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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3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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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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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57
글자수 :
2,844,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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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18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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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3)

DUMMY

“오, 시험이란 거군요! 어떤 건데요?”


레미나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녀의 천진한 모습에 로시오는 약간의 죄책감을 느꼈으나, 이것이 그녀를 위해서도 좋은 일일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공주님, 무예에도 학문에도 재능 차이가 있는 것처럼 마도학 역시 사람에 따라 그 감응도라는 게 존재합니다. 다만 다른 학문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 감응도가 낮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마법을 사용하기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좀 잔혹한 일이지만 이 돌을 사용해 부적합자를 일찍이 탈락시키는 겁니다.”


“음...아무리 노력 해도요?”


“예. 만약 이 돌이 빛나지 않는다면, 마도학과는 인연이 없다고 생각하셔야 할 겁니다.”


“응? 아버지...그거...”


제리온은 로시오의 발언에 이의를 제기하려다가, 뒤늦게 그의 의도를 눈치채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마나스톤이 사용자의 마력 감응도를 측정하는 도구인 건 사실이다. 그러나 마법사가 끌어모을 수 있는 마나의 양이 언제나 한결같을 수는 없다. 당연히 숙련된 마법사는 많은 양의 마나를 사용할 것이고, 초심자는 그렇지 못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로시오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마나스톤은 높은 감응도를 지닌 사람이 사용하면 빛을 뿜지만, 적어도 입문자에게 그런 일이 발생할 리는 만무하다. 마나스톤 검사는 사실 ‘빛’이라는 가시적 성과보다는 그 주변에 이끌리는 마나의 움직임을 통해 적성을 판단하는 도구였다. 아무런 변화가 없는 이는 부적합자로 판단해 퇴출당하고, 마나의 미동이 보인 이에게는 피를 깎는 노력을 통해 마나스톤을 빛낼 기회가 주어진다. 이 마나스톤을 빛낼 수 있게 한 후에야 입문자는 비로소 전공 학파를 지정해 전문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일반적인 마법사가 두 달은 걸려야 마나스톤을 빛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레미나가 로시오의 시험에 통과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했다. 마법에 재능이 있는 제리온조차 2주가 걸려서야 간신히 빛을 낼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제리온은 히죽 웃으며 마나스톤을 집어 들었다. 돌을 가슴에 대고 정신을 집중하자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레미나와 만나기 전부터 1클래스 마법을 익히는 중이었기에 이런 시험은 식은 죽 먹기였다. 빛이 나자 레미나는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손뼉을 쳤다.


“왓, 와앗. 역시 제리온은 되는구나! 멋있다아~.”


“그야 뭐, 이 정도는 기본 중의 기본이죠. 헤 헤.”


그는 우쭐해 하며 레미나에게 돌을 건넸다. 제리온은 오늘이 공주와 함께 하는 마지막 수업이라 생각하자 즐거워 미칠 지경이었다. 돌이 빛나지 않았을 때 그녀가 보일 상실감을 상상하니 절로 어깨춤이 나왔다. 건방진 공주에게 한 방 먹일 기회가 드디어 온 참이었다.

반면 로시오는 착잡한 표정이 되어 그녀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어찌 됐든 그녀는 일주일간 성실히 수업에 임했다. 그녀의 높은 신분이 이런 식으로 방해가 될 줄 상상이나 했을까? 로시오는 오히려 공주가 아니었다면 제자로 삼고 싶을 정도로, 그녀의 붙임성과 애교가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어쩌랴, 이것이 국왕의 명령인 것을. 그녀가 낙담할 것을 예상하니 그는 스스로도 울적해져 한껏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공주님, 이제 돌을 가슴에 대고 정신을 집중하십시오. 절대 한 점의 흐트러짐도 있어선 안 됩니다. 만약....감응도가 높다면 돌이 빛을 낼 겁니다.”


“옙!!”


그녀는 당차게 대답하고는 마나스톤을 가슴에 댔다. 멜피드 부자는 숨죽이고 마나스톤에 시선을 집중했다. 제리온은 한껏 들떠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이제 공주에게 시달림당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온몸이 날아갈 것 같이 홀가분했다. 돌이 빛나지 않았을 땐 뭐라고 빈정거려야 알맞을까? 너무 심하게 말하면 뒤에 있는 기사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위로해주는 척 하면서도, 깔 건 까는, 그러한 입담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제리온은 금방이라도 그녀를 조롱하고 싶은 걸 억지로 참았다.


