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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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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22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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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7)

DUMMY

듣는 그녀의 낯빛이 대번에 어두워졌다. 가능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신의 아이와 관련된 일은 언제나 그녀의 머리를 아프게 했다. 비록 그것이 선의로 이루어진 것일지라도.


“그 아이가 그런 부탁을 했느냐?”


“그녀가 각성한지도 벌써 3년이 되어가는군요. 그 조그맣던 나라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클라리스 공주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저 또한 그렇고요. 그렇기 때문에...그녀의 소원을 이루어주고 싶습니다.”


“숙주와 대화하고 싶다? 기이하구나. 생명체라면 어떻게든 육체의 소유권을 빼앗으려 하는 게 본능이거늘.”


“공주는 숙주인 그녀...이름이 같으니 뭐라 불러야 할지 난감하군요. 어쨌든 그녀가 죽지 않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저 각성하기 전의 자신처럼 깊은 잠에 빠져있을 뿐이라고요. 저도 참 이해가 안 가는 일이지만...공주는 그녀를 마치 부모처럼 여기고 있더군요. 그래서 죽기 전에 꼭 한 번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고...”


케리아돌은 클라리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미 각성이 이루어진 이상 신의 아이가 숙주를 신경 써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아니, 생물이라면 육체의 소유권을 위해서라도 철저히 말살해야 하는 게 맞다. 그런데 그녀는 어떠한가.

오랫동안 인간을 관찰하며 그녀는 그들 종족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와보니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었다. 아니, 어쩌면 신을 이해하지 못한 걸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면 둘 다이거나.

짧은 번민이 있고 나서 케리아돌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베릴의 아이가 원하는 일이라면, 존중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숙주와 신의 아이라...이를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로 나눈다면 단순한 전환이 아니라 양자의 공존을 추구해야겠구나. 이것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닐 게다. 하물며 피드백이 큰 정신계라면 위험부담도 보통이 아닐 터.”


다소 어두운 전망이었지만 나타니엘은 활짝 웃었다. 그에게 확률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오, 상냥한 케리아돌! 불가능하다곤 말하지 않으시는군요. 그거면 충분합니다.”


완전히 텐션이 올라간 그는 직접 작곡한 찬가를 부르며 케리아돌의 손목에 매달렸다. 일행은 그녀가 나타니엘을 일격에 날려버릴 것으로 예상했으나, 의외로 그녀는 인상만 찡그릴 뿐 그의 스킨십을 다 받아주고 있었다. 이런 일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보니 그녀도 그냥 포기해버린 것이었다.

그러다 그녀는 문득 생각난 듯 나타니엘의 목을 움켜쥐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그대가 하야하면 새 단장은 누가 되는 게지? 혹시 메디치를 재임용할 생각인가?”


너무나 익숙한 이름이 나왔지만 일행은 가볍게 무시했다. 세상에 동명이인도 있는 법이고, 일단 그는 생텀가드가 아닌가. 나타니엘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둘이 지칭하는 인물은 ‘메디치’라는 매우 저명한 마법사인 듯했다.


“설마요. 그 녀석은 이미 작년에 옷을 벗었는걸요. 차기 단장은 그람 번더크라는 녀석이 될 겁니다. 젊지만 아주 유능한 마법사죠.”


다시 화면이 바뀌고 이제는 어느 건물의 회랑을 비추고 있었다. 현재와 많이 다르긴 해도 그 디자인이라든지 전체적인 구조는 제리온도 익히 아는 곳이었다.


“어? 라키시아 궁전이잖아.”


그곳에서 케리아돌과 나타니엘은 멋진 정장 로브(Robe)를 입고 걸어가고 있었다. 목적지는 클라리스 공주의 거처로, 새 단장이 될 그람을 그녀에게 소개할 계획이었다. 나타니엘이 물러나면 앞으로는 그람이 그녀를 보필해야 할 테니 말이다. 회랑을 돌자 복도 가장자리에 서 있던 두 청년이 그들을 마중했다. 둘 다 로브를 입고 있어 마법사임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으나, 생김새나 풍기는 분위기는 극히 대조되었다.

