외성너머로 아득히 보이는 내성의 높이에 또 한 번 놀란다. 라키시아는 중심부로 갈수록 지대가 올라가는 구조를 취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가장 중앙에 위치한 궁성과 외성의 높이차는 40여 미터에 달한다. 또한 도시를 관통하는 거대한 강은 내성으로 진입하려는 적을 가로막는 자연 해자 역할을 하고 있다. 게다가 곳곳에 배치된 첨탑과 돈대까지 - 인구 60만의 이 도시를 외성부터 시작해 2개의 내성을 지나 궁성까지 함락하려면, 대체 얼마나 되는 병력이 필요할지 상상할 수도 없다. 개국 이래 궁성이 함락된 역사가 단 한 번, 그것도 아반케즈의 아이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감안하면 수도 라키시아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 왕국의 심장이기도 했다.

물론 이런 평가는 일행같이 군사 분야에 종사하던 사람들에게나 보이는 부분이고, 보통은 외벽에 조각된 아름다운 부조와 첨탑이 만들어내는 아찔한 직선의 향연에 넋을 잃는 게 대부분이었다. 또한 도시 곳곳에 배치된 영웅들의 조각상과, 은연중에 울려 퍼지는 시인의 노랫소리까지 - 도시 그 자체가 예술작품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시기 부적절한 방문을 탓해야 할 일인지, 일행에겐 도시의 정취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도시 밖 한참 떨어진 강변에 마차를 세워두고 나서 루도는 마리네와 함께 으슥한 곳에 숨어 성문을 관찰했다. 다른 사람들도 2인 1조로 각각 북문, 남문 등을 돌아다녔지만 결과는 한결같았다.


“우와, 저거 너무 하는데.”


“메르실 때하고는 비교가 안 되네.”


두어 시간을 관찰한 결과 위장신분증으로 성문을 돌파하기란 불가능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성문에서는 경비병들이 4인1조로 출입자를 검사하고 있는데, 신분증 검사는 기본이고 가지고 있는 짐부터 옷 속에 숨긴 물건까지 구석구석 조사하는 중이었다. 특히 뭔가 수상쩍은 것이라도 발견되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그 자리에서 옷을 벗길 정도로 병사들의 검문은 삼엄하기 그지없었다. 이런 상태라면 일행은 물론이요, 사냥꾼 출신인 유미르네도 검문에 발목을 붙잡힐 판이었다.

일단 일행은 마차로 돌아와 어떻게 성문을 돌파할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가짜신분증은 물론이요, 매수가 통할 것 같지도 않고, 무력으로 돌파하기엔 주위의 시선이 너무 많았다.

한참 입씨름을 벌이던 도중 레미나가 말했다.


“그냥 내가 신분을 밝히고 여러분을 데리고 들어가는 건 어때요?”


제리온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절대 안 되지. 잊었어? 지금 왕은 왕이 아니라고. 누님이 정체를 밝혀본들 우리 안전이 보장되진 않아. 잘못하면 같이 죽을 수도 있고.”


“우웅~그럼 들어갈 방법이 마땅치 않은데.”


이칼롯과 유미르네도 뾰족한 타개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대로 밤이 되길 기다려 몰래 돌파해볼까 하는 건의도 있었지만, 조사해본 바로는 성문은 밤이 되면 전부 폐쇄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도시 외곽에서 머무르길 몇 시간, 별다른 수가 나지 않는 채로 때는 정오를 넘어가고 있었다.

대충 회의를 마치고 루도는 유미르네와 함께 동문으로 향했다. 뭔가 좋은 생각이 날 때까지 성문을 주시하자는 생각에서였다. 예상대로 성문 앞에서는 검문이 한창이었다. 검문은 철저한 만큼 시간도 많이 잡아먹었기 때문에 차례를 기다리는 행상인들의 행렬이 길게 늘어섰다. 두말할 것도 없이 행상인들의 표정은 불평불만으로 가득했다.

둘은 으슥한 헛간 뒤에 숨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가끔 지나가던 행인이 이상하게 바라볼라치면 루도는 정색하며 가던 길을 가는 ‘척’했다. 유미르네가 높다란 성곽을 바라보며 말했다.


“높긴 어엄청 높네. 넘어가려면 꽤 힘들겠는걸.”