“.....”


레미나는 눈을 꼭 감은 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그녀는 이따금 집중이 흐트러지는지 눈썹을 찌푸렸는데, 그녀의 바람은 아는지 모르는지 마나스톤은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뒤에서 구경하던 기사들과 메이드는 가슴이 타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저 귀여운 공주님이 상심하는 모습을 어찌 본단 말인가! 반면, 제리온만은 만면에 희색을 띤 채였다.

그때였다.


“오메, 깜짝이야!!”


로시오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제리온도, 로시오도, 심지어 국왕 란테리크도 가늠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정지해있던 마나가 일순 마나스톤 주위를 돌기 시작하더니, 돌을 중심으로 응집되기 시작했다. 로시오는 기가 막혀 할 말을 잃었다. 마나스톤이 노오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빛...빛이 난다...”


“어, 정말이네? 공주님, 빛이 납니다!”


“공주님, 축하드립니다.”


높으신 분의 바람을 알 리 없는 기사들은 앞다투어 레미나의 성공을 축하했다. 뒤늦게 눈을 뜬 레미나는, 희미하지만 확실히 빛을 내는 마나스톤의 모습에 펄쩍 뛰었다.


“꺄아, 예뻐라. 스승님, 성공이에요, 저도 성공했어요!!”


그녀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마나스톤을 아이 어르듯이 어루만졌다. 로시오와 제리온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그녀와 마나스톤을 멍하니 응시했다. 두 부자가 침묵한 덕에 레미나의 환호성과 기사들의 박수소리가 정원 가득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야호, 마법이다 마법! 나도 이제 마법사라고. 제리온, 봤어?!”


그녀가 폴짝 뛸 때마다 치마가 높이 치솟았다가 가라앉았고, 그 여파로 내려앉은 꽃잎들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마치 정원의 식물들도 그녀의 성공을 축하하는 양 그윽한 향기를 뿜어냈다. 그녀는 세상 모든 것이 자신을 축복하는 듯한 기분에 취해 꽃밭을 마구 뒹굴었다.

뭐, 얼떨떨하긴 할지라도 로시오는 그녀의 성공을 결과적으로는 흡족해했다. 그러나 제리온은 달랐다. 그는 평소보다 훨씬 꽁한 표정으로 주먹을 부르르 쥐다가, 레미나가 자신의 손을 잡고 흔들자 강하게 뿌리쳤다. 그러자 그녀는 어안이 벙벙하여 눈을 동그랗게 떴다.


“웃기지 마! 이건 다 거짓말이야. 난 절대 인정 못 해!!”


“응? 뭘?”


꼬마의 짓밟힌 자존심을 알 리 없는 레미나는 생글거리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제리온은 공주님이라는 신분도 망각하고 그녀를 세게 밀쳤다. 풀썩, 그녀가 쓰러지는 소리보단 뒤에 선 기사들의 비명이 훨씬 크게 들렸다. 각종 화초가 우거져 다칠 거리도 없었지만, 그녀는 제리온이 자신을 밀쳤다는 사실에 너무나 놀랐다. 앞을 바라보니 제리온의 입술이 바르르 떨리는 게 보였다. 그가 말했다.


“내...내가 마나스톤을 빛나게 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아침밥도 먹기 전에 일어나서...바...밤에는 아버지 몰래 양초도 켜놓고...그래도 2주일이나 걸린 건데...어째서, 어째서 너 따위가 성공하는 거야!!”


“무슨 소리야? 내가 뭘...”


“저리 가! 다른 사람은 몇 달이나 걸리는 걸 2주 만에 성공해서 얼마나 기뻤는데...치...친구 중에서도 날 뛰어넘은 놈은 없었는데....너...너 따위 계집애가...욱...”


계급으로도 모자라 마법적인 재능마저도. 이제 레미나에게 그 어느 것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소년은 순간 감정이 복받쳤다. 마법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 적어도 또래 아이들 중에서는 -지지 않겠다는 자신이 있었기에 충격은 더욱 크게 다가왔다. 한편 레미나는 영문도 모른 채 제리온의 고성을 감내해야 했다. 제리온은 앞뒤 가리지 않고 쏘아붙이다 점점 숨을 헐떡이더니, 급기야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으아아아앙~!”