한 명은 차라리 검을 쥐는 게 나았을 정도로 당당한 풍체에 용모도 단정하고 움직임 하나하나에 자신감이 있었다. 이제 막 이십 대 후반이 되었을까? 그는 허리를 꼿꼿이 편 채 온몸으로 젊음을 발산하고 있었다. 반면 그 뒤에 선 남자는 체구도 왜소하고 어깨도 불쌍할 정도로 축 늘어져 있었다. 신경 쓰지 않는다면 존재감마저 흐릿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작은 눈에 죽 찢어진 입을 한, 추남은 아니어도 그렇다고 호감 가는 용모도 아닌 그런 평범한 남자였다.

앞에 선 청년은 걸어오는 두 사람을 보곤 깍듯이 허리를 굽혔다.


“오셨습니까, 단장님.”


“오냐. 뭘 일찍부터 기다리고 있냐. 시간 아깝게.”


“하하. 부하가 상관을 기다리는 게 당연지사지요. 헌데 그쪽 분은?”


청년은 옆에 선 케리아돌에게 흘깃 눈길을 보냈다. 굳이 언급 안 해도 나타니엘이 소개해주긴 했을 터지만, 그녀에게서 풍기는 고고한 분위기가 자못 신경이 쓰인 것이었다. 나타니엘은 입을 헤벌쭉 벌리며 말했다.


“아, 소개하지. 카나님이시다. 마법협회 명예회장직을 맡고 계시지. 앞으로 만날 일이 종종 있을 게다. 카나님, 이쪽이 말씀드린 그람입니다.”


먼 산만 쳐다보고 있던 그녀는 나타니엘의 소개에 그람을 슬쩍 내려다보았다. 둘 다 워낙 키가 큰지라 대면하고 보니 마법사 대 마법사라기보다는 기사와 귀부인이 마주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특히 그람의 말끔한 용모는 일행이 실제 접했던 해골과는 너무나 대조되는 것이었다.


“옛날에는 멀쩡하게 생겼었네.”


케리아돌이 말했다.


“그대가 그람인가? 얘기는 들었다. 차기 단장이 될 자라지?”


“그람 번더크라고 합니다. 앞으로 많은 지도 부탁드립니다, 아름다운 레이디.”


“흥, 겉은 번지르르하구나.”


자연스럽게 손등에 입을 맞추는 그를 보며 케리아돌은 코웃음을 쳤다. 그녀는 이내 그람 뒤에 선 왜소한 남자에게 눈길을 건넸다.


“저 자는?”


남자는 자신이 지목되자 화들짝 놀라 몸을 떨었다.


“저...저 말씀이십니까. 소인은 그 그...”


그가 불쌍할 정도로 말을 더듬었기 때문에 그람이 대신 소개를 해주었다. 남이 자신의 얘기를 하는데도 그 남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뒤로 물러났다. 그것만으로도 그의 소심하고 유약한 성격을 내리 짐작할 수 있었다.


“마법친위대 단원입니다. 지금은 제 밑에서 일하고 있지요. 안다바리엘 뷘더입니다.”


“자...자...잘 부탁드립니다!”


남자는 연방 굽실거렸다. 마법사라기보다는 차라리 하인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어울릴 정도였다. 케리아돌은 그의 소심한 면모에 혀를 찼고, 이후 다시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일행의 반응은 달랐다. 그 허약하고 의기소침해있는 남자의 이름이 너무도 익숙하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안다바리엘?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안개송곳니의 마법사다. 알룬도가 조심하라고 했던 기억이 나는데.”


“익..? 하지만 이건 500년 전의 기억이잖아. 사람이 그렇게 오래 살 수 있나?”


