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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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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04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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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3)

DUMMY

제리온은 왕이 머무는 대전(大殿)을 중심으로 동그란 원을 그려 넣었다. 대충 눈대중으로 그린 것인데도 원의 모양새는 컴퍼스를 사용한 것처럼 정교했다. 그가 원호를 가리키며 말했다.


“안다바리엘은 대략 이 범위 안에 있을 거야. 그리고 퍼시스턴트 퍼슈어의 사용반경은 200미터 정도고. 즉, 간격만 제대로 잡는다면 우리는 굳이 대전 안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어. 대충 스크롤을 사용할 장소까지만 접근하면 되지.”


이칼롯이 말했다.


“200미터라...그래도 최소한 궁성 성벽은 돌파해야 한다는 말이군.”


“그렇지. 스크롤을 너무 멀리서 쓰면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 우리에게 기회는 단 두 번이고, 이 두 번 안에 무조건 안다바리엘을 찾아내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근위대에게 걸리지 않고 궁성을 돌파하는 게 먼저야.”


“...이 시야망을 뚫으려면 고민 좀 해봐야겠는데.”


이칼롯은 알룬도가 단 주석을 보며 난처하게 웃었다. 그가 조사한 내용이 사실이라면, 궁성을 돌파하기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었다.

궁성수비대는 3교대를 기본으로 순환근무를 서는데, 이는 각각 동초와 부동초, 대기조로 역할이 분담되어 있다. 동초는 성곽을 따라 순찰을 도는데, 보통 2인1조로 구성되어 있다. 부동초는 치(稚)마다 한 명씩, 20m 간격으로 배치되는데, 치 안에 서서 성 밖의 거수자를 색출하는 임무를 맡는다. 대기조는 궁성 내부에 마련된 병영 내에서 대기하는 병력을 말한다. 이들은 이전 근무 때 동초나 부동초를 맡았던 자들로 구성되며, 완전무장을 갖춘 채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만약 궁전에 불온한 움직임이 발생했을 경우에는 이 대기조들이 즉시 투입되어 상황을 해결하게 된다.


“이거 땅굴이라도 파지 않는 이상 힘들겠는데.”


마리네의 농담은 전혀 우습게 넘길만한 것이 아니었다. 20미터마다 눈을 부라리고 있는 부동초의 눈을 피해, 또 그 사이사이를 돌아다니고 있는 동초에게 발각되지 않고 성문을 돌파해야 한다. 만약 들킨다면? 그때는 물밀듯이 쏟아져 나오는 대기조에 막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될 것이다.

잠입은커녕 멀리서 쳐다보기만 해도 대기조가 몰려올 판이었다. 이 말도 안 되는 방어망을 대체 어떻게 돌파할지 엄두도 나지 않았다. 알룬도는 한 술 더 떠 검지를 좌우로 까딱대며 말했다.


“그래도 이건 훨씬 상황이 나은 거야. 한 달 전만 해도 부동초 사이사이에 왕실기사단이 떡 하니 버티고 있었거든.”


“잘난 척은 그쯤 해두고 이걸 어떻게 뚫어야 할지나 말해봐요.”


“응? 그걸 모르니까 너희들이 필요한 거지. 자, 어서 머리를 싸매봐.”


“저기...우리는 레인저지 도둑이나 암살자가 아닌데요.”


일행은 머리를 맞대고 궁성 지도를 한참 동안 분석했다. 하지만 분석을 하면 할수록 나오는 결론은 ‘불가능’이었다. 이 촘촘한 방어를 대체 어떻게 교란시킨단 말인가. 애초에 궁성수비대라는 게 그런 암살자의 접근을 막으려고 편성된 부대인데, 그들을 뚫는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화살을 막으려고 방패가 있지, 방패를 뚫으려고 화살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제리온이 좋아하는 무력돌파도 이번만큼은 수가 나오지 않았다. 꾸역꾸역 몰려오는 대기조를 처리하는 것도 문제지만, 소란을 피웠다간 가장 중요한 안다바리엘이 작전을 눈치챌 염려가 있었다.


