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345 회
조회수 :
359,065
추천수 :
10,757
글자수 :
2,844,987

작성
15.05.02 03:14
조회
585
추천
24
글자
22쪽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1)

DUMMY

위험천만했던 위기는 이칼롯의 기지로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도시경비대는 유미르네의 거짓말에 완벽히 속아 넘어간 것인지 동문 주위에서만 서성이고 있었다. 이칼롯은 감시가 소홀해진 남문을 유유히 빠져나가 성곽을 우회해 일행과 합류했다. 한편 유미르네 또한 방실거리며 마차로 다가왔다.

그녀를 발견하자 루도와 마리네는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반면 제리온은 영 떨떠름한 얼굴로 그녀를 응시했다. 의심이 많은 그로서는 갑자기 일행에 합류한 유미르네가 마뜩잖을 수밖에 없었다. 레미나 말마따나 그가 폐쇄적인 성격인 것은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일행의 대략적인 분위기는 유미르네를 환영하는 쪽이었다. 레미나는 고용주로서, 디리터와 에레이시아는 루도, 마리네의 옛 친구라는 점에서 그녀를 반겼다.

유미르네의 일이 마무리되자 일행은 지체 없이 길을 떠났다. 따돌렸다곤 해도 가능한 한 최대한 아케니온과 거리를 벌려야만 했다. 제랄드는 일개 용병단의 대장으로 있기에는 너무나도 교활한 사내라서, 우물쭈물하다간 순식간에 따라잡힐 수 있었다.

여로는 기존에서 약간 변경해 북쪽의 류이덴사를 우회해 지나가는 길을 택했다. 지금까지 보아온 상황을 볼 때 중부지역 도시들은 모두 전시체제에 돌입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도시마다 정규군이나 용병이 발에 채일 만큼 많을 테니, 수배자인 일행으로서는 최악의 조건이었다. 때문에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북부지방으로 돌아가는 방안이 채택되었다. 류이덴사 주변은 자치지역이라 사냥꾼의 움직임도 적을 테고, 무엇보다 가린워드 마을을 경유할 수가 있었다. 가린워드 마을의 아나이스는 일행에게 호의적이니만큼, 그곳이 현재로선 마음 놓고 몸을 쉴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여정은 한결 여유가 넘쳤다. 군인은커녕 행상인들도 아예 자취를 감추어서 마차를 몰 때에는 말발굽 소리와 마차바퀴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가을 하늘은 여전히 청량하여 비 한 번 뿌리지 않고 푸르름을 유지했다. 이런 탓인지 시간이 흐를수록 일행의 긴장은 풀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마차 안의 네 명은 그 정도가 특히 심했다.

마차에는 루도와 마리네, 레미나와 유미르네가 탔다. 마부석에는 디리터와 에레이시아 부부가 앉아 있었고 이칼롯과 제리온은 각자 말을 몰고 있었다. 평소 별반 대화가 없던 마차 안은 유미르네가 들어오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유미르네는 옆에 앉은 루도에게 밑도 끝도 없이 달라붙어 그를 당황하게 했다. 오늘도 그녀는 루도에게 팔짱을 끼며 은근슬쩍 가슴을 들이밀고 있었다. 은근슬쩍도 아니고, 아예 노골적으로 느껴지는 가슴의 감촉에 루도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는 최대한 몸을 빼려 했지만 그럴수록 유미르네는 상체를 루도 쪽으로 기울였다. 자연스레 루도가 창가에 바짝 달라붙고, 유미르네가 눕듯이 그에게 기대는 자세가 되었다.

루도가 부담스러운 듯이 말했다.


“야, 좀...야 이 계집애야, 좀 떨어져. 그...가슴 자꾸 닿잖아.”


“어~머? 이 정도야 가벼운 서비스지. 왜, 기분 나쁘니?”


유미르네는 루도의 그런 반응을 즐기고 있었다. 그녀는 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고혹적인 목소리로 루도를 압박했다.


“아니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렇게 말하며 루도는 앞에 앉은 레미나의 눈치를 살폈다. 왜 그녀를 흘겨봤는지는 자신도 잘 몰랐지만, 어찌 됐든 공주님 앞에서 이런 저질 행각을 보이는 게 영 불편했다. 레미나는 그 큰 눈을 말똥말똥 뜬 채 두 사람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부끄러워하며 시선을 돌리려는 움직임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유미르네는 루도의 눈이 향하는 곳을 확인하곤 음흉하게 웃었다. 그녀가 말했다.