“왜 못하겠냐. 그람도 버젓이 돌아다니는데.”


“아..그럼 저 사람도 리치가 된 거구나.”


이단자 나타니엘과 리치로 부활한 그람, 그리고 안다바리엘까지. 루도는 레인스터에서 그람과 안다바리엘이 격돌했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 그람은 안다바리엘을 향해 쉴 새 없이 불덩이를 날렸고, 그 또한 기이한 안개로 응수했었다. 그 경위가 무엇이든지, 그때 두 사람에게서 서로에 대한 친밀감이나 존경심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한때 같은 길을 걸었던 동문이 죽음을 초월하면서까지 대립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나타니엘은 두 젊은 마법사를 궁전 별채로 데려갔다. 햇살이 쏟아지는 별채 정원에는 한 젊은 여인이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태양의 그것만큼이나 황금색으로 빛나는 머릿결, 보석을 박아 넣은 듯한 파란 눈동자, 하얗디하얀 피부. 다들 내색하진 않았지만 그 여인의 자태는 일행이 아는 누군가와 쏙 빼닮아 있었다.


‘레미나 공주?’


햇살이 정원을 감싸 안은 탓일까, 그녀에게선 기이한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그람과 안다바리엘은 그 신비한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에게서 결코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둘은 알 수 없는 힘에 다리가 풀려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나타니엘이 그런 둘을 보며 히죽 웃었다.


“앞으로 너희들이 보좌하게 될 것이야. 이름은 들어봤겠지? 베릴의 아이, 클라리스 공주님이시다.”


그것이 그람과 클라리스의 첫 만남이었다.


다시 공간이 일그러졌다. 이번에도 장소는 라키시아 궁전이었지만, 대화의 분위기는 좀 전과 극히 대조적이었다. 다시 나타난 나타니엘의 모습은 몰라보게 초췌했으며, 며칠 밤을 새운 듯 눈가는 퀭하게 들어간 상태였다. 그러나 케리아돌은 그의 상태는 안중에도 없는지 거칠게 멱살을 붙잡았다.


“네놈...분명 알고 있었지?”


케리아돌은 어찌나 진노했는지 목에 핏대가 서고 미간은 엉망진창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아무리 인간의 모습이라 할지라도, 그녀가 보여준 노기는 일행을 움츠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정작 나타니엘은 별 반응이 없었다. 멱살이 잡힌 상황인데도 그는 반항조차 하지 않았다.


“무엇을 말인지요.”


“나를 기만하려는 게냐? 이번 브리토리스 원정 말이다! 귀족원 녀석들, 신의 아이를 죽이려는 속셈이 아니냐!”


“...그것 말씀입니까? 물론 알고 있었지요. 허나 지금 제게 해코지를 하는 건 별로 생산적이지 않은 행동인데요. 저는 이미 공직을 떠난 몸입니다.”


“....!”


콰앙. 그녀는 나타니엘을 집어 그대로 벽에 패대기쳤다. 벽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보통사람이면 거기서 즉사했을 테지만, 나타니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먼지를 털며 일어났다. 미리 마법으로 충격에 대비했던 모양이었다. 케리아돌은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는지 주먹으로 탁자며 의자를 마구 부셨다. 어찌나 흥분했는지 금방이라도 입에서 불길을 토해낼 기세였다.


“이 찢어 죽여도 모자랄 놈들. 아루가 이 세계에 부여한 선물을, 자신들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도리어 죽인다고? 이런 배은망덕한 행위가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네놈들은 벌써 성언전을 잊었단 말이냐!”


그녀는 다시 나타니엘을 잡아 바닥에 패대기쳤다. 이번에는 마법이 풀렸는지 그의 입에서 피가 토해져 나왔다. 이성을 잃었던 케리아돌도 그 광경에 흠칫 놀라 행동을 멈추었다. 다행히 나타니엘은 의식이 있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를 보며 케리아돌은 고통스럽게 말했다.