“하려면 할 수 있다는 소리야?”


“글쎄에...밤에는 보초가 얼마나 투입되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중간에 걸리지 않을까?”


“으이구...”


루도는 투구를 벗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투구를 쓰면 간단하게 얼굴을 가릴 수 있어 좋긴 하지만, 공기가 거의 통하지 않는 구조 때문에 한 시간만 쓰고 있어도 호흡곤란으로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지금도 딱 20분가량 착용했을 뿐인데도 이마며 콧잔등에 땀방울이 가득했다. 유미르네가 그걸 보곤 방긋 웃으며 치맛자락으로 땀을 닦아주었다.


“와, 와악! 뭐하는 거야 이 지지배야!”


치마폭 사이로 속옷 비스무리한 게 보이자 루도가 놀라 소리쳤다. 유미르네는 그 반응이 재미있었는지 아예 치마를 뒤집어 그의 얼굴에 씌웠다. 대경실색하여 얼굴을 빼려다 헛간 문에 뒤통수를 부딪친 그에게 그녀가 말했다.


“쨔안, 대출혈 서비스. 치마 입은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네.”


“그만해! 사람들이 보잖아. 이러다 들키면 어쩌려고.”


“뭐, 변장했으니 괜찮지 않을까?”


그녀는 치마를 좌우로 펄럭이며 웃었다.

루도와 동행하며 유미르네는 마리네가 변장할 때 쓰던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그녀가 수배지에 실린 것은 아니지만, 그 독특한 패션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 확률이 높기 때문이었다.

늘 입고 다니던 가죽조끼와 모자를 벗고 치마와 숙녀용 구두를 신으니 그녀도 제법 평범한 부녀자처럼 보였다. 물론 행동은 전혀 그렇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한 갈래로 묶은 흑발이 어지럽게 출렁거렸다.

그녀가 말했다.


“저기, 루도. 우리 성문 가까이 좀 가보자.”


“뭐? 왜? 난 싫어.”


“얘 좀 봐.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가까이서 봐봐야 뭔가 찬스를 발견할 거 아니니?”


“그러다 들통 나면 어쩌려고 그러냐!”


“안 들켜 안 들켜. 위병은 기본적으로 ‘문을 지나가려는 사람’만 검사한다구. 그 외의 것들은 신경 쓰기도 귀찮아할 걸?”


“으음...”


결국 루도는 거의 끌려가다시피 하여 성문 앞으로 이동했다. 둘은 행상인들에게 말을 건네는 척하며 경비병들의 동태를 관찰했다. 유미르네의 말대로 병사들은 맡은 검문에만 정신이 팔려 두 사람에게 눈길조차 건네지 않았다.


“어쩜 성문에도 조각이 새겨져있네. 너무 멋있지 않니?”


“...지금 그게 눈구멍에 들어오냐?”


루도는 질색을 하며 달라붙는 그녀를 떨어뜨렸다. 하지만 그는 한편으로는 문제에 접근하는 그녀의 방식에 감탄했다. 가까운 곳에서 성문을 관찰하자 멀리서는 보이지 않았던 요소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단 경비병 중 실제 검문에 나서는 사람은 셋으로, 나머지 하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노가리를 까는 중이었다. 아마 넷 중에 가장 최고참이기 때문이겠지만, 그가 노닥거려주는 덕에 출입절차는 더욱 시간을 잡아먹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행인 중 몇몇은 검문에 응하지 않고 프리패스로 성문을 드나들었는데, 이때가 이 병사가 움직이는 시기였다.

루도는 그 병사가 가식적인 미소를 띠우며 한 중년남성에게 아부하는 장면을 포착했다. 몇 마디 대화가 오고 가자 병사는 출입구 사이로 길을 터 그 남성을 안내했다. 그것으로 그 남성의 검문은 끝이었다.


“호오. 신분이 확실한 사람은 그냥 보내주는 건가?”


유미르네가 그의 추론에 사족을 덧붙였다.


“그중에서도 돈이 많거나, 아니면 어디 높은 귀족쯤 되는 사람이겠지? 그렇지 않으면 저렇게 굽실댈 이유가 없지. 뻔한 부류네. 잘하면 뇌물도 받아먹겠는데?”


“저 사람은 통해도 나머지 셋은 안 통할걸. 착실해 보이잖아.”