“부동초 둘을 동시에 소리 없이 쓰러뜨리고 넘어가는 건 어떠냐?”


“그게 가능한가도 문제지만, 그랬다간 순찰하는 사람들에게 걸리고 말 걸.”


“내 포스미사일이면 세 명까진 한꺼번에 쓰러뜨릴 수 있어.”


“어이구, 그게 퍽이나 눈에 안 띄겠어요. 멀리서도 퍼런빛이 다 보이는구만.”


“아오 씨발.”


루도가 가장 먼저 포기하고 뒤이어 제리온이 양팔을 위로 올렸다. 마리네와 이칼롯도 궁성 잠입에 난색을 표했다. 가장 움직임이 민첩한 유미르네도 이번만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차라리 수비대와 싸우면 싸웠지, 들키지 않고 성 안으로 잠입하라는 건 너무 가혹한 조건이었다.

지도를 보고 있자니 가슴만 답답해져 갔다. 루도는 잠시 기분도 전환할 겸 천장을 바라보고 누웠다. 그의 발치에는 마리네가 앉아 있었는데, 그도 기숙사 구경을 하며 딴청을 부리는 중이었다. 답이 나오지 않으니 방 안에는 어색한 정적만 이어졌다.

실마리는 의외로 예상치도 못한 인물에게서 나왔다. 다른 사람들이 지도를 에워싸고 있던 탓에 멀리서 손만 빨고 있던 그녀, 레미나는 사람들이 하나둘 널브러지자 그제야 기회를 얻어 지도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알룬도가 기입한 주석을 접할 때마다 그녀의 눈동자가 이채롭게 빛났다. 루도가 지나가는 말로 “어때, 뭔가 돌파구가 보여?” 라고 묻자 그녀는 지도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아니, 정석적인 방법으로는 뚫기 어려울 것 같아.”


“하긴, 그렇지.”


“웅, 하지만. 꼭 불가능할 거 같진 않은데?”


의외의 반응이었다. 루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의 옆얼굴을 응시했다. 제리온은 이 공주님이 또 무슨 헛소리를 늘어놓는가 싶어 콧잔등을 씰룩였다. 그러나 레미나가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며, 허황된 망상에 빠진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녀는 자못 진지한 표정이 되어 알룬도에게 물었다.


“알룬도, 수비대의 상하번 시간이 어떻게 되는지 아시나요?”


“음? 오전반이 3시부터 12시, 오후반이 12시부터 20시, 심야반이 20시부터 3시까지오만.”


“근무교대 시간을 노려 침투하는 건 어떨까요?


“상하번 사이의 틈이라...아무리 높게 잡아도 1분이 채 되지 않을 거요.”


“그런가요? 제가 알던 사실이랑은 좀 다른데요.”


알룬도는 무언가 반박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레미나는 단지 비아냥거리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녀의 결연한 눈빛이 작전을 성공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그 누구보다 강렬하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었다.

솔직히 그녀는 전력 외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 레미나가 보여주는 주도력은 알룬도를 짐짓 놀라게 만들었다. 그는 일단 잠자코 그녀의 의견을 경청하기로 했다.


“사실 근무교대 사이의 구멍은 1분이 아니라 30초도 되지 않죠. 하지만 오전반이 오후반으로 바뀌는 시간대, 그중에서도 궁전의 양 사이드 끝, 서쪽과 동쪽에서 멀어질수록 그 공백은 커져요. 그러니까 적합한 침투지점을 고르라면 북문과 남문이 되겠는데, 북문은 야간에도 개방되어 오가는 사람이 많으니 우리는 남문을 고르는 게 좋겠죠?”


그녀는 지도의 주요지점을 짚어가며 조곤조곤 설명했다. 이야기하는 그 목소리가 묘하게 자신감에 차 있었기 때문에 방 안은 어느새 그녀의 발언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칼롯이 팔짱을 낀 채 말했다.