“어째서냐...왜 알면서도 막지 않은 게야!”


그러자 나타니엘은 피식, 하고 덧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빙그레 드러난 이빨 사이로 핏물이 가득 배어 나왔다.


“어쩌겠습니까...저 또한 우매한 인간인 것을...이렇게 대륙이 통일되고, 세상이 평온해진다면...그걸로 좋은 것 아닐까요? 아반케즈의 아이는 죽음으로서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줄 겁니다.”


“세상의 평화가 아니라 리크나이츠의 평화겠지, 더러운 놈들!”


북벌. 흔히 역사서에는 브리토리스가 먼저 침공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클라리스는 이 시기 가장 먼저 각성한 신의 아이였고, 당시 신생국이었던 리크나이츠는 그녀가 가진 힘을 이용해 차근차근 국력을 불려나갔다. 대륙은 브리토리스, 리크나이츠, 아스트리카의 3강 구도였지만 사실 경제력이나 군사력이나 리크나이츠가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북벌에 불을 지피는 사건이 발생했다. 또 다른 신의 아이, 아반케즈의 아이가 브리토리스 왕국에서 각성한 것이었다. 각성한 아반케즈의 아이는 온화한 성품을 지닌 소년이었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권력가들의 암투는 그렇지 못했다. 당장 그의 힘을 군사적으로 활용할 방안이 모색되기 시작했다. 리크나이츠에도 클라리스라는 카드가 있긴 했지만, 그녀는 잦은 권능의 사용으로 수정의 에센스가 현저하게 떨어진 상태였다. 또한 개별적인 능력의 활용성도 아반케즈의 아이에겐 상대가 되지 않았다.

왕은 결정을 내렸다. 대대적으로 군사를 일으켜 브리토리스를 침공하는 한편, 일단의 별동대를 구성해 아반케즈의 아이를 암살하도록 했다. 명분도 없는 전쟁이었다. 리크나이츠 군대는 변변한 선전포고도 없이 불시에 국경을 넘었다. 기습은 대성공이었다. 카잘산맥을 통과한 이후에는 주욱 상승가도였다. 주력부대는 개전 한 달 만에 수도를 점령했고, 브리토리스 병사들의 시체가 거리 곳곳에 널브러졌다.

그즈음 별동대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숙련된 암살자로 이루어진 별동대는 기어코 아반케즈의 아이의 거처를 찾아냈고, 궁전 지하실에 숨어 있던 어린 소년을 무참하게 살해했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신의 아이는 죽었고, 브리토리스 군대도 와해하였다. 아무런 하자가 없는 말끔한 승리였다. 죽었던 아반케즈의 아이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죽었다가...다시 살아났다고?”


이제 책장 넘기는 소리보다 검 휘두르는 소리가 더 잦아진 궁전 내부에서, 케리아돌은 어느 전령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옆에는 클라리스와 그람, 그리고 더욱 움츠러든 안다바리엘의 모습도 보였다.

아반케즈의 아이는 죽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육신이 스러지자 수정의 힘을 이용해 다른 인간에게 빙의한 것이었다. 빙의한 대상은 아반케즈의 한 왕족으로, 리크나이츠에 강렬한 적개심을 품고 있던 남자였다. 그리고 그의 심성을 반영하듯이, 새로 태어난 아반케즈의 아이는 엄청난 규모의 군대를 일으켰다. 성언전에 봤었던 바로 그 ‘자연의 군대’였다.


“네놈! 소환사였지? 지금 당장 타이달루크 메디치를 호출하라!”