“어라라? 이 정도는 기본 스킨쉽 아니니? 너희들 정도면 훨씬 전에 졸업한 줄 알았는데. 설마, 아직도 동정?”


혈기왕성한 소년들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단어였다. 루도와 마리네는 동시에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유미르네는 그런 반응이 너무나도 재밌는 듯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 정곡을 찔렀나 보네. 너희들 보기와는 다르게 엄청 순진하구나? 루도, 어때? 흥분했니? 이 누나가 욕구 해소해줄까?”


“아, 그만 좀 해! 이 성희롱녀야. 살 좀 빠지니까 개념까지 날아갔냐?”


루도는 팔을 홱 뿌리치며 소리쳤다. 그런데 너무 힘을 준 탓인지 유미르네의 상체가 뒤로 밀려 창 모서리를 찧었다. 루도는 스스로도 놀라 입을 딱 벌렸다.


“어? 미, 미안. 괜찮냐?”


“...아야...”


“그러니까 적당히 좀 했어야지. 다 큰 처녀가 무슨 낯가림이 하나도 없냐? 어디 좀 봐봐. 많이 다쳤어?”


루도는 정색하는 그녀를 보곤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유미르네는 확 팔을 뻗어 그의 얼굴을 자신의 가슴에 파묻었다. 마차 안에 일대 소동이 일었다.


“웁, 우웁...이 미친, 안 놔?!”


“꺄하하. 순진하긴. 이 정도론 간지럽지도 않아.”


한편 마리네는 둘의 질펀한 행각에 끼어들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계속 헛기침만 해댔다. 남의 애정행위에 훼방을 놓는 것 같다랄까? 달아오른 것은 비단 얼굴만이 아니어서, 그는 스스로를 진정시키기 위해 무진 애를 써야 했다. 뚱뚱하고 성격 나쁘던 소꿉친구는 어느새 뇌쇄적인 미녀가 되어 돌아와 있었다.

그때 레미나가 귓속말로 질문을 던졌다.


“저기...이해가 잘 안 가서 그러는데, 뭘 동정한다는 거야?”


“....”


마리네는 황급히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이 오염되지 않은 아가씨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으랴. 한시라도 빨리 에레이시아와 자리를 바꾸고 싶건만 그녀는 마부석에 앉아 디리터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젊은 남녀 넷이 모인 자리인지라 마차 안은 한시도 바람 잘 틈이 없었다. 대화는 주로 유미르네와 루도가 나누고, 간간이 마리네가 추임새를 넣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레미나는 셋의 대화를 졸지도 않고 열심히 듣고 있었지만 특별히 대화에 끼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루도는 이야기 와중에 틈틈이 유미르네의 과거를 캐물으려 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녀는 요령 좋게 빠져나갔다. 알아낸 것이라곤 그녀가 줄곧 텔아단에서 지냈다는 것, 검술을 연마해 사냥꾼으로서 꽤나 성공했다는 것뿐이었다. 발렌스 상회에 대한 것, 혹은 제랄드에 의해 노예로 팔렸을 때의 과거는 일언반구도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자신에게 던져진 질문을 무마하며 역으로 되물었다.


“그건 그렇고, 너희 쪽은 어떤데? 듣자하니 아케니온이 쫓는 건 공주님이 아니라 로샤단이라며?”


“음, 그게...”


루도는 안개송곳니에 대해서, 그리고 신의 아이에 대한 대략적인 전말을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신의 아이가 누구인지는, 특히 자신의 정체에 대해서는 은근슬쩍 숨겼다. 과거를 숨기려는 그녀의 태도에 심통이 난 까닭도 있지만, 자신이 펠아람의 아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달라질 그녀의 눈빛이 두렵기 때문이었다.

꽤 스케일 큰 이야기에 유미르네는 호기심이 동한 듯 눈을 반짝였다.


“헤, 그런 게 정말 있단 말이야? 믿을 수가 없는데.”


“믿든 안 믿든 전부 사실이야. 우리는 실제로 드래곤도 만나고 온 참이라고.”


“이야~. 이거 거물들 노는 곳에 끼게 된 판이잖아? 공주님, 천 골드로는 좀 부족하지 않을까요?”