“동서를 기점으로 상하번 공백기가 커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간단해요. 궁성의 좌측 끝에는 은빛기사단 위령비가 있죠. 우측에는 리카르고 기념비가 있고요. 근위병들은 저녁 8시가 될 때마다 이 기념비 앞에 모여 묵념을 해요. 1중대는 은빛기사단 위령비로, 2중대는 리카르고 기념비로요. 물론 묵념 자체에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 이런 관례를 겸해서 총 점호를 하는 거죠. 그런데 이 총 점호라는 게 꽤 중요한 지시사항이 오고 갈 때가 잦은가 봐요. 그래서 가능하면 많은 근위병이 모이는 게 좋은데, 8시가 점호라면 오전반, 오후반 모두 점호를 부분적으로 놓치겠죠? 궁성수비대는 이 부분을 조율하여 오전반이 근무를 끝내며 점호를 받고, 오후반이 조금 일찍 근무에 투입되는 식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그런데 지도를 보면 아시겠지만, 궁성은 생각보다 규모가 커요. 1중대를 예로 들자면 남문에서 근무하던 병사가 서쪽 위령비까지 가려면 대략 1km가량을 걸어가야 하죠. 그래서 시간을 맞추기 위해 남문이나 북문에 배치된 병사는 평소보다 빨리 근무지를 떠나요. 이 공백을 없애려면 더 빨리 오후반이 움직이는 게 맞지만, 여건이 그렇게 되질 못해요. 왜냐? 근무자들이 각자 자기 근무지로 향하는 게 아니라, 단체로 오와 열을 맞추어 이동하며 해당근무자를 배치하는 시스템이거든요. 즉, 북문과 남문의 경우 하번자는 평소보다 일찍 퇴근하는 데 반해 상번자가 이 공백을 바로 메우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해요. 그리고 그 공백은 아마 제가 생각하기로 최소 2분은 넘길 거예요.”


기나긴 설명이 끝나자 레미나는 잠시 물을 마시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런데 컵을 홀짝거리고 있자니 주위의 시선이 심상치가 않았다. 방 안은 어느새 그녀를 중심으로 둥그렇게 모인 구조가 됐다.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자신을 뚫여져라 쳐다보자 그녀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말을 얼버무렸다.


“어...어라? 제가 뭔가 설명을 잘못했나요?”


실은 그 반대였다. 너무나도 조리 있는 설명에 그 자리에 모인 누구도, 심지어 태클걸기 좋아하는 제리온조차 반박할 거리를 찾지 못했다. 대체 어떻게 그런 정보를 알고 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루도가 이에 대해 묻자 그녀는 쑥스러운듯이 몸을 배배 꼬며 말했다.


"에, 옛날에 그냥 심심해서...근위대 지나가는 걸 혼자 구경한 적이 있거든."


'겨우 그거 가지고 여기까지 알아냈다고?'


믿기지 않는 분석력이었다. 완벽히 수긍해버렸기 때문에 뭐라 할 말도 없었다. 그녀가 이렇게 치밀한 성격이었던가? 작전의 개요보다 그녀가 보여준 카리스마가 일행을 더욱 놀라게 만들었다.

제리온이 떠듬거리며 말했다.


“그거...확실한 거야? 그 상하번 사이의 공백.”


“어, 응? 아마도? 5년 전에는 그랬는데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네. 그런데 오후 8시에 여는 총 점호와 묵념은 오랜 전통 같은 거라 바뀌진 않았을 거야.”


“이칼롯, 어떻게 생각해?”


그는 대뜸 이칼롯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하지만 이는 조언을 구한다기보다는, 대장의 동의를 얻어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가지려는 과정이라 봐야 했다.

이칼롯이 말했다.


“2분이라. 2분 안에 성벽을 넘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장소까지 이동해야 해. 가능할까?”


질문의 답을 얻고, 그 답에 확신을 가진다. 일행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씨익 웃었다. 여기까지 개척한 것도 기적이다. 이 이상 쉬운 길을 바라는 건 오히려 염치가 없는 일이었다.

결정이 났다. 일행은 만장일치로 레미나의 작전을 따르기로 했다. 이칼롯이 말했다.