케리아돌이 안다바리엘을 윽박질렀다. 그는 위압적인 태도에 한동안 몸을 떨더니, 불쌍하게 캐스팅을 외우기 시작했다. 마법진 바깥쪽에서 몇 차례 실랑이가 오고 갔으나, ‘케리아돌의 호출’이라는 말에 한 마법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튜닉과 가죽조끼를 멋지게 차려입고, 거대한 책을 옆구리에 낀 그 남자는 마치 본떠 만들기라도 한 것처럼 메디치와 똑 닮아 있었다. 메디치는 어이없어하는 일행을 보곤 어깨를 으쓱했다.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습니까?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대충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제리온이 소환된 남자와 메디치를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뭐야? 타이달루크라면 나타니엘과 쌍벽을 이루던 대마법사잖아. 당신이...그 타이달루크란 말이야?!”


-하하하, 설마요. 나타니엘보다는 제가 좀 더 낫지요.


“대체 왜 지금까지 숨긴 건데!”


-숨긴 적 없습니다. 애초에 제게 묻지도 않았지 않습니까?


제리온은 이마가 지끈거려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역시 이 섬은 보통 섬이 아니었다. 생전 처음 보는 괴물들이 돌아다니고, 업솔루트 마법사가 존재하고, 전설의 드래곤 케리아돌이 있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500년 전 활동하던 마법사가 생텀가드가 되어 자신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소환된 타이달루크는 케리아돌의 노기 띤 얼굴을 보곤 길게 탄식했다.


“갑자기 무슨 일입니까? 보자고 할 땐 그렇게 피하더니...”


“긴말하지 않겠다. 아반케즈의 아이가 되살아났다.”


마법사의 표정이 대번에 어두워졌다. 타이달루크는 그녀의 짧은 몇 마디에 모든 정황을 파악했지만, 짐짓 모른 척 되물었다.


“되살아났다면...언데드로 말입니까? 그럼 수정은...”


“아니, 말 그대로 완벽하게 부활했느니라. 수정 역시 아직 빛나고 있고.”


“하하하. 그런 게 가능할 리 없잖습니까. 아루가 정한 법칙에 명백히 위배되는데요.”


“그래. 역시 신의 아이라 칭할 만하지. 법칙을 파괴했어.”


방 안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그람과 안다바리엘은 두 대마법사 사이에 끼어 숨 한 번 제대로 내뱉지 못하고 있었다. 클라리스는 창밖에 시선을 둔 채 초연한 모습이었으나 부자연스럽게 경직된 움직임이 그녀 역시 긴장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타이달루크는 옆구리에 끼고 있던 책을 펴 파라락 넘기기 시작했다. 그건 그가 생각을 정리할 때 취하는 습관 같은 것으로, 실제 책에서 무언가를 찾아내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책갈피를 넘기는 손이 멈추면, 그때가 그가 말할 타이밍이었다.


“죽여야겠군요. 대기 중인 기사단원이 몇이나 있었더라? 직접 국왕에게 청원해야겠군요.”


일이 이렇게까지 벌어진 이상, 하루빨리 아반케즈의 아이를 처리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제아무리 신의 아이라 해도, 두 번이나 되살아날 만큼의 에센스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케리아돌의 생각은 달랐다.


“죽여? 건방진 소리를 하고 있구나. 본토로 들어갔던 군대는 전멸했다. 신의 아이에게 병력은 의미가 없어. 지금은 무조건 강화를 맺어야 한다. 이 나라의 존속을 위한다면!”


“글쎄요...아무리 생각해도 그쪽 입장에서는 강화를 맺을 이유가 없는데요. 무적의 군대가 있는데.”


“네...네놈!!”


케리아돌이 흥분한 듯 이를 갈았다. 그러나 타이달루크는 그녀의 분노를 보고도 자신의 주장을 철회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있는 쪽은 바로 그였다. 반면 케리아돌은 성언전의 기억이, 그리고 1차 소환 때 신의 아이에게 가졌던 경외심 때문에 평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타이달루크가 말했다.