유미르네는 한쪽 눈을 찡긋 감으며 레미나에게 말했다. 그러자 레미나는 생긋 웃으며 화답했다.


“추가보수는 성과급으로 드릴게요. 아무 일 없이 수도에 도착한다면 천 골드도 많은 편 아닌가요?”


“헤에...의외로 쪼잔하시네.”


두 아가씨는 한결같이 호호 웃는 얼굴이었다. 그러니까, 둘 사이에 뭔가 스파크가 튄다고 느낀 것은 루도의 착각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한편 마차 밖에서는 이칼롯과 제리온이 열띤 토론을 벌이는 중이었다. 유미르네의 표현을 따 ‘늘 심각한 얼굴’인 두 사람은 앞으로의 여정, 특히 추격대에 관한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아케니온을 의식해 여로를 변경한 만큼 둘은 말을 모는 와중에도 지도를 펴놓고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제리온이 말했다.


“류이덴사에는 안 들러? 너무 노숙만 하다간 피로가 쌓일 텐데.”


“길을 돌려가는 것인 만큼 시간배분에도 신경 써야 해. 그리고 우물쭈물하다간 아케니온에게 뒤를 잡힐 거야.”


“너무 깊게 생각하는 거 아닌가? 녀석들은 우리 위치를 몰라. 일쿡에서도 완벽하게 따돌렸잖아.”


그러나 이칼롯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지도에서 일쿡이 표시된 지점을 손가락으로 집으며 말했다.


“네 말도 맞아. 하지만 놈들도 이제 우리가 일쿡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거기서 도출되는 정보는 의외로 많지.”


“어떤 거?”


“우리가 서쪽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 제랄드는 이 부분을 놓치지 않을 거야. 굳이 도망치려면 텔아단으로 가는 방법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놈들로서는 수색 반경을 일쿡에서부터 시작하면 되니 그 범위 또한 크게 좁아지지. 아마 서쪽으로 갔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때 마차 안에서 쿵, 하고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둘은 동시에 마차 안을 바라보았으나 곧 안에서 장난을 치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는 시선을 거두었다. 제리온이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그럼 어디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볼까? 제랄드가 현재 우리 위치를 알고 있는 거지.”


그 말에 이칼롯은 피식 웃었다. 더 따질 가치도 없는 문제다. 아마 제리온도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을 터였다.


“그랬다면 진즉에 뒤꽁무니를 따라 잡혔겠지.”


“시야가 닿지 않는 곳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다든지?”


“...그럼 나나 디리터가 알아차렸겠지. 디리터의 감은 아주 뛰어난 편이니까.”


“안개송곳니는?”


이칼롯은 이번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확실히 안개송곳니의 전력은 로샤단을 가볍게 상회한다. 이미 겨루어본 바 있는 제폰과 고르딘은 사람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실력가였다. 물론 그들이 잠입과 추적에도 능할지는 미지수이지만, 여기서는 또 제스터의 존재가 눈에 밟힌다.

알룬도는 최대 요주의 인물로 제폰이 아닌, 제스터와 안다바리엘을 꼽았다. 물론 그가 여기에 덧붙여 ‘뭔가 기분이 나쁘다’라는 이유를 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주의해서 나쁠 것은 없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제스터는 은신과 잠행을 즐겨하는 암살자로, 인비저빌리티(Invisibility)가 걸린 특수한 아티팩트를 사용한다고 했다. 그 광대가면은 예전 안트로서의 수정 너머로 본 경험이 있었다.

아마 디리터의 사주경계를 돌파할 인물이 있다면 바로 그일 것이다. 이런저런 점을 따져보고 있자니 어쩐지 목덜미가 서늘해져서 둘은 머쓱하게 웃었다. 도로 양옆으로 난 숲에서는 나뭇잎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들려올 뿐 특이한 움직임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자신의 청각은 정말 믿을만한 것일까?

제리온이 말했다.


“젠장, 결국 맘 편히 침대에서 자긴 글렀다는 거잖아. 거지 같네.”


“가린워드 마을에 가면 또 모르지.”


두 사람은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었다. 그 뒤로는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가만히 고삐를 쥐고 있자니 마차 안에서 유미르네의 웃음소리가, 루도와 마리네의 흥분된 목소리가 귓가에 다가왔다. 그리고 마부석에서 최대한 눈치를 살피고 있긴 하지만, 디리터와 에레이시아의 시시덕대는 소리도 들려왔다.