“좋아, 결행은 내일 저녁. 안다바리엘을 죽이고 왕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게 최종목표다. 그럼 지금부터 공주님의 작전을 토대로 세부사항을 결정하도록 하지. 아직 준비할 게 많아.”


한편 루도는 얼떨떨한 얼굴로 레미나를 바라보았다. 볼을 붉힌 채 쑥스러워하는 그녀에게서 조금 전 카리스마 넘치던 이미지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야, 마리네. 공주는 의외로 거물일지도 몰라.”


그러자 마리네는 한참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말했다.


“응? 무슨 소리야. 공주니까 거물인 거잖아.”





***


루도는 오후 5시가 넘어서야 기숙사를 빠져나왔다. 아직은 해가 길어 돌아다니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역시 시간이 시간인지라 그렇게 북새통을 이루던 인파가 눈에 띌 정도로 줄어 있는 게 보였다. 상인들도 더 장사를 하는 건 시간 낭비라 여겼는지 하나둘 가게 문을 닫고 퇴근 준비에 한창이었다.

루도는 곧장 궁성의 남문지점으로 향했다. 작전은 내일이지만, 미리 잠입지점을 눈으로 확인해놓는 게 좋기 때문이다. 그의 뒤로 마리네와 유미르네가 따라붙었다. 제리온은 귀찮다며 사전답사를 거부했고, 레미나는 워낙 얼굴이 팔려 있었기에 숙소에 남기로 했다. 그리고 이칼롯과 알룬도는 오늘 하루는 휴식에 모든 시간을 투자하기로 한 모양인지, 작전 논의가 끝나자마자 깊은 잠에 빠졌다.

답사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침투에 적합한 지점을 선정하고, 성곽의 높이나 근위병의 시야각 정도만 확인하는 게 전부였다. 어차피 궁성 내부로는 진입할 수가 없었으므로 그 이상의 것은 지도로 보는 데에 만족해야 했다.

답사가 싱겁게 끝났기 때문에 이후의 일정은 자연스레 거리구경으로 모아졌다. 작전에 쓸 밧줄과 횃불 등을 구입하고 나서 셋은 거리 가장자리에 위치한 작은 주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볍게 한잔하며 여독도 풀고, 숙소에 남은 이들을 위해 저녁거리를 사가려는 이유에서였다.


“너네는 맥주 마실 거지? 저기용~맥주 두 잔이랑 그랑마니에 리큐르 하나요.”


유미르네는 애교스럽게 콧소리를 내며 말했다. 그녀의 매력적인 주문 탓인지 채 1분도 안 되어 술이 나왔다. 셋은 경쾌하게 잔을 부딪치고는 오래간만의 음주를 즐겼다.

주점 안은 막 하루 일과를 끝마치고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시골이나 도시나 술 문화는 똑같은 법이라, 취객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에 귀가 먹먹해질 지경이었다. 루도가 말했다.


“우리 보는 사람 없는지 잘 살펴봐. 들키면 큰일 나니까.”


“없어, 없어. 원래 등잔 밑이 어둡다고, 사람 많은 곳이 더 눈에 안 띄는 법이야.”


유미르네는 다소 들뜬 모습이었다. 그녀는 리큐르를 단숨에 비우고는, 다시 한 잔을 주문했다. 루도는 테이블에 꽂히는 시선을 느꼈지만, 그게 자신이 아닌 유미르네를 향하는 것임을 깨닫고 피식 실소를 머금었다.

단순히 여성으로서만 놓고 본다면 그녀는 어디 하나 흠잡을 곳이 없는 미인이다. 늘씬한 키와 몸매, 그리고 그녀 특유의 고혹적인 눈매는 어디를 가든 남자들의 시선을 끈다. 특히 오랜 훈련으로 다듬어진 근육과 탄력 있는 피부는 운동부족으로 비실비실해 하는 도시 아가씨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매력이다.

하지만 루도는 아름다워진 그녀를 어째서인지 곧이곧대로 볼 수가 없었다. 아무리 애교를 부리고 성희롱을 일삼아도, 그녀의 어깨너머로 어렸을 적 주판을 두드리던 뚱뚱보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 때문이었다.