대로하여 그를 혼쭐내려던 기사들도 귀청을 찢는 울음소리에 놀라 뒤로 물러섰다. 제리온은 언젠가 레미나가 그랬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서럽게 울었다. 바로 코앞에 선 레미나는 너무 놀라 온몸을 떨었지만, 침착하게 그를 달래기 시작했다.


“제리온~왜 울어...울지 마~.”


“으아앙...저리 가!”


“울지 마. 나 때문이야? 내가 잘못한 거야?”


“으아앙~! 아버지!!”


그녀는 제리온의 어깨를 다독거렸지만 울음소리는 더욱 커져만 갔다. 여덟 평생 동생은커녕 자신을 제외하곤 누가 우는 모습을 본 적도 없던 그녀였기에, 어르기가 통하지 않자 점점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녀는 제리온의 통곡에 감정이 전이됐는지, 눈물을 훌쩍이다 결국 함께 울기 시작했다.


“울지 마...울지 마아....우에에엥!!”


“아이고, 공주님!!”


공주가 울자 기사들은 공황상태에 빠져 우왕좌왕했다. 메이드는 어떻게든 아이들을 달래려 했지만, 상대가 공주님인 만큼 태도가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들은 모든 사건의 원인인 로시오에게 눈길을 돌렸다. 기사 중 하나가 간절하게 도움을 청했다.


“이보세요, 멜피드님! 넋 놓고 있지 말고 좀 도와주셔야죠!”


“우에에에엥!!”


“.....”


그때까지 목석처럼 굳어있던 로시오가 기사의 부름에 정신을 차렸다. 그는 머리털을 몇 번 쥐어뜯다가, 기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발걸음은 아이들이 아닌 사립문 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의 확신에 찬 걸음걸이에 메이드가 경악하여 물었다.


“이...이봐요, 주인님. 지금 상황에 어딜 가시는 거예요?!”


“뒷일을 부탁한다. 난 지금 당장 폐하를 알현하고 와야겠어.”


그는 그렇게 답하고서 다른 이들이 차마 대꾸할 틈도 없이 문밖으로 사라졌다. 두 소년소녀가 뒤엉켜 대성통곡을 하는 가운데, 기사들은 로시오가 떠나간 사립문을 오래도록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


“무슨 일인가? 갑자기 이렇게.”


집무실에서 서류를 검토하던 란테리크가 피곤한 얼굴로 물었다.


“그게...폐하...”


로시오는 궁전에 들어서자마자 긴급 알현을 신청했다. 직책상 자주 담화를 주고받는 사이인데도 이런 절차를 수행했다는 건 그만큼 급한 일이라는 증거였다. 그는 먼저 알현을 신청한 귀족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박살내다시피 집무실 문을 열어젖혔다.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 사이에서 국왕은 더 이상 들뜰 거리도 없다는 듯 지치고 무료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놀랄 여지는 충분했다.


“레미나 공주님 말입니다. 오늘 마나스톤 검사를 했는데...놀라지 말고 들어주십시오.”


란테리크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수단은 위임했을지라도 레미나가 마법을 포기하게끔 하라고 그에게 귀띔해준 것도 국왕 자신이었다. 게다가 그 또한 마나스톤 검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물론 딸아이가 낙담하는 모습은 슬픈 일이었겠지만, 이렇게 긴급 알현까지 신청하며 자신을 찾아온 게 쉬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가 말했다.


“말해보게.”


“공주님은 천재입니다. 저보다 훨씬 뛰어난.”


란테리크의 입이 떡 벌어졌지만, 다행히 비명을 지르거나 하진 않았다. 그랬다간 근위병들이 대경실색하여 안으로 뛰어들어왔을 것이다. 그는 크게 헛기침을 하며 자신이 예상한 것이 틀렸기를 간절히 바랐다.


“저기, 로시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나를 기쁘게 해주려고 딸애를 칭찬하는 건...”


“폐하, 지금 제 평가에 과장은 조금도 섞이지 않았습니다.”


“...자세히 말해보게.”


“돌이 빛났습니다. 그것도 처음 만졌는데, 단 한 번 만에!”


