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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3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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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844,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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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02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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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글자
20쪽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4)

DUMMY

퍼엉. 날아간 불덩이는 작은 폭발을 일으키며 사냥꾼 하나를 날려버렸다. 마이너 미티어에 맞은 사냥꾼은 발리스타에라도 맞은 것처럼 5미터 정도를 날아가 땅바닥에 고꾸라졌다. 파이어볼만큼은 아닐지라도, 사람 두세 명은 너끈히 골로 보낼 수 있는 위력이었다.

그게 한 방의 위력이다. 사냥꾼들은 질린 얼굴로 숯덩이가 된 동료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제리온의 손 위에는 아직 열한 개의 불이 남아 있었다.


“으랴아아아!”


사정 봐 줄 생각도, 또 그럴 여유도 없었다. 제리온은 양손을 앞으로 뻗은 채 미친 듯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때마다 불덩어리는 화염의 창이 되어 눈앞의 적을 강타했다. 무기로 막아본들 소용없었다. 가까스로 충격을 흡수해도 그다음에 번지는 불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두두두두...연발로 날아간 불덩어리는 피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사냥꾼 열 명을 땅바닥에 패대기쳤다. 제리온의 분투 덕에 마차는 아무런 제지 없이 갈림길을 통과했다. 오히려 디리터는 사냥꾼이 아니라 마법으로 패인 땅을 피하는 데에 온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일행이 선택한 방향은 당연히 남쪽 루트였다. 서쪽 루트는 제스터가 막아놓았고, 북쪽 루트는 수도와 너무 멀어지기 때문이었다. 멀리서 다시금 화살이 날아왔지만 이 역시 깃털에 의해 차단되었다. 그야말로 공격과 수비의 완벽한 조화. 루도는 마차를 맴도는 깃털을 경탄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게 떠있는 한은 어떠한 외부충격에도 끄떡없었다.


“쫓아온다. 이칼롯, 뒤!”


루도가 마차 지붕 위에서 소리쳤다. 한 차례 우선권을 빼앗겼는데도 게네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당장 남은 인원을 추려 일행을 뒤쫓기 시작했다. 사냥꾼 역시 아직 삼십여 명의 병력이 남아 있었다.

비교적 경무장이고 거치적거리는 것도 없는지라 사냥꾼들은 순식간에 마차 뒤로 따라붙었다. 반면 일행은 마차를 끄는 말이 넷에서 셋으로 줄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속력이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디리터는 마차를 모느라, 제리온은 시야가 제한돼 제대로 된 대응을 하기가 어려웠다. 마리네는 마차 안에서 레미나와 에레이시아를 보호하고 있었다.

결국 사전차단이 가능한 것은 말을 타고 있는 이칼롯과 유미르네, 그리고 마차 지붕에 있는 루도 셋뿐이었다. 루도는 다리를 마차 모서리에 걸쳐 균형을 잡고 검을 뽑아들었다. 그는 뒤돌아 앉은 채 추격해오는 적을 관찰했다.


“이칼롯! 왼쪽 뒤 조심해!”


이칼롯이 그 말을 듣고 주저 없이 뒤로 검을 휘둘렀다. 마침 다가오던 사냥꾼 하나가 황급히 무기를 들어 이를 막았다. 채앵, 하는 경합음과 함께 그 남자는 뒤로 멀어졌다.

사냥꾼들은 어떻게든 마차 측면으로 붙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그때마다 이칼롯과 유미르네에 의해 번번이 가로막혔다. 얼핏 보면 쫓기는 쪽이 압도적으로 불리한 구도였지만, 루도의 절묘한 충고와 이칼롯, 유미르네의 훌륭한 마상전투에 힘입어 지루한 교전이 계속됐다. 그사이 사냥꾼 서너 명이 이칼롯의 검에 맞아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적의 추격을 막으며 고갯길을 넘었을 때, 루도는 사냥꾼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다. 그 중심에는 게네스가 있었다.


“서른 명이 전부 꼬랑지에 붙어 있으면 어쩌자는 거야? 아케니온은 나를 따라와라! 우회해서 로샤단의 측면을 친다!”


그의 명령에 아케니온 멤버 십여 명이 후방으로 빠졌다.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대열을 짜 도로 외곽에 난 작은 포장길로 들어갔다. 길은 사람 두 명이 간신히 설 수 있을 정도로 폭이 좁아 마차가 들어가기에는 턱도 없었다. 게네스는 이 길을 전력으로 달려 측면을 급습하거나, 아니면 미리 도로를 틀어막고 기다릴 생각이었다.