신분이 높으면서 누구나 알 수 있는 사람. 레미나가 가장 조건에 부합하긴 하지만, 그녀는 신분이 지나치게 높다는 게 문제였다. 일행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아무 소란 없이 궁성까지 접근하는 것이지, 도시를 발칵 뒤집어놓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어떻게 저 부분을 파고들어갈 수 없나 고심하던 때였다. 어디선가 자신을 응시하는 시선이 느껴져 루도는 숨을 죽였다.


“야, 뭔가 낌새가 이상한데.”


“이제 느꼈니? 둔감하긴.”


유미르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말했다. 루도는 기지개를 켜는 척하며 재빨리 주위를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후드로 몸을 가린 남자 하나가 나무 뒤에 숨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게 보였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루도는 등을 돌리며 황급히 유미르네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그 과장된 몸짓에 유미르네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애정표현이 너무 과하다? 저쪽에서 다 눈치챘겠네.”


“뭐지. 안개송곳니인가?”


“모르지. 자세를 보아 한 가닥 하는 모양이고, 무기는 아마 옷 속에 숨겨 놓았겠지. 어떻게 할래?”


“일단 이 자리를 뜨자.”


둘은 속보로 원래 있던 헛간으로 돌아왔다. 이동하면서 슬쩍 눈동자를 흘기니 그 남자는 어느새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춘 뒤였다. 유령이라도 본 것만 같아 루도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아니, 차라리 유령이면 낫다. 이런 곳에서 정체를 들켰다간 사냥꾼은 물론이요 도시의 모든 군인이 그를 잡으려고 몰려올 게 뻔했다.

헛간에 도착하자마자 둘은 잽싸게 모퉁이를 돌아 몸을 숨겼다. 유미르네가 치마폭에서 에스터크를 꺼내며 말했다.


“사냥꾼? 아니면 안개송곳니? 어느 쪽이든 치마 입고 싸우긴 불편한데.”


루도는 몸을 웅크린 채 주변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성문 근처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제외하면 사위는 고요했다. 그런데 숨을 죽이고 있자니 흙 알갱이 몇 개가 어깨 위로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머리 위에 무언가 있다고 느낀 순간 둘은 동시에 앞으로 뛰었다.

후드 입은 남자는 어느새 헛간 지붕 위로 올라가 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언제 뒤를 밟힌 건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잠행능력이었다.


“윽?!”


“...기척 죽이는 솜씨가 제법이잖아.”


루도와 유미르네는 무기를 뽑고 그 남자를 노려보았다. 그 남자는 지붕에서 폴짝 뛰어내리더니 루도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불과 얼마 전에 제스터와 싸운 전적이 있기 때문에 둘은 잔뜩 긴장하여 자세를 잡았다.

그러나 남자는 뜻밖에도, 팔짱을 끼며 공격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그가 말했다.


“역시, 루도 클로람이 맞는 모양이군.”


루도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자신의 정체를 들킬 줄이야,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었다.

유미르네는 슬그머니 그와의 간격을 좁히기 시작했다. 안개송곳니든 현상금사냥꾼이든 루도의 정체를 아는 이상 곱게 돌려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그 남자는 오히려 당황해 하는 루도를 보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벌써 내 목소리도 잊어버린 거냐?”


“에...에?”


“나다.”


남자는 후드를 걷어 민낯을 드러냈다. 짧게 자른 붉은 머리에 축 처진 눈매, 유들유들하게 웃고 있는 입꼬리까지, 그 얼굴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루도는 반가운 마음에 투구까지 벗어 던지고 그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알룬도! 살아 있었군요!”


“으음, 사지 멀쩡한 나를 왜 죽이냐.”


“와하하! 반가워요. 이런 곳에서 볼 줄이야.”


다시 만난 알룬도는 약간 얼굴이 핼쑥해지긴 했으나 전과 다름없이 건강해 보였다. 루도는 마차가 있는 곳으로 그를 데려갔다. 마침 점심때라 다른 사람들도 모두 돌아와 있었다. 마리네와 제리온이 멀리서 그의 얼굴을 확인하곤 반색을 하며 반겼다.


“우와, 알룬도? 무사했어요?”


“이게 누구야. 전(前) 안개송곳니 나리잖아?”