그는 들떠서 자신이 목격한 바를 설명했다. 그는 레미나가 이룬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그리고 그녀가 지닌 재능이 얼마나 괄목할 만한 정도인지를 목이 쉬어라 부르짖었다. 덧붙여서 그는 자기 세대 최고의 천재라 일컬어지는 카토르 르휘베트조차 마나스톤 검사에 통과하기까진 사흘이 걸렸으며, 레미나는 그보다도 재능 면에서 훨씬 뛰어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야기를 들은 후 란테리크는 깊은 신음을 흘리며 관자놀이를 부여잡았다. 그의 말대로라면 자식의 재능을 꽃피워주는 게 부모 된 도리겠지만...그녀가 처한 위치가 너무도 막중했다. 천재마법사와 공주, 전혀 맞지 않는 조합이었다.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재능이란 이를 두고 말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란테리크는 고민하다 못해 끙끙 앓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으음...그래서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솔직히 썩히기엔 아까운 재능입니다. 여건만 된다면 제대로 가르쳐보고 싶을 정도로요.”


로시오는 이미 결심을 굳힌 것으로 보였다. 재능은 신이 내려주는 것. 그는 신분이 걸림돌이 된다 한들 그 재능을 썩힌다면 이를 내려준 신에 대한 모독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부친인 란테리크는 여전히 배회하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가능성이 높다면...하지만 딸아이는 그래도 명색이 공주인데...좀 그렇지 않나?”


“적자를 낳으신다면 아무 문제없는 사안입니다.”


국왕의 헛기침소리가 커졌다. 로시오는 대신들 사이에서 불문율과도 같은, 레미나 외엔 도무지 소식이 없는 국왕의 가족 사업을 들춘 것이었다. 그가 말했다.


“폐하, 고작 마법사인 제가 이런 말씀을 드려 송구합니다만, 공주님 하나만을 바라보는 현 상황은 매우 불안정합니다. 공주님이 차후 여왕의 자리에 오르는 방법도 있긴 합니다만, 그건 공주님에게도 매우 불행한 처사지요.”


“...어째서지? 자네의 의견이 궁금하군.”


“북위(北衛)파와 남진(南進)파의 격돌은 충분히 인지하고 계실 터이니 굳이 언급하진 않겠습니다. 폐하께서 바라시는 관점에서 말씀드리면, 일단 공주님이 여왕이 되면 결혼을 하기 힘들어집니다. 한평생 독수공방하게 되는 것이지요.”


“윽...알았네. 거기까지만 하게.”


란테리크는 1절이 끝나자마자 바로 손사래를 쳤다. 보석보다 귀한 딸이 평생 독신이라니, 생각만 해도 아버지로서 가슴이 미어졌다. 그는 화제를 원래대로 되돌리기 위해 한 템포 쉬어가는 시간을 가졌다. 짧은 티타임을 거친 후, 그가 말했다.


“자네 말은 즉, 레미나가 여왕이 되지만 않는다면 마법을 배우는 일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 아닌가. 설령 그렇다 해도 공주가 마법사라니...”


“폐하, 마법사가 되라는 뜻으로 아뢴 게 아닙니다. 승마를 배웠다고 기수가 되고, 뜨개질을 배웠다고 바느질꾼이 되는 건 아니잖습니까? 전 그저 전문 직업으로 삼으라기보다는, 학문의 분야로서 정진해나가는 방향을 제시 해드린 것뿐입니다. 마도학은 이단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오히려 무예보다 더 정신수양에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이단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말이지. 중요한 포인트를 강조해줘서 고맙네.”


란테리크는 찻주전자를 들어 벌컥벌컥 마시더니, 테이블에 놓인 찻잎을 집어 씹기 시작했다. 책상에 쌓인 서류보다 골치 아픈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로시오는 보란 듯이 그런 일을 가지고 온 것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근본적인 원인은 자신에게 있었다. 처음에 그는 딸이 거만해지는 일을 막고자 여러 민간 기술의 습득을 장려했다. 뜨개질이나 빨래 등을 배우며 백성의 생활을 이해하게 될 거라 생각한 것이었다. 예상대로 레미나는 왕성한 호기심을 발산해 닥치는 대로 기술을 배웠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마법은, 언젠가 그녀가 무두질을 배우고 싶다고 했을 때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딸이 항상 여성스럽고, 우아한 기술을 배우고 싶어할 거라 생각한 게 착오였다.