“어? 아케니온 갓길로 빠지는데? 저 자식들!”


루도가 다급한 목소리로 상황을 전했다. 이칼롯은 게네스의 의도가 무엇인지 단박에 알아차렸으나, 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아케니온이 빠졌다고 해도 여전히 사냥꾼 이십여 명이 꼬리에 붙은 상태라 놈들을 차단할 여력이 없었다.

그때 유미르네가 돌연 기수를 돌렸다. 그녀는 이칼롯과 눈을 한 번 마주치고는 그대로 아케니온을 향해 돌격했다.


“저쪽은 내가 맡을게요.”


“잠깐, 유미르네!”


이칼롯이 막으려 했지만 그녀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루도는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저 정신 나간 계집애가!”


그사이 나머지 적들이 일제히 이칼롯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마차를 보호하던 마법깃털도 산발적으로 날아오던 화살을 막느라 전부 사라지고 말았다. 사냥꾼들은 숫자로 밀어붙이며 빠르게 압박해 들어왔다.

다급한 위기의 상황에서, 마리네가 돌연 창문을 열며 말했다.


“루도! 공주님이 적과의 거리가 어느 정도냐고 묻는데?”


“어, 어? 20...아니 10m!"


몇 초 후 마차 안에서 레미나의 마법이 터졌다.


“디그(Dig)!"


순간 마차 후방의 땅이 2m깊이는 될 정도로 움푹 패였다. 마치 집채만 한 삽으로 흙을 푸욱 떠낸 것과 같은 형상이었다. 갑자기 생긴 구덩이에 사냥꾼들은 황급히 말을 세웠으나 관성까지 없앨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으어어?!”


“멈춰, 멈춰! 꾸엑!”


앞서오던 사냥꾼 몇몇이 속력을 이기지 못하고 구덩이 속으로 떨어졌다. 간신히 말을 멈췄으나 뒤따라오던 동료와 부딪혀 튕겨 나간 이도 있었다. 사냥꾼들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그 구덩이를 바라보았다. 감히 건너뛰어 추격을 계속 하자고 외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우와...”


루도는 멀어져가는 사냥꾼을 보며 탄성을 내질렀다. 레미나의 마법 한 방에 적의 추격이 완벽히 멈춘 것이다. 정말 보면 볼수록 마법사란 직업에 경외감이 들었다. 그가 말했다.


“멈췄어. 계속 따라올 거 같진 않은데?”


“좋아. 이대로 안전지대까지 움직인다.”


“어...유미르네는?”


“안전지역을 확보하는 게 먼저다. 아까부터 제랄드가 보이지 않아. 녀석이 아무 계획 없이 자리를 비우고 있진 않을 거야.”


루도는 무언가 반박하려 했으나 그 무언가가 입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자못 잔인해 보이는 이칼롯의 판단은, 그러나 현 상황에서 볼 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유미르네가 걱정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를 도우려고 이제 와서 기수를 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냉정히 생각하면 독단으로 아케니온을 따라간 건 오히려 유미르네였다. 여기서는 일단 그녀가 자신이 있으니 그런 판단을 내린 것이라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칼롯이 말했다.


“루도, 너는 계속 뒤쪽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어. 나는 먼저 가서 함정이 없는지 알아볼 테니까.


“아, 알았어.”


루도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칼롯의 판단은 완벽했고, 자신도 그걸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미르네의 신변이 걱정되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이칼롯의 냉철한 선택, 유미르네의 독단적인 움직임. 왠지 불협화음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앞서 나가는 이칼롯을 슬쩍 응시하고 나서, 루도는 다시금 후방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마차바퀴가 자갈을 밟고 지나갈 때마다 상체가 크게 흔들렸다. 조금만 균형을 잃었다간 그대로 굴러떨어질 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몇 분을 더 달렸을까. 마차는 능선을 지나 다소 높은 지대를 달리기 시작했다. 촘촘히 수놓아진 활엽수림 너머로 류이덴사의 성곽이 시야에 들어왔다. 사냥꾼들은 추격의지를 상실했는지 더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리고 유미르네도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취해 잠시 마음을 놓고 있을 때였다. 목에 무언가가 씌는 느낌이 나 루도는 퍼뜩 일어났다. 그게 올가미라는 걸 알았을 때, 이미 그의 몸은 허공에 붕 떠 있었다.