그 환대 아닌 환대에 알룬도는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한 사람씩 악수를 청하고는 돌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전에는 밝은 베이지색 옷을 입고 다녀 몰랐는데, 이렇게 어두운 후드를 걸치고 있는 걸 보니 고독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이칼롯이 말했다.


“루도, 어떻게 만난 거냐?”


“응? 그냥 우연히...는 아닌 거 같고.”


루도는 관자놀이를 긁적이며 알룬도를 바라보았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우연은 아니지. 계속 너희들이 도착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냉수를 한잔 들이켜고 나서 알룬도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데루루피아가 성에 들어가 돌아오지 않게 된 후로 그는 계속 라키시아 주위를 서성이고 다녔다. 어떻게든 그녀를 구출할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안개송곳니 멤버로 활약했던 그조차 성의 방어를 뚫기란 불가능했다. 근위병은 물론이요, 왕실기사단의 빈틈없는 경비 덕에 그는 요 석 달간 궁성 안으로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 그나마 오랜 탐색 끝에 데루루피아가 궁성 내부의 지하감옥에 갇혀 있다는 걸 알아낸 게 전부였다.

그렇게 소득 없는 나날이 흘러가고, 데루루피아 구출계획도 점차 요원해져만 갔다. 도움을 요청한 류이너스 교단도 뾰족한 방책을 내놓지 못했다.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 교단의 입장 상 왕에게 이래라저래라 하기가 힘들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와중 그는 나흘 전에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베른헬트 주교가 보낸 전서구에는 로샤단이 수도로 향하고 있으니, 그들을 도와주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날 이후로 알룬도는 1분도 쉬지 않고 성문 주위를 돌아다녔다. 변장을 했을 건 확실하고, 혹시 그들이 야심한 시각에 성문을 돌파할지도 몰랐기에 그는 잠도 설치며 순찰에 임했다. 그러던 오늘 웬 수상한 소년이, 투구를 쓰고 있긴 하지만 체형이나 복장이 예전의 누군가와 똑 닮은 사람이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어이구, 성문 바로 앞까지 행진하셨어? 그냥 옷 다 벗고 잡아가 달라고 하지 그랬냐.”


“그...그래도 덕분에 알룬도를 만났잖아!”


루도는 제리온의 빈정거림을 애써 무마했다. 알룬도가 말했다.


“내 이야긴 여기까지. 이제 좀 묻자. 이곳에 돌아온 이유가 뭐지?”


마리네가 말했다.


“그야 루루 아줌마를 구하기 위해서죠. 란도스 왕을 원래대로 돌려놓기 위함이기도 하고. 아, 지금 왕은 누군가에게 조종당하고 있거든요.”


“그래? 그럼 조종하는 놈은 안다바리엘 뷘더겠군. 맞지?”


“음...아마도? 그런데 이미 알고 있었다는 눈치네요?”


“얼마 전에 그 자식한테 호되게 당했거든.”


이후 일행은 알룬도에게 섬에서 있었던 일, 특히 안트로서를 만났던 일을 대략적으로 설명했다. 그가 9클래스 마법사라는 사실에 알룬도는 놀라는 한편 고개를 끄덕여 수긍하는 반응을 보였다.


“확실히 고위 탐지계 마법사라면 궁전 내부의 상황쯤이야 쉽게 파악하겠지. 그건 그렇고 에메랄드 섬에 업솔루트 레벨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루루 아줌마의 친할아버지예요.”


“....”


대화가 끝나자 일행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고심하기 시작했다. 알룬도가 합류한 것까지는 좋은데, 여전히 성문을 어떻게 지나가야 하는지가 문제였다.

다시 해결책을 찾으러 성문으로 흩어지려 할 때였다. 알룬도가 일행을 멈춰 세우며 말했다.


“검문 없이 성문을 통과할 방법이 있긴 있다.”