이칼롯은 한동안 말없이 마부석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다 한 줄기 산들바람이 얼굴을 때리자 거기에 자신의 고민을 태워 보내려는 듯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니, 역시 류이덴사에는 들러야 할지도...”


제리온이 그의 읊조림을 듣고 물었다.


“응? 그게 뭔 소리야.”


“...에레이시아. 역시 우리와 함께 있는 건 너무 위험해. 가는 길에 베른헬트 주교님에게 부탁하는 게 낫지 않나?”


“그거야 그렇지만...근데 저 계집애 알면서도 따라온 거잖아. 애초에 안전 생각했으면 섬에 남았지.”


그녀가 여기까지 따라온 것은 디리터와 함께 있고 싶어서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수도에 있는 여동생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는 다분히 개인적인 용무다. 레미나는 일행의 누명을 벗겨준다는 명분이라도 있지만, 그녀는 굳이 고생스럽게 함께 여행해야 할 까닭이 없다. 여동생이야 디리터가 대신 돌봐주면 될 일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 이야길 굳이 에레이시아에게 꺼내진 않았다. 디리터와 함께 있는 그녀의 얼굴이 너무나도 해맑아서, 말을 걸었다간 그 미소가 산산이 부서질 것만 같기 때문이었다. 결국 둘은 이 문제를 류이덴사에 도착할 때까지 보류하기로 했다.



류이덴사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닷새가 지난 뒤였다. 지루하게 길어진 여정이라 다들 녹초가 되어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도시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았다. 이렇게 되도록 일정을 조정한 건 이칼롯과 제리온이었지만, 막상 가장 지친 사람도 이 두 사람이었다. 마차 안의 4인조는 잡담을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고, 마부석의 부부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깨알을 쏟아냈다. 반면 둘은 이후 뚜렷한 대화도 없이 닷새나 말을 몰아 스트레스가 적잖이 쌓인 상태였다. 이칼롯이야 내색하지 않았지만, 제리온은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얼굴에 짜증이 묻어났다.

유미르네는 그런 그를 보고 입술로 쪽, 소리를 내며 말했다.


“안녕? 발끈남. 오늘도 좋은 아침.”


“오냐, 이 미친년아.”


시내로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외곽에서 식료품이나 구입하는 게 볼일의 전부였다. 그게 끝난 뒤에는 성곽을 따라 움직이다 바로 가린워드 마을로 떠날 예정이었다. 피로가 쌓인 탓인지 이칼롯과 제리온은 아케니온에 관한 것도, 에레이시아에 관한 것도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다.

류이덴사는 자치구인 만큼 다른 도시처럼 사냥꾼이 활개를 치고 다니진 않았다. 아마도 베른헬트 주교의 입김이 작용한 것임이 분명했다. 때문에 정체를 드러내진 못하더라도 일행은 한결 여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추수기를 맞아 논에는 농부들이 한창 수확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포대 가득 이삭을 쑤셔 넣는 그들을 보며 루도는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그는 농가 이곳저곳을 두드리며 먹을 것을 구입했다. 풍족한 시기라 그런지 사람들은 선선히 그에게 식량을 내주었다. 일쿡의 황량함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식량구매에 할당된 시간은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그동안 루도는 분주하게 움직여 말린 돼지고기와 밀가루, 이스트 등을 사왔다. 마리네는 야채와 스프가루를, 제리온은 닭고기를 잔뜩 들고 왔다. 삼삼오오 사온 식량을 배낭에 구겨 넣으니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빵빵해졌다. 이제 떠날 시간이었다.

루도는 한숨을 쉬며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응?”


안에는 마리네와 유미르네가 손장난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루도까지 합치면 딱 셋이 되는 형국이었다. 그가 말했다.


“공주 어디 갔냐?”


유미르네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아까 제리온 따라가지 않았어?”


제리온에게 묻자 이번에는 엉뚱한 대답이 돌아왔다.


“어? 나 따라오던 건 기억나는데...내가 상대 안 해주니까 토라져서 어디론가 가던데?”


“야 이 한심한 인간아!”


제리온은 졸지에 어린애 하나 간수 못 한 한심한 인간이 되고 말았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주먹을 뿌리치며 그가 말했다.