“알았네, 알았어. 나도 딸이 옛날 얘기를 들추며 나를 사기꾼으로 몰아가는 것만큼은 사양하고 싶다네.”


기나긴 고민이었지만, 자신이 뿌린 씨앗이라는 죄책감과, 로시오의 강력한 추천이 결단을 부추겼다. 결국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레미나의 마도학 강의 수강을 정식으로 허가했다. 로시오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물었다.


“폐하, 그렇다면 기간은 언제까지로?”


“일단은 딸애가 원할 때까지. 말했지만, 진짜 마법사로 키울 생각은 없으니 잘 좀 부탁하네. 그 녀석도 곧 나이를 먹을 테고, 십대가 되면 여러 가지 생각이 생길 테니 그때 가서 또 마음이 바뀌겠지. 그때까진 아무쪼록, ‘실용적인 기술’이라는 한도 내에서만 가르쳐주길 바라네.”


“...망극합니다, 폐하.”


그렇게 하여 조기에 끝을 맺을 거라 여겨졌던 제리온과 레미나의 동문 관계는 장장 10년에 걸치도록 그 질긴 인연을 이어가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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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2) +2 15.05.02 766 24 24쪽
203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1) +2 15.05.02 585 24 22쪽
202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6) +3 15.05.02 695 28 18쪽
201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5) +5 15.04.29 863 24 19쪽
200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4) +1 15.04.29 937 24 26쪽
199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3) +1 15.04.29 789 24 24쪽
198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2) +3 15.04.29 812 26 18쪽
197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1) +1 15.04.29 758 24 17쪽
196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8) +4 15.04.28 904 28 16쪽
195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7) +3 15.04.28 839 25 20쪽
194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6) +3 15.04.27 711 26 19쪽
193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5) +3 15.04.27 756 22 17쪽
192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4) +2 15.04.27 731 22 18쪽
191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3) +1 15.04.27 730 30 18쪽
190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2) +2 15.04.27 757 27 19쪽
189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1) +2 15.04.27 789 31 18쪽
188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完) +1 15.04.27 598 33 18쪽
187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5) +4 15.04.26 733 24 17쪽
186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4) +1 15.04.26 928 28 16쪽
185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3) +2 15.04.26 739 26 20쪽
184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2) +6 15.04.23 779 28 15쪽
183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1) +3 15.04.23 839 26 19쪽
18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2) +2 15.04.23 755 25 17쪽
18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1) +3 15.04.23 767 26 15쪽
180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0) +1 15.04.23 682 25 22쪽
179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9) +3 15.04.22 811 29 16쪽
178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8) +3 15.04.22 846 27 15쪽
177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7) +1 15.04.22 776 29 18쪽
176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6) +1 15.04.22 790 23 18쪽
175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5) +2 15.04.22 764 29 15쪽
174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4) +3 15.04.22 911 25 18쪽
173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3) +5 15.04.21 767 27 16쪽
17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2) +2 15.04.21 921 25 14쪽
17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 +3 15.04.21 805 25 17쪽
170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8) +3 15.04.21 729 24 21쪽
169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7) +2 15.04.21 702 19 15쪽
168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6) +4 15.04.20 750 24 18쪽
167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5) +2 15.04.20 655 20 18쪽
166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4) +1 15.04.20 767 23 17쪽
165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3) +2 15.04.20 738 24 16쪽
164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2) +3 15.04.20 809 20 16쪽
163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1) +1 15.04.20 821 22 21쪽
162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6) +1 15.04.20 829 29 14쪽
161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5) +2 15.04.20 711 25 18쪽
160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4) +3 15.04.19 865 28 18쪽
159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3) +3 15.04.19 946 28 18쪽
158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2) +3 15.04.19 901 26 22쪽
157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1) +5 15.04.19 1,210 46 22쪽
156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10) +6 15.04.18 901 26 21쪽
155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9) +3 15.04.18 772 26 18쪽
154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8) +1 15.04.18 656 24 19쪽
153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7) +2 15.04.18 686 26 18쪽
152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6) +1 15.04.18 748 27 17쪽
151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5) +4 15.04.18 712 23 16쪽
150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4) +1 15.04.18 668 24 17쪽
»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3) +2 15.04.18 754 22 17쪽
148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2) +3 15.04.16 848 2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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