“어머 어머, 마리, 방금 봤니? 저기 건너편 테이블의 남자, 날 보고 윙크했어. 어쩜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


“...마리라고 하지 마. 여자이름 같잖아.”


“얘 좀 봐. 마리네도 충분히 여자이름이거든?”


그녀는 까르르 웃으며 마리네의 등을 두드렸다. 그 발랄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아련한 기분이 들어서, 루도는 무심코 그녀의 볼을 꼬집고 말았다. 당연히 유미르네는 놀란 눈을 크게 떴다.


“...너 뭐하니?”


“그냥. 그 뚱뚱이가 언제 이런 불여우가 되어 돌아왔나 싶어서.”


그러자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뚱뚱이라니, 레이디에게 무슨 그런 실례를.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내 미모는 리크나이츠는 물론이요 텔아단에서도 먹어주는 얼굴이라고. 말하자면 초미녀?”


“초는 빼라 야. 조금만 더 하면 두드러기 돋겠네.”


“어머나, 얘가 얘가. 내가 마음만 먹으면 이 술집에 모인 남자 전부 꼬실 수도 있어. 내기할래?”


그렇게 말하고서 그녀는 두리번거리며 근처에 앉은 남자들의 면면을 훑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가락이 주점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돌아갔다.


“저기 저 남자는 낙승. 그 건너편 대머리 아저씨? 내가 아깝지. 그 옆에는 너무 도련님 스타일이네. 손만 잡아줘도 숨넘어가겠어. 그 뒤에 앉은 3인조 전부 낙승. 뭐야, 전부 발정 난 남자들뿐이잖아? 안 넘어오는 남자는 딱 눈빛부터가 다른데 말이야. 발기부전 걸린 것처럼 무기력한 게...”


루도와 마리네는 어이가 없어 웃음을 터뜨렸다. 거의 자아도취에 빠진 그녀를 무시하고서 둘은 맥주를 한 잔 더 시켰다. 주점의 분위기가 떠들썩해서인지 술도 금방금방 넘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두 번째 맥주잔이 테이블에 도착할 즈음, 부지런히 움직이던 유미르네의 손가락이 어느 한 지점에 우뚝 멈춰 섰다. 또 무슨 헛소리를 하는가 싶어 루도는 그녀의 손목을 끌어당겼다.


“뭐. 정말 고자라도 찾은 거야? 개소리 그만하고 술이나 마셔. 이거만 먹고 숙소로 돌아갈 거니까.”


그러자 그녀는 의외로 순순히 의자에 앉았다. 그런데 마주 보는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았다. 그녀는 검지를 입술에 대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어디서 본 얼굴인데? 마리, 저어기 카운터 맨 왼쪽 구석에 앉은 남자들 보이지? 그중에 금발 말고 갈색 머리. 보여?”


“어. 좀 나이 든 쪽 말하는 거지? 저 사람이 왜? 고자야?”


“그게 아니고! 자세히 봐봐. 분명 어디서 본 거 같단 말이야.”


“흐으으음....으으으음?”


마리네는 팔짱을 낀 채 늘어지는 한숨을 내뱉었다. 그다지 특징 없는 얼굴인데 유미르네가 그렇게 말하니 어디선가 본 거 같기도 하고, 익숙하지만 바로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 그런 애매한 얼굴이었다. 아리송한 마음에 그의 눈매가 살짝 가늘어졌다. 그러다가 차츰 동공이 커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그는 기절하듯이 테이블에 코를 박았다.

기억이 떠오른 것이었다.


“오메! 왜 저 아저씨가 여기에...?”


“그치, 아는 얼굴이지? 누구더라?”


“누구긴 누구야, 케이달 아저씨잖아. 옛날에 그 루도가 독버섯 먹었을 때 만났던.”


“아 맞다 그 사람! 그런데 저기서 뭐 하고 있다니?”