“아, 잠깐, 썅! 기다려봐. 찾아오면 될 거 아냐?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그게 지금 네가 할 말이냐? 공주님 험한 꼴이라도 당하셨으면 어떻게 하려고...”


“염병, 나보다 더 독한 년인데 험한 꼴은 무슨...내가 딱 짐작 가는 곳이 있다.”


그는 양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는 팔자걸음으로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작태가 너무나 한심스러워서 결국 루도와 유미르네가 그를 따라갔다.

제리온의 짐작 가는 곳이라는 건, 그냥 왔던 길을 되짚어 가는 것뿐이었다. 그는 레미나가 생각만큼 행동반경이 넓은 인간은 아니라, 아마 그 근처에서 노닥거리고 있을 거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셋은 곧 멀지 않은 곳에서 레미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철부지 공주님은 동네 강아지에게 정신이 팔려 말을 걸기도 하고, 머리를 쓰다듬거나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그녀 주변으로는 웬일인지 꼬마아이들이 모여들어 왁자지껄한 모습이었다.


“...애들한테 인기 많네, 공주님.”


“희한하게 생겼잖냐. 야~! 이 년아, 뭐 하고 있어?!”


제리온은 이미 신분의 차이 따위 망각한 채 큰소리로 레미나를 불렀다. 그러자 레미나는 멀리서 손을 흔들며 이리로 오라는 듯한 신호를 보냈다. 세 사람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는 그녀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제리온, 이거 봐! 이 강아지 양쪽 눈동자 색이 달라. 오드아이인가 봐!”


“아, 네. 그럼 이제 돌아갑시다. 이 빌어먹을 년아.”


“에에, 벌써? 아직 한 시간 안 됐잖아.”


“옛 저녁에 지났거든요?”


레미나는 아쉬운지 고개를 떨어뜨리고 연방 강아지 머리를 쓰다듬었다. 한편 새로운 ‘떨거지’들이 나타나자 동네 꼬마들은 꺄르륵 웃으며 일행 주위로 다가왔다. 여자아이들은 레미나의 외모에 취한 듯(?) 머리끄덩이를 붙잡거나, 치맛자락을 만지거나 하며 노는 중이었다.


“하지 마아~. 언니 이제 가봐야 해요.”


한편 남자아이들은 한쪽에 모여 자치기를 하고 있었다. 따악, 하는 소리와 함께 돌멩이 하나가 허공을 날아갔다. 유미르네가 그 광경을 보곤 빙그레 미소 지었다.


“루도, 저거 봐. 옛날 생각나지 않니?”


“오오오~자치기잖아. 내가 저거 지존이었지.”


“꺄하하! 지존은 무슨, 너 10m도 못 날렸잖아.”


이런 말을 듣고 가만히 있으면 사나이가 아니다. 루도는 갑자기 자극을 받아 나무막대 하나를 주워들었다. 그가 돌멩이를 높이 쏘아 올리자, 옆에 선 유미르네도 경쟁적으로 막대기를 휘둘렀다. 따악, 따악. 경쾌한 타격음에 아이들은 신이 나 탄성을 터뜨렸다.


“야, 좀 가자고!”


제리온이 기가 막혀 소리를 질렀지만 별반 효과는 없었다. 그 역시 여자아이들에게 발목이 붙잡힌 상태였다. 꼬마들은 겁도 없이 그에게 목마를 태워달라느니, 먹을 것을 달라느니 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런 유화적인 분위기에 휩쓸려 다시 10여 분이 훌쩍 지나갔다.

공기가 달라진 것은 순찰을 돌던 경비대가 나타나면서부터였다.


“실례합니다! 거기 계신 분들.”


병사가 부르는 소리에 일행은 행동을 멈추고 우뚝 멈춰 섰다. 이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느라 군인이 다가오는데도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제리온이 목마 태우던 아이를 내려주자 그 꼬마는 군인들이 있는 쪽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브란트 아저씨!”


지인인 모양인지 꼬마는 경비대 중 한 병사에게 달려가 안겼다. 브란트라 불린 병사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 지역에서는 허가받은 자 외에는 무기를 소지할 수 없습니다. 실례지만 이 근처에 거주하십니까?”


주위의 시선이 루도의 허리춤에 쏠렸다. 이곳에서 검을 차고 있는 사람은 루도 혼자뿐이었다. 물론 유미르네 역시 무장을 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무기는 망토에 가려 시야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따가운 시선에 루도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제리온이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우리는 텔아단에서 온 여행자입니다. 먹을 게 떨어져서 잠시 구하러 온건데, 뭐 문제 있습니까?”