그렇게 말하는 알룬도의 시선은 그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고 비스듬히 땅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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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4) +2 15.05.08 901 22 26쪽
231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3) +2 15.05.08 894 24 19쪽
230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2) +2 15.05.08 758 23 24쪽
229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1) +5 15.05.07 770 25 19쪽
228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10) +2 15.05.07 889 23 24쪽
227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9) +1 15.05.07 813 21 24쪽
226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8) +4 15.05.06 731 26 22쪽
225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7) +2 15.05.06 977 24 29쪽
224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6) +3 15.05.06 802 23 28쪽
223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5) +4 15.05.05 929 26 24쪽
222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4) +2 15.05.05 762 23 23쪽
221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3) +1 15.05.05 643 22 15쪽
220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2) +2 15.05.05 771 24 18쪽
219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1) +4 15.05.05 685 23 15쪽
218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4) +2 15.05.05 921 24 23쪽
217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3) +3 15.05.04 936 22 23쪽
216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2) +2 15.05.04 867 22 21쪽
»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1) +1 15.05.04 775 24 20쪽
214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5) +2 15.05.04 710 24 15쪽
213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4) +2 15.05.04 720 25 23쪽
212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3) +3 15.05.03 845 29 18쪽
211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2) +3 15.05.03 764 22 23쪽
210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1) +2 15.05.03 853 23 20쪽
209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7) +5 15.05.03 795 28 25쪽
208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6) +2 15.05.03 894 24 22쪽
207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5) +4 15.05.02 938 29 21쪽
206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4) +1 15.05.02 884 27 20쪽
205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3) +2 15.05.02 690 24 21쪽
204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2) +2 15.05.02 767 24 24쪽
203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1) +2 15.05.02 586 24 22쪽
202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6) +3 15.05.02 696 28 18쪽
201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5) +5 15.04.29 863 24 19쪽
200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4) +1 15.04.29 937 24 26쪽
199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3) +1 15.04.29 789 24 24쪽
198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2) +3 15.04.29 812 26 18쪽
197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1) +1 15.04.29 758 24 17쪽
196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8) +4 15.04.28 905 28 16쪽
195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7) +3 15.04.28 840 25 20쪽
194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6) +3 15.04.27 711 26 19쪽
193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5) +3 15.04.27 756 22 17쪽
192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4) +2 15.04.27 731 22 18쪽
191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3) +1 15.04.27 731 30 18쪽
190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2) +2 15.04.27 758 27 19쪽
189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1) +2 15.04.27 789 31 18쪽
188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完) +1 15.04.27 599 33 18쪽
187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5) +4 15.04.26 733 24 17쪽
186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4) +1 15.04.26 928 28 16쪽
185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3) +2 15.04.26 739 26 20쪽
184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2) +6 15.04.23 779 28 15쪽
183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1) +3 15.04.23 840 26 19쪽
18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2) +2 15.04.23 755 25 17쪽
18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1) +3 15.04.23 767 26 15쪽
180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0) +1 15.04.23 682 25 22쪽
179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9) +3 15.04.22 811 29 16쪽
178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8) +3 15.04.22 846 27 15쪽
177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7) +1 15.04.22 777 29 18쪽
176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6) +1 15.04.22 790 23 18쪽
175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5) +2 15.04.22 765 29 15쪽
174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4) +3 15.04.22 911 25 18쪽
173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3) +5 15.04.21 767 27 16쪽
17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2) +2 15.04.21 922 25 14쪽
17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 +3 15.04.21 806 25 17쪽
170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8) +3 15.04.21 730 24 21쪽
169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7) +2 15.04.21 703 19 15쪽
168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6) +4 15.04.20 751 24 18쪽
167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5) +2 15.04.20 655 20 18쪽
166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4) +1 15.04.20 767 23 17쪽
165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3) +2 15.04.20 738 24 16쪽
164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2) +3 15.04.20 809 20 16쪽
163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1) +1 15.04.20 821 22 21쪽
162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6) +1 15.04.20 830 29 14쪽
161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5) +2 15.04.20 711 25 18쪽
160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4) +3 15.04.19 865 28 18쪽
159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3) +3 15.04.19 947 28 18쪽
158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2) +3 15.04.19 901 26 22쪽
157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1) +5 15.04.19 1,210 46 22쪽
156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10) +6 15.04.18 901 26 21쪽
155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9) +3 15.04.18 772 26 18쪽
154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8) +1 15.04.18 657 24 19쪽
153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7) +2 15.04.18 687 26 18쪽
152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6) +1 15.04.18 748 27 17쪽
151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5) +4 15.04.18 713 23 16쪽
150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4) +1 15.04.18 669 24 17쪽
149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3) +2 15.04.18 754 22 17쪽
148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2) +3 15.04.16 849 2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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