셋은 달라붙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테이블에 몸을 바짝 기댔다가, 곧 그게 더 시선을 끈다는 걸 깨닫고는 어색하게 상체를 일으켰다. 루도는 케이달 쪽에서 알아채지 못하게 맥주잔으로 옆얼굴을 가리고서 그를 훔쳐보았다.

그는 지인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와 술을 마시는 중이었다. 테이블에 질펀히 굴러다니는 술병으로 보건대 이미 일행이 오기 훨씬 전부터 술판을 벌이고 있던 게 분명했다. 거리가 멀어서 대화내용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입놀림으로 보아 뭔가 할 말이 많은 듯했다.

루도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저 사람 왕실기사단이잖아. 왕실기사단은 전번에 뭐 길목 차단하러 크렘벨 쪽으로 이동했다고 하지 않았나?”


“나도 그렇게 들었는데. 왜 저기서 저러고 계시지? 모양새가 꼭...뭐랄까...”


“음...백수..아니, 퇴역기사?”


“맞아. 딱 그런 분위기네.”


케이달은 본래 란도스 국왕을 직속에서 수행하던 호위기사였다. 그런데 왕은 지금 안다바리엘에게 조종당하는 중이고, 그 왕의 호위기사는 대낮부터 술을 퍼마시고 있다. 딱 봐도 뭔가 왕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는 게 느껴졌다.

루도는 그쪽 일행의 눈치를 살피다가, 타이밍을 노려 잽싸게 이야기를 엿들을 수 있는 테이블로 이동했다. 위험하다는 건 알지만, 케이달이 무슨 대화를 주고받는 건지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마리네와 유미르네도 그에게 편승하여 케이달의 대화를 엿듣기 시작했다. 그가 워낙 만취한 상태였기 때문에 가까이 접근했다고 정체를 들킬 염려는 없어 보였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자니 케이달의 한탄이 폭포수처럼 흘러들어왔다.


“내가 10년이 넘도록 그분을 모셔왔는데, 이젠 정말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국정은 나 몰라라 하고 - 아, 이건 젊었을 때부터 조짐이 보였으니 그렇다 치지만, 어떻게 전시상황에서 그런 명령을 내릴 수가 있지? 적은 3개 기사단을 앞세워 공격해 오는데 고작 백천기사단 하나로 방어하라니, 처음부터 마드리고는 가능성이 없는 카드였어. 아직 백천기사단이 버티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지. 거기다 왕실기사단은 왜 전선으로 파견해? 뭐 좋아, 명분은 그럴듯하단 말이야. 그런데 천정기사단은 어디다 팔아먹고? 이봐, 아셰라드. 네가 좀 말해봐라. 천정기사단이 왜 지금 텔아단 국경에서 찌질대고 있는 거냐?”


말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케이달의 이 모든 대사를 20초 만에 쏟아내곤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할 말을 다 했다기보다는, 술을 마시려고 잠시 말을 멈춘 것뿐이었다.

아셰라드라 불린 남자는 머리를 긁적이며 난처한 미소를 띄웠다. 행색을 보아 케이달과 같은 소속인 모양인데, 나이는 그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이칼롯과 비슷한 연배 정도? 아마 그의 직속부하쯤 되는 모양이었다.

그가 말했다.


“단장님, 술이 너무 과하십니다. 오늘은 이만 들어가시는 게 어떨까요? 더 마시다간 몸 버리십니다.”


“...강등당한 놈이 단장은 무슨. 지금은 그냥 형님이라고 불러. 후우....하지만 네 말마따나 취하긴 취했다. 하지만 어쩌겠냐? 칼로 먹고사는 인간이 칼을 빼앗겼으니, 술이나 마시는 수밖에.”


“단장님...”


머릿속으로 대략적인 그림이 그려졌다. 케이달은 지금 왕이 조종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미치광이가 된 왕을 바라보는 신하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의 성격으로 보아 틀림없이 기탄없는 직언을 올렸을 게 분명하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지금 보이는 강등당한 기사의 뒷모습인 것이다.