병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들은 처음부터 그다지 경계하는 기색도 없었다. 아이들과 어울려 놀며 자치기나 하는 사람이 위험하다고는 생각되지 않으니 말이다. 그들은 단지 의례적인 절차에 따르고 있는 것뿐이었다. 병사 하나가 말했다.


“하하, 저희가 실례했군요. 그럼 별문제는 없습니다. 사실 최근에 주변이 뒤숭숭해서 말이죠. 범죄자도 많고, 웬 국가 수배자가 그리도 흔한지. 그래서 말인데, 실례가 안 된다면 도검소지허가증 좀 확인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신분증도 괜찮습니다만.”


그즈음에서 제리온은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비로소 루도가 봉착한 문제를 깨달은 것이다.

루도는 뒤돌아선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치 목에 칼이라도 들어온 사람처럼 그는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게 그대로 느껴졌다.

아-.

아차. 아차! 아앗-차!!

변장을 하지 않고 왔다! 지금 루도의 모습은 현상금수배서에 나온 면상 그대로였다. 모자나 투구조차 쓰지 않고 나온 것이다. 신분증, 신분증은? 물론 있다. 있지마안!

안전불감증이라는 표현도 틀리진 않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레미나가 그의 역할을 대신 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었다. 흑연기사단과 조우한 이후로 레미나는 루도가 맡고 있던 ‘귀족영애 로젤리나’역을 인계받았다. 여자인 그녀가 로젤리나를 연기하는 게 신분을 위장하는 데 있어 훨씬 적합하기 때문이었다.

루도는 이를 즉각 환영했다. 거지 같은 여장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대신 그는 이칼롯처럼 투구를 쓰거나 수염을 붙이거나 하여 신분을 감추기로 했다.