“커억....!!”


숨이 턱 막히고 눈앞이 깜깜해졌다. 아마 목매달아 죽는 시체의 기분이 이와 비슷할 것이다. 몸이 공중에서 뱅그르르 도는 가운데 루도는 일행을 태운 마차가 순식간에 멀어져가는 걸 볼 수 있었다. 돌아오려는 기색은 전혀 없다. 다들 마차 안에 있거나 마부석에 앉아 있기 때문에 루도가 떨어진 것을 전혀 알아채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땅바닥에 고꾸라지는 그 몇 초간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이 올가미는 무엇이지? 유미르네는 무사할까? 마차, 일단 마차를 세워야 하는데.

그러나 목이 졸린 탓인지 목소리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낙법을 쓸 틈도 없이 루도는 땅에 대자로 떨어졌다. 쿠웅, 하는 둔탁한 소리가 귓가에 생생히 들려왔다. 그게 자신이 떨어지는 소리였다는 걸 깨닫자 기가 막혀 웃음만 나왔다. 차라리 기절했으면 좋으련만, 이놈의 의식은 어째 더욱더 또렷해져만 갔다. 덕분에 그는 온몸이 바스러지는 고통에 이를 악물어야 했다.


“좋아. 작전성공이군. 이렇게까지 잘될 줄은 몰랐는데.”


“크...우욱....”


성큼성큼 다가오는 제랄드를 보며 루도는 몸을 비틀었다. 검을 뽑아야지, 뽑아야지 하고 온몸으로 외쳤으나 아직도 몸은 낙하할 때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제랄드는 그런 그를 보며 피식 실소했다.


“다시 만나서 반갑다, 루도 클로람. 짜릿한 재회지?”


“너어...이 새애끼...”


“방금 그건 얼마 전 발길질의 대가라고 생각해. 그거 꽤 아팠거든.”


루도는 꼼짝할 수도 없었다. 몸의 감각을 되찾을 틈도 없이 숲에서 튀어나온 사내들이 순식간에 그의 사지를 봉쇄한 것이다. 루도는 고통을 억누르며 그들의 얼굴을 차례차례 살폈다. 낯익은 얼굴도 있고, 처음 보는 상판도 있다. 어느 쪽이든 아케니온에 속한 녀석들이겠지만, 그네들 사이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남자가 한명 있었다.

그 우람한 체구와 은백색 플레이트 메일, 그리고 스파이어드 헬름. 얼굴은 투구에 가린 채지만 그 실루엣과 압도적인 존재감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안개송곳니의 제폰. 루도는 순간 쫙 소름이 돋아 신음하는 것도 잊고 숨을 죽였다. 제폰의 검에서는 시뻘건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피를 머금을수록 예리함이 극대화되는 마법검, 크림슨 블레이드.

제랄드가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내게 감사하라고. 원래는 제폰님의 블러디로어(Bloody Roar)로 마차째로 동강 낼 생각이었거든.”


“으, 큭...씨발놈이..!”


“네 동료들은 네가 떨어진 줄도 모르는 모양이군. 뭐, 그게 잘 된 거야. 어쭙잖게 돌아왔다간 겨우 건진 목숨이 날아갈 테니까.”


이번에는 제대로 당했다. 함정이 있을 거라고 어렴풋이 예상하긴 했지만, 만약 그렇다면 당연히 마차를 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땅을 파 말뚝을 세워놓거나, 아니면 단순하게 도로를 점거한 채 기다리고 있거나. 그렇기에 이칼롯이 함정을 체크하려고 앞서 달려나간 것이다. 그러나 제랄드, 이 교활한 사내는 이칼롯이 바로 옆을 지나가는 순간에도 덤불 속에 숨을 죽인 채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신의 아이, 루도를 포획하기 위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통증이 가라앉았지만 루도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양팔은 손가락하나 움직이지 못하게 결박당하고 그 위를 한 남자가 발로 짓눌렀다. 다리는 남자 둘이 각각 하나씩을 맡아 붙들고 있었다. 이런 상태라면 당장 목에 칼이 들어와도 막을 방법이 없었다.

루도는 관자놀이에 힘을 주며 말했다.


“씨발 새끼. 죽이려면 빨리 죽여!”


“오우, 안 되지. 그럼 이렇게 생고생을 한 이유가 없잖아. 이제부터가 재미있는 건데.”