루도는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에게 왕을 둘러싼 음모를 설명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자신은 아직 범죄자의 신분이고, 케이달은 입장 상 루도와 만나면 그를 잡아야만 한다. 설령 케이달을 설득한다 하더라도 옆의 아셰라드란 남자가 어떻게 행동할지 알 수 없었다.

지금은 참아야만 한다. 내일 작전만 성공한다면.

케이달은 허탈하게 웃으며 술병을 기울였다. 그러다 술이 모두 떨어졌다는 걸 알게 되자 이내 쓰러지듯 의자 등받이에 몸을 묻었다. 이젠 술을 마실 기분도 사라졌는지, 그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전황은 어떻게 되어가지? 백천기사단 쪽 말이야.”


그러자 아셰라드는 상반신을 기울이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거의 귓속말에 가까울 정도로 작은 소리였지만, 루도와 유미르네는 둘의 대화를 캐치하는 데 성공했다.


“아룬델 장군이 일단 병력을 재규합하는 데에는 성공한 모양입니다. 현재 마드리고 외곽에서 흑연기사단과 대치하고 있는데, 그래도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하더군요. 게다가 곧 있으면 훼창기사단, 성(聖)마르세아 기사단이 전선에 합류하기 때문에 전황은 더욱 나빠질 겁니다.”


“훼창기사단도 왔나...마드리고는 이미 함락됐고, 백천기사단이 무너지면 라키시아까지 일직선 코스로군.”


“솔직히 이렇게 마음 놓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당장 천정기사단을 불러들이지 않으면 중부 일대가 쑥대밭이 될 겁니다.”


루도는 흑연기사단이 자행했던 민간인 학살을 떠올렸다. 만약 지금 백천기사단이 유지하고 있는 전선이 무너진다면, 라키시아까지 그 시체의 강이 이어질 게 뻔하다. 이를 막으려면 어떻게든 천정기사단을 전선에 투입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먼저 왕을 원래대로 돌려놓아야 했다.