“케리아돌님, 당신이 신의 아이를 존경하는 마음은 알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자연의 군대는 악마가 아닌 리크나이츠를 목표로 진군하고 있겠지요. 물론 일이 이렇게까지 커진 것에 대해서는 귀족원의 책임을 분명히 물어야 하겠지만, 일단은 아반케즈의 아이를 막는 게 최우선입니다. 그가 머리가 굴러가는 편이라면...가장 먼저 클라리스 공주를 노리겠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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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3) +3 15.05.03 845 29 18쪽
211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2) +3 15.05.03 764 22 23쪽
210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1) +2 15.05.03 853 23 20쪽
209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7) +5 15.05.03 795 28 25쪽
208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6) +2 15.05.03 894 24 22쪽
207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5) +4 15.05.02 938 29 21쪽
206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4) +1 15.05.02 884 27 20쪽
205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3) +2 15.05.02 690 24 21쪽
204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2) +2 15.05.02 767 24 24쪽
203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1) +2 15.05.02 586 24 22쪽
202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6) +3 15.05.02 696 28 18쪽
201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5) +5 15.04.29 863 24 19쪽
200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4) +1 15.04.29 937 24 26쪽
199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3) +1 15.04.29 789 24 24쪽
198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2) +3 15.04.29 812 26 18쪽
197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1) +1 15.04.29 758 24 17쪽
196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8) +4 15.04.28 904 28 16쪽
195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7) +3 15.04.28 840 25 20쪽
194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6) +3 15.04.27 711 26 19쪽
193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5) +3 15.04.27 756 22 17쪽
192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4) +2 15.04.27 731 22 18쪽
191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3) +1 15.04.27 730 30 18쪽
190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2) +2 15.04.27 758 27 19쪽
189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1) +2 15.04.27 789 31 18쪽
188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完) +1 15.04.27 599 33 18쪽
187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5) +4 15.04.26 733 24 17쪽
186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4) +1 15.04.26 928 28 16쪽
185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3) +2 15.04.26 739 26 20쪽
184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2) +6 15.04.23 779 28 15쪽
183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1) +3 15.04.23 840 26 19쪽
18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2) +2 15.04.23 755 25 17쪽
18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1) +3 15.04.23 767 26 15쪽
180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0) +1 15.04.23 682 25 22쪽
179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9) +3 15.04.22 811 29 16쪽
178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8) +3 15.04.22 846 27 15쪽
»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7) +1 15.04.22 777 29 18쪽
176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6) +1 15.04.22 790 23 18쪽
175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5) +2 15.04.22 765 29 15쪽
174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4) +3 15.04.22 911 25 18쪽
173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3) +5 15.04.21 767 27 16쪽
17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2) +2 15.04.21 922 25 14쪽
17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 +3 15.04.21 806 25 17쪽
170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8) +3 15.04.21 729 24 21쪽
169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7) +2 15.04.21 703 19 15쪽
168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6) +4 15.04.20 751 24 18쪽
167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5) +2 15.04.20 655 20 18쪽
166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4) +1 15.04.20 767 23 17쪽
165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3) +2 15.04.20 738 24 16쪽
164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2) +3 15.04.20 809 20 16쪽
163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1) +1 15.04.20 821 22 21쪽
162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6) +1 15.04.20 830 29 14쪽
161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5) +2 15.04.20 711 25 18쪽
160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4) +3 15.04.19 865 28 18쪽
159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3) +3 15.04.19 946 28 18쪽
158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2) +3 15.04.19 901 26 22쪽
157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1) +5 15.04.19 1,210 46 22쪽
156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10) +6 15.04.18 901 26 21쪽
155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9) +3 15.04.18 772 26 18쪽
154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8) +1 15.04.18 657 24 19쪽
153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7) +2 15.04.18 687 26 18쪽
152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6) +1 15.04.18 748 27 17쪽
151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5) +4 15.04.18 713 23 16쪽
150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4) +1 15.04.18 669 24 17쪽
149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3) +2 15.04.18 754 22 17쪽
148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2) +3 15.04.16 849 2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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