“뭐 이 새끼야?”


제랄드는 그의 욕설 따위 가볍게 흘리고는 품에서 나이프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 서슬 퍼런 날을 보며 루도는 이제 죽는구나, 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나 제랄드는 목을 찌르는 대신, 루도의 발목을 붙잡고 아킬레스건을 차례대로 끊었다.


“으..끄아악...?!”


“자, 이제 다리도 못 쓰겠다, 여기서 자력으로 탈출하기란 불가능해졌군. 궁금한가? 루도 클로람. 어째서 네가 널 죽이지 않는 건지.”


“으..으으...”


“나도 주워들은 게 꽤 많은 편이거든. 신의 아이가 무엇인지, 그게 각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각’과 ‘충격’! 자각은 이미 했을 테니, 남은 건 충격이로군. 사람을 변화시킬 정도의 충격이라...역시 고문만 한 것이 없지.”


제랄드는 이를 드러내 보이며 웃었다. 그 잔인한 미소를 보고 있자니 치가 떨려왔다. 발목의 통증을 느낄 틈도 없이 복부에 칼이 들어왔다. 그러나 급소를 노린 게 아닌, 장기를 피해 2cm가량 찌른 것뿐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루도가 느끼는 고통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끄아아아?! 너 이 새끼, 설마...”


제랄드는 나이프를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밀어 넣으며 말했다.


“맞아. 루도 클로람, 너는 여기서 각성해줘야겠어. 네가 펠아람의 저주라면 그건 그거대로 괜찮아. 나는 달아날 테고, 너는 이곳에 남아 리크나이츠를 쑥대밭으로 만들겠지. 그리고 만약 펠아람의 저주가 아니라면...”


상처를 비집고 피가 폭포수처럼 흘러나왔다. 그러나 제랄드는 지혈은커녕 나이프를 세로로 비틀어 강제로 상처를 헤집었다. 그때마다 루도는 숨넘어가는 비명을 질렀다. 그의 도를 넘어선 잔인함에 곁에 있던 아케니온 단원들도 침을 꿀꺽 삼켰다. 제폰은 검을 늘어뜨린 채 잠자코 루도를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제랄드가 말했다.


“그거 또한 나쁘지 않지. 그럼 그만큼 로시느가 ‘저주’일 확률이 높아질 테니까. 킥킥킥, 자, 루도! 부디 숨이 끊기기 전에 각성해다오. 사람의 목숨은 그리 질긴 편이 아니니까.”


-----------------------


유미르네는 아케니온의 측면을 향해 달려갔다. 이미 그쪽에서도 그녀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있었기에 산발적으로 화살이며 단검이 날아왔다. 이를 가볍게 쳐내며 그녀는 빠른 속도로 말을 몰았다.


“게네스! 저 여자가 계속 따라오는데.”


“대충 처리해. 로샤단을 잡는 게 먼저다!”


게네스는 처음에는 그녀를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여자가, 그것도 단신으로 공격해봤자 얼마나 먹히겠냐고 생각한 것이다. 대충 창을 휘두르면 힘에 못 이겨 말에서 굴러떨어질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유미르네는 적의 공격을 받아낼 생각 따위 처음부터 없었다. 아케니온과의 거리가 대충 3미터 정도로 좁혀지자, 그녀는 등자를 밟고 힘껏 도약했다. 수평이 아닌 수직으로 떨어지는 갑작스러운 공격에 아케니온은 반응하지 못했다. 유미르네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남자의 목을 찌름과 동시에 발길질을 해 시체를 말에서 떨어뜨렸다. 죽은 남자의 말을 점거하자 그녀는 아케니온의 정중앙에서 말을 모는 형태가 되었다. 그건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억?!”


“크아앗!”


일쿡에서 보여준 원무(元舞)가 다시금 선보여지는 순간이었다. 그녀를 중심으로 말을 몰던 세 명의 남자가 옆구리와 목덜미 등을 찔리고는 맥없이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뒤따라오던 사내가 거칠게 창을 휘둘렀으나 그녀는 다시 폴짝 뛰어 그 남자의 뒷자리에 착지했다. 또 한 명이 말에서 떨어졌다.


“어, 어?”


“게...게네스!”


너무나도 변칙적인 움직임이었다. 가뜩이나 마상전투의 경험도 부족한데, 유미르네의 이러한 변화무쌍한 공격에 대응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단 몇 초 만에 다섯 명이 쓰러지자 게네스는 황급히 말의 속력을 줄였다.