유미르네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나름 어깨가 무거운데? 내일 작전이 실패한다면 굳이 신의 아이가 나서지 않아도 이 나라는 멸망하고 말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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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의 계승자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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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4) +3 15.05.12 891 25 26쪽
246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3) +3 15.05.12 852 23 20쪽
245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2) +5 15.05.11 962 26 21쪽
244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1) +4 15.05.11 949 23 18쪽
243 람의 계승자 - ep.5 - 왕하직속뭐시기(完) +2 15.05.11 1,067 24 20쪽
242 람의 계승자 - ep.5 - 왕하직속뭐시기(2) +1 15.05.11 777 22 21쪽
241 람의 계승자 - ep.5 - 까마귀가 우는 밤(5) +6 15.05.10 747 22 15쪽
240 람의 계승자 - ep.5 - 까마귀가 우는 밤(4) +1 15.05.10 786 22 17쪽
239 람의 계승자 - ep.5 - 까마귀가 우는 밤(3) +2 15.05.10 880 21 17쪽
238 람의 계승자 - ep.5 - 까마귀가 우는 밤(2) +1 15.05.10 768 24 13쪽
237 람의 계승자 - ep.5 - 까마귀가 우는 밤(1) +4 15.05.09 880 24 28쪽
236 람의 계승자 - ep.5 - 왕하직속뭐시기(1) +3 15.05.09 915 23 21쪽
235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7) +2 15.05.09 1,007 24 18쪽
234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6) +5 15.05.08 1,022 28 24쪽
233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5) +2 15.05.08 885 23 24쪽
232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4) +2 15.05.08 901 22 26쪽
231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3) +2 15.05.08 894 24 19쪽
230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2) +2 15.05.08 758 23 24쪽
229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1) +5 15.05.07 770 25 19쪽
228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10) +2 15.05.07 889 23 24쪽
227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9) +1 15.05.07 813 21 24쪽
226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8) +4 15.05.06 731 26 22쪽
225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7) +2 15.05.06 976 24 29쪽
224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6) +3 15.05.06 802 23 28쪽
223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5) +4 15.05.05 929 26 24쪽
222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4) +2 15.05.05 762 23 23쪽
221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3) +1 15.05.05 642 22 15쪽
220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2) +2 15.05.05 771 24 18쪽
219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1) +4 15.05.05 685 23 15쪽
218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4) +2 15.05.05 921 24 23쪽
»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3) +3 15.05.04 936 22 23쪽
216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2) +2 15.05.04 867 22 21쪽
215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1) +1 15.05.04 774 24 20쪽
214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5) +2 15.05.04 710 24 15쪽
213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4) +2 15.05.04 720 25 23쪽
212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3) +3 15.05.03 845 29 18쪽
211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2) +3 15.05.03 764 22 23쪽
210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1) +2 15.05.03 853 23 20쪽
209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7) +5 15.05.03 795 28 25쪽
208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6) +2 15.05.03 894 24 22쪽
207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5) +4 15.05.02 938 29 21쪽
206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4) +1 15.05.02 884 27 20쪽
205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3) +2 15.05.02 690 24 21쪽
204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2) +2 15.05.02 767 24 24쪽
203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1) +2 15.05.02 586 24 22쪽
202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6) +3 15.05.02 696 28 18쪽
201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5) +5 15.04.29 863 24 19쪽
200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4) +1 15.04.29 937 24 26쪽
199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3) +1 15.04.29 789 24 24쪽
198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2) +3 15.04.29 812 26 18쪽
197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1) +1 15.04.29 758 24 17쪽
196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8) +4 15.04.28 905 28 16쪽
195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7) +3 15.04.28 840 25 20쪽
194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6) +3 15.04.27 711 26 19쪽
193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5) +3 15.04.27 756 22 17쪽
192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4) +2 15.04.27 731 22 18쪽
191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3) +1 15.04.27 731 30 18쪽
190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2) +2 15.04.27 758 27 19쪽
189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1) +2 15.04.27 789 31 18쪽
188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完) +1 15.04.27 599 33 18쪽
187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5) +4 15.04.26 733 24 17쪽
186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4) +1 15.04.26 928 28 16쪽
185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3) +2 15.04.26 739 26 20쪽
184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2) +6 15.04.23 779 28 15쪽
183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1) +3 15.04.23 840 26 19쪽
18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2) +2 15.04.23 755 25 17쪽
18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1) +3 15.04.23 767 26 15쪽
180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0) +1 15.04.23 682 25 22쪽
179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9) +3 15.04.22 811 29 16쪽
178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8) +3 15.04.22 846 27 15쪽
177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7) +1 15.04.22 777 29 18쪽
176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6) +1 15.04.22 790 23 18쪽
175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5) +2 15.04.22 765 29 15쪽
174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4) +3 15.04.22 911 25 18쪽
173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3) +5 15.04.21 767 27 16쪽
17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2) +2 15.04.21 922 25 14쪽
17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 +3 15.04.21 806 25 17쪽
170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8) +3 15.04.21 730 24 21쪽
169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7) +2 15.04.21 703 19 15쪽
168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6) +4 15.04.20 751 24 18쪽
167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5) +2 15.04.20 655 20 18쪽
166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4) +1 15.04.20 767 23 17쪽
165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3) +2 15.04.20 738 24 16쪽
164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2) +3 15.04.20 809 20 16쪽
163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1) +1 15.04.20 821 22 21쪽
162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6) +1 15.04.20 830 29 14쪽
161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5) +2 15.04.20 711 25 18쪽
160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4) +3 15.04.19 865 28 18쪽
159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3) +3 15.04.19 947 28 18쪽
158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2) +3 15.04.19 901 26 22쪽
157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1) +5 15.04.19 1,210 46 22쪽
156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10) +6 15.04.18 901 26 21쪽
155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9) +3 15.04.18 772 26 18쪽
154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8) +1 15.04.18 657 24 19쪽
153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7) +2 15.04.18 687 26 18쪽
152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6) +1 15.04.18 748 27 17쪽
151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5) +4 15.04.18 713 23 16쪽
150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4) +1 15.04.18 669 24 17쪽
149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3) +2 15.04.18 754 22 17쪽
148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2) +3 15.04.16 849 2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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