그런데, 잊고 있던 문제가 바로 이 자리에서 드러나고 말았다. 데루루피아가 마련해준 가짜 신분증! 로젤리나의 신분증을 인계했기 때문에 현재 루도에겐 위조된 신분증이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다 쳐도 신분까지 위장할 수는 없었다. 신분증을 제시하지 못하면 절차상 지구대까지 따라가야 할 테고, 그럼 꼼짝없이 정체가 발각되고 말 것이다. 병사들이 요구한 도검소지허가증이나 신분증은 물론, 가지고 있었다. 단지 그곳에 커다란 글자로 ‘루도 클로람’이라고 적혀 있는 게 문제일 뿐.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람의 계승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47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4) +3 15.05.12 891 25 26쪽
246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3) +3 15.05.12 852 23 20쪽
245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2) +5 15.05.11 961 26 21쪽
244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1) +4 15.05.11 949 23 18쪽
243 람의 계승자 - ep.5 - 왕하직속뭐시기(完) +2 15.05.11 1,067 24 20쪽
242 람의 계승자 - ep.5 - 왕하직속뭐시기(2) +1 15.05.11 777 22 21쪽
241 람의 계승자 - ep.5 - 까마귀가 우는 밤(5) +6 15.05.10 747 22 15쪽
240 람의 계승자 - ep.5 - 까마귀가 우는 밤(4) +1 15.05.10 786 22 17쪽
239 람의 계승자 - ep.5 - 까마귀가 우는 밤(3) +2 15.05.10 880 21 17쪽
238 람의 계승자 - ep.5 - 까마귀가 우는 밤(2) +1 15.05.10 768 24 13쪽
237 람의 계승자 - ep.5 - 까마귀가 우는 밤(1) +4 15.05.09 879 24 28쪽
236 람의 계승자 - ep.5 - 왕하직속뭐시기(1) +3 15.05.09 915 23 21쪽
235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7) +2 15.05.09 1,006 24 18쪽
234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6) +5 15.05.08 1,021 28 24쪽
233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5) +2 15.05.08 885 23 24쪽
232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4) +2 15.05.08 901 22 26쪽
231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3) +2 15.05.08 893 24 19쪽
230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2) +2 15.05.08 758 23 24쪽
229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1) +5 15.05.07 770 25 19쪽
228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10) +2 15.05.07 889 23 24쪽
227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9) +1 15.05.07 812 21 24쪽
226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8) +4 15.05.06 731 26 22쪽
225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7) +2 15.05.06 976 24 29쪽
224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6) +3 15.05.06 802 23 28쪽
223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5) +4 15.05.05 929 26 24쪽
222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4) +2 15.05.05 762 23 23쪽
221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3) +1 15.05.05 642 22 15쪽
220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2) +2 15.05.05 770 24 18쪽
219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1) +4 15.05.05 685 23 15쪽
218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4) +2 15.05.05 921 24 23쪽
217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3) +3 15.05.04 935 22 23쪽
216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2) +2 15.05.04 867 22 21쪽
215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1) +1 15.05.04 774 24 20쪽
214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5) +2 15.05.04 709 24 15쪽
213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4) +2 15.05.04 720 25 23쪽
212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3) +3 15.05.03 844 29 18쪽
211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2) +3 15.05.03 763 22 23쪽
210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1) +2 15.05.03 853 23 20쪽
209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7) +5 15.05.03 795 28 25쪽
208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6) +2 15.05.03 894 24 22쪽
207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5) +4 15.05.02 937 29 21쪽
206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4) +1 15.05.02 884 27 20쪽
205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3) +2 15.05.02 689 24 21쪽
204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2) +2 15.05.02 767 24 24쪽
»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1) +2 15.05.02 586 24 22쪽
202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6) +3 15.05.02 695 28 18쪽
201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5) +5 15.04.29 863 24 19쪽
200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4) +1 15.04.29 937 24 26쪽
199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3) +1 15.04.29 789 24 24쪽
198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2) +3 15.04.29 812 26 18쪽
197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1) +1 15.04.29 758 24 17쪽
196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8) +4 15.04.28 904 28 16쪽
195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7) +3 15.04.28 840 25 20쪽
194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6) +3 15.04.27 711 26 19쪽
193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5) +3 15.04.27 756 22 17쪽
192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4) +2 15.04.27 731 22 18쪽
191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3) +1 15.04.27 730 30 18쪽
190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2) +2 15.04.27 758 27 19쪽
189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1) +2 15.04.27 789 31 18쪽
188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完) +1 15.04.27 599 33 18쪽
187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5) +4 15.04.26 733 24 17쪽
186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4) +1 15.04.26 928 28 16쪽
185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3) +2 15.04.26 739 26 20쪽
184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2) +6 15.04.23 779 28 15쪽
183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1) +3 15.04.23 839 26 19쪽
18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2) +2 15.04.23 755 25 17쪽
18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1) +3 15.04.23 767 26 15쪽
180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0) +1 15.04.23 682 25 22쪽
179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9) +3 15.04.22 811 29 16쪽
178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8) +3 15.04.22 846 27 15쪽
177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7) +1 15.04.22 776 29 18쪽
176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6) +1 15.04.22 790 23 18쪽
175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5) +2 15.04.22 765 29 15쪽
174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4) +3 15.04.22 911 25 18쪽
173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3) +5 15.04.21 767 27 16쪽
17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2) +2 15.04.21 922 25 14쪽
17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 +3 15.04.21 805 25 17쪽
170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8) +3 15.04.21 729 24 21쪽
169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7) +2 15.04.21 703 19 15쪽
168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6) +4 15.04.20 750 24 18쪽
167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5) +2 15.04.20 655 20 18쪽
166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4) +1 15.04.20 767 23 17쪽
165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3) +2 15.04.20 738 24 16쪽
164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2) +3 15.04.20 809 20 16쪽
163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1) +1 15.04.20 821 22 21쪽
162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6) +1 15.04.20 830 29 14쪽
161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5) +2 15.04.20 711 25 18쪽
160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4) +3 15.04.19 865 28 18쪽
159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3) +3 15.04.19 946 28 18쪽
158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2) +3 15.04.19 901 26 22쪽
157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1) +5 15.04.19 1,210 46 22쪽
156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10) +6 15.04.18 901 26 21쪽
155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9) +3 15.04.18 772 26 18쪽
154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8) +1 15.04.18 656 24 19쪽
153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7) +2 15.04.18 686 26 18쪽
152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6) +1 15.04.18 748 27 17쪽
151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5) +4 15.04.18 713 23 16쪽
150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4) +1 15.04.18 668 24 17쪽
149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3) +2 15.04.18 754 22 17쪽
148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2) +3 15.04.16 849 29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