“멈춰! 말을 멈춰라! 말에서 내린 다음에 상대해!”


아케니온은 그의 명령에 따라 고삐를 당겨 말을 정지시켰다. 이 와중에 또 한 명이 유미르네의 에스터크에 목을 뚫렸다. 유미르네는 상대를 따라 곧바로 말을 멈춰 세웠다.

아케니온은 게네스의 지시에 따라 재빨리 진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물론 진형이라 해도 태반이 죽어 다섯 명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래도 말 위에서 싸우는 것보다는 훨씬 안정감이 있었다. 게네스가 말했다.


“넌...누구지? 못 보던 얼굴인데, 어째서 범죄자들을 돕고 있는 거냐?”


그 고압적이고 투박한 어조에 유미르네는 키득,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에스터크와 숏소드를 X자 모양으로 교차시켜 땅에 꽂았다. 두 검에서 흘러내린 피가 교합지점에서 만나 방울져 떨어졌다. 그녀는 살짝 고개를 숙인 채 게네스를 올려다보았다. 워낙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게네스의 입장에서는 그녀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그늘진 가운데에서도 자신을 노려보는 형형한 눈동자와, 새하얗게 드러난 송곳니만큼은 머릿속에 똑똑히 각인되었다. 마치 어둠 속에서 살쾡이 하나가 자신을 응시하는 것만 같았다.

그녀가 말했다.


“나는 까마귀. 당신들을 죽이러 왔지, 아케니온. 당신은 게네스고. 킥킥킥.”


“? 내 이름을 아는 건가.”


“오호호, 알다마다. 당신들 얼굴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제랄드...제랄드는 어디 있지? 당신 같은 찌끄레기를 죽여 봤자 성이 차지 않는데.”


대화는 거기서 끝이었다. 남아 있던 다섯 명 전원이 그녀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정면에는 게네스가, 좌측과 우측에서는 각각 두 명씩 들어오는 절묘한 협동공격이었다.

그러나 유미르네는 달아나기는커녕, 세 갈래에서 쇄도해오는 적들을 보며 살짝 윗입술을 핥았다. 그리고나서 그녀는 에스터크와 숏소드를 동시에 뽑아들었다.

카카카칵. 게네스는 순간 희어 멀건한 게 자신의 목을 향해 날아오는 걸 깨닫고는 황급히 쇼텔을 들어 막았다. 뒤이어 날아온 은빛 섬광에 그는 반격할 기회조차 잡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태세를 가다듬은 뒤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히 공격한 쪽은 자신들이었을 텐데, 어째서 그녀는 멀쩡히 서 있는 거지? 그리고 어째서 우리 편 두 명이 목을 부여잡고 쓰러져있는 거지?

다른 이들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긴 마찬가지였다. 기세 좋게 공격하다가 역습에 밀려 뒷걸음질 쳤다. 1:1상황이라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5:1이었는데! 동시에 다섯 명에게 공격을 가했다고? 그리고 그 중 둘에겐 치명타를 날렸다고?!

게네스는 유미르네의 발치의 땅이 원형으로 아주 얇게 패여 있는 걸 깨달았다. 그녀가 원무(元舞)를 출 때 망토 끝자락에 흙이 쓸린 것이다. 잔속임수가 아니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다섯 명을 동시에 상대할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그 신기에 가까운 솜씨에 다른 두 명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 다섯 명이 공격해, 다섯 명 전부 가로막혔다. 마치 고속으로 회전하는 바퀴에 검을 집어넣었다가, 원심력에 의해 튕겨나온 것만 같았다.

한편 게네스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표정관리를 했다. 그러나 그또한 머릿속에서는 이미 패배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이 여자......말도 안 되게 빠르다.’


이런 곳에서 발목이 묶일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마땅한 작전이 떠오르지 않았다. 무엇보다 상대는 그런 시간을 줄 만큼 느긋한 성격이 아니었다.


“컥!”


상대가 주춤거리자 유미르네는 곧장 공세로 전환했다. 그녀는 어깨에 힘을 빼는가 싶더니 돌연 도약해 좌측에 있는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그녀는 그의 엉거주춤한 공격을 가볍게 흘리고는, 차례대로 배꼽과 명치, 심장을 찔렀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숏소드로 이미 절명한 남자의 목을 가볍게 날려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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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10) +2 15.05.07 889 23 24쪽
227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9) +1 15.05.07 812 21 24쪽
226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8) +4 15.05.06 731 26 22쪽
225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7) +2 15.05.06 976 24 29쪽
224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6) +3 15.05.06 802 23 28쪽
223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5) +4 15.05.05 929 26 24쪽
222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4) +2 15.05.05 762 23 23쪽
221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3) +1 15.05.05 642 22 15쪽
220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2) +2 15.05.05 770 24 18쪽
219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1) +4 15.05.05 685 23 15쪽
218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4) +2 15.05.05 921 24 23쪽
217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3) +3 15.05.04 935 22 23쪽
216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2) +2 15.05.04 866 22 21쪽
215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1) +1 15.05.04 774 24 20쪽
214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5) +2 15.05.04 709 24 15쪽
213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4) +2 15.05.04 720 25 23쪽
212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3) +3 15.05.03 844 29 18쪽
211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2) +3 15.05.03 763 22 23쪽
210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1) +2 15.05.03 853 23 20쪽
209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7) +5 15.05.03 795 28 25쪽
208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6) +2 15.05.03 894 24 22쪽
207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5) +4 15.05.02 937 29 21쪽
»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4) +1 15.05.02 884 27 20쪽
205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3) +2 15.05.02 689 24 21쪽
204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2) +2 15.05.02 766 24 24쪽
203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1) +2 15.05.02 585 24 22쪽
202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6) +3 15.05.02 695 28 18쪽
201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5) +5 15.04.29 863 24 19쪽
200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4) +1 15.04.29 937 24 26쪽
199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3) +1 15.04.29 789 24 24쪽
198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2) +3 15.04.29 812 26 18쪽
197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1) +1 15.04.29 758 24 17쪽
196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8) +4 15.04.28 904 28 16쪽
195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7) +3 15.04.28 839 25 20쪽
194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6) +3 15.04.27 711 26 19쪽
193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5) +3 15.04.27 756 22 17쪽
192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4) +2 15.04.27 730 22 18쪽
191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3) +1 15.04.27 730 30 18쪽
190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2) +2 15.04.27 757 27 19쪽
189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1) +2 15.04.27 789 31 18쪽
188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完) +1 15.04.27 598 33 18쪽
187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5) +4 15.04.26 733 24 17쪽
186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4) +1 15.04.26 928 28 16쪽
185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3) +2 15.04.26 739 26 20쪽
184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2) +6 15.04.23 779 28 15쪽
183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1) +3 15.04.23 839 26 19쪽
18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2) +2 15.04.23 755 25 17쪽
18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1) +3 15.04.23 767 26 15쪽
180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0) +1 15.04.23 682 25 22쪽
179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9) +3 15.04.22 811 29 16쪽
178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8) +3 15.04.22 846 27 15쪽
177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7) +1 15.04.22 776 29 18쪽
176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6) +1 15.04.22 790 23 18쪽
175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5) +2 15.04.22 764 29 15쪽
174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4) +3 15.04.22 911 25 18쪽
173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3) +5 15.04.21 767 27 16쪽
17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2) +2 15.04.21 921 25 14쪽
17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 +3 15.04.21 805 25 17쪽
170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8) +3 15.04.21 729 24 21쪽
169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7) +2 15.04.21 702 19 15쪽
168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6) +4 15.04.20 750 24 18쪽
167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5) +2 15.04.20 655 20 18쪽
166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4) +1 15.04.20 767 23 17쪽
165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3) +2 15.04.20 738 24 16쪽
164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2) +3 15.04.20 809 20 16쪽
163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1) +1 15.04.20 821 22 21쪽
162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6) +1 15.04.20 829 29 14쪽
161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5) +2 15.04.20 711 25 18쪽
160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4) +3 15.04.19 865 28 18쪽
159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3) +3 15.04.19 946 28 18쪽
158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2) +3 15.04.19 901 26 22쪽
157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1) +5 15.04.19 1,210 46 22쪽
156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10) +6 15.04.18 901 26 21쪽
155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9) +3 15.04.18 772 26 18쪽
154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8) +1 15.04.18 656 24 19쪽
153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7) +2 15.04.18 686 26 18쪽
152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6) +1 15.04.18 748 27 17쪽
151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5) +4 15.04.18 712 23 16쪽
150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4) +1 15.04.18 668 24 17쪽
149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3) +2 15.04.18 753 22 17쪽
148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2) +3 15.04.16 848 2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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